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도 이와 같지 않습니까?
그리워 수 없이 되뇌여도
끝이 보이지 않는 것들
다가오지 않는 것들
+
잡히지 않습니다
쳇바퀴를 돌고 있으니까요.
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
달 속의 토끼
달에, 계수나무 한 그루에
절구통을 찧는 토끼 한 쌍
새빨간 거짓말이다
사람들처럼 사람이 사실
만들어낸 설화이기도 하지만
내 한 쪽 코에 화장지를 꽂은 채
불을 붙이면
다른 한 코에서 토끼가 나올까?
나도 사람인데 토끼가
있을거라고 믿는다
산 토끼는 보이지 않고
새끼를 낳으면
세상을 너무 빨리 알아버린
어버이 토끼가
죽어가는 사생아 같은 항문으로
변기에 수장시키는 형태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이지러져 발효된
토끼를 본다
피에 피를 나를 이어 받았다
토끼는 내 굴 속에서 달에서
쫓겨와 살지만
이틀에 한 쌍이 죽고 다른
한 쌍의 암 수 토끼를 낳는
법을 배우고 죽는다
다산! 다산하면 다시
아직 씨 말라 죽지 않은
내겐 없는 계수나무가 있는
달에 보낼 것이다
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
멸치
더러는 머리만 남아 입김질 하며 뛰기도 하고
머리없는 몸뚱아리한 놈도 살아 파닥이는데
무척이나 목말라 하네
죽어 멸치가 본 세상은 너무 눈부시지 그래
눈이 멀었지
왜 부신걸까
희게 뜬눈한 뜬 눈으로
오로지 나를 바라보네
나는 시장 뒷골목 국밥전에서 막걸리를 마시지
든 소줏잔에 멸치를 담그니
자꾸 내 내 입을 보며 뜬 채로 아리게 파닥이네
나를 갈망하네
그래 너도 취해 품었던 바다를 술잔에 개우고 나니
화르르 타버린 영혼만 남아 높아진 잔 수면엔
술렁이는 숨-바람 인다
세상이 너의 꿈틀대는 무덤이라 몸은 버려둘 지라도
혼백이야 바다가 아니었던가
강 메운 땅에 억새밭이 흔들리면 그것은 바람이 아니다
끊긴 강 멘 땅 위로 거슬러 오르는 연어의 혼바람 소리
부들거리는 멸치의 꼬리를 잡고 입안에 넣었다
이제 비로소 나는 너의 死海가 된다
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
태양의 동쪽
태양이 서녁 산마루에 거린 것을 보고 길을 걸으오
초저녁 핏빛 달 해 그림자 덮여 오후내 떨었을
저 달이 나를 간절히 바라봐 주지 않소
가다가 지치면 그 자리에 누워 눈 떠 바라다 보며
우리는 그렇게 잠들어 잃어버린 것
두고 온 것 찾으러 가니 무엇인지 모르니 묻지를 마소
그저 빛 살을 길 삼아 가나니 알러 가오
나는 왜 길을 걸었을고
모르면서 나는 여기에 떨어져 살고 있을고
가다 달마라도 만났으면 좋으련만
그, 내 몸 빌어서 갈 수 있다면
왜 동쪽이냐고 묻지를 마소
왜 밤에 길을 걸어야 하냐고 묻지를 마소
아 해도 둥글고 달도 둥글고
세상 모든 길들 끝이 없는 길
돌고 돌 뿐이지만
그래도 무엇이 있소 가다보면 내 길 뒤에
아쉬운 지나온 과거의 발걸음 뒤에도 있소,
찾을 수 없소
그래서 저 해에게로 먼저 나를 찾아 바라보고
달아나기 전에 물어야 하오, 아니 잡아야 하오
해에게서 그 동쪽 깊숙한 곳엔 나의 물음이 있을 것
같소
아니 그것들이 나 돌아갈 줄 알고
잠시 나의 것들을 맡아 숨기고 있는 것 같소
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
가난한 사랑
연탄 백장만 있어도 우리는 기뻣다
아직 눈은 내리지 않았는데 마당 앞 공동 수돗꼭지가
얼었어도 연탄은 그래로 있다
서랍 안엔 쓰다 남은 문풍지가 있고
국물 자국에 녹슨 석유풍로 위엔 어느 집
회갑연에서 받은 성냥 한 통
우리의 체온만큼 땀에 찌든 지릿한 이불이 있어
서러운 초 겨울은 결코 가난하지 않았다
손잡이 떨어진 10인치 흑백TV속
오늘 뉴스에 억억하는 땅 부자가 많아도
간밤에 꿈자리 좋아 남에게 얘기 못하고
몰래 기침만 해대며 약 대신
일억원 짜리 주택복권을 샀다
일주일 동안 기분이 내내 좋았다
그 꿈이 오늘 꿈으로 인하여 다른 꿈
꿀까봐 잠도 오지 않는 밤
마지막 밤은 그렇게 가을도 주저 않은 비가
쭈그러진 세수대야 위로 크게도 떨어졌다
우리의 사랑은 아직 불 붙지 않고
창 밖 구석진 곳에 지필 겨울을 기다리고
있었다
자꾸만 해가 해닯지 않고 가난한 날
백장의 연탄이 있는 우리 방으로 몰래 와
숨어 들었다
해는 겨울에 나의 사랑을 그렇게
조용히 훔치내고 있었다
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
홍시
붉은 노을을 닮아 있다고
이제 하야알 밤하늘에 겨울 달이 뜬다고
만지면 다가가 보면 순간 사그러질
감나무 까치 밥으로 남겨야 한다는
홍시 하나
그냥 두고 가네
까치가 잎새 다 떨궈진
앙상한 그 가지에 앉아
그저 잎인 줄 알았었을까
아니다 그도 배고픈데
올 겨울 날
가난한 서로 마음 보듬어 주는 것이라고
꽃의 잎이 되어야 한다고
아직 노을은
앙상한 감나무에 홍시처럼 걸렸는데
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
달
실핏줄 같은 골목길을 오르다 보면
골목 어귀마다
먼저 나와서 맞이하는 건 전봇대 뿐
사이사이 왠 전깃줄에 걸린 달은
가등처럼 꺼질 줄 모르는가
거미줄에 얽혀진 듯 떠 보이는 저 달은
전깃줄의 전류를
몰래 훔쳐 먹고 밝은 것이겠지
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
촛불
방 안에 사물이 흔들린다
창문도 방문도 잠겨 있는데
어디서 새어 드는 바람인지
사물의 그림자 다시 고요를 찾는다
그리고 다시 흔들린다
사물의 그림자에 얻어 맞은
내 머리 그림자가
바다 위의 일몰로 부서져
술렁인다
사물처럼 먼지를 받으며
서 있어도 움직이고 싶다
움직일 수 없는 이 영혼의 부제
촛불이 흔들린다
현기증 나도록 방 안이 흔들린다
창문도 방문도 정막에
쌓여 보이지 않는다
나는 촛불을 껐다
나는 시력을 잃었다
사물도 시력을 잃어 이제 더는
흔들리지 않은가 보다
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
모기장
여우장 장미장 모란장 무궁화장
새 집의 주인은 이 도시에 따로 있다
저녁부터 들어와서 맞이하는 여름모기,
살갏픈 여인의 등뒤에서 침을 논다
침대위에 맞등한 남녀가 잠을 잔다
만족한 늙은 남자의 코골음 가픈 소리
달동네 그 막창집 자식새끼 하나 없는
과부라 소문난 중년의 한 여인은
밤새껏 돌아 올 남편 위해 오늘도
단칸방 한 채 꽉 찬 모기장을 짓는다
모기도 갈 수 없는 그 여자 가난보다
외로운 곳.
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
바람열차만 오가던 간이역
버려진
끝없이 배고픈 젓가락 한 쌍이
이정표 없는 고추잠자리
앉아 기다리는 목마른 간이역
갈대는 늙은 갈대는
갈 곳 없는 역사
역사의 가느다란 허리 떨린다
휘이이익
거기 바람이 들어 온다
잠자리 그 바람호에
여비도 없이 올라서서
어디론가 떠나가는데,
오는 겨울을 준비하던 길
연탄집게 교차로에서
강남이라던 폐광촌까지
개망초꽃 뻗은
그 빈 레일위로
다시 나비가 와 앉는다
노을에 붉게 젖은 역사의 몸
떨린다
정처없이 떠돌던 나비도 그만
잠시 쉬는 자리
입김처럼 바람열차만 오가던 간이역은
바로 나,그네이어라.
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
섬, 律女
표류할 곳 없이 마냥 떠도는;
律女를 찾아간다는
섬 하나를 타고
무작정 바라기만을 바다를 보고
설 땅 줄어만 가는 것이
그래도 낡은 이 섬이, 바다에
더 이상 줄 것 없어 이제 제 살을
조금씩 떼어주는 것이라고
섬이 말을 건낸다
늙고 기력 없는 섬이
바보스러울 만큼 착하고 아리땁다던 그;처럼
제법 그 먼 옛 律女다워졌다
律女를 만나기 전에
침몰하지 말아야 할 것을……
그러자
섬의 발길을 막던 바다가 노하며
말을 한다
자기 안에 무수한 물고기가 있듯
너의 고향은 어디였냐고
바다란 이름으로 내가 서 있었던 이유는
섬이 곁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
여름을 삼킨 두꺼비
밤새 비도 바람도 오고가던 여름날
아침에 일어보니 앞산에 걸린 구름
저 매미 떼울음에 갈 곳이 없어졌다
고향집 뒤안간 지렁이도 분주했다
여름이 오기 전에 폭우라도 오기 전에
두꺼비 걸어 간 곳에 지렁이 없어졌다
여름을 삼킨 두꺼비 겨울엔 잠을 잔다
겨울이 보고픈 매미가 여름을 끝없이 삼켜댄다
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
-작품 목차-
낫 달1 2 3
가을 밤 빗 속에서
귀뚜라미 1 2
재떨이
깊은 가을 밤에
철로 위에서
낙엽보다 검은 국화꽃 앞에 무덤이 안겼네
휴지통
빗소리
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
잔인한 별
달 아래 저 돈네
밤만 되면 인등 켜지는
저것은 별 아니 믿고 싶다
누더기 , 멀리서 보면 별
별에서 뛰쳐 나오면
있었던 곳은 잔인한 별
아침만 되면 사라져
열기 없는 식은 슬레이트 지붕 뿐
지겨운 곳 별 곧 또 별
뜰 별
멀어지면 또 다른 세계 별천지
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
라면 가게를 지나다가
비가 왔다. 소나기에 내 몸도 젖었다
유리 벽 너머로 어린 여고생들이 허연 다리를 걷고
맛있게 라면을 먹고 있다
진한 향수가 내몸을
불룽거리게 했다
갑자기 그 향수를 먹고 싶었다
그의 모든 것을 모든 근원을 따 먹고 싶었다
풀어 헤쳐진 젖은 그의 곱슬머리
따뜻한 그를 내 안에 넣고 싶었다
키스 그리고 진한 x 따 먹고 싶었다
나를 원한다. 넣어줘 제발 넣어줘
나를 원하듯 그냥 지나칠 수 밖에 없었다
주머니속엔 토큰하나
네겐 국물도 없다 말었이 그들이 다
먹어 버렸다
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
가을 밤 빗속에서
1
새벽 빗속에서 귀뚜라미
울음소리 커져갔다
고양이 바스라질 듯 슬레이트 지붕위를
뛰는 소리보다 더 큰 요란한 비는
흔적없는 밤에 여름을 떨어뜨려
땅으로 하수구 구멍으로 쳐 박아 놓고
가을을 지금도 시린 가슴 얼어 붙어
쩍 갈라져 피 흘린 이들 바세린 대신
소주를 부어 제 가슴 소독해 치유하기엔
지독히 깊은 상처 곧 겨울이 오겠지
연탄 백 장 문풍질랑 달 일 번지 보다
높이 치솟아 낮 달에 걸리기 전에
우리는 준비해야만 했다
2
우리의 높은 마을 우산 같은 집이라
빗소리 크게 들린다 항상 천정
구석진 곳에서 벽지를 타고 스며 나려들어
찌든 누런 벽지도 젖는 밤
부엌 기둥만 남은 옆지비 매자네도
태풍 걱정 있는 게 더 낫다는 여름
가고 갈 가을, 비 언제 그치려나
사방 벗겨진 페인트 가루가
아직 남은 구 냄비위에
천장위에 비듬처럼 떨어졌는데
3
몇 년 전부터 현기증나는 전주를 지탱하던
많던 전깃줄 가지 삼아 흰 똥 골목길 쌓던
참새도 어디론가 사라져
개똥도 보기 힘든 골목길 비가 내리고 꺼질 줄 모르던
가등도 젖어 길목에 빛을 섞여 내리고
살 부러진 우산이 육중히 길을 지난다
그의 담배 연기도 퍼 붓는 그 줄기 속에서 하늘로 오르는데
사람만이 비를 맞지 않는다
4
비도 땅에 떨어져 모여 흘러 강을 이루듯
낮은 곳으로 깊은 바다로 모인다던데
사람은 빈 손 맨 주먹 가진 우리는
쫓겨 산을 오르는가
가진것이 없다 두 손 가벼워 우리만이
오르내려야 하는
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
귀뚜라미1
귀뚜라미는 뜨락 마당에 있는데 분명히
그 울음소리는 벽에 있다. 어둠 속에서
문을 열고 다가가면 나의 영혼에 대고
쯔쯔쯔 혀를 차고 우는 것일까
아니면 다가 설 수 없는 모습으로 태어나
나를 바라는 울음이던가
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
밤
어머니는 막차가 끊기기 전에 들어 오셨다
서 마지기 노과 후미진 야산에
칡넝쿨 엉겅퀴 섥켜있는 작은 밭 하나
유산이라던 아버지께 시집 와
소 대신 호미와 삽을 부려
스무 마지기의 노과 큰 밭도 가지고
외ㅣ양간 지어 소도 닭도 염소도
어린 자식들 못나게 맞바꿔 지은
허송 이십 여년 세월
조합장 김씨 보증인으로 나서서 함께
왕골장사에 사기를 당하고
마지막 남은 서마지 논을 팔아
쫓기듯 도시로 달 꼭대기 집 사글세 방으로
처음 이사가던 날 밤
아버지의 코 곯음 소리가 미웠다
나는 고무신을 신고 탄 불을 갈 때 쯤이면
주인 집 개가 짖는다
호미와 낫이 든 붉은 새참 다라통
한 손엔 후레쉬를 들고 오시던
흙 묻은 몸빼 바지에서
젖은 옷자락을 보면 오늘도 식당에서
만칠천 원을 벌어 오셨나 보다
지린 깊은 가을 밤
네 가족이 함께 쓰는 공동수돗가에서
뒤안간 고샅에서 처럼 소변을 뉘는데
찌렁지런한 귀뚜라미 소리에
눈물 흘리신다
연탄집게 아래 간 백탄의
붉은 온기는 아직 남아 있는데
오늘도 소주 석 잔에
공장에 신문배달을 하는 우리 형제
눈 부끄러운 마음도 잊으신 아버지는
방 바닥에 토하시고 나서야 먼저
코를 골며 잠이 드셨다
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
재떨이
세상은 이 땅은 내가 채운 재떨이
누군가 내 재떨이에 침을 뱉고 꼬구리네
하늘에 내 던져도 꽁초는 불타며 되돌아 올 뿐
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
깊은 가을밤엔
달을 보아야 한다
송편 대신 달을 먹고
임신이 아니길 빌고 또
빌어야 한다
마당엔 쭈그렝텡이
누렁 호박 달뎅이 처럼
꺼졌어도
아버지의 겨절도
어머니의 청춘도
태풍에 씨러진 나락을
보시더이다
겨울이 오면 새 아기
맞아 들일 터
좋은 소식 기다린다며
쌀 이랑 늙은 호박 보내 주신다이며
주소를 여쭈시다이다
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
저 달은 저 태양은
오늘따라 달이 무척 크고 둥글다
어김없이 희기도 하고
흑점처럼 때가 묻었다
밤이라 세상은 검어도
하늘을 자세히 보니
아 저게 푸른 빛 천에
물든었던지
낮 빛의 이제 세상처럼 아니
올 오늘 낮빛처럼
태양의 빛이 발정한 듯
뚝 삐져나온 구멍 난
하늘에 때묻은 살결이 아닌가
촘촘히 반짝이는 별들은
그저 완벽할 수 없는 나의 땀 구멍같은
하늘의 미세한 숨구멍
가려진 세상은 희다
누에고치 하난가 남긴 명주실만
보면 나는 알 수 있다
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
철로 위에서
철로 위에 나
서 있으면 나는
왜 그냥 눕고 싶어질까
열차가 오면
나 그대로 누어 눕고 싶다
나 사랑하고 싶다
열차는 손 한 번 흔들지 않고
오지만 서지 않고
떠날 줄 알면서
어딘가 종착역을 향해 가는
그 사랑이었다
나는 나 혼자만 붉은 꽃잎
이렇게 머물러 있으니
나는 겨울에 져도
열차는 떠난다
기억은 살아 그 길을
쉼 없이 오간다
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
휴지통
휴지통은 슬프지 않다
무언갈 잠시 채울 운명으로 태어나
잠시 채워졌다 버려질
헤어져 지친 껍데기들 만나
이야기 하는 같은 신세
얼마나 즐거우랴
위로하네
휴지통이
버려져 쌓인 사물들과
사물들이 삶을 논하네
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
낙엽보다 검은 국화꽃 앞에 무덤이 안겼네
무덤 옆 낙엽 쌓인 곳에
막소줏 두 어 병
집 나간 딸년 몸 팔러 나가고
아들 도시에서 잘 살아
보겠다고 나가더니
이 마을 몇 집 남지 않았재
그러던 어느 날
연탄게스 마셔 노가다 판
지친 몸 자취방에서
익은 체로 닷새만에
발견 됐다재
양씨는
그 후 자주 산을 올라
헷소리만 지껄였다재
제 마누라 생전
뒤안간 장독대에 심었던
국화꽃 따다 산에 간 날
풍 걸린 제 몸 탓하다
농약 마셔 죽었다재
해마다 이맘 때 쯤이면
국화꽃에 화장 짙은 여자가
찾아 온다던데
어매 마부지 이름만 부르며
산 묘 주위만 서성였다재
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
나무의 눈
사람아
너는 참 딱한
나무여
뿌리도 끊어
이리저리 잘도
나댄다. 미친듯이
가야하니 외롭지
혼자 걸어야 하니
쓸쓸하지
어디 갈 데 없이
가야하니 더 그립고
슬프지
사람아
뿌리 끊은 나무야
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
빗소리
내리는 빗소리는 없다
탯줄 끊어
죽어간 소리는 있다
녹슨 양철지붕 위에도
마당에도
낙엽에도 무덤가 풀썹에도
땅 위에 선 사물과
부딪치기까지만 살았다가
단 마디 소리 하는
참 부럽게도 긴 생이라
나는 산을 올라야 하네
하늘과 맞닿은 산을 찾아
보라고 추락해야 하네
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
갈대의 깃발
어느 누군가의
무덤 곁에서
주의를 둘러 보고는
덜썩 주저 앉아
평소 가지고 다니던
마지막 남은 당감하나
누군가 다녀갔을
낙엽처럼 가벼워진
황톳빛 국화 꽃 유골 곁에
살며시 두고
누렇게 뜬 잎들만 남은
다 떨어진 높은 밤 나무 곁엔 금새
날아 온 까치 한 쌍
나 가거든 네 연인과
부리 맞대고 대신 두고 갈 터이니
맛나게 먹거라
아침부터
흐린 날 어디 갈 데 없어
느릿느릿 오르다 보니
지난 여름에 부러졌을
소나무와 아여 뿌리채
뽑혀진 덩치 큰 나무들
여럿 보았지
그러나 와서 보니
무덤만은 무사하구나
땅 빼앗긴 도시에서
버림 받은 풀과 나무들이
무덤에 까지 와 그래서
사나보다
바람 많은 산도 힘에 겨워
너의 자리에 아니 원래
빼앗겼다 다시 찾아 왔을
나무 부리 아카시아
단장한 무덤
그 옆에 말라 죽어 깃발이 된
갈대 하나가 펄럭이네
이 당은 누구의 땅도 아니라고
민주주의도
자본주의도 다 부질 없다고
버려진 빈 막소줏병 끼고
비틀거렸다
보슬비가 내렸다
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
귀뚜라미2
제 몸보다 긴 더듬이로
차가운 시멘트 바닥을
건들고 있던 입동 날 밤
속옷 비치던 살결
너무 어린 귀뚜라미가 한 마리
마당으로
뛰쳐 나와 벌써
눈 맞을 채비를 하고
있었다
아득히 문지방 너머엔
늙은 애비의 목메인
기치소리
문 밖 넘으면 구말리 떠나보낸
제 어린 새끼 귀뚜라미
깨어진 화분에서 올해도 핀
국화, 봉숭아 곁에서
제 몸 숨기고
꽃이 내게 이야기 하는 말을 한다
그리고 내가 생각에 잠길 때
남은 더듬이가 나를 향하며
내 마음 훔쳐 이야기 한다
쯔-ㄹ 쯔-ㄹ 쯔쯜ㄹㄹㄹㄹㄹ
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
낫 달2
해지름 어둑하면 소 여물주러
낫 갈아 포대들고
사립문 밖 나서 길가로 가서
남의 집 논빼미 지나면 방죽 발 목 오를라
풀 다 베면
먼데 동구 밖 아이 손에 끌리는 늙은 염소들
슬랑슬랑 맴돌다 뒤좇던 새끼들은
어미젖 부비러 가고
해가 막 솟는 달처럼 떠 지는데
방죽 위에서 풀을 뜯던 발뚝 박힌
송아지 한 마리
문득 고개를 쳐 들어보니
팔려간 어미 생각에 굽등한
산마루를 보며 울기 시작했다.
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
낫 달1
두고 온 아버지의 녹슨 낫
가을 밤 서리를 맞고
이제 저 혼자 날이 섰네
그리고 기다리네
자루만 놓고 목 빼놓은 줄 모르고
찾아왔네
(오늘도 어느 재래시장 뒷골목
대폿집에서 함께 떠나온 同鄕사람
만나 막걸리에 취한 아버지 얘길
매산 5일장 처럼 장이 서는 말바우
시장을 따라 훔쳐 듣는 초생달)
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
낫 달3
전남 곡성군 입면 만수리 1986년 봄
생각난다. 마을이름도 그랬던 노름
네 집만 남은 동네에 해 저물녘, 달
아랫 집 봉춘양반 영농자금 빛
쪼달리는데
염소 하나 몰래 팔았다며
니 새끼 승희 어떻게 가리킬거라며
막걸리 좋아하던 풍기 어려 손 떨던
그에게로 둘이 죽자며
이젠 빈 외양간 앞 마당곁에서
낫들고 울며 달겨들던
봉춘 댁
구멍난 런닝고에 흠뻑 피던
진달래 꽃
그 해 우리는 이천만원의 빛을 빈 등에 지고
빈사립문만 바라보며
광주로 비 먼저 맞던
우산동 꼭데기로 월세방 찾아 갔다.
이곳에서 우리는 이제 우산도 없었다
꽃은 그곳에선 곧 피다 시들어 사람들은
조아꽃 한 송이를 저마다 가지고 다녔다.
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
죽순꽃 피던 날
고향 집 뒷산 대숲에는
버려진 벌집 하나가
죽은 나무 가지에 매달려 있다
그들은 다 어디로 사라졌을까
그 때 걸었던 길 위에서
봄 날 새로와 지는 걸 보았다
사람의 발등에 채여 제 뿌리도
함께 걸려 넘어지던 작고 희미한
그 길 위에 겹겹이 쌓인 낙엽이 썩어
드디어 덮여 사라져 버린 길을
찢고 나온
죽순 맘 놓고 하늘을 찌르려 하는 것을 본다
아직 저 어린 순에서 꽃이 피면
벌리 날아온다고 날아온다고
나는 그 때 꽃을 품고
설레는 마음으로 제비도 기다릴 것
지지배배 지지배배 이기집애 기집애 하고
놀려대던 네 누이들 그리고 가족,
봄소식도 함께 물고 애 낳으러
새 길 만들러 온다고.
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
해바라기
해바라기 눈이 있다
목이 빠지게 바라본다
해바라기가 저리도
해를 그리워하는 건
죽은 부나비 영혼들의
무수한 눈
그 꽃 한 송이 얼굴위로
다시 태어났기 때문이다
죽어서도 갈 수 없는 저 곳엔
무엇이 있길래
아직 가지도 못하고
박혀 있는 것일까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해에게서 멀어지는 것이여
이젠 땅에서 오갈데가 없이
해만 바라본다
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
풍선
바늘도 처음엔 바람이었네
세상에 세워진 바늘 위에
풍선은 터지지 않고
그저 바람 부는대로 떠도는 것이라고
아직은 무딘 땅에 나는 서 있네
나는 바람이었다고
바람에 나부껴 튀다 지치면
바람같은 세상보다
뼈마디 담고 끌고 지냈던 몸뚱이가
얼마나 무거웠던가를
너는 알겠지
저녁 노을이 산으로
빠지고 있네
무수한 사람들 하나 하나를 위해
저렇게 오늘은 누구를 위한
해 걸이를 하는 것일까
잘려진 탯줄을 타고 왔다가
잘려져 어느새 묶여
처음처럼 굳은 빼꼽 미세한 구멍 사이로
세어나가는 공기
나 여기 머물러 있지 않으며
거기에 머물던 자리
왜 모질고 부질없던가를
소리없이 깨닫고 가나니
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
해 넘어가는 겨울 산
어릴 적 해가 지는 게 싫어 말레에 앉아 나무 하러 간
어머니를 기다렸었다. 손톱만하게 보이는 새뜸 마을을
품은 저 앞산 아득한 곳으로 간다며 곧 올 겨울을 나야
한다며 까까머리 형이랑 낫 하나 갈퀴 앞 세우고 지게짝
절뚝이며 가던 논뚝 길 너머 해가 보이지 않게 들어가는
산 너머엔 따스한 가을 해가 둥둥 떠 있을 것 같았다
산 임자 몰래 모야야 한다며 감빛 노을따라 간 그곳엔
나만 두고 언제 다시는 올 것 같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이었을 것이다. 고무신 처럼 검고 작아 보이던 그
산에 나는 미치도록 뛰어가 보았다.
해를 놓치기 싫어 잡고 싶었다. 그 산 아래 새뜸마음엔
왠 대낮같던 喪家집 한 채. 아리께 나무하러 간 XX양반
비얌에 물려 죽었다고, 눈물이 핑 돌아 나는 울었다.
다섯 집 사는 우리 동네에 불이 밝았다.
해를 따고 아니 만지고 왔을 어머니 보다 가리나무 온 산
무사히 긁어왔을 빈 손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나는 이젠 혼자 울고 있을 무성한 뒤안간 서늘한 대숲이
바람을 찢는 소리가 귀가 무섭도록 듣고 싶다. 이제야
사립문 바로섰네
잠자리 잠을자네
눈뜬 채 잠을자네
누구를 기다리네
흰날개 접지않네
그날밤 내린 새벽 찬서리
떨어지는 잠자리
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
아카시아 꽃
1999. 2
누나의 속곳같은
아카시아꽃 곱게 피어
수줍은 향내음
도랑위로 떨어진 날
하이얀 살결 꽃잎파리
여울닮아 서러워
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
달
1996. 10
우물에 취하는가 저 깊고 긴 이슬에
이내 맘 빠뜨려도 하룻밤 꿈 끝 없음에
빛잃은 두 눈망울을 언제까지 비추려나
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
샛강에서
굽이 쳐 흐르는 여울목
돌이야 구르든 말든
벌러덩 돌고 튀는 물줄기
그렇다고 냇도 강도 아닌 어설프레한
그놈은 아직 댕기 딴
열 여섯 떠꺼머리 총각
빛 바랜 사이다 병
거꾸로 꽂은 채 부시시 해도
제 홀로 노는 놈이라
그 모습이 수줍다
재 너머 산촌 말을 옥 같은 처자
잘잘잘 흘러감은 꽃잎 향 보다
더 진한 강물냄새가 난다는데
그 놈 댕기 따고 한 밤 두 밤
제 색시 만날 날 모르고
밤새 사이다 병을 더 깊숙히 꽂았다
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
조화
피고 지는 아픔 송두리째 간직한다
어두운 방 한켠에 자리 잡은
꽃병 속에서
변하지 않는다
울고 싶어도 울음 참고 밤이
되어도 잠들지 않은 거룩한 삶
겨우내 웅크리다 한 철 분주한 꽃들
금새 저버리는 그 나약함 보이지 않는다
향기없는 조화
그 아픔으로 태어나 제 한 몸
수북히 먼지 쌓이면 결국 빛을 잃는다
맛있게 씹히다 단물 빠져 버려지는 껌처럼
이웃집 몸 파는 아가씨의 인생 역정이다
사랑하리라
헝겊 조각으로 살아 피고 지는 조화
그 꽃과 같은 이들을
가을 밤 찬서리 되게 맞은
한 행인의 발걸음
눅눅히 젖은 옷은
스러질 듯 비틀거린다
낯설고 불안한 마음
가로수마다 그가 개운 흔적은
내일 밤 다시 찾을 싸구려
선술지의 이정표
구부정한 어깨 군살 베긴 손
하룻밤 풋사랑이라도
일용 근로자 그에게는
생활정보지 한 켠에 실린
'오늘의 날씨 맑음'
희미한 별빛이 비틀거리는
외로운 새벽하늘
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
사주
이년의 센 팔자는 꽃관타도 괜찮소
내님만 괞찮다면 이 몸이 대신하리
운명이 정 그러하면 그의 뜻을 믿으리
점쟁이 뚫린 입에 난 국화상 그 과부상
너와 나 하늘이니 그것은 미신이요
둥근 녹 이부자리도 자력으로 이루리
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
등대의 사랑
사랑을 모르면서 사랑을 안다하네
그대를 다 알기에 그것은 껍질이네
당신은 나의 삶에서 외로운 섬 등대였네
그 배를 그를 위한 변치않은 외로운 밤
바다와 갈매기를 느끼지 못하는 낮
한밤에 난 당신만을 인도하는 등대였네
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
사농가
보슬비 절은 땅에 호박뎅이 꽃속으로
일벌의 작은 허리 살기위해 굽혔구나
천상의 농군이로세 나르며 또 날라도
박나무 지붕위에 노을박이 박을타고
앞마당 홍시 하나 풍귀차지 되었구나
홀로 핀 할미꽃만이 비오는 밤 눈물진다
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
버스 터미널을 지나다
그곳에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역마가 있다
어디를 갈망하는지 안다
네 발 달린 짐승이 가고픈 길에
마음을 싣고
역마가 힘들지 않게 녀석의 뱃속에
아기가 되어 함께 달린다
고된 발걸음 끝에 나를 낳고 떠날 때면
역마는 다시 새로운 아기를
뱃속에 품고 간다
그 아이가 아마 너를 그리워 하는 님일수도
나를 떠나보내는 벗일수도 있다
한 번 떠난 역마는 돌아올 줄 모르고
다른 타인들을 싣었을
어느 역마의 품에서 끝없이
고향을 찾는 미아이고 싶다
삐 (임,나)- 하는 소리와 함께
자동문이 닫히고
시내버스는 마음만 남긴채
떠난다
거북은 붕어가 살다 죄 죽어버린 어항에 살고있다.어디서 살다 왔을지
모를 붕어 그렇게 어이없이 살 망정 왜 내 집 방안에서 죽었냐고 묻지 못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빈 어항은 동백나무 한 그루 밑에 작은 마당으로
옮겨지고 그곳 마당에 자리한 어항속으로 거북이가 들어왔다. 나는 또다시
붕어 꼴이 되지 않을까 하여 죽음의 어항속으로 들어 온 이유를 거북에게
맘으로 묻는다. 살기 위해서 태어난 거북 마치 아니꼬운 눈으로 교도관이라
욕을 한 듯 눈을 떠 스무 해 세상 살았더니 원래 이랬는데 돈으로 그 놈을
사서 위한 삼으려 한 나도 나를 가둔 세상 교도관에게 눈치밥이나 먹을 팔자
다 같은 팔자 모두 아직 산 붕어새끼 한 마리 무섭다 가슴에 금을 새긴 교도관이
머물 수 없어
달이 되고픈
외로운 박달나무에게
나날이 땅으로 기울어져가는
그 박을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발걸음을 무겁게 하는
당신의 밤 하늘아래
쉼없이 부어 오른
늙은 암캐의
젖가슴처럼
저마다 듬성듬성
쓰디 쓴 열매 맺음 알기에
비켜서며
눈물조차 떨구지 못해
돌아서는 길
그래, 밤에 흘리는 커다란
눈물 한 방울
딱딱한 박이 되었다
달 같이 모올래
시리도록 차올라
여물었다
거리에선 오늘 첫 눈이 온다고 야단이다
앞 다투어 레코드 가게에서도
리어커의 성능 좋은 스피커에서
캐롤송을 요란하게 틀어 놓고
행인의 귀를 흥분시키는 모습
아직 오지 않은 눈을 기다리며
성탄절 전야의 오후처럼
금방이라도 내릴 듯한 흐린날
냉냉한 바람에 거리의 은행나무
노오란 잎 폭설같이 휘날리고
노오랗게 쌓인 길 오도독 오도독
소리 날 것만 같아 눈길인냥
미끄러질라 사뿐히 걷는 걸음에
어느새 아이들 강아지 떼처럼
첫눈 같은 은행잎 뿌리면서 설레는 맘
두근대는 어여쁜 소녀의 눈
누군가를 기다리는지 모를 표정
그러다
하늘만 지키다 지샌 밤, 새벽
낙엽 떠는 소리에 밖을 보니
한 줄기 보슬비가 첫 눈처럼
진눈개비가 되어 시나브로 내렸다
눈 오지 않는 밤 아마도
비 속에 눈이 섞여 내렸을 것이다
방구석에서 놀면 뭐 하냐고, 밥이나 떡이나오냐고 토로하시며
몇 년 전 자식놈이 주고 간 장롱 속 이불속에 꾸욱 찔러둔
십만원으로 오랜만에 5일장 읍내 장터에서 털신 하나 사 신으
시고는 자식놈이 간 밤에 다녀왔다가 일이 바빠서 다시 상경했
다며 변명하신다 첫째가 준 용돈으로 털신 사 신었다며, 서울서 장사
를 하며 잘 산다는 아랫 집 할매께 자랑을 늘어 놓고는 다시
읍내로 나가 대포집 파출부 일을 마다않고 나선다 어머니가 늦은 밤
입면 만수리로 향하는 길 수북히 쌓인 눈길 걸으며 정류소
톱밥 난로 옆에 앉아 멍하게 빈 전화를 바라보며 군내버스 막차 한 대
기다린다 오늘 털신생각에 큰 맘 먹고 지금은 첫째아가 된 둘째에게
서툴게 적힌 쪽지를 꺼내 전화를 건다 몇 년 전 서울서 큰 놈과 둘째
하고 고등학교 졸업하고 둘다 돈 벌겠다고 올라가서 일하더니만 자취방
결국 깨어진 구들장 새어나온 게스에 질식하여 둘째놈만 가까스로
살아 남았다 세월이 지난 지금 무서운 서울에 어떻게 지낼까 가슴이
두근두근 거렸다 한움큼 쥐어지는 동전으로 번호가 적힌대로 전화를
건다 하지만 첫째 놈은 결국 어디론가 떠나고 없었다 주인 아줌마가
말 하기를 일 그만 두고 어디론가 가족을 데리고 이사를 갔다고 한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막차를 타고 서둘로 만수리로 들어서는 백톳길
그곳에는 개 한 마리의 발자욱도 없었다. 차가운 백열전구를 켠 정제에서
아궁이 불이나 때던 할메 매운 연기에 눈물이 났다. 오직 그곳에는
자기의 발자국 만이 남아 있었다. 그날 밤 아궁이에서는 눈 보다 흰
서러운 눈이 하늘로 오르고 있었다.
먼 동 트는 아침이면 어김없이 골목길 마지막 몇 부 안남은
신문을 돌리는 소년을 본다. 그 옆으로 같은 또랫쯤 보이는
어여쁜 여학생 집앞을 나서고, 내일이면 아마도 소년은
짧은 머리라도 감추려 모자하나 쓰고 올 것이다.
자기가 노가다 일 몇 번 뛰어 봤다며 무슨 아르바이트 얘기만
나오면 벼슬이라도 하나 얻은 듯 광분하는 후배 녀석, 무슨 가난이
어쩌고 사회가 어쩌고 노가다 짬밥 10년쯤 된 듯 말들 하지만,
치열하게 먹고 살자고 뒈져라 일하시는 지 애미, 애비
그저 주둥아리 벌리는 새끼하나 키우려 진 빠진 줄 모르고 아무 말
없이 살고 있는 부모마음 모르고 하는 소리지.
내일이면 아마도 후배는 새벽 일찍 일어나 집에서 노가다 소개비나
타 내서 오늘 헛탕을 쳤다며 투덜대며 편의점 라면 한 그릇 걸게 먹고
남은 나머지 돈으로 아침에 가장 일찍 여는 오락실이나 비디오방
한 켠에 큰 대자로 다리 쫙 벌리고 신나게 즐기다 오겠지.
가난에 쫓겨 마음까지 가난한 자는 스스로를 가난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가난이 드러나는 곳만 피해 이리저리 방황할 뿐, 그들에게
친구는 가난한 자와 가난한 자, 눈에 보이는 가난은 없다.
간난은 사회가 어떻고 가난, 노가다가 어떻고 잔주접 떠는 후배 녀석
에겐 유난히 거품많고 톡 쏘며 시원한 500cc 생맥주 한 잔의 먹다
남아 식은 안주거리일 뿐, 모르는 놈의 말이 너무 무섭다.
가난한 사람들을 보면 진짜 불쌍하다고 아까워서 돈을 못 쓰겠다고
그러더니 후배녀석 2차는 또 xx선배가 알아서 계산하시고요 하며
3차 간 뒤에 4차로 노래방이나 들르자고 한다. 그리고, 깔깔대며
간드러지게 애교떨며 말한다. 대학에서 남는 것은 술밖에 없다고
자기도 알고 보면 가난한 불우이웃이라며 나 조차 가보지 못한 술집을
권한다. 마치 힙합 댄스처럼.
만원권 한 장엔 세종이 웃으며 서 있고
오천원권 한 장엔 율곡이 서 있고
천원권 한 장엔 퇴계가 배꼽만큼만 짤려 서 있다
아마도 그들은 밤새 기집질 하다
경회루로 오죽헌 도산서원으로 그 큰 집을
아침에 먼저 일은 군자인냥 산책을 하며
헛기침하고 서 있다
보이지 않는 역사 속에 지폐의 향기가
서려있다
단지 그들의 집만 그려지면
보이는건 그들의 부귀와 영화를
가져보라는 손짓
그 큰 정자와 집채 중에서 어디에
꽁꽁 숨어있는 것일까
그저, 낯선 지폐 속에서 그의 향기를
느꼈다
아! 나의 먼- 할아버지의 집은 어디로
다 스러진 초가집 하나
너무도 너무도 형용할 수 없는 무색무취의
백치여서 흰 옷거름도 그릴 수 없어
검빛 잿빛 핏빛으로만 그렸나 보다
보이지 않는 여백엔 가질 수 없는 내가
가질 수 없는 특별한 영이
세네 개나 붙은 너무나 작고 비싼 그림
무엇을 상징하고 있을까
그 속에 나의 얼굴은 어디로
조폐공사는 오늘도 남 한 그루 베어내고
가장 비싼 죽은 종이가 되었다
나무의 진한 향기는 어디로 가고
이미 죽어버린 후의 초상화 속에서
지린 송장냄새가 났다
송장은 산 송장을 죽은 송장으로 만드는
악성 돌릴병
죽어도 흰 백치에 가려진 먼- 할아버지가
그려지고 그려져도 너무 희어 덮였다고
그들의 왕족이 아닌 나는 내 자식에게
궁색한 변명이나 떨어대며
A4용지가 내 할아버지다며 큰 눈 부릅뜨고
보라며 대신 꼭 쥐어 줄 가난함
역사는 역사가도 모르게 흐르는 강물 위
무수한 꽃잎 그리기가 아니었던가
막연과 소문의 강물에 떠 가던 철쭉 꽃을
진달래 꽃잎 이라며 일기장에 그려넣은
나는 역사가,
누군가 꽃말을 가르쳐 주었을 때
나의 잘못된 이름으로 불리웠던 꽃은
이미 바닷 속에서 썩어버린 후
더러는 김 미역에 엉킨 것을
푹 삶고 진물 고아 되마시기도 했다
나의 거짓도 이미 오래 전 오염된
바닷물 탓
나는 바다를 아름답다고 활홀해야 한다고
일부로 복장을 뒤틀려 보기도
한다
하늘엔 학이 날아간다
달아오를 대로 달은 학이
무한한 허공 속으로 눈부신 달빛을 뚫고
유한한 우주 끄트머리로 날아간다
무욕의 세계로 가도가도
박제가 되버린 무한한 허공안에 갇힌 달빛에
갇혔다
이순신 장군도 은색 방부제 같은 달빛에
말없이 또 갇혔는데
그의 자유와 영혼은 어디로 갔는가
황톳빛 다보탑은 밤의 정막한 어둠
꺼진 달빛으로 무엇을 바라고 있나
맥 없는 탑은 그렇게 창녀가 되어 있었다
네모난 사각형에 0이 무섭게 많은지
둥근 구릿조각에 끌어담은 모양마저도
끝이 없지 않은가
말 없는 일원짜리 동전에는 단 하나만
포함한다
아름다웁다 그리고 더러운 꽃이여
결국은 너도 그리운 우주의 끝없는 달빛을
무궁화 꽃에 담고 있지 않는가
굽이 쳐 흐르는 여울목
돌이야 구르든 말든
벌러덩 돌고 튀는 물줄기
그렇다고 냇도 강도 아닌 어설프레한
그놈은 아직 댕기 딴
열 여섯 떠꺼머리 총각
빛 바랜 사이다 병
거꾸로 꽂은 채 부시시 해도
제 홀로 노는 놈이라
그 모습이 수줍다
재 너머 산촌 말을 옥 같은 처자
잘잘잘 흘러감은 꽃잎 향 보다
더 진한 강물냄새가 난다는데
그 놈 댕기 따고 한 밤 두 밤
제 색시 만날 날 모르고
밤새 사이다 병을 더 깊숙히 꽂았다
1998. 10
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
조화
피고 지는 아픔 송두리째 간직한다
어두운 방 한켠에 자리 잡은
꽃병 속에서
변하지 않는다
울고 싶어도 울음 참고 밤이
되어도 잠들지 않은 거룩한 삶
겨우내 웅크리다 한 철 분주한 꽃들
금새 저버리는 그 나약함 보이지 않는다
향기없는 조화
그 아픔으로 태어나 제 한 몸
수북히 먼지 쌓이면 결국 빛을 잃는다
맛있게 씹히다 단물 빠져 버려지는 껌처럼
이웃집 몸 파는 아가씨의 인생 역정이다
사랑하리라
헝겊 조각으로 살아 피고 지는 조화
그 꽃과 같은 이들을
가을 밤 찬서리 되게 맞은
한 행인의 발걸음
눅눅히 젖은 옷은
스러질 듯 비틀거린다
낯설고 불안한 마음
가로수마다 그가 개운 흔적은
내일 밤 다시 찾을 싸구려
선술지의 이정표
구부정한 어깨 군살 베긴 손
하룻밤 풋사랑이라도
일용 근로자 그에게는
생활정보지 한 켠에 실린
'오늘의 날씨 맑음'
희미한 별빛이 비틀거리는
외로운 새벽하늘
이년의 센 팔자는 꽃관타도 괜찮소
내님만 괞찮다면 이 몸이 대신하리
운명이 정 그러하면 그의 뜻을 믿으리
점쟁이 뚫린 입에 난 국화상 그 과부상
너와 나 하늘이니 그것은 미신이요
둥근 녹 이부자리도 자력으로 이루리
1996. 11
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
등대의 사랑
사랑을 모르면서 사랑을 안다하네
그대를 다 알기에 그것은 껍질이네
당신은 나의 삶에서 외로운 섬 등대였네
그 배를 그를 위한 변치않은 외로운 밤
바다와 갈매기를 느끼지 못하는 낮
한밤에 난 당신만을 인도하는 등대였네
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
mmm
사농가
보슬비 절은 땅에 호박뎅이 꽃속으로
일벌의 작은 허리 살기위해 굽혔구나
천상의 농군이로세 나르며 또 날라도
박나무 지붕위에 노을박이 박을타고
앞마당 홍시 하나 풍귀차지 되었구나
홀로 핀 할미꽃만이 비오는 밤 눈물진다
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
버스 터미널을 지나다
그곳에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역마가 있다
어디를 갈망하는지 안다
네 발 달린 짐승이 가고픈 길에
마음을 싣고
역마가 힘들지 않게 녀석의 뱃속에
아기가 되어 함께 달린다
고된 발걸음 끝에 나를 낳고 떠날 때면
역마는 다시 새로운 아기를
뱃속에 품고 간다
그 아이가 아마 너를 그리워 하는 님일수도
나를 떠나보내는 벗일수도 있다
한 번 떠난 역마는 돌아올 줄 모르고
다른 타인들을 싣었을
어느 역마의 품에서 끝없이
고향을 찾는 미아이고 싶다
삐 (임,나)- 하는 소리와 함께
자동문이 닫히고
시내버스는 마음만 남긴채
떠난다
거북은 붕어가 살다 죄 죽어버린 어항에 살고있다.어디서 살다 왔을지
모를 붕어 그렇게 어이없이 살 망정 왜 내 집 방안에서 죽었냐고 묻지 못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빈 어항은 동백나무 한 그루 밑에 작은 마당으로
옮겨지고 그곳 마당에 자리한 어항속으로 거북이가 들어왔다. 나는 또다시
붕어 꼴이 되지 않을까 하여 죽음의 어항속으로 들어 온 이유를 거북에게
맘으로 묻는다. 살기 위해서 태어난 거북 마치 아니꼬운 눈으로 교도관이라
욕을 한 듯 눈을 떠 스무 해 세상 살았더니 원래 이랬는데 돈으로 그 놈을
사서 위한 삼으려 한 나도 나를 가둔 세상 교도관에게 눈치밥이나 먹을 팔자
다 같은 팔자 모두 아직 산 붕어새끼 한 마리 무섭다 가슴에 금을 새긴 교도관이
머물 수 없어
달이 되고픈
외로운 박달나무에게
나날이 땅으로 기울어져가는
그 박을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발걸음을 무겁게 하는
당신의 밤 하늘아래
쉼없이 부어 오른
늙은 암캐의
젖가슴처럼
저마다 듬성듬성
쓰디 쓴 열매 맺음 알기에
비켜서며
눈물조차 떨구지 못해
돌아서는 길
그래, 밤에 흘리는 커다란
눈물 한 방울
딱딱한 박이 되었다
달 같이 모올래
시리도록 차올라
여물었다
거리에선 오늘 첫 눈이 온다고 야단이다
앞 다투어 레코드 가게에서도
리어커의 성능 좋은 스피커에서
캐롤송을 요란하게 틀어놓고
행인의 귀를 흥분시키는 모습
아직 오지 않은 눈을 기다리며
성탄절 전야의 오후처럼
금방이라도 내릴 듯한 흐린 날
냉냉한 바람에 거리의 은행나무
노오란 잎 폭설같이 휘날리고
노오랗게 쌓인 길 오도독 오도독
소리 날 것만 같아 눈길 인냥
미끄러질라 사뿐히 걷는 걸음에
어느새 아이들 강아지 떼처럼
첫 눈 같은 은행잎 뿌리면서 설레는 맘
두근대는 어여쁜 소녀의 눈
누군가를 기다리는지 모를 표정
그러다,
하늘만 지키다 지샌 밤, 새벽
낙엽 떠는 소리에 창 밖을 보니
한 줄기 보슬비가 첫 눈처럼
진눈 개비가 되어 시나브로 내렸다
눈 오지 않는 밤 아마도
빗속에 눈이 섞여 내렸을 것이다
방구석에서 놀면 뭐하냐고, 밥이 나오냐고 떡이 나오냐고 토로하시며
몇 년 전 자식놈이 주고 간 장롱 속 이불팍에 꾸욱 찔러둔 십만 원으로
오랜만에 5일장 읍내 장터에서 털신 하나 사 신으시고 벌써 몇 년째 보이지
않던 자식놈이 간밤에 다녀왔다가 일이 바빠서 다시 상경했다며 변명하신다. 첫째가 준 용돈으로 털신 사 신었다며, 서울서 장사를 하며 잘 산다는 아랫 집 할미께 자랑을 늘어놓고는 다시 읍내로 나가 대포 집 파출부 일을 마다 않고 나선다.
늦은 밤 입면 향하는 길 수북히 쌓인 눈 길 걸으며 정류소 톱밥 난로
옆에 앉아 멍하게 빈 전화를 바라보며 군내버스 막차 한 대 기다린다.
오늘 털신생각에 큰 맘 먹고 지금은 첫째아가 된 둘째에게 서툴게 적힌
쪽지를 꺼내 전화를 건다. 몇 년 전 서울서 큰놈과 둘째하고 고등학교 졸업
하고 둘 다 돈 벌겠다고 올라가서 일하더니만 자취방, 결국 깨어진 구들장 새어나온 게스에 질식하여 둘째 놈만 가까스로 살아 남았다.
세월이 지난 지금 무서운 서울에 어떻게 지낼까 가슴이 두근거렸다 한 움큼 쥐어지는 동전으로 번호가 적힌 대로 전화를 건다. 하지만 첫째 놈은 결국 어디론가 떠나고 없었다. 주인 아줌마가 말하기를 일 그만두고 어디론가 가족을 데리고 이사를 갔다고 한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막차를 타고 제 집 뛰어 동구 밖 서둘러 만수리 들어서는 백톳길 그곳에는 개 한 마리의 발자국 없는데, 차가운 백열전구를 켠 정제에 쭈그려 아궁이 불이나 때다 그만 매운 눈물이 났다. 오직 그곳에는 자기의 발자국만이 남아 있었다.
그날 밤 아궁이에서는 눈 보다 흰 서러운 눈이 하늘로 오르고 있었다.
신정 새벽 아들의 하늘을 본다. 게스를 본다.
오늘도 사립문 열어 놓고 개 울음소리에 놀라 나가시더니
오 가는 이 없음을 알고 삼 년이 넘도록 남을 쌀밥 두 개를 더 짓는다.
개망초 누가 심지 않아도 난 자리에 또난다
잡초보다 웃자라 아이의 웃음으로 하얗게
방글대는 바람에 미소 지으며 벌들 좋다 날아든다
풍년같은 풍성한 나락 자지러지게 자란 꽃
촌놈 상경한다 해도 뜨락, 빈 마을 지키며
잘도 자라 피겠다
할메 젖가슴 그리워 가을 햇살에
군내버스 타고 마을어귀 들어가는 차창 밖
사이로 흔들리지 않는 개망초꽃 아이를 보았다
텅빈 옛 마을에 들어서자 개 한 마리 짖는다
그래 너는 참 좋겠구나
식은 아궁이 황토집은 왜 이리도 부실하더냐
주인잃은 슬픔에 온정도 식어
독한 감기에 걸리고야 말았구나, 잡초 무성한 마당
사립문 처럼 허문어진 옛 집을 보곤
밭두렁 길 따라가니 산재한 꽃들 한 물결이더라
한 움큼 꺽어 그의 무덤 앞에 바치고
돌아서 내려오는 길
무덤히 개망초꽃 바라보며 동구밖 들녘에서
이 곳을 떠난이의 머릿 수 만큼 피었네.
먼 동 트는 아침이면 어김없이 골목길 마지막 몇 부 안남은
신문을 돌리는 소년을 본다. 그 옆으로 같은 또랫쯤 보이는
어여쁜 여학생 집앞을 나서고, 내일이면 아마도 소년은
짧은 머리라도 감추려 모자하나 쓰고 올 것이다.
자기가 노가다 일 몇 번 뛰어 봤다며 무슨 아르바이트 얘기만
나오면 벼슬이라도 하나 얻은 듯 광분하는 후배 녀석, 무슨 가난이
어쩌고 사회가 어쩌고 노가다 짬밥 10년쯤 된 듯 말들 하지만,
치열하게 먹고 살자고 뒈져라 일하시는 지 애미, 애비
그저 주둥아리 벌리는 새끼하나 키우려 진 빠진 줄 모르고 아무 말
없이 살고 있는 부모마음 모르고 하는 소리지.
내일이면 아마도 후배는 새벽 일찍 일어나 집에서 노가다 소개비나
타 내서 오늘 헛탕을 쳤다며 투덜대며 편의점 라면 한 그릇 걸게 먹고
남은 나머지 돈으로 아침에 가장 일찍 여는 오락실이나 비디오방
한 켠에 큰 대자로 다리 쫙 벌리고 신나게 즐기다 오겠지.
가난에 쫓겨 마음까지 가난한 자는 스스로를 가난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가난이 드러나는 곳만 피해 이리저리 방황할 뿐, 그들에게
친구는 가난한 자와 가난한 자, 눈에 보이는 가난은 없다.
가난은 사회가 어떻고 가난, 노가다가 어떻고 잔주접 떠는 후배 녀석
에겐 유난히 거품많고 톡 쏘며 시원한 500cc 생맥주 한 잔의 먹다
남아 식은 안주거리일 뿐, 모르는 놈의 말이 너무 무섭다.
가난한 사람들을 보면 진짜 불쌍하다고 아까워서 돈을 못 쓰겠다고
그러더니 후배녀석 2차는 또 xx선배가 알아서 계산하시고요 하며
3차 간 뒤에 4차로 노래방이나 들르자고 한다. 그리고, 깔깔대며
간드러지게 애교떨며 말한다. 대학에서 남는 것은 술밖에 없다고
자기도 알고 보면 가난한 불우이웃이라며 나 조차 가보지 못한 술집을
권한다.
마치 힙합 댄스처럼.
작업복이 든 낡고 찌든 가방
귀히 머리맡에 베고
몇 겹으로 꾸깃꾸깃 접힌 신문
바로 덮으며
행여 제 구두, 운동화 자고 나면 가져갈까 두려워
꼭꼭 감추는 모습
비라도 내린 날 행인들의 발걸음마다
검게 빗물 절은 지하도 바닥을
두려워했던 그들이지만
이제는 두둑한 정보지와 사과 향 물씬 풍기는
골판지 하나 준비할 줄 안다
깊은 한숨에 마지막 남은 담배 한 개비
서럽게 입에 문 어느 노년은
오늘 하루도 또 공쳤다며
여남은 토큰 몇 개 뒤적이다
시린 등골로 잠을 이룬다
그러나 꺼질 줄 모르는 지하도 램프는
아직 배고픈 낮거리
어느덧 밤의 정막을 깨우는 구둣발 소리
관리인의 호각소리에
지하철로 통하는 셔터가 오르고
어느새 그들을 바라보는 행인의
눈길 속에서
오늘 하루만은 제기를 꿈꾼다
안경을 벗고서 세수나 할 냥으로
공공 화장실 문을 열어서자마자
왠 구더기가 바닥부터 세면대 구멍
아래까지 허옇게 꿈틀대고 있었다
도시의 구더기들 너무 잘 먹어서인지
배뙤아지가 불러 올라온 세계
내 신발 밑에서 배 터져 죽는다
더러운 세상에서 내 세상으로
올라온 (들어온) 죄
깨끗한 세상이라 해서 다 천국은
아니다
그래도, 날아야 할 운명이라면
날개 채 펴지 못하고 가는 놈
어찌 불쌍하다고 나 여길 수 있을까
큰 눈 부릅떠도 모자랄 두 눈으로
온통 허연 화장실 바닥을 샅샅이(낱낱이)
볼 냥으로 안타까운 마음에
주머니 속 안경을 써서 보니
그것은 어떤 배부른 자의
남겨진 익은 밥티들 소외받다(버림받다, 물을 먹다)
많은 양의 변도 모자라
침 한 번 발라보지(훑어보지) 못한 채
시원스레 다 소화하지 못해 나온
똥인 듯, 아름다운 구더기 흉내를
냈다.
네 눈으로 알고 보니 그곳은
죽은 사각의 공간
영등포구청역 앞 경인로를 따라
역마 3길 방화벽 너머엔 아직도 강물 흐를것만 같다
그러나, 강물의 수위를 경계하는 플랫폼소리만 쉬었다가고
마주 보이는 '참 살기 좋은 아파트 영등포 대우 드림타운'
이 보란듯 육교 하나를 두고 서 있다
육교 아래에선 깨진 시멘 조각으로 콘크리트 바닥을 긁는
아이가 있다, 곰보꽃 핀 아버지 얼굴처럼 거칠게도 울퉁불퉁한
바닥 표면에 그려진 누운 얼굴, 아이를 보며 잘 보지않는
하늘 대신 웃어준다
늘어진 낮잠을 깔기 시작한 건지 슬레이트 지붕위로 고양이가 어슬렁거린다
금간 슬레이트 틈 속에 흘러내리는 빛 더미를 막기위해 국방색 천막과
포장이 씌어지고 그 위로 동여맬 끈 대신 눌린 기왓장 조각들과 깨어진
벽돌, 아마 누군가의 여문 상처에서 떼어냈을 콘크리트 딱지들,
반쯤 검게 녹아 허리 함몰된 연통도 쪽방 노인의 그것처럼
지붕 날리지 않게 버려져 오갈 데 없이 팽개쳐진 무게로 누르고
누가 몰래 올리고 갔을 부푼 쓰레기더미를 쥐잡듯 핥퀴던 고양이의
수염이 가끔씩 녹슨 안테나로 쓰러진 채 함부로 구부러졌다
몸 하나 비집기 어려운 쪽길 조금 벗어나면
골목 어귀에서 연탄재 옆 적토함 뚜껑위에 신병처럼 앉은노파가
낮볕으로 죽어가는 온기남은 재를 지키며 낮거리를 속삭이고,
쿨럭이며 이따금씩 입을 막아내던 쬐는 손에선 풀죽은
아지랭이향이 새어나와 대신 제 입내를 팔고 있다
'공멸','멸공'이란 딱지 붙이고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휴거와 심판의
믿음을 외치는 확성기소리 익숙한 승합차가 가끔씩 경인로를 지날
때마다 일요일 영등포 청과시장 트럭 짐칸에서는 방문예배를 행하듯
둥글게 모인 고스톱판이 이곳 작은 골목 어귀에도 섰다!
'믿을 건 오직 들린 패 몇 장이 아니냐'고
바람불고 화창한 일요일 생선처럼 잔뜩 구부린
옛 포구의 비릿함 맛보았을 낮달 감지 했는지
조는 고양이 웃는다
오랫만에 작은 운동화 한 쌍 시원스레 목욕을 하고 슬레이트에
흰 뱃떼지를 북어마냥 까 놓은 생을 말리며 일광소독 중이던
쪽방촌 지붕위로 어느새 방화벽을 뛰어넘은 役馬 소리가 와선
가던 길 잠시 신어보고간다
대열에서 쳐진 낙오병의 모습으로
연병장을 돌고 막사로 돌아왔을 때
취사병처럼 통굵은 아내는 눈을 부비며
국을 데우고 목젖힌 전기밥솥에선 하늘향해 큰 입
하마 하품하며 그 대신 참았을 가뿐입김 토해낸다
아침이 되기 전 부터 아직 올리지 않은 빈 밥상위에선
오후일과끝을 알리는 팡파레소리 더듬던 이등병만이
탈영을 꿈꾸고, 그토록 넘고 싶었던 부대-초침-담장이
척//척//척 쉬지 않고 구보를 한다
아직도 걸어가던 맥없는 시침하나가
거기에 올라와 점점점 밥풀 한 모락 씨 열기로 터지는
아지랭이 겨드랑이내를 흘리며 뛰어가는 부대담장 쫓는다
시침을 매달고 밥상위를 통과하는 초침
노부의 생 목을 맨 채 담장은 뛰어간다
척//ㅡ//척//ㅡ//척//ㅡ(아직도 끈이 팽팽하다)
영등포구청역 주변을 뒤뚱이며 식당과 커피숍에
껌을 파는 노파를 본다, 채 팔기도 전에
주인에게 문전박대를 당해도 그녀는 간다
새벽이 되어서야 돌아가는 역마 3길의 쪽방
전쟁은 끝났다, 독재 정권도 막을 내렸다
2002 월드컵이 열리자 젊은이들은 미친 듯이
거리로 나와 응원을 하였다
방직공장에선 꿈을 키우며 고향 집 어머니께
몽땅 연필 눌러 쓴 편지와 생활비를 신문에
곱게 싸 넣어 보내던 키 작던... 그러나, 마음이보다
아리땁던 열 일곱의 이름없는 공순이는--
땡땡한 제 젖을 빠는 새끼들을 보며
'꿈은 이루어진다'-키워-줬지만--줬다지만, 그녀는 선수를
응원하는 응원객일 뿐 선수는 이제 보이지 않았다
반평생 병신처럼 잘라 준 세월의 죄
늙은 마리아가 껌을 판다, 그림자가 되어 따라 다니던
껌팔이 소녀가 영등포를 뒤뚱인다
아카시아를 따다주던 남편이 죽자 커피와 민트 향도
따라왔고 그의 호주머니 냄새 가득 베였던 은단도 별 보다
짙게 껌뭉치에 박혀 죽은 불빛 무게로 자는 동안에
머리맡에서 떠날 줄 몰랐다
하열하며 젖은 핏빛 홑정 이불을 낸 듯한 옷을 입고
젊은이들은 달콤한 그녀의 과거를 잠시 삼켰다 뱉었고
노파는 아직도 먹지도 손도 대지 않은 껌을 판다.
경기가 끝나고 사람들 흩어지는데 "대~한 민국" 구호도
저 나라 아닌듯하여 피해 관짝같은 문을 열면 죽은 남편이
쪽방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서 담배를 피우고 있을 것 같다,
그의 곳으로 소녀는 가고 싶다고 마리아에게 조를거다
옆방사는 올 마흔이 다 된 낮거리하는 여인이
들어오는 노인의 발걸음을 들었던 탓일까?
소리를 잘 내지 않던 과부가 할 수 없이 큰 것을 받아들였는 지
절로 해대는 기침을 애써 참으려는 노파
벌써 웃풍을 껴안고 이불 속에서 신음을 하고
깨진 거울 조각들 속의 얼굴들이
함께 결심을 하고 있었다
가진 목 하나 파편 거울로
뎅강 잘라 놓고
자른 목 제 집 일기장에 덮어두고
누이가 옷을 벗는다, 흰 몸 드러낸다
목 없는 닭이 깃털을 뽑고 대신
머리위에 거울 한 쪽을 꼽는 것이었다
누이의 모습 보이지 않는다
벌거벗은 자신이 그 짓에 열중하다
거울이 말을 한다
"현모양처!//좋아서 하는 거겠어?//
동생들도 나 따라 공부 잘하는데
대학 못가서 울지 않게 할려구//
아, 끝났어?//어차피 끝나면 허망한거야
연애 한 두 번 해봐? 오빠가 더 잘 알면서......"
누이는 그곳에서 언제나 보이지 않았다
누이는 그곳에서 기억되지 않는다
누이도 단지 벌거벗고 거울 앞에서
수음 한 번 했을 뿐이다
누이의 허망으로 멈춘 일기장 속엔
육봉냄새 짙은 지폐가 글을 쓰고 있었다
22`c 의 공기 속에서 비닐 장판 위에 놓인 A4 용지 한 장
쌓인 눈이 바짝 엎드린 채 녹지도 않고
중력과의 싸움을 벌이고 있는 중이었지만
봄은 창 밖에 서 있지도 않다
봄은 펜 하나 속에 충만하다
백지 위에 활자를 타고 흐르는 봄
보라!
벌써 쌓인 눈이 절반으로 줄어있지 않던가?
글씨로 녹는 활자 속에 봄은 마음의 봄이다.
아내가 좋아하는 붕어빵만 생각했다
집으로 향하는 월급 날 늦은 저녁
빳빳한 봉투가 담긴 속주머니도 멀미를 한다
버스전용 차로를 매우고 선 과일장수가
아까부터 봉투의 구두만 쳐다본다
제주산 밀감하나가 소르르 굴러온다
탈출한 밀감도 섬행 버스를 기다린다 588-1
봉투가 빵틀 속에 팥고물로 묻힐때 쯤
아내는 그래서인지 과일보다 붕어빵을 좋아했다
아까부터 밀감장수가 오는 버스를 기다린다
이탈을 꿈꾸는 버스지만 판 번호 같은 시간 속에서
한 열기 따뜻함으로 오가는 사는 것을 기다린다
언제 밟혔을까?
굴러간 귤 이내 터져버리고
누구도 다가와 울어주지 않는 생
버스가 와선 아무도 타지 않는 빈 정류장
노선 판 번호대로만 지나간다
그래도, 감귤 시익 웃는 모양이다
이탈을 꿈꾸며 잠시 기다림 끝에 웃는 지금
행복한 제주정류장
과일 장수는 늘 버스정류장 앞 편에서
그것이 부러운 듯 잠시 울상이다
지나갔다는 하루를 보내지도 흘러 왔다는 새 하루를 반기지도 않았는데 변해버린 시간 속으로 생의 판이 옮겨져 버렸다 냉장고 속의 우유도 상해 버리고 마음도 제가 가진 냉매의 나이와 상관없이 냉장고도 실온에 담겨져 내몰려가선 곧 시간속 빈 플러그를 예약한 채 꽂을 것이다 지난 달력을 넘기지 않아도 방 판은 뒷장 바뀐 달력 날자에 정확히 놓여졌고 증명해 줄 무엇을 찾기 시작했다 시침이 하루를 끌고 두 바퀴를 돌아 왔다는 방 안에 아날로그 숫자판 12를 넘었다는 13은 끝내 튀어나오 지 않고 수없이 뺑소니 당한 시간으로 쓰러져 있다 원점을 향해 채우던 부풀려진 초침소리를 내고//듣고//내고//듣고//내고//듣고//마음도//돌고//단순한//생도//내것//아닌//것처럼//돌고//떠났다//온다//메아리//건전지를 빼고 나면 만삭이던 시간이 뱃속의 자식이 되어간다 나는 죽은 시계에다 또 모자란 시간을 맞춘다 건전지를 끼우면 그 시간//돈다//듣는다//증명도//해//내지//못한//맞춰진//빙//돈다//나도돈다
지나갔다는 하루를 보내지도 흘러 왔다는 새 하루를 반기지도 않았는데
변해버린 시간 속으로 생의 판이 옮겨져 버렸다 냉장고 속의 우유도 상
해 버리고 마음도 제가 가진 냉매의 나이와 상관없이 냉장고도 실온에
담겨져 내몰려가선 곧 시간속에 빈 플러그를 예약한 채 꽂을 것이다 지
난 달력을 넘기지 않아도 방 판은 뒷장 바뀐 달력 날자에 정확히 놓여
졌고 증명해 줄 무엇을 찾기 시작했다 시침이 하루를 끌고 두 바퀴를 돌
아 왔다는 방 안에 아날로그 숫자판 12를 넘었다는 13은 끝내 튀어나오
지 않고 수없이 뺑소니 당한 시간으로 쓰러져 있다 원점을 향해 채우던 부풀려진 초침소리를 내고//듣고//내고//듣고//내고//듣고//마음도//돌고//단순한//생도//내것//아닌//것처럼//돌고//떠났다//온다//메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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