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천식 약력
호 운암, 연세대학교 도시공학박사
전) 포천부시장, 전) 포천시장 권한대행, 전) 포천시 체육회장
한국작가, 에세이문예. 소설(2016). 시(2017). 수필(2018) 등단
2017, 2018년 한국작가. 에세이문예 신인작가상 수상
홍조근정훈장(2018), 저서: 희망스토리『함께 꿈꾸다!』
1. 불꽃놀이 (민 천 식)
어두운 밤하늘을 수놓은
수많은 종류의 반딧불
화려하게 우주공간을
장식한 과학예술의 향연
예술 작품에 취해
가는 발길 멈추게 하네
자신을 불태워 볼거리를
제공하는 희생의 산물
남의 고통 까맣게 잊고
즐거워하는 슬픈 현실을
2. 나의 아버지 (민 천 식)
비바람 견디며
이름 없이 살다가
한마디 원망도 없이
시대를 온몸으로
저항하다 떠나셨다.
만주 벌판을 헤매며
조국을 위해
가족을 위해
거친 세상을 살았는지
까맣게 사라진 목소리
이제야 사무치도록
당신의 큰 그림자를 봅니다.
3. 초행길 (민천식)
이젠 아무 미련 두지 말고 길을 떠나세요
남겨진 가족 걱정이랑 말고 길을 떠나세요.
두고 떠나는 가족 걱정에 당신의 마음은 천근만근이요
옮기는 발걸음 태산같이 무겁기만 하지만
더 이상 미련 두지 말고 훌훌 털고 길을 떠나세요.
지금 떠나는 당신이 한없이 야속하지만,
길 떠나는 당신에게 미안함과 미련이
남아 보름달 속에 그리움을 묻어두고
길을 떠나는 것은 당신 잘못이 아니기에
더 이상 미안해하지 말고 길을 떠나세요.
떠나는 당신이 미련을 가지면 가질수록
보내는 가족들의 마음 더욱 아파진다오.
두 손을 움켜쥐고 태어나서 두 손을 펴고
모든 것을 다 두고 빈손으로 떠나는
“공수거 공수래” 우리네 인생인 것을
허무하다고 말하지 말아요.
그래도 당신이 살았던 이곳에
많은 흔적 남기고 떠났으니까요.
가진 자, 가난한 자, 많이 배운 자, 못 배운 자
누구나 모두 빈손으로 떠나는 것을
아무 불평하지 말고 이제 길을 떠나세요.
두고 떠나는 가족들은 이곳이 정든 곳이라
무슨 일을 하던 살아갈 수 있을 테니까요
이제 아무 걱정하지 말고 길을 떠나세요.
그 길은 누구나 초행길이라!
초행길을 떠나기에 두려움도 크겠지만,
좋은 기억만 머릿속에 담고 길을 떠나세요.
그곳에 가면 누군가 묻거들랑
참으로 열심히 살았다고, 한없이 행복했다고,
그리고 가족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말하세요.
4. 병풍바위
우리를 늘 품고 있는 고향마을 언덕에 자리 잡고 있는 병풍바위는 그리운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다. 병풍바위에 비친 저녁놀이 우리네 마음까지 풍요로움을 더한 어느 해 해질 무렵이었다. 아버지는 이름 없는 촌부로 평생을 힘겹고 굴곡진 삶을 사시다 먼 길을 떠나셨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가로등 불빛처럼 차츰 희미해져 내게서 멀어만 지고 있다. 그 기억을 손에 잡으려고 힘을 주어 팔을 뻗어 보았지만 점점 멀어질 뿐, 이제는 먼 옛 추억처럼 내 머릿속에 한 장의 사진으로 남는다.
아버지가 먼 길을 떠나신지 몇 달이 지났을 무렵 어느 날 오후 우리 집 전화기가 내 귀를 몹시도 피곤하게 하였다. 그날따라 시끄럽게 울고 있는 전화기가 달갑지 않아 수화기를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전화를 받게 되었다.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는 내 기억상자에 등록되지 않은 목소리였다. 그는 자신이 충북 영동에 사는 우리 집안과는 같은 조상을 모시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밝히면서 아버지의 안부와 함께 다짜고짜 아버지를 전화수화기 앞으로 불어냈다. 나는 갑작스런 전화라 아무 생각 없이 “우리집안과 충북 영동과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는데 무슨 연락이래”라고 되뇌었다. 아버지의 안부를 전해주자 그는 나에게 참으로 난감해하는 목소리였다. 아버지는 당신이 이곳에 머물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다는 것을 미리 짐작하고 당신을 위탁하고자 고향을 찾은 듯하다. 자신이 길을 떠난 후 남겨진 가족에게 부담을 주시지 않으려고 고향마을을 찾으신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앞선다. 나는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것에 마음이 착잡하고 답답함이 하늘에 닿았다.
아버지는 오래전 나에게 들여 주신 우리 가족에 대한 얽힌 사연들이 희미한 촛불처럼 떠올랐다. 일제강점기 때 사랑하는 가족들을 이끌고 정든 둥지를 등진 사연들을 아버지로부터 들었던 기억들이 메아리가 되어 나에게 돌아왔다. 나는 불현듯 많은 사연을 이 땅에 남겨두고 떠나신 아버지의 흔적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그것은 아버지의 깊고 넓은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것에 대한 속죄의 마음을 잠시 가슴에 담아두고 뿌리를 찾아 길을 재촉했다. 당시는 길 안내 도우미가 없었던 시절이라 교통지도를 친구삼아 목적지를 찾아 승용차는 여유를 부리며 달려갔다. 마을은 시냇물이 마을을 휘어 감고 용틀임 하듯 천둥소리를 내며 힘차게 흐르고 있었다. 마을 입구에 서 있는 누각은 오래전부터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며 반갑다고 먼저 인사를 건넸다. 그곳을 지나 안쪽 양지바른 곳에 내가 찾고 있는 마을은 한 폭의 산수화처럼 단아한 자태를 뽐내며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 마을 주민들은 슬픈 역사를 가슴에 간직하고 오늘도 그 슬픔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한국전쟁 당시 미국 폭격기가 혼불이 나가서인지 마을주민들을 향해 불을 내뿜어 많은 마을 사람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되는 비극의 현장이었다. 이곳에 평화롭게 살던 마을주민들은 온다간다 말도 없이 어디론지 가버렸네. 해마다 음력 유월 십사일이 되면 마을주민들은 억울하게 세상을 떠난 분들을 기리기 위해 현재도 마을공동 제사를 올리고 있다. 내가 마을에 막 도착해서 먼 친척뻘 되는 집을 방문했을 때 내 눈을 의심케 하기에 충분했다. 마루에 걸터앉아 있는 노인의 모습이 아버지를 너무나 빼어 닮아 아버지를 보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져 들었다. 한편으로는 너무 반갑고 신기함을 더 했다. 우리 인간도 연어와 같이 태어난 곳으로 다시 돌아오는 회기본능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연어가 바다에 살다가 생을 마감하기 전에 태어난 곳을 찾아 사력을 다해 헤엄쳐 돌아와 마지막으로 일생에 한번 알을 놓고 죽음을 맞이한다. 아버지의 경우를 보듯이 우리 인간에게도 회기본능이 남아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아버지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보릿고개 등 험난한 시대를 온몸으로 저항하며 살아온 분이 아니었던가. 그 모진 풍파를 저항하면서 굴곡진 삶에 대해 아무런 불평 한마디 없이 자신의 숙명으로 여기고 살아온 외로운 분이었다. 일제강점기 때 고향의 병풍바위를 뒤로한 채 만주행 화물열차에 몸을 의지하며 험난한 수도자의 길을 걸어야만 했다. 그곳에서 바람 앞의 등불처럼 끝없는 유랑 길에 오르게 되었다. 심신이 지쳐 더 이상의 희망의 끈을 놓으려는 순간 꿈에도 그리던 조국의 해방을 타국 땅에서 맞게 되었다. 아버지는 천신만고 끝에 애절하게 가족들이 기다리는 고향으로 발길을 돌리게 된다. 아버지는 그동안 오고 싶어도 올 수 없었던 병풍바위가 있는 고향 마을에 돌아오기까지는 참으로 오랜 세월을 기다려야만 했다. 그토록 그리워했던 고향은 옛 모습을 찾을 길 없게 되었고, 돌아온 고향에서의 생활은 그리 녹녹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다른 사람보다 학식이 높지도 농토가 그리 많지 않아서인지 그토록 그리워했던 조국은 아버지의 삶을 보듬어 주지는 못했다. 나는 그 옛날 아버지의 깊은 마음을 이해하지 않으려고 했다. 다른 아이들은 아버지가 “교사, 면서기, 제재소. 양조장 주인”이다 하여 도토리 키재기 자랑을 늘어놓곤 하였지만 나는 아버지에 대해 특별히 자랑거리가 없었던 탓에 늘 말을 아껴야만 했다. 많은 인고의 세월을 시냇물에 흘려보내어, 언제나 온화한 모습의 아버지는 평생 남을 험담하거나 싫은 소리를 멀리했다. 내 눈에는 시대의 아픔을 온몸으로 저항해 온 그런 아버지는 현실적이지 못한 분인 듯 했다. 한편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시공을 초월한 분이여서 인지, 당시에는 이해가 되지 않아 머리가 매우 혼란스럽기만 하였다.
어릴 적 내 눈에 비친 아버지는 이른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쉬지 않고 고된 일을 하여도 힘든 내색도 없으셨다. 슬픈 일이 있어도 눈물을 보이지 않으셨고, 먹고 싶은 것도 없으신 병풍바위 같은 초인 인줄만 알았다. 나는 먼 훗날 그런 아버지가 초인도 특별한 사람도 아닌 그저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버지는 태풍이 몰아치는 허허벌판에 홀로 외로이 서서 험난한 세월에 쫒겨, 인생의 황금기를 잃어버린 불행한 삶을 사신 분이었다. 나는 오래전 그런 아버지에 대한 불만을 내적으로 가진 적도 있었다. 아버지가 이곳을 떠나신 먼 훗날 내 나이 환갑이 넘어서야 아버지의 깊은 마음을 알게 되었다. 내가 아버지의 깊은 마음을 알았을 때 아버지는 아쉽게도 이미 우리 곁을 떠나신 후였다. 그 험난한 세상을 어떻게 사셨는지, 아버지가 떠나신 빈자리는 아버지의 존재가 그렇게 크다는 것을 시간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내가 만약 아버지와 같은 삶을 살았다면 나는 일찍이 그와 같은 삶을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인고의 세월 속에서 우리에게 비바람을 막아주고 큰 언덕이 되어 주었던 병풍바위는 지금은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없는 것이 못내 아쉽기만 하다. 병풍바위의 희생은 폭풍이 몰아칠 때 태산같이 큰 파도처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를 잉태한 것이 아닌가 한다. 한여름 뙤약볕에 자신을 검게 태워가며 아프고 힘들다는 말 한마디 없던 병풍바위가 아니었던가. 내게 병풍바위의 빈자리가 너무나 공허하게 느껴져 존경하는 마음과 그리움은 하늘과 같이 높고 바다와 같이 넓기만 하다. 병풍바위는 사라지고 없지만, 오늘도 내 가슴속에 살아 숨 쉬고 있다.
5. 동화 속 마을
나에게 있어 2018년 한해는 참으로 많은 변화를 안겨준 해가 아니었던가?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주어진 환경을 뒤로한 채 새로운 환경을 꿈꾸웠던 목표가 아쉽게도 나의 뜻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말았다. 나는 큰 실망과 함께 앞으로의 나의 삶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이 굴레에서 하루빨리 벗어나고자 나의 모든 것을 아무도 모르는 서재의 깊은 곳에 묻어두고 기억의 상자를 비워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래 모든 것을 훌훌 털고 새로운 일에 몰두해 보자는 자조적인 말을 해본다.
나에게 다가올 새로운 환경에 마음의 여유를 갖고자 동서양을 연결하는 길목에 위치한 발칸반도로 길을 떠날 차비를 하였다. 이른 아침부터 서둘러 길 떠날 준비를 하여 공항으로 가는 전철에 몸을 의지했다. 공항은 이른 시간임에도 해외여행객으로 발 디딜 틈 없는 장사진을 이루었다. 나는 일찍 수속을 마치고 보안검색대를 통과하여 우리들을 태울 비행기의 탑승구에서 보딩시간을 느긋하게 기다렸다. 이윽고 나를 태운 비행기는 시원하게 활주로를 박차고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비행기는 인천공항을 출발하여 장시간 비행 끝에 나의 지친 몸을 크로아티아의 자그레브공항에 안전하게 인도했다. 내가 이제 막 도착한 이곳은 발칸3국의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중 한 나라였다.
발칸반도는 예부터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전략적 요충지로 강대국의 수많은 침략과 수탈을 받아왔다. 그들은 고난의 역사를 살아와서인지, 우리의 역사를 보는 것 같아 보는 이의 마음을 무겁게만 하였다. 이 지역은 가톨릭과 그리스정교회, 이슬람 등의 종교가 혼재되어 있어 종교 간의 갈등의 벽이 매우 높은 곳이다. 또한 세르비아인, 크로아티아인, 무슬림 등 서로 다른 인종 간의 적대감으로 인해 갈등의 불행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이 지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강력한 지도자 티토에 의해 탄생한 유교 연방이 그의 사망으로 나라는 통제를 잃게 되었다. 1991년부터 발생한 발칸지역의 내전은 인종청소라는 만행이 자행되었다. 전쟁은 수많은 소중한 생명을 빼앗아 갔고, 수백만의 난민이 발생한 불행한 역사를 안고 오늘도 이곳 사람들은 슬픔을 잊고자 노력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겉으로 보기에는 평화롭고 조용하기만 한 이 지역에 세계를 공포와 절망의 늪으로 몰고 간 민족 간에 발발한 전쟁의 상처는 매우 깊기만 하였다. 지금도 도시 곳곳에 전쟁의 상처가 남아있어 보는 이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만 하였다. 이 지역 사람들은 모든 슬픔을 가슴에 묻고 밝고 해맑은 얼굴로 여행자를 맞이했다. 여행은 사람들의 마음을 풍요롭게 하고 나쁜 기억들을 잊게 하는 보약과도 같은 것이 여행이 주는 묘미가 아닌가 한다. 나의 첫눈에 비친 이곳의 모습은 잘 보존된 자연환경은 푸른 하늘과 조화를 이루고 있어 여행객들의 마음을 삼킨다. 아드리아해의 아름다운 쪽빛 바다를 품고 있는 자다르라는 작은 도시에서 일박을 했다. 나는 상쾌한 아침 햇살과 바다 내음을 뒤로한 채 신비로운 풍광을 자랑하는 크로아티아의 국립공원인 세계자연문화 유산으로 지정된 플리트비체를 향해 이른 아침부터 길을 재촉했다.
나를 태운 차량은 가는 길에 시간을 내어 동화 속 마을로 알려진 신비한 비경을 몰래 감추고 있는 요정이 산다는 라스토켓 마을로 발길을 옮겼다. 마을은 불가사의한 마력을 지닌 요정이 어디선가 나타날 것만 같은 신비감마저 들었다. 나의 두 눈은 라스토켓 마을의 아름다움에 취해 나의 마음마저 빼앗겨 버렸다. 마을은 숨이 막힐 듯한 비경이 내뿜는 진한 향기 속에 사람들은 장사진을 이루었다. 강물 속에 숨어있는 동화 속 마을은 막 피어오르는 물안개 속에 살포시 얼굴 내밀고, 아름다움과 향기를 고이 간직하였다. 라스토켓 마을 건너편에서 바라본 전경은 나의 꿈속의 한 장면으로 오래도록 남아있다. 동화 속 마을을 돌아 흐르는 풍부한 수량의 맑은 물은 깊은 계곡의 강물을 이루었다. 비취색 폭포수가 토해내는 물줄기는 보는 이의 마음을 훔쳤고, 눈은 아름다운 경치에 취해 가는 길을 잃게 하였다.
그리고 사방에서 전개되는 폭포의 물줄기는 축제의 장으로 신비감을 넘어 경이로움 마저 들었다. 계곡으로 떨어지는 물기둥은 웅장함과 함께 장관을 이루었고, 에메랄드 보석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떨어지는 물소리는 사람들의 귀에 베에토벤의 운명 교향곡이 되어 돌아왔다. 나에게 비친 라스토켓 마을의 자연의 신비함은 그 끝을 모르고 인간의 존재는 너무나 왜소하고 나약하기만 하였다. 이 마을에 들어서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신비한 마을이라는 이름을 부여해도 부족하지 않는 듯하다. 수정처럼 맑은 물 위에 떠있는 마을의 집들은 하나하나가 요정이 빚은 예술품 그 자체였다. 마을의 집들과 부속시설은 자연과 인공요소가 하모니를 이루어 아름다운 선율이 되어 돌아와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았다.
나는 동화 속 마을에는 어떤 사람들이 살까 하는 궁금증이 생겨 머리가 혼미하기만 하였다. 이곳 사람들은 모든 시름 잊고 행복의 단감만을 따 먹고 있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에 머물면서 지금까지 앞만 보고 발버둥 치면 살아온 지난날이 후회와 연민으로 내게 돌아왔다. 그러나 후회는 남기지 말자. 누구에도 상처를 주지 말자. 동화 속 마을에 영감을 얻어 꿈의 마을을 만들고 싶은 새로운 목표가 생겨 나에게 희망으로 다가왔다.
6. 인연
오래 전 가을 어느 날 오후 한 점의 새털구름은 하늘의 푸르름을 한층 더하였다. 푸른 하늘에 반사된 백옥같이 흰 피부에 바람에 날아 갈 듯 가냘픈 몸매를 한 여인이 내게로 다가왔다. 나의 두 눈은 나도 모르게 초점을 잃고, 어느새 그녀에게 빠져들고 말았다. 나는 당시 서울 인근의 도시에서 시 행정을 하고 있었다. 유난히도 꿈과 호기심이 많았던 젊은 시절이었다. 지금은 많은 세월을 시냇물에 흘러 보내고 검은 머리는 흰머리로 변해, 가는 세월을 원망해 본다. 그녀와의 만남은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를 이어준 하늘이 내게 준 인연이라는 선물이 아니었을까?
그녀를 처음만난 곳은 내가 살던 도시의 사람들이 많이 찾던 경양식집이었다. 당시는 경양식집이 보편화되지 않은 시절이었다. 그 옛날 앞만 보고, 정신없이 살던 시절이었지만 그래도 노력하는 자에겐 희망이 있던 시절이었다. 그때 그녀 아버지의 소개로 그녀와의 첫 만남은 나에게 찾아온 또 하나의 희망이었다. 그녀는 나와는 사뭇 다른 모습을 하고 있어 모든 것이 신비롭게 내 가슴에 전해져 왔다. 그녀의 조용조용한 맑은 목소리는 화사한 모습과 함께 나의 심장을 자극해 왔다. 나의 요동치는 심장은 불안하기까지 하였다. 그 불안은 두려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분명 행복의 세레나데에서 오는 소리였다. 그녀를 처음만난 그곳은 우리의 소중한 추억이 있는 곳이라 더욱 의미가 있었다. 그 곳에서 그녀는 늘 사냥한 목소리로 나의 귀를 자극하곤 하였다. 그녀의 목소리는 청량제가 되어 오랫동안 나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날이후 그녀를 시간 날 때 마다 그곳에서 만나는 것이 나의 또 다른 즐거움이요, 행복이었다. 그녀는 늘 나에게 봄꽃같은 화사한 미소를 보내주었고, 모든 근심걱정을 날려 보내주었다. 그녀가 오래도록 내 곁에 함께 할 수 있게 해달라고 하늘을 향해 기도를 하곤 했다. 그것은 당시는 나의 지나친 욕심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녀와 함께 자주 찾던 경양식집은 손님들로 늘 장사진을 이루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경양식집은 무슨 영문인지 모르지만 문을 닫고 말았다. 우리는 그날도 그곳을 찾았건만 아쉬움을 뒤로한 채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그녀와의 추억이 있던 곳이라 여간 아쉬움이 크지 않았다. 그곳에 대한 궁금증을 남겨두고 세월은 바람처럼 달려갔다. 그녀는 지금도 그때 그 단아한 모습을 잃지 않고 있으며, 나와의 추억을 고이 간직하고 나를 바라보며 행복의 다리를 걷고 있다.
지금부터 십여 년쯤 되었을까. 설악산의 단풍이 절정에 이른 어느 날이었다. 나는 강원도 설악산 소청봉에 있는 봉정암으로 1박2일 일정으로 여행을 떠났다. 나를 태운 승용차는 강원도 인제까지 달려 용대리 주차장으로 안전하게 안내했다. 용대리에서 백담사까지는 마을버스를 타고 천년고찰 백담사로 향했다. 백담사로 가는 계곡은 물소리와 함께 단풍은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을 하고 있어 사람들의 정신을 빼앗고 말았다. 버스는 곡예를 하듯 계곡 길을 따라 소리 내어 달리더니 어느새 백담사에 도착했다. 설악을 품은 백담사를 휘어 감고 흐르다 잠시 멈춘 시냇물은 신선의 놀이터요, 명경지수로다. 백담사에서 스님들이 챙겨준 점심 공양은 맑은 공기와 함께한 공양이라 나의 혀끝에 오래도록 여운을 남겼다. 백담사는 암울한 시기에 조국을 위해 온몸을 바친 만해 한용운의 숨결이 살아 숨 쉬는 곳이라 그의 정기 이어 받아 위풍당당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공양을 마친 후 백담사의 구석구석을 놓치지 않고 돌아본 후 봉정암으로 발길을 재촉했다.
봉정암은 강원도 인제의 설악산 소청봉 아래 자리 잡은 백담사의 부속암자이다. 이절은 신라의 자장율사가 창건한 오랜 역사를 고이 간직하고 있는 천년고찰로 불교신도들의 성지 순례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봉정암은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봉안되어 있는 5대 적멸보궁 중 하나로 불교사적 의미가 매우 크다. 우리는 백담사를 출발하여 계곡의 맑은 시냇물을 벗 삼아 걷다보니, 한 시간 거리의 영시암이 반겨주었다. 영시암은 자연경관이 빼어난 설악산 수렴동 계곡과 오랜 세월을 함께 해왔다. 한번 떠난 화살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연이 숨어있는 영시암에서 잠시 쉬었다가 발길을 재촉했다. 수렴동대피소를 지나 쌍용폭포에 이르자 바위를 타고 떨어지는 물줄기는 장관을 이루었다. 사람들은 모두 그 경치에 취해 가던 발길을 잠시 멈추었다. 몇 시간을 걸었을까 깔딱고개가 우리 앞을 가로 막아섰다. 마지막 온힘을 다해 깔딱고개를 뒤로하니, 소청봉의 병풍바위를 품고 있는 천년 비경을 고이 간직한 봉정암이 비로소 얼굴을 살포시 내밀었다.
봉정암에 도착한 후 한 스님이 차 공양을 위해 우리 방을 찾았다. 스님의 차공양과 함께 많은 대화가 이어졌다. 스님은 헌칠한 키에 호감 가는 인상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스님과 대화중에 우리가 경기도 부천이란 도시에서 왔다니까, 스님은 속세에 있을 때 그곳에 살았다며 반가움을 표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성경에 나오는 이름의 경양식집을 운영했다는 말을 전했다. 스님의 말을 듣고 내 귀를 의심했다. 스님이 그 유명한 경양식집의 주인이었다니... 참으로 기이한 인연이기도 하였다. 그 옛날 그녀를 처음 만나 자주 찾던 우리의 추억이 있던 곳이 아니었던가? 강산이 여러 번 바뀐 후 그 경양식집 주인이 내 앞에 앉아있는 스님이었다니, 우연치고는 기막힌 우연이 아닐 수 없었다. 스님의 말을 듣고 반갑기도 했지만 한편은 마음이 무겁기만 하였다. 장사가 잘되었던 경양식집이 어느 날 갑자기 문을 닫았던 궁금증이 이제야 퍼즐이 맞추어지는 듯하였다.
인연이란 사람과 사람 간에 맺어지는 관계이다. 수많은 사람 중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 하건만 얼굴을 맞대고 대화를 나누고, 사랑을 키워나가는 것은 인연의 끈이 더없이 소중한 것이기 때문이다. 헤르만 헤세는 “인연이란 인내를 가지고 공과 시간을 들어야 비로소 향기로운 꽃을 피우는 한포기 난초이다.” 라고 했다. 인연은 우리에게 참으로 오묘하고 소중한 것이다. 나는 우연한 기회에 스님의 경양식집을 찾았고 거기에서 단아한 여인을 만나 서로가 절제하며 오래도록 사랑했다. 그녀는 나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었고 나는 그녀를 믿고 긴 세월을 함께한 것은 하늘이 주신 인연이 아니었을까. 봉정암에서 경양식집의 주인이었던 스님을 만난 것도 단순한 인연은 아닐 듯싶다. 그 소중한 인연을 오래도록 기억하려고 서로의 많은 노력과 희생을 감내해 왔다. 나는 소중한 인연으로 만난 그녀를 오래도록 변함없이 사랑하련다.
7. 꿈을 먹는 어린광부
중년의 중후한 모습을 한 신사의 흰머리가 오늘따라 햇빛에 반사되어 더욱 아름답게 빛났다. 그는 단산의 정상을 오르기 위해 모노레일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고향마을을 찾은 것은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그는 이런 저런 생각에 잠긴다. 중년의 신사는 겉으로는 아무런 일도 없는 듯 평온하게만 보였다. 그러나 그의 가슴은 요동치고 있었고, 저 멀리 서 있는 주흘산 너머에서 밀려오는 먹구름에도 감정을 억제할 수 없었다.
중년의 신사는 그 옛날 단산에 많은 사연을 묻어두고 떠났다. 그는 오래전 단산에 자리잡고 있던 광산에서의 고달픈 삶의 기억들이 되살아났다. 이곳 광산은 그에게는 동네 아저씨, 형 등 많은 사람들의 귀중한 생명을 삼킨 아픈 기억의 현장이었다.어린광부는 고향에서의 아픈 추억을 뒤로하고 미련 없이 떠나던 그날이 떠올랐다. 그는 고향에 대한 아름다운 기억보다는 힘들고 고달팠던 기억만이 남아있다. 그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고향에 대한 기억들을 지우려고 애써 외면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그것은 그의 잘못된 편견이라는 것을 세월이 흐른 지금에 와서야 깨닫게 되었다. 고향은 언제나 어머니의 품속같이 그를 포근히 감싸주었다. 예전에는 단산이 광산개발로 폐석더미로 온산이 덮어있어 사시사철 검게 물들어 있었다. 다행이 지금은 폐석더미에도 생물이 살아나고 나무가 자라 푸르름이 더하였다.
중년의 신사는 모노레일에 몸을 담고 단산의 정상으로 향했다. 모노레일이 단산의 칠부 능선에 이르렀을 때 어린광부가 일했던 갱도가 그의 눈앞에 나타났다. 그는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생사의 현장을 한눈에 알아 볼 수 있었다. 그는 깊은 상념에 잠긴다. 그 옛날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그의 머리를 감싸 안아 애써 눈물을 외면했다. 그는 매일같이 살아남게 해달라고 하느님께 기도하던 기억들이 남아있다. 그가 일한 단산의 광산은 시설이 열악하여 사고 위험에 항상 노출되어 있었다. 당시 일은 하루 삼교대로 여덟 시간 일을 했고, 밤 열두시부터 아침 여덟시까지 하는 “병”반의 일은 인간의 한계를 실험하는 고통의 시간이었다. 갱도에서의 일은 선산부와 후산부 네명이 한 개조가 되어 일을 했다. 전기불이 없어 간드레 불에 의존하여 무연탄을 채탄하는 일을 모두 인력으로 해야만 했다. 간드레는 사람들에게 지금은 다소 생소할 수 있다. 간드레는 광산의 갱 안에서 일을 할 때 당시 전깃불을 대신해 사용한 것이었다.
어린광부는 갱도입구에서 수평으로 오백 미터 정도 들어가서 칠십도 정도의 경사면에 설치되어 있는 사다리를 타고 칠십 미터 정도의 높이를 매일같이 산악훈련을 하듯 기어올랐다. 그곳에서 개미굴 같이 여러 갈래로 나누어 광맥을 따라 채굴을 하였으며, 그 끝에는 그가 일하는 막장이 나온다. 막장으로 가는 갱도는 허리를 펼 수 없이 낮게 설치되어 있었다. 그는 막장에서 채탄을 한 무연탄을 손수레에 싣고 갱도를 따라 손수레를 밀어서 무연탄을 운반하였다. 광산에서의 노동의 강도는 생각할 수 없는 힘든 극한의 노동이었다. 허리를 제대로 펼 수 없어 허리가 끊어 질 듯이 아파 왔다. 그는 극한 노동의 현장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적응해 갔다. 그는 갱에서 일을 한 후 갱 밖에서 자신의 모습을 바라다본다. 연탄가루가 옷 속으로 스며들어 온 몸이 까맣게 물들어 있는 그 모습이 너무나 처량하여 애써 외면하곤 했다.
그에겐 광산은 단순한 일터가 아니라 생존의 현장이었다. 누군가 광산의 일은 인생의 막장에서나 만나는 것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당시 선배광부들은 그에게 몇 가지 당부의 말이 떠올랐다. 갱내에서 폐막장은 절대 들어가서는 안 된다고 했다.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식사시간 직전에는 다른 막장에 연장 등을 빌리려가서는 절대 안 된다고 했다. 또한 휘파람 소리에 주의하라고 하였다. 휘파람 소리는 갱목이 무너질 때 나는 소리라는 설이 있어 갱도 매몰 사고에 그는 항상 마음 조였다. 그가 이곳에서 일을 할 당시 단산의 광산에서 사고로 귀중한 생명이 죽음을 맞는 안타까운 일이 있었다. 그가 광산에서 일한지 어느덧 일 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사고에 대한 두려움이 항상 그의 가슴을 억눌렀다. 그는 광부생활도 이제 정리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몸도 마음도 지칠 대로 지친 어린광부는 고향마을을 떠나 낯선 도시에서 새로운 환경을 맞지 하게 되었다. 그에게 불어오는 거친 비바람을 막아줄 언덕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그의 도시생활은 그리 녹녹치 않았다. 그는 서울 인근도시에서 열악한 환경 속에 차츰 생활에 적응해 갔다. 가난과 힘없는 사람들은 어디를 가나 냉대와 차별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처한 환경에 슬퍼했고 때로는 그 서러움에 눈물을 삼켜야만 했다. 그는 고향마을에서 매일 똑같은 환경이 답답하기만 하였으나, 도시 생활은 하루하루가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의 도시생활은 바쁘기는 하였지만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어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니었다. 그는 도시에서 열심히 노력하면 살아갈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달게 되었다. 그는 여러 직장을 전전하였으며, 못다 한 학업을 할 수 있게 되어 매우 다행한 일이었다. 그는 새로운 목표를 하늘에 매달고 그것을 향해 쉬지 않고 달려갔다.
꿈을 먹는 어린 광부는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을 온전히 받아 들렸다. 그는 “꿈은 이루어진다”는 진리 앞에 노력의 과정을 발판 삼아 앞으로 나아갔다. 그는 Y대학에서 박사학위와 고위공무원으로 인명사전에 이름을 올려놓게 되었다. 그는 지난날을 보상이라도 받듯 꿈을 이루었고 주어진 환경에 감사했다. 꿈을 이룬 어린 광부는 지금 자신의 환경과 주위사람들에게 감사하며 힘들었던 지난날을 거울삼는다. 중년의 신사는 단산의 정상에 올라 백두대간의 대미산, 주흘산 등 명산들이 눈앞에 펼쳐진 천하의 비경을 바라보며,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낮은 자세로 새로운 세상을 바라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