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정공(司正公) 최수걸(崔秀傑)
사정공(司正公) 최수걸(崔秀傑)은 생년 미상이나 仲兄되시는 통례공(通禮公)의 출생년도가 세조10년(1464, 甲申)이고 관직차이를 고려하면 4-5년 아래인 것으로 추정된다. 영상대제학(領相大提學)을 지내시고 영성부원군(寧城府院君)에 봉군되신 문정공(文精公) 태허정(太虛亭) 최항(崔恒)선생의 손자요, 부친은 문정공의 장남이시고 예조참의(禮曹參議)를 지내신 석포공(石圃公) 최영린(崔永潾)이며 모친인 고령박씨(高靈朴氏)는 황해도 관찰사(觀察使)를 지내신 박건순(朴健順)의 녀이며 외조(外祖)는 검한성(檢漢城)을 지내신 문화(文化) 유호(柳滸)이시다. 백형(伯兄)되시는 도계공(陶溪公) 최수영(崔秀英)은 태허정공 종파인 사직공파(司直公派)의 파조가 되고 중형(仲兄)되시는 최수웅(崔秀雄)은 충의위 정략장군을 지내시고 좌통례(左通禮)에 증직(贈職)되시어 통례공파의 파조가 되었다.
최수걸(崔秀傑)은 성종조(成宗祖)에 음사(蔭仕)로 오위(五衛)의 충의위(忠義衛) 진용교위(進勇校尉, 정6품)로써 행직(行職)으로 충좌위부사정(行忠佐衛副司正)을 지내셨는데 연산군10년(1504년) 갑자사화때 난정(亂政)으로 세상이 어지러워져 연산군의 폐모에게 사약을 내릴 때 형방승지(刑房承旨)로써 약을 받들고 갔던 광주이씨 이세좌(李世佐)가 그 죄목으로 죽임을 당하였는데, 그의 며느리가 백형(伯兄)이신 사직공의 딸이었기 때문에 사직공께서 먼저 벼슬을 버리고 양주(楊州)로 피신하시게되자 중형(仲兄)이신 통례공과 함께 병을 핑계로 벼슬을 버리고 통례공은 처가 진주하씨(晋州河氏)가 있는 남원(南原) 둔덕(屯德)으로, 사정공은 태허정 사패지가 있던 김포(金浦) 삭시(朔是)로 내려가 은거하시게 되었으며 전해져오는 바에 의하면 말년에 장손(長孫)이신 副司果(부사과) 效力副尉(효력부위) 최담(崔曇)을 보고싶다하여 함열(咸悅)에 행차하셨다 급서 (急逝)하시어 함열 서면 산정 (咸悅 西面 山亭)에 예장(禮葬)하니 사정공파의 파조가 되셨다.
배위(配位)이신 의인(宜人) 장연노씨(長淵盧氏)는 호군(護軍) 수강(守壃)의 따님으로 사정공과의 사이에서 2남을 두시었는데 장남은 참봉공(參奉公) 준형(濬亨)이고 차남은 목사공(牧使公) 준인(濬仁)이다.
묘는 함열 서면 산정 (咸悅 西面 山亭) 동록 건좌 (東麓 乾坐)에 쌍봉(雙封)으로 모셨으며 묘비와 장명등, 문인석 및 석물이 있다. (전북 익산시 웅포면 송천리 산59)
五衛營 忠義衛進勇校尉 行 忠佐衛副司正 朔寧崔公 諱 秀傑, 配 宜人 長淵盧氏之墓 (左右 雙封)
崇德齊 祭室 (전북 익산시 능포면 송천리 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