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옳고 그름의 단상(斷想)... 또 하나의 그름을 보태면서...
시시비비(是是非非)...
옳은 것은 옳고 그른 것은 그르다.
이 말의 출전은 荀子에 있다. 한마디로 옳고 그름을 분별한다는 뜻이다. 시비분별의 별례로 흑백(黑白)과 표리(表裏), 명암(明暗)과 진위(眞僞) 등 대립의 양단(兩端)을 들기도 한다. 그런데 이 양단은 매우 주관적이고 입장의 차이에 따라 주객이 전도(顚倒)된다는 점이다. 가령 표리부동(表裏不同)이라 하여 겉과 속이 다름을 칭명함인데, 여기서 중요한것은 어디를 겉이라 하고 어디를 속이라 할 것인가이다. 일제 강점기 시절 큰스님의 법문을 듣기 위해 전국에서 사부대중이 운집하는 것을 막기 위해 감옥에 가두자 이때 제자가 면회를 가서 '안에서 얼마나 고생이 많으십니까?' 라고 하자 큰스님은 '누가 안이고 누가 밖인가?' 라고 경계의 분별이 주관과 객관에 있지 않음을 제자에게 일깨운 유명한 일화가 있다.
작금의 학과에서 일어나고 있는 대립 양단의 시비는 또 다른 밖의 시각으로 볼 때에는 양단의 대립 자체가 양면이 아닌 일면의 시비분별일 수 밖에 없음이다. 한마디로 비아냥 투의 '잘 한다...' 로 밖에 보일질 않는다는 말이다.
사실 작금의 일련한 사태는 이미 오래전에 예고되어 있던 사건에 불과하다. 그러니까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라 폭발의 임계점이 지금일 뿐이라는 것이다.
필자는 본교에 두 개의 교적이 남아있다. 하나는 11년에 1학년에 입학한 것이고, 또 하나는 12년에 3학년에 편입학하여 졸업을 한 교적이다. 뜬금없이 교적을 소개하는 것은 지금과 같은 사건이 이미 오래전에 예고 된 것임을 실고 하고자 함이다.
솔직히 단상을 적기 까지 적지 않은 고민이 있었음을 고백한다. 재학생과 졸업동문들의 전화와 학과 카페를 통해 사태를 주시하고 있었으며 학생회를 위시한 분쟁 당사자들의 지혜로운 타협을 통해 수습될 것이라 판단하고 경계인으로 관망하였음이 사실이다. 이른바 양비론적 관망자 였다. 이는 비단 졸업동문으로서 학내 문제에 간여하고 싶지 않은 것도 하나의 이유겠으나 더욱 솔직히 말하면 박사논문이 년말로 다가와 마음과 달리 시간적 여유가 제약되었음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학내의 문제는 이제 학교의 담장을 넘어 뉴스로 회자되고, 본질의 문제를 벗어나 서로를 내 몰기위한 이전투구의 2라운드로 까지 비화되고 있는듯 하다.
다행인것은 주관적 양단의 쟁점 중 공통분모가 형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는 학과 외적 문제를 제외한 내적 문제에는 양단이 모두 공감하고 있다는 점이다. 필자는 바로 이러한 공통분모에서 서로의 중지를 모으고 학과 외적 문제는 비난이 아닌 겸허한 비판과 담론을 통해 이전투구의 2라운드가 아닌 화합과 상생 그리고 진보의 2라운드가 되어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한 줄을 보태고자 함이다.
작금의 사태 발단은 '물상론 학습권'에서 비롯된듯 하다. 사실 이 문제는 비단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물상학회의 설립과 운영에 대한 계획은 2011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사태의 불행적 단초는 당시에는 많은 사람이 연류된 것이 아닌 몇 명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그 주도적 입안자가 바로 현 사태의 본질인 물상명리학의 법인장인 황영오 동문이다. 그는 당시 자신의 뒤를 이을 학생회 회장 후임 선출을 두고 필자와 대립하게 되었다. 이유는 현 사태의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학과를 이용한 학회설립 등의 계획을 간파한 당시 학생회 부회장이 그들의 불손한 동기를 저지하기 위해 고육책으로 회장에 출마하게 되었고 필자는 이를 지원하게 되면서 부터 이다. 당시의 이전투구 역시 지금의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물론 사태가 학교의 담장을 넘거나 법으로 비화하지는 않았지만 서로의 주장과 세력을 둘러 싼 또 다른 세력간의 알력 등으로 겉잡을 수 없는 갈증으로 비화했고, 사상 초유의 선거중단 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는 아마도 대한민국 대학교 학생회 선거에 학교가 개입한, 엄밀이 말하자면 학과장이 개입한 최초의 사건으로 기록 되었으리라 짐작된다.
당시에도 이러한 비리의 온상이 될 음모적 계획에 제동을 걸기 위해 사투를 벌였으나 일부의 학생들은 이에 대한 세부적 상황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심지어 선거운동을 돕고 있던 필자에게 까지 '기생'이라는 오명을 씌우기까지 하였으니 현재 학생회의 몸부림을 충분히 공감하고 십분 이해가 된다. 철저히 중립을 지켜야할 학과장이 학생회의 선거에 개입하고 유리한 상황을 눈앞에 두고 선거중단이라는 초유의 비상상황으로 몰고 가야만 했던 사태가 바로 현재 사건의 시발점이라 하겠다.
학과장까지 동원하고서도 그들은 선거에서 겨우 십여표를 더 얻어 당선이 되었고, 필자는 이를 사건으로 비화하지 않기 위해 당시 황영오동문을 비롯한 세력들에게 낙선 차점자 수석부회장 선임을 선거 전 상호 합의를 하였으나 그들은 이 마저도 이행하지 않았다. 당시 자신의 계획을 추진하기 위해 선택된 당선학생회장도 아마 이러한 그의 계획을 알지는 못했을 것으로 판단된다. 그는 필자를 회유하면서 제안한 계획이 바로 학회설립이었다. 그의 계획안은 매우 구체적이었고 사업성 역시 뒤떨어지지 않았다. 동문회를 발족하여 용인대학교의 태권도와 같이 졸업동문들을 대상으로 한 학교 브랜드의 유료화 방안이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그의 발상은 지금과 같은 극단적인 상업성이라기 보다는 졸업 동문들의 결속과 재학생들의 지원 등 순수성이 겸비된 착한 계획들로 포장되어 있었다. 다만 필자는 현재 학과에서 수업되고 있는 소위 '박도사 물상론'의 진위에 따른 검증을 위해 '물상 연구회'를 먼저 구성하자고 제안했으며, 물론 이 제안은 당시 학과장에게도 수차례 건의한 사안이기도 하였다.
이제 이에 대한 진실은 밝혀야 할 때가 된 듯 하다. 소위 '박도사 물상론'으로 일컬어지는 학과의 물상론은 박제산(霽山), 이른바 부산박도사의 물상론이 아니다. 제산선생은 단 한 명의 제자를 둔 바도 없지만 저서를 남기지를 않았다. 다만 그의 학문의 세계와 간명의 방법을 짐작할 수 있는 것은 그가 남긴 간명지가 전부이다. 물론 이 간명지 역시 그가 남긴 것이라기 보다는 당시 방문객들에게 주기 위해 작성한 대서사들이 남긴 기록지이다. 그들 대서들 중에는 남자도 있었고 여성도 있었으나 그들을 제자로 부르진 않았으나 이후 스스로 제자로 자칭하는 자는 있는것으로 안다. 물론 그들이 잠시 동안 서사를 했건 또는 말년에 중풍으로 고생할 때 휠체어에 모시고 수발을 했건 그를 진심으로 존경하고 신뢰하였다면 이는 분명 스승이요 제자라 칭명할 수는 있을 것이나 그의 학문을 계승하거나 전수받은 것이 아니기에 이를 계승제자라 하기엔 미흡하다 하겠다. 더욱이 선생의 문도에는 '비인비전(非人非傳)'이라는 유훈이 금도처럼 내려오고 있었기에 더욱 그러하다 하겠다. 선생의 스승은 여러분들이 익히 알고 있는 '청허선사'가 아니다. 이는 오기(誤記)가 아닌 전언자의 불상(不詳)에서 기인한 것으로 '청어선사'가 바로 스승의 법호(法號)이다. 스승의 도맥 법호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는 제자가 과연 세상에 또 있을까? 그리고 필자가 알기로 청어선사의 제자는 부산박도사만이 아니고 두 분이 더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으며, '비인비전(非人非傳)'이라 하여 무르익지 않은 근기자에게는 절대로 전하지 말라는 유훈을 반드시 지키도록 당부한 대로 박도사 역시 갑자기 찾아온 중풍으로 인해 그 흔한 명리서적 한 권 제자 한 명도 남기지 않았던 것이지 물상론을 비평하는 자를 칭하여 '비인비전(非人非傳)'이라 일컬는 말이 아니다. 말이야 바른말로 그런 식으로 서사를 하거나 휠체어를 밀었던 것으로 제자가 된다면 그 먼길을 그의 강의를 듣기 위해 달려갔던 필자야 말로 진정한 제자가 아니겠나. (웃음) 하지만 그것은 한 두번의 특강을 들은 것이지 전수 제자가 아니기에 진정 제자라 칭명할 수는 없지 않겠나.
필자는 요즘 학과의 사태를 지켜 보면서 칼융의 집단무의식, 즉 집단최면에 대해 통렬하게 공감하고 있다.
박제산, 부산박도사의 간명법이 이토록 회자되는 것에는 몇 가지의 상징성이 있다. 이는 그가 고인이라는 점이다. 즉 살아 있지 않기에 더 이상 검증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기인적인 삶과 당시 권력을 잡고자 했던 사람들과 정치인, 그리고 부자들에게 어필이 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맞고 맞지 않고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세인들에 의해 과장되게 부풀려진 그의 이력들이 명성으로 재포장되어 유포된 까닭이 강하였다. 사실 당시에도 그의 명성에 반해 '박도사도 별거 아니더라' 라는 소문도 절반을 훨씬 넘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소문은 '별거 아니더라' 보다는 '잘 맞추더라'의 전파 파급효과가 더욱 빠르고 강한것은 그를 통해 받은 메시지의 결과가 스스로 믿고 싶은 의지와 맞아 떨어지기 때문인 것이다. 그리고 그는 특정한 제자가 단 한 명도 없다는 것과 그가 남긴 명리서가 없다는 점이다. 바로 이 점이 집단무의식으로 오용되고 있는 것이며 이를 물상명리를 용도포장한 자들은 잘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의 제자가 있었다면 그를 통해 그의 이론을 재조명할 수 있거나, 또 그가 남긴 책이 있었다면 서책을 통해 그의 이론을 재조명할 수 있겠으나 안타깝게도 자칭 그의 제자라는 사람은 있어도 그의 서책이 없는 까닭에 더욱 그를 신비화로 재포장이 된 것이다. 여기에 대학교라는 제도권의 정규 커리큘럼에 편재되고 학생을 지도하는 교수가 이를 더욱 신비화로 재포장한 까닭에 이름 뿐인 박도사의 명성은 더욱 날개를 달게 된 것이다.
필자는 학과에서 박도사물상론을 가르치고 있는 두 분의 교수에게 동일한 질문을 한 적이 있다.
'박도사를 만나적이 있는가? 박도사의 책을 본적이 있는가? 그렇다면 무엇으로 박도사물상론이라고 하는가?'
이에 대한 대답 중 한 분의 교수는 '박도사님은 만나본적이 없고 책을 본적은 없다... 선생님은 선생님 대로 하시고 저는 저대로 하겠습니다.'
또 한 분의 교수 역시 비슷한 대답이었다. 다만 그는 질문에 대한 즉답 대신 '어떤 학설이든 연구할 가치가 있으면 연구해 보는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였다. 솔직한 표현이다. 그리고 학자적인 표현이다. 필자는 사석에서도 그를 늘 학자라고 표현하곤 했다. 또 한편으로 그럴수 밖에 없는 현실에 대해 옹호를 하곤 했다. 마음으로 아끼는 동문 중 한 분은 학자로서 U턴의 지점을 너무 지나쳐 버려 안타깝다고도 했다. 이러한 감정은 이 글을 읽고 있을 모든 동문제위들도 공감하리라 믿는다.
회고하면 사실 박도사는 최소한 당시 필자가 한창 공부와 상담을 병행하고 있을 즈음 그의 명성은 정말 이 업계에서는 대단했다. 그런데 이는 어디까지나 명성이 그렇다는 것이지 그의 간명예측이 정확하였다는 말은 결코 아니니 오해 없길 바란다.
그러나 그의 탁월한 재담과 추명방법론은 가히 일품이었다. 사실 당시의 간명방식은 비단 선생 뿐만 아니라 대부분 노장님들의 간명방식과 별반 차이가 없었고 비슷하였다. 다만 그의 독창적인 간명은 쉽고 간결하였다. 철저히 내담자의 눈높이와 근기에 맞는 소위 맞춤식 상담이었다. 선생은 내담자에게 그 흔한 오행 조차도 표현하지 않았으며 늘 사물에 빗대거나 자연환경에 견주어 설명하곤 했다. 굳이 오행을 이용하여 설명해야 할 부분이 있으면 이를 자연의 물상에 비유하곤 하였으나 당시에는 소위 박도사 물상론이라는 명칭이 없었다. 더욱 엄밀히 말하면 당시 선생은 물상론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다. 다만 활성화의 의미로 물상결합 또는 간지결합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곤 하였으며 자연물상이라 했다. 그리고 소위 '끌어온다는' 이론 역시 여러분들이 알고 있는 소위 청원식 이론과 박도사가 설명하는 이론과는 십만팔천리다. 그는 강의 중에 자주 끌어온다는 표현을 하곤 했다. 처음에는 그 끌어온다는 이론이 그의 독창적인 이론인가 했으나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는 위천리의 간명법을 취용한것으로 이해되었다. 그러나 이 끌어오는 방식은 매우 독창적이고 실전 간명에 있어서는 매우 간결하고도 실용적인 간명법임에는 틀림이 없다. 가령 사주원국에 회합(會合:三合,方合,六合,半合)의 글자 중 중신(中神)이 있을 경우 중신은 회합의 경우 화신(化神)이 되는 까닭에 중신의 생합(生合)과 극합(剋合)에 따라 팔법(八法)의 법칙에 준하는 변화가 일어 나게 된다. 이 법칙은 여러분들이 익히 알고 있는 巳가 있으면 酉 또는 丑을 끌어 오는 그런 것이 아니다. 중신의 법칙이라 하였으니 눈밝은이나 박도사가 늘 이야기하던 것을 어떤 위치에서든 간에 들었을법한 청원선생과 명리에 밝은 박교수는 이 이치를 금방 알아 차렸으리라 믿는다. 이는 매우 신속하게 사주의 원명만으로도 추론이 가능한 속간법(速看法)으로서 언제 무슨 월에 어떤일이 일어난다를 사주 원국만 보고서도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남명에 있어서 배우자와의 혼인응기에 있어서 재성이 巳라면 대운이나 세운에서 丑이 오는 경우와 酉가 오는 경우가 다르게 나타나는데, 이때 酉의 중신이 동인(動因)이 되어 합동(合動)하게 되면 화신(化神)이 왕성해 지는 까닭에 혼인의 징조가 되나 이와 달리 丑이 오는 경우는 중신과의 합동(合動)이 아니기 때문에 도리어 합반(合絆)이 된다. 물론 여기에는 대운과 세운과의 동인(動因)에 따라 달라지나 '끌어온다'는 법칙을 소상하고자 함이니 법칙에 대해서는 차론한다. 이와 같이 헤어지는 법칙 또한 마찬가지다. 이 끌어오는 법칙은 회합의 인자는 모두 해당하나 무조건 끌어오는 것이 아니며, 지금 여러분들이 알고 있는 방식으로 글자가 글자를 끌어온다면 이는 조금 비약하자면 사주팔자가 아니라 사주사십팔자가 되어 버린다. 이야말로 이현령비현령이 아닐수 없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후학을 위해 나아가 지하에서 통탄하실 박도사를 위해 덧붙이고자 한다. 본래 끌어온다는 말은 실재로 동인의 인자를 끌어온다거나 또 그 끌어온 인자의 십신적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사주 원명을 통해 언제 어떤 일이 일어 나는가를 속간(速看)하기 위한 하나의 간명법일 뿐이다. 결코 사주 원명에서 끌어와 오행적 변화나 십신적 변화를 일컬음이 아님을 명심하여야 한다. 그것은 사주명리학의 메카니즘도 아닐뿐더러 간지 오행학으로도 합당하지 않음을 강조하고자 한다. 더욱 실소를 금할 수 없는 것은 '물이 없으면 해외를 가라' 와 '금은 물에서 놀기를 좋아한다.' 등이다. 박도사는 강의와 간명에서 '물이 없으면 해외를 가라' 라는 표현을 자주 거론 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런데 문제는 상황이다. 즉 사주의 상황을 의미하는 것이지 사주에 水가 없다 하여 해외를 가라고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거니와 고인의 명예를 욕되게 하는 것이다. 그러한 실례는 그의 간명지를 통해서도 잘 알 수가 있기에 참조하기 바라며, '금은 물에서 놀기를 좋아한다.' 역시 마찬가지이다. 표면적으로 金은 물에서 놀기를 좋아하는 것은 매우 타당하다. 이를 금백수청(金白水淸)이라 한다. 즉 금은 수를 맑게 한다는 뜻이다. 여기서 맑게 한다는 것은 청하게 한다는 것으로 사주의 탁한 기운을 맑히는 것을 일컫는데 이름하여 '거유법(去留法)'이다. 내보내거나 묶어두는 것을 말함이다. 이를 통칭 '거관유살(去官留殺)' 또는 '합살유관(合殺留官)'이라는 표현을 쓴다. 이는 모두 사주를 맑히는 방법론이다. 이는 원명에서도 일어나지만 행운에서도 나타나기 때문에 이를 주밀하게 살펴야 한다. 가령 사주 원명에 있어서 금백수청(金白水淸)이 되지 않아 사주가 맑지 못할 경우 대운과 세운에서 水가 올 경우 이때를 금백수청(金白水淸)이라 하고 일로청징(一路淸澄)함이니 귀(貴)하다. 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때에도 반드시 법칙이 따른다. 행운에서 투(透)한 천간 水, 즉 壬癸가 사주원국의 지지에 통근하는 경우와 사주원국에는 통근하지 못하나 대운과 세운, 즉 행운간에서 통근하는 경우이다. 전자인 사주원국에 통근을 하는 경우에는 해외로 유학을 가는 것 보다는 국내에서 학위를 받는것이 좋다. 반면 후자의 경우와 같이 사주원국에서는 통근하지 못하고 행운간에 통투(通透) 현상이 일어나게 되면 이때 해외로 가라고 박도사는 표현했다. 이는 매우 타당하고 당위성을 띈다 하겠다. 사주가 자동차에 비유 한다면 자동자 자체에는 에어컨이 없거나 고장이 났다면 도저히 차내를 시원하게 식힐 방법이 없다. 그러나 만일 도로가 시원한 그늘이거나 바람이 불어 준다면 더위는 쉽게 물리칠 수가 있다 할 것이다.
그리고 金이 물에서 놀기를 좋아한다는 것은 火월(巳午)의 金에게 있어서 水는 그야말로 단비이다. 그러나 冬월(亥子)의 월령에 있어서 金은 물이 온다는 것은 그야말로 독극물이나 다름이 없다. 하여 '금수상관희정관'이라 하는 것이다. 이처럼 무조건 금이 물에서 놀기를 좋아 하는 것이 아니라 월령과 방령에 따라 약이 되기도 독이 되기도 함을 잊어서는 안된다. 이는 여러분들에게 박도사물상법이라고 전하고 있는 청원선생이 당시 박도사가 이런 상황에 있을 때 간명하는 것을 보고 무조건 금은 물에서 놀기를 좋아한다. 는 식의 엉터리 가결을 만들어 버렸다는 판단이다. 그렇지 않고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으며 박도사의 간명지 어디에도 금이 물에서 놀기를 좋아한다는 식의 간명을 한 곳이 없으며 강의에서는 위와 같이 설명하였음을 상기시키고자 한다.
필자는 선생의 특강과 강의록 그리고 그가 남긴 수천장의 간명지를 가지고 있다. 이 부분은 워낙 신뢰하지 못하는 세상이라 필자가 운영하는 사이트를 소개하겠다.(http://cafe.daum.net/damwonjy) 혹 사이트 소개가 선전으로 비칠까 조심스럽기도 하지만 이 또한 인연법일터... 그렇다고 무조건 열어주는 사이트가 아님을 밝힌다.
선생은 철저한 격국론자이자 월령론자이다.
월령을 쓰지도 않고 격국도 쓰지 않는다는 것은 스스로 명리가 아님을 선언하는 것이며 스스로 박도사 물상론이 아님을 고백하는 것임을 위 사이트에서 확인하기 바란다.
제목에서 필자는 '옳고 그름의 단상... 또 하나의 그름을 보태면서...' 라고 적었다.
지금 학과에서의 '옳고 그름'의 쟁단은 어떻게 보면 지극히 단순할 수 있다. 물론 입장의 차이에 따라 억울한 부분도 있을것이라 본다. 양단의 주장 중 공통분모는 물상론의 학습권인듯 하다. 그리고 사과와 정상화인듯 하다. 그런데 문제는 여러분들이 그토록 갖고 싶고 배우고 싶은 물상론은 이미 여러분들의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최소한 법적으로만 판단하면 법인의 것이라는 것이며 여러분들은 그 법인의 자비로운 배려(?)로 수혜를 받고 있는 것이 현실임을 망각해서는 안된다.
필자는 양단의 시비적 입장을 떠나 최소한 양단의 주장에 대해서는 카페의 게시물과 전언을 통해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그리고 현 7대 학생회 회장과는 개인적인 일면식도 없음을 밝힌다. 필자의 솔직한 심중은 현 학생회 회장을 암묵적으로나 표면적으로나 위로와 격려를 보내고 싶은 심정이다. 최소한 그는 학생회 회장으로서 동문회에 종속된듯한 과외적 커리큘럼에 반기를 든 점이다. 이는 정말 용기있는 결정이다. 이는 학생회를 장악한 물상 법인의 이권적 행위를 더 이상 방관하지 않겠다는 의지이자 학과를 교수 한 사람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 파행적 운영에 제동을 걸고자 함이라 하겠다. 필자의 생각이 침소봉대하는 것일수도 있겠으나 최소한 그의 의지는 동양학과를 특정의 세력으로부터 되돌려 반석위에 올리고자 하는 결기를 느끼게 한다. 이는 칭찬해야 한다. 그리고 도와 주어야 한다. 이들이 과연 학과의 교수가 싫거나 내몰기 위해서 이러한 일을 한다고는 보이질 않는다. 왜냐하면 게시판의 기록으로만으로 규찰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그는 물상명리를 이수하기도 하고 학교내에서 수업받기를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는 것 만으로도 그가 특정의 교수를 내몰고자 하는 의도는 아니라는 것이 엿보인다 하겠다. 왜냐하면 그가 특정의 교수를 내몰고자 한다면 학생회장으로서 큰 결격사유가 된다. 특정의 교수들이 내몰리게 되면 당장 학과의 커리큘럼이 엉망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전공필수와 동양학과의 교과목 결여 등으로 학과의 존폐 문제로 비약되기에 사태는 걷잡을 수 없도록 비화될 것임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재학생들의 이수과목 혼란과 전공과목 부재로 당장 학사운영에 차질이 불가피하게 될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라 하겠다.
물론 학생회 측의 반대 진영의 주장이나 입장이 틀렸다는 말이 아니다. 교수를 사랑하는 마음이나 학과와 물상을 지키고자 하는 심정 역시 학생회와 다름이 없으리라 본다. 이들의 부류는 졸업을 했거나 또는 졸업을 앞둔 학생들이 대다수 인듯 하다. 이는 졸업 후 심화라는 이기적 발상과 진로적 고민이 가장 크게 작용한 것이라는 것은 생각이다. 여기에 신입생들의 동조세력 분류는 물상을 배울수 있는 길이 교수를 지키는 일이기에 편승되는듯 하다. 물론 또다른 견해도 있을수도 있으리라 본다. 어찌되었건 학생회의 동기여부와 상관없이 물상을 배우고자 하는 방향성이 학습권을 제도권 안으로 되돌리고 싶은 학생회의 생각과 다르거니와 여기에는 물상 법인의 기업이윤에 반하는 문제가 상충하기 때문에 당연히 반대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 된 것이라 본다.
그런데 이번 사태는 본질과는 다른 감정이입으로 인한 분쟁이 시발점이라는데에 있다. 교수와 학생간의 모욕 사건이다. 물론 이 문제는 게시판에 드러나는 일방의 주장이기 때문에 사인간의 문제는 법정에서 가려질 일이라 논외하고자 한다.
다만 이 문제에 있어서는 학생회의 입장이 다소 모호한 부분이 있어서 아쉬웠다. 상호 민사든 형사든 사인간의 문제는 전적으로 쌍방의 문제이다. 학생회가 개입해서도 안되고 편승하고자 하여도 안된다. 다만 학생회는 이를 원만하게 조정하되 어느 일방의 주장만을 위한 카페가 아님은 모르지 않을터 이를 방관한 면이 없지 않다는 생각은 비단 필자만의 생각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휴학을 하게 된 동기가 이번 사건 때문에 그런것인지는 정확하게 모르겠으나 그의 주장대로라면 정말 얼마나 화가 나고 분통이 터지겠나 살아가면서 한 번씩 쯤은 겪어 본 사람들은 이해하고도 남을 것이리라. 그러나 학생회는 간과한것이 있다. 바로 반대편의 교수의 명예이다. 물상학 법인과의 연계문제와는 별개의 사안으로 전체 학생의 존경을 받고 있는 교수가 한 학생의 일방적인 흠집내기에 그대로 노출되고 방치되게 한 점은 졸업 동문을 떠나 중도의 균형이 흔들렸음을 진심으로 지적하고 싶다. 사건이 수습되고 안되고의 문제는 별개이다. 사건이 수습되었다 하더라도 사제의 간격은 어떻게 좁힐 것이며, 학과의 커리큘럼은 또 어찌 할 것인가도 학생회장으로서는 깊게 고민해야 할 일이다. 극단적으로 물상관련 교수들이 모두 그만둔다면 이는 모두 법인의 권한인데 학교의 커리큘럼으로 존치하겠는가 말이다. 아울러 형평의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과연 이번 사태가 과외적인 문제로 촉발된 만큼 신임 학과장은 이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지의 판단 역시 물었어야 진정 학과와 학생을 위한 의로운 행동이라 할 것이나 이를 간과하였음은 또다른 문제 하나를 감추는 것으로서 다시 이 문제가 촉발될 경우 더 큰 뇌관이 될 수 있음도 지적하고자 한다.
다시 제목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옳고 그름의 단상... 또 하나의 그름을 보태면서...
지금 여러분들은 여러분들 나름의 정의를 위해 논박하고 있다. 여기에 필자는 또 하나의 그름을 보태고자 한다.
우리는 학문을 하기 위해 모였다. 배우기 위해 찾은이도 있겠고 더 익히기기 위해 찾은이도 있겠고 재야에서 제도권으로 진입하기 위해 찾은이도 있겠다. 그런데 우리가 하는 학문은 통상의 과학도 아니요 정단된 인문학도 아니다. 동양학이라고는 하나 엄밀히 세류하면 술수학이다. 술수학은 상담학이기 이전에 사람의 명을 추론하는 추명학이라는 점이다. 흔히 명리학을 심심풀이 오늘의 운세나 길거리 타로점 정도로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리곤 맞추는것이 장땡이라는 입심 두둑한 소리로 스스로 격을 떨어트려서는 더더욱 안된다. 모름지기 명리학은 공전과 자전의 월령학으로서 사회과학의 범주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명리학은 자를 재듯 바늘귀를 꿰듯 무슨 비법을 통해 운명을 추단하는 도사(道士)가 되는 학문이 아니라 물러날때와 나아갈때를 변별하고 이를 통해 취길피흉를 인도하는 도사(導師)가 되는 수행학에 가깝다.
朴道士가 되건 金導師가 되건 이는 모두 학문하는자 각자의 몫이라곤 하나 중요한 것은 틀린것을 다르다라고 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다름은 입장이 서로 다르나 규명의 답은 동일하다. 그러나 틀림은 서로의 입장을 떠나 정답 자체가 틀리기 때문에 경계해야 하는 것이다. 명리학은 명리학적 메카니즘이 있다. 이것은 규칙이자 법칙이다. 규칙과 법칙은 스스로 그러한 이치, 즉 자연의 법칙을 의미하지만 '이렇게 하자'의 정의(定義)는 제도적 규정일 뿐 이법체계의 법칙이 아니다. 가령 1을 1이라고 하는 것은 절대 불이(不二)임이니 1일 수 밖에 없음은 자연이자 이법체계의 법칙이다. 즉 스스로 그러한 법칙이다. 그러나 3을 1이라고 규정하는 하는 것은 셋을 묶어 하나로 하자 라고 정의하는 것일 뿐 3이 1이 될 수 없음은 스스로 그러하지 않기 때문인 것이다. 이는 법칙이 아니라 정의인 것이다. 고로 정의한 규정이지 자연이 될 수는 없다.
지금 여러분들이 알고 있는 소위 '박도사 물상론'은 박도사의 것도 아닐 뿐더러 물상론도 아니다. 물상(物象)이라 함은 물상결합(物象結合)을 의미하며 이를 십천간과 십이지의 서수(序數)를 통해 간지학으로 표현하였기에 간지결합(干支結合)이라 한다. 동양의 사유체계에 있어서 하늘과 땅 그리고 사람은 둘이 아닌 천인감응과 동기상응으로부터 출발한다. 즉 천수상(天垂象)의 乾과 만물을 품은 땅의 坤으로 통투(通透)하여 서로 유기적 결합으로 물형을 갖추는 것이다. 이를 주역에서는 동정(動靜)운동이라 하고 변화의 원리를 추효환상(推爻換象)이라 일컫는다. 바로 이 동정양의(動靜兩儀) 운동은 사시(四時)를 품은 사상(四象)의 전변을 통섭하여 비로소 오행으로 치환된다. 이에 비로소 간지는 오행을 품부받게 되며 서수의 간지에서 오행의 간지로 전변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 간지는 반드시 사시 월령에 따라 강약왕쇠의 사정(四正)이 달라지고 사정이 달라진 간지는 생극제화형충회합의 팔법에 따라 자면(字面)으로 변화하게 되는데 바로 명리학은 이 변화를 읽어내는 학문인 것이다. 그럼에도 청원식은 월령도 필요없다 격국도 필요없다를 외치면서 눈가리고 아웅을 하고 있으나 이는 단언컨대 명리학이 아니다. 간지학에 월령을 배제하면 마치 국화꽃을 인공으로 만든 조화나 다름이 없다. 조화를 두고 생화로 우기는 웃지못할 괴변이라 하겠다. 아무리 정교하게 벌나비와 향기까지 가공하였다 한들 이는 조화일 뿐 생화가 아니다. 생화는 사시의 변화에 따라 생멸의 변화를 지니게 되나 조화는 생멸은 커녕 아무런 변화가 없는 그저 플래스틱의 화학성분의 조합물일 뿐이다. 이를 통해 변화를 읽겠다는 것은 맞고 틀리고를 떠나 스스로 그런한 자연의 법칙을 짝퉁으로 정의하고자 하는것과 다름 없다 할 것이다.
부끄럽게도 필자는 주역과 명리학을 평생을 통해 공부하고 임상하였다. 일찍이 출가를 위해 길을 떠났다가 주역과 명리를 접하게 되어 오늘에 이르기 까지 30년이 흘러버렸다. 한 자리에서 25년을 한 간판을 달고 있기란 쉽지 않은 일이나 주어진 명이려니 하고 수행삼아 궁구하면서 후학을 지도하고 임상상담을 해 왔다. 이제 그 결실을 보고자 내친김에 박사과정을 밟고 있으며 이제 년말이면 대미를 장식할 요량으로 침거하고 있던 중 학과의 분규를 목도하면서 또 하나의 그름을 보태고자 생각나는 대로 단상을 적는다.
본질에 본질을 더하자는 심경으로 여러분들에게 제안드리고자 한다.
현재 물상론을 강의하는 교수 역시 본질에 대해서는 실용적 접근을 하고 있는 것이지 학문적 규명을 위한 것은 아니라는 것은 그의 자술로 입증된다. 그러기에 필자는 진짜 박도사의 물상론을 가칭 '물상연구회'로 명명하고 이에 대한 심도있는 연구 스터디를 개최할 것을 제안하고 그 연구의 중심에 박정윤교수를 지도교수로 옹립하여 진정한 박도사의 물상론을 단순 정의가 아닌 법칙으로 정단하여 명실공히 원광의 브랜드로 안착하기를 제안드린다.
사족이지만 솔직히 박도사 간명법은 여러분들이 듣고 상상하는 그런 무슨 비법 같은 것이 아니다. 어떻게 보면 술사로서 시대를 잘만난 것이라는 것이 솔직히 더 맞는 소리다. 당시의 노장님들이나 명리간법이 사실 박도사의 간명법과 별반 다른 것이 없었다는 것만 알아 두었으면 하며 모든 진리는 기본에 있음을 상기하고자 한다. 이제 다시 본질의 고민으로 돌아가 학문하는 자의 전당이 되었으면 한다.
모쪼록 필자의 제안이 비류한 서생의 객기로만 치부되지 않길 바라며 모두가 상생하고 윈윈하는 동양학과가 되어지길 기대하면서 모두의 건투를 빈다.
덧붙여, 서사적 평서체로 글을 작성한 관계로 각인 제위의 호칭을 평어로 기술한 점을 양지하시고 필자의 글로 인해 혹여 서운한 감정이 있더라도 혜량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필자의 글로 인해 불필요한 감정이입이 되지 않기를 바라며 오랜만에 댓글 인사라도 나누었으면 합니다.
끝으로 자신의 의도와는 다르게 전개되어 필요 이상으로 지쳐있을 현 학생회 회장을 비롯한 임원들에게 마지막 수습의 완정을 위해 격려하고 위무합니다. 그리고 엄정한 중립은 학과의 역사로 기록될 것임에 수습의 과정에서 한 사람도 서운한 사람이 없기를 바라며 마지막까지 분투를 당부드립니다.
여불비례....
졸업생 담원 김성수 드립니다.
|
첫댓글 저는 이제 내일 강의가 있어서 지방으로 내려갑니다. 혹 오타나 수정할 부분이 있으면 돌아와서 수정하겠습니다.
정말 단비같고 주옥같은 말씀 잘 읽었습니다. 선배님같은 훌륭하신분이 원디대동양학과에 계셨다는게 자랑스럽습니다. 존함 길이 길이 기억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성수선배님 오랜만입니다
요즘 박사논문 쓰시느라 바쁘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건강 하시죠?
바쁘다는 핑게로 여러 선배님들께 연락도 자주 못 드렸네요~
조만간 번개 한번 날리겠습니다. 항상 건강 하세요^^&
제가 감히 글을 붙인다면, 혹여 선배님의 글이 왜곡 될까 걱정 입니다..
간만에 속이 다 시원합니다.^^
구절구절 면밀하게 원인과 발생
그리고 제안까지...
사제지간과 학우들간, 학생회, 동문회, 여러면을 성심으로 글 주시고
학문적 고찰과 현주소 방향성 등을 제시해 주신점 고개숙여 감사드립니다.^^
그 당시 우리가 생각했던 학회가 이렇게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는 주식회사로 변질되고 망가질 것이라고는 상상을 못했습니다. 그래서 너무도 부끄럽고 마음이 아픕니다.
선생님 깊은 학문성과 통찰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꼭 배워보는 기회 갖고 싶습니다. 그런데 선배님
우리가 물상명리에만 현혹이 되어서 양분화된 것이 아님을 말씀드립니다. 공감하는 바와 같이 오랜 물상 학습의 문제점을 제시하여 해결하고자 했던 학생회의 목적이 '박교수님의 처벌'로만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여러 강한 쇼크로 권한을 제 멋대로 휘두른 용감성(?)에 대응하는 응집된 목소리가 나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감사합니다.
선배님같은 고견을 통해서야 비로소 학생회의 잘못을 볼 수 있도록 해 주셨으니~
이 글을 읽고 학생회가
명분을 가지고 올바르게 행동하는 것이 지도자의 자세임을 자각하길 바랍니다
명리.풍수및 술수학문을 재야권에서 제도권으로 자리잡게해주신 학교와 학과장님께 감사와 존경을 표하면서 열정적으로 자부심갖고 학문에임했습니다.매년 몇번씩 모이는 오프라인공간에서는 학문을 떠나 선.후배및 형제지간의 관계형성도나누었던 그시절이 어끄젖 같은데..작금의 사태를 주시하면서 졸업생으로 가슴않이하면서 눈팅만하면서 사태가 원만히 수습되기만을 바라면서.오늘 간만에존경하는 담원선생의 옳고 그름의단상에에서의 내용속에 우리학과의지난7년간의그세월이 다 녹아져있는것같습니다 .이제 모든것을털고 다시한번 더도약하는 계기를삼는 기회로 재학생.학생회.졸업동문을 지혜를 모아야 때가온것 같습니다,
장고의글 ~헛되지 않도록 열심히 읽고 이 사태를 냉정하게 생각해 보겠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水淸 같은 장문의 글 감사합니다
선배님의 글로써 서로 분쟁의 끝이 되기를 바랍니다
선배님 글 잘 읽었습니다. 모두 옳다고 볼수는 없지만 좋은글이였습니다. 댓글 다신 윗분들은 다 아시는 분인듯한데 전 전혀 모르는 선배님이기에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한말씀 드리겠습니다. 기승전물상으로 끝나는데 오직 물상때문에 많은 분들이 분노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지금에 와서 박도사의 제자가 누구냐? 물상론은 완벽한데 왜 반대하느냐...유료강의가 뭐 어때서...물상명리학회를 옹호하기 위해서... 이러는줄 아십니까?
많은분들이 배움에 목말라 있던차에 교수님의 강의를 접하게 되고 공부에 박차를 가하려던 시점에 투서사건및 학내불미스런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고 그 과정에서 항상 중심에는 학생회가 연관되어
있었습니다. 결국 교수님은 사임을 하시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지요.
집단최면요? 누가요? 최면을 건 사람도 걸린 사람도 없습니다.
제가 입학해서 공부하면서 느낀점은 좋은 선배님들도 계시지만 자신의 것을 나누는데 인색하신 분이 더 많더라는 것입니다. 글중에 학문 스터디를 하자...말씀하시던데 왜 진작 만들지 않으셨나요? 물상심화도 지금은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지방의 학생들은 늘 배움에 목 마릅니다. 음성적 모임이 아닌 이권을 먼저 생각하지 않은 넓은 아량의 선배님들이 드물더군요.
제가 보기에 박교수님은 지방학생들을 잘 이해해 주시고 학문을 전달하려 하셨습니다.
만약 교수님께서 밖에 나가신다면 더 승승장구
하셨겠지요. 부산만하더라도 물상기초가 이루어질땐 많은 사람들이 모였었지요. 그모습을 시기질투하는 분이 없지는 않았을겁니다. 교수님을 따르는 많은 학우들이 교수님의 한단면만 보고 그러는줄 아십니까? 그런분을 내 몰아치고 비리교수로 내 모는 이 사태가 답답해서 그러는 겁니다.
제발 위 말씀처럼 졸업동문이라고 나 몰라라 하지 마시고 많은 후배들에게 나누어 주시는 멋진 선배님이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 학교 교수가 비리교수이기를 바라는 학생은 없을 것입니다. 아무리 교수가 학과를 만들고 학자로서 열성적으로 강의를 하여 그 교수로부터 배우고자 따르는 학생들이 많다고 하더라도 그의 행실이 위법·부당한 행위를 한 비리교수이라면 학교 당국에서는 이를 그대로 묵과하고 넘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굳이 배우시겠다면 제도권의 공공교육시설인 학교 보다는 제약을 덜 받는 사설학원을 이용하셔야 하겠지요. 개인의 희망사항으로 인해 전체 학우들이 함께하는 학교가 탁수가 되어서는 안 되지 않겠습니까?
@동양1411김동석 개인의 희망사항?
그럼 많은 학우들이 움직이는 것도 개인입니까? 벌써 개인을 넘어서 공익이 되었다는 것을 모르시나 보네요...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너무 길어서 문맥을 많이 놓치는 우를 범했네요. 명리학을 오래 하셨던 분으로 쓰신 글인데 걸음마도 하지 못 한 저같은 사람에겐 그저 뜬 구름같은 이야기입니다. 모든 문제에 옳고 그름은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단 어떤 위치에서 그것을 바라봤는가에 따라 편이 갈라집니다. 박도사의 제자냐 물상이 맞느냐는 오래하신 분들이 얼굴 맞데고 이야기 하시면 됩니다. 저와 같은 초보자는 가르치는 분이 돈욕심이 있던 박도사와 무관하던 상관않고 배울수 있는 곳이 있어서 좋았습니다. 제발 자기는 다먹었다고 지금 먹고 있는 사람 밥 그릇을 차지 말았으면 했습니다.
충분히 배우고 소화시키고 나면 선배님 처럼 훌륭하신 분의 말씀도 귀에 들어 올것 같습니다. 지금 배우고(먹고) 있기 때문에 여기에 충실할 거며 만약 내 밥 그릇을 찬 사람이 있으면 싸울수 밖에 없습니다.
저도 감히 한말씀 올리겠습니다.
누구의 제자건 만났건 안만났건...무엇이 중요합니까?
거짓말을 했으면 반드시 드러날테고...
그런데 이건 아시는지요?
16학번은 배워 보지도 못하고 접게 되었다는 사실
선배님들은 배워서 알고 있고 물상이 틀리다 엉터리다 라고 말하는 선배 아직 못봤습니다.
선배님들이 깊은? 뜻을 펼치시다 우리 후배들에게 큰 실망을 주셨다는 사실
왜 이부분을 간과하나요?
우아하게든 근엄하게든 싸우고 싶으신분들 싸우세요.
본인의 신념을 펼치는건 아주 건전한 삶의 태도라 하겠지요.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않는 범위내라면...
선배님 인사드립니다..
진심이 담긴 소중한 말씀 감사드립니다...
주변에 좋은 스승을 찾으려 노력하지.않은 탓이요.
지방이라 좋은 스승이 없을까요?
내 짧은 식견을 탓 해야지요.
그리고 물상기초 강의 부산경남에 유치 하기위해 , 뛰어 다니고 인원 배정을 더 해달라고 부탁도 2015년 여름 14모임 때 부탁도 했었지요.
당시 50명 배정 받은것을 60명을로 늘려 달라고,
공부 하고자 하는 사람이 많다고.... 학과장님과 도 회장께 저가 부탁 드렸고, 10명을 더 배정을 해주셨구요
그런데 저는 당시 지역 학습관 운영 방식과 같은 조건인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유료 강의로 변질이 되었지요.. 보통 회비를 20.000원을 받아서 간식과 물품 구입하고 저녁 먹고 교수님 강의료(여비)300.000원 드린 것으로 알
았구요. 그런데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 버린것이지요.
처음 취지와는 다르게 말이지요..
지금 까지의 동양학 모든강의(정규커리큘럼 포함)를 듣고 또 공론화된 사안의 내용을 어느정도 숙독한후 느낀바는 무언가 석연치 않음과 주최측(황영오,박정윤)의 농간이 있음을 직감 하였습니다
선배님의 글을 읽고 미루어 짐작만 했던 많은 부분이 이제는 실체적으로 성큼 와닿는 부분이 많음을 느끼게 됩니다
장문의 글 감사 드립니다~
뒤늦게 글 잘 읽었습니다.
원만하게 수습되어지는 날이 곧 오리라 믿습니다 ^^
주옥 같은 선배님의 글 오래 간직하고자 스크랩하겠습니다.
당연히 출처 남기고... 공부에 참고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꾸~벅
새해 덕담이나 하고자 들렀더니 참 많은 댓글들이 화답을 기다리고 있었네요...
귀한 댓글 하나 하나에서 아쉬움과 간절함이 베어납니다.
이제 새로운 8대 회장과 임원이 선출되었군요... 진심으로 축하를 드립니다.
그리고 노고와 상심이 컸을 7대 회장님과 임원진들께도 진심으로 격려와 박수를 보냅니다.
학과의 선거는 누가 이기고 지고의 당락 보다는 화합과 비전이 더욱 중요하다 하겠습니다.
조속한 학과의 안정과 단합을 바랍니다.
정유년 새해 백개의 복자와 백개의 목숨수를 새겨보았습니다.
새해는 더욱 건강하시고 다복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丁酉 元旦 담원역리학회 담원 김성수 드립니다.
진실과 현실을 알게해주신 글 감사합니다
그간 알고있었던 내용을 확인하는 기회가 되었고 긴가민가했던부분을 알게된부분도 있습니다.
근원은 모르고 현재에만 치중하니 진실을 판단하기 어려웠는데 흐리던 눈앞이 맑아지는것 같습니다
과거를 알고 바른길이 무엇인가를 알게하시는 분이 좋은 선배 입니다
지금의 재학생들도 모두가 졸업하면 선배가 되지만 과거의 진실을 간파하지못하면 후배들에게 읋은 말을 해줄 수 없는 것입니다
사실을 숨기고 얼버무려 재포장하여 새것이라 내어놓고 그것을 비싼값에 파는 것이 사기가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 것을 모른채 세월이가면 가짜가 진짜로 둔갑하게 되겠지요
선배님 글 감사드립니다
그간 이곳에 자주들러지 않아서인지
이 글을 이제사 발견하였네요
김성수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오랫만에 카페에 들어와서 담원선생 글 읽느라 눈이 빠지는 줄 알았습니다. ㅎㅎ 특유의 입담 살아있네요. 잘 읽었습니다. 다음에 기회 되면 한번 봅시다. 아직 제가 많이 부족해서.. 나중에 한 수 배우겠습니다. 우선 지면으로 안부를 전합니다. 동양학과를 떠나 있는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군요. 정확하게 사실파악은 안되었지만 잘 해결되었으면 하고 안타까운 일들이 없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