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대릉원과 천마총의 상관관계?
한 번이라도 다녀오신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천마총은 대릉원 입장권(성인 3천 원)에 포함됩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대릉원 입장료 자체는 무료인데 무덤(들) 중에 내부 관람이 가능한 천마총에 들어간다고 하면 3천 원을 내는 것이지요. 천마총은 대릉원의 여러 무덤 중 유일하게 발굴조사 후 내부를 신라왕릉의 구조를 설명하는 전시관의 형태로 열려있습니다.
역사에 관심이 많은 경우가 아닌 일반인들에게는 거대한 언덕들만 있는 공원처럼 보이는 대릉원 관람의 핵심이 천마총 내부인 셈입니다. 일단 유료니까요. 단 천마총 입구가 잘 안 보이는 뒤쪽 담벼락 쪽에 있어서 문제이기는 합니다. 대충 보고 지나가는 사람은 그냥 지나쳐버릴 수도 있으니까요.
② 천마총·천마도라는 이름이 정말 맞아? Ⅰ
천마총이란 이름은 발굴 당시 출토된 천마도 그림 때문에 지었습니다. 그런데, 이를 두고 지금까지 논란이 다소 있지요. 심지어는 어처구니없는 상황도 발생했습니다. 이 고분을 천마총이라 명명할 때, 신라왕의 무덤에 말 이름을 붙인다고 경주 김씨 문중에서 국회에 이름 변경 청원까지 낸 사건도 있었지요.
참고로 경주 김씨 문중이 바꾸기를 원했던 이름은 ‘천마도 왕릉’이었다고 합니다. 결국, 이 사건은 학계에서 문헌 내용상이나 발굴조사의 결과로 고분의 주인이 왕임을 확신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견해에 따랐지요. 간단히 말해 그대로 천마총이란 이름을 유지하기로 한 것입니다. 경우가 다소 다르지만 고구려의 장군총처럼 된 것이지요.
경주 김씨 문중 문제와는 별개로 천마도 그림에 그려진 동물이 천마, 즉 말(馬)이 맞는지도 논란이 되었습니다. 서기 2009년 9월 적외선 촬영 결과 천마의 머리에 육안으로는 잘 보이지 않던 기린의 특징인 뿔이 등장했지요. 서기 2006년에 기린 설을 일축하고 천마라고 주장했던 경북대 문경현 명예교수의 견해에 반박하는 자료가 나온 셈입니다.
그 전에 대구가톨릭대학교 박사학위 논문인 기린 도상 연구에서 천마의 뿔에 주목해 사실 기린이 아니냐는 설이 제기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당시에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가 추후에 밝혀졌던 것이었지요. 그래서 천마도에 그려진 서수(瑞獸)는 천마가 아닌 기린이라는 주장이 나왔습니다. 무덤 이름도 기린총으로 바꿔야 한다든가 하는 의견이 제시되었지요.
서수는 기린 등의 상서로운 즉 복되고 길한 일이 일어날 조짐이 있는 짐승을 말합니다. 이에 대한 근거는 「연합뉴스」, 2009.09.24.일자 기사와 「헤럴드경제」, 2009.09.28.일자 기사입니다. 여하튼 기린이 고대에는 봉황이나 용과 마찬가지로 제왕의 상징이었다는 점에서 천마총보다는 상대적으로 격이 높지요.
서기 2014년 보존 처리와 복원 과정을 거친 새로운 천마도 장니 2점이 추가로 공개되었습니다. 여기서 장니(障泥) 즉 말다래는 말을 탄 사람의 옷에 흙이 튀지 아니하도록 가죽 같은 것을 말의 안장 양쪽에 늘어뜨려 놓은 기구를 말하지요. 천마도는 흔히 벽화로 오해하기 쉽지만, 엄연히 장니 즉 말다래에 그려진 그림입니다.
③ 벽화가 없었던 신라
정식명칭 ‘경주 천마총 장니 천마도’는 경주시 천마총에서 발견된 천마도 장니로, 국보 제207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신라는 고구려나 백제와 달리 고분에 벽화를 그리는 문화가 없었지요. 그래서 천마도는 남북국 시대 남국 신라 경덕왕 시기의 대방광불화엄경변상도와 함께 지금까지 남은 몇 안 되는 신라의 회화 즉 그림입니다.
④ 천마총·천마도라는 이름이 정말 맞아? Ⅱ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적외선 촬영 이전의 천마도는 육안으로는 색이 바래 거의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후에 보니 천마(?)로 추정되던 말의 머리에 날카로운 뿔이 2개 달린 것을 볼 수 있었지요. 이는 중앙아시아의 파지릭 문화에서도 나타나는 것이라 시대 차이에도 불구하고 연관성을 찾기도 합니다. 파지릭 문화는 대략 기원전 6세기~3세기 정도로 보는 편이고요.
파지릭 문화 역시 돌무지덧널무덤이라는 무덤 양식으로 신라의 무덤 양식과 똑같아서 고고학자들이 연관관계를 연구 중인 주제입니다. 실제로 말에게는 뿔이 없기 때문에, 이 뿔에 주목해서 그림 속 동물이 말이 아니라 영물인 기린으로 추정하기도 하지요. 하지만 여전히 천마라고 주장하는 측이 우세하기 때문에 천마도와 천마총이란 이름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천마 지지자의 주장은 천마도 주변에는 말 안장, 발안장 등 여러 실제 말과 관련된 용품이 나왔기 때문에 천마도는 기린이 아니라 말임이 확실하다는 것입니다. 또한 천마도가 말안장 장니에 그린 그림이라는 점도 '말'을 그린 그림임을 강하게 시사하는 요소라 하지요. 그러나 『조선왕조실록』, 특히 『세종실록』을 보자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세종실록』에는 세종 22년(서기 1440년) '동궁의 말다래에 기린을 그리라.'고 명령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로 볼 때 비록 시대는 다르지만, 말다래에 기린을 그리는 역사적 사례가 있었다는 반론이 제기되지요. 한편 일각에서는 천마도의 서수가 용마(龍馬)라는 설도 있습니다. 용마는 용의 머리에 말의 몸을 하고 있다는 신령스러운 전설상의 짐승이지요.
⑤ 천마총의 주인은 소지 마립간? 지증왕?
사실 여기에 대해서는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논란이 있습니다. 심지어 신라사의 권위자인 주보돈 경북대 명예교수는 ‘천마총 주인이 국왕인지 아닌지조차 확정 짓기 곤란하다.’는 말까지 하고 있지요. 소지 마립간은 공주 기행 때의 주인공인 백제 무령왕의 전임자였던 동성왕과 제라동맹에 힘썼던 인물이기도 합니다.
천마총이 언제 만들어졌는지는 목관편(木棺片)의 방사성탄소측정(원자력연구소 검사) 연대가 서기 340년±70년이므로 축조 연대는 서기 270년∼410년 사이에 들어갑니다. 이 연대는 다소 이른 감이 있는데, 그것은 아마도 목관재료 자체의 연대 때문이 아닌가 여겨지고요. 발굴보고서에서는 소지 마립간(炤知麻立干)과 지증왕을 이 옛 무덤의 주인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다음 글에서 계속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