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를 위한 알기쉬운 신학강좌-3. 기독교의 하나님:삼위일체] ③ 잘못된 하나님 이해들
2013. 3. 21. 17:19
왜곡된 삼위일체론 이단에 쉽게 휩쓸려
여러분은 기독교의 하나님이 유일신이라고 생각하는가? '예'라고 대답하더라도, 아직 그 대답만으로 충분한 것은 아니다. 하나님이 한 분이신 것은 맞지만, 숫자적으로 '하나'라는 뜻은 아니다. 오늘은 삼위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이해들을 보려 한다. 혹시 독자 중에 오늘의 주제가 자신과 상관없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사실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연관이 되는 주제이다. 여러분이 믿고 고백하는 하나님이 잘못된 이해는 아닌지 검토해봐야 할 것이다.
왜곡된 형태들
기독교 역사 초기부터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이해들이 나타났다. 삼위 하나님에 대한 대표적인 왜곡은 세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첫째, 성부, 성자, 성령을 서열이나 등급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얼마 전 주일학교 학생 두 명이 대화하는 것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한 명이 친구에게 물었다. '누가 세상에서 제일 높으니?' 친구가 대답했다. '하나님이지.' 대화는 이어졌다. '그러면 그 다음은?' '그야 예수님이지.' '맞다.'
두 학생은 성부 하나님이 가장 높은 서열이고, 다음으로 예수님과 성령님이 뒤따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은 비단 초등학교 학생들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 신자들 사이에서도 상당히 보편적으로 나타난다. 성부, 성자, 성령에 서열이 있다는 사상을 종속론(subordinationism)이라 한다. 즉 성부 하나님은 영원한 신성이며, 성자와 성령은 열등한 신성이거나 피조물이라는 인식이다.
둘째, 하나님을 숫자적으로 하나(單一神)로 보는 시각이다. 한 분의 신성이 때로는 성부로 나타나고, 때로는 성자나 성령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삼위를 나타내는 성부, 성자, 성령은 호칭에 불과하다고 본다. 예를 들면, 구약에서는 야훼로 나타나고, 신약시대에는 예수님으로 현현했고, 지금은 성령님으로 나타난다는 생각이다. 이런 이해를 양태론(modalism)이라고 부른다.
셋째, 성부, 성자, 성령을 개별적인 신으로 이해한다. 성부, 성자, 성령 모두를 신성으로 인정한다. 하지만 삼위는 각기 독립적인 신이 된다. 각 위는 신으로 찬양을 받지만, 삼위는 분리되어 관계성이 모호하다. 이런 이해를 삼신론(tritheism)이라 부르는데, 결국 다신론의 형태를 가지게 된다.
교회 안에 이런 잘못된 하나님 이해는 예상 외로 많다. 일반 평신도뿐만 아니라, 목회자들에게도 적지 않게 보인다. 특히 한국교회에는 종속론과 양태론이 흔히 나타난다. 종속론과 양태론은 그 자체도 문제이지만, 쉽게 심각한 이단사상으로 발전할 수 있다. 다양한 이단집단에 나타나는 공통된 점이 바로 왜곡된 삼위일체론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단일신론적 변형들
위의 세 가지 왜곡된 삼위일체 외에도 변형된 형태가 역사적으로 끊임없이 나타났다. 그중에서 가장 위협적인 것은 단일신론(單一神論)에서 비롯되는 변형이다. 단일신론은 엄격하게 말하면, 하나님이 삼위가 아니라 한 위격이라는 주장이다. 위에서 언급한 종속론과 양태론도 일종의 단일신론이다. 단일신론이 흔히 나타나는 이유는 하나님은 숫자적으로 '하나'라는 선입견 때문이다. 유일신관을 삼위일체적으로 해석한다면 문제가 없지만, 유일신관을 단일신론으로 해석하면 문제가 된다. 한국교회에 흔히 나타나는 단일신론적 변형을 세 가지 형태로 보려 한다. 이는 삼위일체의 균형이 깨지면서 나타나는 대중적인 현상이다. 아래의 세 가지 형태를 나타내는 명칭은 학술적이라기보다는 필자가 쉽게 표현한 것이다.
첫 번째는 성부-단일신론이다. 성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했고, 모든 구속 사업을 행한다는 생각이다. 구약의 야훼에 대한 강조에서부터 종말의 완성까지 모든 중심에는 '성부'가 있다. 성자와 성령을 언급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매우 위축된다. 기독교의 하나님은 많은 우상들에 비해 '오직 한 분'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이 주장은 강력한 유일신관처럼 보이고, 아주 믿음이 철저한 신관으로 보이지만, 삼위일체와는 거리가 멀다. 이런 형태는 오히려 유대교의 신관에 가깝다.
두 번째는 구속주-단일신론이다. 오직 예수님에게 경건과 충성을 바치는 신앙의 형태에서 나타난다. 이 유형은 대체로 '구원'에 관심을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예수님의 보혈로 죄사함을 받는다는 것을 강조한다. '예수, 예수'를 주문처럼 외우거나, '예수 보혈, 예수 보혈'을 외치며 몰입하기도 한다. 예수님을 강조하는 것 자체를 문제로 보는 것이 아니다. 이 유형에서는 성부와 성령의 역할이 없어진다. 결국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의 관계가 왜곡된다. 이 유형에서 신앙은 '예수 숭배'가 되기 쉽다.
세 번째는 성령-단일신론이다. 여기서는 성령체험과 은사에 관심이 집중된다. 문제는 성령체험이 그리스도에 대한 증거와 성부에 대한 역사 섭리로 이어지지 않는다. 성령과 그리스도가 분리되고, 성령이 성부와도 분리된다. 성령체험이 내면적 체험이 되거나, 성령이 사적(私的)인 영과 혼돈을 일으킨다. 이 유형에서는 '성령이 시켰다'고 말하면서, 사계시(私啓示)를 주장하기도 한다. 자신이 경험한 성령체험이 성경적인 것인지에 대한 검증은 하지 않는다.
이런 성령-단일신론이 시한부 종말론이나 고정된 구원론과 결합하면 심각한 이단이 된다. 한국교회에도 시한부 종말론을 주장하는 자들이 자신들은 '성령의 음성'을 듣고 신비한 계시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여 혼란을 일으켰다. 또 구원받을 신도의 숫자를 정해서 제시하거나,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구원의 숫자가 고정된 것으로 주장하는 자들 사이에도 이 유형이 자주 보인다.
이런 세 가지 변형된 형태들은 모두 삼위일체론의 부재에서 나타난다. 한국교회는 이단으로 혼란을 많이 겪었다. 교회에서 삼위일체 신관을 반드시 가르쳐야 한다. 삼위일체론의 토대 위에서 신앙이 돈독해질 뿐 아니라, 이단에 쉽게 휩쓸리지 않는 뿌리를 가질 수 있다. 신학을 통해 목회자와 평신도의 수준이 높아지면 한국교회가 건실하고 강한 교회가 될 것이다.
김동건 교수 <영남신대 조직신학, 저자연락은 페이스북 facebook.com/dkkim22>
https://v.daum.net/v/201303211719065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