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랑길 94구간(남동체육관~선학역, 2023년 12월 29일) 걷기
걷기에 나서는 날이면 몸과 마음이 괜스레 바빠진다. 2024년 계획으로 우선 걷기다. 해파랑길 50구간, 남파랑길 90구간, 서해랑길 103구간, 평화의길 33구간이다. 도합 4,500km다. 내륙 및 섬의 길도 포함하면, 몇만 킬로미터가 될지 알 수 없다. 걸을 생각에 흥분은 자연스럽다. 틈틈이 짬을 내서 걸어야 하는데 얼마나 걸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미치기도 한다. 흥분은 마음을 바쁘게 한다. 두 번째는 226개 시군구 탐방이다. 크지 않은 대한민국에 내가 안 가본 곳이 너무 많다. 2022년 작년에 부산, 진주를 처음 가봤다. 올해 11월에 경남 김해를 가봤다. 다들 놀란다. 스치는 것 말고 제대로 가보는 일정이다. 1박 2일 또는 2박 3일 일정이다. 사전에 찾아갈 곳과 맛집 등 동선을 최대한 정리해서 잡아야 한다. 지금 걷기는 2024년 걷기에 몸풀기이자 일정에 도움을 주는 장면으로 작용한다.
송내역에 도착했다. 지난 27일은 도착점이었으나 오늘은 시작하는 역에 해당한다. 송내역 남부에서 99번 급행버스를 타고 남동체육관에 내렸다. 구간마다 이정표 게시판이 있다. 두루누비 바코드를 찍고 따라 걷기 앱을 작동했다. 코리아둘레길을 관리하는 사이트로 두루누비가 있다. 두루누비 앱을 작동하면 ‘경로에서 이탈했다, 노선을 확인해 달라. 필수 코스를 통과했다.’ 등 말이 나온다. 경로를 이탈하면 다시금 되돌아가야 한다. 바코드를 찍어서 해당 구간 걷기를 인증할 수도 있다.
94구간을 시작하는 남동체육관에서 40분 정도는 시골길 정취가 나는 길이다. 물론 멀리 크고 높은 아파트가 보인다. 코리아둘레길은 대부분 지역의 길과 겹친다. 그런 면에서 걸어야만 하는 길은 온통 눈에 드는 쓰레기로 아쉬웠다. 현장보다는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이 많은 모습일 수도 있고, 신경 쓰고 싶은 마음이 없어서 일 것이다. 그 길을 걷는 사람으로 하여금 인상 쓰게 만드는 장면이다.
시골 느낌이 끝나는 도림초등학교에서 오봉산, 듬배산을 걷는 길은 낮지만 산길이다. 오봉산은 봉이 다섯 개가 있어서 붙은 이름이다. 100미터 조금 넘는 낮은 산이다. 녹지 않은 눈이 겨울을 느끼게 했다. 젊은 날에 눈은 놀이였지만 제법 나이가 든 지금은 조심조심 또 조심이다. 후배의 삶과 인생이 자꾸만 뇌리를 스치고 있다. 인생은 지가 짊어질 몫만큼이다. 착하게 살기가 어디 쉬운가. 훌륭한 영웅이나 위인처럼 살고 싶다고 살아지는가. 내가 처한 상황과 조건에 대해 직시하지 못하면 그 결과는 결국 자신도 깊은 늪에 빠지고 말 뿐이다. 감당하지 못할 어쭙잖은 도덕과 종교의 선함은 한 번뿐인 인생에 큰 패배감의 귀결에 지나지 않는다. 각자 살아가야 할 인생의 몫이 있다. 그 몫은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이 짊어져야 한다. 개인의 이런 한계를 극복하자고 운동했다. ‘세상을 바꾸자’는 운동은 개인의 몫이 구조와 제도에 크게 놓여 있음을 확인하는 실천이고 투쟁이다.
2023년은 나에게 새삼 의미가 보태졌다. 인간과 짐승의 차이는 죽을 권리에 있다는 기조에 죽음을 정리할 수 있었던 해가 되었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의견은 다양할 수 있다. 광주 518부터 나 어리고 젊은 날 너무도 많은 목숨이 죽었다. 그렇게 알게 된 전태일과 통혁당, 남민전 등 숱한 죽음과 고문에 나는 놓여 있다.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난다. 그 수많은 목숨을 담보로 나는 덤의 인생을 살고 있다. 내가 죽었어야, 죽을 수 있는 자리에 그 죽음들이 있었다. 생각할수록 현실은 부끄럽고 한스럽다. 나는 그런 시기를 지나 나는 살아 있다. 죽음은 내가 선택해야 한다. 늙어가는 조건에서 내 한 몸 건사하지 못하는 장면이 오면 나는 적정한 때에 죽음의 장면을 맞기로 했다. ‘존엄사, 안락사’ 등 어떤 이름이든 간에 60세가 넘으면 죽을 권리가 보장되는 사회와 국가이기를 바란다.
오봉산, 듬배산을 지나면서 인천남동공단을 걸었다. 새로운 이름으로 남동인더스파크라고 한다. 남동인더스파크역도 있다. 한글을 창제한 세종도 있지만 이 한글을 민족의 얼과 정신으로 지키고 만들어 온 셀 수 없는 목숨이 있다. 조선어학회 사건은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그런데도 대한민국의 정부와 지방정부는 사대주의, 매국노 정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매국노 세상이 다시금 도래하기를 바라는지도 모를 일이다.
30년 전후의 세월이 흘렀다. 나는 안산 반월공단과 시화공단을 빨빨거리며 돌아다녔다. CT100 오토바이는 훌륭한 공장 방문 수단이었다. 공단은 해방 세상을 향한 노동자, 노동조합의 지위를 가졌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는데도 나는 내 아이들이 노동자로서 노동조합, 노동해방의 일꾼이 되기를 바랐다. 세상의 변화를 좇아가지 못하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놓여 있었다.
승기천을 걸었다. 날씨가 우중충하다. 다리도 조금씩 지치는 느낌이다. ‘모든 걸 놓고 저런 자유를 만끽하고 싶다’ 또 ‘복잡한 생각이 없으니 너는 얼마나 좋냐?’ 하는 친구의 소리다. 세상이 어디 쉬운가. 세상에 정답이 이거다 하고 내놓기가 쉽지 않다. 결국은 각자의 사상과 철학이다. 인생관이고 세계관이다. 왜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는 어머니, 아버지가 가난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 속에서 나는 사회 구조와 제도의 부조리하고 불평등한 체제에 맞서 싸우기로 작정했다. 돈과 권력(자리)을 탐하는 것은 세상을 바꾸자고 하는 운동과 거리가 멀다. 한동훈 비대위에 이름을 올린 민경우 같은 종자에게 기대할 수 있는 것은 김문수의 더한 모습일 것이다. 수십 년의 세월 속에, 덤의 인생을 사는 시간에 나는 여유롭고 느긋할 뿐이다. 자식으로서, 남편으로서, 애비로서 부족함뿐이지만 어쩔 수 없는 내 인생의 한계다. 함께 잘 사는 평등과 해방은 진행형이고 필요하다면 언제든 투쟁할 수 있는 준비가 전부다. 적들에 맞서 고문과 죽음을 담보해야 만들어지는 알량한 인생이다. 돈과 자리(권력)에 자유로워질 때 주어지는 인생이다.
선학역 3번 출구 앞이다. 일주일에 세 번을 걸었다. 다리가 아프다. 퇴근 시간이 아닌데도 서울을 향하는 전철에는 사람이 많다. 머릿속에서는 서울공화국이 망해야 대한민국이 산다고 앵앵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