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宗敎 이야기
一 松 韓 吉 洙
탈무드에는 이런 말이 있다.
인간의 몸에는 여섯 개의 소용되는 부분이 있다. 그중에서 셋은 자신이 지배할 수 없지만, 또 다른 셋은 자신의 힘으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부분이다. 전자는 눈과 귀와 코이고 후자는 입과 손과 발이다.
우리는 보고 싶은 것만 볼 수 없고 듣고 싶은 말만 골라 들을 수도 없으며 맡고 싶은 냄새만 선택해서 맡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의지에 따라 좋은 말만 할 수 있고 손과 발을 이용해서 하고 싶은 것만 할 수 있다. 종교에도 자신의 의지대로 할 수 있는 분야가 있고 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萬物 중에 人間이 最貴라는 말이 있다. 만물 중에 최고의 靈長은 人間이라는 말이다. 이 세상에서 사람이 제1이라고 뽐내고 거들먹거리고 싶겠지만 생각해 보면 사람처럼 나약한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잘난 체하는 인간도 사실은 어느 믿음직한 곳에 의지하려는 마음이 강하고 사람끼리도 서로 의지하려는 속성이 있다. 그래서 가정이 있고 이웃이 있고 종교가 필요했을 것이다.
원시 신앙으로 고목이나 바위에 소원을 빌거나 그렇지 않으면 장독대나 부뚜막에 정화수 떠다 놓고 비선 하는 어머니의 소망도 일종의 소박한 신앙이요, 믿음이요 의지 처라고 할 수 있다.
필자의 집안에는 先親께서는 어렸을 때 지리산의 어느 암자에서 노스님의 가르침을 받으셨다고 하니 태생적으로 불교를 신봉하시어 자주 불경을 외우시는 걸 필자도 목격하였다. 그러나 先慈께서는 아무 종교도 신봉하지 아니하시는 분위기에서 필자는 자랐다.
필자는 어렸을 때 기독교 신자가 아닌데도 크리스마스이브 (12.24)를 마냥 기다렸다. 별다른 문화를 접할 기회가 없었던 벽촌에서 그날은 예배당에서 독창과 성가대의 합창, 그리고 성극을 연출하여 우리들의 문화 갈증을 조금씩 풀어주었고 우리를 즐겁게 해주었다. 그런데 임도 보고 뽕도 따는 게 있었으니 그날 참석자들에게 찹쌀떡 1개씩을 나누어 주기에 겨울인데도 추위를 무릅쓰고 참여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필자가 중학교 다닐 때 시골의 초등학교 동창인 김준태라는 친구가 곰개에서 충남 韓山 사이에 있는 금강을 건네주는 나룻배의 사공 노릇을 하고 있었다. 여름방학 때 하루는 나룻배를 태워주겠으니 강변으로 나오라는 전갈이 있어서 신나게 포구에 나가 친구를 만나서 충청도로 건너가려는 선객과 같이 친구의 돛단배를 얻어 타고 금강을 건너 한산 땅을 밟아 보았으나 너무나 허무했다. 어린 마음에 큰 기대를 하고 건너갔으나 강가에는 아무것도 없고 개펄만 있었다. 그래서 그 배편으로 되짚어 돌아오는데 손님 중에는 스님 한 분이 배 안에 앉아있었다. 배가 강 가운데쯤 왔을 때 심심하고 무료하기에 필자가 냉큼 스님 앞으로 가서
“스님! 스님은 어느 절에서 오셨습니까?”하고 물으니
“임천 대조사에서 왔네. ”
“그런데 어디를 가십니까?”
“숭림사에 불사가 있어 가는 길이네”
“그러면 스님은 대승불교를 믿습니까? 아니면 소승불교를 믿고 계십니까?”하고 당돌한 질문도 아닌 질문을 하였더니 이 스님이 얼굴색이 변하면서 필자를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학생! 학생은 대승불교는 무엇이고 소승불교는 무언지 아는 거야?” 하고 묻길래
“모르는데요”하고 천연스럽게 대답을 했더니
“그것도 모르는 놈이 무얼 지껄여! 건방지게, 하라는 공부는 않고 싸질러 다니는 놈이” 되게 한 방을 맞고 입을 봉한 일이 있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아마도 이 스님이 소승불교와 대승불교에 대하여 깊이 알지를 못하였기에 이런 막말로 필자의 입을 막은 것이 아닌가 하는 엉뚱한 생각도 해보았다.
그 뒤 필자가 대학에 진학하여 하숙을 했는데 하숙집 가족이 철저한 기독교 신자로서 주인아저씨는 전주 남문교회 장로이었고 아주머니는 권사인 집안이었다. 하숙집 위치도 전주시 중 화산동인데 이곳은 1898년부터 진료를 시작한 예수병원이 있고 신흥 중고등학교와 기전여자 중고등학교 등 미션계통의 학교가 있는 곳이어서 기독교 정신으로 충만된 지역이었다.
그래서 필자도 집주인 내외의 권유에 따라 남문교회에 몇 차례 따라가서 예배에 참여 한 일이 있다. 그런데 성스러운 예배 행사 중에 다른 것은 모두 잊어버렸으나 딱 2가지 말씀은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한 가지는 이 교회에서 내로라하는 장로님이 말씀하셨다.
“신도들은 연보(실례의 말씀이지만 요일마다 잠자리채에 돈을 넣는 행위)를 많이 해야 하늘나라에 가서 더 많은 혜택을 받는다. 實例를 하나 들겠다. 내가 감자 농사를 짓는데 나는 농사에 서툴러서 통감자를 1/2이나 1/3로 잘라서 심고 있었는데 옆에서 농사를 짓는 분이 이를 보더니 깜짝 놀라 나에게 하는 말이 감자의 눈만 잘라서 심어도 되니 남은 감자는 반찬을 해서 자시라고 권유하는 것을 그냥 준비 한 대로 심었다. 그런데 여름에 감자를 수확하는데 많이 투자한 내 밭에서는 알이 굵은 감자를 많이 캤는데 씨감자를 절약해서 조금 투자를 한 옆의 밭 주인은 아주 형편없는 수확을 하는 것을 목격했다. 이처럼 이 세상에서 하느님에게 많은 것을 바치면 이다음 하늘나라에 가서는 더 많은 혜택을 받는 것은 틀림이 없다는 걸 이 감자가 증명해 주었다”는 말씀이었다.
또 하나는 일제강점기에 일본 놈 나리들에게 많은 핍박을 받았다는 이 교회 당시 유명한 목사님 말씀인데
“이 세상에 살면서 하느님께 죄를 짓지 말아야 한다. 사람이 죽어서 하늘나라에 가기 전에 반듯이 심판을 받는다. 실례를 들자면 농부가 농사를 지었다고 전부를 거둬들이는 것이 아니고 수확한 곡식을 반드시 풍구(바람을 일으키는 기구) 앞에서 걸러 쭉정이는 버리고 알곡만 챙기지 않더냐. 하늘나라에서도 이와 똑같은 절차를 거쳐야 천국에 가는 것이다.”라는 이야기는 지금도 기억이 나는데 실감이 가는 말씀이었다.
그 뒤 필자가 근무했던 구의 수원지에서 정수처리작업을 하던 고용원 중에 이 정0이라는 자가 있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원래 얼굴이 검어서 그렇지 마음씨는 비단결 같은 사람이었고 아주 순진한 새색시 같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얼굴이 검다고 그랬는지 어떻게 하다가 5.16 후에 삼청교육대에 끌려가서 고생하고 나왔는데 물론 직장에서는 당연히 해고처리가 되어 잊힌 사람이 되었다.
이 친구에 대하여 그 뒤로는 어찌 되었는지 아무도 모르고 있었고 아무 관심도 없이 말 없는 세월은 상당히 흘렀다.
하루는 지하철을 탔는데 누가 유창한 언변으로 “예수를 믿으세요. 믿는 자는 천당으로 가고 믿지 않으면 지옥으로 떨어집니다. 여러분! 지옥에 가는 걸 원하십니까? 아니면 천당으로 가시길 원합니까? 사람의 마음은 모두가 다 같습니다. 천당에 가고 싶지요. 그러려면 예수를 믿으십시오. 내가 하는 말이 진리입니다. 흘려듣지 마시고 예수를 믿으세요.” 하고 지나가는데 자세히 보니 이자가 바로 이 정0 바로 그 사람이었다. 그래서 ”어이 이 정0“하고 불렀으나 못 들었는지 아니면 듣고도 못 들은 척하는 건지 모르지만 다음 칸으로 옮겨가 버렸다. 그런데 이 친구는 수줍음도 잘 타서 말도 잘 못 하던 자가 갑자기 구름이 흘러가듯 물이 흐르듯 조리 있게 청산유수로 말을 잘하고 있었는데 어디서 배웠으며 어디에서 그런 용기를 얻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삼청교육대에서는 사회 순화 차원에서 이런 언행을 가르쳤는지도 모르겠다. 이 사람을 필자만 목격한 것이 아니고 같이 근무했던 동료들도 그 장면을 보았다고 하니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이처럼 종교에 심취하면 용기도 생기고 말솜씨도 그럴듯하게 느는가 보다.
그런데도 필자는 교회나 사찰(절)에 나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아니하여 무종교로 일관하던 중 결혼을 하였다. 그런데 안식구는 원래가 불교 신자였는지 모르겠으나 서울에 자리 잡은 뒤 청담스님이 주석했던 그 먼 도선사를 열심히 다니었다. 아이들 3남매가 대학에 입학할 시즌이 다가오면 소반 위에 부적을 깔고 정화수를 떠다 놓고 매일 새벽마다 간절한 기원을 하였다.
그러더니 어느 해인가 가까운 영화사로 기도처를 옮겼다. 매월 음력 초하룻날 부처님께 108배를 하려고 영화사에 갔는데 기회가 닿으면 필자도 몇 번 동행하여 절에 간 일이 있었다. 그러나 필자는 건물 안에는 들어가지 아니하고 뒷산인 아차산으로 올라가서 간단한 산행을 하고 내려와서 같이 절밥을 먹고 귀가한 일이 더러 있었다. 그 뒤 부처님 오신 날에 연등을 달고 입춘에는 부적을 받아다가 정성스럽게 문지방에 붙이고 지갑에 넣고 다니기도 하였다. 그래도 필자의 종교는 無敎이었다.
이제 안식구가 몸이 많이 불편하여 거동을 못 하게 되니 둘째 며느리 素英이가 대신 절에 다니며 심부름을 하고 있다.
그 뒤 직장에서 정년퇴임을 한 뒤에 지하철을 타고 어느 모임에 가려는데 그날은 많은 승객으로 지하철 안이 복잡했다. 그런데도 그 혼잡한 사이를 비집고 옛날 영국의 신사가 쓰던 top hat 모자를 쓰고 어깨띠를 매고 +자가 기를 앞세운 열성 신도 여러분이 앞칸에서 넘어왔다.
오자마자 하시는 말씀 “여러분 예수를 믿으세요. 예수만이 참 진리요 구세주입니다, 여러분 죽어서 화장할 때 중들에게 나오는 사리 그것 신비하다고 야단이지요. 그러나 그것 신비한 것이 아닙니다. 돼지도 불알을 까면 사리가 나옵니다. 그거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돼지한테서도 나오는 사리 별것 아닙니다. 예수를 …….” 더 길게 말을 하려는데 좌석에 앉아있던 신사 한 분이 소리를 질렀다
“여보시오 당신 종교 이야기나 하지 왜 남의 종교를 헐뜯는 게요? 보자 보자 하니 정말 더는 봐 줄 수가 없구먼.”
그러자 기독교인 일행이 하던 포교행위는 중단됐는데 그래도 미련이 남은 듯 작은 목소리로 “사실이 그러한데…….” 하면서 다른 칸으로 넘어가는 걸 필자가 목격했다. 다른 칸에서도 타 종교를 폄훼하는 똑같은 장광설을 늘어놓았을 것이다.
“불교의 눈으로 보니 기독교가 더 잘 보인다.” 미국의 신학자 폴 니터 교수가 한 말이다. 다른 종교도 아우르면서 자기 종교를 통찰하라는 말인 듯하다.
요 지음 우리나라에서도 석가탄일이나 성탄절에 기독교, 천주교의 목사 및 신부와 스님이 함께 참여하여 축하해 주고 격려해 주는 미풍이 싹트고 있어 같이 즐기는 새 전통이 자리 잡아가고 있는데 고승 대덕의 사리를 가지고 미물인 돼지 불알 까는 것에 비유하는 것은 아무리 너그럽게 생각을 하려고 해도 이해가 안 가는 수준 이하의 졸작이었다.
일부 스님과 신부들이 걸핏하면 노동자들의 쟁의현장이나 제주도 해군기지 등 국책사업 현장에 뛰어들어 앞장서서 목소리를 높이는데 이런 사이비 정치꾼들은 왜 부처나 예수님이 못 본체 그냥 넘기는지 모르겠다. 아니면 이런 광경을 목격하고도 부처님의 자비심이나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이 관대해서 일부러 못 본 척하는 것인지 모르지만.
한맥 문학가협회 사화집에 16호에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