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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OaCz779OjNU?si=mfiVKiqgMrZ8GhoQ
장막절 (수콧) 이란? 이 땅에 세워질 천년 왕국 시대와 혼인잔치를 의미합니다.
<단락 1>장막절 (초막절, 수장절, 만민절)은 여호와의 가을절기의 완성이며, 모든 절기의 마무리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장막절은 하나님께서 계획해 놓으신 우리의 구원을 완성시키는 절기이며,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최고의 축복의 은혜를 주시는 날이기도 합니다. 장막절의 날짜는 티쉬리월 15일부터 시작하여 21일까지이며, 가장 밝은 보름달이 뜨는 날입니다. 참고로 숫자가 ‘7’은 완전함을 의미하는 단어이며, 가장 밝은 보름달은 충만한 기쁨과 감사함이 넘치는 날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장막절에 신랑 예슈아는 거룩한 신부들과 함께 7일 동안 장막에 거하며 혼인 잔치를 여시며 고통과 슬픔과 애통함이 없고 충만한 기쁨과 감사함이 넘치는 날이 될 것입니다.
1. 레 23:34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일곱째 달 열닷샛날은 초막절이니 여호와를 위하여 이레 동안 지킬 것이라 43. 이는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때에 초막에 거주하게 한 줄을 너희 대대로 알게 함이니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장막 또는 초막의 히브리어는 ‘수콧’이며, 이 단어는 히브리어 ‘수카’의 복수형입니다. 히브리어 ‘수카’는 임시거처, 장막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장막절은 들에 나가 나뭇가지를 꺾어서 임시거처를 짓고 1주일 동안 거기에서 거주하는 절기입니다 (레 23:43).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1주일 동안 장막을 만들고 거주하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광야생활 40년 내내 그들의 장막을 덮고 있었던 쉐키나 영광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장막절에 만든 초막은 하나님의 쉐카이나 영광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장막은 하나님과 함께 사는 신혼집 (히 : 후파)을 의미합니다 (사 4:5). 후파 (신혼집)은 신랑 하나님과 비밀스럽고, 은밀한 사랑을 나누는 곳을 말합니다. 참고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생활을 하면서 초막의 지붕을 나뭇가지로 얼기설기 해 놓아 달이 보이도록 만들었으며, 많은 짐들을 넣어두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말씀하시면, 바로 떠날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순종훈련과 나그네의 삶 훈련). 우리 또한 광야와 같은 이 땅에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의 최종 목적지는 이 땅에 임할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창세전부터 거하시기로 결정한 장소인 솔로몬 성전 또한 장막절 절기에 맞추어서 완성되어집니다.
그리고 장막절에 3가지를 행하게 됩니다. 첫째, 초막을 만들고 그 안에서 7일 동안 거합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40년 동안 광야에서 초막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약속의 땅으로 들어갑니다. 이와 같이 우리의 육체는 임시 거처일 뿐 영원한 처소를 바라보기 위해서입니다. 이 영원한 처소를 가지고 내려오는 날이 초막절입니다. 둘째, 4가지 종류(무성한 나뭇가지, 종료나무가지, 버드나무 가지, 아름다운 실과)을 흔드는 것입니다.그 이유는 물과 비를 주시는 하나님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셋째, 7일간 온전히 기뻐하는 절기입니다. 그 이유는 환경과 상황으로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으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날은 우울해 하거나, 슬퍼하거나, 짜증내거나, 싸우는 것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1) 대하 5:1 솔로몬이 여호와의 전을 위하여 만드는 모든 일을 마친지라 ... 3. 일곱째 달 절기에 (티슈리월, 장막절)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다 왕에게로 모이고 14. 제사장들이 그 구름으로 말미암아 능히 서서 섬기지 못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이 하나님의 전에 가득함이었더라
하나님이 거하시는 솔로몬 성전에 일곱째 달 장막절 절기에 맞추어서 완성되어진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그리고 14절에 제사장들은 하나님의 영광의 구름으로 인해 서서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영광 (히 : 카도브)의 뜻은 무거움입니다. 이 무거움은 이 땅에서 말하는 무거움과 다릅니다. 우리에게 부어지는 하나님의 영광은 너무나도 가볍고 자유와 쉼을 허락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루 동안 겪은 일로 인해 인생의 무게가 느껴진다면, 이 무거움을 십자가에 던져 버리고 하나님의 충만한 임재 가운데 들어가길 힘써야 합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 7장에 다음과 같은 말씀들이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1) 계 7:4 ...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침을 받은 자들이 십사만 사천이니 10.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15.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이스라엘의 12지파가 회복되어지고 난 이후에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이 나와 주님을 높이기 시작합니다. 그때 외치는 소리가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있도다’ 입니다. 이것을 히브리어로 ‘호샤나’ 라고 하며, 그 뜻은 ‘우리를 구원하소서’ 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계시는 성전에 하나님을 밤낮으로 섬기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라고 외칠 수 있는 이유는 (계 4:8) 하나님이 너무나 매력적이며, 아름다우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예슈아는 어떠한 분이십니까? 모든 것이 아름다우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다른 것에 우리의 마음을 빼앗길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졸지도 않고, 피곤해하지도 않고, 뒤를 돌아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앙망하는 자들은 지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지칠 때가 있는데 언제입니까? 자신의 뜻을 따라 살아가게 되었을 때 지치게 됩니다. 시편 27편 4절에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말씀합니다. 다윗은 자신의 삶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라고 했을 때, 세상의 것을 선택하지 않고, 여호와의 성전에서 여호와의 아름다움만을 바라보는 한 가지를 선택합니다. 시편 16편 11절에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말씀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면 하나님이 주시는 영원한 즐거움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에는 거룩함으로 충만합니다. 즉, 하나님의 거룩함과 하나님의 즐거움은 상반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한 자는 세상에서 줄 수 없는 즐거움과 기쁨을 경험한 자이기에 세상의 것들을 차단하게 됩니다. 그러나 사단은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길 때문에, 영원하지 않는 것 (순간적인 것)을 가지고 ‘이것이 있으면 영원히 주리지고 않고, 목마르지도 않을 것’ 이라고 속이고 있습니다.
(2)계 21:2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3.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우선, 우리는 예슈아의 재림과 요한계시록을 여호와의 절기의 관점으로 보지 않는다면, 마지막 때에 대한 그림을 잘못 해석을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땅에 새 예루샬라임이 내려오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신랑 하나님이 신부인 우리와 함께 살기 위해 새 예루샬라임 성을 준비하신 것입니다. 이 때 신부가 해야 하는 것은 단 한 가지, 신랑 하나님만을 사랑하는 것으로 단장해야 합니다. 다른 동기들 (지옥에 가는 것보다 천국에 가는 것이 좋기 때문에)은 예슈아의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그런데 어떤 이는 육체의 자아를 죽이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기껏해야 천당에서 상급이 큰 사람이라고만 생각해 버리며, 이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처럼 잘못된 구원론은 구원은 믿음으로 얻는 것이고, 행함은 상급에 관한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성경은 믿음과 행함, 이 두 가지가 다 있어야 한다고 말씀 합니다 (약 2:14-17).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기 때문에 마음껏 죄를 지으며 살아도 구원을 얻는다는 논리는 스스로에게 속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슨 짓을 행하여도 구원을 잃어버리지 않는다는 잘못된 생각의 결과는 우리로 하여금 죄를 너무 쉽게 짓게 만듭니다.
(3)고후 5:1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우리의 육체는 임시 거처일 뿐, 영원한 처소는 하나님 나라에 있습니다. 그리고 하늘에 있는 우리의 영원한 집의 이름은 새 예루샬라임입니다. 에베소서 1장 10절에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말씀합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영과 혼과 육이 분리될 수 없는 것처럼, 하늘과 땅도 분리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은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을 경험할 수 있는 초자연적이며, 영적인 영역입니다. 땅은 인간의 혼과 육의 것들이 물질로 이루어진 물리적인 영역입니다. 그래서 하늘에서 이루어진 하나님 나라는 이 땅과 통일 (히 : 에하드) 되어질 것입니다. 그 때 하나님 나라의 정부의 역할을 감당하는 곳이 예루샬라임이 될 것입니다 (시 37:29, 시 78:68, 사 60:20-21, 겔 37:25). 그리고 창세기에 나온 장막절의 예표를 알아보겠습니다.
2) 창 8:11 저녁때에 비둘기가 그에게로 돌아왔는데 그 입에 감람나무 새 잎사귀가 있는지라 이에 노아가 땅에 물이 줄어든 줄을 알았으며 13. 육백일 년 첫째 달 곧 그 달 초하룻날에 땅 위에서 물이 걷힌지라 노아가 방주 뚜껑을 제치고 본즉 지면에서 물이 걷혔더니
하나님의 홍수 심판 이후에 비둘기는 감람나무 새 잎사귀를 물고 노아의 방주에 돌아오게 됩니다. 그렇다면, 감람나무에 새 잎사귀는 무엇을 상징할까요? 이스라엘입니다. 이는 대속죄일에 감람나무인 이스라엘이 회복되어지고, 장막절에 열방들이 천년왕국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노아의 방주가 땅 위에서 물이 걷힌 날이 첫째 달, 초하룻날인 티쉬리월 1일, 나팔절이었습니다. 즉, 나팔절에 새로운 세상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래서 나팔절 (욤 테루아)에는 예슈아께서 열방의 왕으로 다시 오시고, 성도의 휴거가 일어나게 됩니다. 그리고 예슈아께서는 이 세상의 마지막이 노아의 때와 같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눅 17:26). 노아는 현재의 삶 가운데 하나님의 뜻이 이 땅 가운데 이루어지기 위해, 당시 비를 경험해 보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홍수 심판을 선포하였습니다. 우리 또한 노아처럼, 마지막 때 하나님께서 어떠한 계획을 하고 계시는지 믿지 않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계획을 선포해야 합니다. 그리고 감람나무 새 잎사귀인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하여 기도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3) 사 2:2 말일에 (마지막 때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 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리니 만방이 그리로 모여들 것이라 3.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 (예슈아)가 그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
천년 왕국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기 위해, 이스라엘 12지파 뿐만이 아니라 온 민족 (타국인)이 모두 시온으로 모여 토라 (하나님 나라의 헌법)를 듣게 되어질 것입니다. 그 날의 이름은 만민절 (장막절)입니다. 그리고 예슈아는 예루샬라임에서 토라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실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 나라는 토라로 운영되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우리의 의는 단순히 행동으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겸손하고 온유한 모습이 겉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1) 슥 14:9 여호와께서 천하의 왕이 되시리니 그 날에는 여호와께서 홀로 한 분이실 것이요 그의 이름이 홀로 하나이실 것이라 10. ... 예루살렘이 높이 들려 그 본처에 있으리니 ... 11. 사람이 그 가운데에 살며 다시는 저주가 있지 아니하리니 예루살렘이 평안히 서리로다
예슈아의 이름이 천하에 왕이 되시고, 다른 신들의 이름들을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왕이신 예슈아께서 예루샬라임 성전으로 입성하실 때에 예루샬라임 성전은 이 세상에서 가장 높이 솟아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예슈아는 당신의 성 예루샬라임 성전에 당신의 영광을 풀어놓으실 것입니다. 그리고 에스겔 38장 12절에 ‘... 지금 사람이 거처하는 땅과 열국 중에서 모여서 짐승과 재물을 얻고 세상 중앙에 거하는 백성을 치고자 할 때에’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중심을 예루샬라임으로 두셨습니다. 그 이유는 전 세계적인 정렬을 예루살렘을 향하게 하며, 바른 질서를 세우게 하십니다.
(2) 슥 14:16 예루살렘을 치러 왔던 이방 나라들 중에 남은 자가 해마다 올라와서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경배하며 초막절을 지킬 것이라 17. 땅에 있는 족속들 중에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경배하러 예루살렘에 올라오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비를 내리지 아니하실 것인즉
예슈아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시고 난 이후에도 해마다 예루샬라임 성전으로 올라와서 초막절을 지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 세계의 열방들이 다 모이는 절기가 초막절 (만민절)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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