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참전용사기념공원이다. 참전용사기념비를 중심으로 한반도를 형상화한 조각물을 조성해 놓은 공원이다. 이 공원은 당초 6,25참전용사기념비가 위치한 곳에 참전용사의 뜻을 기리기 위해 조성됐다.
해안북로 철책선을 따라 나들길은 평화의 길과 함께 이어간다. 철책선 염하 너머로 나루터가 보인다. 강화읍 갑곶리와 김포군 월곶면 성동리를 배로 연결해 주던 곳이다.
강화대교 다리 밑을 통과하면 곧이어 갑곶나루 선착장 석축로 표석을 만나게 된다.
갑곶이란 지명은 고려 고종 때 몽고가 침입하자 왕이 강화도로 천도하게 되었을 때 이 곳이 강 건너와의 거리도 짧고 수심이 얕아서 군사들이 갑옷을 벗어 쌓아 놓고 건널 수 있었다는 데서 유래되었다.
이 곳은 정묘호란(1627) 당시 인조가 건넜던 나루터로, 병자호란(1636) 때에도 봉림대군이 임금을 모셨던 곳이고, 병인양요(1866) 때에는 프랑스군과 치열한 격전을 벌인 곳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나루터 시설 없이 이용되었다가, 조선 세종 원년(1419) 박신이라는 사람이 최초로 자신의 재산을 털어 14년간 석축로 공사를 하여 완성하였고, 약 500년간 사용되었다고 한다.
이 석축로는 1900년대까지 강화도와 육지를 오가는 사람들의 중요한 통행시설로 이용되었으나 1920년경에 성동리와 강화군 용정리 사이에 나루터가 신설되어 옛 나루터는 폐쇄되었다.
광복 후 나루터 부근에 자동차를 나르는 도선장이 생겨 이용되다가 1970년 강화대교가 건설되면서 두 나루터 모두 폐쇄되었고 주변의 제방 공사로 인하여 원래의 시설들도 상당부분 없어지고 말았다고 한다.
갑곶순교성지로 들어선다. 먼저 진해루가 마중 나온다. 진해루는 2003년 사적 제452호로 지정된 강화외성 제물진(갑곶진)의 성문으로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내륙에서 염하강을 건너 갑곶나루를 통해 강화도로 들어오는 관문 역할을 했던 가장 중요한 길목의 문루였다고 한다.
갑곶순교성지는 미국이 1866년의 제너럴셔먼호 사건을 빌미삼아 1871년 군함을 앞세우고 강화도 해역을 침범한 신미양요가 일어난 후 대원군은 더욱 심하게 천주교를 박해하게 된다.
미국 군함이 물러간 후 고종은 철저하게 천주교인을 잡아 처벌하라는 교서를 내리게 되는데 이때 미국 함대에 왕래했던 박상손, 우윤집, 최순복 등이 제일 먼저 잡혀 갑곶진두(갑곶나루터)에서 목이 잘려 효수되었다.
한국 천주교에는 적게는 만 명, 많게는 삼 만명의 순교자가 있다. 이곳에 '한국 일만위 순교자 현양동산'을 조성하여 한국의 순교자들, 특히 '무명 순교자들'께 봉헌하였다. 이곳에는 전국의 유명성지의 상징물등이 있는 '순교자의 길'이 조성되어 있고, 순교자 현양당과 무명순교자상, 십자가의 길, '일만위 순교자 현양탑'등이 있다.
갑곶순교성지를 뒤로 갑곶돈대로 내려서는 길에 만나는 표지석 ‘개국 성지 강화’ 잠시 발걸음을 붙잡는다.
개국의 성지 강화는 단군신화에도 나오는 유서 깊은 곳으로 상고시대엔 갑비고차(甲比古次)라고 하다가 고구려 때에는 혈구군(穴口郡), 신라 때에는 해구군(海口郡)이라 하였다.
현재의 지명 강화는 940년(고려 태조 23) 이래의 것으로, 고려시대 몽골 침입 때와 조선시대 병자호란 때는 임시수도의 역할을 하면서 강도로 승격되기도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수도 방위상 중요시되어 연안에 포대를 구축하고 마니산 정상에 봉수대를 설치하였다. 수도의 관문에 위치하기 때문에 근세에 이르러서는 병인양요·신미양요·운요호사건 등 역사적 사건의 무대가 되기도 하였다.
드넓은 강화의 관문 갑곶돈대다. 돈대는 해안가나 접경 지역의 소규모 관측ㆍ방어시설이다. 강화에 들어서면서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것이 바로 갑곶돈대이다. 갑곶돈대는 1679년(숙종5년) 5월에 완성되었는데, 1977년 옛터에 보수, 복원 작업이 이루어져 오늘에 이루고 있다.
갑곶돈대 정문을 들어서면서 비석군을 볼 수가 있다. 갑곶돈대 비석군은 갑곶돈대 안에 60여 기의 비석이 열 지어 있다. 대부분 조선시대 강화에 부임해 왔던 관리들의 업적을 칭송한 영세불망비, 선정비들이다. 그 외에 삼충사적비, 하마비, 금표도 포함되어 있다. 본래 강화읍 관청리 강화군청 입구와 용정리, 갑곶리 등에 흩어져 있던 것을 모은 것이다.
강화전쟁박물관을 둘러본다. 박물관에는 신미양요 때 미국에 빼앗겼던 어재연 장군의 수자기를 볼 수가 있다. 갑곶돈대 안에 있는 수령이 약 400년 정도로 추정되는 탱자나무가 있다. 강화 갑곶리 탱자나무다. 강화도를 지킨 나무다. 높이가 4,2m이다. 외적을 막는 수단으로 강화도에 성을 쌓고, 탱자나무를 심어서 외적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했다고 한다. 이곳이 탱자나무가 자랄 수 있는 북쪽 한계선 지역이어서 의미가 있다.
현재 돈대 안에 대포는 조선시대의 것으로 외적의 선박을 포격하던 것이다. 돈대에서 내려다보는 염하 수많은 이야기가 있는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