제4장 인간 한계의 관문 칠겁관(七劫關)
무천룡의 거처는 무성전에서 일마장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천룡헌(天龍軒)이었다
. 천룡헌은 꽃밭으로 뒤덮인 단층 석옥이었다.
무천룡이 천룡헌으로 향했다.
"이제 오느냐?"
천룡헌 안에서 들려오는 창노한 음성이 있었다.
연회가 시작할 때쯤 해서 자리를 뜨던 정의무성 무천형(武天衡)이
언제부터인가 천룡헌 안에 와 있었던 것이다.
"네, 할아버지."
무천룡이 크게 소리치며 천룡헌 안으로 뛰어 들어가자
정의무성이 의자에 앉은 채 그를 마중했다.
"네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실 할아버지께서 먼저 자리를 떠서 연회가 매우 지루하게 느껴졌습니다."
무천룡이 어리광을 부리자 정의무성이 그를 안아 무릎 위에 앉힌 후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천천히 말했다.
"연회가 지루했다니 안된 일이다. 이제부터 큰 고생이 있을 텐데…
다시 그런 연회에 참석하려면 칠 년은 기다려야 할 것이다."
"그럼 이 순간부터 소손을 대무신공의 전인으로 만드신단 말씀이 아니시옵니까?"
"허허, 네게 무엇을 감출 수 있겠느냐? 바로 그렇다. 너는 이 순간부터 각고의 길에 들어가야 한다."
무천룡은 차분하게 물었다.
"악마의 관문이라는 칠겁관에 들어야 한단 말씀이시군요?"
"그렇다. 너는 열흘 후 칠겁관에 들게 된다. 열흘 동안은 구결을 암기해야 한다."
"두렵지 않습니다. 칠겁관의 고통이 인간으로서 참기 힘든 것이라고 해도
소손을 위하는 할아버지의 마음이 있지 않습니까?"
무천룡이 씩씩하게 말하자 정의무성은 가슴이 뜨거워졌다.
'이 아이에게 지나친 시련을 주는 것이 아닐까?
이제 겨우 열살이다. 이 어린나이에 칠겁의 시련을 거쳐야 하는 운세라니….'
정의무성은 이 순간 범속한 조부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잠시뿐이었다.
그는 정의무성다운 풍모를 되찾고 아주 위엄 있게 말했다.
"칠겁관이 무엇을 위한 관문인지 아느냐?"
"그것은 대무신공의 두 번째 단계인 금갑신(金甲身)을 이루기 위한 관문입니다
. 안(眼) 비(鼻) 이(耳) 설(舌) 부(膚)와 육감(六感)을 단련시켜
금강불괴의 몸이 되는 것이 금갑신이고,
그것은 양심신(兩心身)을 위한 기초단계이기도 합니다."
"훌륭히 아는구나!"
무천룡은 밝은 성목을 반짝이며 또렷하게 말을 이었다.
"소손은 금갑신의 단계가 대무신공의 최후단계 무형신(無形身)보다도
오히려 어려운 단계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금갑신을 얻게 되면 나머지 세 단계를 이루는 것은 단지 시간 문제일 뿐이겠지요."
"오, 훌륭하구나."
"소손은 이미 철골신(鐵骨身)입니다.
괴로움이 있더라도 죽지는 않을 강한 신체입니다
. 그러니 소손이 칠겁관 안에 드는 것을 너무 심려하지 마십시오."
"허허…네가 아직 어린아이인 줄로만 알았더니 어느새 다 커서 심기가 할애비를 능가하는구나."
정의무성은 품 안에서 두 권의 소책자를 꺼내 무천룡의 손에 쥐어 주었다.
그 중 한 권은 빛이 바랜 양피지(羊皮紙) 비급이었고,
한 권은 최근에 만들어진 티가 역력한 죽지비급(竹紙秘 )이었다.
"양피지에는 천하제일신공인 대무신공을 수록하고 있다
. 그리고 대나무 종이로 만든 비급에는 네가 십절에게서 절예를 배우는 동안
할아버지가 창안해 낸 일곱 가지 초식이 수록되어 있다. 너를 위해 만든 것이다
. 이름하여 대무칠살식(大武七煞式)이라는 것이다."
정의무성이 지난 칠 년 간 칠겁관을 만드는 일에만 전념한 줄 알고 있던 무천룡은
정의무성의 말에 깜짝 놀라게 되었다.
'대무칠살식…? 본국의 무공에는 살기(煞氣)가 없는 것이 상례인데…
어이해 살(煞) 자가 들어 있는 초식을 만드셨을까?'
정의무성은 어린 손자의 심중을 대번에 파악했다.
"대무칠살식은 대무신공을 칠성 이상 익힌 후에야 시전할 수 있는 절기들로
칠마(七魔)의 마공에 극성이 된다.
칠살식을 시전하기 위해서는 철골신, 금갑신 그리고 양심신과 섬수신을 얻어야 한다.
지금 네게 주는 이유는 초식이 매우 난해한 것이니 틈틈이 익혀 두라는 저의에서이다."
"그렇다면 대칠살식은 오로지 칠마의 마공을 제압하기 위해 창안된 것이군요?"
"그렇다. 네가 세 살 되던 해에 칠마를 찾아가 겨룬 일이 있지 않느냐?
그때 칠마의 마공을 관찰한 결과 얻은 심득(心得)이 바로 칠살식의 기초다
. 칠살식 하나하나는 칠마 중 하나를 제압하도록 만들어져 있다."
"이제 알겠습니다."
"칠살식은 금갑신을 얻은 직후부터 수련해야
네 나이 십칠 세 때 능숙히 시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정의무성은 그렇게 말한 후 소매를 흔들었다.
그의 소매에서 무형강기(無形 氣)가 뿌려며 천룡헌의 벽 동쪽 벽면에 글씨가 새겨졌다.
― 복마제심마(伏魔制心魔).
― 벽천제음마(劈天制陰魔).
― 쇄양제태음마(碎陽制太陰魔).
― 쇄음제현음마(碎陰制玄陰魔).
― 능운제비마(凌雲制飛魔).
― 천영제검마(千影制劍魔).
― 번설제선마(飜雪制扇魔).
돌가루가 분분한 가운데 이런 글이 새겨졌다
. 처음부터 끝까지 정확히 세치 깊이를 갖게 된 지인(指印)은 바로 칠살식의 초식 명이었다.
"칠마는 아주 무서운 상대들이다. 그러나 칠마식을 익힌다면 능히 칠마를 제압할 수 있다."
"명심하겠습니다, 할아버지."
"됐다. 그럼 칠마를 죽일 칠살식에 대한 것은 당분간 잊거라."
정의무성이 웃으며 다시 한 차례 철수진기(鐵袖眞氣)를 일으켰다
. 그의 소매에서 무형강기가 일어나 동쪽 석벽을 휘감자 글씨가 흔적을 감췄다.
'할아버지의 무공은 초인적이다. 그런데 왜 칠마를 두려워하실까?
칠마가 그렇게 강한 상대인가?'
무천룡은 글씨가 나타났다 사라지자 미묘한 기분이 되었다.
마친 그 자신은 얼굴도 모르는 칠마를 상대하기 위해 태어난 기분이었다.
"오늘 밤으로 너는 열 살에서 열한 살이 된다."
정의무성이 무천룡을 무릎 아래로 내려놓으며 몸을 일으켰다.
그의 표정이 전과 달리 엄숙했다.
"나는 이제껏 네게 자비스러운 할아버지였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아니다. 이제부터는 혹독한 스승이 될 것이다."
"……!"
"이 할애비가 무정(無情)하다는 생각이 무수히 들 것이다. 그러나 욕은 나중에 하거라.
너는 내게 화를 낼 시간도 없을 정도로 시달림을 받게 될 것이다."
"예."
"절대로 나약해서는 안 된다!"
"예!"
"겁을 내서도 안 된다!"
"예!"
"그리고 울어서도 안 된다.
무슨 일이 있어도 칠 년 간의 수련을 중단해서도 아니 되고
연공실에 든 후 외부에서 무슨 일이 생겨도 신경을 써서는 안 된다."
"예."
"설령 이 할애비가 너의 출관(出關)을 보지 못하고 죽는다 해도 연공을 중단해서는 아니 된다!"
"예에…?"
무천룡이 숙였던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네가 들어갈 연공실은 외부와 완전히 차단되어 있다
. 밖에서는 안으로 들어갈 수 없는 기관장치가 되어 있다.
그러니 네가 밖으로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 이상 어느 누구도 너를 밖으로 끌어내지 못한다
. 명심해라!"
정의무성은 추상같이 호령한 후 양피지 비급을 펼쳤다.
〈 대무신공기강구결(大武神功氣 口訣) 〉
용사비등(龍蛇飛騰)한 필체가 눈에 들어왔다.
바로 조식법(調息法)이 수록되어 있었다.
대무신공을 얻기 위한 운기행공법(運氣行功法)에는 세 가지가 있었다.
첫째가 토납좌공(吐納坐功)이었다.
앉아서 운기행공하는 것으로, 거기에는 각각 다른 백팔 가지의 방법이 있었다.
두 번째 토납와공(吐納臥功)이었다.
비스듬히 누워 토납하는 것인데 역시 백팔 가지 자세의 반복 수련법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세 번째는 역천행공법(逆天行功法)이었다.
머리를 심장보다 아래쪽으로 하여 운기행공하는 것인데
역시 백팔 가지의 자세로 이루어져 있었다.
모두 삼백이십사 가지가 되는 조식법이 바로 대무신공의 기초였다.
"너의 근골은 비상하다.
그러나 대무신공은 너의 재능으로도 감히 쉽다 하지 못할 오묘한 절기이다.
그러니 방심으로는 이룰 수 없다는 것을 항상 명심해야 한다."
"예."
"그럼 정좌하고 구결의 풀이를 듣거라
. 세 번 풀이해 준 후 할애비가 너를 도와 한 번 운기행공을 시켜주겠다."
정의무성은 무천룡 앞에 앉아 마주 대좌했다.
"네 스스로 운기행공할 수 있을 정도가 되는 데는 열흘이 걸릴 것이다.
너는 그 즉시 칠겁관 안으로 들게 된다."
"할아버지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무천룡은 정의무성에게 절을 한 후 꿇어앉아 귀를 쫑긋 세웠다.
정의무성은 무천룡의 진지한 모습에 스르르 눈을 감고는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구결을 풀이했다.
고금제일 대무신공의 구결이 천룡헌 안에 나직이 울려퍼졌다.
과연 정의무성은 우려는 조금도 과장되지 않았다.
무천룡의 얼굴이 고뇌로 일그러지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으음…너무도 어렵다.'
무천룡은 오묘한 구결을 들으며 자신의 부족함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정의무성이 한 번 풀이했을 때 무천룡은 구결의 일성(一成) 정도만을 뇌리 속에 간직할 수 있었다.
그가 부끄러워 얼굴을 붉히자 정의무성이 다시 한 차례 풀이해 주었다.
처음에 비해 훨씬 더딘 속도였고 더 자세한 풀이였다.
무천룡은 얼굴에 간간이 미소가 나타났다.
'하아… 이제야 조금은 이해할 것 같구나.'
그는 두 번째 풀이가 끝났을 때 구결의 사성(四成) 가량을 뇌리 속에 간직할 수 있었다.
남은 것은 한 번이었다.
정의무성은 즉시 시작하지 않고 무천룡에게 다과(茶菓)를 마실 시간을 주었다.
어느새 낮이 되어 있었다.
무천룡은 구결에 심취한 채 밤낮이 바뀌는 것조차 몰랐던 것이다.
"차로 목을 축이고 과일로 허기를 메워라.
그러는 가운데 내가 말해준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해 봐라. 나는 한 시진 후 돌아오겠다."
정의무성은 차게 말한 후 훌쩍 천룡헌을 나섰다.
무천룡은 갑자기 천지가 고독해짐을 느꼈다.
십 년 동안 천하에서 가장 귀하게 자라왔던 것이 모두 한순간의 꿈같이만 여겨졌다
. 이 순간부터의 인내와 시련이 바로 그의 진정한 인생으로 인식되었다.
'나는 쉬운 길을 걸을 수 없는 운명이다.
어려운 길을 걸어야 할 운명이니 이 순간을 괴롭다 여겨서는 안 된다.'
그는 강인한 마음을 잃지 않으리라 노력하며 구결을 외우고 또 외웠다.
그러는 사이 한 시진이 지났다.
정의무성은 정확히 한 시진이 되는 순간 훌훌 날아 천룡헌 바닥으로 떨어져 내리며
곧바로 구결 풀이에 들어갔다.
무천룡은 바늘 끝에 서 있는 기분이 되어 할아버지의 말을 한 자도 빠뜨리지 않고 귀담아 들었다.
신기하게도 모든 것이 이해되었다. 한 시진 동안의 복습이 크게 주효했던 것이다.
그는 할아버지가 세 번 풀이를 마쳤을 때 대무신공 구결을 완벽히 외울 수 있었다.
정의무성은 손자의 표정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너를 도와 운기행공시켜 주겠다.
너의 체내에는 무궁무진한 잠재력(潛在力)이 있고
그것은 부단한 운기행공을 통해서만 너의 것이 될 수 있다.
너의 대무신공의 성취는 네 안에 있는 잠재력을 얼마나 끄집어 낼 것이냐에 달려 있다."
정의무성은 오른손 바닥으로 무천룡의 천령개를 덮었다.
무천룡이 눈을 감은 순간 천령개를 통해 용암같이 뜨거운 기운이 흘러들었다.
"으음!"
그는 고통을 이길 수 없어 절로 인상을 찡그렸다.
"나약한 놈! 참아내야 한다는 것을 벌써 잊었단 말이냐?"
정의무성이 노해 외치는 소리가 그의 고막에 찢어지는 듯한 아픔을 주었다.
'그래, 참아야 한다!'
무천룡은 곧 냉정을 되찾았다.
그는 천령개에서부터 용암같이 흘러드는 뜨거운 기운이
바로 할아버지가 평생 수련한 대무신공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그 흐름을 받아들였다.
오문대혈(五門大穴)이 그 열기에 의해 화끈거렸다.
그리고 임독양맥(任督兩脈)에 속하는 혈도들이
열류가 흐름에 따라 화끈화끈 달아올랐고 머릿속이 밝아졌다.
처음에는 고통이었으나 시간이 지나자 쾌감이 느껴졌다.
그것이 바로 대무신공의 탁월함이었다.
무천룡은 망아지경에 젖게 되었다.
그는 자신이 누구라는 것도 잊었고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 중이라는 것도 잊었다.
그저 할아버지가 자신의 몸 안에서 펼치고 있는
내공의 운기법을 완전히 외워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정의무성은 무천룡과 일체가 되어 운기행공에 전개해 나갔다.
무천룡에게 운기행공의 시범을 보이는 것이었다.
운기행공은 기해대혈(氣海大穴)에서 시작되었다.
그것은 십이중루(十二重壘)로 끌어 올려지는 것으로 한 바퀴 이루었고,
그런 것이 열두 번 연속되었다.
일컬어 진기를 십이주천(十二週天) 운용하는 것이다.
"됐다. 이제는 네 스스로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정의무성의 손바닥이 무천룡의 천령개를 떠나는 동시에
그의 왼손 가운데 손가락이 무천룡의 혼수혈을 점했다.
"음…."
무천룡은 신음소리와 함께 정신을 잃었다.
천룡헌 안에서 정의무성의 점혈에 찍혀 잠에 빠져들어야 했던 무천룡은
아주 어두운 곳에서 정신을 차리게 되었다.
"아, 여기가 어디일까?"
무천룡은 눈을 떴으나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손바닥으로 주위를 만져보니 차가운 돌의 촉감만이 느껴졌다.
'석실이군. 내가 어떻게 해서 이런 곳으로 옮겨지게 되었을까?'
무천룡이 손바닥으로 주위를 더듬거릴 때였다.
"이제야 정신을 차렸느냐?"
추상같은 목소리가 고막 속으로 파고들었다. 의심할 것도 없는 정의무성의 목소리였다.
"할아버지, 어디에 계십니까? 저는 지금 아무것도 볼 수 없습니다."
"그곳은 칠겁관(七劫關) 중 가장 쉬운 곳이다."
정의무성은 감정없는 목소리로 무천룡을 바짝 긴장시켰다.
'아… 내가 마침내 칠겁관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구나.'
무천룡은 바싹 긴장했다.
정의무성의 엄숙하고 차가운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곳은 천하에서 가장 어두운 공간이다
. 어둠을 꿰뚫어보는 올빼미의 안력으로도 그 안에서는 장님이라 할 수 있다."
"으음…!"
"그것은 꽉 막혀 있다."
"저는 어찌 해야 합니까?"
"네가 해야 할 일은 단 한 가지이다.
그곳에서 대무신공의 삼백 이십네 가지의 조식법을 수행하라.
그러면 무엇인가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어떤 것을 보게 되나요?"
"어둠을 뚫을 수 있는 안력을 갖게 되면 이 할애비가 벽의 어느 부분에 써놓은 글을 보게 된다."
이위전성음은 그렇게 끝났다.
"할아버지…!"
무천룡은 심장을 짓누르는 적막함에 눌려 크게 외쳤으나 정의무성은 다시 대답하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떠나셨어.'
무천룡은 갑자기 혼자가 되었다는 생각에 두려움마저 느꼈다.
'약해지지 말자! 난 강해져야 한다.'
그는 길게 호흡을 들이키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무엇을 써 두셨을까?"
무천룡은 눈에 불을 켜고 주위를 살폈으나 아무것도 밝힐 수 없었다.
그가 볼 수 있는 것은 암흑뿐이었다.
정의무성이 어디에다가 무엇을 써두었는지,
손가락조차 볼 수 없는 곳에서 그가 써 둔 글씨를 찾아 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로만 여겨졌다.
'할아버지의 뜻을 따르는 길은 대무신공을 연성하는 것뿐이다.'
무천룡은 용기를 내어 대무신공의 운기행공(運氣行功)에 들어갔다.
주부의 도움으로 운기행공을 십이주천 시킨 적은 있었지만 혼자 힘으로는 힘이 무척 들었다.
무천룡은 애를 썼으나 운기행공에 성공하지 못했다.
"아… 내가 이리도 부족하단 말인가?"
무천룡은 잠시 낙담하여 눈물을 흘렸다.
그는 너무도 귀히 자라왔고 십절의 절학까지 어렵지 않게 습득했다.
다소의 오만이 없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는 아직 열한 살의 어린아이였다.
아주 긴 시간이 흘렀다.
소리 없이 흐느끼고 있던 무천룡은 어둠 속에서 훤히 떠오르는 두 명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조부인 정의무성과 부친 대검제였다.
그것은 분명 그의 환각이 만들어낸 형상이었으만 너무도 또렷이 보였다
. 무천룡은 눈을 비비고 다시 그들을 찾아보았으나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무천룡은 그들의 모습을 본 후 비로소 고독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어리석구나, 천룡. 어찌해서 내가 고독하단 말인가?
내게는 자상한 아버님과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신 할아버님이 있지 않느냐?'
무천룡은 곧 밝은 기분이 되었다.
"다시 시작해 보자. 어둠이 잠시 두려웠던 것은 사실이야,
하지만 냉정을 되찾았으니 운기행공을 꼭 성공시킬 수 있을 것이다."
무천룡은 강한 투로 중얼거리며 두 눈을 감고 운기행공에 들어갔다.
그는 토납좌공 일백팔 가지를 반복해 수련했다.
운기행공이 어느 정도 이루어지자 완벽한 어둠이 다소 가셨다.
무천룡은 곧 망아지경에 접어들 수 있었다.
나이가 훨씬 많은 사람이었다면 끊임없이 이어지는 망상에 사로잡혀
운기행공에 실패했을 것이다.
그러나 무천룡은 순진무구한 소년이었다.
그에게는 탐욕도 없고 세상의 힘든 일에 대한 공포감도 없었다.
여인에 대한 정욕은 아예 나타나지도 않았고 명예에 대한 탐욕도 없었다.
덕분에 운기행공은 예상보다 빨리 진전되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무천룡은 석벽에 등을 대고 물구나무를 서서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가 토해 내기를 계속했다
. 그의 얼굴은 잘 익은 홍시감같이 붉었다.
대무신공의 세 번째 단계인 역천행공(逆天行功)을 운용하는 중이었다.
"이번이 다섯 번째다."
무천룡이 자세를 바르게 하며 눈을 지그시 떴다.
삼백네 가지로 이루어진 대무신공의 운기행공법을 다섯 차례 연속해서 운용하고 난 후였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너무도 놀랍게도 주위가 대낮같이 환히 보였다.
벽면의 빛이 검은 옻칠에 의한 흑색이라는 것이 처음으로 확인이 되었다
. 어디선가 강한 빛이 흘러들고 있는 지 모든 것이 아주 또렷하게 보였다.
"아… 이제 어둠에 대해 개안(開眼)했구나!"
무천룡은 그제서야 대무신공의 오묘함을 깨달았다.
그러면서 할아버지의 바람을 이행했다는 자부심에 절로 가슴이 쭉 펴졌다.
'글씨가 어디 쓰여 있을 텐데?'
무천룡은 밝아진 눈으로 사방 벽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하하, 저것이군."
무천룡은 서 있는 곳에서 오른쪽 벽면에
깨알보다 작은 글씨가 쓰여져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정의무성의 웅후한 필체였다.
〈 이 글을 보게 되는 순간 너는 칠겁일관(七劫一關)인 개안관(開眼關)의 첫째 방인
철흑실(澈黑室)를 통과하게 되었다.
개안관은 안력을 단련시키는 관문이고 두 개의 방으로 이루어진다.
칠흑관 다음이 되는 방은 어둠이 아닌 빛에 익숙한 안력을 주는 방이다.
이 글을 보는 즉시 글씨 아래쪽에 있는 작은 단추를 눌러라.
기관이 발동되어 문이 열릴 것이다. 문이 열리는 순간 태양(太陽)을 보게 될 것이다.
너는 이 안에서 맨 눈으로 태양을 볼 수 있을 정도까지 안력을 수련하고
다시 개안관의 또다른 방안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눈이 따가울 것이고 잘못하면 장님이 될 것이다.
그러나 너는 천일개정대법으로 탈태환골 철골신을 이루었다
. 너의 마음이 강하기만 하면 모든 난관을 이길 수 있으리라
. 할아버지는 네가 개안실의 방 두 개를 통과한 후 네 앞으로 나설 작정이다.〉
글귀 아래로 작은 단추 하나가 붙어 있었다.
무천룡은 단추의 크기가 자신의 엄지손톱만하고 빛이 새까맣다는 것도 알아볼 수 있었다.
"단추를 누루면 태양을 볼 수 있겠군.
흠… 어두운 곳에 있다가 갑자기 태양을 보면 눈이 멀기 쉬운데…
그러나 나는 남들보다 천배 튼튼한 몸뚱이를 갖고 있다.
할아버지의 말씀대로만 하면 된다.
할아버지는 나를 해치려는 것이 아니라 나를 대무신공의 주인으로 만들려 하시는 것이다."
무천룡은 중얼거리며 작은 단추를 눌렀다.
그르르― 릉―!
석실 전체가 뒤흔들리며 글씨 적혀 있던 부분이 뒤로 밀리며
아주 강한 빛이 언뜻 창을 통해 흘러들었다. 태양이 빛의 근원이었다.
"윽… 눈이 부시다!"
무천룡은 눈알이 확 타올라 터져 버리는 듯한 고통을 느끼며 두 손으로 눈을 가렸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빛을 감출 수는 없었다
. 박쥐나 밤부엉이보다도 예리한 밤눈을 갖게 된 무천룡에게 태양빛은 너무나도 강한 빛이었다.
무천룡의 얼굴이 검게 타 들어갔다.
"으으… 눈알이 불덩이같이 뜨겁구나."
무천룡은 눈알이 뼈져나가는 듯한 괴로움을 느끼고
눈을 아주 꾹 눌러 감았으나 그렇게 한다고 눈알에 느껴지는 고통이 감소되지는 않았다.
불에 달구어진 쇠젓가락이 눈알을 찌르는 듯 고통스러웠다.
"크으으…!"
무천룡은 눈을 감고 머리를 마구 흔들다가 땅바닥에 꿇어앉게 되었다.
고통이 극심해 머릿속이 텅 빈 것 같았다
. 괴로워 몸을 뒹굴던 무천룡은 일 각 정도 지난 후부터 이상하게도 편안한 마음을 갖게 되었다.
눈알이 달아오르지도 않았고 빛이 강하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신기하군, 나의 눈이 금세 정상으로 돌아왔어."
무천룡은 자신의 안력이 철흑실 안으로 들어서기 전과 같은 상태로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의 신체는 아주 빠른 적응력을 갖고 있었다.
태어난 직후 그의 몸에 베풀어졌던 천일개정대법의 진기가
이제야 빛을 발한다고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아…!"
무천룡은 탄성을 발하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정오(正午)의 태양이 눈안으로 들어왔다.
태양을 맨눈으로 쏘아본다는 것은 실명(失明)을 차조하는 어리석은 일이었다.
그러나 무천룡은 철골신을 이룬 소년이었다.
다소 눈알이 시리고 따가운 것을 느꼈으나
태양을 쏘아봄에 따라 시력을 상실하지는 않았다.
무천룡은 태양이 창문 아래쪽으로 떨어져 볼 수 없게 되기 직전
맨 눈으로 태양의 형체를 정확히 꿰뚫을 수 있었다.
"신기하군. 불꽃을 발하는 태양이 아주 동그란 것임을 이제 처음 알았다.
동근 구체 주위로 불길이 너울거리고 있구나."
그는 유사 이래 태양을 직시한 서너 사람 중의 하나가 되었다.
무천룡은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다가
언제부터인가 창문 위쪽에 새겨져 있는 글을 보게 되었다.
〈 이제 개안실의 두 번째 방안으로 들어갈 때다.
이 글을 보는 즉시 뒤돌아 걸음을 옮겨라.
벽면이 저절로 열리며 너를 아주 밝은 방안으로 들여보낼 것이다.
그 안에는 태양보다 밝은 빛을 내는 구슬이 하나 있다.
구슬 표면에는 두 글자가 새겨져 있고 그것이 바로 태양보다 밝은 구슬의 이름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그 구슬을 보는 순간 눈이 멀 것이다.
네게 태양을 보게 한 이유도 구슬빛이 너무 밝아 구슬을 보기 이전 준비가 필요해서였다.
구슬의 빛을 보고도 눈이 시리지 않을 때 너는 진정 개안(開眼)하게 될 것이다.
그 경지는 서장에 숨어 사는 칠마 중 가장 강한 심마(心魔)의 심마안(心魔眼)인
탈백마안(奪魄魔眼)에 굴복하지 않고 오히려 탈백마안을 격파하는 단계이다.
그리고 금갑산의 일곱 가지 수련 중 하나를 마치게 되는 단계가 된다. 〉
정의무성이 언제 그 글을 써 두었는지 모를 일이었다.
무천룡이 태양을 노려보며 눈을 단련시키는 가운데
그가 몰래 격공지력을 써 벽면에 새겨두었던 것일까.
'할아버지는 내 근처에 계시다.'
무천룡은 글을 보는 순간 힘을 느꼈다.
'할아버지는 지금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펴보고 계신다.
나는 할아버지에게 자랑스러운 손자가 되어야 한다.'
무천룡은 용기백배해 글에 쓰인 대로 벽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벽에서 세 자 떨어진 곳에 이르렀을까?
돌덩이가 구르는 소리와 함께 벽면이 빙그르르 돌아가며 암도 하나가 나타났다.
아주 좁은 통로였다.
통로의 끝에는 사람 하나가 겨우 들어갈 만한 작은 문 하나가 있었다.
문 위에는 손잡이 하나가 붙어 있었다.
"저곳이군, 개안실의 두 번째 방이다."
무천룡은 얼른 다가가 문의 손잡이를 잡고 앞으로 확 끌어당겼다.
문이 소리 없이 열리는 동시에 몸이 불덩이 안으로 빠져드는 듯한 기분이 느껴졌다.
열기를 갖고 있지는 않으나 더 없이 밝은 빛이 몸을 관통시키는 것이었다.
빛이 어찌나 밝은지 피부가 빛에 관통당해
뼈와 핏줄, 그리고 오장육부가 훤히 비칠 정도였다.
"으윽…눈을 뜰 수조차 없구나."
태양을 맨눈으로 살필 수 있는 정도가 된 무천룡이었으나
찬란한 빛 앞에서는 장님이나 다름없었다.
그는 하얀 광휘를 느낄 뿐 어떤 형상도 볼 수 없었다.
"대체 이 빛은 무엇인가?"
어마어마한 빛줄기에 대한 경외감이 무천룡을 위축케 했다.
그러나 무천룡은 빛에 지지 않을 정신력을 갖고 있는 소년이었다.
그는 빛에 몸이 환히 뚫려 버리는 기분 속을 헤매다가
어느 순간부터 운기행공에 들어갔다.
'대무신공을 일으키자.'
무천룡은 환히 밝은 가운데 삼백이십사 가지로 이루어지는
대무신공의 운기행공법을 하나하나 시전했다.
어떤 때는 결가부좌로 했고 어떤 때는 비스듬히 누웠다.
눈알이 아예 없어진 듯 아무것도 볼 수 없었으나
그의 정신만은 그의 몸안에 건재했고 오히려 더 강해졌다.
얼마나 지났을까?
무천룡은 빛이 한결 약해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아직 안력을 방해한다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아직 빛을 이길 수 없다.'
무천룡은 용기를 갖고 운기행공에 더욱 매진했다.
대무신공을 칠주천 시킨 후에야 무천룡은 주위를 환히 살필 수 있었다.
그 엄청난 빛의 출처가 어떤 것인지도 볼 수 있었다.
금으로 된 대(臺)가 하나 놓여 있었다.
그 위 용안(龍眼)만한 백주(白珠) 하나가 놓여 있었다
. 빛의 정체는 바로 그 구슬이었다.
구슬에서 흘러나오는 빛은 태양빛보다 백배 강한 빛이었다.
"정말 신기하구나. 이런 작은 구슬 하나가 이토록 밝은 빛을 발할 수 있단 말인가?"
무천룡은 구슬을 볼 수 있게 되자 웃음을 띠며 구슬을 아주 유심히 살펴보았다.
용의 눈알 만한 크기를 갖고 있는 구슬의 표면에 두 글자가 쓰여져 있었다.
〈 凌光(능광) 〉
빛을 능가한다는 이름이 무천룡을 즐겁게 했다.
"호오, 능광주였군?"
무천룡이 중얼거릴 때 그의 뒤쪽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있었다.
"능광주는 천하에서 가장 강한 빛을 발한다.
그것의 원주인(原主人)은 과거 천하제일마(天下第一魔)였던 혈발마(血髮魔)였다
. 혈발마는 무공으로 심마(心魔)를 일곱 배 능가하는 자였다."
정의무성이었다.
그는 만족한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 천룡태자가 자신의 기대를 능가하는 성취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다소 눈살을 찡그렸다
. 안력 한 가지만을 따진다면 정의무성은 오히려 무천룡보다 조금 미숙한 단계였기 때문에
능광주의 빛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혈발마는 무공으로 심마를 능가했으나 심마지안(心魔之眼)에 번번이 당하곤 했다.
그래서 전설로만 알려지고 있는 능광주를 구해 이것으로 심마지안을 꺾어
마도오마(魔道五魔)를 칠대사마보다 높은 지위에 끌어올려 놓았지."
"혈발마는 누구죠? 그가 왜 능광주를 할아버지께 주었습니까?"
"그는 다시 살아 나올 수 없는 지옥의 함정에 빠졌다. 무저갱(無底坑)이란 곳에 갇혔지
. 능광주는 그가 내게 준 것이 아니고 내가 빼앗은 것이다."
무천룡은 조부의 위대함을 다시 실감하고는 밝은 표정을 지었다.
"아…그랬군요?"
"혈발마는 네 명의 의형제를 갖고 있다.
그들 다섯 의형제들은 마공 일면에서는 심마를 비롯한 칠대사마(七大邪魔)를 능가했었다.
하지만 심기면에서 훨씬 뒤졌지.
어찌 생각하면 혈발마는 진정한 마군(魔君)이고…
심마를 비롯한 일곱 마두는 사마외도요, 방문좌도(傍門左道)의 하류배라 할 수 있다
. 언제고 그 자세한 내막을 네게 이야기해 주겠다."
정의무성은 말을 마치며 손가락 하나를 퉁겼다.
파삭―!
지강에 적중되자 능광주는 가루로 화해 주위에 뿌려졌다.
빛이 사라지며 주위가 갑자기 어둡게 느껴졌다.
"능광주는 천리를 어긴 물건이다.
후계자를 기를 목적이 아니었다면 육십 년 전 혈발마를 제압할 때 이것을 박살냈을 것이다.
이제 네가 능광주로 인해 심마지안을 이길 안력을 얻게 되었으니 더 이상 필요가 없다."
정의무성은 희대의 보물 능광주조차 한낱 구슬처럼 여겼다.
그의 시선이 강렬해졌다.
철판이라도 관통할 안광이 그대로 무천룡에게 폭사되었다.
무천룡은 순간적으로 오싹함을 느꼈으나 제압당하지는 않았다.
"으음… 할아버지?"
무천룡이 한 걸음 물러서자 정의무성은 눈빛을 거두며 호탕하게 웃었다.
"허헛… 너의 안력은 이제 천하제일이다."
"예에?"
"나는 지금 천축에 숨은 심마의 탈백마안(奪魄魔眼)에 극성이 되는
정의쇄마신안술(正義碎魔神眼術)을 구사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나의 눈빛에 심맥이 파열되어 죽었을 테지만 너는 무사했다.
너는 이제 심마가 탈백마안을 쓰더라도 쓰러지지 않을 유이(有二)한 사람이 된 것이다."
"둘이라면 할아버지와 소손을 말합니까?"
"그렇다."
무천룡은 다소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럼…아버지는요?"
"네 아비는 탈백마안을 받아 낼 수 없다.
심마가 네 아버지에게 탈백마안을 쓴다면 네 아비는 한 시진 정도
그의 심령금제(心靈禁制) 아래 사로잡히게 될 것이다.
그 후 깨어나기는 할 것이나 이미 늦은 후겠지
. 심마는 탈백마안으로 상대를 제압한 후 살수를 쓰기를 장기로 하고 있으니 말이다."
"음…심마의 눈이 그렇게 무섭다니 조심해야겠군요."
무천룡이 혀를 내두르자 정의무성은 자애스런 미소를 지었다.
"허허… 너는 더이상 심마의 눈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자, 이제 음마지장(陰魔之掌), 태양마지수(太陽魔之手),
현음마지지(玄陰魔之指)를 이겨낼 수 있는 힘을 기르도록 하자."
정의무성은 실내를 거닐며 낭랑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사공마공에 견딜 수 있는 근육을 가져야 한다. 너는 철골신이나 근육은 아직 강하지 못하다
. 이제 금강불괴의 근육을 얻어야 한다.
그래야 천하의 어떠한 마공 아래서도 상처를 입지 않게 되는 것이다."
"과연 제가 그런 경지에 이를 수 있을까요?"
"용아야, 너는 정의무성의 후계자다. 자신을 가져라."
정의무성은 무천룡의 옆에 서서 어깨를 다독이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너는 칠겁관의 정화(精華)라 할 수 있는 화관(火關)과 빙관(氷關)을 거치게 된다
. 화관은 칠겁관의 두 번째이고 빙관은 칠겁관의 세 번째이다.
그리고 매우 어려운 관문이다. 자칫하면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
"주의하겠습니다."
"대무신공을 익히는 데에는 생명의 위험이 따른다
. 무수한 고비를 넘겨야 이룰 수 있는 것이 대무신공이기 때문이다. 알겠느냐?"
"예, 할아버지!"
"좋아, 한 시진 정도 쉬며 화관과 빙관을 통과하는 요령에 대해 주의깊게 듣거라."
정의무성은 앞서 걸음을 옮겼다.
두 조손이 머물러 있는 곳은 무천룡이 세 살 때 축성되기 시작해
얼마 전 완성된 무성전 지하의 칠겁지관내(七劫之關內)였다.
관내는 아주 넓었다. 그 관문을 만들기 위해 정의무성의 모든 지식과
대무신공의 보물이 무수히 사용되었고 마침내 완벽한 관문이 될 수 있었다.
무천룡은 정의무성을 따라 가다가 너른 석실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이곳이 너의 거처다. 관문 하나를 거칠 때마다 여기와 쉬게 될 것이다."
정의무성이 손자를 위해 만든 방은 서재와 침실,
그리고 주방의 역할을 다 할 수 있는 아주 기능적인 방이었다.
수십만 권의 책이 있고 살아 나가는 데 필요한 물건이 다 마련되어 있었다.
식량을 대신할 수 있는 벽곡단(劈穀丹)과 황정(黃精), 하수오(何首烏;돼지감자) 등이 충분했고
벽 아래 한귀퉁이에서는 언제나 맑고 깨끗한 샘이 넘쳐 흘렀다.
정의무성과 무천룡은 하수오를 꺼내 으적으적 씹어 먹으며 말을 주고받았다.
대화의 내용은 모두 무공에 관한 것이었다.
음양지기(陰陽之氣)를 다스리는 법이 그 주된 내용이었다.
감리(坎離)와 빙화(氷火),
그리고 음양의 조화에 관한 대화는 단 한 시진으로 끝을 봐야 했다.
화르르륵―!
칠겁관의 두 번째가 되는 화관은 용광로 안이나 다름없이 뜨거운 곳이었다.
네모 반듯한 석실인데 천장에서부터 불길이 흘러내렸고
돌바닥도 시뻘겋게 달구어진 장소였다.
쇳덩이라도 놓여지면 녹아버릴 열화지옥 같은 곳이건만
타지 않는 물건 하나가 놓여 있었다.
금강석(金剛石)과 비슷한 강도를 지니고 있는 강옥석(鋼玉石)으로 만든 침상 하나가 그것이었다.
무천룡은 그 위에서 화관의 시험을 이겨내야만 했다.
무천룡의 살은 그 안으로 내던져지는 찰나 다 익어 허물이 벗겨지고 물집이 잡힐 정도가 되었다.
다행히 뼈는 다치지 않았다.
그의 몸은 천일개정대법 이후 대무신공을 이루는 데 기초가 되는
철골신의 단계에 이르러 있었다.
살이 다 익기는 했으나 뼈가 다치지 않은 이유가 그것이었다.
"으으윽…!"
무천룡은 벌거숭이로 강옥석 침상 위로 던져지는 찰나
혹독한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그는 사흘 후 정신을 차리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정신을 잃었다.
다시 이틀이 지난 후 정신을 되찾게 되었다.
기이하게도 잠들었다 깨어날 때마다 고통이 훨씬 감소되었다.
그것은 그의 혈관에 잠재돼 있는 세 알의 영단이 열기에 서서히 녹으며
내공 수위를 한층 높여 주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의 혈도는 천 명의 고수들에 의해 단련될 수 있는 한도까지 단련되었기에 아주 강했다
. 화관의 열기로도 망가뜨릴 수 없는 것이 무천룡의 신체였다.
"대무신공으로 열기를 몰아내자.
대무신공을 익히면 수화불침지신(水火不侵之身)이 된다."
무천룡은 혹독한 열기 속에서 비지땀을 흘리며
삼백이십사 가지로 이루어진 조식법을 천천히 시전했다.
숨을 쉬기조차 아주 거북했다.
숨을 들이키면 불길이 콧속으로 빨려들어와 오장육부를 재로 만들어 버리는 듯 고통스러웠다.
"헉헉… 내가 왜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한단 말인가?"
무천룡은 당장이라도 화관을 박차고 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조부의 근엄을 떠올리며 나약해지려는 자신을 채찍질했다.
'바보같이 녀석! 겨우 이관을 못 참고 벗어나려 한단 말이냐?'
무천룡은 이를 악물며 힘겨운 운공조식을 전개했다.
처음에는 숨을 들이키기보다 내뱉기를 많이 했다.
그러나 점차 숨을 들이키는 늘어나며 호흡을 균형을 이룰 수 있었다.
열기도 훨씬 덜하게 느껴졌다.
'됐다. 이제 호흡(呼吸)의 단계에서 한 단계 위의 호흡법을 해야 한다.
숨을 한 번 들이마시고 진기를 일주천 시킨 후 내뱉는다.'
무천룡은 곧 호흡조식에 임했다.
흡(吸)― 지(止)― 호(呼)― 지(止)―.
네 단계의 호흡이 번갈아 시행되었다.
호흡을 멈추는 단계가 조식법에서 가장 중요하다.
숨을 참아내는 가운데 공력을 배가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얼마가 지났을까?
무천룡은 숨을 하루 정도 참았다가 토해낼 수 있는 경지에 이르게 되었다.
조식의 도가 심오해질수록 열기도 덜하게 느껴졌다.
무천룡은 아주 오랜 시간 동안 흡지호지의 조식법으로
삼백이십사 가지의 운기행공을 반복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숨을 토해내는 과정을 생략했다.
숨을 들이마시고 그대로 멈추어 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토하지 않는다.
숨결이 몸 안으로 들어왔다가 정순하지 못한 기운을 체외로 흘려보내는 것이 호흡의 기초이건만
그는 전혀 무시했다.
무천룡은 이미 내가조식법(內家調息法)의 상승단계에 해당되
는 피부호흡을 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른 것이다
. 숨을 토하지 않는 대신 모공을 통해 탁한 기운을 토해내는 단계가 바로 피부호흡이었다.
내공의 도가 강한 사람이 불 속에서 견디고
, 물 속에서 오래 견딜 수 있는 비결이 바로 피부호흡이었다.
꿈결같이 흐른 일 년 동안 무천룡은 새롭게 변신되었다.
열화지옥 같은 화관 속에 그는 오히려 몸 안에 한 줄기 냉량(冷凉)한 기운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 기운이 운기행공에 따라 오장육부를 보호하자
화관 안의 열기가 그를 고통스럽게 하지 못하였다
. 이제 그는 어떤 열화지공(熱火之功)에도 굳강한 신체가 된 것이다.
마침내, 통관(通關)을 고하는 정의무성이 힘찬 음성이 들려왔다.
"허허헛… 훌륭하구나. 화관통과다!"
무천룡은 등판에 따끔함을 느끼며 옆으로 쓰러졌다.
강옥석 침상 위에 누웠다싶자
안으로 흘러드는 흡인력에 의해 훌훌 날아올랐다.
계 속
첫댓글 잼납니다
감사합니다.
즐겁게 보고갑니다!
감사 즐감 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즐겁게 보고갑니다!
즐독,감사합니다.
즐감입니다 감사합니다
ㅈㄷ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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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독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