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에의 길
영감(靈感)의 출현
물질에는 에너지가 동거하고 있다.
에너지와 질량의 존재를 알았다.
육체와 의식의 관계처럼 물질과 에너지의 관련이 나에게 이해되어 갔다.
이무렵부터, 나의 영감(靈感)은 강해져서,
제삼자에 대한 예언은 백발백중처럼 되었다.
" 왜 영감(靈感)이라고 하는 것이 존재하는 것일까."
하고 오히려 의문에 의문을 더해갔다.
1950년경의 나는,
전기(電氣)와 자기(磁氣)에 의한 상호 감응과 자기(自己) 유도 작용이 어째서 일어나는가.
트랜스의 1차측과 2차 측의 관계 등의 전기적 변화에 대해서 탐구하고 있었다.
전기의 정체에 대해서는, 그저 수학적으로 푸는 것만으로는
" 왜 " 라는 의문은 좀처럼 풀리지 않는다.
법칙에 따라 각 회로의 전기적 현상의 결과는 알았어도,
법칙은, 전기 그 자체의 근본을 해명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의문은 깊어 갔다.
나는 좋은 환경속에서 힘들지 않게 계속 생명현상의 탐구에 몰두했다.
어디까지나 종래의 종교 관계를 구하는 것 없이, 그러한 서적을 읽지도 않고,
어디까지나 백지의 상태에서, 자연과학을 중심으로, 독자적인 연구를 거듭했다.
이 무렵부터 친한 친구로부터 장래 문제 등을 상담받으면,
한 장의 종이에 그 대답이 똑똑하게 나타나도록 되었다.
하지만 나 자신은, 이러한 현상에 더욱더 큰 의문이 쌓여 가기만 했다.
나의 인생은 어릴때,
나의 장래를 예언한 행각승의 말씀대로 진행되어 갔다.
사업 관계의 일이며, 추궁을 거듭하고 있는
" 또 한 사람의 나"
" 또 한 사람의 자기 자신"
에 관해서도, 그저 막연한 생활 가운데에서 풀리는 것이 아니라,
노력, 실천, 그러한 현실 생활 속에서의 활동 이외에는
해결될 길이 없다는 것을 나는 깨달았다.
잡지나 텔레비전 등에서, 여러 가지 신비스러운 현상을 발표하거나 방영하고 있지만,
일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 자신도 '불가사의한 일'이라고만 생각할 뿐,
그 원인과 결과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해답을 내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물론 나 자신의 영적 현상이나 예언에 대해서도 " 왜 "라는 질문에는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종교적 환경에서 많은 여러 가지로 공부하고 있는데,
그들은 과연, 그 신리에 대해서 이해하고 있을까.
나는 늘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이때, 나는 다른 종교에의 편력도 하고 있었다.
자주 놀러 간 미다(三田)의 스님과 종교적인 대화를 나누어 보았는데,
" 전생 윤회 등이 책에 씌어 있지만,
그것은 인간 번뇌를 없애기 위한 방편이다."
라는 대답이었다.
" 인간은 죽으면 모든 것이 끝장이다."
라는 말도 기억에 남아 있다.
또한 호슈의 관페중사의 신관(神官)은
" 일본은 신국이며, 야오요로즈(八百萬)의 신들이 수호하고 있다.
석가도 예수도 모세도 일본국을 방문했다는 기록이,
고문헌에 남아 있다."
라고 아주 사실인 것처럼 늘어놓는 것이었다.
미다(三田)의 스님은 단골 신도만을 상대하는 종교 사업가이며,
독경해 주는 것이 장사이고, 스님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 영적 현상이 일어날 리가 없다.
현대 과학의 시대에, 그런 엉터리 같은 일은 없어."
하고 자기야말로 과학적인 문화인이라고 자부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 사람이 불교의 근본정신을 알고 있었을까.
물론 나의 연구 문제에 대해서도
" 현대 사회에 통하지 않는 꿈 이야기이다."
하고 일소에 부쳤던 일을 나는 기억한다.
호슈의 신관도, 일본만이 신국이며,
신(神)은 일본이 중심이 되어 세계를 지배하는 듯이 착각을 하고 있었으며,
나의 의문에 대해서도
" 당신의 뇌세포가 이상해진 것이 아닌가."
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 신관의 가정을 살펴보면,
화합하지 않고, 가정은 복잡하고, 부부는 별거,
도저히 신(神)을 모시는 사람의 생활 태도라고는 볼 수 없을 정도였다.
신을 모시는 사람이 어째서, 가정의 조화조차 이루지 못하는가,
나는 의심스러웠다.
신은 전지전능하며 자비와 사랑의 당체이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 신관은 국수주의자로서,
일본 이외에는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정하고 있었다.
나는 이런 사람을 믿을 수 없다.
자기 보존의 본능, 사상에 발목 잡혀 있는 신관을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또 어느 해 4 월,
난생처음으로 종교 단체 방문차 나스로 갔다.
친구의 소개이다.
봄이라고는 하나 나스 고지의 아침은 추웠다.
나무의 어린잎들은 이슬을 머금고 싱그러웠다. 이따금씩 뻐꾸기가 울었다.
나는 친구와 한적한 산길을 걸어, 산 중턱에 있는 교단 본부의 붉은 문을 통과했다.
나의 얼굴을 간질이는 어린 나뭇잎에도 햇빛은 반짝이고 있었으며,
나는 그것을 신의 빛처럼 느꼈다.
마음은 편안해졌다. 본부에 명함을 전달하니 우리는 따뜻한 손님 대접을 받았다.
본당에는 용신이 모셔져 있고,
그날은 축제일이라 마을에서 많은 신자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나는 여기서도 실망을 맛보았다.
시주금에 관심이 집중되는 교조의 눈빛과 마음을 보았기 때문이다.
연간을 통해서 몇 안 되는 축제에서,
각 지방의 지부 책임자들이 시주금을 보고하고 있는데,
금액에 따라서 교조의 태도가 달라지는 것이다.
" 시주는 평소의 감사의 표시이다.
또 이익을 올리기 위해서 바치는 것.
적은 시주로서는 용신님은 기뻐하지 않으신다. 당신은 신심이 부족하다."
교조는 시주가 적은 것에 화를 내고 있었다.
그런데도 신도들은 고마운 듯이 눈물을 흘리고 꾸중을 듣고 있었다.
자비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교조의 옆에 앉아있기가 민망하였다. 친구가 말했다.
" 이 살아 있는 신은, 언제나 보시 때문에,
축제 때는 흥분한다는 거야."
청정한 바깥 풍경과는 달리,
본전 속의 교조의 아귀도(餓鬼道) 모습에 나는 기가 찼다.
2박 3일 동안 친구의 안내를 받은 교단 견학의 이것이 실정이었다.
이런 것이 과연 종교라고 할 수 있을까.
아침 여섯 시부터 종교행사가 시작된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 독경의 합창소리도 대북의 소리도,
이상한 괴물에 빙의된 비애의 소리로만 들렸다.
나는 이미, 본전 안에, 등이 희고 배가 분홍빛인 큰 뱀과. 등이 검은 큰 뱀을,
나의 영시(靈視)로 확실하게 보고 있었던 것이다.
교조에게 그것을 말하니
" 이곳의 신이 용신이다."
하고 오히려 뽐내며 설명하는 것이었다.
본전 옆에 있는 사당에는, 이나리대명신을 모시고 있었다.
여기에는 흰 여우, 다갈색 여우, 큰 여우, 새끼 여우들이 영시(靈視)로 많이 보였다.
이곳의 신도들은 거의가 다 이러한 동물령에 빙의되어 있다.
" 왜 인간이 동물령을 받드는 것일까."
나는 동물에 에워싸인, 신이라고 자칭하는 자를 믿을 수 없었다.
동물령이기 때문에 물질 경제에 집착을 가지고 약육강식 하는,
처참한 모습을 나는 볼 수가 있었다.
정도를 잃고 헤매는 사람들은 동물과 동류가 되었기 때문에 자기 판단을 할 수 없는,
불쌍한 신도가 되어 있었다.
아무것도 신앙하지 않고 있는 나에게는,
이러한 종교를 광신. 맹신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다만 불가사의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는 창가학회의 젊은 회원들이 섞여서,
신도들을 괴롭히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동물령에게 기도드리고 있는 맹신자에게는,
젊은 학회원들과 논쟁을 전개할 만한 능력자는 없었다.
나는 이 교단을 견학하고, 신도(神道)와 불교(佛敎)가 일체(神佛一體)인 것을 보고,
내가 어린 시절부터 계속 생각해 온 종교와 같은 것이라는 점이 납득되는 것이었다.
나는 신불 일체(神佛一體)의 신리를 깨달은 것으로 만족하여야만 했다.
이 교단의 신도들로부터는 아편의 공포증 같은 것을 느꼈을 따름이었다.
마음의 발견 (신리 편) - 다카하시 신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