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농녀(農女)
[페이지] F01
劇團(극단) 에저또 61回(회) 公演作品(공연작품)
第(제) 6 回(회) 大韓民國(대한민국) 演劇祭(연극제) 초청 作品(작품)
農女(농녀)
尹朝炳(윤조병) 作(작)
方泰守(방태수) 演出(연출)
'82年(년) 9月(월) 30-10月(월) 5日(일)
文芸會館 大劇場(문예회관 대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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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녀
윤조병
때 ,현대
곳 ,농촌
인물,
바우할멈: 칠순이 가까운데 방앗일을 해낼만큼 건강하다. 그녀는
절구방아로 시작해서 디딜방아,연자방아,물레방아,발동기방아를 가업으로
이어오고 있다.
김동이 : 할멈의 두째 아들,사십대 중반의 국민학교 교사.
김동오 : 할멈의 다섯째 아들,삼십대 초반의 상인.
바우 : 할멈의 맏손자,스무살 안팎으로 건장한데 말을 심하게 더듬는다.
길례네 : 할멈의 세째 며느리, 서른 세 살
수다댁 : 마을 여인,사심대 중반.
될뻔댁 : 마을 여인,사십대 중반.
젠녜할배 : 칠순이 넘도록 방앗일, 농삿일을 해왔는데 이젠 기력이
쇠잔해졌다.
[무대]
시골 방앗간 안마당이다. 꽤 넓은 이 마당은 방앗간,살림집,헛간 그리고
퇴락한 절구.디딜.연자.물레방앗간 잔해로 둘려 있다. 무대 중앙에서
우측으로 부엌,안방,윗방 순서로 안채가 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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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와집이 있다. 말이 개와집이지 낮은 처마,좁은 마루,짧은 토방,가늘고
구부러진 기둥이나 문틀 따위로 보아 초가삼간에 개와를 입힌듯 볼품이
없다. 이 안채 끝에 초가지붕을 납작하게 올린 헛간이 업힌듯 붙어 있다. 이
숫간을 돌아가면 뒷간과 짐승 우리가 붙어 있다. 방앗간은 부엌 모서리에서
한걸음쯤 들어가 안채와 직각을 이루고 안채보다 훨씬 높게 솟아 있다.
그러니까 객석에서는 방앗간의 옆벽이 보인다. 이 옆벽은 재래식 흙벽인데
군데군데 터진 곳을 헌가마니나 헌판자로 대충 막아놓았다. 벽 오른쪽
구석에 쪽문을 내어 안채에서 드나들게 되어 있다. 특이한 것은 이 방앗간
주촛돌로 연자방앗돌을 썼다는 사실이다. 널바위만한 아랫돌이 왼쪽
주촛돌로 박혀 방앗간을 단단하게 떠받고 있다. 무대 좌측 전면은 퇴락한
절구,디딜,연자,물레방아 잔해가 한 두 가닥씩 남아 먼지, 거미줄,
무당버섯,잡초 따위를 뒤집어쓴 채 이 방앗간의 긴 내력을 말해주고 있다.
부엌 앞에 펌프를 박은 두레우물이 있다. 우물가에 돌절구통이 기울게 놓여
있다. 마당 우측 후면에 두리목이,전면에는 땔나무,해묵은 수숫대와
고춧대가 가리를 이루고 있다. 기타 농가와 방앗간에서 쓰이는 연모가
알맞게 놓여 있다. 마당은 좌측이 삽작이면서 앞길인데 바깥마당과 한길로
이어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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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측은 샛길과 뒷길이 된다. 무대는 자연의 살아있는 시각적 풍경은 완전히
배제하고 만들어져서 세월이 흐른 농촌의 흑갈색 모습을 강하게 드러내야
한다.
[막] 1막
양력 팔월 하순의 막바지 늦더위가 아침부터 기승을 부리고 있다. 매미가
사방에서 극성스럽게 울어댄다. 길례가 마당에서 절구질을 기운차게
해대는데,바우할멈이 사다리를 들고 뒤안에서 나온다.
[바우할멈] (나오며,혼자소리로) 아적 들 영근 대출 따느라고 방앗간
사다리를 내갔누.
길레네가 잠간 시선을 보낼뿐 그대로 절구질을 하고,바우할멈도 더 말을
않고 방앗간으로 간다. 그러나,할멈의 걸음이 느려지더니 결국 멎고 잠간
생각에 잠긴다.
[바우할멈] 에미야.
[길례네] (손을 멎고 바라보며)야?
[바우할멈] 한나절이 다 되얏지?
[길례네] 그럼유.이슬이 발써 마르구 호박 늦순이 더위 땜에 시들거리기
시작헹는디유.
[바우할멈] 인전 꿈야길 헤두 상관웃을 티지?
[길례네] 어머님두--- 아무 때믄 워떻겄이유. (그러나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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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두유,좋은 꿈이믄 어머님 혼자서 맴에 담구 기세유. (다시,안색에서
알아채고)나쁜 꿈이믄 죄다 지헌티 털어놓으세유. 지가 사께유.
[바우할멈] 길몽인지 흉몽인지 분간을 못 허겄으니께 허는 소리여.
[길례네] 그럼 말씀허세유.
[바우할멈] 길몽이믄 에미 너가 갗구 흉몽이믄 놔두거라. 지 신세두
오죽잖은디 워치키 늙은이 흉몽꺼정 감당허겄냐.
[길례네] 얘기헤 보세유.
[바우할멈] 저기 논밭 지나구 개울 건느믄 진흙허구 갈대허구 수렁으루된
늪이 있잖냐.
[길례네] 야
[바우할멈] 한가운데에 돈들막이 있지?
[길례네] 야,있어유. 갈대 위루 쬐금 뵈내유.
[바우할멈] 간밤 꿈에 게서 늪새가 날아 올랐어.
[길례네] (생각해보고) 늪새가 워치키 생겼는디유?
[바우할멈] (자신의 생각에 빠져들며) 댓갈두 넘게 빠지는 수렁에서 늪새
새끼가 올라오드니 진흙바닥에 빠지구 갈대숲에 부딪히구 허믄서 돈들막으루
기어올랐는디 어느 새 커다란 어미새가 돼갖구 저쪽 매곡으루 날아가잖겠냐.
[길례네] (바라보다가) 워디루유?
[바우할멈] 저 매곡으루 말여.
[길례네] 매곡이 워딘디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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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우할멈] 해기 지는 디가 매곡이여. 훨훨 날아서 저기 다섯 멧부리를
넘드니 매곡으루 들어가니께 그 커다랗든 해가 갑자기 등잔불 심지 끝에
동그랗게 생기는 불똥처럼 사드러들구 말잖겠냐.
[길례네] 그래서유?
[바우할멈] 왜 그랬는지는 몰라두 그 늪새를 놓지믄 안된다는 맴으루 내가
손사래질을 처대믄서 쫓아갔는디 도랑을 넘구 내를 건너 산자락으루
들어서니께 멧부리마다 엄청나게 숲지구,된삐알 골채기는 바우너설밭이라 더
쫓아갈 수가 읏드라. 헌디,발 아래를 내려다보니께 글쎄, 내가 수백길
삐알에서 바우옹두라지를 붙잡구 매달려 있잖겄어.
[길례네] 애고 저런!
[바우할멈] 바우들이 누진 옷을 입구 있으니께--- 왜 그 습헌 이끼말여.
발은 미끄럽구 손엔 심이 빠지구--- 그런디 발이 그만 미끄러지구 움켜쥔
바우옹두라지 한 뿌다구니가 부스러지믄서 수백길 골채기루 떨어졌어.
놀래서 깨본께 꿈이여.
[길례네] 애고,울매나 혼줄이 나셨겄어유.
[바우할멈] 길몽이것냐 흉몽이것냐?
[길례네] 글씨유. 크느라구는 아닐 티구,잠자리가 불펜헤서 가우가
눌리셨든가베유.
[바우할멈] 그러믄 다행이다만---(그러나 말을 더 않고 사다리를 들고
방앗간으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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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례네가 다시 절구질을 한다. 될뻔댁이 방앗간에서 나와 길례네 옆으로
가서 앉는다.
[길례네] 아줌니,방아가 너무 더뎌져서 워치기 헌대유. 집안일이 바쁘실
틴디 그냥 가세유. 방아 찌어지믄 바우 시켜서 보낼 것이구먼유.
[될뻔댁] (엉뚱하게) 길례네 얼굴은 참말 이쁜 얼굴이여.
[길례네] 아줌니두---.
[된뻔댁] 아녀. 내 지금 찬찬히 뜯어보니께 얼굴허구 몸허구 손발꺼정
죄다 빼어났어.
[길례네] 괜히 그런 말씀 허지 마세유. 지가 몸둘 바를 모르겄구먼유.
(하면서 손이나 시선으로 자신의 얼굴,몸,손발을 더듬어 본다.)
[될뻔댁] 그러게 여자는 사내를 잘 만나야 허는 것인디 쯔쯔---
[길례네] (그 말에 다시 허망스러워져서 절구공이로 손이 간다.) 길례
아부지헌티야 뭔 잘못이 있나유. 여자가 시집올 때 복을 갖구 오믄 집안이
잘 되구 액을 갖구 오믄 화를 당하는 것인디 지가 모질구 사나운 운수를
갖구 와서---(한숨) --- 지가 죄를 많이 짓구 있구먼유.
[될뻔댁] 길례 아부지가 죽구부텀 길례네가 꽃처럼 펴나서 이뻐지니께
내가 다 좋구먼.
[길례네] 요사스런 게 여잔가 봐유. 눈물 마른지가 엊그젠디 맴이
편헤지구 몸이 가벼워지드니 자꾸만 나돌아댕기구 싶구---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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려유---.
[될뻔댁] 시집을 가지 그랴. 나이두 한창이것다 매달린 것두
웃겄다---오라는 디두 많을 틴디 말여.
[길례네] 시집은 안 갈 것이구먼유. (사이) 지는 어머님허구 살거유. 지는
우렁말을 떠나지 않을 거유. 지는 시집을 와서부텀 어머님허구 살았지 길례
아부지허구 산 적이 벨루 웃어유. (사이) 싸리재에 피어나는 싸리꽃
허구,밤골에서 부텀 스며오는 밤꽃 냄새허구,솔밭에서 불어오는
바람허구,논두렁 풀,밭두렁 개구리,산비알 옹달샘물---그렇게 살아왔구먼유.
이때,방앗간에서 발동기 소리가 통통거린다. 두 사람의 시선이 그리로
간다. 그러나,발동기는 곧 멎어버린다. 그렇게 두어번 반복하더니 다시
잠잠해진다.
[길례네] 저렇게 오래 실갱이를 헌 적은 웃는디 오늘은 이상허네유.
[될뻔댁] 기곌 오래 쉬어서 그러나베.
[길례네] 아니지유. 베방앗거리가 들어와서 여름내내 드문드문이래두
발동기를 돌렸어유.
[될뻔댁] 베방앗거리가 여름철에두 있남?
[길례네] 보리는 잘 안 가니께 벨루구 베방아는 가끔 있구먼유.
[될뻔댁] 뉘네가 아직꺼정 베를 쌓아뒀냐?
[길례네] 우렁말에선 안동네 이층집이구,청나리선 빨간
개와집이구,으뜸말에선 면장님네구,부용리선 이장네구,싸리골,건덕골,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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댕이---동네마다 한 집씩은 햅쌀 날 때꺼정 베방알 찌어 먹는디유.
[될뻔댁] (입맛을 다시며) 금새금새 찌어 먹으믄 햅쌀 맛이라는디---
이때,방앗간 쪽문으로 바우할멈이 사다리를 들고 나온다. 그녀는 사다리를
벽에 기대놓고 땀을 씻으며 다가온다.
[될뻔댁] 바우할머니,죄송헤유. 지우 겉보리 한 가마 땜이 왼통 지름칠에
땀을 흘리시게 허네유.
[바우할멈] 아무래도 발동기를 뜯어야 헐 모양이여. (마루로 가서 공구
두어 개를 꺼내든다.)
[될뻔댁] 아유, 미안헤서 워쩐대유---
[길례네] 어머님,지가 도와드릴까유?
바우할멈은 대꾸를 않고 방앗간으로 간다.
[될뻔댁] 급헌 건 아니니께 쉼서 허세유.
[바우할멈] 급허지 않긴. 그 속은 내가 더 잘 아니께 말할 거 웃어.
(쪽문으로 들어간다.)
[될뻔댁] (잘못을 들킨듯 머주하다가 길례네와 시선이 닿자 쑥스럽게 웃어
보인다.)
[길례네] (절구자리로 돌아오며) 지 어머님은 방앗거리를 보시믄 두구
먹을 양식인지,당장 땟거리루다가 써야 허는 건지,돈사서 제삿상 볼
건지,아니믄 자식들 학비루 쓸 건지를 방앗거리 주인들보담 더 똑똑허게
아세유.
[될뻔댁] 원채 오래 허셨으니께 그러구두 남을 것이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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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례네]전기방아루 바꿔야 허는디 동력선을 우렁말꺼정 끌어올라믄 그
돈이 엄청나서 못허구 있어유.
[될뻔댁] 발동기는 인전 바우헌티 맺기믄 수월헐 틴디 말여.
[길례네] 바우두 그렇구 지두 그렇구 기계 옆댕인 얼씬두 못허게 허세유.
기계헌티 한번 다치믄 평생 벵신되는 건디 바우나 지는 아적 벵신될 나이가
아니라믄서 말여유.
이때, 수다댁이 헌가마니 한장을 둘둘 말아들고 방앗간 쪽문으로 나온다.
[수다댁] (들어오며)한나절이여. 여증들 그만 떨구 논밭일 나가야지.
[길례네] 아줌니 오세유.
[될뻔댁] 웬일이랴?
[수다댁] 왜?내가 오믄 안 되나? 논밭돼기 웃는 사람은 방앗간 마실두
못오는 벱이 있댜?
[될뻔댁] 날풀이 헐 참인가 왜 저 예펜네가 저런댜?
[수다댁] 왱겨 얻으루 왔다,왜 그려?
[길례네] (말막음으로)왱겨는 저 헛간에 있어유.
[수다댁] 왱겨 걱정말구 바우나 찾아서 으뜸말 면장네 방앗거릴 나르게
혀. 내가 얠 온다니께 베방알 두어 가마 쪄야 헌다믄서 전갈해달라구 헷어.
[길례네] 바우가 말웃이 나갔는디--- 급허대유?
[수다댁] 바운 둠벙서 미꾸라지 잡구 있든디.
[길례네] (활짝 미소를 띄며) 미꾸라지유?
[수다댁] 동네 남정네들허구 애들은 다 모였으니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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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될뻔댁] 내가 거길 지나왔는디 애들만 며이서 빨개벗구 멱을 감으믄서
잠자릴 잡든디?
[수다댁] 아랫방죽 말구 윗둠벙 말여. 간밤에 물을 죄 품어냈댜. 애 어른
헐것웃이 홀라당 벗어부치구 야단들이여. 바우 등치는 멀리서두 표가
나니께.
[길례네] 그룻두 안 가져갔는디 워디다 담는댜?미꾸라지는
미끈덕미끈덕해서 잘 도망치는디---(마루 밑에서 헌두레박을 꺼낸다.) 지가
후딱 갔다 올 것이구먼유.(뛰어 나간다.)
[수다댁] 저렇게두 좋을까!
[될뻔댁] (대신으로 절구질 하며) 호박닢허구 애호박을 숭덩숭덩 썰어
넣구 된장허구 고추가루를 듬뿍 풀어 걸찍허게 끓여서 보리밥허구 먹으믄
입맛 돋을 틴디---
[수다댁] 침 넘어가는 소린!(침을 꿀꺽 삼킨다. 사이,변덕스레
실죽해져서)그게 바우같긴 헹는디 모르겠어---.
[될뻔댁] 뭣이여?
[수다댁] 바우가 아니믄 다른 남정네들허구 시시덕대다가 오겄지.
[될뻔댁] ---.(기가 차서 바라만 본다)
[수다댁] 길례네가 바우나 미꾸라지 땜에 갔나?남정네들 후리러 갔지.
[될뻔댁] (혼자소리처럼)쓸디웃는 소릴---
[수다댁] 두구봐아. 마을 여자들헌티 몰매를 맞을 티니께.
[될뻔댁] ---.(손을 놀릴 뿐이다.)
[수다댁] 다들 베르구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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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될뻔댁] 할일들두 웃든가베.
[수다댁] 몰라서 그려?될뻔댁은 눈두 웃구 귀두 웃든가베!
[될뻔댁] 나두 대강은 알지만 잘못이야 군침을 질질 흘리믄서 뒤꽁무니를
쫓아댕기는 즈이들 서방이지.
[수다댁] 게는 게 편이구 똥은 똥끼리 묀다든디 과부끼리라구 두둔은.
[될뻔댁] 도지나 세금 웃는 말이라구 함부루 지껄이는 게 아녀. 수다댁두
운수가 사나우믄 마른 번개에 서방을 잃을지 모르니께.
[수다댁] 뭣여?뭣이 워쪄?
[될뻔댁] 화낼 일두 아니구 소리칠 것두 웃어.그런 소리 듣기 싫으믄 남
뒷숭질 허지 않으믄 되여.
[수다댁] 뒷숭질은 누가 뒷숭질이여.사실이 그러니께 허는 소리여.바람을
피구 돌아댕겨두 보통으로 피는 겨?글씨,지나간 봄철 잔디가 지우
너스르르허게 돋아난 뫼잔등이서 부텀 시작해서 보리밭,밀밭,콩밭으루다
드나들며 그짓이더니 그걸 다 베내니께 솔밭으루 갈대밭으루 돌아댕기믄서
그짓을 해쌓는단 말여.것두 이 사내 저 사내허구 말여.
[될뻔댁] 붙백이 사내가 있으믄 왜 과부것어.
[수다댁] 뭣여?
[될뻔댁] 소문이 죄다 참말은 아녀.
[수다댁] 내 말을 못 믿는만. 헛소리가 아녀. 내가 아는 홀애비 총각만두
열 손가락은 되여. 으뜸말 녹순이 삼춘,덕진이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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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너말 홀애비 황씨,청나리 산지기 박씨,우렁말 윤씨---
[될뻔댁] 그것두 보태진 소리구.
[수다댁] 이 예팬네가 사람 죽이네. 본 사람이 한둘이여?
[될뻔댁] 그걸 워치키 봤댜?그래,보리밭이믄 그 속까지 쫓아가서
봤댜,콩밭이믄 수수나 들깨참깨를 부룩박아서 총총헐틴디 이랑을 헤집구
들어가서 봤댜?눈치코치루 때려잡은 것여.
[수다댁] (계속해서)그짓을 허구는 여울목이나 개울턱서 아래를 홀딱
까발리구 거길 씻어댄댜. 저 산비알 옹달샘에서는 먹는 바가지루다가 물을
떠서는 그냥 거기다가 대구 씻었댜. 그래서 속곳웃이 처마만
입구다닌다는만. 지금두 처마바람이 틀림웃어. 오믄 들춰보란 말여.
[될뻔댁] (체질을 하면서)과부집 수쾡이가 우니께 과부가 애길 나서
운다구 헌다든디 과부 돼보지 않으믄 그 억울허구 답답헌 속을 모르는 벰여.
[수다댁] 과부되기 전부텀두 그렸다는디 뭔 소리여?길례아부지가 이집서
두 눈을 멀쩡허게 뜨구 있는디두 그렸구,기도원인가 허는디에 갔을 때두
그렸구 말여.
[될뻔댁] 생과부두 과부는 과부니께. 월남 가서 맨윗척추를 다쳐갖구 와서
입만 산 게 아홉 핸디 그게 과부 아니구 뭐것어.
[수다댁] 편역들긴?
[될뻔댁] 편역드는 게 아녀. 암만 뭐래두 우리 면서 인물루 보든지 맵씨로
보든지 길례네가 채소나 과일루 치믄 머드레기는 틀림웃어. 팔자가 드세서
그런 걸 깃다듬어 주지는 못헐망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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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싯대서 부에를 끓게 허니께 그러는 것여.
[수다댁] 두 과부가 동내 다 망처놓겄구만 그랴.
[될뻔댁] 두 과부 뿐이겄어? 다들 외국으루 대처루 돈벌러 가구 웃으니께
생과부야 수두룩허지. 두루뭉수리루 생겨먹은 디다가 다 쭈그러들어갔구
과부가 된 내 집서두 수쾡이가 여러 십마리 울었어. (제 설움으로 코를
훌쩍거린다.)
[수다댁] ---.(물끄럼히 바라본다.)
이때,방앗간에서 통통거리는 발동기 소리가 들려온다. 두 사람의 시선이
그리로 간다. 몇번 통통거리다가 드디어 발동기 소리가 정상적으로 들려오고
이어서 피대소리가 화음을 이루며 들려온다. 간간 깨스가 폭발하는 소리가
끼어들기도 한다.
[될뻔댁] (코를 힝 풀고)인전 지대로 돌아가는 모양이구먼.
[수다댁] 때늦게 왠 겉보린 갖구왔댜?
[될뻔댁] 누가 겉보릴 볶아갖구 읍내에다가 팔믄 돈이 된다구 허길래 쬐금
헤봤는디 그게 아녀. 읍내선 벨반이구 더 큰 대처나 서울루 가야 다방이나
음식점서 보리차루 쓰는디 알구본께 거기두 공장서 볶아갔구 비니루
포장꺼정 헤서 파니께 소용웃댜. 어떤디선 맹물에다가 물감을 타서 보리차를
맹글구말여. 겉보리 한 가마 냉궜든 걸 양식이나 헐라구 갖구온것여.
[수다댁] 장사가 아무나 허는 줄 아나베? 내가 보따리 옷장살 허지만
그레두 밑천 들구 수단 있어야 허구 아는 얼굴을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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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그러야 허구 쉰 일이 아녀.
이때,바우할멈이 기름통과 공구를 들고 방앗간에서 나온다.
[바우할멈] (수다댁에게) 아니,저 예펜넨 왕겨를 퍼가라구 들여보내니께
여태것 쓰잘데웃는 너스레만 떨구 있구먼.
[수다댁] 너슬게는 지가 뭔 너슬게를 떨어유. 그냥 쬐금 쉬구 있는
참인디유.
[될뻔댁] (다가가서)애 쓰셌어유. 인주세유.
[바우할멈] 생손에 지름을 왜 묻힐려구. (가며)시골 여잔 물허구 흙만
맨지믄 되는 벱여.
바우할멈이 그늘로 들어가 공구를 마른 걸레로 닦는다.
[바우할멈] (일하며)에민 워디 갔댜?
[될뻔댁] (감싸주는 변명으로)바우 찾으러 둠벙에 갔구먼유.
[수다댁] (일러바치느라고)윗둠벙서 남정네들이 빨개벗구 미꾸라지를
후비구 있으니께유.
[될뻔댁] 바우가 둠벙서 미꾸라질 잡는다구 혀서 부르러 갔지유.
[바우할멈] 바우가 왜 게 있겄어. 지게허구 바소쿠리가 웃는 것 보믄 깔
비러 갔겄지. 괜히 싸돌아댕기구 싶으니께 나간 것일티지.
[수다댁] (됐다싶어)야,글씨,지 말이---.
[바우할멈] (말막음으로)수다댁,내가 알었으니께 되얏지?
[수다댁] ---(입을 꾹 다문다.)
[바우할멈] 될뻔댁은 보리가 돌아가구 있으니께 나가서 지키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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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먹을만큼 쪄지믄 알려주구,수다댁은 방앗간 가서 뜨게를 가져오도록 혀.
[될뻔.수다댁] (같이)야.(돌아선다.)
[바우할멈] (혼자소리로)원,애는 새벽녘에 났는디 태사를 왱겨가 웃다구
한나절꺼정 탯덩일 웃목 구석에 밀쳐뒀다니,쯔쯔.
될뻔댁은 무슨 말인가 싶어 돌아서고, 수다댁은 말대꾸를 하고 싶어서
돌아선다.
[수다댁] 왱겨도 웃지만 워낙 고단헤서 잠깐 눈을 붙인게 그만 한낮이
되번지잖것어유. 엊초저녁부텀 진통을 해쌌는디 워디 한참을 그대루 자게
둬줘야지유. 애기 빼낼 예펜네가 긴숨을 쉬어야 지두 눈을 쬐금 붙여볼 틴디
쉈새웃이 자지러지믄서 왼 방안을 기어쌓는디 꼭 둬질 것 같잖겄어유.
하필이믄 늦더위꺼정 미중알 맥힌 년 똥구멍 터지듯 터져갖구 불댕이가
오봉산을 죄 넘어가서 낯때기를 감추구두 새참으루 쪄대는디 이건 숫제 내가
애길 배는 게 편허지 그짓은 두번 다시 못허겠드라구유. 모기는 또 울매나
극성맞은지 원---글씨,사내가 사타구니를 채알대 세우듯 세우구 우뚝
받쳐들구 대들어두 귀찮을 판인디 비러먹을 모기새깽이들이 피를 먹자구
대드니 원---
[바우할멈] 모기장두 웃구 모기불두 안피워?
[수다댁] 소용웃이유. 모기장을 처들믄 그놈들이 부텀 들어가겄다구
야단인디유. 모깃불을 피믄 워치키 알아내는지 낮게 날아댕기믄서 연기를
거뜬허게 피해버리구유. 말이 있잖어유. 요즘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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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는 텔레비존을 시청한다구유. 사람들이 더워서 방문을 열어놓구
텔레비존을 보믄 즈이들은 시원한 나무 잎새에 앉아서 연속극을 시청헌대유.
요즘은 칼라가 아니믄 시시허다구 주인을 더 물어뜯는다는디유.
(사이,말줄기를 찾아서)왜 지가 늦었느냐 허믄 밤을 꼬박 새운디다가
아침나절에 애길 났는디 삼갈러서 목욕시켜 뉘구,미역국 끓여 산모
멕이구,피걸래 빨구 나니께 더 견뎌낼 재간이 웃대유. 산모가 잠든
구석쟁이서 쓰러졌쥬. 깨서 본깨 낮때잖유. 새두 못 줬으니께 점심을 일찍
떠주구 싸게 달려온 거유.
[될뻔네] 뉘네가 애길 났대유?
[수다댁] (기가 막히는듯)뭣여?
[바우할멈] 으뜸말 박숙이네가 지집애를 났댜. 이참은 아들을
봐야허는디---
[될뻔댁] 말짱 삼신에미 탓이구먼.
[수다댁] 뭣여?그게 왜 내 탓이여?즈이들 탓이지.
[될뻔댁] 삼신에미가 듬직헤봐. 조갑지가 붙었다가두 고추가 될 것인디
수다쟁이구 본께 지집애나 받는 것여. 고추가 달렸다가두 나오믄서 조갑지가
될 것이구먼.
[수다댁] 씨앗 틈실허구 밭 걸어봐. 피농허겄나.
[바우할멈] (그동안 기름통과 공구를 두고 나오며)죙일 입씨름만 헐텨?
수다댁과 될뻔댁이 방앗간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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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우할멈이 물에 손을 씻는다. 이어서 수다댁이 뜨게를 들고 나온다.
바우할멈이 손의물을 털면서 일어선다.
[수다댁] 아녀유,지가 허께 좀 쉬세유.(가마니를 들고 헛간으로 간다.
그러나 말을 하고 싶어 다시 돌아선다.) 애 아버지는 지금꺼정 곯아떨어져
있어유. 각시허구 애길 누가 업어가두 모를 것이구먼유. 밤을 새믄서 본께
그럴 수 밴에 웃드구먼유. 글씨,애 에미가 개울 건너 뽕밭서 가지뽕치기 헐
뽕을 따다가 진통이 와갖구 얼굴이 새하애지믄서 널브러졌대유. 지우
삐알밭이나 있은께 워쩔수웃겄지만 배는 저 오봉산 가운데 봉우리만 허게
불러갖구 가을 누에를 치겄다구 석장을 깼지유. 발써 누에가 다섯 잠에
들어가니께 손이 보통으루 급헌 게 아닌디 그만 쓰러저버린 거유. 애 아부진
이층집 최부자네 만생종 이삭도열병 약을 뿌리구 있다가 기별을 받구
달려왔는디 몸을 씻어낼 틈새가 웃은께 들머리 방죽에 첨벙 뛰어들어가서
한번 휘이 내저어대구 그대루 달려왔다는디 정말 볼만허대유. 체격이 워낙
당찬디다가 옷이 찰싹 달라붙어버렸은께 글씨 고게 밭고구마 알삐지듯
삐졌는디---훗훗후---
[바우할멈] 저거 평생 수다병 못 고치구 가겄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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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우할멈] 미친 것.
[수다댁] (다시) 그집 돼지꺼정 새낄 뱄어유. 그놈두 이달이 산월이래유.
그런디 요새가 빨간집모기가 번식허는 때라 일본뇌염에 걸리기 쉽다는만유.
일본뇌염에 걸리믄 죽은 새끼를 낳든지 산 새끼를 낳아두 하루나 이틀
지나믄 죄 죽구 만대유.
[바우할멈] 경사두 겹치구 고생두 겹쳤군.
[수다댁] 야. 웃는 집은 경사가 겹쳐두 걱정이 앞서유. 둘이서 죽을둥
살둥 일헤두 늘 웃이 사는디 왜 그렇대유? (사이) 지는 말만 들었지
누에치는 걸 첨 봤는디 그게 여간 잔손가는 게 아니대유.
[바우할멈] 쉰 일이 있는감. 뽕닢을 시간대서 줘야지,더우믄 서늘허게
차믄 따뜻허게 헤줘야지,건하믄 방건지를 치구 습허믄 거둬내서 습도를
맞춰야지,방건지를 쳤다가두 누에가 새근새근 잠들믄 거둬내구 석회나 겨
태운 재를 뿌려줘야지,(절구통으로 가서 체질을 하면서)갓난애기 자리
돌보듯 똥가리두 헤줘야구,뽕두 법도에 맞춰서 줘야 허구,누에 나이따라
자리두 알맞게 넓혀줘야구,나뱅이나 잡벌래가 들어가 쉬를 깔기지 못허게
방충두 헤줘야구---턱웁이 손이 많이 가는 일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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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댁] 야. 지말이 그말이유. 왼종일 밭에서 일허구 밤새워
누에,돼지,사람 보살피는디 여간 고단허겄지만 잘두 헤내대뉴. 어느새 깊을
깨끗허게 추려갖구 새끼를 꽜는디 금줄루는 그만이대유. 꼬추두 실헌걸루
골러오구,청솔두 윤나는 걸루 꺾어오구,참숯은 아니지만 깨끗헌 걸루
매련허구---옆댕이서 보구 있은께 사람이 탐스럽대유. 야,참말루
탐스럽드라구유.
[바우할멈] 수다댁 자네 서방두 다 그렇게 헹어. 남 서방 탐내지 말구
어여 왕겨나 퍼담어. 가마닐 갖구 들어가서 퍼담으믄 쉴 거여.
[수다댁] 야.
수다댁이 가마니를 들고 헛간으로 들어간다.
[길례네] (신나서 들어오며) 어무니,이놈들 봐유! 팔딱팔딱 뛰믄서
야단들이유!
[바우할멈] (본다) 지름이 자르르 흐르는구나.
[길례네] 야,살이 통통허게 쪘어유!
[바우할멈] 여튼 소금물에 당궈서 개흙 죄 토해내믄 끓이두룩 헤라.
[길례네] 야. (다리에 묻은 흙을 훨훨 씻어대며) 호박 끝순허구 뽈그레헌
생고추 넣구 된장 풀어서 어무니 끓여드릴라구 지가 쬐금 잡구 남정네들헌티
얻구 헹어유.
[바우할멈] 오냐, 잘 헹다.
[길례네] (소금을 꺼내다 뿌리며) 어무니,요것들 보세유. 팔딱팔딱 뛰다가
나자빠지네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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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우할멈] 어여 물을 부어라.
[길례네] 야. (물을 부어 그늘에 옮긴다.)
[바우할멈] 매큼허게 끓여서 밥허구 헤서 두 몫만 따루 챙기거라.
[길례네] 으뜸말 시아즈버님댁에 보내게유?
[바우할멈] 게야 즈이가 식성껏 헤먹것지. 외딴말 젠네할아부지가 앓구
있으니께 입맛이래두 돋꿔줘야지.
[길례네] 떡두 게 보낸담서유.
[바우할멈] 떡은---
[수다댁] (나오며) 어유,푹푹 찌네유.
[바우할멈] 이것아,허불렁허게 담아다가 뭘헐텨?
[수다댁] 야? 왜유?
[바우할멈] 탯덩이 사르는 일이 쉰 것 같어두 가랑잎 태듯 호르륵
타버리는 게 아녀. 근으루 치믄 벨것 아니지만 탯줄이 워디 바싹
말라베틀어진 고추대궁인감. 껌껌한 뱃속에서 열달동안 목숨을 맹글어서
부지헤준 끈줄이여.
바우할멈이 앞서고 수다댁이 뒤따라 헛간으로 들어간다. 길례네가 체질을
끝낸 무거리를 절구에 쏟아넣고 다시 절구질을 힘차게 해댄다. 뒤안에서
돼지가 꿀꿀거린다. 길례네가 절구질을 멎고 귀를 기울인다. 그대로
잠잠해지자 다시 절구질을 한다. 바우가 지게를 지고 뒤안에서 나온다.
[길례네] 위디 갔나 헹는디 꼴비러 값었구먼. 저허구 구정물이 많은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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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우] (씩 웃고 지게를 벗으며) 도야진 풀을 많이 멕여야 헤유.
[길례네] 그려두 해걸음에 허잖구.
[바우] 소두 내다가 맸지유.
[바우할멈] (나오며)그늘에 매잖구.
[바우] 야. 개울가 미루낭구에 맸어유.
[수다댁] 으뜸말 면장네 베 지러 가야혀.
[바우] 야?
[바우할멈] 두 가마래니께 리야까보담 지게가 수월헐 게다. 바소쿠리
내려놓구.
[바우] 야.
[바우할멈] 수다댁두 어여 돌아가구.
[수다댁] 야. (왕겨가마니를 인다.)
이때,될뻔댁이 쪽문으로 얼굴을 내밀고 소리친다.
[될뻔댁] 보리가 엔간히 깎였구먼유.
바우할멈이 방앗간으로 간다. 바우도 지게끈을 돌리고 멜빵을 모아 한
어깨에 메고 방앗간으로 간다.
[수다댁] (잽싸게 되돌아와서)이봐,길례네,소문 들었남?
[길례네] 야?뭔 소문인디유?
[수다댁] (방아간 쪽을 힐긋 보더니 아예 가마니를 내려놓고)외딴말
외딴집에 손님이 와 있다믄서?
[길례네] 손님이유?
[수다댁] 젠녜할배헌티 여자 손님이 와 있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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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례네] 손님은 뭔 손님이유?공양하러 댕기다가 다릿병이 나서 어무님이
며일 게 있으라구 허셨지유.
[수다댁] 그 여자가 누군지 알어?
[길례네] 중이지유.
[수다댁] 에그,한집안 식군디.
[길례네] 야?
[수다댁] 바우할무니 큰메누리여.
[길례네] 누구유?
[수다댁] 길례네 성님이라구.
[길례네] 지 성님이라구유?뭔 말인지 모르겄네유.
[수다댁] 바우 어무니여.
[길례네] 바우---(하다가)아녀유. 그 성님은 지가 시집을 오기두 전에
돌아가셨는디유.
[수다댁] 객사했다구는 했지만 돐지낸 바울 버리구 팔자고쳐 갔다는
소문두 있었어.
[길례네] 아녀유. 큰시아즈버님 지사 땐 양주분 지방 써놓구 바우헌티
절두 시키는디유.
[수다댁] 그 여자가 얼굴은 그만두구 코빼기두 내보이지 않는디 고게
이상하잖나벼?
[길례네] 그게 아니구유 지두 잠간 봤는디 꼬깔땜에 얼굴이 뵈지않는거유.
[수다댁] 요즘 바우할무니가 신명이 웃어졌는디---전엔 울매나 신명차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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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직했어. 낌새가 이상혀---
[길례네] 아녀유. 딴 걱정이 있구먼유.
[수다댁] 딴 걱정?그게 뭔디?
[길례네] (앗차싶어)아,아녀유.아무것두 아녀유.
[수다댁] (바싹 다가들며)내 소문 안 낼 티니께---뭔 걱정여?응?
[길례네] 작년그러께에 읍내루 살림난 막내 시아즈비 말인디---
[수다댁] 그려,바우 막내 숙부가 워쪘는디?
[길례네] 워쩐 게 아니구---
[수다댁] 그려서?
[길례네] 야단났네유. 아줌니헌티 야기만 하믄 금새 소문이 골채기에 안개
덮히듯 쫘악 퍼질 틴디---그렇다구 야길 안 헐 재간두 웃구유---
[수다댁] 걱정허지 마아. 내두 인전 입술을 꾹 다문다니께. (침을 꿀꺽
삼키면서 다가든다.)
[길례네] 이 절구들허구 골방에 있는 맷돌을 가져가겠대유.
[수다댁] ---.(생각해본다.)
[길례네] 방앗간 주추루 박아논 저 연자매두 뽑아가구유.
[수다댁] (퍼득 짚히는 게 있다는듯)오오라,그러니께 이 집허구 저
방앗간허구 산뙈기를 죄 팔아가겠다 그말이구먼.
[길례네] (비약하는 것에 당황하여)아녀유,그게 아녀유.
[수다댁] 워쩐지 지난 봄부텀 신작로에 먼지를 뿌려대믄서 불나게
드나든다 헷드니만---가만 있어---내가 이러구 있을 때가 아녀---(하면서
왕겨가마니를 번쩍 들어 머리에 인다.)
[길례네] (애원으로)아줌니,그게 아녀유.아니란 말여유. 소문내지
않겄다구 헹잖어유. 야?아줌니---
이때,바우할멈이 둥그멍에 쌀을 담아갖고 쪽문으로 나온다. 수다댁과
길례네가 멈칫한다.
[바우할멈] 에그,저것이 아적두 안 가구 뭐 헹댜?태가 죄 썩겄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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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댁] 야,막 갈려든 참이유.(돌아선다.)
[바우할멈] 이거 쬐금 가져가게.
[수다댁] 야? (돌아선다)
[바우할멈] 에미야,자루 한 개 내온.
[길례네] 야. (부엌에서 자루를 내온다.)
바우할멈이 둥그멍의 쌀을 자루에 대강 쏟아서 준다.
[수다댁] 웬 쌀이래유?
[바우할멈] 됫밑쌀이여. 산모 입맛 붙게 두어 끼니 끓여 줘. 미역을
사보내야 허는디 장에 갈 틈새가 웃어.
[수다댁] 아녀유. 미역은 사왔어유.(새삼스러운듯)고맙구먼유.
[바우할멈] 어여 가봐아.
[수다댁] 야.폐히 기세유. (빠른 걸음으로 나간다.)
[길례네] (바라보다가)어무니,워치키 허쥬?
[바우할멈] (부엌으로 가며)말꼬랑지를 잽힌 게구나. (부엌으로
들어간다.)
[길례네] (혼자서)야,지가 그만---
[바우할멈] (둥그멍을 놓고 나오며)뭔 꼬랑지를 잽혔는지 모르겄다만
잽힌디서 끊어버려. 빼낼라구 허다가는 되례 죄 잽혀.
[길례네] 야---
[바우할멈] (수건을 적시며) 무거리 다 빴으믄 시루밑 깔구 안치그라.
[길례네] 흰무리루유?
[바우할멈] 여름이니께 백설기래야 한나절이래두 더 갈 티지.
[길례네] 야.
절구질한 그릇들을 모아 든다.
[바우할멈] 시루 안치구 겉보리 두어 됫박 볶어라. 매판 깔구 맷돌루
갈아서 곤 체로 처라.
[길례네] 야.(이상해서)누가 워딜 가나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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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우할멈] 젠네할아부지헌티 와 있는 여승이 간다니께 쬐금
들려보내야지.
[길례네] (눈치를 살피며) 갈 디가 웃는 모양인디 예서 살라구 허쥬.
즈이허구 남남두 아닌 것 같은디---.
[바우할멈] (퍼뜩한다.)누가 뭔 소릴 허든?
[길례네] 뭔 짚은 사연이 있는지는 몰라두 지 생각이 그렇구먼유.
[바우할멈] (생각에 잠겼다가) 쓸디웃는 생각은 안 허야 쓰는것여.
[길례네] 야.
[바우할멈] 해거름에 떠날 것여 덥지만 손싸게 맹글그라.
[길례네] 야.
이때,동이가 삽작으로 들어온다.
[동이] 어머님,뭐허세유?
[바우할멈] 더운디 웬일이냐?
[동이] 그냥 들렸구먼유.(길례네를 본다.)
길례네가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돌아섰다가 눈치를 느끼고 부엌으로
들어간다.
[동이] 동오가 학교루 전활했는디 내일 집 살 사람허구 절구돌이니
방앗돌을 실어갈 차를 가지고 들어온다는군요.
[바우할멈] 뭣이여? (찌렁 울리도록 소리친다. 그러나,어지러운듯
휘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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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이가 급히 부축하고, 길례네가 부엌에서 달려나온다.
[길례네] 어무이,마루루 가세유.
그들이 바우할멈을 부축해서 마루에 앉힌다. 길례네가 부채를 찾아
부채질을 해준다. 바우할멈이 서서히 눈을 뜬다.
[바우할멈] 이놈아,성이 그걸 못 말리구 내헌티 전허냐?
동이는 고개를 떨구어 땅을 볼 뿐 대답을 못한다. 이때,방앗간에서 바우가
소리친다.
[바우] 할무니,면장네 베 저 왔어유.
바우할멈이 고개를 방앗간쪽으로 약간 돌렸다가 다시 앞을 본다. 사이.
손을 들어 부채질하는 길례네 손을 잡아 멎게한다. 얼굴에 어떤 결의를
내보이면서 서서히 일어선다.
[길례네] 어무님,쉬어서 허세유.
[바우할멈] (걸어가며) 방아는 쪄야지.
바우할멈이 애써 방앗간으로 가고 동이와 길례네는 근심스레 바라본다.
바우할멈이 쪽문으로 들어가고,발동기 시동음이 들리고,통통거리는 소리와
피대 돌아가는 소리가 조화를 이루고,간혹 깨스가 폭발하는 소리도 섞이는
데 동이와 길례네는 계속해서 근심스럽게 바라보고 서 있다. 무대가 서서히
어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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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2막
[장] 1장
이튿날 초저녁,노을이 타오르는 화염처럼 붉다. 절구돌이
쓰러졌고,연자매주추를 빼내려고 방앗간 벽에 두리목을 받쳐놓는 등
한차례의 회오리가 지나간 흔적이 뚜렷하다. 바우할멈은 들마루 가운데에
널바우처럼 앉아 있고,동이는 들마루 오른쪽 가에 걸터앉아 있다. 동오는
안채 마루에 앉아 불만스러운 표정이고,길례네는 우물가에 옆으로 서서
고개를 푹 떨구고 있다. 바우와 젠네할배는 연자방앗돌 주추에 걸터앉아
걱정에 잠겨 있다. 그들은 침묵을 지키고 있는데 그 무거운 침묵이 가슴
속에 앙금진 말들을 내뱉고 있는듯 하다.하늘의 노을이 새빨게 지더니
드디어 검은 빛이 섞이면서 서서히 스러지고 어둠이 덮혀온다.
[바우할멈] (침묵을 깨고) 에미야,전깃불을 켜거라.
길례네가 처마 끝에 매달린 전등의 소켓을 돌려 불을 켠다.
[바우할멈] 모깃불두 놓구.
길례네가 쑥풀과 보릿까락을 한 아름 안아다가 들마루 근처에 놓고 성냥을
그어 불을 붙인다. 쑥불에 불어 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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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연기가 피어오른다. 길례네가 다시 우물 가에 고개를 떨구고 선다.
[바우할멈] 햇덩이를 집어 삼키는 저 밤새는 그 속이 울매나 넓구 크것냐.
(사이)소문이 멀리꺼정 번졌드래두 걱정헐것 웃다. 남 말은 석달이라구
헷는디 그것두 옛말이구 지금은 사흘도 못 가. 소문이 땅거미가 내려앉듯
왼마을을 덮었드래두 새벽에 동이 트믄 맑애지는 골채기처럼 깨끗허게
걷혀버리는 법여. 그러니께 동오 넌 니 아주미를 너무 닥달허지 말어.
[동오] 논밭 팔구 집허구 방앗간 팔아서 읍내루 가잔 얘긴 내가
어머니헌티만 했어요. 그게 온동네에 펴졌으니 몰래 엿듣구 퍼뜨린 거에요.
[바우할멈] 말은 보태서 전하구 떡은 떼서 전한다구 헹어. 굴려서
커지기루 말하믄 눈뎅이보다두 말이구,장리빚보담두 말이여. 들은 말은 들은
디서 잊어뿔구 본 것은 본디서 잊어뿔어야 써. 말많은 것은 과부집
종년들이나 헐짓이여. 나두 과부구 에미 너두 과부니께 참말루 조심헤야
쓰는 게여.
[길례네] 야,어무님---.
[동오] 흥,대답은 잘하지. 챙피허단 말에요,챙피!
[바우할멈] 소문이 거짓이믄 챙피헐 것 웃지.
[동오] 어머닌 왜 내 입장은 생각두 않구 한쪽만 두둔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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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에요?
[바우할멈] 새까먹은 소리는 아니잖어. 불을 땠으니께 연기가 난것이구
쭉지가 있은께 날개를 단 게여. 니 말마따나 이 산골채기 논 반
섬지기,밭닷뙈기,저 방앗간허구 이 집을 팔어두 대처에 가서 번듯한 가게는
커녕 등을 대구 눌집한간 매련허지 못혀. 니가 허구 있는 가게에 보태봐두
벨 심이 안 될 티구 말여. 더 생각허지 마아.
[동오] 사업자금으루 쓰든 집을 사든 예다 묵히는 것보다는 읍내에서
굴리는 게 경제성이 훨씬 높단 말예요. 농촌의 재산은 갈수록 경제성이
낮아지고, 도시의 재산은 하루가 다르게 높아지고 있어요. 그게 세계적
추세란 말에요. 그리구 젠네할아버지두 요즘은 늘 앓구 있는디 어머니가
어떻게 농사짓구 방앗일 허구 소허구 돼지를 기른단 말예요.
[바우할멈] 그건 걱정 안 헤두 써. 젠네 할아부지가 그동안 많이
봐주었지만 인전 바우허구 에미허구 내허구 싯이서 허믄 헐수있어.
[동오] 참 답답두 허세요. 땅 움켜쥐구 방앗간 붙들어 뼈빠지게 땀흘려두
겨우 입에 풀칠허면 그만 아니에요. 왜 쉽고 편하게 살 생각은 못허시구
어렵구 힘들게만 살라구 그러세요. 일차산업에 목줄 매는 시대는 벌써 지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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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요. 이차,삼차,사차산업으루 치닫는 새바람이 불어온게 벌써 언젠데
고집만 세우는 거에요.
[바우할멈] 그런 말은 내가 알지 못혀. 그저 힘들이구 땀흘리믄서래두
부즈런히 일하구 살믄 그뿐이여.
[동이] (비로서) 동오야.
[동오] ---.(바라본다.)
[동이] 동오 네 말대로 농촌은 갈수록 피폐허구 도시는 갈수록 비대해지구
있는 건 사실이여. 헌디,지금 우렁말 우리 재산을 죄 팔어두 큰돈이 되는 건
아녀. 그래두 네 처지루 봐서 꼭 팔어야 쓰겠냐?
[동오] 형님두. 내가 내 입장만 생각해서 그럽니까? 우리 집안 모두를
위해서 그러는 겁니다. 형님두 빨리 클려면 국민학교 훈장 사표내고 퇴직금
타서 읍내루 나오세유. 전자제품이나 보험회사 대리점 하나만 잡으면 크는
건 하루아침이에요. 아,지금 정부에서 밀어주는 게 그쪽인건 뻔하잖아요.
[바우할멈] 매사는 굴곡이 있는 벱여. 지게 질방이나 빨래줄꺼정 팽팽헐
때가 있구 느즈러질 때가 있어. 니가 갖구 있는 거나 깝살리지 말구
부즈런허게 잘 혀. 내 집서 못 한개 내갈생각 허지마! 죄 내가구 인전
몇가지 남지두 않었어.
[동오] 말끝마다 다 내갔다구 허시는데 뭘 다 내갔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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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 뭐가 엄청나게 있었다구 그러세요? 말씀해보세요?
[바우할멈] ---.
[동오] 고렷적 광명대가 있었어요,반반한 목제루 이조적 문갑이나 함이나
나전칠기---아니면 뒤주가 있었어요?
[바우할멈] (허탈해서)갱맹두두 나전칠기두 웃었다---.
[동오] 그럼 은괴금괴가 있었어요,이조백자,고려청자가 있었어요?
[바우할멈] 은괴금괴는 귀경두 못허구,청자백자는 귀경은 헹지만 만져보진
못헹다---.
[동오] 헌디 말끝마다 내가 뭘 가져갔다는 거예요? 예? 대답해 보세요.
내가 뭘 그렇게두 엄청난 걸 내갔나 말해 보세요,녜?
[동이] 동오야.
[동오] 형님은 가만 계세요.
바우할멈이 일어선다. 신을 신고 뒤안으로 간다.
동오,동이,바우,길례네,젠녜할배가 고개를 돌려 바라본다. 바우할멈이
도리깨를 들고 나온다. 동오는 흠칫해서 몇걸음 물러서고
동이,바우,젠네할배도 일어선다.
[바우할멈] (도리깨를 들마루에 올려놓는다. 사이) 도리깨가 여섯개였는디
지우 이거 한 개 남었어.
[동오] 도리깨?흥!(사이)도리깨 다섯 개 내갔지만 죄 꼭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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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가 닳아버린 거라 쓰지 못하는 거였어요. 채를 맨 끈두 죄 낡아서 곧
끊어질 것들이었구요.
[바우할멈] 바우야.
[바우] ---.(바라본다.)
[바우할멈] 헛간에 가서 개상을 내오니라.
[바우] 야?
[바우할멈] 타작헐 때 벳단 태질허는 받침대 말여.
[바우] 야.
바우가 헛간에서 먼지로 덮힌 개상 한 개를 내다가 바우할멈에게
건네준다.
[바우할멈] (받아서 들마루에 놓으며) 이것두 열 개는 넘었는디 다
웃어지구 이 빠진 이거 한 개여.
[동오] 원래 성한 건 한 개두 웃었어요. 이가 한두 개씩 빠졌거나 아니믄
동바리가 흔들거리구 끈이 끊어지구---다 그런 거였어요.
[바우할멈] 너무 절구통 두 개에 돌 절구통이 두 갠디 지우 이거 한 개
냉궜어.
[동오] 나무 절구통은 너무 오래 되서 건들기만 해두 부스러지구
돌절구통은 어디 제대루 다듬어지기나 했나요?
[바우할멈] 디딜방아는 세 쌍인디 공이 한 개 냉궈두잖구 죄 내갔다.
[동오] 예. 허지만 디딜방아는 세 쌍 중에 한 쌍두 써먹은게 없다구요.
공이는 땔나무두 못허게 조악했구 확은 싣고 내릴때 얼먹어 깨져버렸어요.
[바우할멈] 연자매두 두벌이었다. 지우 방앗간 주춧돌루 박어논 저 암돌
한 개만 냉기구 죄 실어갔어. 뿐이냐?
키,삼태기,고무래,멱서기,맷돌,다듬잇돌,허다못해 작두꺼정 몽조리 내다가
웃애버렸어.
[동오] 작두는 고두쇠가 죄 녹슬어서 빼버리구 나무바탕만 받침대루
썹어요.
[페이지] 033
[바우할멈] 수레바퀴두 빼가구,물레방아 날개두 성한 쪽은 떼가구
못쓸것만 저렇게 놔뒀는디 그리구두 마저 가져가겠다니 동오 니놈이
사람이냐?
[동오] 쓸모두 없는데 놔둔다고 금덩이가 돼요? 그렇잖아두 촌구석이라
구질구질헌디 구닥다리를 쌓아두니까 더 음침허구 어수선한 거에요.
[바우할멈] 음침허구 어수선헤두 내여. 왜 문화주택서 사는 니가
음침허구 어수선허냐?
[동오] 내가 그걸 갔다가 쓸데없이 버린 건 아니잖아요. 판것두 있구
거래처나 내가 신세지구 있는 분들헌티 선물을 했어요. 한번 읍내에
나오세요. 보여드럴게요. 적갈색 벽돌로 지은 현대식 건물에 그것들이
장식품으로 얼마나 잘 어울리구 있는지를 보세요.
[바우할멈] (가슴이 답답해서)그건 장식품이 아녀---.
[동오] 응접실 벽에 걸기두 하고, 산뜻하게 치장된 복도 구석에
세워놓기두 허구, 정원에다가 디딜방아 연자매를 관상용으로 설치하구는
야외용 탁자나 의자루 쓰기두 하는데 그렇게 잘 어울릴 수가 없어요.
[바우할멈] (분노를 눌러 억제하고)그게 디딜방아나 연자매가 대처에 가서
지 구실을 허는 게냐? 그게 느이들 아부지허구 할아부지가 흘린 땀허구 피를
생각허는 거냐?
[페이지] 034
[동오] 얼마나 좋은 일이에요. 습헌 먼지 구석에다 썩혀두는 것보다
백배천배 낫죠. 이번에 나를 밀어주고 있는 분이 집을 새로 졌어요.
청자,백자,그림,서예는 말할것두 없구 현대작가들의 그림이나 조각은 수없이
많은데 정원을 장식할 절구돌,연자매,맷돌 같은 것이 없어요. 돈을 주고
새로 만들어도 되지만 그런 건 안 좋아해요. 이럴 때 선물하면 나헌테
도움이 와요.(애원하듯)어머니,우렁말 이집에선 아무리 갈고 닦아도 볼품두
없구 쓸모두 없잖아요, 네,어머니.
[바우할멈] (단호하게) 안돼!(사이,늪을 본다.)내가 죄 버리지 않구
간수해온 게 잘못이여.
바우할멈이 힘이 솟는듯 방앗간으로 다가가서 벽에 세운 두리목을 빼내
삽짝 밖으로 내던진다. 그리고는 손을 털면서 밖으로 나간다.
[길례네] (바라보다가)어무님이 늪에 가시나봐유. 어두운디유.
[동이] 지수씨가 바우 데리구 가보세요.
[길례네] 야.
길례네가 앞서고 바우가 뒤따라 밖으로 나간다. 잠시 침묵이 흐른다.
[동오] 젠네할아버지, 차에 가서 일꾼들을 불러주세요.(동이에게)이왕
차를 가져왔으니 연자매는 못 빼가도 자질구레한 것들이나 가져가겠어요.
어차피 운임하고 품싻은 줘야해요.
[페이지] 035
(젠녜할배에게)어서요!
젠네할배가 마지못해 일어서서 머뭇거린다.
[동오] 허락하신 거에요. 어머니는 늘 저렇게 허락하셨어요.
젠녜할배가 동이의 눈치를 살피며 여전히 머뭇거린다.
[동오] 좋아요. 내가 불러다 싣지요.(성큼성큼 걸어나간다.)
[동이] 아직 아녀.
[동오] (멎고 돌아서서) 어머니가 언제는 시원스레 내주신 적이 있어요?
동오가 휑 걸어나간다.
[동이] 동오야,잠간.(동오가 멎는다.)좀더 생각해보자. 니가 살림날 때
어머닌 논밭 팔아서 니 장사 밑천까지 대주셨어. 넌 우렁말에 살 사람이
아니라면서. 동삼이 허구 내가 반대를 했는디두 니 몫에다가 지수씨 몫허구
바우몫꺼정 보태서 널 줬어. 헌디,이번은 달라. 어머님이 꼭 당신의 손때가
묻었다구해서 그러시는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젠녜할배] (앞으로 서서히 나오며)내가 상관헐 일은
아니지만---도리깨,개상,맷돌,도구통,디딜방아,연자매,물래방아가 워치키
헤서 맹그러지구 어무니가 왜 그걸 지금꺼정 간수헤
[페이지] 036
왔는지 알어야 헐 것이구먼.(사이,동이는 관심을 기울이고,동오는
외면한다.)자네들이라구 허겄네. 그동안 뭐라구 부르기가 난처헹는디 인전
내두 갈 날이 멀지 않는 것 같구---자네들을 조카처럼 생각헤
왔은께---.자네들 어무니가 스무 살 때 시집을 왔는디 그때 자네들
선대들께선 바루 여기---이 자리에 움집같은 초가를 짓구 그 옆으루다가
숫간을 내서 영을 얹어 하늘만 가리구 나무도구통 두개,돌 도구통 한 개를
놓구 방아를 찌믄서 끼를 잇구 기셨어. 자네들 선대들이 대대루---절구
머슴이었는디 자네들 할아부지가 울안 머슴에서 울밖 머슴으루 벗어나믄서
생땅을 도지루 얻어갖구 도구통 방앗간을 시작허신 것여. 자네들 할아버지가
청헤서 그렇게 된 게 아니구 주인이 서사를 시켜서 따져보니께 그렇게 허는
게 득이 있는디다가 자네들 할아부지두 생각헤보니께 심은 더 들어두 울안
도구질보담 울밖 도구질을 허믄 오금을 필 수 있다는 생각으루 그렇게 헌
것여. 주인이 자작허는 곡식은 베가 됐든 겉보리가 됐든 밀이나 고치나 깨기
됐든 싻웁이 쪄주구,소작으루 준 곡식허구 근방 말에서 오는 곡식은 싻을
받구 쪄주는 건디 자네들 증조부,증조모,조부,조모,그리구 자네들 아부지가
매통 한 개 허구 도구통 시 개루다가 철두 가리지 않구 밤낯두 모르믄서
매통질을 허구 도구질을 허구 키질을 허셨어. (사이)그나마 숭년이 들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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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구질거리가 벨루 웃으니께 타작꺼정 맡어야 허는디 배는 이 개상에다
태질허구 밀허구 보리는 도리깨질을 헤갖구 말려서 도구질을 헹어. 그때
자네들 어무니가 시집을 왔는디---중조부님허구 증조모님이 아직꺼정 심을
쓰시는 때라 도구통을 물려주지 않구 어무니 몫으루 도구통을
맹그러주셨는디 그게 바루 저거여.
동이와 동오가 우물가에 있는 절구돌을 바라본다. 무대가 서서히 어둬지기
시작하면서
[젠녜할배] 힘든 베 도구질, 까락 땜에 까다로운 보리 도구질, 가루 땜에
조심스런 밀 도구질, 매워서 눈물 흘리는 고치 도구질---
무대는 완전히 어둬지고 젠녜할배의 얼굴에만 빛이 떨어지면서 회상에
잠기는데 여러 명이 찧는 절구소리가 배음으로 깔리면서 서툴고 한이 담긴
방아타령이 들려온다.
[노래]
[어기야 에헤로 방아로다
어기야 에헤로 방아로다
지조창생한 연후에
우렁말이 여기로다
우리고장 청풍명월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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쩌두쩌두 방아로다
끝두웃는 방아로다]
무대가 확 밝아지면서 젠녜할배가 현실로 돌아온다.
[젠녜할배] 그러다가 주인헌티 디딜방아허구 연자방아를 헤두 괜찮다는
허락을 받았는디 연자방아는 소가 있든지 노새가 있어야 허는디 그게
웁으니께 안되구 디딜방아를 맹그러서 그걸루 방아를 쪘어. (사이)해를 걸러
자네들 증조모님허구 종조부님이 쩌두 쩌두 끝웃는 도굿대를 붙들고 세상을
떠나셨어. 그때 어무니는 맏이 동일이를 배갖구 산기가 있는 날 저녁 때꺼정
일을 허구 자정에 동일일 해산했어. 자네들 조부님은 그 어려운 중에두 대를
잇게 됫다믄서 워디서 노새 한 마리를 싻으루 빌리기루 헹다믄서 산에서
바우를 굴려다가 징으로 저 연자매를 쪼기 시작허셨지. 집채만헌 바우를 저
오봉산 가운데 봉서 예꺼정 내려온 것여. 하루 이틀 한 달 두 달이 아니구
동일일 배믄서 굴리기 시작해서 열 달만에 내려와 갖구 시 달동안 징으루
쪼서서 아래웃돌 맹글구 대를 깎은 것여.
이때부터 무대가 다시 서서히 어둬진다.
[젠네할배] 아랫돌 웃돌 맞추구 노새를 끌어다가 방아등대를 매구서
식구들이 모두 매달려서 밀어대니께 저 큰 방앗돌이 돌아가드구먼. 됫박으로
찧는 도구질허구 말루 찧는 디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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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아허군 사뭇 다르게 가마니루 쏟아넣구---
무대가 완전히 어둬지고 젠녜할배에게만 빛이 떨어지면 회상으로 바뀌어
육중한 연자매 돌아가는 소리와 노새소리,사람들의 힘주는 소리가 배음으로
깔리면서 방아타령이 서툴고 한스럽게 들려온다.
[노래]
[어기야 에헤로 방아로다
어기야 에헤로 방아로다
이방아가 뭔 방안가
암돌숫돌 돌아가는 방알세
우리고장 청풍명월인데
쩌두쩌두 방아로다
끝두웃는 방아로다]
무대가 확 밝아직면 젠녜할배가 현실로 돌아온다.
[젠네할배] (사이,힘에 겨운듯 쉬었다가)헌디,동이 자네를 갖자 연자매를
한 벌 더 맹글겄다구 조부님허구 아부지가 바우를 또 내려오는디--- 쬐금
수월허게 헐 속심으루다가 노새를 산으루 끌구 갔는디 노새가 그만 바우에
깔려 죽어뿌렸어. (힘에 겹고 한에 겨운듯) 그 노새 값을 물어줘야
허는디다가 방앗돌을 굴릴려믄 다른 노새가 있어야 허니게 또 빚을 졌는디
아무리 뻬빠지게 몸뚱어리를 움직여두 변리 감당두 안 되니께 홧병꺼정
났어.(쉬었다가)마침 그때 일본서 광부를 쓰는디 품싻두 좋구 먹새두 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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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준다구 헤서 자네들 아부지가 식구들 몰래 자원헹는디 젊은디다가 원체
몸집이 우람헌께 그답 데려갔지--- 그게 동이 자넬 난 해여. 내허구
동갑내기니께 스물 일곱 살였어. 내두 지원헹는디 신체검사서
떨어지구---(고통스러워 더 말을 잇지 못하고 주저앉는다.)
동이가 걱정스러워 다가가고, 동오는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려버린다.
[동이] 젠네할아버지,괜찮으세요?
[젠네할배] ---
[동이] 들마루에 누우세요. 자,부축해드릴께---
젠네할배가 동이의 부축을 받아 가까스로 들마루에 걸터앉는다.
[동이] 누우세요. 편히 누우면 나아질 거에요.
[젠녜할배] ---.(고개를 젓는다.)
[동이] 동오야,물 좀 떠다오.
동오가 우물에서 바가지에 물을 떠온다. 동이가 젠녜할배에게 물을 먹이고
얼굴에 물을 적셔준다.
[동이] 눈이 어두우세요?
[젠녜할배] (고개를 젓는다.)
[동이] 지가 보이세요?
[페이지] 041
[젠녜할배] (고개를 끄덕인다.)
[동이] 좀 누우세요. 누워있으면 바로 나아질 거에요.
[젠녜할배] 날 집으루 보내주믄 좋겠구먼
[동이] 지금은 안돼요. 쉬었다가 나아지믄 가세요.
[젠녜할배] 바우가 있으믄 갈 수 있겄구먼---.
[동오] 외딴집에 여자가 있다믄서요.
[젠녜할배] 엊저녁 해걸음에 떠났어---.
[동오] 그 여자가 누군지 젠녜할아부지는 알죠?
[젠녜할배] ---.
[동이] 아시믄 말해 주세요. 떠났으니께 상관없잖아요. 이상한 소문이
돌아서 그래요.
[젠녜할배] 나두 몰라. 그저 떠돌아댕기는 여승이라구 허드구먼.
[동오] 어머니가 좀 맡아달라구 부탁허셨다믄서요?
[젠녜할배] (고개를 끄덕인다.)
[동오] 그럼 누군지 알게 아니에요?
[젠녜할배] 떠났어. 떠난 사람인디 누구믄 뭐허겄어---.
[동이] (사이,생각해보고) 그럼 하시든 얘길 마저 해주세요.
[젠녜할배] 그댐부텀은 내두 잘---(통증으로 고통하며)---자네들 아부지가
구주루 간 이듬해에 내두 강원도루 떠났으니께---. 날 집으루 데려다
주게---집에 약이 있으니께---.
젠녜할배가 거의 느러진다. 동이가 젠녜할배를 힘겹게 들처업고
[페이지] 042
앞길로 나간다. 동오가 고개만 돌려 그 뒤를 바라본다. 무대가 서서히
어둬진다.
[장] 2장
같은 밤. 동이와 동오가 소주잔을 놓고 들마루에 마주 앉아 있고,바우는
마당섶에 멍석을 펴놓고 앉아 쪽제비를 잡는 틀을 만들고 있다. 바우할멈은
안채 마루에 앉아 있다가 길례네가 떠온 냉수를 받아 마신다.
[바우할멈] 젠네할배가 집에 가서꺼정두 심을 못 찾든?
[동이] 정신은 또렷해정는디 몸은 지대루 못 가누드군요. 등잔불이래두
켜놓구 올려니께 막무가내루 못허게 허는디다가 껌껌해서 뭐가 어디 있는지
알 수가 웃어서 그냥 왔어요.
[바우할멈] 육신은 허물어지고 정신만 또렸허믄 벨루 안 좋은
건디---(생각에 잠겼다가)바우야.
[바우] 야.
[바우할멈] 뭣을 허냐?
[바우] 쪽제비틀 맹그러유.
[바우할멈] 손싸구 여물기는 젠녜할아부지를 당헐 사람 웃다. 저 방앗간
세우구 맥질헌 것두 젠녜할아부지 아니냐. 연자매루 주춧돌 허자니께 말
사람들은 죄 웃었는디 젠녜할아부지만
[페이지] 043
말웃이 들어줬어. 외딴말 가서 젠녜할아부지허구 맹글거라.
[바우] 야?(좋아서)야! (그것들을 모아든다.)
[바우할멈] 등잔불두 켜구.
[바우] 야.
[바우할멈] 뭔일이 있으믄 싸게 알리그라.
[바우] 야.(뛰어 나간다.)
[동이] 어둔데 괜잖을까요?
[바우할멈] 바우는 눈을 감구두 갈 게다.
이때,한길 쪽에서 왁자지껄하게 떠드는 소리가 들려온다. 모두의 시선이
그리로 간다.
[길례네] 주막에서 말 사람들허구 읍내서 온 사람들허구 시비가 난
갑네유.
동오가 퍼뜩해서 일어선다.
[마우할멈] 아까 옴서 보니께 술들이 췌갖구 눈쌈들을 허는 것 같드라.
동오가 밖으로 나간다.
[길례네] 엄니가 나가보세유. 패루다가 싸우믄 워치키 헤유.
[바우할멈] 패쌈이사 허겄냐. 말 사람들이래야 젊은 사람은 웃는디다가
죙일 일에 시달렸은께 고단해서 바루 잘 틴디.
[페이지] 044
괜히 텃세 쬐금헐라구 허는 거구,읍내 사람들은 죙일 심심했을 티니께
심심풀이 쬐끔 허구 싶어서 그러다가 말티지.
[동이] 어머니,말씀해 주세요, 저희두 조부님 그리구 부모님이 살아오신
걸 대충은 알고 있어야지요.
[바우할멈 (팽팽하게 긴장하며)니가 봐서 아는 그대루여.
[동이] 지가 태어나기 전허구,지가 태어났드래두 어렸을 때 일이야
망연허지 또렷헌 건 아니 잖아요. 젠녜할아버지가 어머니가 시집오실 때부텀
아버지가 구주탄광으로 가신디꺼정 얘기해 줬어요. 그 다음 얘기는 잘
모른다면서 안해줬어요.
[바우할멈] (더욱 긴장해서) 그래,뭔 얘기를 하든?내가 시집오기 전
얘기두 허든?
[동이] 아니예요.
[바우할멈] 자게 얘기두 허든?
[동이] 아니에요. 왜 그러세요?
[바우할멈] 아,아니다.
이때 밖에서 자동차 불빛과 함께 시동거는 소리가 들리디니 자동차가
출발해서 멀어진다. 모두 그쪽에 시선을 보내고 있는데 동오가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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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오] 보냈어요.
[동이] 잘했다. 얘기나 더 하다가 우리 집에 가서 자구 내일 아침에
가두룩 해라.
동이가 술병을 든다. 동오가 잔을 든다. 잔에 따라준다.
[동오] (마신다.)늦게래두 가야죠. 박군보구 오토바이를 타구 들어오라구
했어요.
[동이] 술먹구 오토바이는 위험허다.
[동오] 상관없어요. (마신다.)뒤에 타두되구.
[동이] 그래 ,뒤에 타거라.
[동오] (길례녜에게)생고추래두 좀더 내오세요.
[길례네] 야.
[바우할멈] 겉저리두 았잖냐.
[길례네] 야. 있어유.추어탕 냉겨둔 것두 있구 생외허구 마늘두 있구먼유.
길례네가 서둘러 그릇을 찾아들고 샛길로 내려간다.
[동이] 저쪽 구렁에다가 움팠어요?
[바우할멈] 뒤곁 움은 지난해부텀. 지혈이 죽드라. 겨울엔 얼구 여름엔
뜨겁구. 그러니께 에미 지가 봄부텀 부즈런 떨드니만 저 아래다가 움을
맹그렀는디 쬐금 멀긴 헤두 지혈이 괜찮드라.
[페이지] 046
길례네가 샛길에서 나와 가져온 것들을 들마루에 놓는다.
[길례네] 추어탕은 디워야 헐지 모르겄네유?
[바우할멈] 지름을 죄 걷어내구 냉추어탕으루 맹근거니께 소주허구 먹기는
찬게 낫을 께다.
[동이] (숟갈을 들며) 웬 추어탕이 있었어요?
[바우할멈] 에미가 미꾸라지를 잡어왔어.
[길례네] 읍내 시아즈비 오신다구 헤서 어머님이 따루 맹그러논 건디 낮엔
소란스러워서 드릴 새가 웃었구먼유.
동오와 동이가 술잔을 주고 받는다.
[바우할멈] 젠녜할배를 부르지 않는 건디.두째 니가 못오믄 당해낼 심이
웃을까봐 불렀는디 잘못헹나부다---.
[동이] 너무 걱정마세요.괜찮을 거예요.
[바우할멈] 나이들어 기력이 웃을 땐 안 그런 것여. 느이들은 아적 젊은 심이
있으니께 모를 티지만---.
[동오] 어머니,남은 애기나 좀 해주세요. 오토바이 오면 난 가야해요.
[바우할멈] 그 심든 얘길 허느라구--- 젠녜할배가 더 곯았을게여---.
[페이지] 047
[동이] 힘들어는 허셨어요.허지만 그 얘긴 즈이가 알아둬야 허는 얘기에요.
(사이, 계속 바우할멈을 바라보다가,말을 꺼내도록) 아버지가 스물일곱에
구주탄광에 가셨어요.
모두 바우할멈의 입을 주시한다.
[바우할멈] (사이,결심한 듯,그러나 잔잔하게)첨 꾈 적부덤은 못헷지만
이태동안에 빚 갚구,이 터를 사서 도지를 면하믄서 울밖머슴두 벗구 봉답 두
뙈기 장만했다. 낙반사고루 죽은 사람,벵신 된 사람두 있다는디 느이 아부지는
약조헌 이태에서 반년을 더허구 돌아오셨다. 농삿군은 쬐끔만 도와줘두 심이
피는 것여.
[동이] 해방되믄서 돌아오신 건가요?
[바우할멈] 아녀. 니가 시 살 때니께 해방보담 훨씬 앞서서 오신거여. 느이
아부지는 노새가 죽는 바람에. 내버려뒀든 바우를 기여이 굴려다가 연자매 한
쌍을 더 맹글구,내는 동희 지집애를 낳구 쬐금씩 심평이 펴가는디 일본 헨벵허구
순사가 와서 노새를 징발해 가구 순사는 느이 아부지를 끌어가는디---눈앞이
깜깜헌게 뵈는게 웃드라.(사이)난 니번째루 애길 뱃는디 느이 할아부지 할무니
뫼시구 디딜방알 밟구,절구질을 허믄서 지내다가 해방을 맞으믄서 동삼일 났어.
그러니께 길례 애비 동삼이가 해방둥이여. 생일두 바루구. 닷새 지났잖냐.
(사이)동삼이가 백일되는 늦갈기에 왜병으로 끌려 갔든 느이
[페이지] 048
아부지가 돌아오셨는디 남양땅꺼정 댕겨왔다드라. 그댐부텀 해마다 숭년이
들구,워쩐지 인심두 더 사나워지구,방앗거리두 벨반 웃구,노새두 귀해지구 해서
절구질이나 디딜방아루다가 근근히 목구멍에 거미줄이나 벳겨내거나 굶거나
허믄서 지냈어. 그레두 느이 아부지는 오봉산 계곡 속줄기를 찾아 갖구
물래방아를 맹그렀다.
이 때부터 무대가 서서히 어둬지기 시작한다.
[바우할멈] (계속해서)물줄기를 돌린 것여. 첨으루 물 심을 빈거여. 어찌나
수월헌지 그렇게 편헐 수가 웃드라. 편허구 말구.
무대가 완전히 어둬지고 바우할멈에게만 빛이 떨어지면 회상에 잠기는데 썩
흐뭇한 얼굴이 된다.
[바우할멈] 물길루 쏟아져 들어온 물을 금동이 가득씩 물었다가 뱉어내믄서 그
엄청난 방아공이를 번쩍 처들었다가 확 속으루 심차게 내던지믄 베껍질
보리껍질이 후르륵 벳겨지구 밀은 분가루처럼 하얀가루를 뿜어 주믄서 터지는디
소리두 덜커덩덜컹 여간 시원스런게 아녀---
물소리,공이소리,사람들 웅성되는 소리가 배음으로 깔리면서 방아타령이
서툴지만 빠른 가락으로 들려온다.
[노래] [어유하 방아여/어유하 방아여/떨그렁 떵떵/잘도 찧는다/어유하
방아여/안팍머슴 면한 후에/내 방아가 이거로다.
[페이지] 049
무대가 확 밝아진다.
[바우할멈] (회상에서 깨어난다. 썩 조용하게)그 해는 찔레허구 아까시아
새순이 돋을 때 잔비가 오시구,찔레허구 아카시아 꽃봉오리가 일 때 한
차례,활짝 필 때 또 한 차례 단비가 오셔서 어거리 풍년이 든다구 좋아들
헹는디--- 웬일루다가 오봉산 물줄기가 말라버리구 융이오가 터졌어. 난리라구는
헤두 대포소리가 드문드문 멀게 들리구 비행기가 먼 발치루 떠나기만 헹지
원체가 두메라서 우리 우렁말은 아무성찮았어. 난리가 빗겨가는가 헹는디 하루는
늬들 아부지가 저 건너 외딴말에 다녀온다구 늪쪽으루 갔는디 돌아오시질 않는
것여. 하루,이틀,사흘---늬들 아부지는 안 오구 소문만 무성허드라---
[동이] 소문이라니요?
[바우할멈] 느이 아부지가 외딴말 갔다 돌아오는디 선발대루 지나가든
인민군이 붙들어 갔다구두 허구,후퇴허든 국군헌티 끌려 갔다구두 허구, 늪에
숨어 들었다가 수렁에 빠졌다구두 허구,왜정 때 하두 혼줄이 나서 산으루
숨었다구두 허구--- 그런디 정작으루 소문을 캐볼라믄 인민군헌티 붙잽혀 가는걸
보기는 커녕 인민군을 본 사람두 웃구,그렇다구 후퇴허는 국군을 본 사람두
웃구,늪을 뒤져두 빠져든 흔적이 웃구,산을 죄 헤메두 숨은 자리가 웃었다. 그때
내는 동오 널 배갖구 만삭인디 초여름에 웃어진 사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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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여름에 너를 났는디두 돌아오지 않는디---울매나 애를 끓였는지 말두 못혀.
(사이)느이 아부지---미련허구 고집스럽긴헤두 심술이라군 거찝뿌렁맨큼두 웃구
생김새는 우람헤두 숫접은디가 많지 주적대지 않는 사람인디---(사이)죽을
고비를 몇번이나 넝궜으니께 이번두 훌쩍 나타나시거지---기다리믄서 어린
느이들 여섯을 데리구 칠순이 되신 느이들 할아버지 할머니허구 방앗일을 헹는디
물줄기는 여전히 끊긴 대루구 노새허구 소는 웃으니께 물래방아,연자방아는
놀려두구 절구질허구 디딜방아질을 헹다.
[동이] 즈이가 육남매믄 고만고만 했겠구먼유.
[바우할멈] 동일이가 열 네 살이구,동이 니가 열 시 살,동희 지집애가 열
살,(길례에게)니 냄편 동삼이가 여섯 살,동막이가 니 살,동오 니가 한
살이었은께---.
[동오] (혼자소리로,그러나 낮게)옛날 얘기구먼.
[바우할멈] 쌈이 끝났다구 허는 그해 봄,높구 험허기루 백두산이라든
보릿고개에 늬들 여섯이서 한꺼번에 홍역을 치뤘다. 그땐 홍역이 무서운
돌림병이었지. 동삼이가 먼점 시작헹는디 위 아래루 죄 걸리드라. 약이래야
방문을 처닫구 땀이나 내주구,가재 잡아다가 짓이겨서 물멕이는 것인디 동희
지집애허구 동막이가 가재 이긴 물에 체서 죽구 느이 닛은 괜신히 건졌다.
그리구 쌈이 끝났는디 느이 할아부지허구 할무니가 보름을 앞뒤루 돌아가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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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루 치믄 모진 목숨 장수허신 거지만 난 시상이 무너지는 것 같이
무섭드라.(사이)인전 기력이 웃는디다가 어지럼증꺼정 생겨 허망해 있는디
동일이 허구,동이 니가 일찍 철이 들어갖구 애를 써 주더라. 벳단 태질두
허구,밀보리 도리깨질두 허구,들에 나가 김두 매구---동일이가 맏이노릇을
허니께 동이 니두 지차노릇을 헤낸것여. 동일인 느이 아부질 닮아서 생김새나
허는 짓거리는 멧부엉이 새깽이 같구 부룩소 같지만 시먹거나 암상궂지 않구
부즈런헤어. 소핵교두 못 보냈지만 시르죽지두 않구.원체가 어려운 때구 핵교두
지금 같잖아서 먼디 드문 드문 있구 안 다녀두 구렁논뙈기 붙이구 절구질허는
디는 벨반 아숩지 않었으니께 그렝는디---
이때,밖이 개짓는 소리로 소란스러워 지면서 바우가 헐레벌떡 뛰어 들어온다.
모두 바우를 바라본다.
[바우] 큰일 났어유. 젠네할아부지가 죽,죽---(숨을 몰아쉬는데다가 아주
심하게 더듬어 알아들을 수가 없다.)
모두 퍼뜩해서 일어선다.
[바우할멈] 위독허냐?
[바우] 아 아---(고개를 마구 젓고,손짓을 헤대다가)죽 죽---(결국 손으로
목숨이 끊어졌다는 시늉을 한다.)
[모두] 뭣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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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시선이 바우에게서 바우할멈에게 옮겨진다. 바우할멈이 어지러운 것을
가까스로 이겨내며 마루로 가서 기둥에 기대 앉는다.
[바우] (비로서 통곡한다.)헉---어---흑---.
사이. 바우의 통곡이 서서히 낮아진다.
[바우할멈] 에미야.
[길례네] 야
[바우할멈] 전지허구 호롱을 죄 내오그라.
[길례네] 야.(방으로 들어간다.)
[바우할멈] 웃방 궤짝에 보믄 삼베허구 광목이 있어. 그것두 죄내오그라.
[길례네] 야? 그건 아부님 몫으루다가 매련해 논 건디유?
[바우할멈] 서른 해두 넘게 안 온 느이 아부지가 오것냐. 오셔두 돌아가셨다는
기별이나 바람결에 오겄지.
[길례네] 그려두유. 어무니가 입때꺼정 잘 간수해 오셨잖어유.
[바우할멈] 어여.
[길례네] 야.(들어간다.)
[바우할멈] (동이와 동오에게)늬들두 같이 갈래?
동오는 대답을 않고,
[동이] 예,가봐야지유.
[바우할멈] 바우 니는 집서 있그라.
[바우] (고개를 마구 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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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우할멈] (생각해보고)그럼 같이 가자.
길례네가 보따리,전등,호롱을 들고 나와서 바우할멈에게 건네자 동이와 바우가
다가가서 한 가지씩 받는다.
[바우할멈] 에미 넌 이우지 어른들헌티 알리구 여자들 두엇 불러다 밤참거릴
준비허그라.
[길례네] 우리 집서유?
[바우할멈] 그래.
[길례네] (할 수 없이)야---.
[바우할멈] 먼점 명수아부지헌티 가서 손발걷을 사람 두엇 데리구 싸게
건너오라구 일러야겄다.
[길례네] 야. 헌디 품싻 얘길 헐 틴디유.
[바우할멈] (사이)줘야지. 시상이 그렇게 변헹는디 안 주구 되겄냐. 내가
준다구 헤라.
[길례네] 야.
[바우할멈] 주막에 얘기해서 막걸리루 두어 통 보내라구 허구.
[길례네] 야.
[바우할멈] 가자.
[동오] 오토바이 오면 타구 가세요.
[바우할멈] 육신이 굳기 전에 가야허니께 시간이 웃어.
[동오] 멀구 길두 나쁜데 이 깜깜한 밤중에 어떻게 걸어 가실려구 그러세요.
[바우할멈] 걸어온 질은 더 멀구 험악허구 깜깜헹어. 갈 질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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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티구---(하면서 앞장서서 나간다.)
모두 뒤를 따른다. 동오도 뒤따라 나간다. 길례네가 엉거주춤하게 서서
바라본다. 무대가 서서히 어둬진다.
[막] 3막
[장] 1장
[시간] 사흘 후의 한낮이다. 길례네가 우물에서 빨래를 하고 있다. 매미가
울어대고,간혹 소나 염소 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바우할멈이 대바구니에
옥수수와 수수목을 가득 담아 들고 들어온다. 길례네가 쪼르륵 달려가서 받아
마루로 가져간다.
[바우할멈] 콩밭에 부룩박은 참깨는 낼모레쯤 베야겠드라.
[길례네] (우물로 가며)야. 배추씨두 뿌려야 겄지유?
[바우할멈] 흙부텀 골려야지. 그나저나 니가 애썼다.
[길례네] 지야 허드렛일이나 헌 걸유.
[바우할멈] (마루로 가서 옥수수를 까며)수다댁허구 될뻔댁은 갔냐?
[길례네] 개울에 갔지유. 지름 묻은 그릇허구 큰 빨래를 갖구유.(빨래에
방망이질을 한다.)
[바우할멈] 아녀. 급헌께 빨래는 허드래두 방맹이 소린 내지 않으믄 쓰겄다.
[길례네] 때가 빠지지 않는디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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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우할멈] 쬐금 덜 지믄 워쩌컸냐.
[길례네] 야. (방망이를 놓는다.)빨랫줄은 매두 괠찮겄지유?
[바우할멈] ---.(생각에 잠긴다.)
[길례네] 사흘이 지냈는디 인전 매지유?
[바우할멈] 나뭇가리에 널두룩 혀. 죽은 사람이 뭘 알 냐만 인사루 그러는
거니께 하루이틀 더 못 참겄냐.
[길례네] 즈이허구 집안두 아닌디---.
[바우할멈] 이우지루 보믄 이우지구 집안으루 생각허믄 집안이여.
(사이,늪쪽을 보면서)워치기 됐든 세상허구 인연을 맺었다가 갔는디 찬물 한
그릇 떠놀 사람이 웃으니께 우리래두 맴을 써주는 것여.
길례네가 의아해서 바라보다가 빨래를 들고 나뭇가리로 간다. 이때,바우가
땔나무를 한짐 가득 지고 끙끙거리면서 뒷 길로 들어와 나뭇가리 앞에 지게를
받혀 놓는다.
[길례네] 아유,,저 땀 좀 봐아. 더위나 수그러들믄 들이지 않구.
[바우] ---.(시무룩하다.)
[바우할멈] 길섶에 냈다가 갈일이나 끝내놓구 소달구지루 두어 고패 실어
나르믄 될 것인디.
[바우] 들일 웃을 때 들여야지유
[길례네] 바싹 마르믄 한결 개벼워질 티니께 허는 말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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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우가 나뭇단에서 가지를 빼내 무릎에 처서 뚝 부러뜨린다.
[바우할멈] 삭정이나 진배웃다는 말이구먼. 허긴 작년 늦갈기에 젠녜할배허구
가지치기 헌 것이니께 찬바람 된 서리에 진기를 다 뺏겼을 티니께.
[길례네] 지금부텀 쟁여서 잠을 재우믄 결기에 매때기가 좋지유. 헌디,바우가
기운이 통 웃어뵈네유,엄니.
[바우할멈] 늘 붙어댕기다가 혼자니께 지 맴두 안 좋겄지---.
[바우] ---.(지게를 털고 지게끈을 돌려 묶는다.)
[길례네] 그래서만은 아닌가베유.
[바우할멈] 안 존 일이래두 있냐?
[바우] 누가 젠녜할아무지 뫼를 파놨어유.
바우할멈은 외면하고,길례네가 깜짝 놀란다.
[길례네] 뭣여? 아니 누가? 사람이? 여수가?
[바우] 모르지유. 한참 손봤구먼유.
[길례네] 여수짓일 티지. 숲진 외딴디인디다가 팔월 더위루 살이 썩었으니께
냄새를 맡구 여수들이 몰려왔겄지.
[바우할멈] (침묵했다가)사람은 정이 암만 짚어두 헤져야 허는 벱여. 정을
나눈 것처름 빨리 떼야 혀. 바우 너 자꾸 젠녜할배 뫼에 가믄 한번 크게
혼찌검을 당혀. 정신 똑바루 차례야지 잘못허다가 까물어쳐. 니가 아낙네두
아니구 사내대장부니께 혼령이 정을 떼주기 전에 니가 부텀 정을 떼야 혀. 알
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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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우] 야.
이때, 수다댁과 될뻔댁이 그릇과 빨래를 들고 샛길에서 올라온다.
[수다댁] (올라오면서)씻구 돌아서믄 땀이니 뺄개벗구 살 수두 웃구
원---(하다가)들밭엘 발써 댕겨오셌어유. 즈이들두 죄 헹구먼유. 채알은 빨아서
개울가에 널었이유. 땡벼에다 돌멩이꺼정 후끈후끈허게 달았으니께 후딱 마를
티지유.
[바우할멈] 애들 썼어.
[수다댁] 먹구 살라구 허는 일인디유.
[될뻔댁] (툭 친다.)이 예펜네가---
[바우할멈] 괜찮어. 품앗이루 헤두 되구, 품싻을 처달래믄 처서 줄티니께.
[수대댁] 아녀유---될뻔댁이 궁허다구 헤서---방학 끝나면 애들 핵비 줘야
헌다믄서---그레서 그런 거구먼유.
[될뻔댁] (손을 움직이며)애만타구 들멕이지 말어. 하루 장사허믄 울매가
남는디 고건 품싻으루 받어야 허겄다구 열번은 지껄인 게 누군디 입에두 물지
않은 애들 헥비는 들멕이구 그려.
[수다댁] 그려두 될뻔댁은 사흘을 일헹잖나며. 내야 박숙이네 산구완 땜에
지우 오늘 하루지만 말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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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될뻔댁] (여전히 손을 움직이며)내는 품삯은 그만두구 품앗이두 안 받을티여.
바쁠 때 젠녜할아부지 손 안 빌린 사람 있댜? 젠녜할아부지는 품앗이를 죄
해주구 갔어. 바우할머니 신세진 것두 그렇구. 요번에 염허구,묏자리 파구,뗏장
파오믄서 품싻을 받아간 사람들을 내가 아는디 그러믄 못 쓰는 것여.
[수다댁] 예폐네가 사람 얼굴 붉게 허네.
[바우할멈] 그만들 둬. 품앗이루 말허믄 내가 죄 갚어줘두 모질라니께.(모두
시선을 준다.)내는 아적 눈물 한 방울 안 흘렸는디---(수건으로 코를 푼다.)
[수다댁] (생각난듯)담배쌈지서 나온 그림이 유서라구 허대유?
[바우할멈] 유서?
[수다댁] 유언장 말여유. 젠녜할아부지가 죽기 전에 유언장을 써 논 것인디
글을 모르니께 그림으루다가 그려놨다구 그래쌓든디유.
[길례네] 지두 들었어유. 사람들이 죄 그러대유.
[바우] 그렇대유.
[바우할멈] (안 되겠다 싶어) 쓸디웃는 소리여. 혈육은 그만두구 일가부치
한점 웃이 홀홀단신으루다가 산 사람이 유언은 뉘헌티 허구,외딴말에서 외딴집서
빈 손으루 살아왔는디 남길 게 뭐가 있다구 유언장을 써? 괜히들 쓸디웃는
소리들 허구 있는 것여. 보구 못헌 소리는 지꺼리지들 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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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댁] 보진 못헹지만 본 사람들헌티 직접 들었는 걸유. 신문지 반쪽 네
귀퉁이다가 숯댕이루 그렝는디 한쪽 윗귀퉁이는 논인지 밭인지를 그리구,아래는
돈을 그리구,이쪽 위다는 젖이 큰 여자를 그리구,아래는 핵교를 그려 놓구 서루
화살루 표를 했대유.
[길례네] 신문지가 아니구 공책 뚜껑에다 그렸는디 닳구 닳아서 신문지
같다대유. 논밭허구 돈은 맞는디 핵교가 아니구 큰 벵원이라구 허대유.
[수다댁] 그걸 풀어 보니깨 논허구 밭을 돈허구 바꿔서 젖이 큰 여자를 핵교루
보내라는 것이래유.
[길례네] 벵원으루 보내라는 게 맞는다는디유.
[될뻔댁] (빨래를 널고 그릇을 마른 수건으로 닦기 식작하면서) 벵원이
맞겠구먼. 젖이 크믄 어른인디 어른을 핵교루 보내라믄 이상허니께 벵원이 맞는
거거지
[길례네] 그렇다니께유.
[수다댁] 그런디 논밭이 워떤 건지두 모르구,젖 큰 여자가 누군지두
모른대잖어유.
[바우] 젖달린 여자래유.
[수다댁] 여자믄 다 젖이 달렸지 젖 안 달린 여자두 있댜아?
[바우] 아니유. 이름이 젖네래유.
[바우할멈] (갑자기,떨리는 음성으로)뭣여? 젖네라구?
[바우] 야? 겨울기부텀 젠네할아부지가 젖이 큰 여자를 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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믄서 이름이 젖네라구 말헹어유.
[바우할멈] (뭔가 두려워 한다. 그러나,단호하게)아녀! 그럴리가 웃어!
[길례네] 어머님,왜 그러세유?
[될뻔댁] 바우할무니, 뭔 일이래유?
[수다댁] 그 여자를 아세유?
[바우할멈] (휘청한다. 사이,혼자소리로) 아녀---그럴리가 웃어---(자신을
가다듬는다. 바우에게)괜한 소리여. 그런 소리 다신 입밖에 내지 말어!
[바우] (얼떨떨해서)야!
[바우할멈] 에미 너두!
[길례네] 야.
[바우할멈] 수다댁은 워쩌겄어?
[수다댁] (입을 꼭 다물어 보인다. 그러나,곧이어)그런디...핵교 선상님으루
기시는 바우 작은 아부지가 그 유언장 내용이 뭔지 알아내기루 했다는디유.
[바우할멈] 우리 동이가?
[수다댁] 야. 근방선 그 바우 작은 아부지가 젤루다 훌륭허구 핵교 선상님들
중서두 그림을 젤루 잘 그리시니께 그리루 가져갔는디 그 양반이 하룻밤
생각허드니 이건 알어내야 헌다믄서 선득 대답하시드래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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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우할멈] 핵교 선상님이믄 애들 공부나 가르쳐야지 뭔 그런 일에 나선댜?
[수다댁] 아적 방학이 남었는디유. 다 생각이 있으신께 그러시거쥬.
[바우할멈] 생각은 무슨 생각!(하고는 퍼득 떠오르는 게 있는듯)
바우야.내허구 으뜸말 동이 숙부헌티 가자. (앞선다)
[바우] 야. (뒤 따른다.)
길례네는 걱정스레,될뻔댁은 무슨 일인가 싶게,수다댁은 호기심으로 바라본다.
바우할멈과 바우가 앞길로 완전히 나가자 수다댁이 기다렸다는 듯 길례네에게
다가가서 지껄여댄다.
[수다댁] 젠녜할아부지헌티 그게 웃다믄서?
[길례네] 뭐가 웃다구유?
[수다댁] 남정네헌티 꼭 있어야 허는 ---그거 말여.
[길례네] (알아채고)에그 아줌니두---.
[수다댁] 정말여. 손발 걷을 때 본께 감자알갱이는 두 개가 그대루 있는디
연뿌랭이는 싹둑 잘라지구 웃드랴.
[길례네] (약간 호기심을 갖고)그려유?(했다가)잘못 봤것쥬.
[수다댁] 그레서 염헐 때 자세히 보니께 밑둥아리께 쬐금만 남았드랴.
오이꼭지만큼 말여.
[길례네] 설마 그럴라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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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댁] 우리 영돈 아부지가 염을 헹잖나배.
[길례네] 장난으루 소문을 냈것지유.
[수다댁] 혼자만 본 게 아녀. 혼자만 봤으믄 잘못 보기두 허구 날궂이거니
맹글라구 장난질을 헹것지만 그날 염헌시 사람이 죄 봤다는 거여. 짧은 잠뱅이
한개만 걸치구 있었다는디 고걸 못 봤겄어?
[될번댁] 저 여자 말만으루는 못 믿지만 명수 아부지 얘길 들으니께 그렇다구
허대.
[길례네] (몹씨 의아스럽다)헌디---젠네할아부지가 오줌을 눌 때 여니
남자들처럼 서서 누든디유.
[수다댁] 흘리지 않구?
[길례네] 야. (모두 혼란스럽다.얼굴을 붉히며)그게 웅으믄 워치기 힘을
썼것이유. 힘이 거기서 나오는 것이라는디유.
[수다댁] 아녀---남정네들이 이리저리 수소문해서 알아 봤는디 어렸을 때 산에
나무허러 갔다가 오줌이 마려워서 까내리구 오줌을 누는디 곰이 나오니께 겁결에
그만 바지를 올리지 못허구 나무 위루 올라가 매달려 있는디 곰이 밑에서 물어
뜯었다구두 허구,소피가 아니구 쭈구리구 앉아서 뒤를 보는디 다람쥐가 알밤인줄
알구 싹뚝 물어갔다구두 허든디. 고게 왜 알밤겉게두 생겼잖나베.
[길례네] 그레두 다람쥐가 워치키 싹뚝 베가정어유. 곰이 물어간 게 맞는
말이겄구먼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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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될뻔댁] 그게 아니구 젠녜할아부지가 자게 손으루 숟가락질 허기 시작하믄서
부텀 머슴살이를 헹는디 고생이 지굿지굿 헌디다가 자게 평생 그 노릇을 면허지
못허는 견 말할 것두 웃구 자식을 나아두 그 노릇을 물려줘야 허는 팔자니께
그럴 바에는 차라리 자식을 낳지 말자는 결심으루다가 쇠여물 쓰는 작두에다가
그걸 끼워 넣구 싹뚝 잘라버렸다구 하드만.
[길례네] 에그,끔찍두 헤라, 쯔쯔.
그들이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두려움에 몸을 떤다. 무대가 서서히
어둬진다.
[장] 2장
이튿날 밤이다. 피로할대로 피로해진 바우할멈과 잠이 쏟아지는 것을 참느라고
줄하품을 해대는 될뻔댁이 안채 마루에 앉아 있다. 토방 아래에 피워논 모깃불도
불밥을 더 주지 않아 언간히 시들어 있다. 맹꽁이와 개고리 울음 소리가 멀리서
간간히 들린다. 깊은 밤이다.
[바우할멈] 바우가 샛길루다가 쑥 들어서는 것 같구먼.
[될뻔댁] (졸려서 꾸벅꾸벅 한다.)
[바우할멈] 아녀, 삽짝으루 들어서겄지
[될뻔댁] (겨우)야. 너무 상심허지 마세유. 바우는 꼭 돌아올 거구먼유. 말
사람들이 죄 나섰으니께 꼭 찾아서 데리구 올 거유.
[바우할멈] 워디루 간 것인지나 알어야 찾지. 즈이 할아부지 웃어진 때처럼
소문만 주저리루 있지 본 사람은 웃잖어.
[페이지] 064
웃길루 헤서 청나리,건덕골,개암리,곰골루다가 한웃이 들어갔다구두
허구,오봉산 다섯봉우리를 넘어갔다구두 허구,저 늪으루 갔다구두 허구, 워딘지
알어야 찾는디 지말끔 지꺼려 쌓기는 헤두 본 사람은 하나두 웃으니 워치키
찾어---.
[될뻔댁] 그려서 말 사람들이 시 패루 나눴어유. 한 패는 젠녜할아부지 뫼지루
헤서 오봉산으루 가구,한 패는 횃불 맹그러 들구 늪으루 가서 갈대밭허구 수렁을
뒤지구, 한 패는 바우 숙부 두분인디 오토바이를 타구 웃길루헤서
청나리,건덕골,개암리,곰골꺼정 가기루 허구 발써 떠났으니께 워디서든 찾을
거유.
[바우할멈] 늘 꿈자리가 어수선헹어. 늪새가 지 모양은 뵈주지 않구 늘
날아가기만 헤어. 그것두 매곡으루다가 말여---. 꿈에서래두 늪새 모양새가
똑똑허게 뵈야 바우할아부지가 헌걸찬 모양으루 돌아올건디 모양은 웃이
날아가기만 헌께 지실이 들구 궂은 일만 생겼어. 요즘두 밤마다 날아가는 늪새
그림자만 보였는디---그레서 길례에미가 인전 내 곁을 떠날 때가 되었나부다
해서 맴을 조리구 있는디 생각지두 못헌 바우가 떠나다니---웬 일인지
모르겄어---
[될뻘댁] 길례네는 바우할무니 졔을 떠나지 않것다구 헹어유.
[바우할멈] 맴이사 그렇겄지만---몸은 맴대루 안 되는 거니께---몰라---.
[될뻔댁] 그려두 길례네는 안 그러니께---안 그러니께---(너무 졸리워
헛소리를 반복하다가 기둥에 기대에 잠에 빠져든다)
[페이지] 065
바우할무니가 혼자서 윗길,샛길,앞길 쪽에 시선을 보내다가 일어서서 안방과
웃방문을 열어 보기도 한다. 멀리서 개짓는 소리가 들린다. 바우할멈이 되나와
먼 곳을 본다. 그러나,조용해지자 헛간의 거적문을 제쳤다가 닫는다. 될뻔댁이
코를 골다가 마루에서 토방으로 떨어진다. 그러나,잠이 취해 그대로 자는데
모기가 대드는지 손바닥으로 얼굴을 때린다. 바우할멈이 그 모양을 바라보다가
신을 벗겨 다리를 펴주고 사립짝쪽으로 간다. 먼 곳을 본다. 보는 그대로
연자매주춧돌 위로 올라가서 늪에 시선을 꽂고 움직일줄을 모른다. 안방에서
시계가 두 점을 친다. 그 소리에 될뻔댁이 퍼뜩 눈을 뜨다가 토방에서 자고 있는
것을 알고 벌떡 일어선다. 정신을 가다듬는듯 눈을 비비고 신을 신고 무릎으로
가어 안방문을 열어 시계를 본다.
[될뻔댁] (돌아나오며)발써 두시구먼---.(바우할멈에게 다가가며) 눈 좀
붙이세야지유. 소식 오믄 지가 깨워드릴께유.
[바우할멈] ---.(앞만 본다)
[될뻔댁] (하품을 해대며)야?
[바우할멈] ---. (앞만본다.)
[될뻔댁] 깜깜헌디 바라본다구 뭐가 보여유?(했다가 뭔가 이상하다 싶어
연자매주춧돌로 올라간다)횃불이 꽃밭 같내유! 별이 내려 앉은 것 같기두
허구유! (하다가)저렇게 뒤저대는디 바우를 못 찾겄어유?
[바우할멈] 길짐승은 늪서 못 살어. 날짐승두 늪을 피허는디 질짐승이 워치키
견뎌. 늪은 산두 삼키는 것여. 게 갔으믄 지가 워치키 헤어나온댜? 바우는 즈이
할아부지허구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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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디 말여. 즈이 할아부지는 배우지 못했어두 영글었는디 바우는 영근디가
웃어
[될뻔댁] 바우할아부지 적 늪허구 시방 늪허구는 달러유. 그땐 수렁이 많구
짚었을 티지만 시방은 많이 미어졌어유. 늪에 꽃이 한 송이씩 핀게 보일 적두
있는디유.
[바우할멈] 산에는 꽃이 웃어지구 늪선 꽃이 피구 허는 건 시상이 나쁘니께
그런 것여. 그러니께 매사가 궂기만 허구---.
[될번댁] 바우두 말을 잘 못헤서 그렇지 속은 짚어유. 속이 짚은 바우가
뭣땜이 늪으루 갔겄어유. 늪으루는 안 갔어유. 소문 땜이 그 여승을 어무니루
알었대믄 그 여승이 간디루 갔을 티지유.
[바우할멈] 떠돌이 중년이 워디루 간 줄 알구 쫓아간댜?
[될뻔댁] 워디루 갔는디유? (사이)바우할무니는 아시 겄구먼---.
[바우할멈] 돌중이니께 떠돌아댕기지 워디 백혀 있겄어?
[될뻔댁] 헌디 정말루 바우어머니유?
[바우할멈] ---.(힐꿋 돌아본다. 그러나 그 뿐이다)
[될뻔댁] 이럴줄 알았으믄 수다댁 말대루 외딴집으루 가서 꼬깔을 벳겨볼건디
괜히 말렸잖어유. (사이) 바우 막내숙부가 바우헌티 그 여승이 늬네 어무니라구
헹다는디 정말이니께 그랬거쥬.
[바우할멈] 그놈은 시러배자식이여. 바우허구 내허구 버성겨 놓는다구 지헌티
뭔 득이 있을 줄 아는 모양인디 어림두 웃어.
[될뻔댁] 설마 그레서 그렛거어유.
[바우할멈] 그러니께 머릿살어지러운소리 그만혀. 그렇잖어두 비가 올라나
손꺼정 쑤시는디 말여.
[될뻔댁] 아적꺼정두 날씨가 궂으믄 게가 아파유?(사이) 방앗간 기계에 손가락
잘린게 발써 원젠디---(하다가) 한개두 아니구 시 개나 짤렸으니께 죽기 전꺼정
쑤실티지유,쯔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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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우할멈] 개짓는 소리가 가깐디서 들리구,횃불이 하늘루 눠게 뵈는 건 비가
올라구 그러는 것여. 개구리 허구 맹꽁이가 많이 우는 건 비가 많이 오는
것이구.
[될뻔댁] 비는 소용없은께 바우를 찾을 때꺼정만이래두 안 오셨으믄
쓰것는디유.
[바우할멈] 날씨더러 워치키 집집사정 봐달라겄어? 비가 와서 논두렁에 물이
차믄 물꼬를 터야허구, 몸이 적셔지구 질이 질어 의지헐디 없으믄 집으루 빨리
돌아오믄 되는 것이지---.
이때,다시 개짓는 소리가 요란스럽게 들리면서 오토바이가 달려오는 소리와
불빛이 나타난다.
[될뻔댁] 오토바이유! 발써 곰말꺼정 갔다오나봐유.
오토바이가 달려와 멎으면서 불빛도 사라진다.
[될뻔댁] 오투바이가 빠르긴 빠르구먼유!
화이버를 쓴 동오와 손전등을 든 동이가 들어선다. 동오는 들어와서 화이버를
벗고 대야에 물을 떠서 세수를 하고,동이는 바가지로 물을 떠서 입에 넣고
가글을 해서 뱉는다.
[바우할멈] (기다리다 못해)워치키 됐어?
[동이] 바우는---(사이를 두었다가)해거름에 곰골을 넘어갔어요.
[바우할멈] 뭣이?
[될뻔댁] (동시에)발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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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우할멈] 게가 워딘디 발써 지나가? 백오십리가 실헌디 발써 갔단말여?
[동이] 예.
[될뻔댁] 하룻밤 하루낮이지만 날짜루는 이틀이니께 빈 몸으루 가믄 가구
남쥬.
[바우할멈] 누가 그려? 똑똑히 봤댜?
[동이] 마을마다 바우 얼굴을 아는 사람들이 있드군요.
[바우할멈] 바우가 틀림없댜? 그 사람들이 잘못 본 게 아니랴?
[동이] 밥두 얻어먹구 속에 있는 말까지 했다는디--- 틀림없어요. 그 여승이
낮에 곰말을 지나갔다는 걸 봐서 바우가 여승을 찾아간 건 사실인디---
[바우할멈] 그년이 지 입으루다가 바우헌티 쓰잘디없는 소릴 했댜?
[동이] 그게 아니구--- 바우는 소문을 믿는 건 아닌디--- (동오를
의식했다가)---우리가 좀 무심했었던 거에요,어머니.
[바우할멈] 답답허구먼. 길품을 팔어두 한 사흘은 팔어야 허구, 곰말을 지나선
허허공공 한디인디 야무지지두 못헌 놈이 뭔일을 당헐까 켕겨서 그랴. 속에 든
맴이 뭣여?(사이)어여 말을 혀?
[동이] 동오 말 대로 우렁말을 정리허구 읍내루 가게 되면 바우 저는 놀림을
당허는 바보가 된다구 생각했건 거에요. 그렇잖어두 가끔 으뜸말에 들렀을 때나
읍내에 들리믄 애들이 장난으루 놀리구 한 모양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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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오] 애들이 장난으로 한 소릴 갖구 그 자식이---
[바우할멈] (화를 내는 큰 소리로) 누가 읍내루 간댜? 내가 이 우렁말을
떠날성 싶어? 왜 지 할미를 버리구 그리갔댜? 왜?
[동이] (사이)충격이 컸겠어요. 젠녜할아버지가 죽은데다가 동오는
서둘러대지,여승을 예 있게 해달랬는데 할머니는 지 청을 거절하고 여승을
보냈지,예는 잔뼈가 굵은디다가 말을 더듬어두 죄 지 친구가 될 수 있는
것들인디 대처루 가면 뭐 하나 정들 수 없다는 생각에 겁을 먹은 거에요. 그래서
산 속으로 들어가 그간 정들었던 그 여승을 찾아 상의해서 자리를 잡는 대로
할머니를 모셔가겠다구 그러더라더군요.
[될뻔댁] 그럴티지유. 바우가 속이 울매나 짚다구유.
[바우할멈] 그렇다구 그냥 돌아왔어? 해거름에 지나갔으믄 울매 못 갔을 틴디
간 길에 더 가보잖구 말여.
[동이] 거기부텀 마을이 웃는디다가 길두 나쁘구 해서 내일 일찍 다시 가기루
하구 돌아왔어요. 어머니두 바우가 궁금하실 테고,온 마을 사람들이 바우를
찾느라고 헛고생들 하게 되잖아요.
[될뻔댁] 그럼 늪을 뒤지지 못허게 허구 오봉산으루두 사람을 보내야겄구먼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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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이] 아주머니가 좀 전해주세요.
[될뻔댁] 야,그럼유.
[바우할멈] 즈이들이 오투바이를 타구 들려올 것이지.
[동오] 그럴려구 했어요!(사이) 여울목을 돌아가는데 뚝밑에서 길례 에미가
싸릿골 홀애비허구 뒤엉겨서 그짓을 허구 있드군요.
바우할멈은 충격으로 휘청하면서 벽을 의지해서 몸을 가누고,될뻔댁은 듣기
민망하다는듯 돌아선다.
[동이] 그건 사실이에요.
[동오] 바우 찾아나간 여자가 바우는 안 찾구 횃불을 저만큼 꽂아놓구
그짓이니 집안꼴이 뭐가 되겠어요?
[될뻔댁] 지는 다녀오겠이유.(나간다)
[바우할멈] 잠깐---(될뻔댁이 선다. 동이와 동오에게 다가가서)그래---에미가
늬이들을 봤냐?(대답을 않는다) 늬들이 지 짓거리를 본 걸 아느냔 말여.
[동이] 예,알겄지유.
[바우할멈] (깊이 생각에 잠겼다가 될뻔댁에게)될뻔댁은 입이 무거우니께
소문은 안 낼 티구--- 길례에미가 알었으믄 맥적어서 안 올지두 몰러. 길례에미
찾어서 꼭 데리구 오도록 혀. 아무성찮으니께 꼭 집으루 들어오라구 말여. 정말
아무 일두 웃을 티니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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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될뻔댁] 야. (나간다)
바우할멈이 될뻔댁의 뒤를 바라보다가 서서히 몸을 돌려 힘겨운 걸음으로
들마루로 걸어와 앉는다.
[동오] 당장 쫓아내버려야지 뭘 데리구 오라구 그러세요! 용서할 게 따루 있구
편역들 게 따로 있지 화냥년을 들여요?
[동이] 소문까지는 이해를 했어요. 어머니께서 늘 깃다듬어 주시구 해서
소문을 대수롭잖게 생각했던 거죠. 오늘 눈으로 확인했어요. 얼만큼은
이해하드래도 너무 게걸스러우면 용서가 안되죠.
[바우할멈] 내라구 쥐가 부엌서 시렁을 긁는디 왜 그 소릴 못 듣겄냐.
헌디,부엌 시렁꺼정 들어온 쥐가 뭣땜에 시렁가래를 긁것냐.(사이) 먹을 건
웃구,배는 고프구, 이빨은 자라니께 긁는 것여. 게걸쟁이가 따루 있는게 아니구
양이 너무 비믄 게걸스러워지는 것여. 내가 이런 말을 허믄 ---(사이) 늬들이
내가 또 길례에미 펜이 되갖구 한쪽만 두남둔다구 허겄지만--- 길례에미가
사람만은 더 웃이 착허구 인정이 짚으니께 그걸루 봐서 이번 일은 웃는 것으루
치구 앞으루두 다른 여자 뒷방질시켜 속끓이게 허지 않으믄 내헌티 맺기구
상관허지 말두룩 헤라. 시집이라구 오자 냄편 쌈싸우루 월남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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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길례 낳아갖구 옹알거리니께 냄편이 눈허구 입만 산 벵신되갖구 돌아와서
여닐곱 해를 밥 떠넣어줘야 혀,똥받아내야 혀,허지두 않은 화냥짓 헌다구
오만가지 억지소리 들으믄서 가슴패기 허벅지에 성한 디라구는 웃두륵
물어뜯겨,그러느라구 길례 죽여,보상금 받은 건 약값,빚가리,대학꺼정
다녀야겄다는 동오 니 학비루 다 써,그러믄서두 겨울기에 지 털신 한 켤래 안 사
신고 장에 댕니구 낭구헤오느라구 울매나 고생을 헹냐.
[동오] 아니,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에요? 바우 찾겠다구 나가서 그짓하는
걸 눈으로 똑똑하게 봤는데두요!
동오는 언성을 높이고,동이는 시선을 빗겨 어둠 속을 바라본다.
[바우할멈] 벌을 주자믄 눈으로 본 게 젤루 심을 쓰지. 헌디, 걔가 암띠지
않어서 지 짓을 감추잖구,암상궂잖아서 그짓 끝내구 돌아서믄 다 잊어쁠구 돌
지구 방아 찧는디 워치키 벌을 주겄냐.
[동오] 그짓을 알구두 오냐오냐 감싸주다니 답답하십니다. 누운 나무에 열매
안 열구 열매 될 꽃은 첫 사월부터 아는 것인디 어머니 살아오신 길하구 그여자
걸어가는 길하구는 사뭇 달라요! 어머닌 수절하셨구 그 여잔 맹개처럼
싸돌아다니면서 밤낮을 가리잖구 이놈 저놈하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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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우할멈] (큰소리로) 맥도 모르믄서 침통 흔들지 마! 걔가 밤낮을 가리진
않었지만 밉두룩 그짓을 탐헌 건 아녀! 맹개처름 싸돌아댕기지두 않었구
낮도깨비처럼 하늘에 침을 뱉지두 않었어! 나갔던 상주가 젯상 뒤엎는다는디
부조는 못허구 내닫는 걸음에 발을 내밀 참이냐?
[동오] 설상가상이군요. 그여잔 그렇다치고 어머니까진 그러시면 집안되는
일이 뭐겄어요. 바람난 여자 마음 잡아야 사흘인디 수절허신 어머니가 왜 그걸
모르세요!
[바우할멈] 수절 수절 허지만 그게 쉰 건 아니지만 자랑두 아녀. (사이)
절구두 절굿대허구 절구통이 쎄게 부딛혀야 지 구실을 허구,맺돌 중쇠도
암쇠허구 숫쇠가 잘 물려서 부즈런허게 돌아가야 지 구실을 허는디 위치키
자웅있게 생겨나서 그렇게 써오던 몸둥어리 보구 외톨짓만 허라구 그러겄냐.
[동오] 개가를 시켜버리면 되잖아요!
[바우할멈] (어이없어) 내가 널 키운 건 떨거덩 방알 찐 게구나. 니가 부잣집
가운데 자식두 아닌디 시상을 그렇게두 모르냐? 이놈아,노적가리에 불지루구
싸래기만 주워먹을텨? 바우를 기죽여 몰아내드니 길례에미꺼정 쫓아내야 니 속이
편컸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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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우도 뭔가 치솟는듯 대꾸하려고 다가오다가 동이의 제지를 받고 그만둔다.
동이가 서서히 다가간다.
[동이] (은근하게) 어머니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에요. 지수씨의 심성두 잘
알구요. 즈이두 날이 밝아지는 대로 바우를 찾아나설 거에요. (조심스레)
궁금한게 한두 가지가 아니에요. 여승이 죽었다던 형수일지두 모른다는 소문은
믿지 않으믄서 여승을 찾아간 것두 그렇구,어머니가 지수씨 편역을 맹목에
가깝두룩 드는 것두 그렇구,젠녜할아부지가 남긴 그림유서허구,그분이 강원도
탄광에 갔던 몇해를 빼구는 평생을 우리집 근방서 이일 저일 궂은 일만 골라서
도와준것두 그렇구--- 벌써 알아뒀어야 할 일들인데 지가 너무 미혹해서
그렇기두 하지만 어머님이 매시를 너무 진허게 처리하셔서 여태 그냥 지나쳐오고
말았어요. 이젠 저두 인생사십불혹이라는 마흔 고개를 넘어 다섯이에요.
어머니가 말씀해주시면 즈이들두 알어들을 나이에요. 아니,도와드릴 수두
있어요.
[바우할멈] 그려. (사이) 인전 헤두 되겄지. (다시 사이) 돌중년이 바우
에미라는 소문은 ---(또 생각하다가)---사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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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오는 고개를 홱 돌려 바라보고, 동이는 충격을 감추려는듯 허공에 시선을
보낸다.
[바우할멈] 느이들 성,동일이는 등치나 맴 씀씀이가 느이들 아부지를 꼭 빼다
박었구 스물두살꺼정 농삿일 방앗일을 헹는디 약골인 동이 니 몫꺼정 혼자서
해냈어. 니가 사범핵교를 댕긴 것두 느이 성 심이구,동삼이 허구 동오 니가
중핵교를 댕길 때꺼정두 느이 성 심이여. (사이) 스무두살에 군인 갔다가
스무다섯 살에 제대헹는디 집이라구 와보니께 방앗일,농사일 갖구는 아무래두 안
되겠다 싶었는지,아니믄 지 아부지가 구주탄광에 갔다 온 걸 알어서 그렝는지
서독 광부루 갔어. 그게 스물여덟 때니께 장가들구 이태만이여. 장가라구 헤야
지우 찬물 떠놓구 촛불두 아니구 등잔불 켰다가 끈 건디 지 색시가 바우를
배믄서 바루 간 것여. 광부일 시 해만 허믄 째지게 궁헌건 면허니께 그때
돌아와서 뼈빠지게 일허믄 느이들 허구 내 허구 지 처자식을 굶기지 않을 거라는
심산이였지. 아닌게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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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라 다달이 예선 만저보지두 못헐 큰 돈을 보내왔어. 밀린 돈도지허구 쌀도지를
갚구,댕기다가 만 늬들 핵교두 다시 댕기구 헌 것여.
[동오] 그건 나두 알고 있어요.
[바우할멈] 동이 니허구 길례애비 동삼이가 핵교서 젤루 나이가 많은 것두
한참을 놀다가 다시 댕겨서 그렸어. 동이 넌 군대꺼정 갔다와서 댕겼으니께.
(사이) 늬들 성은 편지에 늘 늬들은 공부만 시켜야 헌다구 써보냈다. 바우
에미허구 내가 농삿일 방앗일을 맡아허구 늬들은 안 시켰어. 바우 에미두 내두
심이 드는 줄 모르구 해냈다. 늬들두 틈틈이 거들기두 했구. 동삼이는 나이는
어려두 일을 허믄 장정 몫을 헤냈어. 헌디,이태가 지나구 넉달째 됐는디 늬들
성이--- 낙반사고루 죽었다는 소식이 왔어---.
[동이] 예,지가 광천 탄광촌 분교루 초임발령을 받고 간 바로였지요. 탄광촌서
위험헌 작업장을 보면서 늘 형님 일을 위태위태하게 느끼고 있었는데---.
[바우할멈] 너헌티는 나중에 알렸다. 초임으루 간디다가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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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맺분 웃다는디 알리믄 워쩌겠니.
[동이] 그래두 너무 늦게 알리셨어요. 그것두 모르구 방학이나 되면
다녀가겠다구 느긋하게 있었으니---. 그간에 동오가 학비땜에 다녀가긴 했지만
그런 얘긴 비치지두 않구요.
[동오] 어머니가 하지말라고 하셨어요.
[바우할멈] 동오가 학비 땜에 간 게 아녔다. 지 용돈 땜에 갔지. 저 새끼는
어렸을 적부텀 집안 생각은 뒷전으루 내던지구 돈 쓸 생각만 골돌헹어. 떡닢이
노랬는디 막내니께 허는 생각으루 놔둔 거여. 지 성들이 내리 맡아줬으니께
고생을 덜해서 쓰임새만 컸어. (사이) 에미는 못허게 했어두 지는 지 큰성
일인디다가 객지서 지 작은 성을 만났으니께 눈물이 나서래두 비쳐야 허는디---
그 얘기를 했다간 용돈 달랠 얘길 못허겠으니께 안헌 것여.
[동오] 그렇지 않아요.
[동이] 지가 여름방학 때 오니까 돐지낸 바우는 앓구 있구 형수꺼정 사둔댁서
객사장례를 치룬 댐인디 어떻게 된 거죠? 전 어머니를 하늘처럼 믿구,형수두
비록 나이는 저보다 아래지만 어머니처럼 생각해왔기 땜에 친정서 자살했다는
얘길 조금두 의심을 안 했었어요. 동삼이는 막 군대에 가 있었다지만 집에 있는
동오도 한 마디 귀띰두 않었구요.
[동오] 난 삼십리가 넘는 학교를 자전거로 통학허구 있었어요. 새벽에 나가면
밤 늦게 와서 골아떨어지기 일쑤니께 그런 줄만 알었죠.
[바우할멈] 동오두 모르구 동내서 아무두 모르는 일이여.낙반사고루 죽었다는
기별만 받었지 시체는 그만두구 자세헌 내막두 모르니께 울매나 갑갑헤
있는디--- 읍내 정미소집 시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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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간호원으루 가 있는디 즈이 집으루 보낸 펜지에 이 나라 저 나라 사람 열댓
명이 갇혔는디 닷새두 넘겨 파냈지만 못꺼냈다구 씌였드래. 그 소식을 듣구는
걔가 또 한번 환심장을 헤갖구 싸돌아댕기기 시작허는디 말릴수가 웃었어.
안방서 웃방으루 웃방서 부엌으루,마당서 개울루,뒤곁에 있는가 허믄 여울턱에
가 있구---걸음을 걷기 시작헌 강아지 처렴 졸졸대다가 일없이 쏘대는
홀아시처럼 짤짤대다가--- 이웃말루 가구,대처루 나가구,차를 타구 친정꺼정
싸댕기는 것여. 사람들은 미첬다구 헹지만 내 생각은 아녔어.서방은 죽었다는디
시체는 안 보이니 그 꼴은 당헤보지 않은 사람은 그 돌아가는 맴을 모르는 것여.
(사이) 첨엔 바우를 들처업구 돌아댕기드니 곧바루 바우를 내던지구 나댕기는디
이게 그때부텀은 사내를 만나구 댕기드라.
바우할멈이 우물로 간다. 바가지에 물을 떠서 마신다.
[동오] 그때 일은 어렴풋하네요. 잠결인데 어머니가 큰 아주머니를
닥달질허믄서 머릴 깎아버리겠다구 허는 소릴 들었어요.
[바우할멈] (물을 마시고,힘주어)깎었어.그리군 꼭 가뒤버렀어.(사이)내
생각만 헌 것여.내는 마흔이 다돼서 생과부가 됐구 걔는 지우 스물싯에 과부가
됐는디 내는 내가 더 어려운 때 수절헹다구 꺼꾸루 생각헌 것여.사람은 지
생각만 헌다드니---.시상이 두번은 더 변한 걸 생각두 못허구---. 뻬가루가
비행기 타구 왔어.그걸 받아 오봉산에 뿌리구 시 달만에 위자료 받으러 보냈는디
그답 웃어졌어. 친정에 가본께 바우를 게다 떼놓구 집을 아주 나간 것여. 그레두
받은 돈 절반은 지 친정에 떼놓으믄서 바울 맡어달래믄서 지는 죽기전에
돌아오지 않겠다구 헹드라.그쪽에 사는 어떤 사내허구 간 것같다구 허드라.
바우는 어린 것이 신열루 오늘낼허구 워쩌냐.바우를 싸안구 오믄서 마다허는디
돈은 그리루 넹겨주믄서 걔는 말헐것두 웃구 그쪽 식구는 얼씬두못허게 헹던
것여.호적이사 아적 안 올랐으니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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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이] 차분허구 이해심이 많으신 어머니가 왜 그렇게 서두르썼어요. 저허군
상의두 없이요.
[바우할멈] 니 성이 죽었어두 안 알렸는디 그 년 땜에 널 심난허게 헐순
웃었다. 우리 집서 핵교 선생님이 난 건 시상천지에 내놓구 자랑헤두 모질라는
일이였어. 워치키해서 니가 핵교 나오구 선상으루 취직이 되었는디. (사이) 그때
니 혼사 얘기가 있었구,군인 간 동삼이두 월남 간다구 해서 바루 색씰 구해야
허구,다 큰 동오두 있구헌디 그런 잡사가 끼믄 죄 낭패가 되구 말것만같아서
내두 모르게 옥죄어갖구 서둘렀든 게여. 지금 생각해보믄 발탕강아지처럼
나돌아댕길 때 숨통을 쬐끔만 터 주었드래두 이렇지는 않은 틴디 허는 뉘침
뿐이다---.
[동이] 왔는데 왜 받아주지 않으셨어요.
[바우할멈] 시월루는 너무 늦구,사람으루는 아적 덜 되었드라.
[동일] 몇일 있는 동안 바우가 잘 따랐다믄서요.
[바우할멈] 지가 환심을 살라구 헹겄지. 모자간 정이 환심으로 되는 일이냐?
그리구--- 인전 지가 중노릇헤서 벌믄 내허구 바우허구를 멕여 살릴수 있다구
허는디 그게 중이냐? 지 자식 지 식구 멕여 살릴라구 중노릇헌다믄 시상천지에
쌔구쌘 돌중이나 지년이 뭐가 다르겄냐? 그려서 보낸것여. 중은 농사꾼두
아녀.흔혀빠져두 안되는것이구.
[동이] 그러니께 어머니는 늘 뒤처지면서 고생만 허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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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우할멈] (울컥한다. 그러나 참는다.)바우는 젠네할배가 짚은 산서 캐오구
뜯어오구 따오는 산초루다가 치료를 헹다. 달포 걸려서 났는디 크믄서 늦되구
뜨더니 끝내 말더듬이가 됐어. 헌디, 그나마 할밀 떠나가버렸으니---(이를
악물고 울음을 참는다.)
[동이] 어머니,바우는 와요. 형수두 오게 하겠어요. 어머니 기억엔 나간
메누리루 남아 있으시겠지만 제 기억엔 효성이 지극허구 착한 형수루 남아
있어요. 먹구 살라구 중이 됐다는 건 말을 잘못한 거지 마음이 그런 건
아니에요.
[바우할멈] 중이 되기두,에미가 되기두 아적 멀었어---
[동이] 지수씨헌티두 의지가 되겠지요.
[바우할멈] 바우가 지 숙모를 따르구,길례에미두 바우헌티 자식처럼 허니께
내가 죽드래두 즈이 둘이 의지가 돼서 예서 살게 헐 참이여. 느이들이 있대지만
느이들은 바우허구 길례에밀 돌보지 못혀. 맴이사 안 그렇다구 헤두 시상이
그러니께. 동오 넌 발써부텀 농사꾼이 아닌디다가 너나 니 처나 죄 자기들 백기
몰러. 그 품서나서 기른 애들이 즈이들 사춘이나 고모를 위하믄서 오손도손
살겄냐. 모두 정보다 시상 살기 바쁘다는 생각에 꼭 잽혀있으니께 말여.
(사이)동이 너두 그려. 광산촌으루,섬마을루,두메산골루만 골라서 전근을
다넜다구 헤두 농사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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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아니다. 가끔 대처서두 있었구 말여 대처 갔다오믄 하나같이 찰농사꾼이
못되구 찰정이 웃드라. 워치키---대처 안 간 사람으루 면소댕기믄서 기술
가르치구 정두 쏟구 헐 수 웃는지 모르겄드라. 기술 가르치믄 정을 웃애구,수확
높아지믄 눈알이 뻘개지게 맹그는지---헌께,너두 찰농사꾼은 아녀.한번 다른
맛을 본 사람은 안되여. 농사가 젤루 쉽구 농사꾼이 젤루 어리숙허다구
대처사람들이 죄 농사꾼을 가르칠 수 있다구 생각허믄 잘못이여. 아무두,한
사람두 서뿌르게 농삿군을 가르칠수 웃는 것여.(동이가 주머니에서 젠네할배의
유언장을 꺼낸다.)
[동이] 전 어렸을 때 젠네할아부지를 어머니허구 제일 가까운 친척으루---
외삼촌이나 외할아부지로 알았어요. 자라면서 그분은 혼자 사는 가까운 이웃일
뿐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바우할멈] 늬들 외삼춘 아니,외할아부지라구 생각헤두 된다.
[동이] 예,그렇게 생각하겠어요. 허지만 왜 그래야 하는지 알아냐 하잖아요.
[바우할멈] 난 내 근본을 모른다.(사이)뼈대있는 집 막내루 태어났는디 어른이
역적으루 몰려서 삼대를 멸헐 때 나만 살아났다구두 허구,천한 상민의 맏딸인디
집안이 너무 가난혜서 어린 내를 한 여름 양식 받구 팔었다구두 허구,첨부텀
노비의 딸루 태어났다구두 허는디--- 워쩨든 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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섯 살 때부텀 어느 부자집 몸종으루 잔심부름을 헌 건 사실이여. 첨은 안방서
실패나 골무를 찾어다 바치는 심부름을 허다가 쬐금씩 커가믄서 마루서
걸래질허구,부엌서 설겆이 허구, 에서 절구질두 허구 헹는디---열다섯 살 때
젖어미가 된 것여---.
[동이] 젖어미라구요?
[바우할멈] 애헌티 젖을 멕이는 여자여.
[동이] 어머니는 그때 열다섯살이었다면서요?
[바우할멈] 사랑으로 불려가곤 헷어. 애를 배야 젖이 생기니께 애를 베게
헌다구 불러들이더라.
[동이] 그럼--- (그러나 말을 못 잇는다.)
[바우할멈] 자주 불려 갔다. 그리군 애길 지우게 허드라.
[동이] 그럴수가---
[동오] (역시 동시에) 예?
[바우할멈] 놀랄 거 웃다. 있는 양반들은 흔히 그랬으니께---.
동이는 고개를숙여 땅을 보고 동오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본다.
[바우할멈] 해마다 한 차례씩 시 해동안 시번을 허니께 멕이긴 잘 멕여줘두
사람이 반펜이 되드라. 니번째두 애길 지웠는디 일이 잘못됐는지 하혈만
헤쌓구,음식을 통 못먹으니께 젖두 안 나오구--- 허니께 내를 가마니에 돌돌
말아서 워딘지 내다가 버리드라. 이전 죽는가 헹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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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오] 어머니 얘기여요,옛날 얘기에요?
[바우할멈] 내 얘기여.
[동오] (안타까와) 형님,정말 그렇게들 했어요?
[동이] ---(대답을 못한다.)
[동오] 나두 듣기두 허구 책에서 보기두 했는데 엣날얘기루 알구 남의
얘기루만 알았는디 이건---(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돌린다.)
[바우할멈] 내가 눈을 뜬께 산막이드라. 움집이여. 그런디 고렇게 정신이
똑똑헐 수가 웃드라. 새소리가 들리구 물소리가 들리구 바람소리,벌래소리꺼정
들리는디 가슴이 시원헌게 극락인줄 알었다. 아프지두 않구 무섭지두 않구
편허디 편헌게 인전 극락에 왔구나 싶은디 거적문이 열리믄서 멧부엉이처럼 생긴
그분이 들어오드라.
동오와 동이가 시선을 돌려 의아롭게 바라본다.
[바우할멈] (시선을 의식하고)젠녜할아부지 말여---.
[동이.동오] 예?
[바우할멈] 내가 열 여덟인가 아홉이니께 그분은 스물 너댓 되였을 땐디
혼자서 산에 움집을 짓구 산 것여. 내가 이레만에 눈을 뜬 것이드라. 돌맹이허구
나뭇가지루 날자를 셈헷드라. 내 아랫도리가 벌거벗겨졌는디--- 그분이 산에서
따구 꺾구 캐구 헤서 맹근 약이 발라져 있구, 즙으루 맹글어서 멕이기두 헹드라.
부자 양반집서 죽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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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구 내다버렸는디 산막에서 이렛만에 깨났으니께 그분이 늬들 외할아부지지
뭐냐, 늬들이 젤루 궁금헤허는 그 유언장에 그려진 여자가 내여.
[동이.동오] (다시 놀라며) 예?
[바우할멈] 그분을 젠녜할아부지라구 부르잖냐. 그 젠네두 내여.
[동이] 그분의 손녀가 따로 있었든게 아니구요?
[바우할멈] 그분은 자손이 웃어. 아니 일가붙이라군 하나두 웃어.소문대루---
그분은 남자믄 있어야 허는 그게 웃어.
동이와 동오의 눈이 마주치며 그랬구나 싶은 시선을 주고 받는다.
[바우할멈] 늬들이 궁금헐 티니께 마저 얘길 허는디---그걸 작두루 싹둑
잘랐다는 소문두 맞긴혀.자게 손으루 자른 게 아니구 종살이 허든 주인이
보는디서 마름허구 종들헌티 붙들려서 그걸 잘린 것여.자게들끼리 얽힌 일루
모함혀서 그 지경으루 맹글어갖구 내다버렸는디 모진 목숨 뭔 미련이 남었다구
끊어지지 않은께 산으루 들어가 산초를 먹구 바르믄서 반년두 넘게 걸려 상처만
아물렀다드라. (사이) 내두 게서 한 해쯤 지내니께 심이 생기구---해서 둘이
오뉘가 되갖구 예루 왔구---방아찌믄서 살어가는 늬들 아부지를 만난 것여. 내
아니믄 그분은 끝꺼정 산서 살었을 틴디---얼굴두 모르는 친정 아부지두 되구
어무니두 되주문서 늘 내 옆서---(사이,시선을 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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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구돌,연자방앗돌,도리깨,개상에 쓰는 돌허구 낭구는 단단허구 질기니께 모진
일을 해내믄서 견디는 것여.느이들 증조부모님,조부모님,아부지,젠녀할아부지가
모진 시상을 그렇게 질기게 살어왔는디 죄 끈을 놓으셨어---. 내두 인전 삽짝
밖이 저승이구---.인전 느이들이 남은 것여.(밖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동이가 그럼유서를 펴서 조심스레 바우할멈 앞에 놓는다. 바우할멈이 시선을
내려 물끄러미 그림유서를 바라본다. 동오가 관심을 기우린다.
[바우할멈] (한참을 보기만 하다가)엄청나게 큰 집들이
공장이냐,절간이냐,교회당이냐,면사무소냐?
[동이] 네? 즈이는 학교나 병원인줄 알았는대요?그래야 해석이 되구요.
[바우할멈] 죄 합쳐서 그린것 같구나.
[동이] 그럼 무슨 말인지 해석이 안 되잖아요.
[바우할멈] 글씨는 몰러두 생각은 짚은 분이여. (사이) 모르것으믄 누우렇게
바랜 종이루 생각혀.젠녀할아부지 맴만 있으니께 정 말이여.
[동오] 돈이 될 논밭두 그려놨어요.
[동이] 젠네할아부지 뜻이니까 찾아야잖아요. 그게 그분의 정두 받아들이는
거구요.
[바우할멈] (강하게)엄청난 문서가 있어두 안 줄 틴디 이걸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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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치키 달래겄냐. 누군지두 모르구,안다구 헤두 내줄 사람들이믄 젠네할아부지
죽기 전에 발써 찾아왔겄지.
[동이] 지가 찾어보겠어요.
[바우할멈] 니가 헐 일이믄---(밀어준다.)
이때, 밖이 왁자지껄하면서 횃불이 너훌거린다. 바우할멈이 벌떡 일어선다.
[수다댁] (들이닥치며) 워치키 된 거유. 바우가 워디 있다구유? 곰골을
넘어갔다는 말이 참말이래유?
[바우할멈] (길례네 걱정으로) 여럿이 오는 것 같드니 다들 워디 갔어?
[수다댁] 바우 있는 디를 알었으니께 안 찾어두 된다구 혀서 다들 갔는디유?
[바우할멈] (불안해서) 길례에미는?
[수다댁] 글씨---웃대유.될뻔댁이 횃불을 두 개씩 들구 찾으러 댕기는 걸
봤는디 아직 안 왔어유? 아적꺼정 못 찾았나 보네유. 아니믄 그냥 집으루
갔든지유.
[바우할멈] 뭣여? (하면서 달려가 연자매 주춧돌에 올라가 늪을 바라본다.)
[수다댁] 늪서는 죄 돌아왔는디유?
[바우할멈] 오봉산 간 때는 워쩠어?
[수다댁] 먼점 돌아왔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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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우할멈] 원제?
[수다댁] 남정네들이 약속헌대루 횃불을 들고 횃불루 신호를 보냈으니께 게서
집으루들 내려왔겄쥬.
[바우할멈] 에그 이일을 워쩌---
이때,될뻔댁이 횃불을 들고 샛길로 들어온다.
[바우할멈] 길례에미는?
[될뻔댁] (머뭇거리다가) 오긴 오는 디---(하면서 동이와 동오를 본다.)
이때,길례네가 대할 낯이 없다는듯 고개를 떨구고 게걸음으로 들어오는데 이미
서러움을 억제하면서 속으로 흐느끼고 있다.
[바우할멈] 에미야!(달려간다,그러나 엎어진다. 그대로)어여 들어와!
[길례네] 어---(말을 못 잇고 달려온다.)
바우할멈과 길례네가 얼싸안는다.
[바우할멈] 에미야,해뜨믄 나허구 바우 찾으로 가야 혀!
[길례네] (겨우) 야---
[바우할멈] 늪에 안개가 걷히구 늪새가 똑똑허게 뵐 때꺼정 내허구 살어야 혀!
[길례네] 야---. (크게 대답하고는 드니어 소리내어 흐느낀다.)
[페이지] 088
바우 할멈이 팔에 더욱 힘을 준다. 동오는 고개를 돌려 하늘을 보고,동이는
고개를 떨어뜨려 땅을 보고,될뻔댁은 바우할멈과 길례네를 바라 보면서 엉엉
울어댄다. 멀리서 개짖는 소리가 어둠을 가르며 들려오다가 멎는다. 될뻔댁이
수건으로 눈물을 닦는다. 무대가 서서히 어두워 진다.
막
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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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조병-농녀
NI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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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1.20 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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