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ofr1u_w-djk
#손끝세선교회
#손끝세이야기1화수어버전
#손끝세의주인은하나님이십니다
#이영경사모
지금부터 손끝세선교회가 어떻게 세워지고 지금까지 오게되었는지 글로 써보려고 합니다.
2015년 9월
15년동안 살던 대전을 떠나 서울영락농인교회 담임목사로 목회지를 옮기고 낯선 교회, 낯선 도시에서 새로운 삶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외롭고 힘들어서 기도만이 살길이라는 마음으로 그 어느때 보다 더 많은 기도의 자리를 찾던 때였습니다.
그러던 중 김용익목사 고향 선배이신 송호일목사님으로부터 전화 한통을 받았습니다.
(평소에 송호일목사님이 예수님의 마음으로 장애인들에 대한 각별한 사랑을 실천하는 섬기는 삶을 사시는 목사님이라 존경하고 있었습니다)
“제주도에 수련회를 가는데, 시청각장애인들이 5명이 가요. 같이 가 줄 수화통역사 5명이 있을까요?”
“네~ 찾아 보겠습니다”
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
속으로는 온갖 안될 이유들이 머리 속을 채웠습니다.
‘5명의 수화통역사가 통역비도 주지 않는 순전히 봉사로 ~
자기 시간을 희생해서 ~
2박 3일 동안 제주도까지 따라 올 사람이 있을까?
대전이라면 모를까 서울에 아는 수화 통역사도 없고,
아는 수화통역사가 있다고 해도 다 자기 직장 일에 바뻐서 부탁해도 소용 없을텐데......ㅜㅜ’
그 때 문득 서울에 와서 알게 된 크리스챤 수화통역사 밴드가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2016년 2월 20일 이런 글을 밴드에 올렸습니다
[2016년 2월 20일
수화 통역 요청 있어 올립니다.
아마도 새로운 경험이 될 것 같습니다.
시.청각장애인들이 제주도 수련회를 떠나게되었습니다.
시각 청각 이중 장애를 가진 분들이라
1대1 통역이어야 한다고합니다.
일정은 6월 27일 ~29일
수화통역자 5명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저희 교회에도 농인 성도 중에 시력마저 자꾸 떨어져서 힘들어하시는 분들이 있어
볼때마다 마음이 아팠는데
아는 목사님으로부터
수화통역 요청을 받았습니다.
주위에 기독 수화통역사 분들께 알려서 같이 수화통역으로 봉사해 주실 분 찾아봐주세요]
글을 올리고 답이 오길 기다리는데
고경희라는 수화통역사로 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놀라워라~
고경희통역사는 대전에서 TV로만 봤던 유명한(?) 얼굴이 알려진 통역사인데 고맙게도 연락을 준 것입니다.
그리고 부산 수영로교회 김윤선권사님으로부터 두명 가능하다는 연락
그리고 또 부여에서 남자 통역사님이 가능하다는 연락 그렇게 5명의 수화통역사가 구해졌습니다.
그때 생각했습니다 “와! 하나님이 하시는구나 “
그렇게 떠난 제주도 여행
처음 만난 농맹인
처음 해보는 촉수어
서툴고 실수투성이고 부족한데도
농맹인분들이 즐거워하고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몰래몰래 눈물을 닦았습니다.
안들리고 , 안보인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상상할 수가 없었습니다.
제주도의 푸른 하늘과 바다를 들려드릴 수도 보여드릴 수도 없었고
써커스단의 동물 묘기와 마술 쇼도 아무리 머리를 짜내고 손으로 전달해드리려 노력해도 역부족이었습니다.
다행히 가는 곳마다 풍성한 식사대접과 숙소와 예배 장소를 마련해주신 중문한사랑교회와 도움 주신 분들이 있어 행복한 추억 여행으로 남았습니다.
제주도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후
기도할때마다 주님은 농맹인들을 생각나게 하셨습니다.
사실, 제주도 여행에서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는데 대표가 시각기반 맹농인이 주최하고 인도하다 보니 농맹인들은 뒤로 밀리는 들러리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맹농인들은 청인 정체성과 언어가 음성 언어인데 반해 농맹인은 농인 정체성과 언어가 촉수어이기에 문화,언어가 다름)
어느 날,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
송호일목사님과 고경희샘과 나
세 사람이 또 만나 농맹인들만의 모임을 만들자는 회의를 하고 있었습니다.
언제 :한달에 한번 마지막주 화요일
장소:영락농인교회에서
대상: 전국 농맹인들과 촉수화 통역사들
(감사하게도 영락농인교회 김용익목사님과 장로님들과 교인들이 흔쾌히 교회 장소를 사용하도록 해주셨고 매달 식사를 정성껏 만들어 주셨습니다. 지방에서 올라오는 농맹인들에게는 하루 전날 와서 잠 잘 수 있는 숙박 시설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2016년 10월 25일 화요일
손끝세 선교회 첫 예배를 시작하게 되어 2020년 1월 코로나 방역조치로 인해 모임이 폐쇄되기 전까지 드려졌습니다.
그렇게 매달 마지막주 화요일 예배를 드리다가
농맹인 한 사람이 “날씨도 좋은데 우리 소풍 가요” 하면 소풍을 갔고
농맹인 한 사람이 “부산 가고 싶어요. 우리 여행 가요” 하면 여행을 갔습니다.
그렇게 부산 여행을 다녀왔고
목포도 다녀왔고, 진안도 다녀왔고, 천안도 다녀왔습니다.
국내 여행에 그치지 않고 해외 농맹인 (Deaf Blind ) 대회와 컨퍼런스 소식이 있으면 농맹인과 손세우미 지원자들이 다녀왔습니다.(호주, 일본)
대한민국 척박했던 농맹인이라는 땅에 그렇게 새싹이 돋고 잎이 무성해지며 자라나갔습니다.
할 일들도 눈에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농맹인 법이 제정되고, 농맹인을 위한 정책들과 농맹인 협회가 세워지는 꽃이 아름답게 필 것입니다.
그래서 농맹인들의 행복한 삶이 열매로 맺어지길 소망합니다.
이 모든 일은 사람의 의지나 사람의 선함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송호일목사님 안에 계신 성령님에게서 비롯되어 같은 성령님이
역사하는 농맹인과 손세우미들을 통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손끝세 선교회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오랜 세월 농맹인을 향한 송호일목사님 안에 사랑의 불씨가 영락농인교회에 떨어져 농인의 정체성을 가진 농맹인들이 모여 활활 모닥불로 세상을 밝히게 된 것이 손끝세 선교회입니다.
그 모닥불의 여세를 몰아 농맹인을 위한 복지와 삶의 질 향상을 이루는 농맹인 복지회가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앞으로 손끝세 선교회는 계속 따뜻한 모닥불로 타오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