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지나 작가 강의 6 (캐릭터)
7. 캐릭터 -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들
오늘은 강의에 들어가기 전에 엉뚱한 소리를 좀 할까 합니다.
성경에 보면 선악과라는 것이 나오지요? 에덴동산과 아담과 이브... 그리고 선악과의 얘기를 들은 사람은 누구나 한번쯤 의문을 가져보았을 것입니다. (혹시 만의 하나 모르는 분들을 위해서 간략하게 설명을 하자 면....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고 에덴동산에 그가 창조한 첫 번째 인간 인 아담과 이브를 살게 했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모든 것을 그들에게 허락하였는데 단 하나의 조건이 있 었습니다. 동산 가운데 있는 실과나무 중에서 선악과라 불리는 나무의 열 매만큼은 절대로 먹지 말라는 것이었지요.
너희가 그것을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하면서요. 그런데 어느날 뱀이 나타나 이브를 꾀어서는 그 열매를 먹게 합니다. 이브는 또한 아담을 꾀 어서 먹게 하지요. 그때로부터 인간은 하나님과 커뮤니케이션이 끊어지 고, 죽음과 갖은 질병과 온갖 인간사의 고통들과 그리고 이른바 원죄라 는 것이 생겨났다는 이야기입니다.)
자아... 웬만큼 머리가 돌아가는 사람이라면 일단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뭐야 하나님은 그렇게 치사한 존재인가? 도대체 선악과라는 건 왜 만든 거야? 인간을 갖고 놀자는 거야 뭐야.
처음부터 그따위 것을 만들지 않았으면 되잖아. 뻔히 먹고 싶을 것을 알 면서 금지명령을 내려놓고 뒤에 숨어서 보고 있었던 거 아냐? 그래놓고 고작 열매 하나 먹었다고 죽음이며 질병 따위를 줬다는 거야? 창조주라 는 자가 그렇게 잔인할 수가.....
그런데 이러한 질문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해석하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 습니다. 하나님의 기본속성은 사랑이다. 그런데 사랑이라는 것은 절대 혼 자서는 할 수가 없다. 사랑에는 대상이 있어야 하고, 주고받아야 이루어 지는 것이다.
예를 들어 생명이 없는 책상을 놓고 제아무리 목숨 바쳐 아낀다해도 그 건 사랑이라고 할 수가 없다. 사랑이 속성인 하나님은 그 사랑의 짝이 필 요했다. 그래서 인간을 만들었다. 문제는 처음부터 무조건 말을 잘 듣는 인간을 만들었다면 그건 인간이 아니라 로봇이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하 나님이 필요했던 것은 서로 '자유의지'로 사랑을 나눌 짝이었지, 로봇이 아니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유의지라는 것을 주었고 그 자유의지의 상징 이 바로 선악과이다. 처음부터 인간은 하나님이든 아니면 그 반대쪽이든 스스로 선택할 자유의지를 가지고 태어났던 것이다.
얼마 전에 보았던 'City of Angel'이라는 영화에서도 그 자유의지(free will)라는 단어가 나오더군요. 인간은 천사들이 갖고 있는 모든 것... 죽 지 않고 아프지도 않고 공간이동도 할 수 있고... 등등의 능력이 아무 것 도 없지만 단 한가지, 자유의지를 갖고 있다고 말이지요.
이제 제가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 건지 알아차리셨을 겁니다. 우리가 만들어내는 작품에서 우리는 창조주입니다. 우리는 임의로 하나 의 세계를 만들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등장인물들을 만들어냅니다.
그들에게 운명을 부여하기도 하고, 때로는 목숨을 앗아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참으로 내가 나의 작품을 사랑한다면 나는 그들에게 자유의지를 주어야 합니다. 사랑하지 않아도 자유의지는 주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드라마나 영화를 볼 때에는 살아있는 사람들의 이야기 를 보려는 것이지, 로봇들의 행진을 보려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반 복하지만, 살아있는 인간에게는 자유의지라는 것이 있습니다.
작품을 쓰기 시작할 때에는 사실상 소재연구와 동시에 캐릭터 설정 작업 에 들어가야 합니다. 저번 구성 강의 때에도 말씀드린 것처럼 구성 역시 사람을 따라가는 작업이기 때문에, 인물들이 결정되지 않으면 제대로 된 구성이 이루어지기 어렵습니다. 등장인물의 성격에 따라서 구성도 이루어 지는 것이지요.
여기 똑같이 순이라는 이름을 가진 세 명의 여자가 있습니다. 그들은 같 은 나이에 한 남자를 만나 사랑을 했고, 임신을 한 상태에서 버림을 받았 습니다. 여기까지는 작가가 부여해 줄 수 있는 상황들입니다. 사랑이라 는 것은 원래가 운명 같은 것이고, 이별도 사랑에 따르는 필수품이라서 누가 뭐랄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후 순이A는 씩씩하게 병원으로 걸어 들어가서 낙태를 시키더니 새로운 남자를 만나 결혼을 했습니다.
순이B는 눈물을 바가지로 흘리며 떠난 남자를 못 잊어 하다가 혼자 아이 를 낳았습니다. 그러나 역시 눈물을 한강처럼 흘리며 아이를 홀트에 입양 시켰습니다. 이후로도 아이를 못 잊어 날마다 눈물을 흘리고 있는 중입니 다.
순이C는 하루밤 펑펑 울더니 다음날 세수를 하고 나가서 일자리를 얻었습 니다. 돈을 모아 아이를 낳고 미혼모로서 당당하게 일을 해나갔습니다. 올해 그녀는 보험회사에서 보험여왕으로 뽑혔습니다. 세사람의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그들의 인생은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입 니다.
인물을 설정할 때는 이것만 알면 됩니다. 비록 모니터 화면에, 혹은 원고 지 위에서 생존하는 그들이지만 그들도 인간이라는 것, 그래서 그들은 따 뜻한 피와 살로 이루어 졌다는 것이지요.
그 나머지는 여러분이 날마다 채워나가고 있는 관찰노트가 도와줄 것이 고, 그리고 여러분이 깨달아 가는 인생의 깊이가 결정해 줄 것입니다.
그래서 인물에 대한 강의는 인물을 설정할 때에 명심해야 될 점, 주의해 야 될 점들을 몇 개 짚어보는 것으로 대신할까 합니다.
** 작가는 자신이 만들어낸 인물의 인생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어느 초등학교 몇 년도 졸업부터 이력서를 다 메꿀 필요는 없겠지만 최소 한 그 인물이 어떤 가정환경에서 어떻게 자랐는지는 알고 있어야 합니 다. 그는 어린 시절에 어땠을까. 형제가 많은 집에서 아침마다 깨끗한 양말을 차지하려고 싸우며 자라난 것인가. 아니면 귀하게 외동으로 자라 났을까.
전자라면 웬만큼 사람들과 부대끼는 데는 익숙해 있을 것입니다. 후자라 면 직장에서 마주치게 된 어거지형의 상사를 대하는데 어려움을 겪을지 도 모릅니다. 젊은 시절 그는 이성에게 인기가 많았을까. 아니면 늘 이 성에게 따돌림을 당해서 자격지심 같은 게 있을까. 그의 부모는 어떤 사 람들이었나. 공부하라고 끝없이 잔소리를 해대는 어머니 밑에서 탈출을 꿈꾸며 자라났을까.
이러한 상상들은 글쓰는데 또 하나의 즐거움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24시 간 내내 컴퓨터 앞에 앉아있을 수 없기 때문에 많은 시간 딴 짓을 합니 다. 산책을 가기도 하고, 밥도 먹고, 잠자려고 누워서 말똥거리기도 합니 다. 그럴 때 내가 쓰는 작품의 등장인물들을 하나씩 훔쳐보는 것입니다. 작품에는 나오지 않는 그의 어린 시절을 구경하고, 그의 지나간 추억들 도 엿보고... 그런 시간이 많아질수록 작가는 자신의 등장인물들에게 애 정이 커지고, 자신도 생겨납니다.
현실에서 친구를 사귈 때도 그렇지 않나요. 처음에는 이름과 전화번호 정 도만 알지만, 사귀는 기간이 길어지고 얘기도 오래하고 서로의 마음을 터 놓게 되면서, 그의 지나온 인생을 점점 더 알아갑니다. 그런 것을 우리 는 친해진다고 표현합니다. 내가 만드는 등장인물들과 친해지려면 그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아야 합니다. 친하지도 않고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등장인물들을 데리고 무언가를 만들어 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물론 한 작품에 등장하는 수십 명 인물들의 모든 인생을 다 만들어낸다 는 것은 어려울 것입니다. 그래도 가능한 한 조연들에 대해서도 구체적으 로 작가가 알고 있는 것이 좋겠지요. (귀찮을 때면 그 역을 연기하는 연 기자를 생각해보세요. 그는 비록 주연은 되지 못했지만 그러나 일생을 걸 고 연기자의 길을 걷고 있는 것입니다. 작가가 주연이 아니라고 해서 대 충 아무렇게나 설정해버린 인물을 그처럼 열심히 연기를 하게 만든다는 것은 참으로 미안한 일입니다.)
이처럼 작가가 알아낸 인물들의 과거사가 작품에 다 드러나지는 않을 것 입니다. 설마 자신이 애써 생각해냈다고 해서 모든 인물의 과거사를 회상 씬으로 다 집어넣지는 않겠지요. 이따금 그런 작품을 보는데 그건 정말 끔찍합니다.
여러분이 잘 알고 있는 주변 사람들을 가만히 관찰해 보세요. 그들의 현 재 성격을 규정하는 것은 과거의 환경들입니다. 물론 같은 환경에서도 다 르게 성장하는 것이 사람입니다만, 그러나 어느 정도는 영향을 미치고 있 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과거사를 통해 한 인물을 결정할 때에는 주의할 것이 있습 니다. 세상의 선입견이나 그릇된 통념에 휩쓸리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결손가정에서 문제아들이 많이 나온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심지어 학교 선생들도 불량학생들을 분류할 때에 결손가정의 아이들을 먼저 체크한다 는 얘기도 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제 생각에는 결손가정이라서 문제아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사회적 통념들이 문제아를 만드는 듯 합니다. 무슨 소리인가 하면 아이들은 누구 나 탈선의 유혹을 받지요. 그럴때 결손가정이라는 것이 그럴듯한 명분이 되어준다는 겁니다. 핑계거리가 있는 셈이지요. 그런 것들을 정확하게 볼 수 있어야 과거사를 통한 한 인물을 정확하게 그려낼 수 있을 것입니 다. 그러한 속내를 짚어주지 못하고 작가가 결손가정에서 자라난 문제아 들만 잔뜩 그려낸다면, 그 작가 때문에 문제아가 된 소년이 생겨날지도 모릅니다.
** 현실에 실존하는 인물을 모델로 하는 것이 나을까요?
물론 그렇게 하면 유리한 점이 있겠지요. 내가 잘 알고 있는 누군가를 모 델로 삼는다면 많은 부분, 시간이나 노력을 절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내 작품에 필요한 등장인물이 하나둘도 아니고, 그 하나하나에게 딱 맞는 주변 사람이 존재해주지 않으니 문제입니다. 게다가 잘 아는 누 군가를 모델로 작품을 써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사실상 실존인물을 그대 로 사용한다는 것은 그다지 유용하지가 못합니다. 왜냐구요.
이번 주 어느 영화잡지를 보니까 재미있는 기사가 실려 있더군요. [도니 브레스코]라는 영화를 아시지요. 영화 [도니 브레스코]는 조 피스톤과 리 처드 우드라는 두 전직 FBI요원이 쓴 책을 원작으로 만들어졌다고 합니 다. 그 책에서 조 피스톤은 도니로서의 자신의 마피아 조직원 생활에 대 해 쓰고 있고, 그래서 영화 도니...는 자서전적인 영화라고 해서 더 흥미 를 주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또 다른 전직 FBI 요원인 션 멕위니라는 사람이 그 이야기 들은 너무 과장되었거나 왜곡되었다고 발표를 했다고 합니다. 영화 속의 도니는 살인 현장에 함께 있는 것으로 되어있는데 실제 그 당시 도니는 프롤리다에서 안전한 임무를 수행 중에 있었다던가... 영화 속의 레프티 는 동료들에게 살해당한 듯이 처리되어서 도니가 몹시 괴로워하는 걸로 끝을 맺지만, 실제의 레프티는 체포되어 수감 생활을 끝내고 출감 뒤에 암으로 죽었다는 것입니다.
작가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보자면 실제의 인물을 그대로 쓴다는 것은 아 무래도 재미가 없었던 것일 겁니다. 좀 더 흥미있게, 좀 더 감동적으로 만들자면 아무래도 거기에 또 다른 각색들이 첨가되어야 했을 것입니다. 이건 다큐멘터리도 아니고 어디까지나 영화다. 내가 이 영화에서 보여주 고 싶은 것은 이러저러한 것이지, 한 인물의 전기를 쓰자는 것은 아니 다. 라고 생각을 했겠지요. 본인이 직접 썼다는 원작은 읽어보지 못했지 만 아마 본인도 자신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쓰지는 않았으리라 생각됩 니다. 하다못해 자기만 보는 일기를 쓰더라도 각색이 들어가는 법입니 다.
결론을 말해보자면 실제인물을 모델로 한다고 했을 때에는 그 인물의 특 정 부분을 사용하는 것이지 그 인물을 그대로 쓰는 것은 아닙니다. 그건 아마 가능하지도 않고 효과적이지도 않을 것입니다. 물론 공화국시리즈라 든가 역사물이라든가 실제 인물의 실명을 사용하여 있는 사실을 전기하 는 드라마의 경우에는 되도록 사실에 충실하여야하겠지만 글쎄요. 그런 경우에도 작가의 시각에 따라서 어느 정도의 첨삭이 될 수밖에 없을 것입 니다. 물론 60세까지 산 한 인물의 이야기를 60년 동안 방송한다면 있는 그대로 쓸 수 있겠지만요.
저의 경우에는 몇 명의 실존인물과 나의 상상력을 합쳐서 하나의 새로운 인물을 만들어내는 방법을 즐겨 사용합니다.
지겹지만 또 다시 모래시계를 예로 들자면.
검사역으로 나온 강우석의 경우에는 몇 명의 실존 검사를 만나보면서 하 나의 인물을 구축해갔습니다. 어린 시절의 사건이나 맡게 된 사건을 풀 어 가는 방식은 실제 있었던 검사들의 이야기를 종합한 것입니다. 융통 성 없는 고지식함은 죄송스럽지만 저의 아버지에게서 따왔습니다. 그리 고 거기에 연기자였던 박상원씨의 캐릭터까지 합쳐서 하나의 인물을 만들 어냈습니다.
정부고위관료로 나온 강동환의 경우에는 실존에 있었던 몇몇 고위직들을 합쳐서 그의 배경을 만들었습니다. 누구라고 이름을 대면 다 알만한 이들 의 기사나 주변 까십 등을 종합하여 하나의 인물로 합친 것입니다. 그 말 투는 내가 잘 알고 있는 방송국의 모 간부의 것을 차용했습니다. 배역 을 맡았던 김병기씨가 제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리얼하게 그 역을 소화해내 주어서 감사하고 있지요. 아마 그런 인물에 대해서 저보다 더 아는 바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종도라는 인물은 추상적인 개념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나는 종도라는 인물 이 군사정권에서 만들어진 가장 상징적인 인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강 한 자에 약하고 약한 자에 강한 권위주의형 인물, 필요에 의해 눈물을 흘 릴 수 있는 남자, 어느 모임에나 하나씩은 꼭 끼어있는 반민주적인 인 물. 추상적으로 시작한 만큼 가장 묘사하기가 어려웠던 인물이기도 했습 니다. 그만큼 애착이 많이 가기도 했구요. 고맙게도 종도는 배역을 맡은 정성모씨가 최고로 완성을 시켜주었습니다. 야비한 눈빛과 독특한 걸음걸 이, 오해까지 받았던 전라도 사투리를 합해서요.
아마 여러분도 어떤 인물을 설정할 때에 여러 가지를 합쳐서 만들어내게 될 것입니다. 관찰노트에 적어두었던 어떤 이의 말투와 주변에서 들은 누 군가의 배경, 또는 언젠가 보았던 영화에서 나온 어떤 연기자의 느낌 등 을 섞어서 재창조하는 과정이 필요할 것입니다. 머리 속에 흘러가는 이야 기를 그림으로 보기 위해서는 글을 쓸 때에 캐스팅을 해놓는 것도 유용 할 것입니다. 배우를 미리 알게 되면 그 배우의 매력을 최고로 끌어낼 수 있기 때문에, 저는 언제나 머리 속으로 캐스팅을 먼저 하고 그 캐릭터 를 완성하는 편입니다.
** 인물의 캐릭터를 작가 혼자만 알고 있으면 안됩니다.
당연한 얘기인데도 많은 작가들이 배려해주지 않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누군가의 작품을 읽고서 '대체 이 인물은 어떤 사람이야? '하고 물어보 면, 작가는 구구절절이 설명을 합니다. ' 이 여자는 아주 영혼이 맑은 사 람이에요. 헌신적이고 착해요. 머리도 좋지만 그걸 내세우지는 않지요. 아주 멋진 여자예요. '
그런데 그 작품을 보는 우리들은 도무지 그 여자의 영혼이 맑은지 착한 지 느껴지지가 않는 것입니다. 인물의 캐릭터라는 것은 방송 도중에 자막 을 넣어서 ...위 인물은 맑은 영혼을 가진 똑똑하고 착한 여자임....이라 고 설명해 줄 수는 없는 것이지요.
인물의 캐릭터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시청자나 관객이 보고 느끼고 동조해 줘야 하는 것입니다. 그 인물이 하는 행동이나 말하는 내용을 보니 그 참 영혼이 맑은 인물이로구나. 똑똑한 여자로구나. 하고 알게 해줘야합니 다.
그러기 위해서 몇 가지를 염두에 두어야 할 것입니다.
첫째, 인물의 성격은 인물 등장과 동시에 확실히 전달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납니다. 오늘 지하철에서만 수 십, 수백명을 만났습니다. 그 중에서 누가 기억에 남는가요? 닫히는 전철 문으로 목숨을 껄고 뛰어 들어와 나를 밀쳐 넘어뜨릴 뻔한 사람이라면 기 억에 남을지 모르지만, 대개는 그저 배경처럼 희미합니다. 그렇게 희미 한 사람들이 득실대는 드라마라면 여러분은 결코 보아주지 않을 것입니 다.
우리가 기억하는 사람들이란 어떤 사람들인가요. 아무개..하면 아 이러저 러한 사람..하고 인상 지워지는 사람들입니다. '김아무개라고 알어?' 하 고 누군가 물어오면 '알아. 그 밥 먹을 때마다 쩝쩝 소리를 내는 사람 말 이지? '정도는 답할 수 있을 때 우리는 그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누군가 내가 아는 사람의 이야기를 전해줄 때 우리는 흥미를 갖고 듣습니 다. 제대로 기억이 나지도 않는 아무개가 요즘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열 심히 들어주는 사람은 없습니다.
방송이나 영화는 한정된 시간 동안에만 보여지는 것입니다. 한시간짜리 방송에서 십분동안 열명쯤 등장했는데 그렇게 기억되는 인물이 거의 없다 면 그건 더 이상 볼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작가가 두 손을 모으고 '제 발 끝까지 봐주십시오. 다 보고 나면 어떤 사람들인지 알 수 있을 것입니 다'라고 애원을 해봐야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는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기억도 안 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우리의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으니 까요.
그래서 인물이 등장할 때는 되도록 빨리 그에 대해 인상 지워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정확한 그의 캐릭터를 파악하게 해줘야 하는 것이지요. 그래 야 그 다음 장면에 그 인물이 나왔을 때 관객은 그를 기억하고, 그의 다 음 이야기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로마의 휴일]이라는 영화를 기억하시지요. 그 영화에서 오드리 헵번이 처음 등장하는 씬이 있습니다. 오드리헵번이 일국의 공주로서 공식적인 자리에 앉아있습니다. 아주 아름다운 드레스 를 입고, 고귀하고 품위 있는 표정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녀의 길다 란 드레스 안에 감추어진 발이 보여집니다. 그녀는 살그머니 구두를 벗어 놓고 피곤한 발을 쉬게 하다가, 일어나야 할 순간에 구두를 다시 찾아 신 느라고 허둥댑니다. 근엄한 표정 밑에서 벌어지는 이 짧은 해프닝으로 우 리는 그녀의 성격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이 귀엽고 자유를 갈망 하는 요정에게 우리의 애정이 생겨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 음에 그녀가 어떤 사건을 벌일지 기대하게 되지요.
만약 그런 해프닝이 없이 단지 아름답게 생긴 공주가 품위있게 공적인 자 리에 참석한 모습만 주욱 보여줬다고 합시다. 아마도 우리는 오드리 헵번 에게 관심을 갖기 위해서 한참을 기다려야 할겁니다. TV라면 벌써 채널 이 돌아갔겠지요.
둘째, 각 인물은 대표되는 성격들로 표현됩니다.
언젠가 누가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인간이란 것이 원래 복합적인 성격을 갖고 있는 존재인데 어떻게 그 중 의 한가지 성격으로만 표현할 수 있는가? 대단히 멋있는 질문입니다만, 드라마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질문이기도 하지요.
드라마라는 것은 원래가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아닙니다. 어느 가 정에 비디오 카메라를 설치해서 365일 그대로 찍어 보여주는 게 아니란 얘깁니다. 우리는 현실에 있음직한 사실들을 조합해서 우리가 전달하고 자 하는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현실 의 많은 부분들을 취사선택하거나 만들어냅니다. 등장인물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현실에 꼭 실재할 것 같은 인물들을 통해서 우리는 사람들에게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우리가 전달하고자 하는 것을 가장 효 과적으로 나타내기 위해 우리는 인간의 특정 부분들을 취사선택하여 보여 주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 가지 성격이 복합되어 있는 인물을 그린다면 그 복합 성격 자 체가 대표 성격이 될 것입니다. 또는 한 인물의 성격이 발전해나가는 과 정을 보여준다고 했을 때에도, 우리는 각 과정에서의 대표성격을 보여줌 으로서 그 효과를 노립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모든 인간이 수백가지의 성격을 다 안에 내재하고 있다고 해도, 겉으로 보여지는 그 인간의 성격이란 의외로 단순합니다.
영화 [에이리언]의 주인공인 시고니 위버는 인간인 관계로 공포감도 갖 고 있고, 더러 도망치고 싶은 욕구에도 시달리지만, 기본적으로 용감하 고 능동적입니다. 어린 소녀를 구하기 위해 다시 에이리언의 소굴로 돌아 가면서, 그녀의 복합적인 성격을 다 표현하기 위해 갈까말까 고뇌하고 멈 춰서 생각해보고, 도망치다가 다시 돌아오기를 반복해 보여 준다면 영화 는 끝날 수 없을 것입니다.
셋째, 인물의 성격은 일관되어야 합니다.
오늘 강의의 서두에서도 얘기한 것처럼 작품 속에서 창조되어진 개개의 인물은 살아있는 생명체입니다. 그렇다면 그 성격이란 처음부터 끝까지 그만의 것으로서 일관성을 갖고 나타날 것입니다.
이번 씬에서는 아주 소심하고 수줍던 인물이 다음 씬이 되자 갑자기 웅변 조로 떠들어대는 식의 묘사는 곤란합니다. 그것은 작가가 그 인물을 제대 로 모르기 때문입니다.
작가가 인물을 제대로 알고 있다면 어떠한 경우에 그가 어떤 반응을 보일 지를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잘 알고 있는 주변 사람들을 떠올려보세요. 친한 친구나 형제들 을 몇몇 예제로 생각해봅시다. 그들에게 같은 상황을 주어보세요. 예를 들어 길을 가다가 뺑소니차를 목격하게 되었다고 합시다. 여러분이 알고 있는 그들은 아마도 각각 다른 행동을 할 것이고, 여러분은 평소의 그를 알고 있기 때문에 그가 어떤 행동을 취할지 짐작을 할 수 있을 것입니 다. 박아무개는 당장에 전화통으로 달려가 신고를 할 것이야.. 이아무개 는 아마 택시라도 불러 타고 그 뺑소니차를 추격할지도 몰라. 김아무개 는 침착하게 수첩을 꺼내서 뺑소니차의 전화번호를 적겠지. 그러나 아무 개는 아마 못 본척하고 그냥 지나갈 거야. 귀찮은걸 죽기보다 싫어하니 까.
여러분이 만들어가는 등장인물들에 대해서도 그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합니 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는 두 명의 여자가 등장합니다. 같은 남자를 좋 아하지만 그 좋아하는 방식은 전혀 다릅니다. 어려움에 닥쳤을 때 반응하 는 태도 역시 전혀 다릅니다. 그들의 성격은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나타납니다. 우리는 스칼렛 오하라 형이 어떤 인간형인지 확실하게 알고 있습니다. 누군가 길을 걸어가는 스칼렛의 어깨를 툭 치고 시비를 걸었 을 때, 그녀가 어떻게 반응할지 누구나 짐작을 할 수가 있는 거지요.
하다못해 흥부와 놀부도 일관된 성격을 갖고 있지 않나요. 흥부라면 어덯 게 해서든 좋게좋게 그 자리를 모면하려 하겠지요. 놀부라면 시비를 거 는 상대를 그냥 놔둘 리가 없습니다. 힘이 모자라면 물어뜯기라도 할 것 입니다.
불행하게도 작가들에 의해 만들어진 많은 등장인물들이 작가의 복제인간 일 경우가 많습니다. 무슨 소리인가 하면 등장인물이 열명 등장하면 열명 이 다 작가와 똑같은 성격을 갖고 있다는 거지요. 행동반응이나 말투까지 도 다 똑같습니다. 갑이 하는 대사를 을에게 주어도 아무 상관이 없고, 아버지든 아들이든 이웃 아저씨든 다 같은 생각을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 다. 비난을 받으며 열명이 다 똑같은 히스테리를 부리며 거의 비슷한 대 사를 합니다.
부디 그들은 살아있는,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이라는 것을 기억해주세요. 그래서 그들의 개성과 성격을 존중해주시기 바랍니다.
넷째, 성격은 말로 설명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한 인물의 성격을 묘사할 때에 가장 저급한 방법이 말로 설명하는 것입니다.
철수라는 주인공에 대해서 철수의 친구인 병수는 영희에게 설명해줍니 다.
병수 : 철수는 정말 의리가 있는 놈입니다. 영희씨도 계속 만나보면 알 겠지만 철수는 법 없이도 살 놈이지요. 고등학교 때는 자기보다 가난한 친구들을 위해서 도시락을 세 개씩 싸오곤 했습니다. 지금 다니는 회사에 서도 아주 능력 있는 놈으로 인정을 받고 있나봅니다. 일도 아주 열심히 하거든요.
드라마에서 이런 부분을 보게 되거든 하하하 웃어줘도 됩니다. 저 작가 누군지 대단히 게으르구나. 하고 쯧쯧 혀를 차 줘도 됩니다.
영희 : 철수씨는 어떤 사람이에요? 병수 : 겪어보면 아실 겁니다. 직접 알아보세요.
이렇게 되야 맞습니다. 철수가 의리가 있는 놈인지 능력이 있는 회사원인 지는 시청자가 보고 인정을 해줘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작가는 철수 가 얼마나 의리가 있는지를 시청자에게 확실히 인상 지워줄 해프닝을 만 들어 줘야합니다. 그건 물론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골치 아프고 힘든 작 업입니다만, 그런 작업을 통해서 작가는 시청자를 설득시켜 가는 기쁨을 맛볼 수 있습니다.
[레옹]이라는 영화를 보셨는지요. 그 영화에서 레옹이 마틸다와 문을 사이에 두고 고뇌하는 장면이 있습니 다. 마틸다는 어떻게 해서든 잔인한 형사의 눈을 속여 도망쳐야 하는 상 황이고, 레옹은 그 상황을 다 알고 있습니다. 열쇠구멍을 통해서 다 봤거 든요. 그러나 레옹은 문을 열어줄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직업 킬러 로서 대단히 골치 아픈 상황에 말려들게 될 것입니다. 냉정함을 무기로 하는 킬러라면 모른 척하는 게 당연합니다. 그러나 문안에서 어쩔줄 모르 고 갈등하는 레옹의 모습이 문밖에서 간청하는 마틸다의 모습과 교차되면 서, 우리는 레옹의 성격을 확실히 알게 됩니다.
레옹의 작가는 누군가의 입을 통해서 '레옹은 킬러이긴 하지만 아주 따뜻 한 마음을 가진 놈이지요'라고 설명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레옹이 키 우는 화초 한그루까지도 레옹의 성격을 충분히 묘사해주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이 열배는 더 설득력이 있습니다.
** 드라마의 중요한 역할 중의 하나는 인간의 모델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저 혼자의 생각입니다. 이렇게 생각하지 않는 작가도 있을 수 있 고, 꼭 이렇게 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저는 드라마라는 것이 이 세상 사람들을 바꿀 수 있다 고 보는 겁니다. 하하.
전 세계까지는 모르겠으나,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우리 나라 이 땅의 사 람들은 바꿀 수 있을지 모른다.. 나는 바꾸고 싶다라고 생각하면 너무 허 황된가요? 그래도 이러한 생각이 나에게는 대단히 큰 힘이 됩니다.
람보에서 시작해서 이즈음에 나온 아마겟돈까지 허리우드 영화를 생각해 보세요. 하나같이 아메리카만세입니다. 불퉁한 마음으로 비딱하게 보긴 하지만, 그래도 그 영화를 보고 난 뒤에 암암리에 주입되는 생각들이 있 습니다. 미국은 참 좋은 나라인가 봐. 역시 민주주의란 그래야 돼. 아아 어쩌다가 이렇게 한심한 나라에서 태어난 것일까.
도무지 현실감이라고는 없는 홍콩 액션 영화를 보고 나서도 우리는 영향 을 받습니다. 극장을 나서는데 어쩐지 어깨가 펴지고 걸음걸이도 씩씩해 집니다. 건달이 건드리면 날카롭게 노려봐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태권 도장이나 다녀볼까..하는 마음도 듭니다.
일본 영화를 보고 나서도 이상한 기분이 듭니다. 그네들이 떠벌리는 사무 라이 정신을 구경하고 나니까 어쩐지 주눅이 듭니다. 역시 그런 대단한 정신들을 가지고 있으니까 쬐끄만 놈들이 그렇게 잘 사는 건가봐. 우린 왜 이러나 몰라. 우리 조상들 좀 봐. 맨날 당파싸움이나 해대고... 아직 도 그 모양이잖아. 엽전들이란 말을 들을 만 하다니까.
여러분 중에 누가 사극을 만들게 된다면, 부디 멋진 우리의 선비 정신이 라든가 호연지기를 널리 알려주십시오. 그래서 그 드라마를 본 이들이 이 땅에 태어난 것을 으쓱하게 만들어 주십시오. (물론 유신 때의 검열관 들처럼 아아 대한민국만 부르라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그런 식으로 그려 봤자 오히려 거부감만 준다는 것은 다 알고 계실테니까.)
국적을 떠나서 인간이란 면만 봐도 드라마나 영화의 영향력이란 대단합니다.
[전원일기]에서 서로 애틋하게 아끼고 존중하는 회장집 식구들을 보고 나 면, 웬지 오늘 저녁에는 아버지 퇴근하실 때 현관에 마중 나가야지 하고 생각됩니다. 드라마에서 실연당한 청춘남녀는 예외없이 술을 마시고 취합 니다. 그래서 내가 실연을 당하면 어쩐지 술을 마시고 취해야 될 것 같습 니다. 거리를 비틀거리고 걸어봐야 실연의 과정을 충실히 수행한다고 생 각되는 거지요. 드라마에서 남자가 여자의 따귀를 때리는 장면을 되풀이 보다 보면, 어떤 상황에서는 남자가 여자의 따귀 정도는 때려야 자연스럽 게 느껴집니다. 드라마에 나오는 똑똑한 여자들은 예외없이 어른들에게 되바라지고, 남자를 피곤하게 만듭니다. 현실에서 정말 똑똑한 여자들은 어른들에게 귀염받는 법을 지혜롭게 깨닫고 있고, 남자들로 하여금 기분 좋게 자신을 도와주게 만듭니다. 그러나 우리는 드라마에서 그런 여자의 본을 보기 힘듭니다. 똑똑한 여자가 되고 싶으면 하루에 세번 이상은 주 변 사람들과 말다툼을 해야 한다고 생각되어지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를 열거하다보니 우리의 드라마가 우리를 얼마나 부정적으로 만 들어왔는지 새삼 끔찍해지는군요.
연희와 민정이라는 아주 친한 여자친구가 있었습니다. 연희에게는 명수라 는 남자친구가 있었지요. 그런데 어느날 연희는 민정이와 명수가 애인처 럼 만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기존의 드라마는 어땠나요. 당연한 듯이 두 여자는 원수가 됩니다. 연희는 민정이를 만나 비난을 퍼부어대고, 명 수를 만나서 눈물이 쏟아내며 배신감 운운하고 따집니다. 어째서 연희가 민정이를 만나 이렇게 말하지 못하나요.
연희 : 너 정말 명수를 좋아하니? 민정 : 미안해. 나도 어쩔 수 없이 이렇게 되 버렸어. 연희 : 명수도 널 좋아하니? 민정 : ...미안해. 이래선 안 된다는 거 아는데... 명수도 괴로워하 고 있어. 연희 : 그러니까 이제 내가 명수를 다시 찾으려고 들면 난 두사 람 을 다 잃게 되는거구나. 너도 잃게 되고. 명수도 잃게 되고. 알았 어. 좋아. 허락하지. 대신 앞으로 일년간 내 점 심은 니들이 사라. 민정 : 저어...그런데 일년 되기 전에 우리가 헤어지게 되면 어떻 게 되지? 그래도 계속 사?
죄송합니다. 맨 뒤의 대사는 없애는 걸로 하지요. 아무튼 이런 식의 대사 를 나누고 나서 연희가 혼자 자기 방에 앉아 눈물 뚝뚝 흘리고 운다면, 보는 이들에게 힘이 되지 않을까요. 누군가 애인을 친구에게 빼앗겼을 때, 그는 좀 더 멋지게 그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모델을 갖게 되는 것입 니다.
모래시계에는 그처럼 모델로 내세우고 싶었던 인물들이 몇몇 있습니다. 어쩌면 그들을 보여주고 싶어서 다른 얘기들이 들어갔는지도 모르겠습니 다. 극중에서 태수의 어머니는 패싸움을 하고 정학을 맞게 된 아들의 학교에 찾아가 선생들에게 큰소리를 칩니다. .... 사내애들이 돼갖구 친구가 맞는데 그럼 모른 척 할 수 있어요? 이 학교에서는 그렇게 가르치나요? 친구가 맞아두 상관 마라. 정학 맞지 않 을려면 너 혼자 도망쳐서 잘 먹고 잘 살아라. 그렇게 가르쳐요? .....
내가 보여주고 싶었던 어머니는 맨날 공부해라 공부해라 잔소리만 해대 는 어머니가 아닙니다. 아들과 술도 나눠 마실 수 있고, 아들에게 엄마 가 잘못했다 미안하다..고 말할 수 있는 어머니입니다.
우석의 아버지도 내가 몹시 좋아하는 캐릭터입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최고의 유산이란 돈이나 땅이 아니라 바른 뜻이다..라 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이런 아버지라면 멋지지 않은가. 당신도 이런 아버지가 되지 않겠는가..하고 물어보고 싶었다고 할까요.
우석이 몸담고 있던 검찰에는 탤런트 조경환씨가 역을 맡았던 검사장이 있습니다. 후배검사들에게도 언제나 존댓말을 쓰고, 바둑을 몹시 좋아하 는 캐릭터입니다. 그가 정보부 사람에게 압력을 받는 장면이 나옵니다. 우석을 연행해간 정보부 간부는 검사장에게 우석을 설득시켜달라. 안 그 러면 그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는 식으로 말합니다. 그러자 검사장 왈.
..... 이분들 뭔가 잘못 아시는군요. 검찰엔 강검사밖에 없는 줄 아는 거 같애. ..... 신검사도 데려갈 겁니까? 그럼 또 다른 검사를 소개해드 리지요. 우리 검찰에 검사 아주 많아요. ....
아아 물론 드라마에 언제나 긍정적인 인물만 나와야 하는 것은 아닙니 다. 그럴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됩니다.
그러나 부정적인 인물이 나올 때에는 최소한 작가가 그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합니다. 탐욕스럽고 이기적으로 살아온 사람은 부와 출세를 얻을지 는 모르나, 그의 영혼은 피폐해졌음을 우리는 확인을 해야 안심이 됩니 다. 잘못하면 부정적인 인간이 우리들의 모델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이런 것들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저 역시도 아직 노력하고 또 해 야 하는 부분들이지요. 모래시계에서 태수는 부정적인 인간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를 사형시키고 나서야 저는 안심을 했습니다. 그런데 태수 때문 에 비난을 많이 받았습니다. 깡패를 너무 멋있게 그렸다는 것부터 시작해 서 왜 죽었느냐는 말까지. 태수는 평생 행복한 순간이 별로 없었습니다. 얻은 것도 없습니다. 연애 한번 제대로 해보지 못했습니다. 결국 사형까 지 당했는데, 그 태수를 본받아 깡패가 되고 싶다는 아이들 때문에 얼마 나 곤욕을 치뤘는지요.
어쨌거나 여러분들은 멋진 인간의 모델을 많이많이 제시해주기 바랍니 다. 그래서 여러분의 작품을 보고 난 시청자나 관객들이 이 세상을 다시 한번 따뜻하게 느끼고, 어려울 때에 어깨를 펼 수 있게 해주세요.
그것이 바로 우리같은 대중작가의 보람이고 목적이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 습니다.
마지막으로... 인물을 만들 때는 매력적이고 개성있는 인물을 만들라는 말을 드리고 끝내겠습니다. 우리가 드라마를 볼 때는 인물을 보기 위해 서 봅니다. 매력없는 인물들이 등장하는 드라마는 제아무리 훌륭한 내용 을 갖고 있어도 보아주기가 힘듭니다. 사서삼경을 한문으로 써놓고 훌륭 한 내용이니 보라고 해봐야 시청률이 높을 수 없겠지요.
그럼 인물의 매력은 어떻게 만드는가. 위에서 설명드린 방식대로입니다. 살아있고 자유의지를 갖고 있어서 우리가 그에게 공감할 수 있을 것. 대 표되는 성격이 명확하게 드러날 것. 일관되게 그 성격이 표현될 것. 그리 고 삶의 모델로 삼고 싶을 만큼 멋질 것. 부정적인 인물이라고 하더라도 그래서 모델로는 삼고 싶지 않더라도 그의 심정에 충분히 공감이 갈 것. 그래서 관심을 유지시킬 것.
인물 만들기에 대해서는 나중에 여유가 되면 한번 더 설명을 해보고 싶습 니다. 오늘은 이 정도에서 끝내지요.
자아 오늘의 과제입니다.
오늘의 과제는 좀 재미난 것으로 해볼까합니다. 아무 부담없이 글 쓰는 재미를 만끽하며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뭐냐하면 ...
여러분 지난번에 거꾸로 시나리오 쓰기 과제를 하신 것 있지요. 그 당시 에 잡았던 영화가 있을 것입니다. 거기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을 데리고 짧 은 드라마를 하나 써보세요. 길이 제한 없습니다. 완결된 이야기가 아니어도 상관없습니다. 중세시대를 배경으로 한 주인공들을 데리고 현대 서울에서 일어난 일을 쓰셔도 상관없습니다.
오늘 과제의 주안점은 인물의 성격을 연습하는 것이니까 그들의 성격만 명확히 드러나게 할 해프닝이면 됩니다.
이미 시나리오 하나를 베낄만큼 그 영화에 대해서 깊이 연구하셨을 것이 니까 그 주인공들의 성격은 확실히 알고 계실 겁니다. 그 성격을 드러내 는 사건 하나를 드라마 형식으로 쓰시면 되는 것입니다.
아직 이해가 안 가나요?
예를 들자면 레옹과 마틸다를 데리고 은행강도를 시켜보는 식입니다. 같 은 은행강도라고 해도 그 현장에서 레옹이나 마틸다의 성격이 드러날 것 입니다. 하는 짓이라든가 대사라든가...
부디 원래 잘 형성되었던 성격을 해치지만 말아주세요.
재미있겠지요. 이미 만들어진 명작의 주인공들을 내 맘대로 캐스팅해서 사용하십시오. 출연료는 안줘도 상관없습니다.
그럼 아직 끝나지 않은 장마에 건강하시기를....
....아직 거꾸로 시나리오 쓰기 과제를 다하지 않은 분은 어떻게 하느냐구요....
으음... 아무래도 그 과제부터 해야겠지요. 그렇지요?
|
첫댓글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