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다라치유의 원리
1.형태의 치유력
아른하임(Arnheim, 2005)에 의하면 모양(shape, 형)은 대상의 공간적인 경계에 의해 기술되며 그것은 순수하게 원, 삼각, 사각과 같은 시각적 성질을 띤다. 이에 반해, 형태(form)는 모양과 그 모양을 만들어 내는 대상과의 관계를 내포한다. 따라서 형태는 순수하게 시각적인 것만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면을 함축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미술치료에서 내담자들이 자신의 내적 심상을 드러내기 위해 동원하는 시각적 표현에는 형태‧색‧공간‧구도‧움직임 등 다양한 조형적 요소들이 있다. 그중에서 형태는 인간의 마음속에 지닌 감정과 관념 등을 전달하기 위해 이미지를 구성하고 생성해내는, 우리가 지각하는 가장 보편적인 시각적 요소 중 하나다(황재숙, 2018).
형태는 시각예술의 기본적 요소이며, 색이나 공간 등의 구성요소와 밀접한 상호관계를 맺고 있다. 다른 구성요소가 갖는 함축된 의미와 마찬가지로 형태 또한 배합되어 새로운 차원의 상징성을 만들어낸다.
인간이 만들어 놓은 형태 이미지들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엘리아데는 이것들이 사람들의 마음이 아무렇게나 만들어 놓은 창조물이 아니고 어떤 필요성에 의해 제작되었으며, '존재의 가장 내밀한 양상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기능이 있다고 말한다. 원과 같은 기하학적 조형물이 만들어진 이유에 대하여 엘리아데는 고대에는 관념들이 언어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사물의 속성에서 발견한 형이상학적 관념을 표현한 흔적으로 보았다. 상징적 생김새나 출처에 따라 그 흔적들이 가치 있는 것으로 승격되는 것은 형이상학적 가치와 힘은 사물의 본질 속에 머물 수도 있고, 사물의 형태 속에 있을 수도 있다는 고대인들의 사고방식이었기 때문으로 엘리아데는 설명하고 있다.
동양과 서양의 시대, 문화, 사람들은 다름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인 시각 양식과 패턴의 질이 균일성을 갖고 있다는 사실은 엘리아데의 이 같은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와 같은 유사한 형태나 문양이 등장하는 원인을 가장 잘 설명하는 이론은 융학파들이 주장하는 원형론이다. 인간에게는 단 무의식이 존재하기 때문에 인간의 개별성과는 관계없이 인류라는 생물학적 조건 하에 공통으로 주어진 패턴이 발생한다고 보았다.
이런 엘리아데의 견해는 아른하임이 게슈탈트 이론에서 차용한 이형동질(isomorphism)적 사고와 같다고 볼 수 있다. '본다는 것은 시각적 힘의 형태화 작용을 지각하는 것이 포함되며, 지각된 힘의 형태화는 자연발생적으로 생활 속에서 힘 작용의 이미지로서 보여지는 것이다.' 예를 들면, 태양이 떠서 정점에 다다른 이후, 지는 과정의 지각적 측면은 탄생‧성장‧노쇠라는 역학으로 이미지와 의미가 일치됨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추상화와 상징의 개념으로 사고가 발전하고 체계화되면서 기하학적 형태는 특별한 의미를 내포하게 된다.
상징적 형태의 추상적인 상징 의미는 구석기시대부터 나타났으며, 고대 이집트와 그리스와, 자연주의적 종교 미술이 고도로 발전한 북유럽의 문화에서도 표현된다. 그리스인들은 기원전부터 도기를 중심으로 직선‧원‧물결‧선 등 섬세하고 세련된 기하학적 문양을 즐겨 이용하였다.
플라톤은 기하학의 본질은 이데아를 드러내는 것이며, 인간에게 기하학은 신의 섭리를 찾게 하는 중요한 수단이라고 하였다. 또한 기하학적 도형이 점‧선‧면으로 표현되듯이 하늘을 이루는 우주의 천체는 그 기하학적 도형으로 파악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이에 플라톤은 정사면체‧정육면체‧정팔면체‧정십이면체‧정이십면체의 입체도형 다섯 가지를 불‧흙‧공기‧에테르‧물에 대응시켰다. 입체와 요소를 결합시켜 생명의 근원이자 우주의 물질 구조를 설명하고자 한 것이다. 그에게 기하학은 물질세계의 한계를 넘어서 우주의 진리를 품고 있는 비물질적인 실재를 드러내 주는 지혜였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고대 그리스의 기하학이 대상 세계의 이면에 있는 신성한 숨은 질서를 드러내 주는 것이었다면, 중세의 기하학은 그것에서 더 나아가 '정신의 빛으로 발현되는 내적이고 성스러움'을 드러내 주는 지혜로 여겨진 것을 알 수 있다.
기하학적 형태는 무의식에 깊이 닿아 보는 이에게 미묘한 기분의 변화를 일으키는 힘을 갖고 있다.
추상적 형태를 이루는 기본적인 도형 중 원을 먼저 살펴보면, 원은 시작과 끝이 없는 무한의 곡선으로 분할되지 않은 형태이며, 중심에서 모든 지점이 길이가 같다. 원은 닫혀 있으며 감싸 안고 숨기고 보호하는 느낌을 준다. 또한 규칙적인 형상 가운데 전체성과 폐쇄성을 가진다. 멈추지 않고, 즉 방향을 바꾸지 않고 그릴 수 있는 유일한 기본 형태이다.
김응종(2012)은 원의 형상에서 영원함과 성스러움의 속성을 유추하여 원에 인간의 근원적 대극인 신을 투사하였다. 원은 신과의 합일, 회귀를 상징한다. 신과 이데아는 인간의 근원적 출발지이자 궁극적인 목적이라는 개념을 원의 형상으로 구체화하였다. 근원으로부터 유출되었다가 다시 합일하는 순환론을 원으로 설명한 것이다.
융은 정신병동에서 일하는 동안 많은 환자가 엄청난 내면의 동요를 겪은 후에는 다시 방향을 정립하고자 자발적으로 원의 형태를 그리는 경향을 갖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그들이 원의 구조 속에서 중심을 찾고 조절하는 힘을 얻으려 한다는 것을 관찰하였다.
핀처(Fincher)는 우울하거나 정신적 혼란 상태에서 원을 그림으로써 긴장 이완을 통한 갈등극복, 에너지 집중화 현상과 자기표현을 통한 통찰과 자기 통합과정을 거쳐 치유의 힘을 얻었다고 하였다.
이러한 예들은 인간의 정신이 원이라는 특정한 형태로 시각화되어, 원의 형태가 내적, 외적 충격과 압력에서 최대한 독립되어 개인의 자율적 과정을 촉진하는 것을 가능하게 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다음으로 사각형은 동적인 원에 대립하는 의미를 지닌 형태로 정적이고 현세적이며 물질적인 상징을 갖는 도형이다. 완벽함과 현실을 상징하며 안정적인 느낌을 주어 상반된 것들의 균형을 잡는다. 완전히 둘러싸인 공간으로 안전의 뜻을 담고 있다. 사각형은 한계가 있는 토지, 대지의 평온함과 무거움, 단단함과 상징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플라톤은 정사각형은 원과 더불어 균형이 잡혀 있음으로써 하나의 완성된 아름다운 가진 형태라고 하였다. 정사각형은 원과 더불어 만다라를 표현하는 기본 형태로 만다라에서 사각형은 정신적 에너지가 가진 충만함과 정화를 상징한다. 심리학적으로 사각형은 완전체의 형태로서 조화와 보호 기능과 관련된 긍정적인 의미 외에 폐쇄적이고 사방이 갇힌 공간에서 오는 답답함을 표현하는 부정적인 상징을 지니기도 한다.
기본적인 형태를 이루는 삼각형은 기하학적인 형태에서 가장 역동적인 형상의 의미를 가진다. 하나의 밑변과 이 밑변을 덮고 있는 듯한 두 개의 대각선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삼각형은 인간의 인생 흐름과 연관하여 시간상으로 과거‧현재‧미래를 연결하며, 이는 출생과 삶, 죽음 또는 청년기와 중년기, 노년기를 의미한다. 또한 가장 단순한 평면도형이며, 마술적 숫자인 3으로 이루어진 신성한 삼위일체의 상징이기도 하다. 힌두교와 탄트리즘에서 꼭짓점이 위로 향한 남성적인 삼각형은 불과 남성적 생산력의 상징으로 여겨지고, 꼭대기를 아래로 향하고 있는 여성적인 삼각형은 물과, 여성적인 성(性)의 힘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정삼각형은 지상에서 높은 곳으로 향하는 자세로 태양을 상징하며 생명‧불‧불꽃‧영적 세계와 왕위의 장려함을 나타낸다. 역삼각형은 달에 속하여 수동적인 여성적 요소와 모체를 나타내고, 무의식과 잠재력을 상징한다. 심리학적 관점에서 삼각형은 관계를 의미하고 독립적인 성향과 자율성, 변화의 시도를 나타낸다.
이처럼 순수한 도형 즉 만다라를 구성하는 기하학적 도형으로 이루어진 형태는 치료 목적의 접근이 아니어도 보거나 가지고 노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그러한 행위가 무의식에 있는 내밀한 본질들과 접촉시키고 언젠가는 성스러운 진지함과 치유의 의미로 전환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만다라 통합치유 연구/ 심정아 선문대학교 일반대학원 통합의학과자연치유전공 박사학위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