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해설>
뜨거운 열정의 승부사- 김년균 시인의 삶과 문학 (시집 <하루> 해설)
정 성 수(丁成秀)
1.삶의 편린에 대해
지난 1972년, 김년균 시인이 결혼할 때의 일이다. 작가 백시종씨가 사회를 보고 작가 이문구씨가 축의금 접수를 하고 작가 정종명씨가 그밖의 여러 가지 일을 도와주고 지금은 고인이 되신 <무녀도>의 작가 김동리 선생이 주례를 섰으니 그야말로 한 사람의 시인 결혼식을 위해서 당대의 내로라 하는 작가들이 총동원(?)된 셈이다.
그 때는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어려울 때였는데, 역시 결혼과 함께 새 출발을 하면서 이것저것 살림살이에 보태쓸 일이 많은 김년균 신랑은 아직 총각을 면치 못한 어느 동창생 작가에게 필요한 대로 우선 축의금을 가져다가 쓰라고 했다. 물론 정종명씨에게 조건없이 빌려주었던 그 축의금을 나중에 다시 돌려받기는 했지만, 이것이 어디 보통 사람으로서는 생각이나 할 수 있는 일인가.
자신도 어려운 처지에 다른 때 다른 돈도 아니고 결혼식날, 그것도 결혼 축의금을 우선 필요한 대로 가져다가 쓰라고 할 사람이 이 세상에 과연 몇이나 있겠는가.
이 작은 일화는 김년균 시인의 그 넉넉하고도 특별한 일면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자신이 아끼는 주위 사람들에 대한 그의 우정은 늘 이렇게 아름답고 각별한 바가 있다.
작가 이문구씨와의 변함없는 친분 관계라든지, 작가 김동리 선생과의 깊은 사제의 정, 시인 구상 선생과의 부자 같은 인간 관계 등 그의 사람에 대한 정분도 남 달리 깊고 특별하다.
그는 참으로 열정적인 시인이다. 그의 문학에 대한 열정은 문자 그대로 타고난 것인 듯싶다. 그 불꽃 같은 열정은 상황에 따라서 잠시 게으름을 피우는 일도 없이 한평생 내내 조금도 변함이 없다.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그는 언제나 적당히 넘어가는 법 없이 꾸준히, 그리고 열심히 시를 썼다.
문인협회 기관지인 <월간문학> 초창기에 작가 이문구씨와 함께 그 잡지를 만들었고, <한국문학> 편집장, (주)지학사 편집국장, (주)문학사상사 편집인 겸 전무이사 등 주로 문예지 일에 관여하면서 그는 끊임없이 시를 썼다.
아무리 바쁘고 시간에 쫓기더라도 그는 시간이 부족하면 밤을 새우다시피 하면서라도 늘 적지않은 양의 시를 쓴다. 말하자면 김년균 시인은 직장과 문학, 그 어느 한쪽으로도 기울지 않게 그 두 가지의 일을 공평하게(?), 그리고 충실하게 이끌어가는 놀라운 능력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직장 일과 자신의 문학에 거의 똑같이 열정을 쏟아붓는다는 것은 생각처럼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야말로 문학에 대한 뜨거운 열정과 의지, 노력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필자는 지금까지 그가 직장 일을 소홀히 하거나 시 쓰는 일을 게을리 하거나 그 어느 것 하나라도 적당히 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그의 사전엔 문자 그대로 얼렁뚱땅이 없다.
누구 못지 않게 매사에 부지런하다. 언제나 자기 일에 열심이다. 그것도 반은 타고난 것이고 반은 그의 노력과 성실 때문일 것이다.
필자가 김년균 시인과 개인적으로 알기 시작한 것은 그가 <한국문학> 편집장 일을 할 때부터였는데,
가끔 그의 사무실에 들려보면 얼마나 열심히 일을 하는지 곁에서 바라보는 사람의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지금은 술을 마시지 않지만 그 당시에는 맥주라면 두주(斗酒)를 불사하는 애주가였는데, 거의 날마다 밤 늦게까지 술을 마시면서 언제 그렇게 수많은 시를 쓰는지 신기할 정도로 자주 신작을 발표하곤 했다. 타고난 능력도 뚝심도 건강도 대단한 사나이가 아닐 수 없다.
그야말로 잘 나가던 <한국문학>이 어느 날 갑자기 다른 사람의 손으로 넘어가게 되자 그는 (주)지학사로 직장을 옮기면서 명륜동에 문학 전문 출판사 <친우>를 차렸다. 그때 필자는 그의 권유에 따라 이것저것 생각할 것도 없이 정년퇴직이 보장된 직장을 하루 아침에 내던져버리고 그와 함께 <친우>팀에 합류를 했다.
김년균 시인과 함께 자유롭게 일하고 자유롭게 글을 쓰겠다는 아주 소박한 꿈이었지만 그것이 생각처럼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출판사 대표인 김년균 시인이나 명색이 주간인 필자나 두 사람이 다 사업가 출신도 아니고 그렇다고 거액의 유산을 물려받은 처지도 아니기 때문에 처음부터 자금이 문제였다. 기본자금이 넉넉지 못한 상황에서 아무리 개인적으로 잘 안다고 한들 안면만 가지고 좋은 작가의 좋은 원고를 구할 수는 없는 것이 우리의 너무나도 당연한 현실이었다.
작가들에게 충분한 선인세를 지불하고 신문이나 잡지 등에 대형광고도 많이 내야 하는데, 우리로서는 그럴 만한 충분한 경제적 여력이 없으니까 우리가 원하는 원고를 제대로 구할 수가 없었다.
예를 들자면 유명작가의 장편소설을 내야 독자들과 정면승부를 벌일 수가 있는데, 그것이 불가능하니까 여러 작가의 단편소설을 묶어서 단편집을 내는 식이다. 훌륭한 작가들이 좋은 단편을 많이 주었지만 예나 지금이나 단편소설의 독자는 극소수에 불과하므로 그 단편집들이 우리들의 출판사업에 크게 도움이 되지는 못 했다.
하여간 그런 불리한 조건 속에서도 그는 단편집, 수필집, 시집, 번역서 등 국내외의 문학서적들을 열심히 출판했다. 낮에는 직장에 나가고 저녁에는 출판사 일을 하는, 최소한 1인 2역의 일을 그는 참으로 훌륭하게 이끌어 나갔다. 그 성실과 건강과 노력은 가히 경탄할 만했다.
하지만 너무나 당연하게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실과 건강과 노력만 가지고 사업이 번창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늘 우리를 안타깝게 했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그는 오랫동안 출판일을 계속했다. 나중에 직장에서의 지위가 자꾸만 높아지면서 직장일과 출판일을 병행하기가 어려워지자 하는수없이 휴업계를 냈지만 그동안 출판한 책의 종류도 적지 않다.
그는 어떤 일이든지간에 일단 손을 대면 절대로 그것을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투지와 끈기와 집념의 사나이,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사나이, 외유내강의 사나이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그의 가족을 포함한 몇 가족이 어울려 여행을 다닌 적이 있다. 가까운 남이섬을 비롯해서 서해의 을왕리섬과 변산 해수욕장, 경주와 부산 광안리 해수욕장 등이다. 그것도 김년균 시인의 적극적인 추진이 아니었으면 겨우 남이섬 정도 가는 것으로 끝나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의 능동적인 적극성 덕분에 몇 년에 걸쳐서 여름만 되면 아이들을 데리고 함께 여행을 다닌 것이다. 그는 언제나 그렇게 열정을 가지고 주위 사람들을 이끌어 나가는 활달하고도 거침없는 모습을 우리들에게 보여주곤 했다.
말하자면 그는 여러 사람들 속에서 알게 모르게 무엇인가 늘 창조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은 그런 적극적인 사람들에 의해 새롭게 변화되고 활력을 얻게 되는 것이 아닐까?
문학과 함께 반평생을 보낸 그가 최근엔 자신이 소장하고 있던 서적 1만여 권을 전주에 있는 전북대학교 도서관에 기증했다. 문학서적을 중심으로 한 그의 모든 책을 기증한 것이다. 자신의 분신이나 다름없는 책들을, 아직도 살 날이 창창한 50대 후반의 나이에 후학들을 위해 아낌없이 기증한 것이다.
수많은 책들을 혼자서 끌고 다니는 것보다는 여러 학생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어주는 것이 훨씬 더 생산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그는 모든 책을 남김없이 보내고 나니 오히려 홀가분하다고 했다.
그 책들이 어떤 책들인가. 젊었을 때부터 생활비를 아끼고 용돈을 아끼면서 한두 권씩 사 모으거나 저자로부터 증정을 받거나 출판사를 하면서 피땀 흘려 만든 책들이다. 모두가 다 소중한 그의 영혼의 보고들이다.
그의 삶이, 희로애락이 녹아있는 그 수많은 장서가 지금은 전북대 도서관에서 그의 손길 대신 여러 학생들의 손때를 기다리고 있다. 노인도 아닌 장년의 나이에 그런 결단을 내린다는 것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도 자신의 손에 남겨놓은 책이 거의 없이 자기가 지니고 있는 장서를 모조리 다 기증했다는 것은 그가 곧 다른 나라로 이민을 가는 것도 아니고 무슨 중병에 걸린 것도 아닌 정상적인 상황에서 보자면 더더구나 쉬운 일이 아니다. 그에게서 일종의 무소유의 정신을 보는 듯하다.
김년균 시인의 생애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놀라운 사건이 하나 있다. 바로 종교에의 귀의이다. 그는 몇 년 전부터 독실한 신앙인이 된 것이다.
그 때부터 그렇게 좋아하던 맥주도 끊었다. 나는 김년균 시인이 그렇게 변한 데 대해서 한때는 몹시 놀랐었다. 하지만 무엇이든지 맘 먹으면 대충대충이란 게 없는 김 시인이므로 종교 역시 그저 적당히 어물쩍 넘어가지 않는다.
교회에 들어갈 때는 주님을 생각하고 교회에서 나올 때는 주님을 잊어버리는 식이 아니라 평소에도 늘 자신의 영혼 속 깊숙이 주님을 담아놓고 있는 것이다. 그 하나의 예로 그는 최근에 다윗처럼 주님을 찬양하는 <나는 예수가 좋다>(믿음출판 다윗마을)라는 믿음시집을 상재하기도 했다. 신앙시로만 한 권의 시집을 만든 것이다.
이것이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종교를 가진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한 시인이 신앙시집 한 권을 갖는다는 것은 생각처럼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다. 신앙시 한두 편을 쓰는 것도 쉽지 않은데(그만큼 신앙시는 시인에게도 아주 어렵고 부담스러운 것이다), 하물며 한 권의 시집이라니..... 종교에 대한, 아니 주님에 대한 끓어오르는 경외심과 열정이 없으면 그것이 잡문이 아닌 이상 그 누구에게도 거의 불가능한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현재도 그는 모 기독교 전문지에 신앙시를 연재하고 있다. 백지 앞에서 볼펜만 들면 신앙시가 끊임없이 쏟아져 나온다.
이 정도면 김년균 시인이 신앙시를 쓴다기보다 그의 가슴 속에서 신앙시가 저절로 흘러 넘치는 것이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아마도 요즘에 김년균 시인은 아무도 모르게 <호수공원> 벤치 위에서 주님과 자주 은밀하게 독대(獨對)를 즐기고 있는 모양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 많은 신앙시를 그렇게 쉬지 않고 계속해서 써낼 수가 없다.
김년균 시인이 이렇게 독실한 기독교인이 되기까지 그의 곁에서 20년 동안 정성을 다해 기도해 온 사람이 있다. 그를 주님 앞으로 인도한 1등 공신, 바로 그의 남동생 김석균 전도사다. 김석균 전도사는 복음성가 작곡가 겸 작사가, 가수로서 <사랑의 종소리>, <예수가 좋다오>, <나는 행복해요> 등 수많은 히트곡을 낸 바로 그 장본인이다.
김석균씨는 20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김년균 시인을 위해 기도했다고 한다. 형님을 주님 앞으로 인도해 달라는 아우의 그 지극한 정성 또한 대단한 것이다. 그 기나긴 기도가 마침내 주님을 감동시키고 김년균 시인을 감동시켰다.
김년균 시인이 어느 교회에 나가야 하느냐고 김석균 전도사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전화를 받는 그의 눈에서는 눈물이 쏟아졌다고 했다. 김년균 시인이 종교에 귀의하는 특별한, 아주 특별한 순간이었다.
이제 김년균 시인은 그동안 써왔던 일반적인 시와 함께 신앙시를 열심히 쓰는 훌륭한 믿음의 시인이 되었다. 그야말로 <거듭 난> 것이다.
고등학교 다닐 때부터 문학에 미쳐 있었던 그가 문학과 함께 종교에도 미침으로써 그는 문학의 전도사와 기독교의 전도사를 동시에 겸하게 된 셈이다. 문학과 직장과 종교가 혼연일체가 되어 하나의 문학적 삶을 이루게 된 김년균 시인이 앞으로 또 어떻게 눈부신 변모와 발전을 보여주게 될지 곁에서 지켜보는 우리들은 그저 황홀할 뿐이다.
2. 시의 편린에 대해
시집 약력에 소개된 것처럼 김년균 시인은 그동안 시집 <장마>를 비롯하여, 수필집, 편저, 공저 등 수많은 저서를 상재했다. 특히 그는 유신 말기 때부터 지금까지 <사람> 연작시를 꾸준히 써오고 있다.
김년균 시인이 처음으로 사람 연작시집인 <사람>을 냈을 때, 필자는 그에게 한평생 내내 <사람> 연작시를 쓸 것을 권한 바 있다. 그 당시에 그는 대찬성을 했었다. 시란 어차피 우리 사람의 얘기를 쓰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번에 상재되는 김년균 시인의 시집 <하루>는 그의 아홉 번째 시집이 된다. 한 사람의 시인으로서 대단한 수확이 아닐 수 없다. 생의 마지막까지 시를 쓰는 시인이야말로 가장 행복한 시인일 것이다.
과작을 자랑으로 여기는 시인도 더러 있는 모양이지만, 그 작품들이 모두 탁월한 시라고 할지라도 그것은 시인으로서 올바른 태도가 못 된다. 화가는 그림을 그릴 때 진정한 의미의 화가가 되는 것이고 시인은 시를 쓸 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시인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김년균 시인은 지금까지 시인으로서의 직무유기를 한 적이 전혀 없는 아주 성실한 현역시인이다. 최근에 믿음시집 <나는 예수가 좋다>를 내고, 그 시집을 낸 지 이제 채 한 달 반도 되지 않았는데 또 다시 새 시집을 낸다고 하니, 시에 대한 그의 끊임없는 열정에 그저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번에 상재되는 시집 <하루>는 신앙시를 제외한 일반적인 시들을 모은 것이다. 이제 그는 종교시와 일반시를 자유롭게 오가는 시의 달인이 된 셈이다.
이제 김년균 시인의 새 시집 <하루>에 실려있는 작품들 중에서 그 일부를 꺼내어 감상해 보도록 하자.
생명
-- 사람
언젠가 있으리.
다시 왔으리.
세상천지 어느 하나 손발 닿지 않는 곳 없이
어둠에 길들여진 고샅까지 눈물을 뿌려놓고,
가냘픈 풀숲만 쌓인 서럽고 질척한 그곳에
억만 번 빠져들어 죽을 고생을 하다가,
머리 끝 상투는 아니어도 길고 긴 꼬리 잡혀
기어이 잘려서 낯서른 바람 손에 남겨 주며,
하루도 온전하게 마음 한 번 편치 못하고
남의 집 담장 넘듯 아슬아슬하게 지내다가,
좋은 세월 다 갔으리.
홀연히 지났으리.
그러나 아직도 못 잊힌 듯 천 년의 언덕 너머
주변만 빙빙 돌다 또 돌아오리.
이 작품 역시 김년균 시인의 <사람> 연작시 중의 하나이다. 1연에서 시인은 ´언젠가 갔으리. /다시 왔으리.´라고 노래한다.
여기서 김년균 시인의 영혼 불멸의 정신, 재생과 부활, 윤회사상을 들여다볼 수 있다. 그에 의하면 한 생명(인간)은 1회의 생으로 그의 생애가 모두 다 끝나는 것이 아니다. 지상에 태어나서 한 생애를 누리다가 그 생명이 다하면 나중에 그 생명이 다시 생명체들의 역동적인 터전인 지상으로, 우리들의 살아있는 현세로 돌아오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생명의 긍정인 영원불멸의 부활과 재생을 노래하면서도 그의 세계 인식은 오히려 비극적이다. 부활한 생명(사람)은 ´어둠에 길들여진 고샅까지 눈물을 뿌려놓고,´ ´서럽고 질척한 그곳에 억만 번 빠져들어 죽을 고생을 하다가,´ ´좋은 세월 다´ 보내버리고 마는 것이다.
말하자면 한 생명체가 그의 반복된 삶을 누리는 이 세상은 눈물과 고통으로 점철된 채 좋은 시간을 낭비하고 마는 허망한 비극적 공간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생명은 이승을 잊지 못하여 저승주변을 ´빙빙 돌다 ´ ´또 돌아오´고야 만다.
슬픔과 고통 속의 삶인데도 불구하고 그 생명체는 왜 죽음 뒤에서 다시 부활을 꿈꾸는 것일까. 왜 저승에서 안주하지 못하고 이승에의 회귀를 노리는 것일까. 바로 그 속에 이 시를 반전으로 이끄는 깊은 뜻이 숨어 있다.
이 시가 표면적으로 노래하지 않은, 행간 속에 숨겨둔 비장의 카드, 그것은 다름 아닌 우리들의 삶의 세계에 대한 근원적인 대긍정이다. 슬픔과 고통 속에 숨겨져 있는 기쁨과 즐거움, 슬픔과 고통을 뛰어넘는 삶의 희열과 아름다움, 바로 그것 때문에 비록 우리들의 삶이 한편으론 고달프고 힘힘들더라도 한 생명체는 끊임없이 새로운 부활, 즉 영생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이 시는 삶의 슬픔을 노래한 것이 아니라 역설적으로 삶의 기쁨을 노래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시 <생명>에서 역설과 행간의 묘미를 함께 보여주는 그의 깊은 뜻을 맛보는 유쾌한 즐거움을 누리게 된다.
다음엔 역시 <사람> 연작시 중의 하나인 <아내와 그리움>을 감상해 보도록 하자.
아내와 그리움
-- 사람
아내를 보는 게 낙이다.
아내와 마주앉아 그리운 얼굴에 기미처럼 작게 핀
꿈도 따고 꽃도 따고 향기도 맞는 게 요즘 낙이다.
그 얼굴에 혹은 잘못되어 궂은 날 비구름이라도 덮이면
구름을 걷어내고 맑은 하늘 맞이해 보는 일도 낙이다.
설령 그 구름들이 속속들이 잘못되어 원수처럼 뒤틀리어
얼굴을 짓밟고 성처내며 엉겨붙는다 해도
그 얼굴에 숨은 마음을 찾아보는 일은 더욱 큰 낙이다.
살면 얼마나 살랴.
돌아올 수 없는 시간은 자꾸 뺑소니치며 달아나고
욕심 많은 바람은 아직도 골목을 휩쓸고 있는데,
별수없이, 앉을 자리 설 자리 빼앗기다 보면
돌아갈 날도 멀지 않으리니,
오늘같이 다행한 일 어디 있으랴.
그리움과 마주앉은 일은 낙이다.
눈부신 낙이다. 다시없는 낙이다.
이제 바라느니,
이러다 좋은 세월 다 가서 석양이 오면
우리 함께 실어갈 배 하나 있으면 좋으리.
아주 감동적인 작품이다. 아내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 참으려고 해도 도저히 참을 수 없이 저절로 밖으로 넘쳐나는 듯한 시다. 김년균 시인의 시가 비교적 쉬우면서도 호소력이 있는 것이 그의 시의 가장 큰 특징 중의 하나이지만 이 시는 그 중에서도 매우 독특한 작품이다.
특별한 기교를 부리지 않고 필요 이상으로 얼굴에 힘을 주지도 않고 아내 앞에 앉아서 독백을 하듯이 편안하게 써 내려간 이 시가 우리에게 이처럼 큰 감동을 전해주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우선 작품을 들여다보자.
제1연 제1행에서 시적 화자(퍼스나)는 ´아내를 보는 게 낙이다.´라고 진술한다. 아내를 보는 게 낙(즐거움)이라는 이 단정적이고도 단호한 구절은 이 시 전체를 처음부터 따뜻하고 부드러운 사랑의 분위기로 충만하게 한다.
아내를 사랑하는 화자의 감정은 그저 일상적으로 지나가는 말 정도의 것이 아니라 절대적 확신에 찬 결의와도 같은 것이다. 이 구절은 우리들이 흔히 저지를 수 있는 ´나는 아내를 사랑한다.´라는 상투적인 표현보다 몇 배나 더 큰 감동의 울림을 전해준다.
화자는 이제 독자들에게 아내를 보는 낙의 구체적인 사례를 보여준다. 화자는 말한다. ´아내와 마주앉아 그리운 얼굴에 기미처럼 작게 핀/ 꿈도 따고 꽃도 따고 향기도 맡는 게 요즘 낙이다.´라고.
우리는 여기서 한평생 시간에 쫓기고 일에 쫓기다가 어느 한때 잠시나마 시간적 여유와 정신적 여유를 동시에 지니게 된 한 장년의 사나이를 연상할 수가 있다.
그 사나이가 오랜만에 아내와 마주앉아서 그동안 제대로 여유롭게 쳐다보지도 못했던 그녀의 얼굴을 맞선이라도 보듯 찬찬히 들여다본다. 아, 아내도 늙어가는구나. 한 집에 함께 살면서도 생활 속에서 그냥 관습적으로 흘러만 가던 아내의 얼굴, 그래서 차라리 한 그리움의 얼굴로 남아있던, 어쩌면 낯설기조차 한 아내의 얼굴에서 이 시의 화자는 아내의 꿈과 아름다움과 향기를 재발견한다.
그것은 자신과 함께 지금까지 정신없이 살아온 아내에 대한 쓸쓸한 연민이자 깊고 따뜻한 사랑이다. 어쩌면 화자는 참으로 오랜만에 아내에 대한 사랑을 절실하게 느꼈을지도 모른다.
화자는 아내의 얼굴에 덮인 ´구름(근심 걱정)´을 걷어주고나서 아내와 함께 ´맑은 하늘(행복한 시간)을 맞이하기도 한다. 설사 남편인 화자가 아내의 고통을 덜어줄 수 없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그 얼굴에 숨은 마음을 찾아보는 일은 더욱 큰 낙이다.´
이 시의 화자는 1연에서 아내를 사랑하고 도와주면서 느끼는 즐거움을 노래한 다음 2연과 3연에서는 아내와 자신의 죽음을 노래한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상황 전개가 아닐 수 없다.
´살면 얼마나 살랴./돌아올 수 없는 시간은 자꾸 뺑소니치며 달아나고/욕심 많은 바람은 아직도 골목을 휩쓸고 있는데,´.
이제 화자는 사랑하는 아내를 바라보면서 그대와 내가 앞으로 살면 얼마나 살 것인가 하고 두 사람간의 이별, 즉 죽음을 생각한다. 이미 시간은 덧없이 흘러가고 삶의 고통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데,
´별수없이, 앉을 자리 설 자리 빼앗기다 보면/돌아갈 날도 멀지 않으리니,´ ´오늘같이 다행한 일 어디 있으랴.´
그렇다. 이제 머지않아 죽음의 날이 올 텐데, 오늘처럼 그대(아내)와 마주앉아서 그대를 그리워하고 생각하고 사랑하면서 그대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이냐. 이런 따뜻한 시간이 우리에게 주어졌다는 것이 얼마나 고맙고 다행스러운 일이냐.
3연에서 이 시의 시적 화자는 다시 즐거움을 노래한다. ´그리움과 마주앉는 일은 낙이다./눈부신 낙이다./다시없는 낙이다./이제 바라느니,/이러다 좋은 세월 다 가서 석양이 오면/우리 함께 실어갈 배 하나 있으면 좋으리.´
화자는 그동안 두 사람만의 고요한 시간조차 갖기 어려운 바쁜 생활 속에서 차라리 그리운 존재였던 아내와 마주앉는 일은 눈부신 낙이고 다시없는 낙이라고 그 즐거움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그 다음에 화자는 자신의 소원을 진술한다.
이렇게 살다가 어느 날 죽음의 시간이 오면 아내와 함께 저승으로 가고 싶다고. 함께 저승으로 갈 배 한 척을 구했으면 좋겠다고, 아내와 함께 죽음의 배를 타고 요단강을 건너가고 싶다고. 그것이 이제 내가 바라는 바라고...
아내에 대한 사랑이 이 정도면 그야말로 사랑의 극치가 아닌가. 결혼과 이혼을 밥 먹듯이 하는 요즘 젊은이들의 머리 위에 이 시를 신문 호외처럼 뿌려주고 싶구나.
다음 시를 보자.
전화 후
-- 사람
처음엔 안 계신다고 하더니
다음엔 돌아가셨다고 한다.
안 계신다는 것이, 돌아가신 것인 줄
모르던 내가, 무엇이 두려운지
며칠이고 깜짝 놀란다.
이렇게 소문없이 벌어지는 일들이
세상엔 얼마나 많으며
사람들은 얼마나 익숙해 있는지,
세월이 가기 전에 알아보고 싶다.
처마 밑 허리춤에 걸린 햇살을 잃어버리고
노을이 찾아들어 부끄러워지기 전에,
돌아가신 이들은 왜 안 오는지,
사람들은 왜 이리도 희망이 없는지,
그 일을 알아보고 싶다.
<전화 후>라는 제목이 암시하는 바와 같이 이 시는 인간의 덧없는 죽음을 노래한 작품이다. 1연에서는 삶의 덧없음을 노래하고 2연에서는 처음에 전화했을 때 상대방쪽에서 지금 집에 계시지 않다고 대답한 것이 나중에 알고 보니 그분이 그냥 외출중이 아니라 영원히 돌아오지 못하는 외출, 즉 사망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대답한 것이었고, 그 사실을 안 뒤로는 일종의 죽음에 대한 공포와 전율로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외출이 바로 죽음일 수도 있다는 것, 사람의 죽음이란 외출처럼 아주 쉽고 빠르게 올 수도 있다는 것, 살아있는 일과 죽음이 한순간이라는 것 등이 이 시의 화자로 하여금 삶과 죽음을 동시에 두렵게 한다.
살아있어도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신뢰할 수 없는 심리적 공황상태 속에 빠져버린 화자는 3연에서 현대인들의 소외와 단절, 죽음에 대한 무신경, 그런 것들에 대한 소름 끼치는 무관심을 질타한다.
4연과 5연에서는 꿈과 행복을 잃고 죽음의 순간이 다가오기 전에 죽은 사람들이 왜 부활하지 않는지, 환생하지 않는지, 그리고 인간에게 ´왜 이리도 희망이 없는지´, 죽음 뒤의 내세에 대한 의문을 풀고 싶어 한다. 말하자면 죽음에 이르기 전에 신의 영역, 신의 암호를 풀고 싶어 하는 것이다.
이번엔 <의인>을 감상해 보도록 하자.
의인
-- 사람
요즘 내가 만난 것은
죽어서 열매 맺는 한 알의 씨앗이었다.
좋은 세상 만들려고 목숨까지 내던진
의로운 씨앗.
술 먹고 먼지 쓰고 하릴없이 득실대는 저자거리에 묻혀,
밝은 빛을 못 보는 얄궂은 짐승처럼 속만 자꾸 끓이다가
이윽고 세상 인심 깨우는 칼날이 되어 제 목숨 내어놓고
하늘로 간 씨앗.
하늘에서 어느새 하늘 물에 몸 헹구고
하느님이 어루만져 상처도 다 아물어
파릇파릇 잎 돋으려 발돋움하는
신비한 씨앗.
열매야 훗날 주렁주렁 열릴 일이로되
지금 당장은
이를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그것이 궁금한 일이다.
<의인>은 문자 그대로 옳은 일을 위해서 생명을 바친 사람을 노래한 작품이다. 독자 여러분께서 어떤 의인 한 분을 미리 머리 속에 상정해 놓고 이 시를 감상한다면 훨씬 더 이 시의 주제나 질감이 실감나게 다가오게 될 것이다.
1연에서 이 시의 화자는 ´좋은 세상 만들려고 목숨까지 내던진/의로운 씨앗.´을 만난다. 그 의인은 이제 하나의 ´씨앗´에 불과하지만 언젠가는 뿌리를 내리고 크게 자라서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탐스러운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살아서 열매를 맺지 못하고 죽어서 열매를 맺는 사람. 살아서 좋은 세상을 만들지 못한 대신 죽어서 좋은 세상을 만드는, 자신의 희생으로 보다 이상적인 사회를 만드는 데 크게 기여하게 되는 의로운 사람.
2연에서는 어지러운 세상(저자거리) 속에 묻혀서 ´속만 끓이다가´ ´이윽고 세상 인심 깨우는 칼날이 되어´, 잘라야 할 것을 잘라내는 칼날 같은 사람이 되어 자기 목숨을 내던져서 의로운 일을 저지르고 죽음의 세계로 떠난 의인을 노래한다.
3연에서는 저승에서 구원받고, 죽은 뒤에 이 세상의 변혁과 혁명을 이루는 하나의 씨앗 같은 존재로 승화되는 것을 노래하고 4연에서는 그 의인의 숭고한 죽음이 싹이 되어 훗날 훌륭한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지금 그것을 깨닫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알 수 없다고, 진정한 의인을 몰라보는 세태를 한탄한다.
다음엔 시 <외출>을 보기로 하자.
외 출
-- 사람
다들 떠났다.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아무도 돌아오지 않았다.
짧은 3연 짜리의 시다. 1연에 1행씩, 3연에 3행으로 끝나는 단시. 일본의 하이꾸처럼 짧다. 따라서 외우기도 좋은 작품이다. 프랑스에서는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누구나 다 시 3백여 편 정도를 외우게 된다고 한다. 학교에서 의도적으로 시 암송 교육을 철저히 시키는 것이다.
우리도 음란, 자살, 폭력 사이트들이 난무하는 이 살벌한 시대에 나중에 우리의 미래를 이끌어 나아갈 우리 어린이들의 정서 함양을 위해서라도 초등학교 때부터 시를 암송하는 훈련을 시키면 어떨까.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 1연에서 화자는 ´다들 떠났다.´고, 사람들이 어디론가 모두 떠나버렸다고 노래한다. 그 다음 2연에서는 떠난 사람들이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고 노래한다.
마지막 3연에서는 ´아무도 돌아오지 않았다.´고 노래한다. 즉 이 시에서의 ´외출´은 죽음을 의미하지만 그 죽음은 영원한 것이 아니다. 아주 잠깐 동안의 일이다. 왜냐하면 죽음은 저승으로의 일시적인 <외출>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외출했다가 귀가하면 다시 정상적인 가정생활이 이루어지듯이 어디론가 떠나간 사람들은 머지않아 부활하여 다시 이 지상에서 자신의 생을 계속해서 누리게 될 것이다. 이 시에서도 우리는 김년균 시인의 부활의지, 영생의지를 읽게 된다.
유한한 생명을 지닌 우리 인간들의 꿈, 부활 의지는 그것이 설사 불가능하다고 할지라도 인간이 존재하는 한 지구와 함께 영원할 것이다.
이제 우리는 마지막으로 이 시집의 표제시 <하루>를 감상해 보기로 하자.
하 루
--사람
<아침>
날아간 새가 처마 밑에 돌아와 맴돈다.
평소엔 개떡같던 꿈들이 날개를 펴며
오색 옷 갈아입고 춤춘다.
밤새도록 어둠에 갇혀 있던 해가
무슨 힘을 얻었는지 벌겋게 떠오른다.
눈부신 의기(意氣)가 바다를 낳는다.
나뭇잎들이 풀잎들이 온통 눈물을 머금고
감격하여 손발을 쳐들며
하늘을 우러러본다.
웬일인가 했더니, 모두가 일어서는
아침이었다.
<낮>
중심은 늘 강하다.
강철같은 힘이 더 큰 힘을 위해 중심을 돕는다.
우스워라, 지난밤도 골목을 누비던 늑대 같은 친구들
겁없이 넘겨보다 병을 얻어 자리에 눕고,
아직도 정신 못차린 친구는 무슨 변을 당하려는지
문 앞에서 염탐하며 서성댄다.
중심은 힘의 근원이다.
물러설 수 없는 유혹의 불길이다.
하늘에서 격려하고 땅에서 채근하고
세월은 돈 주고 약 주고 수시로 등 떠민다.
웬일인가 했더니, 모두가 한창인
대낮이었다.
<저녁>
날이 궂다.
멀쩡한 마음에 빗물이 고이고,
소문난 걱정들이 처마 밑에 몰려와서
자리를 편다.
하늘이 별안간 내려앉는다.
믿었던 세상이 어둠에 스며들고
아침부터 신명나던 새들은 우왕좌왕 길을 잃고
골목에 주저앉아
훔쳐먹었던 꿈들을 게워낸다.
바람이 칼날처럼 사방 벽을 상처낸다.
정다운 친구들은 다 어디로 갔나.
친구는커녕
낯선 사람 하나 보이지 않는다.
웬일인가 했더니, 모두가 드러눕는
저녁이었다.
이 시는 <아침>, <낮>, <저녁>의 세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하루>를 3등분한 셈인데, 그것은 물론 우리의 삶, 우리들의 일평생을 상징한 것이다.
<아침>에서는 청소년들의 꿈과 희망을 노래한다. 그 무렵엔 ´날아간 새(이상)´마저도 어둠 속에서 돌아온다. ´... 꿈들이 날개를 펴며/오색옷 갈아입고 춤춘다.´. 즉 그 누구나 다 오색찬란한 꿈과 희망에 부풀어 있다.
거대한 꿈(해)은 이글이글 타오르면서 청소년에게 바다와 같은 호연지기(浩然之氣)를 키워준다. 이 세상 모든 것들(나뭇잎과 플잎들까지)이 다 감격하여 푸른 꿈을 안고 저 높푸른 ´하늘을 우러러본다.´ 청소년기는 그 누구에게나 아무 두려움 없는, 힘차고 씩씩하고 황홀한 꿈의 시대이다.
<낮>은 하루의 ´중심´이다. 가장 눈부시게 활동을 할 시기이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생의 충만함을 만끽하는 때이다. 그래서 ´중심은 늘 강하다.´
이제는 ´늑대 같은 친구들´도 두렵지 않다. ´아직도 정신 못 차린 친구는 무슨 변을 당하려는지/문 앞에서 염탐하며 서성대´지만 그들이 두렵기는커녕 오히려 그들의 안전이 염려스러울 지경이다. 청소년기를 거친 젊은이들은 어느새 그 누구도 두렵지 않을 만큼 당당한 실력을 갗춘 늠름한 사나이가 되었다.
´중심은 힘의 근원´이기 때문에, 젊은이들은 이미 힘의 중심에 놓여있기 때문에 ´물러설 수 없는 유혹의 불길´처럼 그 무엇에든지 거침없이 도전한다. 그렇게 하도록 ´하늘에서 격려하고 땅에서 채근´한다. 시간은 그들이 힘차게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가라고 수시로 등을 ´떠민다.´
하지만 이제 <저녁>이 되었다. 꿈에 부풀었던 청소년기가 지나고 그 꿈에 수없이 도전했던 젊음의 시대도 지나가고 이미 알게 모르게 나이가 들어 ´멀쩡한 마음에 빗물(슬픔)이 고이´고 ´소문난 걱정들이 처마 밑에 몰려와서/자리를 편다.´
삶에 대한 도전의 시대는 가고 정리의 시대가 온 것이다. 사회의 중심에서 밀려나고 소외되어 가는 시대가 왔다. 그리하여 ´하늘이 별안간 내려앉는´ 절망을 느끼고 ´믿었던 세상이 어둠(좌절과 절망)에 스며들고´ 그동안 ´훔쳐먹었던 꿈들을 게워낸다.´
온몸이 그야말로 ´상처´ 투성이다. 주위에 몰려들었던 ´정다운 친구들은 다 어디로´ 사라져 버리고 ´낯선 사람´들조차 보이지 않는다. 이제 화자는 노년층에 접어들면서 이 사회에서 자연스럽게 소외되고 고립된다.
´웬일인가 했더니, 모두가 드러눕는/저녁이었다.´. 희망의 <아침>과 열정의 <낮>을 지나서 죽음을 눈앞에 둔 소외의 <저녁>이 되는 것은 그 모두가 자연스러운 대자연의 이치일 뿐, 하나도 슬퍼하거나 서러워 할 일이 아니라는 깨달음의 세계에서 이 시는 그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그러니까 시 <하루>는 한 깨달은 자의 노래이다. 상투적인 언어가 아니라 살아본 자의 노래이다. 그 때문에 이 시는 일상을 넘어서 새로운 감동의 전율을 우리들에게 전해주게 되는 것이다.
문자 그대로 주마간산(走馬看山)식으로 김년균 시인의 삶과 시에 대해서 몇 가지 얘기를 적어보았다. 따라서 여기에 씌어진 김년균 시인의 삶이나 시에 관한 얘기는 그의 전체적인 삶과 시에 비하면 이 글의 소제목처럼 하나의 조그마한 <편린(片鱗)>에 불과하다.
김년균 시인의 생애와 시에 대한 무궁무진한 이야기는 앞으로 그 누군가가 아주 훌륭하게 엮어나갈 때가 있으리라. 이 글은 그 단초의 하나를 제공하는 것으로서 한 중진시인에 대한 예의를 대신하고자 한다.
앞으로 김년균 시인의 시가 그 뜻과 기를 더하여 우리 나라뿐만이 아니라 온 누리를 향해 들불처럼 번져나가기를 빈다. 그것은 김년균 시인은 물론 그를 사랑하는 우리 독자들 모두에게 즐거운 복이 될 것이다. 그 날을 기다리며.
- 2001년 봄
서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