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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다카하시신지님의실천!팔정도! 원문보기 글쓴이: 오로지팔정도
마음의 편력 – 혼과 물질 사이를
감촉이 좋은 사쿠의 냉기는 멀어지고, 다시 공기 중의 습도는 높아지고 있었다.
도회지이다......
사람들의 열기와 냄새로 후덥지근한 도쿄에, 엄격한 인생 수행의 장으로 다시 돌아 온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어떤 환경에서도 항상 마음의 본질이 바뀌어서는 안 된다.
희망과 욕망은 절대로 다른 것이다.
희망은 조화의 길로 연결되지만,
욕망은 집착을 만들어 부조화의 길로 통하기 때문이며
마침내 스스로 만족하는 것을 잊고 불평 불만의 인생을 보내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현재의 환경에서, 단호하고 올바르게 대처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희망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최대의 지혜와 노력과 용기를 필요로 한다.
나는 작은 회사일지라도 내 나름대로 살아 가는 양식을 얻기 위해
플라스틱, 프레스(Press), 일렉트로닉스 관계의 일을 하고 있으며,
그 속에서 살아 있는 기쁨과 창작의 즐거움을 느끼고 있다.
몸은 어느 정도의 제약이 있어도 바쁜 일상생활 속에서 마음은 항상 자유자재,
고통의 원인을 만들지 않기 때문에 평화롭게 살고 있다.
이것도 둥근 마음을 지키기 위한 내 나름대로의 수행법인 것이다.
사업을 대기업으로 키우거나 지위나 명예를 추구하는 마음 없이
분수를 알고 생활하고 있기 때문에 극단적인 사고나 행동은 항상 삼가하고 있다.
인간은 욕망의 포로가 되었을 때 이미 고통이라고 하는 큰 짐을 지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수많은 사람들의 행복과 직결되는 것이라면
최선의 희생과 실천에 의해 사람은 하루하루 후회 없이 보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개개인 마음의 조화가 사회 전체의 대조화에 연결되기 때문이다.
내가 인생에 대한 올바른 삶의 방식이라고 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1968년 7월에 커다란 영적 현상이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또 한 사람의 나”를 추구하고 있었던 나는,
위대한 인생 항로의 목적과 사명을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들의 마음 속에 기록되어 있는 전생윤회의 과정--
어디에서 태어나, 무엇을 하고, 어디에서 죽었는가와
여러 나라들을 환생하여 현재에 있다고 하는--
놀라울 뿐인 마음의 테이프레코더를 틀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제 나 혼자만의 현상이 아니며,
백수십 명이라고 하는 사람들의 마음의 창이 열려,
그 실증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현세에서 배웠을 리 없는 고대 중국어나 고대 이집트어가, 우리들의 입을 통하여 나온 것이다.
자연히 기억하고 있었던 당시의 일을 말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시대의 일이나 인도의 고타마 싯타르타 시대의 일이,
그리스도교도 불교도 공부한 적 없는 어른이나 아이들이 말하여 실증되고 있는 것이다.
믿을 수 없는 듯한 현상이, 사실이,
지금 일본에서, 이집트에서, 브라질에서, 아메리카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 사람의 학문이나 지위나 직업에 관계없는 것이다.
본래는, 모든 이에게 잠재되어, 기억되어 있는 것인데,
스스로의 마음과 행위가 부조화롭기 때문에,
구름으로 뒤덮여 나오지 않는 것이다.
그 마음으로는 신과 같은 지혜에 도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은 신의 자식이며 불성(佛性). 신성(神性)을 갖고 있다.
그 끈을 풀 수 있는 것은, 마음의 천국의 지배자인 자기자신이다.
하지만 이 문제는 나중에 서술하고자 한다.
다시 한번, 현재의 경지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을 기록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아사쿠사의 한쪽귀퉁이, 팔기(八起) 빌딩의 어느 방에서
나는 전후(戰後)의 내 생활과 마음의 본질을, 회상한다ㅡㅡ.
1946년, 인생의 대 전환이, 나에게 찾아왔다.
마차를 끄는 말처럼 충군 애국의 외길만을 달려온 나도,
죽음의 환경으로부터 해방되어 자유가 되었다.
누구나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조국 일본으로 돌아와 재출발을 하였다.
소년 시절부터 자라온 환경 탓도 있어서 나에게 패전의 충격은 대단히 컸었다.
조국 일본과 불패의 일본 정신을 배워 온 우리들이, 처음으로 체험하는 인생 항로의 충격이었다.
이 무렵부터 내게는 신불(神佛)에의 의문이, 다시금 마음 속에 크게 퍼져가고 있었다.
<전승(戰勝)기원과 전쟁에서의 행운이 지속되길,
전 국민이 한 몸이 되어 신사에 기원하였던 신의 나라 일본이 왜 패했던 것일까>
신과 같은 존재가 있었던 것일까?ㅡㅡ라고.
대도시는 볼 것도 없이 파괴되고,
게다가 원자폭탄에 의해 히로시마나 나가사키는 한 순간에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육체를 잃어버린 커다란 희생으로 패전을 맞아,
자립할 수 없을 정도의 재기 불능상태가 되었다.
신이 진실로 있다면, 이와 같은 결과는 초래하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신이 있다고 해도, 포기하고 말았을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왜 포기하였던 것일까?
그것은 국가 의식의 본질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 원인은, 역사를 만들어 낸 일본인의 과거에 있었던 것은 아닐까?
토쿠가와 막부가 대정봉환(大政奉還)하여 엄중한 쇄국에서 눈 뜬 일본은,
그 지도자에 의해, 그 지혜에 의해 신의 나라 일본이 만들어져 갔다.
신불을 분리하여, 천황을 인간의 모습을 하고 세상에 나온 신으로서 숭배시켜,
국가의식의 고양을 꾀하였던 것이다.
그런 일본인의 마음은 외국으로 달려,
청일전쟁, 러일전쟁으로 부조화한 투쟁에의 길을 걸어간다.
건군(建軍)사상은 사람들의 사상과 자유를 속박하여,
군벌이 차례로 권력을 갖도록 바뀌어 간 것이다.
그리하여 코우모토대령 일파에 의한 장작림 폭발사건으로 일어난 만주사변,
그리고 지나사변과 대동아전쟁으로 확대되어 간 것이었다.
신의 이름을 이용한 무모한 지도자들은,
마침내 스스로의 목을 졸라버리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던 것이다.
커다란 대중의 희생을 동반해서 말이다.
진실로 사상이라는 것은 무서운 것이다.
잘못된 사상은, 다수의 사람을 미치게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올바른 기준을 알 수 없게 되어버린 사상의 결말이 전쟁이라고 하는 것이다.
신의 존재가 있다고 하면,
지구 상의 모든 인류에게, 그 은혜는 평등해야 했을 것이 아닌가?
신이 자비와 사랑으로 가득찬 것이라면,
우리들을 키워준 양친과 같이, 누가 자식들의 불행을 바랄 것인가?
태양의 열과 빛은, 만생 만물 모두에게 평등하다.
일본에만 열이나 빛을 주고 있을 리 없다.
그리고 대자연은 자우(慈雨)를 뿌려, 동물이랑 식물의 육성에 비료를 주고
또 빛은 식물의 화학공장에게 광합성의 에너지를 주어,
전분이랑 단백질이랑 지방을 만들게 하고있다.
동물도 식물도 광물도, 마찬가지로 상호 관계를 갖고 생물의 환경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태양을 비롯한 대자연의 환경이야말로,
신의 자비와 사랑의 표현이 아닐까?
우상(偶像)신이랑 만다라의 신(神)은,
모두 인간의 지혜가 만들어 낸 것으로
자비도 사랑도 전혀 없는 것이다.
그것은 수많은 종교가들이 날조한 신으로서,
대자연을 지배하고 있는 신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대우주체를 지배하고 있는, 물질의 차원을 넘은 의식이야말로,
신(神)이다.
즉, 지구도, 그 대우주체의 작은 세포에 불과한 소천체(小天體)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대우주체가 그 자체로 신의 몸이라면 지구도 또한 대신전의 하나이다.
그리고 우리들은 신의 자식으로서, 이 신체(神體)의 하나의 세포로서,
사람들의 마음과 마음을 조화시켜,
지상에 불국토. 유토피아의 실현을 지향함과 동시에
혹독한 눈먼 인생의 수행을 통해서,
풍요로운 신의 마음을 완성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인류민족의 피부 색은, 그 태어난 기후나 풍토에 의해,
이 현상계에 인류가 나왔을 때에 신의 의지에 의해, 분류된 것이다.
이와 같이 인간은 모두 평등하며, 인간이 만들어 낸 경제력이나 지위 명예가,
그 사람의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육체 선조에 의해 이어받은 우리들의 육체는 본능으로서 종족 보존,
즉 육체주(肉體舟) 보존을 위해 인간에게 주어진 것이다.
육체주(肉體舟)는, 혼, 즉 의식(마음의 발견. 과학편 참조)이 타는 배이며,
결국에는 누구든지 이 현상계에 두고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들의 혼,
즉 의식은 결국에는 신과 같은 세계,
차원이 다른 세계로 돌아가게 되어 있는 것이다.
차원이 다른 세계이기 때문에 우리들은 볼 수 없지만
마음의 창이 열려있는 자들은, 그것을 자유롭게 꿰뚫어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선조 전래의 관습이라고 하는 것이 생활 속에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에
우리들은 구래의 누습(악습)을 깰 수 없으며, 어떠한 의문도 갖지 않고 믿어 버리는 것이다.
즉, 전쟁에 관해서는, 신은 쌍방 처벌을 내린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작은 지구 속에서 신의 자식인 인류가 맹목의 인생을 체험하며 싸우고 있는 모습을 볼 때,
신(神)은, 부모가 자식의 싸움을 보고 있는 것과 같이,
슬퍼서 그냥 눈물을 흘리며 지켜보고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인간이 스스로의 우매함을 깨달을 때까지 지켜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감정만이 커다랗게 부풀어 오른 사람들이, 과연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을까?
감정이 수그러들고, 타인과의 조화를 이룰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패전을 맞은 수많은 병사들은 고향 산하의 환영을 받으며 돌아왔으며,
사람들은 파괴된 환경을 재건하기 위해 일어섰다.
미군을 비롯한 연합군의 지배하에서, 새로운 일본이 재건되어 갔다.
나 자신도, 앞만 보고 마차를 끄는 말과 같은 생활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눈으로 사회를 보게 되었다.
그리고 조국 일본의 재건을 위해 일할 것을 결의하고 일어선 것이었다.
민간인으로 돌아올 때 받은 2,300엔과 아버지에게서 받은 소 한 마리가,
시골에서 갓 상경한 내 전 재산이었다.
도회라기보다 폐허 속에서, 격심한 식량난을 겪는 생활이 내게도 시작되었다.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마음은 황폐했고,
부모를 잃은 고아들의 가련한 모습이나, 많은 부랑자 무리의 수는 끝이 없었다.
나는 그런 상황 속에서 고학을 하였다.
한번 더 공부를 하려고 화학책이나 물리학책을 풀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극미의 세계에서 극대의 우주로 물질적인 연구가 진행되어 갔다.
대학입시 검정시험도 혼란기였기 때문인지, 공부를 게을리한 나였지만 무사히 통과하였다.
나는 무엇이든 공부하고 싶다는 의욕으로 이과계의 학문에 집중해갔다.
그것이 생활에 직결되었기 때문이기도 했으며,
기술 계통은, 군대 시절에 배웠기 때문에 숙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의 나”라고 하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지를,
특히 물질을 주체로 하여 추구하였다.
그것은 즐거움의 하나이기도 하였다.
해초로 만든 면류나 감자, 고구마류가 주식이었다.
비누를 만들어 팔기도 하였고 라디오나 전축을 혼자서 조립하여 팔아 생활하였다.
그러나 종교 서적을 읽으려고 하는 마음은 없었고
신비의 세계에 관해서는, 항상 탐구를 계속하며
눈으로 보거나 듣거나 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도 큰 즐거움이었다.
선정(禪定)을 하며, 자주 명상에 잠겨 보았지만
마음의 일시적인 안정은 가능하여도, 생활 속에 나타나는 제 현상에 현혹되어
항상 도로아미타불이었다.
어떨 때는 신불을 부정하는 동료에게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고
노여운 마음을 억누를 수 없어 말다툼을 한 적도 있었다.
혼은 있는 것인가?
유령은 정말로 나오는 것일까?
인간의 생(生)과 사(死), 인생의 목적 그리고 여러 가지 고뇌,
그것에 대한 기도라는 것은 무엇일까?
절 등에서 경문을 올리기도 하는데, 왜 경문등을 독송하는 것일까?
내 의문은 풀리지 않았다.
미쯔다시에 있는 절의 절친한 스님에게 질문해도
<경을 외우면 공덕이 있는 것이다>
라고 하는 애매한 대답밖에 돌아오지 않았다.
<인간은 죽으면 누구나가 부처가 되고 만다.
때문에, 경은 그 부처를 공양하는 언어인 것이다>
라고도 스님은 말하였다. 내가
<저 세상이라고 하는 것은 있습니까>
라고 질문하면
<있을 것도 같고 없을 것도 같고, 누구도 가본적이 없으므로 알 수 없지>
라고, 이것 또한 정말로 요령부득이었다.
<왜 절을 세우는 것입니까>
라고 물었을 때에는
<부처님이 계실 장소가 필요하지.
너도 집이 없으면 살 수 없듯이,
부처님도 계실 장소가 없으면 곤란하시겠지>
라는 정말로 아이들 눈속임에 불과한 설명이었다.
내가 납득할 리가 없었다.
또 친구와 함께 크리스도교회의 문을 두드려, 설교를 들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 설교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구원된다>
라는 말로, 믿지 않으면 구원되지 않는다고 하는,
내게는 납득이 안가는 비합리적인 것이었다.
나는 기성 종교에, 차례로 실망해 갔다.
그리고 또 별도로,
지금의 육체가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것일까?
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죽어 버리면 모두 없어져 버린다.
사후의 세계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라고 말한다.
불교학자나 승려들 사이에서는,
이것을 말하는 것은 금기시되어 있는 것 같다.
현재가 소중하다는 것은 당연하지만, 사후 세계의 존재를 부정하는 근거도 없는 터이다.
나는 생각한다.
물질이라고 하는 것에도, 일을 성취할 수 있는 능력이 공존하고 있다.
즉, 에너지이다.
물질이, 일을 성취할 수 있는 능력으로 바뀌기 위해서는,
압력과 열과의 인연이 없는 한,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일을 이루는 능력은, 우리들의 오관으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물질에는 물질로서의 차원이 있고, 일을 이루는 능력,
즉 에너지는, 완전히 물질하고는 다른 차원의 존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생물은 유기물에 의해 구성되어 있는 세포나 그 집단은, 각각 개성을 갖고 있다.
그리고 동물이나 식물은,
외부의 열과 빛이라고 하는 에너지를 흡수하여 성장을 계속하고 있다.
게다가 본능에 의해 종족은 보존되고, 후세로 이어진다.
동물이나 식물에는, 광물 등의 에너지와는 다른 의식의 존재가 있고,
의식의 차원과 육체가 각각 개성을 갖고 동거하고 있다.
우리들의 육체도, 같은 모습으로, 육체로서 이 세상의 차원에 존재하고,
의식 즉 혼이라고 하는 고차원의 것과 동거하며 성립되어 있다.
우리들의 육체는, 이 때문에 인생 항로의 타는 배라고 말할 수 있다.
배의 선장인 의식, 즉 혼이 떠나 버리면,
육체는 배로서의 의식밖에 없고
스스로의 자유로운 의지는 갖고 있지 않다.
즉 잠자고 있을 때의 상태가 그것이다.
오관도 특별한 외부의 작용이 없는 한,
기억하는 것도 생각하는 것도 사고하는 것도 불가능한 것이다.
만약 뇌세포가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다면
우리들이 잠자고 있을 때에도, 그 능력을 갖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잠들어 버리면,
아무리 콧구멍이 열려 있어도 귓구멍이 열려 있어도, 전혀 기억이 없다.
외부로부터 일정 이상의 작용이 없는 한, 감지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사람의 체질 및 상태에 따라, 수면 시간은 각자 다르지만,
누구나 잠자고 있을 때는, 어떠한 걱정이 있어도 그것을 잊고 있으며,
아픈 부위가 있어도 대부분 그 통증을 잊고 있다.
의식,
즉 선장이 타서, 육체를 지배해야,
비로소 지금까지의 상태가 계속되어 가는 것이다.
이 사실을 생각하면, 육체 이외의 어떤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아무리 만물의 영장, 신의 자식인 인간이라 할지라도
동물이나 식물이나 광물 또는 대자연의 혜택 없이,
육체의 보존은 불가능하다는 이야기이다.
물질의 차원과 에너지의 차원.
육체주(肉體舟))의 차원과 의식 혼(意識魂)의 차원.
이와 같이 우리들의 육체와 의식은 불이일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에너지는 불멸이라는 것은 이미 실증되어 있다.
또한 우리들의 의식도 불멸이라는 것을 누가 부정할 수 있겠는가?
고통도 슬픔도, 실은 육체의 오관을 통해 차원이 다른 의식에 작용하여,
의식의 중심인 마음에 전달되어 가는 것으로,
이 마음이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마음은, 무엇인가의 영향을 받고 있다.
종종 사람들이, 말하는 영감(靈感)등도 그런 류의 하나일 것이다.
그것은 의식의 차원에 살고 있는 자들로부터의 통신을 감지할 수 있는 자들인 것이다.
어떤 일이라도 한 가지 목적을 연구하고 추구하는 과정에서
그 노력에 비례하는 영감적인 현상에 의해 해결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자연 과학이나 이과계의 필요한 학문을 습득하기 위하여 다니는 학교는
또한 항상 마음의 문제를 중심으로, 영적인 문제의 계기를 잡기 위한 학습장이기도 하였다.
그 때문에 학우들로부터
<철학과에나 가는게 좋겠다>
라는 말을 듣거나,
어떤 때는 <변종의 예언자>등으로 불렸다.
하지만 믿거나 말거나 인간의 고뇌나 고통은, 육체적 현상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마음을 정신(精神)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 명칭은, 비슷한 것일 것이다.
정신도, 각각의 사람에 따라 다른 성격이 있으므로
사람에 따라 특징이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일 것이다.
또한 사람에 따라서는, 혼까지 부모가 준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만약 부모가 혼까지 주었다고 하면,
그 개성이 궁리하고 있는 것이나 떠오르는 생각이,
왜 부모와 다른 경우가 많은 것일까?
<부모의 마음 자식은 모른다>
라는 속담이 있듯이,
그런 비근한 예를 보더라도, 혼과 육체는 별개의 것이라는 것은 알 수 있는 것이다.
특히 현대사회는, 부모와 자식간의 단절로 시끄러워지고 있다.
단절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이 사실을 보아도, 마음의 세계는,
육체 차원의 그것과는 다르다는 것은 분명한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이와 같이 탐구해보아도,
“또 한 사람의 자신”에 관해서는,
아직 아무것도 알 수 없었고
그 수수께끼는 여전히 풀 수 없었다.
25세때, 전기 관계의 일을 하기 위하여,
작은 공장을 임대하여, 오륙 명의 종업원과 함께, 생활을 위한 스타트를 끊었다.
말하자면 독립 자영의 첫 걸음이었다.
제조 품목은, 자동 제어장치가 주류였지만
경영이라고 하는 것이 초보자인 내게는 꽤나 어려운 것이었다.
하지만 그 요령을 얻기까지는 그렇게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현대사회에서는, 경제력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다고 하는 필연성이,
다른 지혜를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학교는, 일이 한가할 때 다니고, 사회에서의 체험으로부터, 여러 가지를 흡수하였는데,
신불을 추구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과계열의 사람들과는 좀처럼 대화가 통하지 않았으며
학우들 사이에서는 완전히 이상한 사람 취급을 당했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공부 그 자체가 목적도 아니었고,
취직하여 월급을 받는 것도 목적이 아니었기 때문에
나만의 방법으로 공부하면 되었고, 내게는 그렇게 하는 편이 중요하기도 하였다.
의학도 천문학도 배워 보았지만,
그것도 역시 마음이나 혼의 문제와는 거리가 먼 유물적인 탐구에 불과한 것이었다.
나는 그렇게 인생을 보내고 있었지만,
역시 살아있는 생물체인 청년이라는 점에는 변함 없었다.
이성(異性)에의 동경이 어느새 마음을 점령하고 욕망의 포로가 되어,
그것에 고민하게 된 것이다.
덧없는 것이라고 알고는 있었어도, 역시 마음이 게을렀다.
정말로 인간이라는 것은 불가사의한 것이었다.
어떤 때에는, 나만이 이와 같은 문제로 고민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고 생각하여
학우와 대화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남자는 대부분 같은 고통을 맛보고 있는 듯 하였고,
사랑한다는 것은 괴로운 것이라는 것을 깨닫을 수 있었다.
그것은 독점욕, 질투심, 신뢰의 정도, 자기 상실등이,
고통을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랑이나 자비라고 하는 것은, 주는 것이지만,
보답을 받으려고 생각하는 인간의 욕망에서 고통이 생긴다고 말할 수 있다.
자신에게 좋은 것과 목적 성취만을 위한 사랑은, 역시 위선의 사랑일 것이다.
또한 당시는, 장사를 위해 고객의 기분을 맞추고 사랑의 강매도 많았다.
하지만 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닐뿐더러
이런 사랑은 돈의 종말이 인연의 종말이 될 것이다.
사랑이라는 것은, 보다 광대 무변한 것이다.
인류애, 조국애 등 사랑에는 끝이 없다.
우리들은 사랑이라고 하면 대부분 남녀간의 사랑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잘못일 것이다.
최근 사제애(師第愛)라고 하는 것이 특히 엷어지고 있다.
스승에 대한 존경의 마음이 없다.
사랑은, 마음과 마음의 고리로 연결되어 있어야 하는데,
최근 교육자 중에는 자기방어만이 뛰어난 사람이 많고
시류에 편승하여 변심하는 기회주의자가 많다.
또한 도덕 따위는 필요없다고 하는 학자와
인간성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는 이기적인 사람들도 많다.
그뿐인가, 사회혼란을 지도하고 있는 교수들도 있는데,
그들은 지성만이 발달하여,
감정을 그대로 표출하는 동물적 본능뿐인 인간으로서의 마음을
갖고 있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마침내 스스로의 목을 스스로 조이게 될 것이다.
스승과 제자의 단절, 부모와 자식의 단절,
그들은 마음을 잃고, 그냥 물질적 경제적 판단으로 세상사를 다스리고,
자신의 주의 주장을 위해서는 폭력 혁명마저 실행하려고 하고 있다.
그리고 이 세상은, 그러한 인간을 진보적 인물이라고 하고 있는데, 웃기는 이야기이다.
이러한 인간은 실제로는 소심하고 독선적이며,
다수의 행복이라고 말하면서,
자신의 마음속은 혼란하여 마음의 안식을 갖고 있지 않다.
인간 실격자라고 밖에 말할 수 없는 인간이 많은 것이다.
전후 이십 년,
인간은 점점 문명의 노예가 되어,
스스로의 인생에 대한 위대한 가치를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주기적인 노사 투쟁의 모습, 학문을 도외시하며 파괴 활동에 전념하는 학생들,
정치가의 추한 자기 보존, 일반 가정의 부조화 등
예를 들면 끝이 없는 혼란의 세상ㅡㅡ.
이것은 모두, 인간의 생활의 지혜가 만들어 낸
물질 문명의 노예가 되어버린 것에 원인이 있을 것이다.
혼란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돈, 경제이다.
사람이 만족을 모르고, 감사의 행위를 부정하며, 조화된 환경을 만들 수 있을까?
또한 신이라는 이름아래,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벌을 받는다고 협박하여
마음에 족쇄를 채우고, 피를 빨고 있는 위선자들,
인간의 정도를 가르쳐야 할 종교가가,
죽은 자의 지킴이나 장례식의 집행인으로 전락하여
매일 아침 저녁으로 예불이라고 하는 우상숭배를 하고 있다.
승려라고 하는 이름의 장사꾼은, 이런 생활을 근행이라고 하며
습관적인 행위만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타력 신앙으로 일관된 생활이다.
하지만 과연, 타력 신앙으로 인간은 구원받을 수 있을까?
가령 천식으로 고통 받고 있는 사람의 모습은 정말로 가련하다.
간호를 하는 사람에게도 힘든 일이다.
그리고 발작을 완화시키려고, 마취를 하면 증상을 일시적으로 억누를 수 있으나
고통의 일시적인 도피이다.
근본적인 치료를 하지 않는 한, 이 고통에서 해방될 수는 없다.
즉 해결은,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천식의 원인을 찾아
그 병의 뿌리를 자를 수밖에 없다.
신앙의 길도 마찬가지이다.
스스로의 병고(病苦)나 정신적 고뇌로부터 일시적 도피여서는 안된다.
일체의 고통의 원인을 찾아 그 원인을 제거하지 않는 한,
고뇌는 재발하는 것이다.
신(神)의 자애의 빛은, 만물에게 평등하다.
마치 태양의 빛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마음의 바른 자세와 생활의 자세를 올바르게 하지 않고,
타력에 의해 구원된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대다수의 사람들 중에는, 타력을 연(緣)으로해서,
스스로의 성격이랑 행위를 고쳐,
안심 입명(安心入命)의 경지에 들어가는 자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마음 속에 불안이랑 집착이 있으면,
고통의 씨는 또 다시 싹을 틔워 그 사람을 괴롭히게 된다.
사람들에게 종교의 길을 설파하고 있을 때는,
자기자신에 만족하고 있지만,
일단 가정으로 돌아가 일상생활로 들어가면,
마음과 행위의 차이로 괴로워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특히 기복 신앙의 신흥 종교를 믿고 있는 간부들에게만 많다고는 볼 수 없을 것이다.
현실로 돌아왔을 때도,
설교하고 있을 때도,
항상 변하지 않는 마음과 행위가 중요한 것이 아닐까?
부조화라고 하는 것은, 이미 정도를 실천하고 있다고는 말하기 힘들다.
광신자나 맹신자는, 자기 도피가 이미 도취경(陶醉境)으로 되어 있고,
그것은 올바른 신앙의 모습이 아니다.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한 신앙은
정법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 않으면 안된다.
1954년 12월,
나는 결혼하여 독신 생활과 이별을 고하고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었다.
그리고 그 해, 사업에 실패하여 무일푼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그것이 나에게는 좋은 체험이 되었다.
우리 부부는, 아파트생활을 하고 있었기에
열쇠 하나로 어디라도 갈 수 있는 홀가분한 몸이었고,
이웃 사람들과도 친분이 두터웠다.
이 무렵부터 내게는 불가사의한 현상이 시작되어,
예언은 거의 적중하여,
상담하러 오는 사람이 좁은 아파트 안에 가득 넘쳐나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왜 예언이 적중했는지, 나도 대답할 수 없었다.
그리고 나 자신은 그것을 믿지는 않았으며 사심도 없었다.
지금까지 이십 년 가깝게, 내 생활 속에서 신불의 이야기가 빠진 날은 없었으며
그것은 집념처럼 내 마음 속을 점령하고 있었다.
나는 다시 생활을 위해, 큰 숲에 백 평 남짓한 건물을 짓고,
옛날 단골 거래처의 협력을 얻어 전기 회사를 설립했다.
사업은 순조롭게 성장하여, 카나가와와 나가노에 작지만 생산 공장도 갖게되었다.
경제력 없이는 사람들을 구원할 수 없다고 생각하여, 돈벌이에 전념하였다.
나는 내가 가야 할 길과는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었던 것이다.
때문에 일상의 사고와 행위는 정도에서 크게 멀어져 버렸다.
그것은 내가 욕망의 노예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종업원과의 의사소통, 회사 내부의 혼란,
가정도 혼란의 소용돌이에 빠졌다.
그렇지만 아사쿠사의 빌딩 신축은 시작되었고,
사우나탕과 초음파 온천을 비롯한 사업은 착착 진행되어 갔다.
그리고, 1968년 7월 3일,
마침내 올 것이 왔다.
마음의 발견(현증편) - 다카하시 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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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다카하시신지님의실천!팔정도! 원문보기 글쓴이: 오로지팔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