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과 자녀 교육
차 례(hypertext)
1. (허남기, 1980.5.[만남]에서)
2. (주선애, 1982.8.[만남]에서)
3. 김종춘, 1986.5.[만남]에서)
4. (문봉학, ,, ,, )
5. 한선자, ,, ,, )
6. (김재은, 1988.8.[만남]에서)
7.떻게 해야 하나(좌담,1989.6.[만남]에서)
8. (김정주, 1990.5.[만남]에서)
9. 주진옥, 1990.5.[만남]에서)
10. 조의숙, 1991.5.[만남]에서)
11. (특집좌담, ,, ,, )
12. 김이영, 1991. 5. [만남]에서)
13. ?(박남숙, ,, ,, ,, )
14. (전옥희, ,, ,, ,, )
15. (이영신, ,, ,, ,, )
16.(강덕치. 1992. 4. ,, )
17. (조의숙, ,, 5. ,, )
18. 1996. 5. ,, )
19. (이현숙, 1997. 8. ,, )
20. (이현숙, 1997. 9. [만남]에서)
가정과 자녀 교육
허 남 기 목사
(1980.5.[만남] 5월호에서 전재)
가정교육에 대하여 개혁자 마틴. 루터는 "가정은 최초의 학교이며 부모는 최초의 교사"라고 말한다. 자녀를 교육하는 가장 중요한 장소가 바로 가정임을 강조하는 말이다. 이것을 가장 철저하게 실천에 옮기고 있는 민족은 아마도 유대인일 것이다. 철저한 가정교육을 통하여 유대인들은 2천년의 유랑생활 속에서도 그들의 신앙과 민족의 동일성을 유지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기독교 가정 교육에 대한 몇 가지 귀중한 교훈을 배울 수가 있다.
첫째는 교육현장으로서의 가정의 중요성이다 : 자녀들은 가정에서 최초의 신앙훈련과 사회적응훈련을 받는다. 가정에서 받은 최초의 경험과 인상은 그 사람의 생에를 통하여 사라지지 않고 그 사람을 지배한다. 따라서 가정교육이야말로 교회와 국가와 사회를 위한 기초적인 훈련이라 할 수가 있다. 그러므로 가정 교육을 무시하는 것은 모든 질서의 기초를 무너뜨리는 것이며, 전세계를 혼란과 소동으로 이끄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우리는 교육현장으로서의 가정의 중요성을 새롭게 인식해야 할 것이다.
둘째로는 부모의 교육적 사명의 중요성이다 : 가정에서 자녀들을 교육하는데 있어서, "부모는 하나님을 대신하는 존재"로서 인식되어야 한다. 부모가 하나님을 대신한다는 말은, 부모가 마치 하나님처럼 절대적인 존재로서 군림한다는 말이 아니다. 부모는 하나님의 의도하시는 대로 자녀들을 양육하며 교육시켜야 한다는 말이다. 이 일을 위하여 부모는 가정 안에서 통치자, 감독자, 목사와 설교자, 재판장, 교사 등등의 다양한 입장에 서서, "회초리 곁에 사과를 놓은 절도 있는 형식으로" 자녀들을 교육시켜야 하는 것이다. 부모들은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 안에서 자녀들을 가르칠 의무가 있다. 이 의무를 올바로 수행 할 때에는 하나님의 축복이 약속된다(잠3:1~2, 4:10~, 히 12:11~ ).
이 의무를 태만히 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자녀들을 미워하며 파멸시키는 것이 된다(잠13:24, 29:15). 자녀를 잘못 교육한 부모는 자녀의 육신만 양육했지 그들의 영혼을 죽인 것이나 다름이 없으므로 강도보다 더 나쁜 사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와 같이 부모의 교육적 사명은 실로 막중한 것이다. 어떻게 하면 자녀들을 건전하고 경건한 심령의 소유자로 양육할 것인가를 연구하는 것은 부모 된 자의 엄숙한 의무인 것이다.
시급한 하나의 과제 : 그러나 현실적으로 볼 때, 자녀에게 훌륭한 교육과 훈련을 시키려 해도, 부모가 그러한 능력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면,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 된다.
여기에서 하나의 시급한 과제는 부모 자신의 교육 문제이다.
부모들에게 자녀들을 교육 훈련시킬 능력을 부여하는 일이 시급하다는 말이다. 이 일을 위하여 우리는 교회와 가정의 협력을 우선적으로 고려해 보아야 할 것이다. 즉 교회는 가정의 교육적 기능을 증진시키기 위하여 부모들을 훈련시키는 여러 가지 교육계획을 실시해야 한다. 지금 영락교회 교육부 산하에는 어머니 교실이 있어 어린 자녀를 가진 어머니를 대상으로 특별교육이 실시되고 있으나 앞으로는 범위가 더 넓어져야 될 줄로 안다. 한편 교인들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교육계획에 관심을 가지고 이에 적극 참여함으로서, 우리의 가정으로 하여금, 교회와 사회와 국가를 위하여 자녀들을 기초적으로 훈련시키는, 가장 중요한 교육과 훈련의 중심지가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가정예배와 청소년의 신앙지도
주 선 애 권사(장신대 교수)
(1982.8.[만남] 8월호에서 전재)
청소년 문제가 날로 심각해지고 있는 현실 속에서 믿는 부모로서 그들의 신앙지도에 관한 문제들은 매우 심각하기만 하다.
한경직 목사께서는 "사도 바울에게서 배운다"라는 저서에서 "신앙인 이기에 앞서 참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참인간이 될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럼 인간교육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농부가 곡식을 잘 자랄 수 있게 돌보는 것과 흡사하다. 농부가 곡식에 대해 잘 알듯이 가정 안에 있는 청소년들을 잘 지도하기 위해서는 그들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
[청소년 선도], [청소년 지도]라는 표어를 내걸고 그들을 지도하려 하지만 청소년들은 오히려 이런 표현에 적지 않은 반항심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부모들은 의심, 불신 등 부정적인 면만을 보이게 앞서 인격적 인간을 새로이 탄생되는 제2의 탄생기인 이 청소년기를 갖은 동정과 이해로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관계 형성이 필요하다.
그런데 기독교적인 교육을 실시하기 위한 성경의 예가 그리 많지 않음은 조금은 아쉬운 일이다. 예수 님의 30여 년의 생애에 아동기와 청소년에 관한 것은 눅 2:4에 불과하였다. 예수 님은 유월절에 부모와 떨어져 홀로 성전의 랍비와 토론하였고, 신성을 배제하고라도, 과도기적 행동이 정상적인 발달과정에 큰 변화를 보여주는 것이다. 부모에게 걱정을 주어 사과하기보다는 오히려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할 것을 알지 못했습니까? 라고 반문한다. 이는 이미 12세의 예수 님이 하나님 관계 안에서 자아를 발견하고 이를 고백한 것이다.
따라서 청소년 때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하나님과 사회와 역사 그리고 교회의 관계 안에서 자기를 올바로 깨닫고 누구인가 하는 것을 발견하는 것이다.
깨닫는 일 이것이 청소년을 교육하는 목표가 되어야 한다. 그들이 떳떳한 주체의식과 자신의 생활을 올바로 갖도록 인도해야 한다.
예를 들어 칠 천 명의 사춘기의 미국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발견된 심적 상태를 분리해 보면, 청소년들의 마음속에서 나오는 첫째, 자기 증오랍니다. 이는 소속의 불안정에서 오는 자기 경멸, 자기 불신 열등의식입니다. 어른처럼 몸이 켜져 어른 노릇을 하려고 보니까 자신이 없고 아이들처럼 후회를 하고 보니까 안 되겠고 또 전진을 하려고 보면 뭔가 도무지 자신이 없어 한다. 그런데도 자기가 어디에 속하는 것을 어린이에 속하는지, 어른에 속하는지 이 소속감을 찾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이 없고 불안하고 초조하고 이런 데서 오는 자기 경멸이 없지 않다. 부모들은 이런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 그런 자신을 생각하며 그들은 장난과 춤과 농담을 즐기다 자신을 더욱 미워해 자살까지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모들은 이런 청소년들을 오히려 동정으로 이해해야만 한다.
둘째는, 심리적인 고아라는 것이다. 그런 마음을 가진 청소년들을 대개가 [나는 부모가 있어도 심리적으로 고아다. 우리 부모가 나를 이해 해 주지 못한다. 그리고 부모의 이상과 나의 이상은 너무 차이가 있다해서 부모는 자주 누르기만 하니까 나는 모르겠다 자아를 스스로 포기해 버린다. 학교 갔다가 집에 돌아와서 TV보다 자고 또 아침에 밥 얻어먹고 나갔다가 하숙집처럼 그저 부딪치지만 말고 왔다 갔다 하자]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보니 집이 따뜻한 자기의 보금자리가 아니고 할 수 없이 들어 왔다가 할 수 없이 나가는 이런 상황에서 아이들은 무척 고독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이상한 아이들만 느끼는 감정이 아니라, 전체 정상적인 아이들도 느끼는 감정이라는 것을 우리는 이해해 주어야 하겠다.
셋째는, 사회가 불의 하다는 것이다. 구체적이면서도 날카롭게 사회정의에 대해 판단하고 실현시키고자 시도한다. 그들의 눈에는 대부분의 사람은 마음에 안 들고 정치하는 사람도 마음에 안 들고 자기의 윤리적인 새로 발달된 윤리관으로 볼 때에 어떻게 이렇게 썩었느냐는 것이다.
그렇다고 자기가 올바르냐 하면은 자기도 올바르지 않지만 눈만 높아 가지고 날카롭게 비판을 하면서 이 사회 정의에 대해 구체적이다. 좀 올바르고 공평하게 공정하게 이런 절규가 학생들에게 있다는 것이다.
넷째는, 독립하겠다는 것이다. 어릴 때와는 달리 자신의 생은 자신이 판단하고 선택하려 하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주신 마음이다. 어린아이가 엄마 품을 떠나 성장하여 독립된 자기 가정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독립심이기 때문이다.
다섯째는, 반항심이다. 이유 없는 반향을 한다는 이야기는 사실 어떤 조건, 사실이 아닌 본래적인 고독, 우울, 초조, 긴장에 눌려 있다가 자극만 오면 폭발되어 버리게 된다. 이는 자기의 모든 지적발달이나 자기 발달, 재능 정도에 따라 사리를 분별해 보고 스스로가 무엇에 도움이 되겠다는 욕구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부모에 의해 강요되지 않은 독립적 신앙을 가지려고 한다. 이들이 여기서 신앙문제가 일어난다.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예수 님께서 하신 말씀대로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했습니까? 하는 식으로 자기와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참 나의 생을 맡아 주시는 이가 하나님이시니, 하나님께 나의 생을 전적으로 다 맡기고 나의 갈길 다 가도록 주께서 인도하실 것이라"고 하는 그런 신앙 인으로서의 참 기쁨 희열을 맛보고자 하는 아이들의 부르짖음이 아이들 속에 영혼 깊숙이 서부터 있다는 것이다. 말씀드리면 청소년기를 하나님을 찾아야 하는 시기, 하나님과 관계가 이루어져야 하는 시기이다.
이런 여러 가지의 감정을 지닌 청소년들은 대개가 부모와 말을 하지 않는다. 대개의 부모는 이 막힌 대화의 벽을 걱정하면서 그 해결점을 찾습니다. 그럼 이들은 어떻게 지도해야 하나, 그것은 사랑이다. 사람은 사랑을 느끼며 살아야 한다. 이렇게 고독하고 외로울 때 진정한 사랑이 요구되는데 그 가정의 분위기가 아늑하고 안정되어있고 부부간의 참사랑이 그들에게 보여지고, 자식에 대한 부모의 이해와 참사랑이 그들이 발견할 때 모든 것은 해결 될 것이다.
부모들의 사랑 섞인 관심이 필요
성경말씀에 보면 예수 님께서는 그 지혜와 키가 자라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갔다고 했다. 우리 부모들이 자녀를 교육할 때 "공부 좀 해라"고 강요만 하지 말고 사랑이 깃 든 따뜻한 관심이 필요하다. 산업사회가 되면서 서로가 바쁘기 때문에 자녀들에 대한 심한 간섭이 오히려 그들에겐 작은 반항 감을 갖게 할 수도 있다.
방법적인 좋은 면은 많은 잔소리보다는 손을 잡아 준다든지, 어깨를 감싸주고 두들겨 주는 촉감 적인 사랑도 필요하기도 하다. 부모들의 사랑 섞인 관심을 자녀들은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자녀들의 친구가 돼 주어야
부모들은 부모라는 공유 자로서 만날 것이 아니라 친구로서 만나 주는 것이 자녀들에게는 더욱 필요하다. 친구로서 "요새 너 생활이 어떠니?"하는 식으로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대화식으로 하면 서로가 부드러운데, 조사하는 식으로 따지거나 재판 받는 식으로 한다면 피차 괴로운 일이다. 이야기하는 것보다 많이 들어주고 이해해 줌이 필요하다. 대개의 부모와 자녀간의 문제가 서로가 이해하지 못하는데서 생긴다. 부모들은 자녀를 잡아매려는 경향과 또한 그 속박에서 벗어나려는 자유의식이 그 문제의 원인이 된다.
그리고 자녀를 편애하지 말고 공평하게 사랑을 해야 자녀들에게 사랑을 받는데 대한 결함이 없고 어느 정도 문제점도 해결되게 된다. 그런 가운데 자녀들에게 세속적인 꿈보다는 억울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정직하고 평화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주역이 되어야 한다는 이상적이고 선교적인 사명을 갖게 큰 꿈을 심어주고 그것을 위해 열심히 공부하라고 결려해 주어야 한다. 이런 꿈을 키워나가기 위해서는 가정의 문제를 잘 해결하여 자녀들에게 안정감을 불어넣은 상태에서 자기 자신의 나갈 길을 찾도록 해야 한다.
부드러운 말씨로
또 하나 우리 자녀들을 키우기 위해서 부모들이 조심해야 할 것은 언어 성이다. 너무 자녀에게 신경을 쓰기 때문에 신경이 예민해져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높은 음성이라고 생각하지만 자신은 너무 흥분해서 큰 소리를 친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다. 큰 소리를 쳤기 때문에 저쪽에서 큰 소리가 나왔으면 내 큰소리는 못 듣고 저쪽 큰 소리만 듣고 그럴 수가 잇느냐 하면 싸움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모들은 자제하여 자녀들에게 부드러운 말씨를 써야하며 이런 행동이 습관화되어야 한다. 어느 책을 보니 "아이들에게 말할 때는 늘 리듬 있게 하라"했는데 말의 리듬이 무엇인고 하니, 아이들에게 "밥 먹어라"하면 좀 직선적이 되고 "밥 먹을 시간이 됐는데 같이 밥 먹자꾸나"하면 가정의 분위기가 달라진다고 한다 "밥 먹어라"하는 군대식의 명령조는 될 수 있는 한 피하는 것이 좋다.
가정예배를 좀 더 효율적으로
가정예배는 어떻게 드려야 하는가? 에 대한 문제는 그 가정의 형편에 따라 다르겠지만 다음의 방법을 제시해 본다. 어떤 가정에서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예배를 드리는데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몇 장씩 읽고 대표로 어른들이 길게 기도를 하니 아이들의 마음속에는 지루함을 갖게 하고 있다. 자녀들을 위한다면 자녀 중심의 예배가 좀 더 효율적이다. 시간을 봐서 방학 때는 좀 길게 은혜롭게 할 수 있고, 때에 따라 짧게 할 수도 있고 아이가 피곤하면 너무 강요하지 말고 그 자녀를 위해 기도해 주고 아주 바쁘면 가방을 든 채로 기도해 줄 수도 있는 형식과 억지로가 아닌 자유로운 가정예배가 좋을 것 같다. 다시 말해서 아이들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예배가 되었으면 한다.
어느 가정에서는 첫째 아이는 이번 주 예배를 맡고 그 다음 주간에는 둘째 아이, 셋째는 또 그 다음 주간에, 이렇게 자기 나름대로 예배를 지도하여 아이들이 사회보고 기도하고 하는 식이 좀더 자녀들은 가정예배에 흡수시키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가정예배시간에 부모들이 주의해야 할 것은 그 시간만은 잔소리가 없어야 하는 점이다.
오히려 기도시간을 통해 자신의 죄를 회개하게끔 리드하는 것이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만남이 되는 것이다. 때로는 부모 자신도 함께 기도하는 시간에 눈물로 회개할 수 있어야 자녀들이 본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는 가정이 되었으면
우리 부모가 자라던 세대와 지금 우리 자녀들이 자라고 있는 세대는 몇 십 배의 차이가 있다. 이해하기 힘든 공백을 우리 부모들은 좀 더 이해하고 좀더 사랑으로 관심을 보여 주어 이 험난한 세상에서도 쓰러지지 않는 믿음의 가정이 되기를 바란다.
"항상 기뻐하는 가정
쉬지 말고 기도하는 가정
범사에 감사하는 가정이 됩시다."
크리스천 가정의 자녀교육
김 종 춘 목사(구로교구 담당, 중등부지도)
(1986.5.[만남] 5월호에서 전재)
"오늘날 그리스도인의 가정에서 성경을 가르치는 일에 얼마나 열심인가를 반성해야 하겠다. 온갖 유혹이 가정을 유린하고 있는 핵가족 시대에 말씀과 기도를 가르쳐 생활화하는 이스라엘의 쉐마교육을 강조하고 싶다."
신록의 계절 오월은 풍요롭기만 하다. 그래서 오월은 계절의 여왕이라고 했는지도 모른다. 오월에는 어린이날과 어버이 날, 그리고 스승의 날이 들어있다. 이와 같이 뜻깊은 오월에 "어린이는 나라의 새싹이다."라는 말이 생각난다. 사실 예수께서도 "하늘나라는 어린이의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공관복음서에 의하면 예수께서 어린이들을 축복하셨다고 분명히 기록하였다. 미래사회의 주인공이라고 볼 수 있는 새싹들에게 축복하신 예수 님을 생각하면서 이상적인 기독교 가정의 역할을 성서를 중심으로 찾아보려고 한다.
성서에서 가정의 기초가 될만한 말씀을 찾아보면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습을 닮은 사람을 만들자! 그래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 또 모든 들짐승과 땅 위를 기어다니는 모든 길짐승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당신의 모습대로 사람을 지어 내셨다. 하나님의 모습대로 사람을 지어내시되 남자와 여자로 지어내시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복을 내려 주시며 말씀하셨다. 자식을 낳고 번성하여 온 땅에 돌아다니는 모든 짐승을 부려라!"(창1:26~28:공동변역) 이 성구는 하나님께서 가정을 세우셨다는 사실을 알게 한다. 그러므로 가정은 사람들이 노력하면서 살아본 결과 경험을 통하여 혹은 연구해본 나머지 형성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섭리가운데 이루어진 것을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뜻이 있어 가정을 세우셨다는 것은 성서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구속역사의 주인공들을 통해서 분명해진다. 하나님께서 믿음의 조상이라고 불리 우는 아브라함을 선택하여 인류를 구원하려고 할 때, 그 자손에게 복을 주고 그 자손을 통하여 약속을 이루어 나간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자신을 소개하였다. 다시 말하면 경건한 가정을 통하여 경건한 자손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구속 역사를 이루어 가셨다는 말이다.
하나님의 사람 모세는 이스라엘 민족을 인도하여 광야 생활에 들어갔다. 여기에서 이스라엘 민족의 미래를 내다보면서 그는 다음과 같이 당부한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 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6:4~5) 계속하여 이르기를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할지니라." 이 성구는 이른바 [쉐마]교육 지침이다. 원래 [쉐마]란 히브리어 발음인데 그 뜻은 "들으라"이다. 사도 바울도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느니라"(롬10:17)라고 지적했듯이 들려주는 이와 듣는 이가 있어야 믿음이 시작될 수 있다는 뜻이다. 부모는 자녀들에게 신명기 6장4~5절 말씀을 일러주어 암송하는 것은 물론, 그 말씀을 생활화하기까지 말로, 혹은 생각으로, 혹은 기도와 행동을 통한 생활로 가르쳐야 하는 책임이 맡겨져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유리 방황하는 가운데 때로는 이방에 포로로 잡혀가서 모진 고난을 당하였지만, 줄기차게 유일신종교로 그 뿌리를 내리게 한 원동력이 어디에서 생겼을까? 그것은 간단하게 [쉐마]교육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쉐마]교육은 위기를 만났을 때 위기를 극복할 힘과 의지를 심어 주었던 것이다. 여기에서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창의력이 발달하였다고 볼 수 있다.
오늘날 이스라엘 민족이 노벨상 수상자의 15%를 차지하여 세계에서 단일민족으로 가장 많은 수상자를 배출하고 있는 통계나, 미국 하버드대학의 교수들 중 전체의 40%를 차지하고 있다는 보도는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가? 뿐만 아니라 예수께서 말씀하신 첫째가는 계명은 신명기 6장5절을 인용하여 설명한 것을 공관복음서에서 읽을 수 있다.(마22:34~40, 막12:28~31, 눅10:25~28) 예수께서 첫째 계명과 둘째 계명(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이 모든 율법과 예언서의 골자라고 말씀하셨다. 예수께서도 어린 시절에 가정에서 [쉐마]를 암송하고 회당에 나가서 랍비에게 율법을 배웠다고 본다. 이렇게 볼 때 오늘날 그리스도인의 가정에서 이 막중한 책임인 성경을 가르치는 일에 얼마나 열심인가를 반성해야 하겠다. 핵가족 시대에 온갖 유혹이 가정을 유린하는 복잡한 사회에서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성패는 경건한 가정생활에 있다고 볼 때 특히 어린 자녀 손들에게 이스라엘의 [쉐마]교육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누가복음 23장 46절에 보면 "예수께서 큰소리로 아버지, 제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하시고는 숨을 거두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성구는 시편31장5절을 인용한 것인데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운명하실 때 외우신 이후, 교회 사상 많은 신도들이 이 성구를 외우며 그들의 마지막 숨을 거두었다. 예수께서 이렇게 기도하시고 운명했다고 볼 때, 예수께서는 기도할 줄 아는 가정에서 자랐다고 말할 수 있다. 요셉과 마리아의 경건한 기도생활을 가정에서 배우고 자라난 예수 님처럼 오늘날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가정생활을 영위하려면 자녀들에게 기도를 가르치며 기도의 모범을 보여줄 수 있는 부모가 되어야 할 것이다.
기도에 관한 실례를 성서에서 찾아보면 음식을 위한 기도이다. 예수께서 가르치신 기도 가운데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주옵소서"(마6:11)하는 기도문이나 바울이 디모데에게 가르친 말씀 가운데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은 모두 다 좋은 것이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으면 하나도 버릴 것이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신도들의 기도를 통하여 거룩하게 되기 때문이다.(딤전4:4~5: 공동번역)라는 말씀은 음식을 대할 때 기도해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말하자면 여기 인용한 성구들은 식사기도의 근거를 말해주고 있다. 성서에 식사기도를 뒷받침 해주고있는 성구는 더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오늘날 날로 증가하는 질병문제가 먹는 일과 무관하지 않다. 성서의 가르침대로 무엇을 먹든지 마시든지 경건한 기도를 드려서 구별된 음식으로 확신한 다음 음식을 먹는다면 늘 강건하리라고 믿는다. 그러므로 음식을 놓고 기도하는 일은 부모가 자녀들에게 어렸을 때부터 경건하게 훈련시켜야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신6:4~5, 눅23:46, 딤전4:4~5) 이 성구들은 가정에서 부모와 자녀들이 꼭 암송하여 생활화해야 하겠다.
이렇게 볼 때 말씀과 기도를 가르치며 생활화하는 길이 크리스천 가정의 자녀교육으로서 가정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하나의 열쇠라고 생각한다.
만일 부모와 자녀들이 같이 기도로 시작하고 기도로 끝을 맺는 시간을 많이 가진다면, 오늘의 가정파탄을 가져오는 이혼문제나 점점 심각해져 가는 청소년 범죄 등 가정의 문제가 해결되리라고 믿는다.
엄마가 자녀에게
문 봉 학 권사(영락유치원 원장)
(1986.5.[만남] 5월호에서 전재)
사랑하는 석아 ! 옥아 !
그 동안 하나님의 은혜로 무럭무럭 잘 자라겠지? 엄마는 한시도 마음을 너희들에게서 떠난 적이 없단다. 비록 몸은 잠깐 잠깐 떨어져 있지만 마음과 정신은 자나깨나 너희들 생각으로 가득 찼단다.
그래, 석이와 옥은 부지런히 커서 귀하고 큰 사람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야, 엄마는 너희들이 잘 자라주는 것만이 마음의 소원이란다. 그런데 엄마가 너희들에게 잘못한 일이 이 편지를 쓰는 동안 생각이 나는구나! 뭐냐고? 날마다 공부 잘하라고만 귀가 딱지 지도록 말한 것도 생각나고, 놀지 말라고 잘못하지 말라고 말한 것 등, 엄마로서 욕심만 부리는 말을 너무 많이 한 것이 미안하게 생각되는데, 정말은 엄마의 아들과 딸이 이 세상에서 제일 귀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지.
엄마가 생활에 바쁜 일 때문에 그리고 분주하게 나가 다니다보니, 집이 비어있는 시간이 많아서 학교에서 오면 반가이 맞아준 적이 별로 없었던 것도 엄마의 책임을 못 한일 중 하나로 엄마는 정말 미안하게 생각한단다. 하나님 앞에서 엄마로서 바르고 잘한 것이 무엇인가? 곰곰이 생각해 보니 마음과 눈에서는 눈물만 줄 줄 쏟아졌단다. 왜냐하면 엄마도 이렇게 하나님 아버지께 약속을 지키지 못한 일, 예수 님 말씀대로 살지 못한 여러 가지 일들이 생각나면서 부끄럽고 죄송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어 그 순간, 하나님 제발 용서해달라고...
앞으로는 하나님 말씀대로 잘 살겠다고, 그리고 자녀를 바로 사랑하겠다고, 회개했단다. 이 부족한 엄마를 용서해 줄 수 있지!
석아! 옥아! 엄마도 못 깨달았기 때문이야,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자기를 모르고 하나님 아버지를 바로 알지 못할 때, 인간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너무 자녀에게 과잉 보호를 하다보면, 지나친 욕심이 눈에 보이는 세상 적인 것에 마음을 빼앗겨, 자녀들을 들 복개되는데 정말은 너희들 심령이 잘 자라는 것이 더욱 중요한 것을 엄마가 이제야 깨달았단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과 딸은 모든 생활에 모범이 되어야겠지. 이제부터 바라는 엄마의 마음은 조금 달라졌단다.
석아! 옥아!
엄마를 그전처럼 바라보지 말고 엄마도 많이 참다가 꼭 필요한 이야기나 부탁할게, 더욱 생각과 행동을 잘 해주기 바란다. 엄마가 너희들을 매번 야단치고 잔소리한 것처럼 예수 님이 엄마 잘못할 때마다 야단 치셨으면 엄마도 남아나지 않았을 거야! 어쨌든 너희들에게 편지 쓰다가 엄마의 잘못도 생각났으니 너무 감사한 일이야! 그 동안 엄마가 엄마의 감정대로 잘하라고, 또는 하지 말라고, 명령만 한 것도 이제 예수 님 앞에서 부끄러워지는구나!
석아! 옥아!
첫째는 예수 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되어야 해, 그러면 엄마 마음에도 아니 이 세상사람 마음에 기쁨을 주는, 더 사랑 받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꺼야. 이제부터 엄마하고 너희들과 하나님 앞에서 내기할까? 무엇을 어떻게 내기 하냐고!.....
언제나 어디서나 예수 님께서 하라고 말씀하신 것은 열심히 하고, 하지 말라고 하신 것은 안 하기로, 이제 엄마 말씀이 아니고 예수 님 말씀대로 우리식구가 꼭 지키면 엄마도 매번 너희들을 야단 치지도 않고 날마다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열심히 일하고, 공부하고 놀고 재미있게 살아가는 우리가정 행복한 가정이 되자꾸나.
엄마로부터.
부모와 함께 보는 편지
한 선 자 (시온성가대원)
(1986.5.[만남] 5월호에서 전재)
벌써 한참이나 깊어진 밤,
모든 일들이 하루를 가득 채웠던 분주함과 번잡스러움에서 벗어나 이젠 포근한 안식의 꿈나라로 빠져든 이 시간 새근거리는 숨소리마저도 삼켜버릴 듯한 어두운 밤입니다. 잠시 고개를 들어 생각해 보면 바로 엊그제만 같이 느껴지는 어린 그 어느 날, 처음으로 만든 유치하기 그지없는 빨간 카네이션과 서툴고 어설픈 글씨체로 가득 찬 꼬깃꼬깃한 편지글을 부끄러움과 왠지 모를 죄송함에 그 꽃만큼이나 상기된 얼굴로 부모님 앞에 슬며시 밀어드렸던 기억이 되살아납니다.
순간, 두 분의 양미간에 스쳐 지나던 놀라움과 어리다고만 여기셨던 조그만 딸에게 대한 대견스러움에 아무런 말씀도 잇지를 못하시고 열띤 눈으로 물끄러미 바라다보시던 그 무언의 표정, 고우셨던 모습을 그려봅니다.
하지만 저도 모르는 사이, 시간이라는 매개체는 그로부터 멀리 떨어져 나와 이제는 더 이상 꼬마여자아이와 젊음을 간직한 부모님으로 있을 수 없는 현실을 가져다주고 말았습니다.
가만, 고요히 잠드신 부모님 얼굴을 들여다봅니다. 어느 덧 이마엔 지나가 버린 세월들을 보여주려는 듯 굵은 골이 패이고, 하나 둘 돋아나기 시작하던 흰 머리카락을 구태여 들추지 않아도 눈에 띌 만큼이나 많아졌으며 또 항상 저희 형제들 주위를 맴도신 따스한 손길로 부모님의 두 손은 그저 잡아보기에도 민망하리만큼 까칠하고 거칠게 변해 버렸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지금의 두 분에게서 예전과는 다른 포근함과 애틋한 감사의 정을 느끼게 되는 것은 웬 이유일는지요. 그렇겠지요. 아마도 그건 현재의 모습 속에 우리 형제가 성장하는 동안 겪어야만 했던 수많은 고통과 질곡들, 그 때문에 몇 날 밤을 눈물어린 기도로 지새웠을 지 헤아릴 길 없는 숱한 나날들의 자취와 흔적을 남 몰래 감추어 두시고 오늘까지 묵묵히 가정을 지켜오신 이력을 안고 계시기 때문이겠지요. 당신들 주름살이 하나씩 늘 때마다 저희들의 걱정과 근심은 덜어졌고, 당신들 손가락 마디마디가 굵어질 때마다 저희들은 윤택함을 입었으며, 당신들 머리에 가느다란 서릿발이 늘어갈 때마다 저희들 무거운 등은 자유로움을 얻었고 두 분의 정성어린 기도가 드려질 때마다 저희들 영혼 속에 자리잡은 거친 소용돌이도 평안히 잠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당신의 젊음을 대가로 길러내신 저희가 이처럼 성장한 지금, 저희는 자식만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두꺼비 같은 부모님은 진정 바라지 않습니다. 비 온 뒤의 상쾌함과 청결함 마냥, 폭풍우 치는 파도가 지난 후 다가오는 바다의 차분한 평정 마냥, 지루한 어두움 후에 찾아드는 눈부신 태양 빛 마냥 지난 시절의 수고는 저리 밀쳐 두시고 싱그럽고 충일 한 기쁨으로 피어나는 5월의 하늘을 들이 마셔보세요. 그리고 여기 저기서 어우러지는 난만한 꽃송일 들의 향기를 맡아보세요.
그리고 젊고 아름다웠던 당신보다는 애잔한 애정을 가득 담으신 당신들께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예쁜 카네이션 같은 저희의 감사와 사랑을 드리는 저희들을 기꺼운 마음으로 바라다보아 주십시오.
기독교가정의 교육
김 재 은 (이화여대 교수, 연세대학 교회)
(1988.8.[만남] 8월호에서 전재)
1. 기독교가정에도 문제는 있다.
기독교가정은 일반가정에 비해 가정 자체가 안정되어 있고, 아버지 어머니 사이의 애정이나 신뢰감에 있어서도 일반가정에 배해서 돈독하고 높은 것은 사실이다. 부모-자녀 사이에도 깊고 지속적인 친밀 관계가 있으며 소년범죄도 기독교가정 출신들은 일반가정 출신자에 비해 1/5도 안 된다. 그러나 그리 안심이 안 되는 경우가 없지 않다. 예를 들면 어쩌다가 난폭한 행동을 한 청소년들 틈에는 목사님 아이, 장로님 아이, 집사 님 아이들도 끼어 있는 경우를 발견하게 되는데, 이런 현상이 왜 생기는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왜 정신적으로 높은 경지에 있는 부모 밑에서 비행청소년들이 태어나는가 말이다.
또 있다. 어떤 가정에서는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청소년들 중에 교회에는 열심히 나가고, 또 교회행사에도 열심히 참여하고, 가정예배에도 적극 참여하는데 학교공부를 소홀히 하고 학교친구들과도 배타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는 젊은이들이 있다. 도대체 왜 이런 현상이 생기는가? 짧은 글이기 대문에 자세히 말할 수는 없으나, 위의 문제와 관련해서 기독교가정의 교육문제를 생각해 보기로 한다.
2. 문제의 소재
기독교가정이 교육적으로 여러 가지 장점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삶의 목표나 지향하는 바가 뚜렷하니 적어도 목표이탈로 인해서 살아가면서 허둥지둥하지 않게 된다고 할 수 있다. 믿음을 가지고, 소망을 가지고, 기쁜 마음과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는 사람이기를 소망한다면 올바로 사는 삶이 될 것이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젊은 청소년과 함께 사는 가정에서는 지나치게 엄격하고 근엄해서만 교육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딱딱하고 엄숙하기 만한 가정보다는 부드럽고 화기에 가득 찬 가정이 청소년에게 더 바람직하다. 청소년이란, 가정이 지나치게 딱딱하면 가정에 정을 붙이지 못하고 가정 밖의 일에 관심을 갖기가 쉬워진다.
또 경계해야 될 일은, 기독교가정에서는 '해라', '하지 말라' '해서는 안 된다'를 많이 말하게 된다. 이렇게 명령이나 금지에 관계가 있는 말을 너무 많이 말하게 되면, 그 중압감 때문에 가정에 염증을 느끼게 되기가 쉽다. 그러니까 명령이나 금지에 관계가 있는 말을 하더라도 매우 은유적으로 돌려서 간접화법을 하는 것이 좋다.
모든 종교가 그렇듯이 계율이 많아서 그것을 엄격하게 내세우게 되면 자녀들의 자유롭고 창의적인 생각이나 행동을 제약하게 되기가 쉽다. 그러니까 계명을 가르치러해도 아이들의 발달의 단계를 고려해서 나이에 맞는 수준에서 가르쳐야 한다. 역설적으로 이런 경우도 있다. 아버지 어머니가 너무 완벽하다 보면 자녀들이 그 그늘에 가려서 숨을 못 쉬는 경우도 생기게 된다.
끝으로, 뭐니뭐니 해도 중요한 것은 부모가 자녀에게 여러 가지 힘드는 요구를 하거나, 신앙생활 유지를 위한 압력을 주면서 부모가 그들을 지키지 않거나. 부모가 자녀에게 요구하면서도 자녀의 눈에 부모가 모순된 생활을 하는 듯이 보이거나, 표리가 부동한 것처럼 보일 때 자녀들은 부모를 신뢰하지 않게 된다. 기독교가정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교육문제가 바로 이런 연유에서 생기게 되는 것이다.
기독교가정의 분위기는 딱딱하고 부드러움을 적절히 조화시킬 것이며 명령조의 권위적인 면과 민주적인 명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특히 청소년이 있는 가정은 청소년기의 저항기를 슬기롭게 넘길 수 있도록 대화와 관심과 사랑을 잘 조화시켜서 다루도록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바람직한 그리스도인의 가정교육,
어떻게 해야 하나
(1989.6.[만남] 6월호에서 전재)
금년에 새로 발족된 평신도 교육원에서는 가정의 달 행사로 두 번의 세미나를 가졌다. 첫 번째는 5월16일(화)에 십대들의 쪽지라고 하는 간행물을 통하여 청소년들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김형모 전도사를 강사로 모시고 '교회와 청소년'이라는 제목으로 강의를 들었고 두 번 째는 5월19일(금)에 당회장을 강사로 모시고 '성숙해지는 교회와 가정'이라는 제목의 강의를 들었다. 그리고 5월20일(토)에는 그 세 번째 행사로 '바람직한 그리스도인의 가정'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원로 목사 실에서 좌담회를 가졌다. 이제 그 내용을 발췌, 정리하여 싣는다.
참석자 : 김동호 본 교회 교육담당 목사
장익성 장로. 영락중학교 교장
이수던 집사. 서울여대 대학원장
이동훈 안수집사. 영락고교 교감
김기환 집사. 보성여고 교사
김도선 권사. 제1여전도회 서대문지회 직전 지회장
김경란 집사. 제2여전도회 관악지회 지회장 역임
윤경원 30대 주부. 대학생회 부회장 역임
사 회 : 조의숙 권사. 숭실대학 교수
일 시 : 1989년 5월20(토)
장 소 : 원로목사 실
사회자/ 여러분들을 모시게 되어서 참 반갑습니다. 먼저 지난 이틀 동안에 들으신 것을 다시 한 번 나누어 가진 후에 각자 자신이 가정에서 어떻게 그리스도인의 가정답게 살아왔는가를 이야기하여 보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앞으로 어떻게 하면 가족과 이웃들에게 바람직한 그리스도인의 가정으로 인정받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가정이 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하여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십시다. 그러면 먼저 지난 금요일에 당회장 목사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김도선 권사 님께서 한 번 정리해 주시지요.
김도선/ 지난 금요일 임 목사님의 강의에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저도 60여세를 넘게 살아오면서도 봄이 무엇이고 여름이 무엇이고 가을과 겨울이 무엇인지를 생각지 아니하고 무관심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왔는데 목사님께서 참 인생의 봄이 무엇이며 또 여름이 무엇인지 그리고 인생의 가을과 겨울이 무엇이며 그러할 때에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 너무나 분명하게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많은 감동을 받았고 또한 지금까지 살아온 데 대해 반성도 많이 해보았습니다.(이후에 김 권사 님께서 자세히 목사님의 강의를 반복해 주었다. 그것은 생략하기로 한다.)
사회자/ 요약을 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에는 지난 화요일에 들으신 말씀에 대해서 강경란 집사 님께서 말씀을 해 주시고 또 가정소개도 해주시지요.
강경란/ 저는 관악구에 사는 강경란 집사이고 고등학교 3학년, 2학년, 1학년의 3남매를 두고 있어요 가운데가 아들이고 첫째와 막내가 딸인데 지금이 가장 힘이 드는 때라고 생각합니다. 마침 교회 주보에 청소년의 문제에 대한 강의가 있다고 하여서 깊은 관심을 가지고 참석을 했었습니다. 청소년기의 자녀를 셋이나 키우고 있기 때문에 저들의 문제에 대해서 어느 정도 이해가 있다고 생각을 하고 갔었는데 김형모 전도사님의 강의를 들으면서 참으로 많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너무나 기가 막힌 사연이 많았어요. 이날 강의를 하신 김 전도사께서는 특히 청소년들의 순결에 대한 문제를 집중적으로 실제 사례를 들어가시면서 이야기하셨는데 부모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현실에 모두가 충격을 받았습니다. 저녁에 집에 돌아와 일부러 아이들과 그 문제에 대하여 대화를 했어요, 아이들이 모르고 있으면 알려주어 문제를 대비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지요. 그런데 아이들이 더 잘 알고 있더라 구요, 특히 학교 선생님들과 학생들이 불륜의 관계가 많다는 이야기를 아이들로부터 듣고는 참으로 쇼크를 많이 받았어요.
저는 자녀들과 이러한 이야기를 미리미리 함으로 문제를 예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또 참으로 힘든 일이지만 만에 하나, 나의 자녀가 그러한 문제를 당하게 되었을 때 저들이 어떻게 하여야 할 것인가에 대하여도 교육을 하여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사회자/ 참으로 중요한 이야기를 해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러면 이번에는 아버지 입장의 말씀을 한 번 들어보면 좋겠습니다. 이수덕 집사 님께서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이수덕/ 저는 아들 둘이 있습니다. 큰 아이는 이미 32살이니까 대학과 대학원을 마치고 지금 학교교육개발원의 연구원으로 있고 둘째는 29살로 역시 대학원을 마치고 삼성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35년간 교육자 생활을 하고 있는데 10년은 숭실고등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쳤고 그후 25년간은 우리 교단에서 세운 서울 여자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저는 교육자이지만 가정에서 훌륭한 아버지 역할은 잘 못한 것 같습니다. 아이들을 잘 키워야 갰다는 생각과 나름대로의 노력은 있었지만 말입니다. 아이들에게 아버지가 가장 필요할 때에 2번에 걸쳐 7년 동안 외국에 공부하려나갔었기 때문에 아버지로서 아이들의 뒷바라지를 잘 못해준 샘이지요.
아이들에게 부모로서 시간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충분한 뒷받침을 하여 주지는 못했지만 지금까지 믿음의 가정으로서 자녀들에게 언제나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뜻을 살피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무엇을 하든지 하여야 한다는 것은 가정생활을 통하여 가르쳐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결과 두 자녀들이 다 잘 자라 주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할 뿐입니다.
사회자/ 부모가 자식에게 시간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뒷받침을 잘 해주는 일도 몰론 중요하지만 신앙으로 자녀들을 양육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알게 해주는 말씀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이번에는 우리 참석자 중에 가장 젊으신 분인 윤경원 씨께서 한번 말씀을 해주시죠.
윤경원/ 저는 영락교회 대학부에서 활동을 하다가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게 됐습니다. 남편은 의사인데 교회에서 아주 열심히 활동을 하기 때문에 언제나 크리스천의 가정생활이 삶의 주제이고 또한 중요한 관심사입니다. 국민학교 2학년에 다니는 아이와 5살 박이 아이가 있습니다. 막상 부모가 되고 보니 부모 되는 것이 참으로 어렵다는 생각을 절실하게 됩니다. 학교에서나 또 교회에서 그 동안 많은 교육들을 받아왔는데 막상 가장 중요한 좋은 부모가 되는 훈련 특히 크리스천의 가정에서 좋은 신앙의 부모가 되는 구체적인 훈련을 많이 받지 못했다는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그래서 교회와 목사님들에게 이와 같은 방면에 관심을 가져 달라고 많이 요청하고 싶습니다.
물론 목사님들도 가정목회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계시리라고 믿지만 실제로 교회의 행사를 보면 가정을 위한 프로그램이나 가정을 배려한 프로그램이 적지 않나 싶습니다. 실제로 많은 프로그램이 교회위주의 프로그램이기 대문에 교회에 가면 아이는 아이대로 엄마는 엄마대로 또 남편은 남편대로 다 분리되고 또 어른 프로그램과 아이들프로그램이 크리스천의 건전한 가정생활에는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교회가 보다 더 가정목회에 관심을 가지고 건전한 크리스천의 가정생활을 실제적으로 도와줄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많이 개발했으면 좋겠습니다.
김동호/ 그거 참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 평신도 교육원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연구해야 할 중요한 과제입니다.
그 동안 학교교육도 마찬가지이지만 기독교교육도 교육을 전문화한다는 생각 아래 교육을 세분화하는 데 전력을 다하여 왔습니다. 그래서 전에는 어른이나 아이들이 같은 내용의 공과를 가지고 공부를 했었지요. 그러던 것이 요즘에는 중등부 고등부 아동 부로 갈라지고 아동 부는 유년부 초등부 소년부로 세분화되고 예전에는 유치부 하나뿐이었는데 이제는 유치부와 영아부로 또 구분하게 된 것입니다. 요즘에는 그것도 부족해서 학년별 교재가 나오게 되었습니다. 교육이 세분화되고 전문화되는 것에는 많은 장점이 있지만 또한 약점이 많이 있어요. 앞에서 윤경선 씨가 이야기 한 것이 바로 그중 하나이지요. 그래서 요즈음에는 간 세대교육(Intergeneration Education)이라는 말이 나와요. 다시 교육에 통합적인 개념을 적용하려는 거죠. 그래서 일년에 몇 번 정도는 부모와 자녀가 함께 예배를 드리게 하고 수양회나 캠프도 학생들만 가는 것이 아니라 부모와 자녀들이 함께 떠나게 하고 있지요. 우리 나라에서도 이미 여러 교회에서 시도하고 있어요.
우리 평신도 교육원에서도 이와 같은 면에 관심을 가지고 시도를 하여야 할 것입니다. 몇 가지 면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들을 잠깐 소개하면 교회에서 결혼을 하는 신랑과 신부를 위한 과정을 개발해서 결혼을 하기 전에 주례하는 목사의 지도 아래 함께 공부하고 기도하게 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과 남편과 아내를 위한 부부교실, 부모와 자녀를 위한 부자교실 등을 개발하는 것입니다. 그런 프로그램의 개발을 통하여 교회가 교인들의 가정을 신앙적으로 바로 돕는 것이죠. 이를 위해서 많이 기도해 주시고 또한 협조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윤경원/ 교회가 가정에 관심을 가지고 교인들의 가정을 도와주어서 바른 크리스천의 가정을 이루게 하는 것이 중요한 의미에서 또 하나의 전도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현대의 가정이 너무나 많이 파괴되어 있고 또 파괴까지는 아니라고 할지라도 많은 문제들을 안고 있기 때문에 교인들이 건전한 가정을 이루어 살아간다고 하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굉장한 전도가 될 것이라고 저희는 느껴요. 저희 세대만 해도 저들에게 전도를 하려고 하다 보면 부인들이 굉장한 갈등과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럴 때 예수 믿는 사람들의 가정이 건전하며 또한 안정되어 있다는 것은 저들에게 매우 가치 있고 의미 있는 것으로 전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의 전도 전략도 가정목회를 잘하는 방향으로 세워 가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어떻게 하면 가족과 이웃들에게 바람직한 그리스도인의 가정으로 인정받겠는가
사회자/ 참으로 중요한 이야기들입니다. 가정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변형시킨다고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인데 앞으로 우리 교회가 특히 우리 평신도교윤원이 이에 대한 깊은 관심과 연구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번에는 이동훈 집사 님께서 한 번 말씀을 해 주시죠.
이동훈/ 여기 모이신 계층이 여러 계층이신 데 저는 중간정도가 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삼남 매를 두었는데 큰딸이 대학을 졸업하고 금년에 취직을 하였고 둘째딸은 지금 대학에 재학중이고 막내아들이 고3입니다.
아이들이 어렸을 대에는 잘 모르더니 중·고등학교를 다니면서 가정문제 때문에 고통을 당하고 있는 친구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최근에 아이들로부터 어버이날 카드를 받게 되었는데 거기에는 지금까지는 잘 몰랐지만 아빠 엄마가 믿음 안에서 가정을 잘 지켜 주셔서 자기들이 안정된 가정에서 자라나게 된 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행복한지 모르겠다는 이야기와 함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 가운데서 가정을 이루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았다는 글들이 적혀 있었습니다. 얼마나 마음이 기뻤는지 모릅니다. 저는 그 동안 자녀들을 기를 때 너희들이 일류 대학에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도 나는 너희들이 신앙 안에 바로 서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강조를 하곤 하였습니다. 때문에 아이들이 고3 때라도 교회에 출석하고 예배하는 일을 등한히 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고등부 반사를 하다 보면 제직의 자녀들 가운데도 고3이 되면 신앙은 제2선으로 물러가게 되고 공부와 입시가 제 1순위로 올라가는 것을 종종 보게 됩니다. 저들의 입장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그때 가장 중요한 신앙의 근본이 흔들리게 되는 것을 참으로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언제나 신앙인의 가정은 하나님께 예배하고 신앙생활 하는 것을 우선 순위로 하고 자녀를 교육해야 한다는 생각을 평소에 늘 갖고 있습니다.
장익성/ 저도 한 40여 년 동안 교직에 몸담아 오고 있는데 특히 요즘 학교를 책임지고 운영하면서(장로님은 영락중학교의 교장으로 수고하고 계시는 분이시다)뼈저리게 느끼는 것은 가정교육의 중요성입니다. 자녀를 양육하고 있는 부모님들을 보면 너무나 잘못된 가치관과 판단을 가지고 세상 적인 허영과 세속적인 욕심을 가지고 자녀를 잘못 양육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저들이 학교에 요구하는 것은 내 아이들을 바로 교육시켜 주십시오 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무조건 공부 잘 가르쳐 주시오, 그래서 성적을 올려 주시오, 고등학교 대학교에만 잘 보내 주시오, 이것이 절대적입니다. 학교를 책임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부모님들의 마음을 바로 돌이켜 보기 위하여 시간도 만들고 노력도 해보지만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인인지 모릅니다.
교회에서도 부모들에게 바른 신앙관을 가지고 자녀들을 교육할 수 있도록 먼저 학부모들을 교육하는 시간이 있었으면 합니다. 그게 하루아침에 교육한다고 해서 다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겠지만 10년 20년 꾸준히 계속해 나가다 보면 분명 교회로 말미암아 이 사회와 가정이 변화되리라고 믿습니다.
사회자/ 참으로 좋으신 말씀입니다. 사회의 안정을 위하여서는 가정의 안정이 선행되어야만 하고 가정의 안정을 위하여서는 부모의 교육이 자녀의 교육에 앞서 선행되어야만 한다고 봅니다. 저는 다행히도 교육을 전공하였는데 자녀들을 키울 때 교육에서 배운 대로 인간발달 과정을 생각하면서 키우느라고 신경을 많이 썼어요, 실제로 배운 대로 다 실천하기는 어려웠지만 그래도 교육학을 공부했다는 것이 너무너무 고맙고 심리학을 공부한 것이 이렇게도 고맙구나 하는 생각을 참으로 여러 번 했었어요, 그런 면에서 부모들을 바르게 교육하고 훈련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동안 참으로 좋은 이야기들이 나왔는데 마지막으로 이 모임의 녹음을 위해서 수고해 주신 김기환 집사 님께서 한 번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김기환/ 저는 월남 외톨박이로 내려와서 영락교회를 통하여 희망을 얻고 공부를 하여 지금은 여자고등학교의 교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축복해 주셔서 가정을 이루었는데 딸 셋에 아들 하나를 두었습니다. 저는 그저 다른 욕심은 없이 자녀들을 신앙적으로 바로 키우는 데만 관심을 두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다 일류학교에서 공부를 하지는 못하였지만 나름대로 공부를 해서 학교를 졸업하였는데 자녀에 대해서 큰불만 같은 것은 없습니다.
지난 5월 달에 저희 큰딸이 결혼을 하였는데 결혼을 시킬 때도 세상사람들이 어떻게 하는가에 신경을 쓰지 않고 기독교인답게 하려고 애썼어요. 다행히 사돈댁에서 같은 생각이어서 정말 세상 식 신경 쓰지 않고 아주 검소하게 결혼식을 하였어요. 그저 서로 이해하고 그리스도안에서 그리스도인다운 결혼을 하자고 제안을 하고 또 상대 쪽에서도 그것을 기쁘게 받아주시니까 요새 돌아가는 사회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고 자유스러운 거예요,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천하고 사는 것이 이렇게 좋고 자유스러운 것이구나, 새삼스럽게 다시 한번 느꼈죠.
많은 사람들이 생각은 하면서도 가정에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또 하나님의 식대로 사는 일에 용기가 부족하여서 그저 세상 사람들을 좇아 살기가 쉬운데 교회가 저들에게 하나님의 뜻대로 실천하며 살수 있는 용기를 북돋아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갈 때에 나타나는 기쁨과 평안함 그리고 자유 함이 자녀들에게 실제적으로 끼치는 교육적인 영향이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사회자/ 오늘 참으로 좋은 좌담이 되었다고 생각을 합니다. 좋은 의견을 주신 여러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이번 좌담회에서 나온 좋은 의견과 생각들이 실제로 우리 평신도 교육원을 통하여 실천이 됨으로 우리 교회가 교인들의 가정이 건전한 크리스천의 가정이 되도록 돕고 더 나아가 그것이 우리가 오늘날 살아가고 있는 이 사회를 돕는 일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랜 시간 동안 수고해 주신 여러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립니다.
<평신도 교육원 제공>
2,000년대의 한국교회와 성령운동
- 청소년을 가진 부모님께 드리는 글 -
김 정 주(이화여대 영문과졸. 미쉬간대학원 영문학석사.
풀러신학교 선교학석사.하버드대학 신약학박사)
청소년을 어떻게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할 수 있는가
오늘날 신문 사회 난은 연일 청소년 범죄기사로 가득하다. 믿는 가정들은 수많은 범죄의 유혹에서 청소년들을 어떻게 이끌어 낸 수 있을까? 2000년대 한국교회의 성령운동을 감당할 미래의 역군들에게 우리가 제시할 성서적인 삶의 태도는 어떤 것인가? 고전 9:25 은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라고 말한다. 이 말씀 속에서 바울은 성도의 삶을 경주자의 삶에 비긴다. 믿음의 경주가 얼마나 힘들고 전투와 같은 것임은 "다투다"라는 희랍어동사 아고니조마이가 잘 나타낸다. "모든 일," 말, 시간, 감정, 친교, 음식, 의복, 오락, 물질, 노동과 같은 인간생활 전반에 있어 절제가 중요함을 지적함으로써, 바울은 모든 좋은 것에 절제하고, 나쁜 것은 모양도 버리라고 가르친다.(Moderation in all good things and total abstinence in all bad things. 살전 5:22).
고전 9:25(고전 7:5; 갈 5:23; 디 1:8; 벧후 1:6; 행 24:25)에 언급된 "절제하다"라는 동사의 명사형인 "절제"는 희랍어로는 엑크라데이아라고 하는데, "안에"라는 전치사와 "힘"이라는 명사가 합하여 이루어진 복합명사로서, "다스리는 힘이 있음"을 뜻한다. 따라서 "절제하다"라는 희랍어 동사 엑크라테노마이는 "다스리는 힘이 있다, 자제하다"라는 뜻을 가진다. 여기서 "절제"는 중세교회의 사제와 같이 무조건 자기 몸을 억압하는 부정적인 금욕주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바울이 말하는 "절제"는 "이기기를 다투는 자", 곧 믿음의 싸움에서 승리하기 원하는 자가 자기 몸을 조절하는 긍정적이고 용감한 훈련을 의미한다.
절제가 성령이 맺게 하시는 아홉 가지 열매 중 하나라고 갈 5:22~23이 언급할 때 "열매"는 희랍어 단수로서, 아홉 가지 열매는 성령의 임재를 나타내는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총체임을 보인다. 인본주의가 "절제"를 인간에게 내재하는 미덕으로 생각하는데 반해, 이 말씀에서 바울은 "절제"란 타락한 인간들에게는 없는 성품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기어 새롭게 태어난 성도들에게 거저 주시는 성령의 선물로 이해한다.
고전 9:25에 언급된 썩지 아니하는 면류관은 계 2:10과 야 1:12가 말하는 "생명의 면류관"과 일치하는데, 하나님께서 믿음을 끝까지 지키는 자들에게 약속하신다(딤후 2:5). 성도가 바라보고 달리는 생명의 면류관은 예수 님께서 쓰신 가시면류관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 로마 군인들은 하나님 나라 왕권을 희롱하고 욕하기 위해서 예수 님께 가시면류관을 씌웠으나(막15:17; 마태27:29; 요한19:2,5), 이사야는 예수 님이 오시기 이미 오래 전에 기름부음 받는 자, 곧 메시아께서 고난을 통해서 그 백성을 구원하실 것을 밝히 예언하고 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을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이사야 53:5)
고전 9:25을 분석해 볼 때, 바울에게 있어서, 기독교인의 삶은 수동적으로 종교행사에 참여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쉼 없이 선한 싸움을 싸워 가는 군인과 같은 것이요, 영원히 썩지 아니하는 의와 생명의 면류관을 얻기 위해서 전력을 다해서 달리는 경주 자와 같은 것이다. 이러한 성도의 삶에 있어서 승리하는 가장 중요한 비결은 "모든 일에 절제하는 것"임을 바울은 명백히 제시하고 있다. 푯대 되신 그리스도를 향하여 매진하는 삶의 모형을 바울의 고백 속에서 발견할 수 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 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할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빌 3:12~14)
임산부가 술을 마시면 지진아를 낳게 된다는 사실을 여성들이 알고 있는가?
오늘날 우리 사회 속에는 절제생활을 훼방하는 여러 가지 모양의 유혹이 도사리고 있는데, 특별히 많은 청소년들이 술과 담배, 마약에 빠져들어 가 무서운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 금주금연운동을 하다보면 일부 교인들까지도 술과 담배를 하는 것이 뭐가 나쁘냐고 오히려 반문한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히 술 취하지 말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고 명령한다(엡 5:; 잠 23:29~35). 이 말씀은 성령께서 거하시는 몸과 기관인 폐나 간, 그리고 뇌가 니코틴과 알코올, 마약과 같은 독약으로 파괴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을 보여 준다.
어른들은 무심하게, 청소년들은 호기심으로 피우는 담배 한 가치 속에 무려 20여 가지의 무서운 독이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미국 보건후생성의 발표에 의하면, 담배 3~5개비의 니코틴은 치사량 50mg에 이르러, 혈관을 수축시키고 혈압을 높이며, 위궤양, 고혈압, 폐암, 협심증, 동맥경화증 등을 일으킨다. 담배 속에 있는 폴푸랄이라는 독성은 알코올의 50배나 되어 뇌신경의 손상과 퇴화를 가져오는 무서운 독소이다. 그러므로 미국의 키 박사는 7개국에서 연구한 논문을 종합 게재한 미국 심장병학회 지에서 "담배는 독약이다"라고 발표했다. 국가차원의 홍보활동으로 선진국가의 흡연인구는 20~30%에 불과한데, 일본이나 한국에서는 흡연 율이 70~80%에 이른다. 특히 임산부가 담배를 피우면 태아가 심장병과 천식에 걸릴 확률이 높다. 흡연자의 수명을 평균 16분 30초씩 단축시키는 담배의 해독을 청소년들은 바로 알고 있는가?
우리사회는 쌀이 남아돌자 막걸리를 만드는가 하면, 생활에 음주가 필수인 양 생각한다. 그러나 임산부가 술을 마시면 지진아를 낳게 된다는 사실을 여성들이 알고 있는가? 술의 주성분인 알코올은 인체의 세포에 큰 해를 끼치는 독으로 몸 속에 들어와 뇌신경과 성세포 속에서 유전관계를 취급하는 크로모소멘을 파괴한다. 파괴된 크로모소멘은 자손 3~4대까지 영향을 주며, 파괴된 뇌 세포는 재생되지 않는다. 술은 또한 산소공급에 지장을 주어 단백질의 응고와 함수탄소의 대사에 큰 지장을 일으킴으로, 심장병, 위궤양 간 경화증, 중추신경마비 등 여러 가지 무서운 병을 유발한다. 음주운전을 통한 인명피해는 한국을 교통사고사망률 최고국가로 만들지 않는가!
코카인, 헤로인, LSD, 마리화나, 아편, 히로뽕 등의 마약은 그 사용이 불법화되었으나, 지하조직들을 통해 제조되고 배포되는 양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코카인 등 코로 흡입하는 마약은 폐를 손상시키며, 마리화나는 담배와 같이 폐암을 일으킨다. 바늘을 통해서 각종 마약을 복용할 때, 뇌 세포의 손상은 물론이고, 간염, AIDS 같은 전염병을 유발하여 생명을 잃게 된다. 마약을 한 번 복용하면 더 많은 양을 찾게 되고 결국 마약에 의존하는 중독자가 되어 과잉복용으로 죽음에 이른다.
청소년들을 온갖 유혹에서 지키는 유일한 길은, 회개하고 예수를 믿음으로 성령을 받아 새 삶을 살도록 돕는 것이다.
우리는 사회 속에 편만 한 술, 답배, 마약의 위협으로부터 어떻게 청소년들을 지킬 수 있을 것인가? 바울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법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 3:23)라고 말함으로써 아담이후 모든 인간은 다 죄 가운데 태어나서 하나님의 형상을 잃었음을 보인다. 따라서 타락한 성품은 죄를 물리칠 수 있는 힘을 가지지 못한다. 곧 이어서 바울은 죄의 권세로부터 놓임 받고 용서받을 수 있는 오직 한 길을 보여 준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 3:23b).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보내신 그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죄의 형별인 죽음을 대신 죽으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심으로 누구든지 예수를 믿기만 하면 하나님의 용서를 받게 해 주신다는 말씀이다. 택하심을 따라 예수를 믿는 모든 자에게(롬 8:29~38), 하나님은 그의 성령을 주셔서 죄와 사망의 권세를 넉넉히 이기게 하시기 때문에,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 8:2)고 선포한다. 이상에서 볼 때, 담배, 술, 마약의 유혹으로부터 청소년들을 지키는 유일한 길은 저들이 각자 회개하고 예수를 믿음으로 성령을 받아 새 삶을 살도록 돕는 것이다.
알코올과 마약중독자들에게 전도하는 데이비드 원커슨 목사님은 [십자가와 깡패]라는 제목의 책 속에서 바울의 가르침을 실례로 뒷받침한다. 뉴욕 뒷골목을 배회하는 알코올과 마약중독 청년들에게는 어떤 치료도 효력이 없었다. 그러나, 이 청년들에게 갈 13:13에 요약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기록하여 이해시켰더니 그들은 믿음을 얻고 성령을 받아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으로 어떤 힘으로도 물리칠 수 없었던 술과 마약의 파괴적 욕구를 넉넉히 이길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 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니라"(갈 3:13).
2000년대 한국사회와 세계 속에서 청소년들이 참 빛과 소금으로서 성령의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2000년대 한국교회가 성령 충만하기 위해서 교회와 가정은 갖가지 퇴폐풍조를 이기고 설 수 있도록 오늘의 청소년들에게, 술과 답배, 마약의 해독을 일깨워야 한다. 수험위주의 교육으로 지친 청소년들이 술과 답배, 마약에 쉽게 빠지는 것은 저들만의 탓은 아니다. 믿는 가정들이 주일을 안식 가운데 거룩하게 지켜 하나님 경외를 입시공부보다 더 중요시할 때, 청소년들은 모든 유혹을 넉넉히 이길 성경의 힘을 소유할 수 있을 것이다.
태 중에 자녀를 가지사면 열 달 동안 신문도 보지 않으시고 성경만 보시면서 태교를 하셨다는 필자의 어머님 여귀옥 권사 님은, 태어나서는 이미 늦으니 태 중부터 하나님 말씀으로 자녀를 성령 충만하게 키우라고 결혼연령 여성들을 가르치신다. 40여 년 절제운동을 하시면서 과부의 친구가 되시고, 고아의 어머님이 되시며, 교도소가 비도록 눈물로 기도해 오신 어머님은 평생 전도하는 일을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신다. 어머님으로부터 일찍 술과 담배, 마약의 해독에 대해 들을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크신 은혜였다.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기 위해서 외식도 삼가시는 어머님의 엄한 교육 덕분에 하버드의 힘든 박사과정에서도 주일을 완전하게 쉼으로 피곤치 않게 모든 과정을 하나님의 승리를 보면서 마칠 수 있었다.
교회와 가정이 진정한 기쁨과 영원한 생명은 오직 그리스도 안에만 있다는 것을 보여 주며, 술과 담배, 마약의 해독을 일깨울 때, 오늘의 청소년들은 믿음의 경주에 절제하므로 동참하여 2000년대 한국사회와 세계 속에서 참 빛과 소금으로서 성령운동의 풍성한 결실을 거둘 것이다.
유치원 선생님과 헤어져야 하는
섭섭함이...
주 진 옥 권찰(중등부 교사)
(1990.5.[만남] 5월호에서 전재)
선생님!
광석 이가 우유 병도 떼기 전에 누나 따라 유치원문을 들어서던 때가 어제일 같은데 벌써 4년이란 세월이 흘렀어요.
광석 이의 자람 속에서 저도 더불어 내적인 성장을 많이 한 것 같습니다. 은혜, 광석 이를 유치원에 맡긴 후에 저의 시간을 갖게 됨으로 출산과 더불어 잃어버렸던 사색의 시간을 찾게 되었지요.
비라도 내리는 날이면 집안 청소를 바쁘게 끝내고 베란다 창을 열고 식탁 앞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며 음악을 듣노라면 "범사에 감사하라"는 성경말씀이 떠오르며 모든 것에 감사와 더불어 유치원에 대한 감사를 빼놓을 수 없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바쁘다는 외침과 더불어 시작하고 끝마치는 요즈음, 나만의 시간은 너무나 소중하여 주님과의 교제도 잊고 공상 속에 빠져서 엄마라는 사실도 잊어버리고 있다가 아이들이 끌날 시간이 되면 공상에서 빠져 나와 유치원으로 달려가곤 했지요. 그럴 때마다 유치원 교사가 천직인 양 함박미소를 머금고 사랑으로 다가오는 선생님들을 뵐 때마다 어린 시절에 꿈꾸던 교사상을 그려보곤 했답니다.
선생님!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는 주님의 말씀을 보면서 마땅히 행할 길에 대한 막연함으로 고민할 때, 선생님을 통하여 주시는 주님의 자상한 말씀을 가슴 벅찬 감격으로 안고, 그대로 다 닮아가려고 애쓰는 나의 생활이 때로 주위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듣게 되면 기분 좋음과 함께 선생님의 부모교육에 대해 자랑을 할 수밖에 없었지요. "선을 행하다가 낙심치 말라"는 말씀을 알면서도 세상의 불의를 보고 답답하여 눈물 흘릴 때 원장님의 위로의 말씀으로 힘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있지 않아 유치원과 헤어져야 하지요. 학교선생님들과도 유치원 선생님들과 같은 관계를 갖고 싶지만 저의 막힌 성격 때문인지 아직 답답함을 느낍니다. 때문에 유치원과의 헤어짐이 더욱 섭섭합니다.
유치원 교육 현장에서 목회자의 삶으로 기도로 무장하는 일에 더욱 힘쓰시는 모습이 때로는 안타깝지만 저는 기도로밖에 도와 드릴 것이 없어요, 저에게 금과 은이 없거든요.
선생님! 부탁이 있습니다. 낙심될 때가 있으셔도 소명감을 가지시고 주께서 주시는 크신 권능을 공급받아 세상 공의를 위해 힘써 주세요, 지금의 선생님의 모습으로 세상 죄성이 몸에 묻는 것을 거부해 주세요. 그 일이 얼마나 힘이 드는지 조금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나 주님의 크신 뜻이 있어 많은 달란트를 받은 분들이 이 일을 해 주셔야 저 같은 사람이 조그마한 힘으로 뒤따라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때때로 편지를 쓰고 싶었지만 바쁘게 생활하다가 기회를 놓치곤 하여서 오늘은 '어머니 교실'을 마치고 도서실에서 아이들이 끝나기를 기다리며 급하게 썼습니다. 두서없는 글이지만 사랑하는 마음으로 읽어주세요.
기독교 가정의 자녀교육
조 의 숙 권사(평신도교육원 가정교육부)
(1991.5.[만남] 5월호에서 전재)
위의 제목을 주제로 우리교회 아동부 주최 '제1회 부모와 교사의 만남' 시간인 지난 4월 26일 1시부터 교육국 4층에서 말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우선 5월을 앞두고 어린이들의 교육에 관심이 쏠릴 때인 만큼, 각종 집회와 TV화면에서 많은 것들을 보여 주고 알게 되기 때문에 새삼 강의의 내용에 신경이 쓰여지게 되었다. 주제를 분석해 보면 첫째, 기독교, 둘째, 가정, 셋째, 부모, 넷째, 자녀 그리고 다섯째, 교육으로 많은 복잡한 내용을 가진 단어들이 포함되어있다.
일관성 있는 주장이 필요하리라고 생각되어지나, 이런 단어에 포함된 내용들이 너무 어마어마한 문제들을 안고 있으며 중요하기 때문에 주어진 주제에는 충실할 수 없었고, 다만 나의 한정된 지식과 경험의 범위 안에서 간증 삼아 경험담을 이야기하는 정도로 다음 몇 가지로 요약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모처럼 시작되는 "부모와 교사의 만남"의 간담에 도움이 되기를 바랄 뿐이었다.
부모는 기독교 기초교육 책임자
이번 제1회 만남의 목적이 부모들로 하여금 가정에서 '가정학습지'(이미 교회에서 나눠준 교재)를 지도하면서 느끼는 애로점을 서로 토론하여 효과적인 성서학습의 모델을 찾는 데 두었기 때문에 전문적인 목회차원에 대한 소견은 언급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되어서 다음과 같이 생각해 보고자 한다.
첫째, 부모가 기초교육의 책임을 진다. 부모가 자녀를 교육하는 교사라는 책임은 인류 역사와 함께 시작되었음을 이미 알고 있다. 부모가 집 안팎에서 자녀들에게 가르쳐야 할 기초적 지식과 습관 형성 그리고 태도 함양이 있다.
둘째, 기독교 가정에서는 성서적 인생관과 가정관을 확립시켜야 한다. 인간의 생명이 이 땅에 있는 동안 하나님께서 인간을 지으신 목적과 이루시려는 역사 속에서 성경적 인생관을(시편 111:10) 찾아 '나'와 '너'와 '우리'가 함께 사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가정을 이루어 가며 그러한 인간 관계를 형성해 가는 태도를 기독교 성서를 토대로 가르쳐야 한다. 그 첫 교육의 장이 가정이고 첫 교사가 부모인 것이다.
셋째, 교사관과 자녀관은 시대와 민족에 따라 달라지고 있다. 부모가 자녀의 교육을 전폭적으로 떠맡았던 시대와 민족 공동체에 있어서의 자녀관과 오늘날 현대 사회에서 부모가 자녀들에게 교사가 되는 입장은 많은 부분이 달라져 가고 있다. 그러나 먼저 언급한 성서적 인생관과 가정관을 가지고 이 시대와 이 민족의 앞날을 책임질 자녀교육을 생각한다면 가정에서의 기초교육만큼은 달라져서는 안 되고 올바른 방법 모색을 위해서는 많은 시행착오를 경험할 수밖에 없다.
넷째, 자녀교육에 가장 주요한 시발점은 부부관계이다. 서로 모르는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사귀고 결혼을 하여 부부가 되어 한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갖게 된다. 요즈음은 결혼했어도 자녀를 갖지 못하는 건강치 않은 가정도 있게 되어 병원 문을 두드리는 수가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위에서 말한 대로 기독교 가정이란 어떤 것인가를 확실히 확립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성서적 인생관을 지니고 가정을 이루어 축복된 가정에서 자녀를 축복의 선물로 받았다면 부부관계의 영향이 자녀 교육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를 알게 될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부부관계의 태도 여하가 자녀교육에 전통적인 영향을 준다면 여기서 함께 점검해 봐야 할 것이 있다. 내가 과연 결혼의 원리를 잘 알고 있는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창세기 2장 24절 말씀에 근거하여 결혼의 3대원리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그 원리는 (1) 부모로부터의 완전한 독립, (2) 동등한 두 인격체의 완전한 연합, (3) 두 몸이 한 몸 되는 완전한 합일을 말해 주었으며, 사랑과 순종에 대한 이 원리는 장차 그리스도와 교회간의 완전한 연합과 합일을 예표 하였다고 한다(엡 5:31.32 참조)
잠언 서에 나타난 기독교 가정의 가족관계
오늘날 우리 한국의 가족제도의 과도기적 현상과 민족적 감정과 전통이 기독교 가정관과 어떻게 부합되도록 살아야 하는가의 물음에 해답을 얻기 위해서 많은 지혜와 인내심을 갖고 고린도 전서 13장에서 찾아보면, 인내와 믿음과 소망이 모두 사랑에서만 통합되어 질 때 얻어지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
다섯째, 기독교 가정에서의 가족관계는 구약 잠언서의 10대 주제 중 여섯 번째 주제라고 톰슨 주석성경2에서 발견하였다. 다음과 같은 해설들을 몇 가지 소개하려고 한다.
가정은 사회를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단위인데, 따라서 세대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가정생활의 기본구조 및 그 희비극은 여전히 남게 마련이다. 잠언 서에는 부모와 자녀간, 남편과 아내간이 여러 문제들에 관해서 소상한 충고를 담고 있다.
특히 잠언 1장 8, 9절을 읽으면 목의 금 사슬 이야기가 나온다. 이 금 사슬은 명예의 표시인데 41장 42절과 다니엘 5장 29절에도 나온다. 모두 영예로운 자리에 오르게 될 때에 주어진 명예로운 명예의 표시인 것이다. 우리의 자녀가 이런 영예로운 자리를 갖게 되길 원하는 부모는 누구나 우리의 생이 가정에서 시작되며 삶의 지혜 또한 가정에서 배우기 시작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자녀의 교육과 정서함양에 있어서 학교와 교회의 역할을 무시할 수 없으나 가정은 기본적인 인격형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것임은 디모데후서 에서도 언급되어 있다.
현대 사회 구조가 복잡해지고 고도의 상업화로 급격하게 변동되면서 가정에서의 자녀교육은 부모 자신이 쌓아올린 20년 내지 30년간의 지식과 경험을 통한 기초 교육이 무시당한 채 잘못된 현대화로 휩쓸려 들어가게 되고, 부모의 손에서 떨어져 나간 자녀들은 그 의식 수준과 사회적 관심이 급격하게 변하면서 자기 성장에 대한 통합된 인격 형성이 이루어지지 못한 채 사회 문제를 야기 시키는 데까지 이르게 되었다.
또 현대 사회가 고도의 기술적 발전 때문에 계층적으로 가정 환경을 다양화시키게 됨에 따라 자녀교육에 대한 관심도 역시 커지는 반면 장애요인도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되었고, 자아 상실과 가치관 혼동으로 통합된 인간교육이 어렵게 되었다.
이런 때일수록 위에서 언급한 대로 가정 교육에 대한 일관성 있는 교육관을 가지고 언행일치의 생활과 사랑의 구체적인 실천을 통해 모범을 보여야 할 것이다. 바울 사도는 기도 없이는 그리스도인의 성결한 생활이 지속될 수 없음을 알고 강력히 기도할 것을 권하였다.
하나님 말씀으로 올바른 자세 교육 필요
잠언 22장 6절 말씀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한 것으로 볼 때 이스라엘 민족만큼 가정에서의 자녀교육을 중요시한 민족도 드물다고 본다. 특히 이 말씀 속에서 유아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현대 심리학자들의 견해에 따르면 3-7세의 시기가 한 개인의 성격이 근본적으로 형성되는 시기라고 하였다. 우리 나라 속담에도 '세살 버릇 여든 간다.' 또는 '떡잎 보아 그 나무를 알아본다'고 어린 시절의 교육, 특히 가정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여왔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유아기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올바른 자세를 가르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자녀교육에 있어서 가정교육의 역할은 부모가 자녀를 하나님의 진리 말씀으로 양육하는 근본적인 책임이 있을 뿐만 아니라 교회 교육과 학교 및 세속 사회의 교육간에 생기는 갈등을 신앙적으로 해결해줄 수 있는 참된 교사의 역할이 있음을 자각해야 한다. 자녀들의 성격 형성의 근거가 되는 가정 교육이 자녀의 진로의 방향 설정과 가치관의 확립을 제일차적으로 책임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녀교육에 대한 부모의 태도는 다음 몇 가지를 유념해야 할 것이다.
(1) 자녀는 하나님께서 주신 은총의 선물이며,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격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청지기의 의식을 가져야 한다.
(2) 부모의 생각이나 이상을 실현시키기 위한 욕구실현의 도구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인격에까지 자라도록 돕는 자임을 깨달아야 한다.
(3) 모든 것을 부모의 결정대로 이끌어갈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자녀관계를 연결시켜 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4) 무엇보다도 언행일치의 삶과 구체적으로 사랑을 실천하여 모범이 되도록 한다.
(5) 부모에게 순종이나 결정된 것을 강요할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따르고 이행할 수 있도록, 순결한 마음가짐이 되도록 태도형성이 되어야 한다.
자유론과 제약론의 절충
마지막으로 교육을 위한 부모(교사)는 자녀의 발달 과정에 대한 과학적 태도를 가지고(감정이 앞서지 말 것) 세심한 관심을 가지고 관찰할 줄 알도록 배워야 한다. 교육 이론에 있어서 두 가지 상반되는 이론이 있는데, 하나는, 가능한 한 아동은 자유롭게 내버려둬야 가장 잘 발달한다는 자유론이고, 다른 하나는, 소속된 사회(가정, 일반사회, 국가사회 등)에서 요청하는 제약이나 규범을 통해서 가치 있고 책임감 있는 성인이 되도록 배워야 한다는 제약론이다. 그러나 위의 두 입장을 절충하여 중용적인 위치를 지지하는 주장을 세운 사람이 해비거스트라는 사람이다.
학자들에 따라서 조금씩 주장이 다르지만, 그는 여섯 단계 즉 (1)영아 및 유아기(출생-6세) (2)아동기(6-12) (3)청년기(12-18) (4)성년초기(18-30) (5)중년기(30-55) (6)노년기(55세 이후)로 나누었다. 그리고 각 단계마다 반드시 학습해야 할 과업이 있으며 그 단계에서 훌륭하게 학습하면 다음 성장에 도움이 된다고 하였다. 그러나 너무 일찍 성장단계를 기다리지 않고 먼저 서두는 일은 도리어 잘못된 학습이 이루어지거나 잘못된 태도를 형성하게 되어진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자녀의 성장해 가는 과정을 관심 있게 관찰하며 도와 줘야 할 것이 무엇보다 부모의 중요한 책임이다.
자녀들은 생활하는 모든 것이 성장이며, 학습이기 때문에 타고난 소질과 재능을 어떻게 실현시켜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개개인의 학습 과정에 따라서 좌우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릴 때부터의 학습습관 형성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한 것이다. 현대와 같이 사회생활의 변천 속도가 급격할 때는 개인의 학습도 변화해 가는 조건이나 환경 및 상황을 잘 파악하고 적응해 가도록 계속적으로 학습해야 하는데 특히 기초학습에 충실하는 것이 다양화되어 가는 사회생활에 적응할 수 있는 기초가 됨을 유의해야 한다.
발달 과업이란 개인의 일생을 통하여 평생을 성장하고 성숙해 감에 따라 이루어지는 학습 과제인데 어떤 것은 해당되는 기간에만 특수하게 학습해야 할 것이 있고, 어떤 다른 것들은 계속적으로 점점 복잡해지는데 따라서 더욱 노력을 기울여서 학습해야 할 것이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말 배우기를 보면, 무의미하게 소리내는 데서부터 시작해서 의미가 있는 감정표시를 하게 될 때, 부모나 주위의 반응에 따라 영향을 받아 개념이 점차 성립되어 말귀를 안아듣고 말문이 트인다. 만 세 살부터는 어휘가 부쩍 늘게 되면서 어른들과 또 부모와의 대화가 가능해지고 자신의 의사표시도 충분히 어른에게 전달되도록 힘쓰게 된다.
이때부터 추리력도 상당히 풍부해 지면서 자기의 추리의 세계에서 없던 말이나 일들을 꾸며내기도 하고, 사실 있었던 것처럼 상상의 세계의 대화를 펴게 된다. 이때에 부모나 주위의 사람들은 어린이의 추리력의 표현을 생각 못하고 거짓말을 만들어서 큰일인 것처럼 야단도 치게 된다. 또 다른 어른들은 도덕적으로 어른들의 가치관에 맞추어서 판단하기 때문에 자녀의 성장과정의 몰이해가 아이들의 반항심으로 발전하게도 된다.
그러므로 말을 배울 때에 올바른 개념과 바르게 말하는 버릇을 길러주도록 어른들이 관심과 이해를 가지고 조심스럽게 한 인격의 성장을 도와야 하는 것이다.
특히 영. 유아기에는 부모나 동기나 주위사람들에게 정서적으로 관련지어 주어야 하는데 무의식적으로 모방하거나 부모와 동일화하는 과정을 학습하게 된다. 이렇게 형성되는 하나의 인격이 부모의 징벌이나 칭찬을 통해서 곧 자녀에게 선악을 구별하는 양심의 발달의 기초가 이루어진다.
자녀의 성장과정이 학습에 따라 이루어진다면 어떤 환경과 조건을 제공해 주고 길러 주어야 할 것인가를 기독교 가정의 부모는 지혜로운 판단과 아울러 과학적인 태도를 가지고 대응해야 한다고 생각된다. 숭실대 전 교수
믿음의 선배가 주는 산 교훈
(1991.5.[만남] 5월호에서 전재)
참석자 : 김재훈 장로. 김형로 장로. 승응록 장로 김순애 권사. 백옥현 권사
사 회 : 김형철 집사(홍보출판부 실생위원)
일 시 : 1991. 4.27(토) 오후 3시
장 소 : 원로목사실
사회자 : 구약성경을 읽어보면 하나님은 믿음의 중요한 삶 속에 개입하실 때 항상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라고 자신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영락교회도 구원받은 신자들의 공동체로서의 공간의 의미도 중요하지만, 믿음의 계승자로서의 의미도 크다고 생각됩니다. 또한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서 선교의 동역 자로서 믿음의 선배와 오늘의 젊은이들과의 상호 이해도 필요하리라 여겨집니다. 선배들의 신앙의 연결 고리로의 역할이 중요하리라고 생각되는데, 70평생을 살아오신 은퇴 장로. 권사 님들의 젊은 시절은 어떠하셨습니까?
김형로 : 저는 왜정시대를 겪었고 공산치하 속에 있다가 월남했으며 6·25를 겪었습니다. 해방 전부터 모교에서 교편을 잡아 지금까지 학교 일을 해오고 있는데, 어느 사이에 나이가 들어 은퇴하게 되었습니다. 그 동안 여러 가지 시행착오들이 있었습니다만, 꼭 한 가지, 믿음에서 떠나지 않고 교회를 섬겨 왔습니다.
.....6·25때에 서울탈환하며 한없이 울어.....
승응록 : 왜정시대에 북지(北支)로 징용을 갔습니다. 그 역경 가운데서 항상 주를 잊지 않았어요. 징용 지에서 장질부사로 세 번 죽었다 깨어났는데, 그때에 하나님께 서원기도를 했습니다. '살려 주시면 하나님 뜻대로, 주 위해 몸바치겠다'고, 그리고는 그 병이 낫고, 해방이 되어 고향인 평북 용암포로 왔습니다. 그런데 공산 정권이 들어왔어요. 함께 교회에 나가던 사람들이 하나 둘 없어졌어요. 월남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반동으로 몰려 죽임 당한 사람도 있겠지요. '믿음 가진 사람은 삶의 자유를 아는 사람'임을 젊은이들은 알아야 합니다. 믿음의 자유, 삶의 자유를 찾기 위해 3·8선을 넘어 왔습니다.
그 후의 고생은 말로 다할 수 없지요. 6·25때에는 미7사단에 소속되어 서울탈환에 참전했는데, 그때 남산에서 내려오며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살아오면서 항상 하나님께 서원 했던 것을 잊지 않았는데, 우리의 영적 구원도 소망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육적 필요도 채워 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지금은 영원한 나라를 소망의 믿음으로 바라보며 살아갑니다.
백옥현 : 바깥 집사 님이 6·25때 순교하고, 제가 딸 넷을 키웠습니다. '믿음의 뿌리를 물려주자'는 일념으로 아이들을 키웠어요. 아이들이 다 잘 장성해서, 사회적으로도 제 몫을 감당하고 있고, 권사, 집사로 신앙생활도 잘하고 있는데, 제가 한 일은 기도한 것밖에 없어요.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사랑을 다 헤아릴 수 없지만, 자식을 위한 눈물의 기도는 아이들을 신앙으로 바로 서 가게 만든다고 믿습니다.
.....임시 다녀갈 생각으로 월남, 부모. 형제 이북에.....
김재훈 : 소학교를 졸업하고, 중국에서 5-6년 살다가 고향으로 돌아왔는데, 한창 미·소 공동위원회가 열리던 48년도입니다. 아버지는 미소공동위원회가 열리니 곧 통일이 될 것이라 하셨지만, 일신학교 교장인 안국보 장로님은 북한에는 아무래도 신앙의 자유가 없을 것 같다고, 남한으로 나가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일단 남한에 가보고, 좋으면 와서 부모님 모시고 가기로 하고는 48년도 동지 때에 고향을 떠났습니다.
마침 김장을 하던 날이었는데, 아내가 김장을 담그다 말고 따라나왔어요. 3·8선을 안내하는 친구를 따라, 평양에서 원산으로 나와, 오징어 장사하는 것으로 가장하고는 연천까지 왔습니다. 거기서 달이 뜨지 않는 밤이 되기를 기다려, 가슴까지 물이 차는 한탄 강을 건너 능선을 타고 넘어왔습니다. 임시 다녀갈 생각이었기에, 저의 부모와 형제는 모두 고향에 두고 왔지요.
김형철 : 공산치하에서 신앙의 자유를 찾아 내려온 믿음의 선배들이 영락교회를 세우셨고, 이제 우리 나라 기독교를 대표할 수 있는 교회로 성장했습니다. 예수를 믿고 새로운 생명을 얻어 부르심에 순종한 삶이 많은 믿음의 후배를 낳았고, 그리스도의 공동체를 형성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공동체는 새 사회, 새 가치관, 새 관계를 맺는 단계로 이어진다고 합니다. 그런데 공동체 안에서의 신앙의 질서랄까, 선배들의 삶 속에서 구현된 신앙이 후배들에게 계승될 때, 뿌리가 있는 믿음의 후배가 될 덴데, 이런 면이 부족하지 않은가 생각됩니다.
.....가치관 선도의 책임이 교회에.....
김재훈 : 제가 어려서 주일학교에 나가고 면려회 활동을 할 때는, 교회에 가는 주일은 잔칫날 같고, 편안했습니다. 그리고 당시만 해도 소학교에서는 교장선생님이 직접 수신(지금의 도덕) 과목을 가르치셨어요. 그런 교육을 받았다는 말이죠. 그런데 6·25를 겼으면서 모든 이의 가치관이 달라졌다고 봐요. 많은 살상과 파괴가 자행되었고, 급격하게 외래문화가 들어오면서 가치관의 혼란이 생긴 거예요. 주위에서 보고 듣는 것은 많은데, 거의가 부정적인 것들이죠. 그 책임이 정부와 교육 당국에도 있습니다만, 저는 이 혼란을 수습할 곳은 교회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요즘은 핵가족이 되고, 자기중심적이 되고, 남에게 피해도 주지 않지만, 도움도 주지 않겠다는 사고가 너무 팽배해 있어요.
결코 유교적 관점에서 동방예의지국의 가치관을 내세우는 것이 아닙니다. 조화롭게 중도를 지켜 나가야겠는데, 그 선도의 책임이 교회에 있다는 것이지요. 이런 의미에서 우리교회가 교육관을 건립하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그 동안 장소와 시간이 없어서 쫓기듯이 아이들 교육을 하지 않았습니까?
.....권위주의는 넘어야 할 벽.....
김순애 : 교회 공동체라 하고, 젊은이들과의 자유로운 교류가 이루어지려면 우리가 깨야할 벽이 있습니다. 교회 자체 곳곳에 내재해 있는 권위주의입니다. 우리들의 태도는 남을 억누르는 듯해요. 한 예입니다만, 조그만 어느 교회인데, 머리가 하얗게 센 분이 자주 잔디 손질을 하곤 해요. 저는 그분을 교회 지키는 사람으로 생각해 왔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그 교회 장로랍니다. 그래서 제가 깜짝 놀라서 '장로님께서 이런 일을 하시느냐'고 했더니 장로는 직분일 뿐이라는 거예요.
또 우리 교회는 평일에는 본당이 닫히지요. 열어놓고, 작은 모임이 있으면 활용토록 해야 합니다. 아이들이 다른 데 가서 기타 칠 것을 교회에 와서 치도록 하는 거예요. 그러면 교회가 자연스럽게 생활의 터전이 되고, 서로 마음을 열 수 있게 되는 거지요. 우리 교회에는 권위주의가 너무 많습니다.
김재훈 : 월남해서 너나없이 어려운 생활을 했지만,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이 간절했어요. 당시 교회는 이북에 살던 친지. 친구들을 만나는 장소이기도 했지요. 지금의 봉사관이 일본사람들의 천리교당 자리였는데, 그곳에 천막을 치고 교회를 지어야겠다고 했을 때, 많은 원로 장로님들이 눈물로 기도했고, 교인이 모두 열심을 다했습니다.
어려운 피난살이였지만, 부인 네 들은 가락지. 옷가지를 팔아 헌금했고, 남대문, 동대문으로 장사 나갔다가도 한두 시간씩 교회에 와서 벽돌을 나르고, 콘크리트를 치곤 했습니다. 교회를 사랑하여, 내 교회를 빨리 지어야겠다는 강한 애착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어요. 지금의 젊은이들에게도, 교회를 어떤 방법으로 사랑하게 하느냐, 선진들이 가졌던 그 믿음과 사랑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인도하는 게 과제입니다. 그리고 뿌리를 밟아온 사람들이 교회의 주인이 되는 게 시급합니다. 여기서 태어나 교회학교를 다니고 20~40년 우리교회에 출석하며 열심히 봉사하는 사람이 많아요. 교회를 말없이 사랑하는 이분들이 교회의 주인이 되어서, 교회를 잘 움직여 나가야 합니다.
김형로 : 아이들을 넷 두었는데, 착실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만, 아이들이 어렸을 때에 아이들의 의견을 존중해 주어서 두 아이를 동네 교회에 나가게 했어요. 물론 아이들이 다 크면 영락교회에 출석하기로 한 것이었지만, 지금은 조금 후회가 됩니다. 비록 아이들의 의견과 맞지 않더라도, 부모의 의견을 존중하여 가족 모두 우리 교회에서 예배드리도록 했어야 하지 않았는가 생각됩니다.
김순애 : 개화된 기독교 목사의 딸로 태어났어요. 목사관에서 들려오는 기도소리와 찬송소리를 들으면서 깨어났고, 기독교가 생활화된 곳에서 자라났어요. 제가 지금까지 삶의 명맥을 이어올 수 있었던 힘은 어려서 성경 암송한 것과 부모님의 기도 덕입니다. 제 제자들도 그런 얘기를 합니다. 학교 다닐 때는 채플시간을 그렇게 싫어했지만, 지금까지 인생을 살아가는 데 귀한 도움이 된다는 거예요. 젊은이들도 먼 훗날에 떠오를 것입니다. 그 아이들이 귀담아 듣지 않더라도, 신앙에 관한 좋은 것들을 강조해 주고, 우리가 스스로 세대 차이를 좁히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사회자 : 얼마 전 미국에서 은퇴한 장로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하였는데, 흥미 있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게된 요인은 지능, 건강보다는 성격이며, 성격 중에서 방해요인으로 작용한 것이 결손가정과 과잉보호라는 대답이었습니다. 이렇게 볼 때에, 축복 받은 사회지만 가치관의 심각한 혼란, 과잉보호, 이혼율 증가의 시대에 살고 있는 젊은이들이 부딪치고 있는 문제를 성경 안에서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해결해 가야 하겠습니까?
.....자율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분위기 조성을.....
김순애 : 우리 나라 청년들이 어떻게 기독교 신앙을 가진 인격체로 되어 가느냐가 중요 문제입니다. 어떤 과정으로 그들을 변화시켜 가는가? 기독교 학교에서는 의무적으로 채플시간에 들어오도록 하고 있는데, 학생들이 '기독교 신자는 되지 않더라도, 기독교 대학에 왔으니, 기독교가 무엇인가를 좀 알아야 갰다고 생각하고 생활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합니다만, 기독교 대학에 다니는 사람들이 다 신자는 아닙니다. 오히려 반 기독교인이 되는 경우가 많아요. 우리는 지금 말이 너무 많은 세상에서 살고 있어요. 신문, TV,... 각종 매체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듣고 싶지 않지만, 안 들을 수가 없지요. 이제 우리는, 겉으로 나타나는 것을 자제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음악가는 마음속으로도 소리를 듣는 사람예요. 마찬가지로, 추상적인 이야기입니다만, 젊은 세대들이 조용히 주님의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일전에 미국의 크리스천 사이언스 교회에 갔었을 때의 기억이 무척 좋았어요. 아무 말 안하고, 십자가만 쳐다보고 기도하고 묵상하다가 가는 거예요.
저는 어제 곰곰이 반성했습니다. 제가 권사직분에서 퇴임까지 헸는데, 언제 그렇게 진정으로 기도했는가. 우리 청년들에게도, '이렇게 하자, 너희들은 성경을 읽어라'하는 등의 구체적 권면은 그들에게는 일종의 잔소리로 들립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훈계하는 걸 제일 싫어해요. 그들이 직접 삶 속에서 부딪쳐야 합니다. 그리고 그 역경을 통하여 하나님께 무언중에 매달리는 거예요. 저도 개인적으로 가장 간절히 기도한 때가 70년도에 암 수술을 받았을 때입니다. 수술 전날에 저는 '이번만 살려주시면 정말 모범적인 크리스천이 되겠다고, 용서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실 것 같지 않았지만, 그 고비를 넘기고 지금 70고개를 올라섰습니다.
이제는 영락교회 청년, 우리 나라 젊은이들에게 '나는 너희들이 우리처럼 살기를 원치 않는다. 20세기의 모든 문명의 이기를 활용하고 멋지게 살아라. 그러나 성경 한 절을 주면서 그것만은 갖고 있거라.' 이렇게 간결하고 여유 있게, 그러나 신앙의 맥을 잇는 한 가지를 연구하여 지속적으로 전해주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우리가 너무 동양적으로 생각할 필요 없습니다. 우리가 먼저 젊은이들 속에 들어가 그들을 이해하고, 이 사회에 발 딛기 위한 그들의 갖가지 고민을 함께 나눠주는 것입니다.
사회자 : 어른들이 보시기에, 요즘의 젊은이들을 예의가 없고, 믿음도 위험해 보인다고 하는 반면에, 젊은이 입장에서는, 인격과 인격이 부딪치는 만남이 없이, 무관심하게 방임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갈급(渴急)함이 있습니다. 그런데 권사 님 말씀은, 기성세대가 따뜻한 시선으로 지켜보고 있다는 깊은 애정의 마음이기에 새로운 측면으로 받아들여집니다.
.....교회는 '부모공경' 말씀을 잘 가르쳐야.....
김재훈 : 늙은 사람들이 볼 때에, 요즘은 경로사상, 부모공경사상이 결여된 듯 보여요. 우리 집의 경우에는, 4남1여의 아이들이 다 분가해서 살고있지만, 주일에는 예배드린 후에 모두 우리 집으로 모입니다. 아내와 둘이 있다가 손자들까지 와서 복작복작 대면 참 기뻐요. 주일만이라도 부모를 찾아 뵙고 위로해 드려야겠다는 아이들의 마음이 고맙게 생각됩니다. 교회에서 자라는 사람들은 누구보다도 부모를 공경해야 하고, 교회에서도 '부모를 공경하라'는(엡6: )말씀을 잘 가르쳤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이야기했는데, 부모를 공경하고 어른을 아는 것이 결국은 나라를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근본이 아닙니까?
.....가족이기주의 극복은 선결과제.....
김순애 : 요즘 가장 걱정스러운 두려움은 청년들의 핵가족주의에 따른 이기주의입니다. 사회학자들도 이 점을 몹시 걱정하고 있어요. 겉으로는 주님의 형제. 자매이지만, 속은 '우리 식구'뿐이에요. 전 6·25때 남편이 납북되어서 이산가족이 됐습니다만, 그때 제가 '한국에 기독교가 제대로 역할을 감당했다면 공산주의가 그렇게 성했을까' 원망했을 정도로, 요사이 우리는 가족이기주의, 개인주의에 빠져 있습니다.
승응록 :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아온 우리세대와 젊은 세대와는 많은 차이가 있을 줄 압니다. 집안의 젊은 세대들과 얘기해 보기도 합니다만, '그때는 그때이고, 지금은 그 시대가 아니다. 그런 얘기는 듣기 싫다.' 이렇게 얘기합니다. 우리는 지나온 상황을 정확히 알고, 확실한 믿음을 가져라하는 취지에서 얘기하지만, 오히려 서로간에 갈등을 일으키게 되니, 마음 아프지요.
.....세대간의 갈등, 마음 아파, 서로를 이해하는 작업부터.....
김형로 : 한 세대를 30년이라 하지요, 저는 공산치하에서 5년을 살았는데, 공산당의 여러 모습을 보고 겪은 우리 노년층과 3, 40대의 청장년 층, 즉 전후세대와는 인생의 가치관, 생활, 종교의 가치관이 상당히 다름을 느낍니다. 대화가 단절된다는 현상이 있어요.
백옥현 : 손자들도 6·25가 남침인지 북침 인지 잘 모르고 있어요. 선과 악을 분별치 못하고, 온갖 문제가 일어나지요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모르니 그런 현상이 나타나지요. 믿는 가정에서는 자손을 위한 기도로 아이들을 올바로 키워야 합니다. 학식이나 이성으로 아무리 말해 바야 되지를 않습니다.
.....기성세대가 젊은 세대 속으로 들어가야.....
김순애 : 미국 유학을 갔을 때, 그곳 사람들의 풍요로운 생활을 보고, 한국 아이를 생각하며 울었습니다. 비단 내 아이만을 생각하고 운 것은 아네요. 당시 배를 타고 갔는데, 오륙 도에서 본 조국은, 정말 가난하고 궁핍에 절은 슬픈 모습이었어요. 슬픔으로 있는 조국, 좀 찬란하게 떠오를 수 없을까.
그런데 지금, 우리가 그러한 폐허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우리는 이렇게 역경에서 살아왔는데, 저 젊은이들은 왜 저럴까, 너희들은 지나간 과거를 너무나 모른다.'하는 일종의 피해의식. 분노와 훈계에서 벗어나, 우리 자신이 그 사람들의 세대로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들을 먼저 이해하고, 사랑하며, 그들의 마음 문을 여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입니다. 제가 젊은 사람들과 반평생을 함께 살아서 그런지는 모르나, 그들의 입장을 이해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젊은 사람들은 행동으로 보여 주기를 원합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우리가 참 부끄럽지요. 그래서 이제는 교인 하나 하나가 기독교적 입장에서 평생교육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들과 가까워지면서, 서로가 자라갈 때에 그리스도 안에서의 교회 공동체의 의미도 생기겠고, 비로소 생기 있고 활발하게 움직이는 공동체가 되지 않겠습니까.
사회자 : 하나님 나라는 인간이 생로병사의 과정을 거치면서 가야할 나라이지만, 다른 의미로, 하나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심으로 공동체에 임하는 하나로서의 의미가 있습니다. 영락교회라는 구체적 삶의 공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하나님 나라는, 권사. 장로님들의 삶을 통해서 확인시켜줄 수 있겠습니다.
은퇴라는 말은 제도적 문제일 뿐, 신앙에 있어서는 달음질을 마칠 때까지, 그 동안 못다 하신 일을 하실 수 있는 중요한 시간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비켜설 때가 아니지요. 분화되고 제도화된 교회가 된다면 상당히 생명이 질식되고, 갈등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다양한 삶의 모습을 마음껏 만끽해 줄 수 있는 영락교회로 계승되어야 하는데, 장로. 권사 님들의 역할이 그래서 크다고 하겠습니다. 오늘날 젊은이들이 갖고 있는 고민에도 함께 하셔서 그들과 함께 나누어주시고, 힘 주시는 시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김순애 : 신앙생활에 관한 귀한 말씀을 들으니 젊은이들을 자주 만나서 오늘 이 좌담회에서 이야기한 것들을 이야기하고 친해 질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 경험은 70대가 아니면 못해 보았거든요. 우리는 과거를 지나치게 많이 생각하는데, 우리가 언제 주님 앞에 갈지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의 경험을 좀더 현대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어요.
저는 5년 사이에 퇴임을 두 번이나 했습니다. 30여 년 봉직해 온 이화여대에서 퇴임할 때는 당당했어요. 그런데 이번에 권사 퇴임할 때는 굉장히 충격적인 가책을 받았습니다. '교회의 이 귀한 직분에 너무나 불충실했구나. 내가 어떻게 되어서 그랬을까. 인생은 왜 이렇게 유한할까?'
그런데 저는 퇴임이라는 말이 싫습니다. 퇴임한다는 말이 좋습니까? 장로. 권사에 은퇴라는 말이 붙을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인생에는 은퇴라는 말이 없기 대문예요. 저는 이 좌담회의 참석자로 초청 받고 참 기뻤습니다. '나를 불러주는구나"
젊은이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 '그 사람 퇴임했어도 퇴임 안 했다고 생각하고, 활용해라. 청년들을 만나고 싶어한다.' 저도 음악으로 그들을 만나고 싶어요. 화성 악이나 작곡을 배우고 싶은 분은 저에게 연락주세요. 기꺼이 시간 내겠어요. 교회에서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 사이의 유대는 이렇게 서로 마음으로 연결되는 방법 외에는 없습니다. '우리는 친구가 될 수 있다' 저는 이렇게 자신 있게 외치고 싶습니다. 끝
정리/ 김미선 기자
청소년 약물 남용
김 이 영 집사(의료봉사회)
(1991.5.[만남] 5월호에서 전재)
미국의 인구 전체를 대상으로 한 사망통계에서 술과 약물중독 때문에 죽은 경우가 심장질환, 악성종양 다음으로 세 번째를 차지하고 있다. 미국에서 30대 이하의 사망 원인으로는 가장 빈도가 높은 것이 자살과 사고사이다. 이 자살과 사고사의 경우 그 밑바탕에는 항상 음주와 약물남용이 겹쳐 있다.
이렇게 약물남용과 음주는 현대 의학의 큰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더구나 이런 음주나 약물남용은 단순히 질병이라는 차원을 넘어서 범죄와 연결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그 피해가 크다.
정의
세계보건기구(WHO)는 "약물남용(drug abuse)이란 인정되는 의료행위에 부합되지 않거나 관계없이 지속적 또는 주기적으로 지나치게 약을 사용하는 것이다."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런 약물남용의 개념에는 약에 대한 신체적, 심리적 의존성, 약에 대한 내성(耐性)의 증가, 약물복용의 습관화, 약을 봉용 함으로써 기분, 행동의 변화가 나타나는 현상 등이 포함되어 있다.
쉽게 얘기하면, 의학적인 합리적 목적 없이 단순히 약을 먹음으로써 어떤 신체, 심리적 변화가 나타나는 것을 즐기기 위해서 습관적으로 약을 복용하는 것을 말한다.
약물남용으로 가는 과정
처음에 단순히 호기심으로 시험적으로 약을 먹는다. 이때 친구의 권유, 남이 하는 것을 보고서 "나도 한 번..." 또는 "전에 우연히 복용했을 때의 효과 등이 떠올라서 등의 이유로 복용한다.
두 번째의 양상은 사회적인 관습이나 오락으로 시작한다. 어떤 단체를 구성하고 단합의 목적으로 어떤 특수한 약을 같이 먹는다던가 하는 심한 경우도 있지만 우리 나라에서는 일반적으로 신입생환영회, 입사환영회, 송별회, 망년회 등 단합을 다지기 위한 경우가 많다. 일반적으로 술을 위주로 하지만 특수집단에서는 약으로 한다. 이때 이 사용자는 자의 반, 타의 반에 의해서 복용한다.
세 번째는 상황적 약물사용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때는 단독으로 복용한다. 이왕에 겪었던 약의 효과를 다시 맛보기 위해 약을 찾는다. 어떤 심리적 갈등 상황, 스트레스 상황에서 찾는 경우가 많다. 일시적일 수도, 반복적일 수도 있다.
네 번째는 강화된 약물사용이라고 할 수 있다. 하루 한 번 이상 장기간에 걸쳐서 약을 습관적으로 복용하는 단계다. 이때는 사소한 심리적, 육체적 불편이 생기기만 하면 그것을 이기기 위하여 약을 찾는 단계이다.
다섯 번째는 강박적 약물사용이라고 할 수 있는데, 약이 없이는 견디지 못할 정도로 약을 찾는 상태이다. "약 없이는 불안해서 못 견딘다." 이 상태에서는 심리적, 육체적으로 완전히 약에 의존하는 약의 노예가 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약물남용을 하는 사람은 이 다섯 단계를 다 거치기도 하지만 한 번 약에 의한 기분전환을 맛보고 대번에 다섯 번째의 중증 약물남용자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대개는 첫 번째의 호기심에 의한 사용이나 두 번째 사회적인 의식의 하나로 사용하다가 중증으로 빠지는 것이 보통이다.
약물남용의 결과
우선 가장 흔한 약물중독의 하나인 술의 경우를 보면, 처음에 단순한 사교를 위한 음주에서 혼자 술을 마시는 상태가 될 때가 있다. 이때는 대개 "스트레스 풀려고", "기분 전환하려고", "꼴 보기 싫어서", "술 먹고 잊으려고"등의 이유를 들어서 마신다. 이쯤 된 상태를 술 중독이라 하는데 술 없이는 못 산다. 일상생활을 하면서 술을 매일 마시는 사람도 있지만 술 때문에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거나 심지어 생업을 영위하지 못하면서까지 술을 마신다. 이쯤 되면 체면도 없어지고 인생을 사는 목적이 술이 아닌가 싶을 정도가 된다. 술값을 얻기 위하여 비굴하게 동정을 구하기까지 하고 친척, 친구를 찾아다니며 술값을 뜯어내기도 한다.
차츰 정신적으로 황폐화되어 폐인이 된다. 이렇게 술에 빠져서 살던 사람은 술을 끊으면 금단증상이 나타나서 죽기도 한다. 술을 많이 마시는 것 자체로 각종 정신병이 병발(倂發) 할 수도 있다. 간 경화증을 비롯하여 대장, 위장, 폐, 신장, 뇌 등에 심각한 손상을 주게 된다.
어떤 종류의 약물남용이든 오래 지속되면 이 술 중독과 비슷한 과정을 걷게된다. 처음 단순한 호기심으로 복용한 것이 습관화되고 더 나아가서 그것 없이는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없게 된다. 종국에는 그 약을 쓰면서도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없게 되고 폐인이 되는 과정을 거친다.
약물남용을 할 가능성이 높은 사람
다음과 같은 경우 약물남용의 가능성이 높아진다. 사소한 불편, 불만, 자극을 참지 못하는 사람은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약을 찾고, 그러다가는 그럴만한 계기가 없어도 약을 찾는다. 항상 자기만 옳고 주위 환경은 잘못되어 있고, 그래서 내가 세상에 잘 적응하지 못한다고 탓하는 사람은 위험성이 높다. 자기주장을 정당하게 남의 앞에서 표현하지 못하고 일이 다 끝난 후에 뒤에 가서 투덜대기 잘하는 사람은 위험하다. 앞에서는 쩔쩔매고 뒤에 가서는 적개심을 부적절하게 표시하는 사람, 한강에서 뺨맞고 동대문에 가서 화풀이하는 사람, 즉 피동 공격적인 사람이 위험하다.
별것 아닌 쾌락을 한 번 경험하고 나서 항상 그것을 잊지 못하는 사람, 신기한 것, 유별난 것을 지나치게 추구하는 사람, 항상 즐거운 일만 있어야 마음이 놓이는 사람은 그 쾌락추구의 일환으로 약물남용에 빠져든다.
자기는 항상 남보다 훌륭해야 하고, 모든 면에서 완전해야 하고, 남들이 자기를 알아줘야 하고, 따라서 남에게 조금만 뒤떨어지는 것처럼 느껴지면 못 견디는 그런 사람이 약물중독이 된다. 그래서 사회적으로 저명한 인사들 중에서 출세한 후에 나타나는 자신의 사소한 결함을 못 견뎌서 약물중동이 되는 사람이 많다.
인간의 속성으로는 남 앞에 자신을 속속들이 드러내는 것은 감당하기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업의 속성으로 항상 자신을 대중 앞에 일방적으로 노출시켜야 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 중에 약물남용이 많다. 연예인이나 미국의 유명한 프로운동선수 중에 약물남용이 많은 이유이다. 신체적으로 한계를 넘는 과도한 작업을 계속해야 하는 직업인에게서 약물남용이 많다. 매일 중노동을 해야 하는 막노동 자에게 술 중독이 많고, 항상 주의를 게을리 해서는 안돼는 운전기사 중에 각성제남용이 많은 이유이다.
약을 접촉할 기회가 많은 사람은 약물남용에 빠질 위험이 높다. 약사, 간호사, 등 의약 업에 종사하는 사람에게서 일반인보다 약물남용의 빈도가 놓다. 더 나아가서 약을 손쉽게 접할 수 있으면 그 가능성이 높다. 집에 술이 있으면 마시게 되고 약이 있으면 먹게 된다.
약물남용을 하는 사람과 접촉할 기회가 많으면 그 가능성은 높아진다. 보고 배우는 것이다. 특히 어린 시절 이런 기회가 많으면 많을 수록 그 가능성은 커진다. 어떤 특수목적의 집단에 가입해 있으면 그 가능성이 높아진다. 특히 일상의 사회생활과는 색다른 활동을 하는 집단일수록 집단의 단합을 위해, 이탈방지를 위해, 동질성의 유지를 위해 그들 고유의 의식의 하나로 약물남용을 조장한다. 마약 밀매조직에서는 그 조직원을 마약중독자로 만드는 것은 상식에 속하는 일이다. 고등학교 학생들 중에서 비밀 서클을 만들고, 그 기념과 단합을 위해서 마리화나, 접착제 흡입, 담배 피우기, 심하면 히로뽕복용을 단체적으로 실시하는 경우가 있다.
한마디로, 감당하기 힘든 신체적, 정신적 스트레스가 지속될 때 약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 의지력이 강한 사람은 그 참는 힘이 크고, 약한 정신력의 소유자는 작은 스트레스에 약을 찾는다.
끝으로 약을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제도 아래서는 약물남용이 늘어난다. 그 중에서 우리 나라는 세계에서 약을 가장 손쉽게 구할 수 있는 나라로 되어 있다. 법규도 미약할 뿐 아니라 그나마도 잘 지켜지지 않기 때문이다.
흔히 남용되는 약물들
술이 가장 많이 남용되고 부작용이 많고 그 후유증도 위험한 약물의 대표이다.
크게 마약류, 각성제계통, 수면진정제계통과 환각제 및 그 유사 제재가 있다. 마약류는 우리 나라는 지난 몇 년간 엄중 단속한 결과 거의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유사마약으로 취급될만한 기침약 중 일부가 청소년들의 남용대상으로 남아 있다.
각성제계통은 카페인음료, 암피타민, 히로뽕 등이 대표적이다. 처음에는 피로회복이나 단순히 잠을 쫓기 위해서 사용하다가 점차 그 약의 작용에 의한 묘한 황홀감을 경험하면 급격히 중증 남용으로 이행한다. 정신집중이 요구되면서도 반복작업을 해야 하는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 수험생들, 밤과 낮을 바꿔 사는 사람들이 잘 이용한다. 처음에 소량으로 소기의 효과를 걷다가 점차 양이 늘고, 오래 복용하면 망상을 보이는 정신병이 발생한다.
수면진정제계통은 흔히 시중에서 말하는 신경안정제계통의 약이 대표적이다. 처음 잠이 안 오거나 가벼운 불안증상이 있어서 그것을 해결하려고 쓰기 시작한 것이 끊지 못하고 차츰 양을 늘리게 되다. 의학적으로도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약이어서 통제가 힘들다. 오래 쓰면 운동 실조(失調)증 등의 신체적 부작용과 약이 없으면 불안해지는 의존성이 나타난다. 금단증상이 심하게 나타나서 생명을 잃기도 한다.
환각제 및 그 유사품목의 경우는 의학적으로는 거의 쓸모가 없는 약이면서 뒷골목거래로 이루어지고 백해무익한 약들이다. 가장 흔히 거론되는 것이 본드가스, 부탄가스와 같은 휘발성 용매의 가스이고, 늘 말썽이 되어 있는 마리화나 등이 흔히 우리 주변에서 보는 것들이다. 그 외에도 더욱 심각한 약들이 은밀히 거래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을 오래 쓰면 뇌 조직에 결정적 손상을 일으키기도 한다.
이외에 코카인이라는, 미국에서 큰 문제가 되고 있는, 최근 우리 나라에도 꽤 많이 유입되는 것으로 알려진 것이 있다. 기묘한 환시(幻視). 환각(幻覺)이 나타나며 성격이 황폐화된다. 이런 환각제 및 그 유사품목은 약을 복용한 상태에서 환각이 나오고 정신이상 상태가 되어 엉뚱한 일을 잘 저지르기 때문에 범죄에도 이용된다.
이런 종류의 약 외에 특이한 것이 살 빼는 약들이다. 특히 이뇨제계통의 약으로 체중 감소를 시키려다가 신장을 비롯한 장기의 손상을 일으키고 생명이 위험하게 된다.
결어
약물남용을 쉽게 설명하면 힘든 일을 쉽게 이루려 하고, 그것이 어려운 상황에서 생긴 불편함을 쉽게 약으로 해결하는 양상으로 발전하고, 이것이 결국은 아무 이유도 없이 단순한 쾌락을 찾아 약을 찾는 지경에까지 이른다는 것이다.
약을 통해서 쉽게 가려다 자신이 망해 가는 과정이 약물중독이다.
약물남용을 막는 길은 간단하다. 그러나 힘들다. 시작하지 말아야 한다. 시작하기는 쉽지만 중단하기를 힘들다. 일상생활에서 약을 멀리해야 한다. 습관성 의약품뿐만 아니라 모든 약은 될수록 멀리해야 한다. 건강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해야 한다. 욕심을 줄여야 한다. * 한양대 의대 교수
아름다운 믿음의 가정, 박남숙 집사댁
(1991.5.[만남] 5월호에서 전재)
5월은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등 가정의 행사가 많고, 국가적으로도 부모가 없는 소년 소년 가장이나, 자식이 없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위한 행사들 속에 바쁜 날들이 많다. 마음을 표시하지 못한 채 지내던 가족들이 오랜만에 서로의 정을 나누고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계절이 왔다.
나는 얼마나 나의 가족을 위해 베풀고 있는가? 반면에 나 때문에 수고를 더하는 우리 식구는 누구일까?
식구이기 때문에 서로의 책임을 나누면서 고마워하고 감사히 여기게 되는 가정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 임무들인가를 생각해 본다.
교회 홍보 부에서 환한 웃음의 박남숙 집사 님을 만나니, 추천한 분의 뜻을 알 것 같았다. "노부모 님을 모시고 계신데 저녁시간에 바쁘시죠? 몇 시까지 가셔야 되나요?" "걱정 마세요. 학교에서 조금 일찍 퇴근하여 저녁진지를 해 드리고 왔어요."
"그러셨어요! 정말 부지런하시군 요, 그럼 오래 이야기 나눌 수 있겠군요. 가족이 어떻게 되시지요?"
"시아버님(유수로 74세), 시어머님(오흥균 권사 76세), 남편(초등부 부감), 아들 둘, 저, 모두 6식구입니다."
"어머님께서 제가 학교 선생을 하는 동안 온갖 집안 살림과 아이들을 열심히 길러 주셨어요. 과로하신 탓으로 6년 전에 중풍으로 눕게 되셨어요. 그래도 감사한 것은 의자에 앉고 화정실 출입을 겨우 하실 수 있는 것예요. 이렇게 5월이 되고, 무얼 해드려야 좋을지, 그 은공을 무엇으로 갚을 길이 없습니다. 아침 4시에 일어나 도시락 싸고 집안일 학교일 하다 저녁이면 지쳐서 부모님과 마주앉아 오순도순 이야기해 드릴 짬이 없고, 졸음이 와서 항상 죄송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용서를 빌지요. 다행히도 우리 시부모님은 금실이 좋으셔서, 아버님께서 모든 시중을 들어주시고, 말벗도 되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아버님은 저에게 고마운 분이시지요. 그 다음으로. 할머니를 간호해 드리는 간호원이 우리 집에 둘이나 있습니다. '할머니, 운동시간 외에는 팔 올리고 발 음지이세요.'등 손자들이 할머니를 제 몸보다 더 귀히 여기며 찬송과 기도로, 뭉쳐진 힘으로 간호해 드립니다. 정말 감사하지요."
"참 들어보기 어려운 가족들이군요. 우리 나라 속담의 '긴 병에 효자 없다'고 하는 말이 쑥스럽군요. 틀림없이 이런 가정의 중추 역할을 다하는 두 분의 특별한 힘이 작용되었다고 믿는데, 그것은 무엇입니까?"
"전 믿지 않는 가정에서 자라, 믿는 집으로 시집가기를 소원했어요. 하나님께, 어떤 어려운 일이 있어도 감당하겠으니, 내게 건강을 주시고, 힘을 주시며, 훌륭한 하나님의 가정을 이루게 해 달라고 기도한 결과 온 시집이므로 모든 문제를 찬송, 기도, 성경 말씀에서 풀어가지요, 저희는 대체로 밤 10시쯤 부부가 기도하고 말씀 읽고 기도하는 식으로 약 15분 정도 예배드립니다."
"예배를 드리면서 참 행복하다고 느껴질 때는 언제였나 요?"
"말씀을 읽으며 어려운 일을 해결하고, 화났던 일도 조용히 삭히는 것이지요, 어쩌다 보면 뜻이 맞지 않아 하루 동안 서로 말도 하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밤 10시 예배시간이면 성경을 서로 들고 와서 퉁명스럽게 기도하고 말씀 읽다가 화가 다 풀려 화해도 하나님 앞에서 하게 되지요."
"바깥 분이 영락고등학교 교사로 계실 때 결혼하신 것으로 아는데, 누가 중매하셨습니까?" "우리 친정은 유교집안인데, 제가 어렸을 때 6·25피난민 수용소 안의 교회를 친구들 따라 다닌 것을 계기로 교회를 열심히 다니니까 우리 어머니는 '나는 널 모르겠다. 너희 목사님께 중매해 달라고 해라' 나무라는 듯이 항상 말씀하셨어요. 그런데 청년회 성경공부 강사인 조병린 집사 님(현 아르헨티나 선교사)이 중매를 해 주셨어요. 믿는 집안이고, 바깥 분 믿음이 좋아서 결혼하게 되었어요."
"그렇게 꼭 믿는 댁으로 시집가야 갰다는 생각은 어떻게 하셨나요?"
"아버지는 제가 교회 다니는 것을 완강하게 반대하셨어요. 그런데 저는 어려서 피난지에서 교회를 잠시 다니다가 국민학교 3학년 나이쯤 해서 서울의 무학국민학교를 들어가려는데, 나이는 3학년에 해당하지만 공부를 하지 않아서 무학교회에서 운영하는 성경구락부를 6개월 동안 다닌 후 시험을 보고 학교에 오라고 해 그대로 했지요. 이 성경구락부에서는 학교공부도 했지만 성경을 더 열심히 가르쳐 주었어요. 그때는 아버지도 학교 가는 것이니까 아무런 반대를 하지 않으셨어요. 그때부터 저는 무학교회를 다녔고, 목사님의 신앙 생활 속에서 하나님을 믿는 가정의 축복과 기쁨을 알게 되었어요.
전 우리 아이들을 기르면서, 우리교회의 영아부, 유치부, 소년부, 중등부, 고등부, 대학부까지 결석 없이 개근에 가깝도록 데리고 다녔어요."
"특별히 그런 이유는 있으셨나요?"
"네 시부모님은 슬하에 바깥분과 시동생, 시누이를 두셨는데, 시부모님은 몸이 불편하여 인근의 은혜교회에 나가시고, 시동생과 시누이도 각기 다른 교회에 나갑니다. 그래서 저는 아이들이 결혼하여 떨어져 살아도, 주일에는 교회에서 서로 만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집도 이사하지 않고, 열심히 나옵니다."
"학교에서의 생활은 어떠신 가요?"
"저는 국민학교 교사인 것을 매우 감사히 여깁니다. 전 교과 과정에 하나님의 창조역사와 관련되지 않은 것이 없어요. 국어시간에도 산수시간에도 교과내용을 가르친 후 조금씩 연결시켜 주지요. 일기를 쓰게 하는데, 일기 중에 교회에 갔었다고 쓴 아이가 있으면, 다른 일을 했을 때 칭찬해 주며 '교회를 누구하고 갔니? 그래 혼자 가지 말고(그 아이와 친한 아이 이름을 대고)그 애와 같이 가봐."합니다. 한참 후에 '선생님, 그 친구하고 교회 갔어요.'하면 껴안아 주며 기뻐해 주지요. 그리고 점심시간에 식사기도를 선생님이 하니까 우리 반 52명중 3분의 1 정도의 아이들이 떳떳하게 식사기도하며 점심을 먹지요. 전 25년 교직에 이런 일들이 일상이므로 평교사로 정년을 마치며 아이들과 함께 이으려고 합니다.
교회선 고등부 교사로 봉사하는데, 안타까운 것은 고3 부모님들의 주일날 교회를 못 가게 하여 불안한 신앙생활을 하는 거예요. 큰 기도 제목이지요. 저희 아들은 삼 수를 했는데 교회는 한 번도 안 빠졌어요. 아이에게 닥친 처음 시련을 하나님은 모두 다 선으로 갚아 주셨습니다. 전 남들이 흔히 이야기하는 곤란이나 역경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훈련시키기 위해 행하시는 것뿐이지, 거기가 종착역이 아니고 시작이며, 결과는 선을 이루신다고 봅니다. 바쁜 우리 시대에 마르다보다는 마리아처럼 살길 원하며, 문제를 만들기보다는 문제를 협력하여 사랑으로 풀어 가는 방법을 최선으로 여깁니다. 글. 연 흥 숙 집사
어머니의 사랑
전 옥 희/영락유치원 자모(베들레헴성가대)
(1991.5.[만남] 5월호에서 전재)
하나님을 하늘만큼 땅만큼 사랑하는 우리 자녀가 되기를.....
고맙고 감사하신 하나님께 늘 기도 드린다. 엄마, 아빠를 축복하시어 유빈이를 사랑의 선물로 주심을 감사드린다.
유빈아! 벌써 4돌을 맞아 유치원에서도 언니가 되었구나.
유빈이를 볼 때마다 아빠, 엄마는 늘 네가 대견스럽고 고맙단다. 크고 작은 병과 사고로 놀라게 했던 일도 많았고, 밥을 안 먹는다고 애태우던 때도 있었지만 유빈이와 손을 마주잡고 기도할 때면 엄마 따라 기도하는 모습이 자랑스럽단다.
가방 메고 모자 쓰고 아빠, 엄마에게 인사하는 너의 얼굴은 정말 정말 예쁘구나.
유빈이는 하나님을 하늘만큼, 땅만큼, 사랑하고 하나님도 유빈이를 하늘만큼, 땅만큼 사랑하신다고 했지? 아빠, 엄마도 유빈이를 아주 많이많이 사랑한단다.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는 것이 바로 예쁘고 착한 하나님의 딸이 되는 것을 유빈이는 잘 알지?
유빈아! 아빠 엄마는 유빈이가 아주 튼튼하고, 맑고, 곱고, 아름답게 자라 줄 것을 믿는다. 하나님이 지켜 주실 거야.
더욱 보배롭고 현숙한 여인으로 자라거라
이 영 신 / 영락교회 유년부 자모(3부 여전도 회원)
(1991.5.[만남] 5월호에서 전재)
사랑하는 현진아!
곰돌이를 안고 평온히 잠든 천사 같은 너의 모습을 내려다보며 엄마는 옹달샘처럼 사랑이 퐁퐁 솟을 것 같은 그런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하나뿐이기에 소중하고 그렇기에 염려가 되어서 때로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또 때로는 엄하게... 부족함을 노력으로 메워 보려고 무던히 애쓰는데 잘 안 되는 구나. 그런 엄마에 비해 우리 현진이는 혼자이면서도 혼자인 것 같지 않은 당돌함과 아직까지는 하나님이 주신 건강함으로 엄마의 가슴을 크게 놀래 주지 않은 것에 감사하며 잠자는 네 모습을 다시금 보며 메이는 가슴에 꼭! 끌어안아 본다.
우리 현진이는 엄마랑 아빠랑 결혼해서 7년만에 주의의 많은 기도 속에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귀한 열매란다.
오늘은 엄마가 우리 현진이 이름에 대해서 이야기해줄 깨. 네가 아주 아기였을 때 우리교회 서대문구 감당이셨던 정종림 목사님이 네 이름을 지어주셨단다.
잠언 31장 10절 말씀으로 "현숙한 여인의 값은 진주보다 더하다"는 성경 구절의 어질 "현"자에 진주의 비유 보배 "진"자로 네 이름이 지어졌단다.
사랑하는 딸아!
네 이름처럼 진주보다 더 보배롭고 현숙한 여인으로 자라주길 엄마는 바란다.
현진아!
잠자기 전에 책 읽는 것 가지고 요즘 우리가 자주 줄다리기를 했지? 미안하구나.
엄마가 욕심은 많고 체력은 한계가 있는데 일주일 내내 성전 뜰을 밟는 은총을 사모해서 너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질 못했었지...
엄마가 앞으로는 건강해지도록 노력할게. 우리 현진이도 엄마 위해 많이 기도해주렴. 그래야만 우리 현진이 좋아하는 책도 읽어 주고 소꿉친구도 되어 줄 수 있지 않겠니?
우리 현진이가 엄마 돕고 싶어하는 맘 엄마는 잘 알아. 오늘도 현진이가 신 김치 안 드시는 아빠 걱정을 하니까 옆에서 보고 있다가 "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내가 아빠 '사랑'많이 해주고 짜증 못 내시게 할 테니까요. 내일은 시장에서 김치 사오자 엄마!" 하며 큰 제안(?)을 해서 엄마는 '그래 우리 현진 이가 어느 세월엔 가 벌써 다 커서 엄마를 도와주고 싶어하는 구나'하고 눈물이 한 방울쯤 나왔지.
고맙고 기특하구나, 우리 현진이! 엄마는 참사랑이신 하나님을 바로 알아서 하나님께로 가까이 가는 삶을 살아서 우리 현진이가 자라갈 때에 엄마의 아름다운 신앙 생활을 보여 주어야지.
사랑하는 현진아!
" 엄마랑 아빠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 다음으로 우리 현진이를 사랑해요"하고 엄마가 말하면 "그래, 알아요."하고 대답하는 우리 현진이 위에 "하나님! 나의 아버지여! 항상 함께 하셔서 지혜 주시고 건강 주시고 은총 속에서 엄마가 사모하는 하나님을 우리 현진이도 더욱 사랑하며 자라 가는 현진이 되게 해주세요. 아멘."기도한단다.
사랑하는 딸아! 엄마의 맘을 이제는 알겠지? 오늘도 변함없이 맑은 미소로 흙장난하며 건강하게 현진이다운 하루를 보내길 빈다.
조금 아쉬운 마음은 남지만 그것은 현진이가 자라가면서 잘 해 줄 것을 엄마는 믿기 때문에 염려 안 하기로 했단다.
그럼 현진아!
잘 자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거라.
독일 교회와 청소년들의 가정 교육
강 덕 치* (하이델베르크 한인교회 집사)
(1992.4.[만남] 4월호에서 전재)
주일날 아침 10시경,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독일 어느 교회의 주일예배 시간이다. 국민학교 어린이들은 물론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십대 청소년 학생들이 부모님 또는 할아버지 할머니와 나란히 앉아 예배를 드리고 있다.
아이들은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 꼼짝하지 않고 마치 부처처럼 앉아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있다. 기저귀를 찬 두어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도 철든 아이처럼 아빠 얼굴과 엄마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며 멍하니 앉아 예배를 드리고 있다.
예배당 안은 목사님의 설교 소리와 신자들의 숨소리만 들릴 뿐 고요하기만 하다. 성령이 비둘기처럼 내려 성도들의 심령이 하나님께로부터 받는 평강(平康)과 삶의 고귀함에 대한 감사로 충만해지는 경건하고 엄숙한 예배 시간이다.
그로부터 4시간이 지난 오후 2시경, 위의 독일교회에 우리 나라 교민들이 모여 주일예배를 드리고 있다. 한국인 교포가 4천명쯤 살고 있는 프랑크푸르트에는 15개의 한인교회가 있는데 이 교회는 그 가운데 하나이다. 주일예배에는 교인이 50명쯤 참석했다.
이 한인교회의 예배 시간에도 열 서너 명의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이 참석했다. 조용하고 정숙해야 할 예배 시간에 부모님 옆에 앉아 있는 서너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들이 가만히 앉아 있질 못하고 앉았다 일어났다 하거나 뒤를 돌아보기도 하고 앞좌석에 앉아 있는 다른 아이에게 귓속말을 건네며 히죽히죽 웃기도 한다.
또 다른 한쪽에서는 두어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가 엄마의 치마를 잡아당기며 칭얼칭얼 보채고 있고, 이 아이보다 몇 개월 더 어려 보이는 한 아이는 설교 단 옆에 있는 오르간으로 걸어가 오르간 키를 눌러댄다. 성도들 가운데 웃음소리가 튀어나오고 아이 어머니는 황급히 아이에게 달려가 낚아채듯 대려오면서 몇 마디 꾸짖었다.
목사님은 잠시 설교를 중단하고 기지를 발휘하여 "어린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자의 것이니라."(마 19:13)라는 성경 말씀을 인용하면서 소란한 예배 분위기를 아주 자연스럽고도 은혜롭게 이끄는 것이었다. 마치 잔칫집처럼 떠들썩한 부흥회나 철야기도회의 예배 분위기에 몸이 밴 우리 나라 기독교인들은 예배 중에 떠들썩한 것들에 대해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았다.
이 두 장면에서 우리는 독일 교회와 우리 나라 교회의 예배분위기의 차이를 발견하며 아울러 독일 어린이들과 우리 나라 어린이들의 행동 양식의 차이를 본다.
독일인들은 아이를 어렸을 때부터 엄하게 키운다. 예를 들어, 엄마. 아빠가 두어 번 달랬는데 그치지 않고 계속 울거나 칭얼거리면 아기 침대에 넣거나 아이 방에 가두어 놓고 실컷 울도록 내버려둔다. 그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아이를 성경말씀에 따라 - 잠언 서를 중심으로 - 가르치는 것과 똑같은 것이다.
돌일 에서는 아이를 엄하게 키운다고 해서 반드시 무정하게 매로 때려 키우는 것만은 아니다. 독일 부모들은 매우 가정적이다. 아이가 엄마와 함께 있는 시간 못지 않게 아빠와 함께 있는 시간도 많다. 부모는 어릴 때부터 아이들의 놀이친구나 말벗이 되어주기를 즐겨한다. 잘못할 때에는 엄하게 꾸짖고 잘할 대에는 한없이 사랑을 쏟는다. 아이가 잘못을 저질렀을 경우나 그릇된 짓을 행했을 때 부모는 즉흥적으로 감정을 노출하거나 화풀이하듯 아이를 때리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잘못한 점을 지적해 주고 다시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인내를 가지고 타이른다. 아이를 때리더라도 아이가 왜 매를 맞아야 하는지를 바로 깨닫게 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아이도 하나의 인격을 갖춘 사람이므로 아이가 주장하는 것이 부모의 그것과 상반된다고 해서 아이의 의견이나 주장을 일방적으로 묵살하거나 무시하지 않는다.
아이는 아빠, 엄마의 사랑을 받기 위해 아빠, 엄마가 싫어하는 것, 하지 말라는 것은 하지 않으려고 애쓴다.
오늘날 독일 교회는 어린이와 청소년 신앙 프로그램을 통하여 아이들에게 올바른 인격과 건전한 가치관을 갖춘 사람이 되도록 가르치고 있다. 독일 국민학교와 김나지움(인문 중 고등학교)에서는 '종교'교과를 가르치고 있는데 그 종교 교육이 바로 기독교 교육이다. 개신 교회와 카톨릭 교회는 종교교과 과정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와 공의를 위하여 봉사하고 헌신하는 그리스도인'을 가르치는 일에 연합하여 사역하고 있다. 그들의 종교 교육은 상당히 실제적이며 실천적이다.
교회는 이웃 사랑을 행동으로 가르친다. 독일의 청소년들은 바자(자선시장)나 플로마크트(벼룩시장)와 같은 기회를 이용하여 자기가 사용하던 헌책. 옷가지. 장난감 등을 팔아 그 수익금을 멀리 수단, 에티오피아, 쿠르디사탄 등의 굶주린 어린이들에게 보내주기도 한다.
교회는 환경 보호를 가르친다. 어린이와 청소년들은 하나님이 아름답고 깨끗하게 만드신 오직 하나뿐인 지구의 환경을 보호하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필자에게는 두 아들(11살과 10살)이 있는데 수년 전까지만 해도 아빠가 언제 자동차를 사느냐고 졸라대곤 했었는데 언제부턴가 그 말은 쑥 들어가고 "아빠, 자동차 면허증 따시지 않은 것 잘 됐어요, 자동차는 환경의 적(敵) 제1호니깐 요."한다. 큰아이의 이런 말을 듣고 나는 내심으로 얼마나 감동했는지 모른다. 우리 가족들은 먼 곳이나 가까운 곳이나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환경가족, 건강가족 이다.
오늘날 독일 사회에서는 적어도 아이들이 공부하지 않는다고 부모들이 억압하거나, 공부를 잘해서 좋은 학교에 들어가야 한다고 육박 지르거나. 아이들이 공부를 못하면 야단맞는 따위의 일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소중한 달란트를 부여받아 이 세상에 태어났는데 부모가 자기 아이의 달란트를 좌지우지할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장관 아들이 대학에 들어가지 않고 농촌에 들어가 축산을 할지라도, 목사 아들이 신학교에 들어가지 않고 서비스업에 종사할 지라도 부모가 그것을 노여워하지 않고 당사자들이 만족할 줄 아는 독일사회는 욕심을 모르고 분수를 지키며 직업의 귀천을 모르며 질서와 의무를 존중할 줄 아는 안정된 사회이므로 청소년 범죄란 낱말이 생소할 수밖에 없다.
* 여행작가
그리스도인의 자녀 교육
조 의 숙* (권사. 홍보출판부 실행위원)
(1992.5.[만남] 5월호에서 전재)
5월 가정의 달에는 다음 책자를 읽도록 권하고 싶다. 기억은 오래 가지 못하므로 되풀이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첫째, [평신도의 삶] 1권을 평신도교육원에서 펴낸 때가 89년 5월인데 이미 임영수
담임목사께서 '그리스도인의 가정과 자녀'의 제목으로 쓰신 글이다.
(1) 부모는 자신들의 야망을 성취시키려고 자녀를 소유할 것이 아니다.
(2) 하나님의 기업으로 위탁받은 선물로 여기고 하나님의 대리인 역할을 해야 한다.
(3) 부모는 자녀의 생활 방향을 바르게 인도해야 할 책임이 있으므로 장사의 수중의
화살을 푯대를 향해 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4) 그러기 위해서는 바른 교육 방법으로 실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둘째, 장진호 장로의 '가족 주기와 그리스도인의 삶'에서는 가족 주기의 여덟 단계
특징과 위기 그리고 발달 과업들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두 분의 글을 읽고 나서 나는 그리스도인의 자녀 교육이란 제목으로 글을 쓸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분들의 통찰력과 섬세한 표현과 체험들을 도저히 뛰어넘을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특히 잠언에서 교훈을 찾아보는 일이 유익하다고 생각되었다.
잠언은 구약성서에 나오는 지혜 문학 중 가장 대표적이며, 젊은이들에게 현세에서는 경건하고 행복한 삶을, 그리고 내세에서는 상 받음을 보장해 주는 도덕적이고 영적인(인간의 특성을 지. 정. 의. 성으로 나눔) 교훈을 담은 책이라고 읽었다. 또 잠언의 10대 주제 중 여섯 번째로 가정을 들었는데 가정은 사회를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단위라고 했다. 따라서 세대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가정생활의 기본 구조 및 그 희비극은 여전히 남게 마련이다. 본서는 부모와 자녀간, 남편과 아내간에 일어나는 여러 문제들에 관해 소상한 충고를 담고 있다.
취미와 유행은 변하여도 가정 생활의 기본 구조와 그 기쁨과 슬픔은 계속되고, 신실치 못한 남편도 있고, 남편과 불화를 계속 터트리는 아내도 있으며, 훌륭한 가정에서도 탈선하는 자녀가 있게 마련이다.
잠언의 지혜로운 충고는 그러한 문제들을 극복하여 행복하고 건실한 가정 생활을 영위하라는 것이다. 그 충고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것이라고 본다. 또한 본서에서는 선하든 악하든 간에 여인의 힘에 대한 놀라운 사실들을 묘사하고 있다.
참고 : 잠언 ; (부모와 자녀들) - 10:1 13:1,24 17:21,25 19:13,18,27 20:11 22:6,15 23:13~16, 19~28, 28:7,24 29:15,17 30:11,17
(아내들) - 12:4 18:22 19:13~14 21:9,19 25:24 31:10~31
(남편들) - 5장에서 여자를 대할 때 지혜롭게 처신하라고 가르치며, 네 자신의 아내로 만족하며, 그 아내와 더불어 사랑 가운데 거하라고 했다.
간단히 요약하면 가정은 다음과 같은 곳이라고 가르쳐 주고 있다.
(1) 사회 구성의 기본 단위이다.
(2) 삶의 지혜를 배우는 곳이다.
(3) 인격 형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곳이다.
(4) 부부의 사랑을 항상 연모하는 곳이다.
(5) 악에서 떠나 정직하게 살라는 교훈을 주는 곳이다.
(6)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의 훈계를 순종하라.
(7) 순종으로 인해 더욱 지혜로워지는 것
(8) 미련한 자식을 낳은 자는 근심을 당하고 낙이 없는 곳이다.
(9) 미련한 아들은 아비의 재앙이다.
(10) 다투는 아내는 이어 떨어지는 물방울이다.
(11) 신중하고 인자한 마음으로 진리를 행하며 하나님만 의뢰하라는 교훈이라고 하였다.
우리 자녀들이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데는 모든 방면에 기술이 필요하다. 일상 생활에 있어서나 직업을 준비하는데 있어서, 기계를 다루든지 사람과 인간 관계를 맺어 가든지 기계적 기술이나 사회적 기술을 잘 배워 익혀야 한다. 그리하여 지혜롭고 도덕적인 가치관 위에 튼튼히 서 있는 건전한 가정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교육되어야 한다.
그런데 오늘날 자녀들이 부딪히는 문제들은 복합적이어서 어디서부터 풀어가야 할지 위기 상태에까지 이르렀다고 한다. 오늘날은 기술적, 계층적으로 다원화됨에 다라서 장애가 되는 요소(내적이든, 외적이든)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되었다.
그러한 장애 요인은 첫째 자주 이사 다니게 되어서 안정감을 잃어버리는 일, 둘째 기술에만 의존하여 사람 관계는 소홀히 하거나 무책임해지는 일, 셋째 홍수처럼 밀려드는 약물 중독과 성 개방문화에 젖어 성적 타락 상태에 무의식중 빠져드는 일, 넷째 부모의 이혼. 별거. 불화 등으로 가정의 질서가 무너지거나 해체되어 개인적으로는 인생의 진로 선택이 어려워지고 이성 관계도 무질서해지며 사회 문제를 일으키게 되는 일들은 외적 요소라고 할 수 있다.
내적 요소로는 심적 갈등을 경험하게 되면서 부모에 대한 불신이 인간 불신으로 전이되며, 상호불신에서 헌신적 봉사심을 송두리째 앗아가 버리게 된다. 불신 풍조는 사랑을 식게 만들고 정당한 권위조차도 반항하거나 폭력 등으로 맞서게 되는 도전적 행위를 서슴지 않고 자행하며 만사에 자기중심, 또는 자아 도취적 태도를 가지고 사람들 심지어 부모까지도 대항하게 한다. 더욱이 오늘날 대중매체의 영향이 크므로 부모나 교사의 설자리가 없어졌다고 한다.
취학 전부터 어릴 때 다루어야 할 예절 문제는 가정에 절대적인 책임이 있다. 부모의 훈련기간을 소홀히 하거나 무지해서 또는 생활 수준을 높이기 위해 대화 없는 가정 생활을 겪게 한 아이들에게 형성된 태도는 생후 3년 이내에 교정하도록 힘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6년 이내로, 9년 이내로 해야 하되 9년이 되어서는 인생 50을 내다볼 수 있다고 심리학자들은 보고하고 있다. 우리 속담에 "세 살 버릇 여든 간다"는 말의 참뜻을 이해할 만하다.
가정 생활의 연장이 교회 생활이 되어야 할 터인데 사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교회의 예배나 봉사 생활에 치중한 나머지 가정과 사회에서의 역할을 소홀히 하는 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우리의 후세에게 진정한 신앙을 물려주기 위해서 가정 제단을 쌓는 것만큼(어떤 모양이든 좋다) 효과적인 것은 없다. 유대인들이 수 백년 흩어졌다가 다시 한나라를 이루고 나라 구실을 하게 된 것도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이 여호와 신앙으로 통일되어 있었기 때문임을 구약에서는 오늘날에도 역력히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가정 교육을 생각할 때, 또 디모데 후서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가정은 신앙 교육의 장으로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유지 발전시키는 중요한 첫 마당이며 바로 그런 형태가 교회로 발전하게 되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자녀를 신앙으로 올바르게 교육하는 것은 하나님 사랑의 첫째로 꼽히는 임무라 하겠다.
오늘날 신앙을 가진 부모가 그 자녀에게 물려줄 수 있는 최대의 유산이 있다면 그것은 곧 '여호와 신앙'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 바로 그것은 자녀들이 이 땅에서는 축복 받고 잘 되는 길이 될 뿐만 아니라 그 자녀를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참 지식이 되기 때문이다(참고 신 4:10). 생명력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녀들의 마음과 영혼을 예리하게 찌르듯 감동시키고 또한 교육하는 것이 부모의 책임과 의무인 것이다.
* 숭실대학 전 교수
어떻게 하면 아이들과 대화할 수 있을까?
(1996. 5. [만남]에서)
묵묵부답인 자녀에게 말을 거는 일은 부모에게 상당한 좌절감을 느끼게 한다. 때때로 그런 아이는 내성적이어서 부모는 그 원인이 무엇인지 잘 찾아보아야 한다.
예를 들어서, 그 아이가 심한 좌절감에 빠져 있지는 않은가? 아니면 단순히 자기 방어적이기 때문에 말을 하지 않는 것인 가?
만일 자녀의 침묵 뒤에 숨어 있는 우울증을 발견했다면 전문의사의 도움을 받아 볼 것을 권한다. 온 식구가 상담에 참여하여 그 아이가 침묵하고 대화를 하지 않으려는 원인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할 것이다.
만일 자녀가 자기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이 발견되면 부모가 습관적으로 그 아이에게 대했던 태도가 있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당신이 너무 비판적이거나 제재를 가함으로써 침묵하게 되지는 않았을까? 어쩌면 그 아이는 비판을 받기보다는 차라리 침묵을 기키는 것이 안전하다고 느꼈을지도 모른다.
자녀에게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도록 격려한다고 해서 "말해봐!"라는 식으로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 그 말은 요구라기보다는 명령처럼 들린다. 오히려 자녀로 하여금 이야기하도록 유도할 수 있는 당신의 감정이 되어야 한다.
특별히 자녀가 매우 내성적인 아이라면 스스로 이야기할 수 있도록 부모가 생각하고 느끼고 있는 바를 먼저 말로 표현해 주면 좋다.
단순한 사실들 - 아침식사의 종류 또는 당신이 오늘 쇼핑을 나가는 이유 등에 관해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 좋다. 아이가 보는 TV 프로그램, 그의 옷(이것에 관해서 비판하지 않고도 토론할 수 있을 경우). 학교에서 있었던 일 등 부담 없는 주제들에 대해 계속 이야기를 하라.
또 자녀를 아무 부담 없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만한 편한 장소로 데리고 가라. 아이가 택한 장소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너무 비판해서는 안되며 사소한 판단과 비난일지라도 피하도록 노력하라.
십대 청소년들은 부모와의 대화를 유난히 꺼린다. 그렇다고 그들이 말을 하지 않고 지내는 것은 아니다. 중학교 1~2학년 아이들은 특히 전화를 들고 친구들과 이야기하며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다.
십대 자녀와 대화를 나누고자 할 때 그들을 초청하기 위한 특별한 방법 중의 하나는 그에게 "난, 네가 친구들에게 말하는 것을 들을 때 기분이 정말 좋단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만일 십대 자녀의 침묵 속에서 분노를 발견했을 때는 그 원인을 찾아야 한다. 인내를 가지고 천천히, 그리고 유순하게 자녀가 그 이유에 대해 입을 열도록 격려해야 한다.
그러나 십대 아이들을 의자에 앉혀 놓고, "지금부터 이야기를 할 때까지 여기 앉아 있어야 한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아이로 하여금 당신의 목적이 말을 시키는 것이라는 느낌을 갖게 해서는 안 된다. 그런 태도는 특히 십대들에게 효과적이지 못한 방법이다.
인내야말로 어느 연령의 자녀라도 부모에게 마음을 터놓고 대화를 시작하게 해주는 열쇠이다. 부모들이 진심으로 자녀들을 사랑하며 시종일관 마음을 열고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면 대부분의 자녀들은 점차적으로 부모와의 대화가 위로를 준다고 느끼며, 부모와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계속해서 찾게 될 것이다.
자녀가 대화의 문을 열지 않을 때
만일 자녀가 당신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자녀가 아무 것도 표현하지 않을 때 가족 관계는 관심 부족으로 움츠러드는 것같이 보일 것이다. 이런 경우 다음과 같이 해 보라.
첫째. 인내해야 한다. 특히 자녀가 10대 초반이라면 이런 상황은 흔한 것이다. 단순히 자신의 요구를 은밀히 개인적으로 표현하는 것에 불과할 수도 있다.
둘째. 계속해서 자녀에게 당신의 사랑을 나타내고 꼬치꼬치 캐묻지 말아야 한다. 직선적인 많은 질문보다는 그의 행동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 필요하다. 자녀로 하여금 대화를 나눌 것인지 아니면 그만 둘 것인지 선택하게 하라
셋째. 만일 결핍된 의사소통 뒤에 어떤 문제가 있다는 느낌을 받거나 그것 때문에 더 심각한 문제가 일어날 것 같으면 그 아이와 직접적인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
그리고 단순하게 말하라.
"너도 그렇겠지만, 나는 너에게서 벽을 느끼고 있단다. 그리고 그것 대문에 괴로움을 느낀단다"
때때로 상처를 입은 우리 자신의 괴로움을 자녀에게 알려주는 것이 막힌 대화의 벽을 허는 방법이 될 수도 있다.
예수 님은 문 밖에 서서 두드리기는 하지만(예3:20) 문을 부숴 버리지는 않으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것이 성경 적인 인간관계의 원리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은 주도권을 가지고 계시지만 항상 우리에게 "아니오"라고 말할 자유를 남겨 두시는 것이다. 하물며 우리가 부모이지만 자녀들에게 어떻게 강압적으로 할 수 있겠는가?
좋은 청취자가 되는 방법
첫째, 듣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인정하라, 둘째, 듣는 것을 중시하라. 셋째, 적극적으로 듣는 방식을 자주 실천하라
이 글은 상담전문가인 데이브 칼슨의 글로[행복한 가정과 자녀교육](파이디온 출판사)에서 뽑았다.
어린이들은 놀면서 배우며 자란다
이 현 숙 전도사(상담부 담당)
(1997. 8. [만남]에서)
얼마 전 컴퓨터를 배우러 학원에 갔다. 뒷자리에서 한 엄마가 초등학교 4학년과 2학년쯤 되어 보이는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함께 배우고 있었다. 강의에 실습을 겸하여 3시간을 진행하는 과정이었는데, 아이들이 잘 따라 하는 듯이 여겨져 내심 신통하였다. 그런데 1시간쯤 지나서 "엄마 목말라 물 좀 마실래"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엄마는 "얘는 이렇게 참을성이 없으면 어떻게 하니? 공부를 잘 하려면 참을성이 많아야 해. 그래야 00대학교 가지. 00대학교 다니는 형들은 오랫동안 앉아 있을 수 있단 말이야, 너, 학교에서도 이러니?" 그러니까 아이는 시무룩해져서 "아니 야. 학교에서는 안 그래" 했다. 그러자 엄마는 "안 그러긴 뭐 안 그래? 엄마는 안 봐도 다 알 어."하는 것이었다.
그저 어린 시절부터 공부 잘해야 한다고 아이들을 세뇌시키고 있었다. 아이들을 부지런하고 일 잘하도록 키우는 것을 나쁘다고 할 수 없지만 엄마들의 지나침이 오히려 아이들의 의욕을 잘라 놓을 것 같아 염려스럽다.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을 둔 엄마들은 '아이가 즐겁게 노는 것을 보면 불안해한다'고 한다. 반면, 아이들이 책상에 앉아 있으면 안심이 된다고 한다. 엄마들의 신경은 온통 아이들을 향해 있고 아이들이 언제나 공부만 하고 있기를 바란다.
경쟁이 심한 사회에서 살면서 언제부터인가 우리의 체질이 되어 버린 '열심히 일해야 한다'가 '놀이는 하찮은 것이다'는 생각을 낳게 하였고, 이것을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까지 적용시키게 된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삶에 있어서 적절한 놀이는 일과 균형을 맞추어, 어른에게는 물론 아이들에게도 필수적이다.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는 놀아야 할 시기에 노는 것을 빼앗긴 어린이들은 그것을 보상이라도 하듯 청소년이 되어서 놀이에 몰두하거나. 사회적으로 비행을 일으킨다고 보고하고 있다.
요즘 아이들은 숨을 쉴 틈이 없다. 핵가족 시대에 부모가 자녀에 대한 환심과 통제가 완벽하여, 아이들의 생활이 지나치게 부모의 간섭 아래 있게 된 것이 문제가 된 것 같다. 예전에 형제도 많고, 식구도 많던 대가족제도에서는 아이들 하나에게까지 부모의 손길이 미치지 않았다. 그래서 이 구석 저 구석에서 아이들이 나름대로. 이리저리 기웃거려 보고 어린 시절의 호기심을 시험해 보곤 하였다.
그러나 이젠 그럴 구석이 없다 동네에는 노는 아이들이 별로 없다. 아파트 창을 통하여 내다보면,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오는가 하면 다시 가방을 바꾸어 메고 학원으로 총총 걸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친구 집을 찾아다니며 놀자는 아이도 없다. 간혹 친구와 놀자고 친구 집을 찾는 어린이는, 엄마가 집에 없어서 바깥으로만 나돌아다니는 아이가 아닌가 하는 의심 어린 눈길을 받기도 한다.
직장을 다니기 때문에, 어린이들이 학교에서 오는 시간에 집에 없는 엄마들은, 그래서 그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게 하려고 애쓴다. " 학교에서 오건 숙제하고 속셈학원 다녀서, 피아노 학원 다녀서 집에 와 있거라, 그러면 엄마가 돌아온다"고 일러둔다. 빈틈없이 엄마가 아이의 공부 시간을 계획한다. 놀이 시간은 빼고 공부 시간만으로 꽉 채운다. 잘못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이 놀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놀이는 아이의 일이며, 부모는 아이의 첫 번째 놀이 대상이다. 아이에게 젖을 주고, 기저귀를 갈아주고, 목욕을 시키는 동안 부모는 아이와 함께 노는 것이다. 태어나서 처음 1년 동안의 놀이 활동은 유아들의 훗날 학습에 가장 중요한 기초를 형성한다.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그들이 살고 있는 멋진 세계를 발견한다. 실제로 아이들은 놀이활동을 통해서 서로 다른 여러 가지 흥미와 기술을 습득한다. 다리 근육이 발달하면서 공차기하는 묘미를 깨닫고, 손의 근육이 발달하면서 공 던지는 재미를 안다. 술래잡기를 하면서 놀이의 규칙을 익히고, 역할의 구분을 배운다. 승자와 패자의 기분을 알게 된다.
놀이에서 얻는 다양하고 풍부한 경험은 놀이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일반 사회의 경험으로 연장된다. 그래서 어린 시절 충분히, 열심히 놀 수 있었던 사람이 어른이 되어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된다.
자녀가 온전한 그리스도의 분량으로 자라는 것을 소망하는 신앙의 부모들, 그들은 다시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게 된다. 아이를 어느 만큼 놀게 할 것인가? 어떤 놀이를 하게 할 것인가? 누가 정확한 대답을 줄 수 있단 말인가?
믿음의 부모들은 지혜의 근본이신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면서, 조심스런 마음으로 아이들이 자라나는 것을 도와줄 뿐이다 왜냐하면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 참고도서 : 어린이 성장의 이해, 주선애, 대한예수교 장로회 출판국
성공으로 이끄는 젊은 엄마의 자녀 교육, 김미경, KBS문화사업단
우리 아이의 믿음이 자랄 때까지. 앨리스 채핀 지음, 두란노
청소년 자녀를 키우는 부모의 역할
이 현 숙 전도사(상담부 담당)
(1997. 9. [만남]에서)
가족주의의 흐름에 있어서 가족관계가 가장 어려운 시기가 자녀가 청소년기일 때라고 하는 주장은 많은 가정에서 확인되는 사실이다. 그 이유는 자녀가 청소년기에 이르게 될 때, 동시에 부모는 중년기에 들어서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청소년기에 이르는 것은 자녀에게 인생의 커다란 고비이지만 중년기에 이르렀다는 것도 부모들이 받는 스트레스 면에서 볼 때 만만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 집안에 긴장하고 있는 두 세대간에 충돌이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 때문에 이 주기의 가족관계가 어려울 수 있다. 자녀가 부모에게 대하여 "부모님은 우리를 억누르려고만 하셔" 라고 할 때. 부모는 자녀에 대하여 "요즘 애들은 이해할 수가 없어. 어찌 그리 자기주장만 한단 말인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두 세대간의 갈등이 모든 청소년기 가족에 부정 적으로만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의 가족관계가 좋았던 가족은 자녀가 자기주장을 하는 것이나 부모가 기성 세대적 발언을 하는 것이 긍정적으로 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인하기 위하여 부모에게 자신의 주장을 표현하는 자녀에 대하여, 자존감이 높은 부모들은 위협 감을 느끼지 않는다. 자녀를 수용하고 자녀로 하여금 독립할 수 있는 훈련을 시켜줌으로써 자녀를 자신감 있게 떠나 보낼 수 있다. 또한 자존감을 갖게 키워진 자녀들은, 부모의 발언을 그들이 앞으로 살아갈 세상에 적용할 규범으로써 순수하게 받아들인다.
그러면 청소년기 자녀들이 부모와의 관계가 나빠지게 되는 것은 어떤 경우일까?
청소년기 자녀들의 반항을 부채질하는 요소들에 대하여 대학생들을 상대로 한 연구(Jack Balswick, Clito Macrides, 1975)가 있다. 이 연구에 따르면 자녀가 청소년기에 이르기 전에 부모가 자녀를 어떤 방법으로 양육하였는가 하는 것이 중요한 요인이 된다.
엄격하게 키울 것인가? 또는 허용 적으로 키울 것인가? 부모의 엄격성과 허용 성이 청소년기의 반항에 미치는 관계에 대한 설명은 단순하지 않다. 그림으로 설명하자면 매우 허용 적이거나 매우 엄격한 가정에서 자라난 청소년들이 반항하는 경우가 매우 많고, 반면에 엄격함과 허용이 균형 잡힌 가정에서 자라난 청소년들이 반항하는 경우가 가장 적게 나타난다.
매우 엄격하게 자녀를 키우는 부모는 가정 규범도 매우 엄하게 적용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엄격성은 자녀가 사춘기가 되었을 때 감정적으로 혼란을 줄 수가 있다. 이제 자녀들은 밖의 다른 사회를 많이 경험해 보기 때문이다.
이때 가정규범을 엄격하게 유지하려는 부모에 대하여 자녀들은 혼란 속에서 반항적 태도를 취할 수 있다. 반면, 허용 성이 높다는 것은 가정 규범이나 규정된 행동양식이 없다는 의미가 된다. 청소년 자녀들이 가정 밖의 사회에 참여하고 싶을 때, 자녀들은 부모가 그들에게 기대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어떤 안내 지침도 없기 때문에. 청소년 자녀들은 거의 모든 것, 즉 대개는 반항적인 것으로 보여지는 행동들을 해볼 수 있다
그러면 자녀양육에서 엄격함과 허용을 균형 있게 하기 위해 필요한 일이 무엇일까?
먼저, 부모 자녀 관계는 자녀가 부모에게 완전히 의존하는 관계에서 반 의존으로, 그리고 독립적으로 이행해 가는 관계임을 알아야 한다. 이러한 관계의 변화 과정에서 부모가 자녀의 성숙에 따라 양육 태도 특히 대화의 방법을 바꾸어 나가야 한다.
처음에는 '일방적 대화'를 한다. 즉 부모가 자녀에게 해야할 것에 대하여 말하는 시기이다. 이때는 자녀가 너무 어려 스스로 자신의 일을 알아서 할 수 없을 때이다. 부모는 자녀에게 해야 할 과제에 대하여 알려 주고, 감독할 필요가 있다.
다음에는 가르친다. '일방적 대화'가 아닌 '쌍방대화'가 가능하다. 이 연령에 이르면 아이들은 질문이 많아지고, 대화나 토의를 통해 배울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대화의 대부분은 여전히 부모가 주도한다.
다음에는, 부모와 자녀가 함께 직접적으로 활동에 참여한다. 부모는 자녀에게 여전히 지시하기는 하지만, 적절한 행동을 가르치고 본을 보이기도 한다. 이전 단계와 다른 것은 부모의 통제는 줄어들게 되면서, 자녀가 스스로를 형성하도록 북돋워 주는 것이다.
마지막 단계는. 맡겨두는 경우로 스스로의 과제를 책임지고 행하도록 자녀에게 책임을 위임하는 단계이다. 청소년 때 이 단계를 맞이하여 자녀는 부모에게서 독립하게 된다. 이때 청소년은 자신에게 주어지는 자유가 증가함에 따라 부모와 다른 견해를 표명하는 경우가 빈번해 진다. 이것은 자녀가 스스로의 인격을 갖추도록 기회를 주는 상호존중이라는 성인관계의 시작을 뜻한다. 이때, 자녀에게 책임을 위임하는 경우가 되면, 부모는 자신들의 권위가 상실된다고 염려할 수 있다. 또 청소년 자녀들이 책임을 이행할 수 있는 능력에 대해 염려할 수도 있다.
이래서 중년기 부모는 청소년기 자녀들과의 관계에서 위기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가정은 이 시기에 이르러 지금까지 잘 살아왔는지 확인된다. 무조건적 사랑이 가득하면 가족들은 은혜의 분위기 속에서 살게 될 것이다. 은혜가 있다는 것은 실패와 확신, 즉 용서받고 다시 한 번 기회를 부여받을 수 있다는 확신이다. 청소년 자녀에게 책임을 이행할 능력이 없다고 믿으면. 청소년들은 실제로 책임감 없는 행동을 한다. 이와는 반대로 부모가 청소년 자녀에 대하여 능력 있고 책임감 있다고 믿으면 이러한 믿음은 그대로 자녀의 행동에서 나타난다. 결국 청소년 자녀의 성숙은 부모의 믿음에서 나오는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