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날 : 2023년 1월 18일
오늘 오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동네 도서관에 가는길에 몇가지 살게 있어 월마트에 들렀습니다.
계산을 마치고 나오는데 문옆에서 어느 여자가 부르는듯 했지만 처음 보는 사람이라 그냥 지나치려 했더니 재차 부릅니다. 무슨 일인가 싶어 다가갔더니 카트에 우유, 시리얼 , 빵 등등 그로서리를 가득싣고 서 있었습니다.
차안에다 키를 두고 내렸는데 스페어 키를 갖다줄 사람이 없어서 그러니 집에까지만 데려다주면 나중에 다시 오겠다고 합니다. 20대 후반쯤 되어보이는데 뭔지 어둡고 삶에 지친 그러면서도 거친삶을 살아온듯한 행색이었습니다. 순간 고민에 빠졌습니다. 아 ! 도와주고 싶은데 뭔지 모르게 불안했습니다.
“ 집이 어디인가요 ?”
“여기서 얼마 안멀어요” 하며 그녀가 가르쳐준 길은 마침 제가 가려던 도서관근처였습니다.
불안했지만 결국 도와주기로 마음을 먹고 그녀의 짐을 제 트럭 뒤에 옮겨실은 다음, 비를 맞으며 카트를 제자리에 돌려놓고 오니 어느새 트럭 앞자리에 올라앉아 쿠키를 먹고 있더군요. 차도 태워주겠다 웬만하면 하나 먹어보라고 권할텐데 ... 속으로 생각하며 출발을 했습니다.
“ 집 주소가 어떻게 되나요 ?”
“ 집이 아니라 호텔이예요 “
??? 좀전에 집에 데려다 달라더니 이제는 호텔이라고 하네요.
“여행 왔나요 ?” 여행자 치고는 그로서리 양이 카트 하나가득이라 그것도 좀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아니요, 집에서 살았는데 렌트비가 밀려서 쫒겨나 갈데가 없어 호텔에 살고 있어요 “
!!! 이렇게 말하는 그녀의 옆얼굴을 슬쩍보니 목 주위의 자잘한 문신과 함께 귀 밑의 빰에 선명한 검은 별 모양의 문신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마침 그여자가 묵고 있다는 호텔은 저도 아는데 길에서는 보이지도 않는 외지고 조금은 으슥한곳에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별의 별 생각이 다 떠올랐습니다. 아 ! 이 여자가 갑자기 칼이나 총을 들이대서 나를 해치고 차를 뺏어 도망가면 어쩌지 ? 아니면 공모한 남자 친구가 으슥한 곳에서 길을 막고 둘이 나를 해치면 ?? 아… 은퇴한지도 얼마 안돼 이제 좀 재미있게 살아보려고 했는데 내 운은 여기까지인가 ? 순간 사랑하는 가족들의 얼굴들이 떠 올랐습니다. 내가 실종되면 얼마나 애타게 나를 찾을까 ? 마지막 카드를 사용한곳은 월마트인데 거기서 내 행적은 끊기겠지..,갑자기 슬퍼졌습니다.
그도 저도 아니면 혹시 이 여자가 갑자기 나를 성 추행범으로 몰아버리면 어쩌나 ? 온갖 잡생각이 들었습니다. 뺨에 새겨진 흑색 별이 어떤 갱조직의 표시가 아닐까 ? 갑자기 오래전에 보았던 샤를리즈 테론의 몬스터 라는 영화가 생각났습니다. 하이웨이를 따라 히치하이킹을 하며 남자 운전자들을 무자비하게 살해하는 실존인물을 그린 수작입니다. 마침 요즘 제가 unsolved mystery 같은 넷플릭스 범죄 다큐를 보는 중이어서 불안감은 더해만 갔습니다.
마음을 다독이고 다시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실례가 안된다면 어쩌다가 그리 됐는지 물어봐도 괜찮을까요 ?”
“목재 공장에서 통나무 다루는 일을 하다가 다쳐서 6개월동안 일도 못하다 보니 렌트가 밀려서 두 아이들과 함께 거리로 쫒겨났어요 .”
“ 아이고.. 회사에서 치료비는 다 대주고 이제 몸은 괜찮나요 ?”
“ 치료비는 그 당시 제가 의료보험이 있어 그걸로 해결하고 몸은 20년전에 입은 교통사고 때문에 허리가 아직 완전치 못해요.”
“ 그럼 지금 직장은 있나요 ?”
“네. 지금 가고있는 호텔 프론트 데스크에서 일하고 숙소도 그 호텔에서 하루 45불씩 내고 아이들과 지내고 있어요 .”
얘기를 여기까지 듣고 보니 불안했던 마음이 없어졌습니다. 그리고 계속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그런데 호텔 오너가 얼마전 바뀌어서 이달 말까지 호텔에서 나가라고 해서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겠어요. 지금 호텔에서 일하고 받는돈이 한달에 1600불인데 렌트비내면 뭘 먹고 살아야 할지…” ( 한달에 1600불이라니 아마 풀 타임 잡은 아닌듯 했지만 더 이상 물어보기가 괴롭더군요.)
“ 도와줄 친지나 친척들은 없나요 ?”
“아버지가 여기서 좀 떨어진 곳에 살고 계신데 집 렌트해서 들어갈 때 코싸인 해준다고 했어요.”
이렇게 대화를 나누다 보니 그녀가 묵고있는 호텔에 도착했습니다. 러기지 카트가 모두 사용중이라 저와 둘이서 그로서리 봉지들을 하나씩 로비로 옮겨 놓고 행운을 빈다는 말과 함께 작별인사를 하고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도서관으로 향하는 길에 마음이 참 착잡했습니다. 어린 두 아이들을 데리고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애쓰는 여자를 잠재적인 범죄자로 의심한 나는 좋은 사람인가 ? 나는 본디 나쁜사람은 아닌데 세상이 험하고 낯선 사람들을 믿을 수 없다보니 내가 아니라 누구라도 그리 했을거야 . 세상이 나를 이렇게 만든거지 내 탓이 아니야. 이렇게 강변해 보지만 왠지 공허합니다. 작별을 하기전에 지갑을 열어 돈이라도 좀 손에 쥐어줬으면 지금 마음이 좀 편할텐데 그때는 거기까지 생각이 못 미쳤습니다.
집에와서 가족들에게 오늘 겪은 얘기를 했더니 얼마나 위험한 짓을 한지 아냐고 다시는 그러지 말라고 합니다.
앞으로도 이런 상황에 다시 놓이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 모른척하고 그냥 지나쳐야 할까요 ? 혼란스럽고 서글픈 하루였습니다.
첫댓글 참 잘 하셨어요,
하지만 한번이지 두번은 아닙니다.
우리는 오래오래 청산녹우님과 산행과 아울러 버섯, 조개 그리고 미역을 따고 싶습니다.
그녀의 형편이 어려우니 지갑을 열었다면 그녀의 마음이 어떻게 변했을지는 누구도 모르는일.
"가난 구제는 나랏님도 못한다"는 옛말.
비 맞으며 차 태워준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니 마음 편하게 하소서🙏
흉악한 세상이라 마음을 놓기가 참 힘든 요즘 청산님의 행동은 참으로 용감하고 존경스럽기까지 하네요 정말로 창산님 말대로 차안에서 얼마나 혼란스러웠을지 저라면 어떻게 했을까… 분명히 마음은 도와주고싶지만 그렇게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을거예요 선한 일을 하시고 나서 여러가지 생각이 드실줄 압니다 그래도 청산님께는 소중한 가족이 있기에 늘 조심하시길 바래봅니다
드라마틱한 단편소설 같은 실화한편을 아주 감동깊게 읽었습니다! 역시 청사님 이십니다!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쉬운일이 아닌데 시대가 시대이니 만큼 선한마음앞에 갈등을 안할 수 없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지만 그럼에도 끝까지 선한마음의 경지로 승리하심을 축하하며 박수를 보냅니다! 이렇게 선한 사마리안들을 보호차원으로 캘리포니아주를 시작으로 많은주 정부들이 아예 불법으로 법제화를 세워 이런상황을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게 했습니다 해주고 싶지만 불법이니 아쉬워 현금이나 짧은거리 우버를 불러 주는 데체의 도움이 좋을듯한 개인의 생각입니다 선한마음에 조금은 두려움으로 그럼에도 용감히 이겨낸 선의 손길 승리를 대리만족의 기쁨으로 감사함입니다!
주위에서도 직접 데려다 주지 말고 우버를 불러 대신 돈을 내주라는 조언이 있는데요, 그럴경우 만일 그 사람이 탄 우버차를 파손시키거나 사고라도 일으키면 그 책임은 또 제가 져야하는지 그것도 생각해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선의로 도와주고 싶어도 그런사람들 때문에 망설이게 되고 정작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도 도움을 못받아 피해를 입으니 남을 돕는것도 어려운 세상입니다.
길거리에서 도움의 손길을 구하는 안타까운 이들을 볼때마다 갈등하는 마음은 모두가 같은가 봅니다.
짧은 시간동안 긴 세계를 오가며 정말 많은 생각을 경험하셨네요. 하늘나라에 상급으로 쌓였겠습니다. 도움받은 그 사람은 또 다른 누군가에게 도움의 손길을 펼치리라 생각해봅니다. 그래서 세상은 선순환으로 열매를 맺으며 살만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데 일조한 것이리라 믿어봅니다...
청산님의 마음의 갈등은 우리 모두가 한번정도는 다 갖고 계실겁니다
그래도 청산님같은분처럼 하시는분들이 계시기에 이 함든 새상도 돌아가는것이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어떤것을 선택해야하는가에 대한 갈등을 계속하며 살아가게 될것입니다
이 경우처럼 도와야하나 돕지 말아야하나..
나의 선택이 우리의 모두를 살리는 것이 되기를 소망해봅니다
청산님 감사합니다
글이 소설처럼 읽혀져요. 다음 페이지가 있을 것 같은데,, 다음 페이지는 독자가 완성하는 거지요?.... 덕분에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이걸로 끝입니다. 다행히 저는 살아나서 이 글을 쓰고있구요. 모르는 사람에게 우버를 태워 보내는것도 제가 미국인 커뮤니티에 의견을 물어봤더니 반대합니다. 차에서 사고가 나면 제가 책임져야 한다는군요. 선의를 가지고 타인을 돕는 일도 어려운 세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