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으로 긴 여름이었다. 그동안 누구하고도 소통을 거부했던 내겐 더욱 지루했던 계절이었다. 많은 사건들이 나를 툭툭 치고 지나쳤지만 나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갈등에 직면했을 때 홀로 삭이는 것이 나의 오래된 버릇이었다. 어떤 갈등이든지 그냥 놔두면 저절로 삭아버린다. 삭아서 스스로 사라져버린다. 헌데 이번 것은 잘 삭지 않았다. 삭히려 애를 써도 더욱 생생해지는 이놈을 그래서 나는 토해버리기로 했다.
* 집 문제로 잠시 힘들었다. 한 마을에 집을 지으려니 마땅한 땅이 없어 애를 먹었고, 그 과정에서 몇몇 인간의 인격을 엿보게 되었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그 인격들이 너무 형편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어려웠을 때 곁에서 위로해주던 인격들이, 우리 형편이 조금 나아지자 배 앓이를 하기 시작했다. 혼자 조용히 배 앓이를 하면야 뭐랄 것도 없지만, 그 고통을 내게 내색하지 못해 안달이니 그런 인격에 어떤 점수를 주어야 할까? 남이 어려울 때 도와주는 것보다 남이 기쁠 때 같이 기뻐하는 게 더욱 값지다는 것을 알았다.
*땅을 샀다. 길도 없는 맹지를 5 만원에. 그러나 우리가 어려울 때 선뜻 그 땅을 내준 할머니의 심정이 너무 고와 만원을 더 쳐주기로 했다. 땅값을 깎아도 모자랄 판에 더 준다니, 다른 사람들은 그게 의아한 모양이었다. 혹자는 우리 생활이 매우 여유로운 탓인 모양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남들이 뭐라고 하든 우린 우리 방식대로 살기로 했다.
*어제 포크레인을 빌려 터를 닦았다. 보잘것 없던 땅이 훌륭하게 변했다. 그냥 훌륭한 정도가 아니라, 누가 봐도 탐이 날 만큼 멋져졌다. 하루종일 해가 들고 적당히 반듯하고 텃밭 부칠 공간도 있고, 앞으로는 맑은 계곡이 흐른다. 지형상 감나무 꼭대기에 달린 감을 손을 뻗어 딸 수도 있다. 게다가 인근에 아무도 간섭할 사람이 없으니, 이거야말로 금상첨화가 아니겠는가. 우리 집터를 보고 놀랄 사람이 꽤 많을 것 같다.
*우리집에 도선생이 다녀갔다. 지갑과 통장, 핸드폰, 디지탈카메라 따위를 가져갔다. 범인이 한 동네 사람이고 아주 나이가 어리고 집안 형편이 아주 어렵다는 소리를 듣고 그가 가여워지기 시작했다. 잃어버린 물건이 아깝긴 해도, 그것들이 그에게 매우 필요한 것이겠거니 생각하기로 했다. 그의 선도에 관한 것은 우리 몫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음이 안타까울 뿐이다.
*이번 달 말 정도쯤이면 통나무를 쌓아올릴 수 있을 것이다. 통나무도 다 사 놓았고, 통나무 가게에 중도금까지 지불했다. 이제 껍질을 벗기고 대패로 밀고 착착 쌓아올리기만 하면 된다. 조금 늦은 감이 있긴 해도 한편 생각하면 너무 빠르기도 하다. 내가 아직 집에 대한 공부를 마치지 못했으므로. 모든 일이 계획대로 되어 간다는 것은 여간 기분 좋은 일이 아니다.
*그렇게 터널 같은 긴 여름을 통과했다.
엊그제 터를 닦고, 오늘은 터를 향해 오고갈 길을 냈다. 길이 없으면 길을 만들며 가면 되는 법, 오늘 비로소 개통의 조짐을 여러 사람에게 보여주었다. 아하, 이렇게 만들면 간단한 것을 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 그들 눈에 이제사 비쳤던 그 길이 내겐 오래 전부터 보였으니. 보지 못한 분들을 위해 여기 그 첫 번째 사진을 올린다.
농수로관에 뚜껑을 덮고 있다. 16mm 철근으로 그물을 짜고 그 위에 콘크리트를 부을 작정이다. 포크레인 뒤로 우리 집터가 있다.
포크레인 뒤에서 한 컷 더. 작업이 의외로 간단했다. 수로관에 거푸집 설치하는 걸 보니 저 정도면 나 혼자서도 할 걸, 생각이 들었다. 뒤에 보이는 흄관은 계곡 쪽에 심어 놓을 작정이다. 그래야 큰 비가 와도 끄덕이 없댄다.
집 지을 터에서 내려다본 모습이다. 미루나무 따라 발길 따라, 하늘에 흘러가는 구름 따라-- 그런 노래가 저절로 떠오르는 길이다. 혹자는 지대가 너무 높아 길을 내도 차가 올라가지 못할 것이라고 했는데 웬걸, 자전거로도 쉽게 오를 만한 경사다.
게다가 한 쪽으로 맑은 물이 흐르니, 그 물길 따라 모양도 좋은 나무들을 죽 심으면 금상첨화. 지나가다 나무 둥치 한번 만져보고, 개울에 돌 한번 던져보고, 아아, 얼마나 좋은가. 바라보기만 해도 마음에 저절로 바람이 든다.
언덕을 다 올라오면 정갈하게 쌓아놓은 석축이 보인다. 이 터를 닦을 때 나온 돌이다. 자연석 한 차(車)에 백 만원이 넘는다고 하니 우리는 그야말로 개천 치고 돈 주은 격이다. 돌이 너무 크고 무거워 포크레인을 썼다. 그 돌 쌓느라고 내 손가락이 터지고 찢기고 엉망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앞으로를 생각하면 이까짓 고통쯤이야 조족지혈일 터.
집터에서 집채만한 바위가 나왔다. 그 바위를 한 구석에 세워놓으니, 분위기가 한층 무게 있다. 운치야 말할 것도 없고, 언제든지 올라가 두 다리 쭉 뻗고 쉴 수 있을 만큼 크고 넙적하다. 그 뒤로는 우리의 이웃인 버들이와 쉬리, 가재, 반딧불이들의 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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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 살다보니 집에 대한 안목이 저절로 생겼다. 거금을 들여 지은 거창한 전원주택들도 시골살이를 경험하지 않은 건축업자들이 그린 설계도에 의존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아파트나 빌라 따위의 조금은 폐쇄된 공간구조를 그대로 옮기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모양은 좋을지 몰라도 생활하기엔 불편한 점들이 많다. 특히 도시보다 비교적 넓은 땅을 갖게 되다보니 될 수 있는한 크고 웅장하게 짓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 역시 이곳의 조건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집은 크면 짐이 된다. 복잡한 것보다 단순해야 한다. 물론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겠지만 내 경우에 그렇다는 얘기다. 내가 바라는 시골집 조건을 몇가지 열거하자면 이렇다.
우선은 튼튼해야 한다. 토목에 관련한 공사가 도시보다 비교적 취약하다보니, 시골집들은 천재지변에 속수무책일 경우가 많다. 그러니 도시보다 더욱 안전에 신경을 써야한다. 실내에서 마당으로 통하는 길이 불편하지 말아야한다. 다시 말해 문만 열면 곧바로 마당을 밟게 해야 한다. 계단이라든가 펜스가 둘러쳐진 데크 등이 가로막고 있는 것보다는 훨씬 자유로움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리고 잔디보다는 흙마당이 좋다. 잔디는 보기에 좋을지 몰라도 관리하기 어려울 뿐더러 진드기를 비롯한 벌레들이 우글거리기 때문이다. 그 외에 다락이 있으면 좋겠고, 툇마루와 구들방이 있으면 좋겠다.
집을 손수 짓겠다고 나선 작금, 그래서 도면을 한번 그려보았다. 위에 열거한 대부분을 충족시키는 구조이지만 구들방이 하나 빠졌다. 구들방이란 자칫 잘못 관리하면 창고나 헛간으로 전락할 수가 있으므로, 따로 별채로 짓는 것이 더 좋을 것이란 생각에 잠시 유보하기로 한 것이다.
수십 장의 도면을 그려봤는데 그 중 이게 가장 괜찮았다. 서까래라든가 보를 거는 작업까지 생각해야하기 때문에 조건이 좀 까다로왔다. 통나무가 아니라면 구조가 달라졌을 수도 있다.
외관은 이런 집이 될 것이다.
나무와 녹음이 곁들여진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전문 '노가다꾼'들과 일을 하다보니 공사장에서 쓰는 언어들을 몇개 알게 되었다. 우리가 흔히 쓰는 노가다라는 말의 의미를 알고 나자 재미 있었다. 노가다란, 가다(틀)가 없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란다. 건축이란 늘 일정한 틀(가다)이 있게 마련인데, 그런 틀도 없이 되는대로 일을 하는 사람들을 '가다 없음' 즉 노가다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영어와 일본어의 합성어인 셈이다. (그러나 사실 ‘노가다’라는 말은 ‘도가타[土方(どかた)]’라는 일본어가 변한 말로 토목 공사에 종사하는 노동자나 인부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한다) 아무튼 나 역시 노가다꾼이 되어 하루종일 기초와 배관 작업을 하게 되었다. 배관을 끝내고 나일롱 실로 거푸집을 짤 틀을 띄우게 되었다. 실로 틀을 짜는 작업을 '야리가다' 라고 하는데, 그것 역시 우리 말로 풀이하면 '가짜틀' 이라고 해야할 것이다.
이렇듯 공사장에 조금은 억지인 듯한 일본어가 남발하는 것은 그리 좋은 느낌은 아니었다. 요즘은 공사장 언어를 우리 말로 새롭게 풀이한 사전이 나왔다고 하는데, 하루빨리 상용화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집을 안칠 자리에 석분을 깔았다. 석분 주위로 거푸집을 짜고 레미콘을 타설하게 된다. 석분을 사용하면 콘크리트 루베 수를 반으로 줄일 수 있다. (석분 사용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있지만, 사실 석분의 위력은 놀랍다. 포크레인이 지나가도 바퀴자국 하나 남지 않는다. 그러므로 바닥이 내려앉을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된다.) 집 한쪽으로는 정화조 자리를 파고 있다. 정화조는 한번 위치를 잡으면 차후 수정하기 힘드므로 위치 잡기에 신경을 써야 한다. 정화조를 묻은 후엔 정화조에 물을 가득 채워놓는 것이 좋다. 그렇지 않으면 빗물에 배처럼 둥둥 떠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정화조 배관을 묻을 때는 배관 밑에 돌이 깔리면 좋지 않다. 위에서 눌리는 힘에 배관이 손상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고운 석분이나 흙을 까는 것도 괜찮다.
하수 맨홀 설치 작업이다. 오수합병정화조엔 이 맨홀이 필수다. 하숫물이 내려갈 땐 뚜껑이 열리고 물이 다 내려가면 뚜껑이 닫히는 시스템이라, 냄새가 역류하지 않는다. 일명 U 트랩 기능.
희미하게 보이는 실이 바로 '야리가다(가짜틀)'다. 가짜틀을 잡는 것은 아주 쉬운 일 같으나 전문성을 꽤 요하는 작업이다. 조금이라도 직각이 맞지 않을 경우 집이 삐뚤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경험이 많은 일꾼 하나가, 세제곱이니 루트니 하며 계산기를 두드려 직각을 잡았다.
이렇게 하고 나니 집 구조의 윤곽이 대충 보였다.
배관공사와 '가짜틀'을 잡는데 나를 포함한 다섯 명의 일꾼이 꼬박 하루 종일 일을 했다. 터닦기와 레미콘 타설까지 합하면 거의 일주일이 걸리는 셈이다. 배관과 기초를 정확하고 튼튼히 해 기분이 좋은 하루다. |
평생 지하수 파는 일을 하신 아저씨께서 특별히 수맥탐지까지 해주셨다. 수맥탐지봉으로 이리저리 살피더니 기초가 앉을 자리엔 수맥이 전혀 지나가지 않는다고 했다.
(수맥탐지봉은 신기하게도 같은 자리에서 똑같은 반응을 보인다)
지하수는 깊을수록 좋은 것이냐고 물었더니, 그는 대번 머리를 저었다. 물이 없고 오염이 심한 지역에서 대공을 파는 것이지, 이런 청정지역에서는 몇 미터 파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이다. 오염이 심한 곳은 대공을 파도 물이 좋지 않다고 했다. 옛날엔 3M 정도 우물을 파고 두레박으로 그 물을 길러 먹지 않았느냐는 게 그의 말이었다. 맞는 말 같았다. 옛날 살구꽃잎 한두장 씩 떠 있던 그 얕은 우물도 손이 시려울 정도로 차갑지 않았던가. 그리고 우리 역시 여기서 2년 넘게 흐르는 물을 받아 마셔왔다. 그러니 물만 마르지 않는다면야 깊이가 무슨 소용있겠는가.
땅 속엔 크고 작은 공간이 있고 그 공간엔 물이 흐른다고 했다., 그 말은 사실이었다. 거대한 드릴이 회전하며 땅을 팔 때, 그 열을 식히기 위해 호스로 계속 물을 부어줘야 한다. 그 물은 도로 땅 위로 올라오는데 가끔씩 땅 속으로 쑥쑥 빨려들어가곤 한다. 공간이 없다면 그 물이 빨려들어가지 않고 계속 넘칠 텐데 말이다.
드릴을 식히기 위해 붓는 그 물엔 돌가루가 섞여 나온다. 드릴이 돌을 뚫고 지나가기 때문이다. 그 돌가루의 빛깔과 촉감을 보면 돌의 종류를 알 수 있다. 얼마나 단단하고 얼마나 깨끗한지, 현무암인지 화강암인지. 우리는 돌이 유난히 많고 엄청 단단하다고 했다. 지하수를 파기는 어려워도 물이 좋다는 증거라고 했다.
30 여 미터를 파내려 가자 물이 펑펑 솟구치기 시작했다. 물이 얼마나 차가운지 가슴이 다 서늘해 올 정도였다. 이제 이 물로 밥을 하고 찌개를 끓이고 머리를 감고 목욕을 하고, 그리고 꽃과 나무들을 키우리라 생각하자 가슴이 뿌듯해지는 것이다. | |
예상대로라면 9월 20일 쯤 기초를 치고 기초가 마르는 동안 통나무를 받으려고 했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 날 새벽부터 날이 궂더니 급기야는 후드득 후드득 빗방울이 듣기 시작했다. 9월 비 쯤이야 여우비겠거니 했는데 웬걸, 오전 내내 장마가 시작된 듯 사정없이 퍼붓기 시작했다. 아침에 통나무를 실은 차가 구수리로 떠났다고 전화가 왔는데 걱정이 이만저만 되는 게 아니었다. 아니나 다를까, 나무를 잔뜩 실은 차가 마을 초입의 진흙탕에 빠져 꼼짝도 못한다는 연락이 왔다. 지게차가 그 뒤를 따라 왔지만 폭우 속에서는 속수 무책. 결국 후진을 하여 마을 회관 앞에 통나무를 하차해야 했다. 비는 밤새 내렸다. 마을 회관 앞에서 묵묵히 비를 맞고 있을 나무를 생각하니 밤새 잠이 오지 않았다. 그깟 하루쯤 비를 맞힌다고 나무가 썩기야 하겠는가 생각해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썩을지도 모른다는 염려 때문이 아니라, 그 나무들에 대한 단상이 머리를 스쳤기 때문이었다. 강원도 깊은 산골에서 수십 년 동안 하늘을 떠받치며 살다가, 한 인간의 보금자리를 위해 성둥성둥 밑둥이 잘려져 이 먼 곳까지 실려온 나무들. 그 나무들의 삶을 생각하자 굳이 나무집을 선택한 나의 생각이 부끄러워졌다. 새처럼 벌레처럼 진흙과 풀을 섞어 만들 걸 그랬어, 하는 후회도 드는 것이다. 밤늦도록 창밖으로 떨어지는 빗방울을 바라보며 우울해 했다.
다음 날, 날은 언제 비가 왔냐는 듯 뻔뻔스럽게 맑았다. 하루 일 분 일 초가 아까운 시기여서, 새벽부터 포크레인을 물색하고 드디어 나무 나르기 대장정이 시작되었다.
밧줄로 나무를 묶어 포크레인에 걸어주는 역할은 나 혼자 해야 했다. 통나무 스무개 씩 묶어 올려주는데, 그것은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떻게 그 무거운 나무를 나무젓가락 고무줄로 묶듯 묶어 걸어준단 말인가. 혼자 무진 애를 쓰다가 결국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지게차로 나르면 서너번만 왔다갔다 하면 될 것을, 지게차가 진흙탕 길에서 퍼져버리니 포크레인만 내내 성을 내며 언덕을 오르내렸다. 그렇게 나무가 다 올려졌다. 산더미처럼 쌓인 나무를 보자 마음이 뿌듯하긴 했지만 한편 한숨이 나기도 했다. 저 많은 나무의 껍질은 어떻게 다 벗긴단 말인가.
나무를 나르는 동안 한쪽에선 기초 작업에 열중했다. 배관을 점검하고 거푸집을 짜고, 습기를 차단할 비닐을 깔았다.
기초는 50전 정도의 통기초인데, 통기초를 칠 때 주의해야할 사항은 화장실 만큼은 콘크리트를 부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화장실은 누수 방지를 위해 거실 바닥보다 낮아야할 뿐더러, 만에 하나 누수가 생길 시에 바닥을 뜯어야하기 때문이다. 작업을 쉽게 하기 위해 그냥 콘크리트를 쳐버리면 나중에 바닥을 깰 경우가 생길 때 고생을 하게 된다.
작업이 늦어져 밤이 이슥해서야 레미콘을 불렀다. 작업은 밤 아홉시 가까이 되어서야 끝났다. 사방에서 자동차 헤드라이트를 켜 놓고, 포크레인으로 시멘트를 받아 거푸집 속을 채웠다. 자동차 조명이 꼭 영화찰영장을 방불케 했다는 훗 얘기가 전해지기도....
그리고 오늘, 드디어 나무 다듬기를 시작했다. 기초가 마를 때까지 나무 껍질을 벗기고 대패질을 하리라 했는데, 사실상 나무가 너무 많아 껍질만 벗기는 것으로 계획을 변경해야 했다. 워낙에 인덕이 있던 터(^^)라 여기저기서 소식을 듣고 지인들이 찾아와 작업을 도와 주었다. 네 사람이 하루만에 산더미 같은 나무의 껍질을 벗겼다. 참 다행인 것이, 껍질이 물을 먹어 슬쩍 건드리기만 해도 벗겨진다는 것이었다. 낙엽송의 특성 상 바싹 마를 경우엔 낫도 잘 들어가지 않는데, 밤새 비를 맞은 탓에 작업하기가 쉬웠다. 엊그제는 비가 그렇게도 원망스러웠는데, 하늘이 다 뜻이 있었나보다 하고 생각했다. 갓 땡큐~
하루종일 정신없이 통나무와 씨름을 했더니 몸 여기저기가 타박상 투성이였다. 시작부터 큰 일들과 호되게 부딪치니 정신이 쏙 빠져버린 듯했다. 이제 벽체를 쌓아올릴 차례다. 내일 기초 콘크리트 위에 벽돌 한 켜씩만 조적하고, 그 위에 통나무를 쌓을 예정이다. 이제부턴 나 혼자만의 싸움이 시작되는 것이다. 따가운 가을 햇살 속에서 땀으로 뒤범벅 될 때, 그 느낌은 참으로 새로운 것이었다. 힘들고 고되기보다 즐거움과 흐믓함이 샘솟듯 했다. 새들도 벌레도 풀과 나무와 흙으로 집을 지을 때, 어쩌면 이렇게 힘이 들었을 터, 그래도 끊임없이 일하는 것은 사랑하는 식구들의 얼굴을 떠올렸기 때문일 것이다. 식구란 늘 이렇게 나의 땀을 씻어주는 존재인 것이다.
자재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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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엔 벽체를 다 끝내고 지붕 올릴 준비를 했다. 지붕을 올리기 위해서는 촉과 보를 세우는 게 우선이다. 게다가 간이 2층인 다락을 만들기 위해선 다락바닥 장선을 먼저 설치할 필요가 있다. 바닥 장선을 하는 방법이야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우리는 통나무로 프레임을 짜기로 했다. 다락바닥이 주방의 천장이 되므로 통나무 골격을 그대로 살리면 보기에도 좋을 뿐더러 튼튼하기까지 할 것이다. 그렇게까지 하려고하니 시간이 꽤 많이 소요될 것 같다. 첫눈 오기 전에 지붕이나 덮을라나.
맨 끝에 보이는 통나무 다섯 간이 다락 벽이다. 한 간에 12센티이니 다섯 간 하면 60센티, 벽 높이가 겨우 60 센티라니! 하지만 중간에 세울 촉이 2 미터가 넘으니 다락에서 허리 구부리고 있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다락은 아이들이 서로 자기 방을 하겠다고 우기고 있지만 어허! 나는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다. 다락은 원래부터 내 서재로 찜을 해 놓았기 때문.
다락 바닥 장선.
거기까지 작업을 하고 나자 기다리기라도 한 듯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지난 10월엔 비가 오지 않아 농부들은 애가 탔지만 우리에겐 참 다행이었다. 오랜만에 비치는 빗방울이라 일손이 바빠도 하늘이 원망스럽거나 그러진 않았다. 오히려 잘 됐다 싶어 조수와 함께 찜질방에 가서 노근노근 몸도 녹이고, 그리고 경기도 광주에 있는 목조주택 전문 매장으로 향했다. 이런 날은 멀리 바닷가로 차를 몰아 파도가 몰아치는 해변가에 차를 세우고 멀리 해무가 자욱한 바다를 바라보며 서 있고 싶은 충동이 이는 것이다. 하지만 조금만 참기로 했다. 집을 다 짓고, 장판까지 깔면 그때 바다로 떠나자.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하고 마음 속에서 누군가 외칠 때, 열심히 일한 사람만 차에 태우고 바다에 다녀오자.
건축자재 전문 매장에 들어서자 입이 딱 벌어졌다. 물건이 엄청나게 많아서이기도 했지만, 매장 직원들이 너무도 친절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물건 값도 별로 비싸지 않았다. 매장을 꼼꼼히 둘러 본 후 견적을 냈다.
내가 원하던 물건은 지붕재와 인테리어자재 등이었는데, 총 비용은 7,853,000 원이었다. (차후로 200 여만원 추가 했음) 대략 물건비 단가를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OSB (지붕용) 15600 원 석고보드(천장 반자용) 3360 원 방수석고보드(라파즈석고보드- 화장실용) 5100 원 아스팔스 슁글 (이중 그림자- 지붕마감)18900 원 방수시트(지붕 방수) 22000 원 슁글본드 (슁글 붙임)17300 원 인슐레이션 (단열재)35200 원 콘솔란 (내부용 오일 스테인)36000 원 렉스판 (화장실 천장용) 4630 원 타이벡(벽체 지붕등 습기 차단용 시트지) 110000 원 2*6 (서까래용- 사실 서까래는 2*6보다 2*8이나 2*10을 쓰도록 권장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지붕 보를 촘촘히 걸기 때문에 큰 하중이 들지 않아 2*6을 쓰기로 했다) 사이당 670원 슁글 후레싱 (지붕 처마도리용) 3730 CEDAR베벨 사이딩 (이 사이딩은 원래 벽체 마감용이지만 우리는 실내 인테이러용으로 몇 개만 샀다) 사이 당 950원 루바 (인테리어용) 630원
등등이다.
전문 매장에 갈 경우엔 자재 용어라든가 단가 정도를 조금 알고 갈 필요가 있다. 견적이 다 나왔을 때 조금 DC를 해 줄 수 없느냐고 말을 하자, 담당 직원은 소위 '업자'들에게는 최소 금액으로 견적을 내준다는 말을 내게 했다. 다시 말해 내가 업자처럼 보여 최소 금액으로 견적을 냈다는 얘기였는데, 웃음이 나오려는 걸 꾹 참았다. 그러니 조금은 아는척을 해야 다소나마 싸게 물건을 살 수 있다는 얘기다.
드디어 자재가 운반되어 왔다. 대개의 전문 매장일 경우 운반비는 별도로 받는다. 물건이 너무 많아 지게차를 썼다. 처음엔 물건을 싣고온 운전기사에게 담배값이나 얹어주며 함께 내릴 생각이었으나 담배값이나 지게차값이가 쌤쌤일 것 같아 읍내에 있는 지게차를 불렀다. 지게차는 시간당 30000원. 지게차를 안 불렀더라면 하루 한나절 꼬박 물건을 내릴 뻔했다.
R-19 인슐레이션. R-19는 2*6 사이즈에 맞게 나와 있다. 원래 인슐레이션은 단열재로는 최고이지만 유리가루 등등으로 인체에 해롭다는 이야기들을 많이 한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시공상 하자가 있을 경우에 한한다. 다시 말해 인슐레이션이 몸에 별로 좋지 않다 하더라도 유리가루가 방안으로 떨어질 틈이 없다면 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다. 또한 업체에서는 인체에 해롭지 않다는 '인증서' 따위를 제시해보이기도 한다. 해서 우리는 그 업체를 믿기로 하고 또 시공상에 최대한 만전에 주의를 거듭하기로 다짐하고 인슐레이션을 주문했다.
루바와 각종 프레임 자재들이다. 루바는 인테리어 용이고 다른 각재들은 프레임과 서까래와 처마도리 용이다.
동판프레싱. 강원도 정선에서 손수 집을 지은 들꽃처럼님 댁 지붕을 보고, 그 깔끔하고 단정한 맛에 반해 동판 후레싱을 쓰기로 했다. 하지만 동판 후레싱은 인테리어용이 아니고 빗물에 처마도리가 썩는 것을 방지하는 용도이다.
동판 프레싱으로 마감한 지붕...(강원도 정선의 들꽃처럼님 댁이다)
지금까지 우리에게 소요된 금액은
통나무 구입 비, 약 1000만 원 기초(통기초 및 배관) 300만 원 포크레인 백만 원 연장(5.5인치 대패 외) 120 만원 스크류 피스 60만 원 심야전기 보일러 520만원 지하수 65 만원 정화조및 배관 100만원 모래, 자갈, 벽돌 50만원, 하천 복개 1000 만원 측량(분할+경계) 76만원 지적 허가비용 250만원
등이 들어갔다.
앞으로 창호와 전기, 욕실자재, 싱크대 바닥재 등등으로 약 1500 만원 정도가 더 소요될 예정이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우리 동네에 집에 대해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분이 계시다. 당신의 집은 몇 억이 들어 갔느니 누구의 집은 싸구려라느니. 하지만 직접 집을 짓다보니 자재비란 대개 거기서 거기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최고급을 쓴다하더라도 고작 몇 십 만원이 더 비쌀 뿐이었다. 그러니 거금을 들인 주택일 경우엔 자재비도 자재비이지만 인건비가 더 많이 들어갔을 경우가 크다는 얘기다. 사실 자재비보다 인건비가 더 들어간 집이 잘 지은 집이라고 얘기할 수 있다. 얼마나 많은 땀과 정열을 쏟아 지었는가에 따라 집의 가치가 달라진다는 얘기다. 나는 최대한 좋은 자재를 구입하려고 노력했다. 나무와 풀과 흙으로 집을 짓는 새와 곤충들이 구하기 쉽다고 해서 썩은 재료를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최대한 가장 좋은 재료, 가장 근사할 것들만을 구해와 땀을 흘리며 가족을 위한 집을 지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니 값싸다고 해서 아무거나 구입해 엄벙덤벙 끼워넣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경비를 줄이기 위해 여기저기서 쓰던 물품을 얻어와 억지로 아귀를 맞추고 엉성하게 벽체를 세우고 대충대충 지붕을 씌우는 것을 몇 번 보았다. 그런 집들은 십중팔구 막집인 경우가 많았다. 하자도 많고 단열도 안 되고 여름이면 비가 새고 물이 차서 고생 깨나 하는 것을 보면, 집을 짓더라도 저렇게는 하지 말자는 다짐이 저절로 드는 것이다. 여하튼 결론은 좋은 제품과 우수한 인력, 그리고 성실한 시공만이 좋은 집을 완성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내일 모레쯤 마룻대가 올라갈 예정이다. 조촐한 상량식까지 겸할 생각인데, 돼지머리는 고사하고라도 북어대가리에 막걸리 한사발 쯤은 따라놓을 예정이다. |
상량 & 서까래 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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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는 몹시 힘들었다. 몇가지 오차가 생겨 벽의 일부를 뜯어야하는 일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정말 맥 빠지고 의욕이 나지 않는 일을 반나절에 걸쳐 해야만 했다. 게다가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다보니 통나무에 정갱이를 얻어맞고 말았는데, 정말이지 눈물이 찔끔 날 정도로 아팠다. 퍼렇게 멍든 정갱이 때문에 오후 내내 짜증이 일었다. 그러나 그래도 가야할 길은 가야하는 게 아닌가! 고작해야 반나절 더 일한 것 뿐인데! 스스로를 그렇게 위로하고 다시 힘을 냈다.
대들보가 올라갈 높이를 결정하기 위해 지붕의 각도를 재야했다. 지붕 각도가 나오면 보를 떠받칠 기둥의 높이가 나오기 때문이다. 설계도엔 그 높이를 2 미터로 잡아 놓았지만 실제 눈으로 확인하니 조금 높은 느낌이 들었다. 지붕의 각도는 그 지역의 산山의 생김새와 어울려야 좋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우리 마을을 감싸고 있는 장군봉은 높지도 낮지도 않고 완만하거나 급하지도 않은 것이 보는이로 하여금 푸근한 느낌을 주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그 각도에 맞추기로 했다.
마룻대를 세울 기둥을 보 위에 걸치는 작업. 사실 이 작업을 할 때는 원래 작업대가 있어야 한다. 대개는 '비트아시바'라는 작업대를 쓰는데, 나는 그런 것 하나 없이 겨우 폭 12센티 보 위에 아슬아슬하게 발을 올려 놓고 작업을 했다. 조금 무모한 짓이기는 해도 내겐 이런 방법도 괜찮았다. 원래 높은 곳에 올라서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인천에서 자랐으면서도 그 아슬아슬하기로 소문난 '소래대교' 한번 건너보지 못한 소심한 나로서는 매우 획기적인 발전이었다. 처음에 보 위에 올라섰을 때는 매우 아찔했지만 나는 생각을 달리하기로 했다. 떨어지면 어떡하지? 하는 부정적인 생각에서 떨어지긴 왜 떨어져! 하고 생각을 바꾸자, 그 높은 곳이 평지처럼 편안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두려움이란 그렇게 부정적인 생각에서 비롯되는 모양이다.
보를 떠받칠 기둥을 세우고 나자 기분이 매우 뿌듯했다. 마음이 은근히 거만해지는 것이, 무엇이든 눈 앞에 닥치면 거침없이 해치울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랄까. 지금까지의 험난한 길을 혼자서 걸어왔다는 사실에 사뭇 고무되는 하루였다.
보를 올리기 전에 가벼운 각목을 먼저 올려 수평이 맞나 확인을 해야 한다. 수평이 맞았으면 보를 올린다. 보를 올릴 때는 매우 애를 먹었다. 3미터가 넘는 긴 통나무를 그 높이에 올리는 것도 그렇거니와 보를 걸 기둥이 휘청휘청 흔들렸기 때문이다. 보를 걸고 나야 흔들림이 제대로 멎었다.
보를 걸고 스크류피스를 쏴준다. 옛날 같으면 끌로 따고 서로 단단하게 짜맞추었겠지만 나는 앵글을 썼다. 앵글로도 모자라 침목들을 연결하는 꺽쇠라고 하는 이음쇠도 충분히 걸었다. 그만큼 했으니 이음매가 어긋나거나 하는 불상사는 없을 것이다. 보를 거는데만 꼬박 한나절. 결국 마룻대 하나만 남겨두고 하루가 저물었다.
그리고 다음날, 곧바로 상량 준비에 들어갔다. 상량에 쓸 글도 미리 작성해 놓고 짜투리 나무 토막에 붓글씨 연습까지 했다. 오래 전부터 심심풀이로 붓을 잡았던 것이 다소 도움이 되었다. 막걸리와 북어대가리까지 사 놓고 드디어 마룻대를 올리리라 했는데, 그런데 막상 상량문을 쓰려고 하자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먹물이 자꾸 번져 글씨가 괴기스럽게 변해가는 것이다. 대패로 밀어버리고 다시 써 보아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무가 아직 마르지 않아 그런 것이려니 해서 상량을 오후에 하기로 했다. 햇빛이 잘 드는 곳으로 마룻대를 옮기며 나무가 마르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오후에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느정도 말랐나 싶어 다시 글씨를 써도 번지기는 마찬가지였다. 나무를 살펴보니 이삼일은 좋이 말려야 할 것 같았다. 난감했다. 다른 나무를 쓰면 될 것 아니냐고 할지 모르지만 남은 것 중에 마룻대감의 나무는 없었다. 또 정날이 장날이라고 일요일이어서 인근의 제재소가 모두 문을 닫은 상태. 어서 마룻대를 올려야 다음 작업을 할 수 있을 텐데 막막하기만 했다. 햇빛 아래 놓인 마룻대를 망연자실 바라보다 나는 결심을 했다. 마룻대를 올리지 못하고 마냥 시간을 보낼 수는 없다. 밀고 나가자! 마침 내 조수가 수업이 있는 날이어서 밖으로 출타중이었는데, 나는 혼자 마룻대를 올리고 싶어 몸이 근질거리기 시작했다. 결국 12자 짜리 통나무를 혼자 어깨에 메고 다락 위로 올라가 마룻대를 걸쳤다. 사다리와 까치발을 총 동원해 가까스로 가까스로 그러다 두 번을 떨어 뜨리고 세 번째 드디어 제일 높은 기둥에 마룻대를 올렸다. 짝짝짝. 그리고 나 혼자 박수를 보내주었다. 기쁨이 몰려오기도 했지만 왠지 허전하고 쓸쓸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사진 한 장 찍지도 못하고, 누구하나 브라보! 외쳐주지 않아서일까? 아니었다. 이때까지 홀로 걸어왔던 그 힘든 여정이 한꺼번에 밀려들었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루루라라 콧노래를 부르며 왔지만, 사실 그간 얼마나 힘이 들었던가. 얼마나 아프고 얼마나 힘들었던가. 초겨울 찬바람이 목덜미를 어루만지며 지나갔다.
그 이후에 있었던 얘기지만, 마을의 한 어르신이 마룻대 올린 것을 보시고는 "이건 무효야 무효! 돼지도 잡고 북어도 패고 늙은이들 다 불러 술 한잔 멕이지 못할망정, 그렇게 날치기로 통과시켜? 다시 내려. 내려서 다시 올리라구!" 하시는 바람에 정말 그렇게 할까? 하고 잠시 생각을 하는데, 조수가 내 허벅지를 슬쩍 꼬집었다. 웬만하면 성대하지는 않더라도 마을 어른들 뫼시고 조촐히 술이라도 따르고 싶었는데, 서리도 내리고 입동도 지나고 나자 마음이 자꾸 바빠졌다. 내 자신 먼저 느긋하게 하자고 떠들어댔는데, 날이 영하권으로 떨어지면 방바닥 미장을 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차후에 준공이 나 이사를 하면 그때 뫼시겠노라, 스스로 다짐했다.
차후에 알게 된 얘기지만 마룻대에 꼭 상량문을 써 넣을 필요는 없다고 한다. 따로 좋은 나무에 상량문을 쓰고 마룻대에 덧달거나 글귀를 조각해 넣기도 한다고 한다. 해서 우리는 조금 한가할 때 그렇게 하기로 했다.
그리고 곧바로 서까래를 걸기 시작했다. 원래는 2*6에 OSB를 붙이고 올리려고 했지만 그 작업은 혼자서는 도저히 할 수 없었다. OSB 한 장도 무거운데 5미터 짜리 2*6 세 개를 붙여 올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해서 서까래를 먼저 걸고 그 위에 OSB를 붙이기로 했다.
날이 저물 무렵 멀리 이천에서 귀한 손님이 오셨다. 언젠가 꼭 한 번, 어렴풋이 뵌 적이 있었던 '샘이 있는 뜰' 님. "저 기억하시지요? 응원하러 왔습니다." 말쑥한 그 분의 모습에 나는 내 꾀죄죄한 몰골 때문에 당혹스럽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 분 특유의 선한 웃음에 곧바로 마음이 열렸다. 모닥불로 잠깐 몸을 녹이다가 그 분의 권유로 저녁밥을 먹으러 갔다. 대화 중에 그 분께서 음악적인 조예가 참 깊으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머지 않아 그 분의 대금 연주에 내가 무엇으로든 추임새를 넣으리라는 생각을 했다. 늦은 밤 길, 인사도 제대로 드리지 못한 것 같아 죄송한 맘 금할 길이 없다.
서까래 작업은 계속 되었다.
서까래를 거는 일은 확연히 일한 티가 나서 기분이 좋다. 통나무를 올릴 때는 올려도 올려도 끝이 날 것 같지 않았지만 서까래는 하나 걸면 곧바로 느낌이 달랐다.
그러고 나니 날이 저물었다. 오늘은 마을의 한 선생님께서 숯불구이용 고기를 사와 함께 구워 먹었다. 알게모르게 우리를 돕는 손길이 너무 많아, 아마도 그 분들의 배려 덕분에 우리가 백배 용기를 낼 수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전 같으면 어디 이 많은 통나무를 들어올릴 생각이나 했겠는가. 그 높은 곳에서 아슬아슬하게 뛰어다닐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 보이지 않는 많은 분들의 응원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벌써 지쳐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선농일체(禪農一體)라는 말이 있다. 평생 농사를 짓는 것이 목탁을 두드리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말인데, 그 말에 아무런 이의가 없다면 선로일체(禪勞一體) 역시 괜찮은 의미가 될 것이다. 어느 힘든 노동에 몰입할 때 그 자체 역시 벽을 보고 참선을 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얘기다. 혼자서 집을 짓는다는 것은 그 만큼 무아지경, 세상에 오로지 나와 일만이 존재하는 것이다. 가끔은 세상 모든 근심을 잊고 일 속에 빠져보는 것도 괜찮은 일이라고, 기회가 있다면 많은 이들에게 살짝 귀뜸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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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 덮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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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엔 날이 추워 작업을 하기가 만만치 않았다. 아침이면 하얗게 서리가 내리고 바람마저 차가웠다. 그런 날씨 속에서 땀을 흘리며 망치질을 해대던 나는 결국 자리에 눕고 말았다. 체력이 바닥난 것이다. 집을 짓기 시작한 지 두 달 여 동안 몸무게가 무려 7 킬로그램이나 빠졌다. 가뜩이나 야윈 몸이 이젠 앙상하게 변한 것이다. 막일을 할 땐 오전 오후로 간단히 새참을 챙겨 먹어야 하지만, 일에 열중하다보면 시간도 아깝고 또 먹고 나면 일의 집중력이 떨어져 우린 한번도 참을 먹지 않았다. 주위 분들이 사다주시는 음식이나 따뜻한 차 한 잔이 전부일 뿐. 그러다 보니 시나브로 몸이 축났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월요일엔 하루종일 이불을 뒤집어 쓰고 누워 있었다. 몸이 오슬오슬 떨리고 손가락 하나 까딱 하기 싫었다. 하루만 모든 일에서 떠나 푹 쉬자고 누웠던 것인데 그러나 마음은 전혀 편하지 않았다. 지붕도 덮어야하고 인슐레이션 작업도 해야 하는데, 보일러실은 언제 만들지? 엑셀도 깔고 타일도 깔고 설비공사도 해야하고, 방수시트도 덮고 슁글도 하고, 방바닥 미장도 해야 하는데.... 그런 생각 탓에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다. 요즘들어 내가 왠지 일에 쫓기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안되겠다 싶어 이불을 박차고 작업장으로 나갔다. 머리가 어질어질 했지만 나는 연장벨트를 허리에 차고 주머니에서 노트를 꺼내 이렇게 썼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자!
서까래 위에 11mm OSB 합판을 덮는 작업을 했다. 이 작업을 하면서 애를 먹은 것은 정작 합판을 고정시키는 것보다 지붕까지 합판을 올리는 일이었다. 그래서 궁리 끝에 조수와 함께 다락에 한장한장 올려 놓고, 서까래 사이로 합판을 끼워 올렸다. 다락에 합판을 올리는 작업만 반나절이 걸렸다. 집을 짓는다는 것은 이런 단순노동이 반을 차지한다.
합판을 덮기 전엔 지붕이 꼭 살을 다 발라먹은 꽁치 같았는데, 합판이 조금씩 채워지자 모양이 점점 근사해지기 시작했다.
이 작업을 하는 중에 아이들이 다니는 초등학교 선생님께서 방문을 하셨다. 선생님께서는 샌님 같은 남자가 혼자 낑낑대며 합판을 올리는 게 안쓰러웠는지 별안간 팔을 걷어부치고 일을 도와 주기 시작했다. 아이의 학교 선생님이라 여간 어려운 게 아닌데 일까지 도와 주겠다고 나서니 얼마나 죄송스러웠는지 몰랐다. 그러나 구태여 지붕까지 올라오시는 분을 내려가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선생님께 그렇게 말했다. "우리 집을 위해 특별히 공을 세우신 분이라고 선생님 이름을 크게 써 놓아야겠네요."
다락 테라스는 원래 설계에는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테라스를 내지 않으면 다락에 햇빛이 들지 않을 것 같았고, 지붕도 밋밋해질 것 같았다. 해서 즉흥적으로 이 테라스를 생각해내게 되었다. 처음엔 이런 지붕을 만들기가 매우 어려울 것이라 했지만, 막상 공사에 들어가자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망치질을 하다보면 저절로, 이건 이렇게 저건 저렇게 하고 속에서 누가 일러주는 것 같았다. 테라스를 만들고 나자 집의 이미지가 확연하게 변했다. 지붕에 날개를 단 느낌이랄까.
지붕 작업이 거의 끝나갈 무렵, 진천 읍내에서 설비 전문가를 불렀다. 다른 것은 몰라도 급수 설비에 관한 것은 전문가가 하는 게 옳을 것 같았다. 차후에 방바닥에 누수가 생기는 일이 발생하는 것보다 전문가의 하루 노임을 들이는 편이 더 좋지 않은가. 하루종일 전문가의 꽁무니를 따라다니며 조수 노릇을 했다. 그러면서 느낀 것이 조수란 참 치사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조수를 하려면 참을성이 더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혼자 집을 짓는 사람들일 경우, 대개는 내부 급수관을 엑셀 파이프로 쓰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엑셀 파이프를 쓸 경우엔 엘보라든가 소켓 등, 이음매가 많아지고, 이음매가 많다보면 하자의 조건도 높아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요즘엔 PP-C 파이프를 많이 쓴다고 한다. 이 파이프는 이음매를 용접기계로 녹여 땜질을 한다. 그러다보니 하나의 파이프로 전체를 돌리는 셈이 되는 것이다. 이 작업을 한 후엔 파이프에 물을 채워 넣고 누수 여부를 확인하는 게 원칙이다.
합판을 다 덮고 나서, 다음은 무슨 작업을 하지? 하고 생각하다가, 아 참, 처마도리를 해야지. 하고 중얼거렸다. 일의 순서도 제대로 모르고 시작했다가, 일을 하면서 하나하나 배우고 있는 중이었다. 앞으로 또 한번 집을 지을 기회가 생긴다면 어쩌면 지금보다 훨씬 더 빨리 지을 자신이 있다. 왜냐? 최소한 다음은 뭘해야 하지? 하는 고민은 하지 않을 테니까.
처마도리는 1*8 방부목을 썼다. 빗물에 노출되기 쉬운 부분이므로 방부에 신경을 써야하기 때문이다. 또 두꺼운 각재를 쓸 경우 설치하는 일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금은 얇고 가벼운 제품을 골라 쓰게 되었다.
작업을 하는 동안 조수는 보일러실 기초를 하고 있다. 이제는 시키지 않아도 제 일을 척척 알아서 한다. 웬만한 남자 두어 명보다 우리 조수 한 명이 훨씬 낫다. 혼자 보일러실 기초까지 다 하니 말이다. 심야전기보일러는 차지하는 면적이 커서 2미터*3미터 정도의 보일러실을 지어야 한다. 조수가 계획한 기초는 줄기초. 벽돌 한 장 정도의 깊이로 땅을 파고, 시멘트를 비벼 벽돌을 조적하게 된다. 3단 정도 쌓고 그 위엔 통나무로 쌓을 예정이다. 보일러실이라고 아무렇게나 지었다가는 집의 모양을 망칠 수가 있으므로 신경을 써야한다.
처마도리를 완성하고 나자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 이제 방수시트를 덮고, 슁글로 마감을 하면 바깥 지붕은 마감이 되는 것이다.
곧바로 방수시트 덮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이 작업을 시작할 땐 마음이 괜스레 들 떠 방심을 하고 말았다. 사다리를 타고 지붕에 올라가다 발을 헛딛고 만 것이다. 결국 사다리와 함께 떨어지고 말았는데, 다행이도 허벅지와 무르팍에 가벼운 찰과상만 입었다. 그리고 또다시 사다리를 세워놓고 지붕으로 올라갔다. 지붕으로 올라갈 길이란 사다리 밖에 없으므로.
각도도 만만치 않고, 특히 일을 하는 중에 생긴 톱밥이 합판 위에 남아 있다보니 여간 미끄러운 것이 아니었다. 처음엔 강아지처럼 엉금엉금 기다시피 했지만 조금 지나자 또다시 마음이 방만해지고 말았다. 무거운 방수시트롤을 들고 평지를 걷듯 저벅저벅. 사진으로 보니 내 모습이 먹이를 물고 바쁘게 오고가는 한 마리 개미 같다.
조수더러 지붕에 올라와서 방수시트 펴는 것을 도와달라고 했더니, 자기는 죽으면 죽었지 지붕엔 올라올 수가 없다고 했다. 자기가 다치면 내 뒤치닥거리는 누가 해주냐는 것이다. 그러면서 사다리를 지붕에 척 걸쳐놓고는 사다리 꼭대기까지만 올라왔다. 사다리 끝에서 머리만 빠끔 내민 조수의 모습이 우스꽝스러워 한참을 소리나게 웃었다. 결국 방수시트 끝자락만 조수가 잡아주고 나는 올라갔다 내려갔다 앉았다 일어섰다 하며 부지런히 시트를 폈다. 지붕에서의 작업이라 아슬아슬하고 식은 땀이 났어도 작업은 이부자리 펴는 일만큼이나 쉬웠다. 날이 추웠기에 망정이지 햇빛이라도 있었더라면 고생 깨나 했을 것이다. 다 알다시피 방수시트는 높은 온도에서는 서로 달라붙고, 한번 달라붙으면 웬만해서 떨어지려고 하지 않으니까.
그렇게 하루 종일 지붕 위에서 쇼 아닌 쇼를 펼치다가 마지막 한 장이 남았을 때, 결국 일이 나고 말았다. 마지막으로 방수시트를 척 펼치고 끈적이에 붙은 비닐을 떼어낼 때 그만 발이 꼬여버린 것이다. 순간 나는 지붕에서 스키를 타고 말았다. 어어어! 비명을 지른 것은 내가 아닌 조수였다. 사다리 끝에 매달려 있다가 자기 앞으로 미끄러져 오는 물체를 발견한 조수의 눈과 입이 동시에 열렸다. 꽝! 결국 우리는 땅바닥에서 만나고 말았다. 내 위에 조수가 떨어지고, 조수 위에 사다리가 덮쳤다. 셋 중 하나는 틀림없이 죽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스쳤는데 아니나 다를까, 사다리가 박살이 나고 말았다. 나머지 둘은 신기하게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결국 우리는 방수시트 하나를 남겨두고 철수를 해야만 했다. 날도 저물었고, 아무렇지도 않다고 했지만 사실 허리고 어깨고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던 것이다. 자칫 잘못했다간 큰일 날 뻔했다는 생각이 우리를 소심하게 만들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게 오늘 하루도 흘러갔다. 이제 앞으로 보름 정도만 땀을 흘리면 우리가 꿈꾸던 집이 완성이 될 것이다. 아이들은 어서 새 집으로 이사를 갔으면 좋겠다고, 그러면 참 행복할 것이라고 말하곤 한다. 얘야, 이사를 가면 행복하겠지만, 그 행복한 미래를 만드는 지금 이 순간이 더 행복한 것이란다. 하고 말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말하지 않았다. 그건 이 아이들이 머잖아 어떤 힘든 일을 하면서 저절로 깨닫게 될 테니까. 그렇게 깨닫는 것이 더욱 아이들의 마음을 흡족하게 해 줄 테니까.
'집이 없으면 지으면 되지. 행복이 없으면 만들면 되고.' 요즘 이런 슬로건이 래퍼의 리듬처럼 경쾌하게 내 입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
마감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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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초겨울입니다. 모든 일은 처음보다 마무리에 많은 노력과 열정을 더 요구합니다. 막바지는 사람을 더 지치게 하는 속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속성은 우리를 더욱 용기있게 하고 투지를 불 태우게 합니다. 매 순간 극복은 아름다운 결과를 얻게 해주는 신뢰 자체입니다. 더욱 더 정진하십시요. 두 분께 용기와 큰 아름다운 사랑의 화합으로 집이 완성될 수 있도록 기도 드립니다.>
지난 주에 어느 분으로부터 이런 편지를 받았다. 이 글을 읽을 때 나는 콧날이 쌩 매워왔다. 요즘 나는 몹시도 지쳐 있었기 때문이었다. 허리가 아프고 손마디마디가 뻣뻣해지고, 게다가 일에 진력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와중에 내 등을 가만가만 두드려 주는 글을 보니, 가슴에 다시 화톳불이 지펴지는 것이다. 내게 다시 힘을 주신 牛步 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편지 글대로 무엇이든 시작보다 마무리가 어려운 모양이다. 아무리 시작을 잘 했더라도 마무리를 잘 못하면 뱀의 꼬리에 불과한 법. 집짓기는 특히 더하다. 처음 집 짓기를 시작할 때는 벽체만 세우고 지붕만 덮으면 집이 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벽체와 지붕은 겨우 반에 불과한 것이었다. 앞으로 남은 것은 지난 작업보다 훨씬 많고 어렵다. 게다가 손속도 안 나고 일 한 표시도 안 나고 시간은 시간대로 돈은 돈대로 들어가니 자꾸 뭔가를 손해보는 기분이다. 그러니 11월 말이면 입주하겠거니 하던 것이, 이젠 올 해 안으로 끝내면 다행이다, 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더군다나 날도 추워지고 체력도 딸리고, 처음보다는 일에 대한 열정도 한풀 꺾였으니 일은 점점 늦어질 수밖에.
남의 속도 모르고, 현장을 방문하시는 분들은 대개 집을 참 잘 짓는다고, 어디서 이런 기술을 배웠느냐고들 묻는다. 그 옛날, 다방 한구석에서 오지 않는 친구를 기다리며 성냥개비들을 쌓아올린 적이 있었어요. 하나하나 차곡차곡, 귀와 틀을 맞춰 쌓아올렸어요. 이 집은 그런 방식으로 지은 거예요. 나는 그렇게 대답을 하곤 한다. 그 말은 하나도 틀리지 않는다. 이 집은 성냥개비를 쌓듯 그렇게 통나무를 하나하나 차곡차곡 쌓아올린 것 뿐이다. 쌓다보니 집이 된 것이다. 통나무를 들어올릴 자신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방법이다.
지난 주엔 창호와 방문을 설치했다. 창문은 '현욱아빠' 때부터 거래를 해 온 읍내의 창문 전문업체에게 맡겨 버렸다. 일도 잘하고 값도 싸고 이러저러한 일(목수나 미장이 작업보조 등을 붙여주는 일)까지 도와주니 여러모로 만족스러웠다. 창문을 달고 나자 그제야 집이 반짝반짝 빛이 나는 것 같다. 사람이든 집이든 창문이 있어야 하고 그리고 그 창문은 우선 예뻐야 하는 모양이다.
창문 설치를 하는 중에 나는 지붕작업에 매달렸다. 처마 끝에 동 후레싱(빗물흘림)을 돌리고, 방수 시트 위에 아스팔트 슁글을 붙이기 시작했다. 슁글은 밤색 2중 그림자 슁글이다. 슁글 색깔은 다양하지만 그 중 밤색이 통나무와 가장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처음엔 슁글을 붙일 줄을 몰라 반나절을 궁리하다가 멀리 계신 현욱아빠게 전화로 여쭙고, 남은 반나절은 지붕에 쪼그리고 앉아 슁글을 붙이기 시작했다. 의외로 어려운 일은 아니었으나 속도가 너무 나지 않았다. 그래서 이 작업은 맨 마지막에 미루기로 했다. 방수 시트 때문에 물 샐 염려는 없으니 시간이 날 때마다 마치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하는 게임을 하듯 야금야금 붙여도 될 듯싶었다.
슁글 못.
이 못은 우리보다 한 발 먼저 집을 지으신 괴산의 '하선생' 부부께서 주신 것이다. 집을 짓고 남은 것이라고 하는데, 자재나 물건이 남아도 녹슬어 버릴지언정 남주지 않고 처박아두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들은 그걸 전해 주기 위해 험한 산을 구비구비 돌아 우리 집엘 다녀 가셨다. 슁글 못뿐이랴. 비 올 때 필요할 것이라며 넓은 천막도 주시고, 자재를 구입했던 영수증들까지 한 장 한 장 챙겨 주시니 참으로 고마울 따름이다. 언젠가 그들에게 우리들의 것들을 나누어줄 날이 분명 있으리라.
슁글작업
그런 중에 한전에서 전봇대를 실어왔다. 우리 집까지 전기를 끌기 위해 세 개의전봇대를 세웠다. 전기를 끄는 도중에, 공연한 심술로 그걸 방해하는 사람이 있긴 했어도 (한 아주머니 집 앞에 전주가 있는데, 한전에서는 우리 집 전기가 그 전주를 거쳐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그 아주머니는 무슨 심보인지 전선이 그곳을 통과하지 못하게 했다. 차후에 들은 얘기지만 그 아주머니는 우리가 집을 짓는 땅을 옛날부터 탐냈다고 했다. 그러니 우리가 눈에 가시일 수밖에) 그러나 그러거나 말거나 일은 순조롭게 착착 진행되었다.
집 짓기 중에서 가장 어렵고 힘든 작업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인슐레이션 작업이라고 말할 것이다. 이 작업은 힘들다기보다 참 짜증스러운 일이다. 마스크를 쓰고, 수영장에 다닐 때 쓰던 물안경까지 보호대로 착용하고 나왔지만 밀가루처럼 고운 유리분진엔 속수무책이었다. 하루종일 작업을 하고 나자 목이 칼칼하고 몸이 여기저기 가려웠다. 너무 가려운 탓에 조금 긁었더니 피부가 두드러기가 난 것처럼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인슐레이션을쓰지 말 것을 후회했지만 이미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후속 조치로 천장 반자의 틈새를 테이프로 철저히 막기로 했다.
내가 이렇게 유리 가루와 싸우는 동안 아이들 엄마는 보일러실 기초를 끝내고 있었다. 처음엔 어떻게 하나 보자,하고 일하는 중에도 은근히 곁눈질을 하곤 했는데, 나중엔 '정말 잘했어' 하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생전가야 험한 일 궂은 일 한번 안 해 본 손으로 어떻게 이런 힘든 일까지 할 수 있었을까? 아마도 그것은 용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할 수 있다는 용기와 믿음만 가지면 이 산을 저곳으로 옮길 수도 있다고 하지 않던가. 벽돌 조적은 물론 시멘트를 비벼 미장까지 한 폼새는 그야말로 아마추어 수준이 넘어 보였다. 이제부턴 조수라기보다 십장(什長)이라 불러야 할 듯.
인슐레이션 작업이 끝나고 미장 준비에 들어갔다. 하필이면 그 날부터 기온이 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니 자라처럼 목을 바싹 움츠리고 손바닥에 호호 입김을 불어가며 일을해야 했다. 바닥엔 100mm짜리 스티로폼(1호)를 깔고 그 위에 은박지를 덮었다. 스티로폼은 압축 강도에 따라 각각 1호 2호 3호로 나뉘어지는데, 가격이 다소 비싸더라도 바닥 만큼은 1호 짜리로 쓰는 게 좋다. 습기차단이나 단열면에서 월등하기 때문. 30평 바닥을 까는데 스티로폼만 80 여만 원이 들어갔다. 스티로폼 위에 은박지를 까는 이유는 열을 반사시키기 때문이다. 열 반사가 단순히 느낌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열 효율 면에서 좋은 효과가 있다고 한다. 전기 히터 등을 살펴보면 대개 은박지처럼 열을 반사 시키는 장치가 있지 않은가. 그게 그냥 폼이 아니라고 하니 은박지 값이 전혀 아깝지 않은 것이다.
내친 김에 하자고, 은박지 위에 엑셀파이프를 돌리던 날 전기공사까지 곁들였다. 30 여 평에 여덟 평짜리 다락까지 있으니 전기 작업이 만만치 않을 것 같아, 지인을 통해 전기 기술자 한 사람을 불렀다. 전업사 등에 전기 공사를 의뢰할 경우 평당 5 만 원 정도로 시공한다고 한다. 우리는 '쟁이'의 일당(15만원)으로 계산을 하기로 했다. '전기쟁이' 께 전기 설계도를 보여주자 알아서 콘센트나 스위치 따위는 물론 접지, 외등 선까지 빼 주었다.
이 부분은 벽 아래 부분이다. 원래 통나무집은 나무에 홈을 파고 전선을 넣는 게 보통이지만 우리는 이 부분에 각목으로 프레임을 짜고 루바로 마감을 할 예정이다. 전선을 숨기고 방의 미관을 위함인데, 이 방법은 현욱아빠의 감각을 조금 빌린 것이다.
다음 날은 곧바로 미장에 들어갔다. 일기 예보에 날이 매우 추울 것이라고 하여 걱정을 많이 했는데, 날은 의외로 푸근했다. 미장이 한 분과 보조 네 분, 모두 다섯 분을 불러 반나절 만에 끝내 버렸다.
현관으로 들어가는 곳에 레일을 설치하여 수레가 쉽게 들어갔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무거운 시멘트와 모래를 들것에 지어 날아야 했을 것이다. 시멘트는 일명 '대빵'이라고 하는 커다란 통에 물과 함께 쏟아 붓고, 전기드릴을 이용해 반죽을 했다. 삽으로 하면 시멘트 반죽이 무척이나 고될 것인데, 드릴을 사용하면 반죽도 잘 될뿐더러 일도 아주 쉽다. 당연히 힘이 좀 센 드릴이어야 한다.
이렇게 '사모리'를 채워 넣는다. 이 작업을 일명 '방통'이라고 부르는데 이 부분에서는 사람마다 의견이 분분하다. 엑셀 사이에 깬 돌이나 콩자갈을 깔아야 단열이 좋다고 하는 분도 있고 또 어떤 사람은 물 없이 시멘트와 모래만 섞은 일명 '사모리'를 채워야 바닥이 단단하다고 한다. 우리는 깬 자갈을 넣고 싶었지만 시간과 품이 너무 들 것 같아 사모리를 채우기로 했다. 엑셀을 돌리고 자재를 사고 미장까지 하는데 약 200 여만 원이 들었다.
그 와중에 아이들 엄마는 혼자 김장 준비를 했다. 혼자 배추 100 포기를 하는것은 만만치 않은 일이었지만 "까짓거 집도 지었는데!" 하며 꾸역꾸역 혼자 김장 준비를 했다. 혼자 항아리를 씻고 배추를 절이고 무를 다듬고 하는 모양이 보기 안쓰러워, 내가 기꺼이 조수가 되어 주었다. 그래서 까짓거 파를 까라면 까고, 마늘을 까라면 깠다. 물론 생강도 깠다.^^ 밤 늦게까지 무를 채 썰고, 그 다음 날은 또 전쟁터 같은 현장에 나가 피와 땀을 흘렸다. '전쟁터'니 '피와 땀' 이니 하는조금 과격한 표현을 썼는데 그 말은 과장이 아니다. 60 일이 넘게 나무와 씨름을 하며 나는 머리가 두 번이나 터졌고 다리가 부러졌고, 손가락마다 망치로 두드려 피멍을 들였다. 그러니 내겐 전쟁터가 아니고 무엇이랴. 오로지 나 자신과 싸우는 전쟁이긴 하지만.
그리고 또 내친 김에 현황 측량까지 해 버렸다. 현황측량이란 허가된 장소에 집이 들어 앉았는가 하는 것을 측량하는 것이다. 게다가 준공 서류까지 모두 군청에 접수 시켰다. 서류가 통과되기까지 얼마 간의 시간이 걸릴 것이므로 미리 집어넣는 게 좋을 듯싶었다. 정화조준공, 토목준공( 토목 준공은 밭이나 논을 대지로 만들어 집을 지을 경우에만 해당한다), 건축준공 등등 서류가 너무 많아 헷갈렸지만, 행정이란 사실 서류만 완벽하면 어려울 게 하나도 없는 것이다. 메모지에 하나하나 적어, 순서대로 차근차근 서류를 준비하고, 치통앓는 표정을 하고 있는 군청직원에게 넘겨주면 그만이다.
현황측량은 집짓기 허가를 대행해 준 토목공사에 맡겼다. 우리는 참 이상하게도, 우리와 거래를 하는 업자들마다 노임을 절반 정도 씩 싸게 해 준 것이다. 콘크리도 기초를 할 때 고작 300만 원에 했고(원래 30여평을 하려면 600 정도가 든다고 한다), 통나무도 싸게 샀고 측량비 역시 10 만원에 해 주었다. 지하수는 65 만 원에 파기도 했다. 올 때마다 커피를 끓여주고 다정하게 대해 주었던 아이들엄마가 예뻐서일까? 아닐 것이다. 아이들엄마는 착하다는 소리는 들을지언정 이쁘다는 소리는 들은 적이 별로 없다. ^^ 그러면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그들과 우선 친해졌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우리의 처지(혼자서 집을 짓는 것)를 설명하고, 가격을 적절하게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상의를 했기 때문이다. 공정 과정과 자재 구입로 등을 묻고, 내가 조금 품을 팔게 되면 반값 정도로도 가능한 일이 많다.
오늘은 일요일. 할 일은 태산 같은데, 방바닥 미장을 하는 바람에 일도 못하고 바깥에서만 빈둥거려야 했다. 마당 정리도 하고 산더미처럼 쌓인 나무껍데기들을 모아 불을 질렀다. 껍데기를 하찮게 여기는 사람이 많지만 사실 껍데기는 무시할 게 아니다. 왕겨라고 부르는 벼껍데기의 쓰임은 얼마나 많은가. 게다가 조껍데기로는 술도 담고, 북어껍데기는 개 보약으로 쓰고, 화투에 푹 빠진 사람들은 비껍데기 똥껍데기 만큼은 파출소 앞에서도 주어먹지 않는가. 그러면 낙엽송 껍데기는? 당연히 불 붙이는데 으뜸이다. 성냥에 불 붙이듯 불만 대면 화르륵화르륵 불꽃을 피우니, 두고두고 아껴서 겨울마다 모닥불 용으로 쓰고 싶을 정도다.
오늘은 내게 집 짓는 의욕을 불러 일으킨 장본인인 현욱아빠께서 다녀 갔다. 일분 일초도 쉴 새 없이 바쁘신 분께서 혼자 낑낑거리며 집을 짓고 있는 우리를 응원하기 위해 먼 걸음을 하신 것이다. 집이 아주 웅장하고 멋지다는 평을 들었을 때 조금은 부끄러웠다. 사실 나는 현욱아빠를 흉내낸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었다.
위의 집은 모두 현욱 아빠가 직접 지은 것이다. 집이란 기능적인 면 외에 미적인 면까지 어우러져야 하는 것이라 믿고 있다. 그런 면에서 현욱아빠가 지은 집들은 어느 전문가보다 훌륭하다. 그가 지은 집에서 나는 2년 여 동안 호강을 하고 있다. 처음엔 흙집에서 두 번째는 나무집에서. 지금 살고 있는 집은 우리가 집을 다 지을 때까지 살라고 선뜻 내어 주신 것이다. 흙집은 흙집대로 나무집은 나무집대로 안락함과 평온함을 느끼게 해 주었다. 이런 집들을 내게 사용하게 허락해주신 그 분께, 게다가 바쁜 와중에서의 행보임을 알기에 더욱 감사할 따름이다.
밤이 이슥해서는 마을할머니들께서 마실을 왔다. 그리고는 한참을 깨알 같은 수다와 웃음을 털고 가셨다. 마을 누구누구를 흉보기도 하고 또 누구누구를 칭찬하기도 하고, 그리고 자식 자랑 손주 자랑에 나중엔 인생에 관한 얘기까지 진지하게 나누셨다.
"사는 게 별거간디? 그저 사람들 마음 아프게 하지 말고, 서루서루 잘 어울려 살면 그게 잘 사는 겨. 겨 묻었으면 털어주고 똥 묻었으면 닦아 주고, 그러면 모두다 이뻐 보이구 구여운 것인데, 그저 그걸 못햐 미워하고 원수 삼구들 하니 원, 쯧." | | |
첫댓글 감동이다..................^^
감동이다..................^^
새내기 농군입니다,라파즈석고드 쓰셨네요,저는 지금 라파즈코리아석보드 울산공장에다녀요, 언젠가 귀농을 꿈꾸며 오늘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헉~~~~소설한권 읽었습니다. 노고에 찬사를 보냅니다..왕 부럽다. 좋은집에서 행복하게 사세요~~
감사합니다~~~감동있게 읽었습니다! ! ! 집짓는 실력도 좋지만 글 재주는 더욱 좋습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스크랩해갑니다
나무의 살아온 일생을 생각하며 나무집을 짓지말걸 그랬어..하며 기분이 안좋았다는 말씀에 왠지 눈시울이 뜨거워 집니다...나무...우리에게 온통 다 내어 주는 정말 무진장 고마운 존재 이지요...북어 껍데기가 개에게 보약이란 것을 아시고...^^ 만물 박사 이십니다. 정말 고생 하셨고요, 좋은 글까지 남겨 주셔서 감사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