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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진출 한국기업의 베트남 경제 기여도를 살펴보면 2003년 기준 베트남 대외수출의 약 7.5%인 15억달러를 한국기업이 담당하고 있다. 베트남 전체 취업인구(농업 제외)의 약 1.5%인 20만명을 한국기업이 고용하고 있는 것으로 경영실태 조사 결과 나타났다. 2005년 한국의 베트남 투자규모는 96년 이후 가장 큰 폭인 7억달러로 전망되고 있어 한국기업의 베트남 진출은 향후 더욱 활발해질 전망이다. 진출분야도 종래 제조업 위주에서 이제는 골프장, 레저타운, 주상복합건물, 병원 등으로 한층 다양화될 게 확실시된다.
베트남 바이어들이 가장 좋아하는 선물은 한국의 인삼과 LG드봉 화장품이란 얘기가 있을 정도로 베트남 사람들은 한국제품을 좋아한다. 그 이면에는 한류가 있음을 부정하기 힘들다. 99년 한국 TV드라마(의가형제)가 처음 소개돼 공전의 히트를 치면서 불기 시작한 한류는 약 6년이 지난 지금도 식을 줄 모르고 있다.
올해도 <풀하우스>, <허준>, <대장금> 등 인기 TV드라마가 방영됐다. 현재 <러브스토리 인 하버드(Love Story in Harvard)>, <내 사랑 현정> 등의 드라마가 방영되고 있는데 사실 베트남 내 한국 TV드라마 방영 비중은 외국드라마 중 13%에 불과하다. 중국(33%), 미국ㆍ캐나다(21%), 유럽(15%)에 비하면 오히려 낮은 수준이다. 그럼에도 불구, 베트남 국민들이 한국드라마를 선호ㆍ열광하는 것은 문화적인 유사성이 깊어 시청자들의 감성과 피부에 와 닿기 때문이다. 현재 베트남의 한류 현주소를 말해주는 지난 11월8일자 <Thanh Nien 청년일보> 신문기사에 의하면 “예전에는 신랑신부들이 웨딩사진 촬영시 전통의상인 아오자이나 웨딩드레스를 입고 촬영했지만 최근에는 한국 전통의상인 한복을 입는 케이스가 늘고 있다”고 한다. 이는 아마도 최근에 유행했던 드라마 <대장금>의 영향 때문인 것으로 파악된다.
한류 덕에 베트남시장에서 한국의 삼성, LG, 대우 등의 전자제품은 품목마다 시장점유율 30% 내외로 1~2위를 차지하고 있다. LG드봉 화장품은 시장점유율이 50%에 가까울 정도로 부동의 입지를 점하고 있다. 자동차, 조미료, 휴대전화 등은 물론 중소기업이 수출하는 정수기, 침구류, 각종 생활용품도 한국산 브랜드가 확인되면 가격이 다소 비싸도 주머니를 열고 있는 상황이다. 한류 혜택은 특정기업 한두 곳이 아닌 한국기업 모두가 보고 있으며 이변이 없는 한 앞으로도 지속될 게 확실하다.
다만 ‘기회의 땅’ 베트남이라도 철저한 현지조사와 연구는 필수다. 지금은 탄탄한 매출을 기록하며 도약하고 있는 대기업들도 베트남 진출 초기에 파트너를 잘못 선택해 5~6년간 고생한 경우도 많다. 또 초기 베트남 국영기업 중 가장 우량한 기업과 합작해 성공이 보장된 기업도 파트너가 신규분야로의 사업확장 등에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아 10년이 지난 지금도 정체된 경우도 있다. 베트남은 시장경제체제로의 전환 역사가 짧고 갑작스러운 경제성장으로 각종 제도와 법령이 미비해 현대식 경제활동을 받쳐주지 못해 공무원의 유권해석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이로 인해 큰 프로젝트가 정체되거나 많은 뒷돈이 들어가는 경우도 자주 본다.
베트남 현지지사도 수입업무가 극히 제한되는 등 많은 제약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합작투자 후 이사회에서 사회주의식 만장일치제를 유지하는 법규를 몰라 경영지분 51%만 가지면 경영권이 있다고 판단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금물이다. 또 외국인 또는 외국기업은 베트남에서 식당, 유흥업, 관광업 등 유통업에 종사할 수 없다는 규정을 몰랐거나 적당히 할 수 있다는 안일한 판단으로 베트남인 명의로 사업체를 운영하는 등 무리하게 사업을 추진하다 실패한 사례들도 많이 있다. 특히 MOU(양해각서)만 체결되면 사업승인이 나는 것으로 판단하는데, 이것 역시 착각이다. 베트남은 기회의 땅임에 틀림없으나 기회라는 먹음직스러운 파이를 얻기 위해서는 적절한 절차와 규정을 준수하며 오랫동안 기다릴 줄 아는, 즉 파이 값을 지불하는 자에게만 그 기회가 주어지는 땅이라고 볼 수 있다.
꿈틀대는 돈맥, ‘술렁이는 경제도시’
11월22일 밤 12시. 서울을 출발한 지 4시간여 만에 호치민 탄선넛국제공항에 도착했다. 한밤중인데도 후텁지근하다. 세계전도를 보면 호치민 바로 밑이 적도다. 공항시설은 베트남 ‘No.1 경제도시’란 타이틀이 무색할 만큼 아직 낡고 불편하다. 입국심사장은 부산하다. 심사 때는 아세안(10개국) 국민도 자국민과 같은 줄에 선다. 아세안 국가다운 대접이다.
취재팀은 한참을 기다려 ‘외국인창구’로 통과했다. 공항 곳곳엔 한국기업ㆍ제품을 홍보하는 광고판이 수두룩하다. 대부분 삼성ㆍLG 등 대기업 광고다. 놀라운 풍경은 또 있다. 공항 밖에서 본 차량 중 상당수가 한국산이다. 택시는 아예 ‘마티즈’(대우) 천지. 한국어로 말을 거는 택시기사도 적잖다.
이튿날 아침. 호텔(리젠드)에서 바라본 메콩강은 그야말로 절경이다. 큼직한 상선과 군 경비정이 뒤섞인 가운데 손바닥만한 작은 배들이 바삐 상ㆍ하류를 오간다. 건너편엔 선상가옥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고, 그 위엔 광고를 위한 대형 전광판이 어지럽게 세워져 있다(저녁에 바라보면 다국적기업의 광고경연장처럼 보인다). 강물은 온통 황토색이다. 호텔과 마주한 왕복 4차선 강변도로는 오전 7시 이후 눈에 띄게 바빠진다. 출근시간대다. 베트남은 오전 8시~오후 5시가 근무시간이다. 더 일찍 출근하는 곳도 많다. 러시아워가 시작되면 순식간에 오토바이가 도로를 가득 메운다. 빈틈이 없다. 웬만한 강심장으로는 끼어들 여지가 없어 보이지만, 이건 이방인의 오해다. 한 치의 틈만으로도 끼어들기는 ‘OK’다. 소란스러운 경적소리와 매연은 베트남의 또 다른 상징. 마스크ㆍ모자로 무장한 채 앞을 주시하는 오토바이군단은 대도시의 주인이다. 반면 자동차는 ‘거북이걸음’이다.
호치민의 다운타운은 시청ㆍ우체국 등 관공서가 몰려 있는 ‘다이아몬드백화점’ 근처. 이 건물은 포스코건설이 지었다. 1~3층이 백화점이고, 그 위는 오피스건물이다. 지하엔 주차장뿐이다. 입주회사 중 절반 이상이 한국기업이다. 문재정 한국수출입은행 베트남법인 차장은 “호치민에 진출한 한국의 유명기업 중 상당수가 이곳에 들어와 있다”며 “높은 지가에도 불구, 유명회사가 많아 호치민경제의 블루상권으로 꼽힌다”고 전했다. 백화점 벽면광고도 둘 중 하나는 광고주가 한국기업. 삼성전자ㆍLG전자ㆍ웅진코웨이 등 한국제품만 파는 매장도 적잖다. 모 판매직원은 “평일이라 한산하지만 주말은 꽤 붐빈다”며 “여기서 쇼핑할 정도면 베트남 최고부유층”이라고 말했다.
인근엔 한식당도 몇 군데 성업 중이다. 한국기업이 몰려 있어 자연스레 다이아몬드백화점 부근이 주재원들의 단골 약속장소로 정착된 모습이다. 취재팀이 점심을 먹은 D한식당은 한류 열풍을 톡톡히 봤다는 후문. 한국드라마가 방영되면서 입소문을 타 요즘엔 베트남인 단골까지 생겨났다. 물론 현지물가와 비교했을 때 엄청난 고가다.
한 끼에 5~20배나 더 비싸지만 신흥부유층에게는 ‘고작’이다. 무역ㆍ자영업으로 2~3년 새 돈을 긁어모은 2030 젊은 부자가 속속 생겨나서다. 이들의 생활수준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낮은 물가(구매력 기준) 때문이다. 외제차에 첨단기기는 기본. 온갖 고가명품으로 무장한 부유층을 만나기도 어렵지 않다. 빈부격차는 ‘하늘과 땅’이다. 누구는 2만~3만원짜리 밥을 먹지만, 또 누군가는 도로변에서 100~200원짜리 ‘퍼’(베트남 쌀국수)를 먹는다. 여기가 바로 1975년까지 사이공으로 불렸지만, 지금은 호치민으로 바뀐 최대 경제도시 호치민의 실상이다.
메콩강 근처 구엔후에 거리의 하버뷰타워. 이곳에는 화장품 ‘드봉’으로 일찌감치 한류를 이끈 LGVINA화장품(LG생활건강 베트남법인)이 입주해 있다. 올해 진출 9년째로 인지도 70%를 자랑하는 업계 선두주자다. 방문판매로 시작해 매년 20~30%의 성장을 반복 중이다. 사무실 곳곳엔 현지채용 사무직원들이 바삐 오간다. 화장품회사답게 여성근로자가 많다.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기업은 젊은이들 사이에 취업 1순위 후보다. 그도 그럴 게 월급이 200달러에 달해서다.
60~70달러에 불과한 생산직에 비하면 엄청난 고임금이다. 거리에선 낯선 영어라도 사무직 사이에선 곧잘 통한다. 조영규 LGVINA화장품 대표는 “현지직원의 만족도가 꽤 높다”며 “우수인력이 많아 업무성과도 만족스럽다”고 전한다. 물론 맡겨진 업무만 처리한다거나 잘못한 일을 인정하지 않는 문화는 걸림돌이다. 그럼에도 불구, 조대표는 “베트남만한 투자환경은 없다”며 “향후 뻗어나갈 가능성이 훨씬 더 크다”고 전망했다.
‘꿈틀대는 호치민’은 빈말이 아니다. 호치민 외곽의 공업단지까지 뻗은 대로변은 역동적인 성장, 그 자체다. 마치 신도시건설 현장처럼 대로변 곳곳에 신ㆍ개축 중인 건물로 넘쳐난다. 벽돌과 흙무더기가 줄지어 쌓여 있다. 아스팔트 냄새도 끊이지 않는다. 인터넷이 씌어진 대형 PC방 옆에는 60년대 구멍가게가 먼지에 덮여 있다. 과거와 현대의 공존이다. “잠자고 있는 땅에서 깨어나고 있다”는 이한철 KOTRA 호치민무역관장의 말 그대로다. 이관장은 “베트남은 이제 자본주의의 맛을 봤다”며 “WTO 가입 후 금융ㆍ서비스의 제한까지 풀리면 가능성은 무한대일 것”이라고 진단했다.
INTERVIEW
노형종 수은 베트남 리스금융회사 대표
‘국고는 비어도 개인금고는 그득’
수은 베트남 리스금융회사는 한국수출입은행의 베트남(호치민) 현지법인이다. 본사지분이 100%다. 주로 한국산 기계류를 갖고 와 리스해주는 업무를 담당한다. 한국기업뿐 아니라 로컬기업도 고객리스트에 올라 있다. 약 600건에 금액(잔액)으로는 5,500만달러 규모다. 리스 대상은 섬유봉제 기계류나 라인에 깔리는 일관생산설비가 대부분이다. 20명의 임직원 중 한국주재원은 3명. 노형종 대표는 “최근 한국기업의 베트남 진출이 늘면서 리스 규모도 증가세”라며 “향후 베트남 금융시장의 개방이 가속화되면 시장규모는 훨씬 더 커질 것”이라고 전한다.
노대표가 꼽는 베트남경제의 최대 약점은 취약한 금융산업이다. 노대표는 “채권추심을 비롯해 제반법규가 금융인프라의 발전을 막는다”며 “외환보유고만 해도 확실한 수치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고 아쉬워한다. 실제로 베트남의 외환보유고는 고무줄이다. WTO 가입을 위한 국제조사단의 실사 때조차 국가기밀을 이유로 확실한 금액을 밝히지 않았을 정도다. 대략적인 통계로는 얼추 21억~50억달러로 추산되지만, 그나마 신빙성이 낮다. 시장은 적어도 60억~80억달러로 내다본다. 보트피플의 공식적인 해외송금액만 연 27억달러에 달해서다. 여기에 개별가정이 보유한 달러도 엄청나다. ‘국고는 비어도 개인금고는 그득하다’는 말까지 들린다. 반면 환율은 확실히 지켜지는 편이다. 변동환율제지만 연초계획대로 통제되는 게 일반적이다.
정치상황에 대한 노대표의 조언도 재미나다. 역사적 변란이 많아 중앙ㆍ지방간 협력구조가 취약하다. 정경유착ㆍ부정부패도 문제. 최근에는 도가 지나칠 정도로 부정부패의 단위ㆍ범위가 확산되고 있다. 높은 지가도 부담거리다. 호치민 시내의 노트르담성당 근처는 평당 2,000만~3,000만원에 달한다.
남성호 노브랜드 베트남법인 대표
‘합작보다 단독투자가 유리해요’
1994년 연매출 500만달러로 시작해 올해 매출 1억8,000만달러로 급성장한 섬유업체다. 자체 브랜드 없이 ODM(제조자개발생산)으로 만든다고 회사이름도 ‘노브랜드’로 정했다.
ODM은 R&D 비중이 높은 대신 영업력이 높아지는 장점을 갖는다. DKNY, 바나나리퍼블릭 등 명품브랜드를 일괄 기획ㆍ디자인ㆍ생산한다. 주력은 여성용 니트다. 내년 2억5,000만달러가 매출목표다. 섬유수출업계에선 ‘다크호스’로 통한다. 베트남엔 2002년 진출했다. 해외공장 중에선 베트남이 첫손가락에 꼽힌다. 총생산량의 50% 이상을 베트남이 맡는다. 원부자재의 80%가 한국서 들어온다.
약 4,500명의 현지고용 생산직이 근무 중이다. 수당까지 합해도 한국의 10분의 1 수준(월 120달러)에 머물러 경쟁력이 있다. 남성호 노브랜드 베트남법인 대표는 “숙련도와 충성도가 굉장히 높다”며 “노조가 있지만 정부가 어느 정도 통제해줘 일하기 좋다”고 전한다. 남대표에 따르면 이들의 손재주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어려운 걸 맡겨도 기막히게 해온다”며 “기능올림픽에 나가면 상을 휩쓸 것”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노브랜드가 베트남에 들어온 건 신흥투자처로서 매력이 충분했기 때문이다. 2001년 미국과의 무역협정이 풀리면서 수출이 쉬워진데다 인력수준과 사고방식, 국가안정도 등이 뒷받침됐다. 올해만 10여개 섬유업체가 베트남에 진출했을 만큼 가능성도 여전히 엄청나다. 본사의 러브콜도 확실하다. 조대표는 “향후 베트남을 허브화해서 5년 내 10억달러의 매출을 기록할 계획”이라며 “현지에서의 원부자재 구매까지 가능해질 것”이라고 전한다. 외국인투자법을 챙기되 가능하면 합작보다 단독투자가 낫다는 경험담도 더했다.
한국과 데이트 중, ‘애정 소록소록’
11월23일 오후 6시30분. 호치민을 떠난 취재팀은 2시간을 날아 하노이의 관문 ‘노이바이국제공항’에 도착했다. 기차로는 38시간이 걸리는 1,730㎞(철로)의 거리다. 국내선인 까닭일까. 탑승객의 절대다수가 현지인이다. 기차요금보다 3배나 비싸지만 좌석은 모두 찼다. 평일임에도 불구, 적잖은 수의 어린 학생들도 보였다. 한 여학생의 겉옷엔 ‘○○태권도’란 한국어가 선명하게 찍혀 있다. 날씨는 호치민보다 꽤 서늘하다. 가죽점퍼에 머플러, 부츠까지 신고 오토바이를 모는 여성이 적잖다.
하노이는 베트남의 수도로 정치ㆍ문화의 중심지다. 혹자는 과거 공산ㆍ자유주의의 대립관계를 떠올려 “하노이가 평양이면 호치민은 서울”이라고 비유한다. 도시규모는 호치민보다 작고 아담하다. 인구도 호치민의 절반에 못미친다. 오토바이도 호치민보다 적다. 그래도 퇴근시간답게 러시아워가 만만찮다. 신호등이래야 고작 몇 개밖에 없지만 자기들만의 수신호로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이다. 역시 차량은 뒷전이다.
하노이엔 10여 군데 한식당이 영업 중이다. 대개 하노이대우호텔에서 5~10분 거리다. 손님의 8할 이상이 한국인이다. 주재원 아니면 관광객이다. 취재팀이 저녁을 먹은 G한식당도 마찬가지. 여기저기서 한국어가 들린다. 베트남에서 유통ㆍ식당업은 내국인만 운영이 가능하다. 때문에 한식당들도 현지인 명의를 빌릴 수밖에 없다. 된장ㆍ고추장 등 일부 재료만 빼면 모두 현지조달이 가능하다고. 가격은 한국에서와 비슷하지만 구매력을 감안한 물가로는 상당히 비싸다. 관세 레벨이 붙은 소주가 특히 인기다. 서빙을 보는 도우미들은 영어는 못해도 한국어는 곧잘 이해한다.
하노이는 과거 ‘대우왕국’으로 불렸다. 그만큼 ‘한국 = 대우’의 이미지가 강한데,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자동차 둘 중 한 대는 역시 대우차. 또 다른 이슈는 신흥갑부의 출현이다. 시내에서 좀 떨어진 ‘반다오링남’ 호숫가는 하노이의 신흥부촌이다. 호숫가를 끼고 조성된 2~3층 빌라는 기업가나 고위공무원 집성촌이다. 2년여 전부터 집중 조성됐다. 지금도 곳곳에서 축대를 쌓아올리는 등 공사가 한창이다. 고작해야 건평 20~30평 정도지만, 건축비까지 합해 집값은 1억원 이상이다. 특이한 건 건물 모양. 전면은 좁고 뒤쪽이 긴 직사각형 모양이 대부분이다.
하노이의 랜드마크라면 단연 ‘하노이대우호텔’을 뺄 수 없다. 5성급으로 첫손가락에 꼽히는 최고급호텔이다. 김우중 전 대우 회장도 베트남에선 여기에 머물렀다. 바로 옆 건물이 ‘대하비즈니스센터’다. 호치민의 다이아몬드백화점처럼 한국의 유명기업이 대부분 입주해 있다. 절반 이상이 한국계다. 4층에는 한국대사관도 있다. 김영웅 KOTRA 하노이무역관장은 “후발 섬유업체 중 상당수는 포화상태인 호치민 대신 하노이를 선택한다”며 “최근엔 포스코ㆍ두산중공업 등 중화학업체의 진출도 눈에 띈다”고 설명했다. 다만 섬유ㆍ봉제ㆍ신발 등은 대만과의 경쟁도 만만찮다고 덧붙였다. 3D업종으로 소문난데다 자본력을 갖춘 대만회사보다 비교열위에 있어서다. 게다가 40%로 못박은 ‘자동차부품 내수화 정책’처럼 보호장벽이 높은 것도 부담거리다.
베트남 유통의 대부분은 재래시장이 맡는다. 한국의 60~70년대와 꼭 닮았다. 도심 외곽에 ‘메트로’처럼 대규모 도매할인점이 있긴 하지만 문턱이 높다. 현지가이드의 안내로 ‘똥선’으로 불리는 재래시장을 찾았다. 마치 한국의 남대문ㆍ동대문처럼 대량거래가 이뤄진다. 문구ㆍ의류ㆍ가방 등 잡화류는 없는 게 없다. 조금만 벗어나면 수공예품ㆍ여행사 등 관광객을 유혹하는 재래점포도 숱하게 펼쳐져 있다. 간이식당과 과일노점도 빼곡하게 들어섰다. 탁월한 손재주로 만들어진 수공예품에 눈길을 놓지 못하는 관광객이 적잖다. 엄청난 물건을 어깨에 멘 채 바삐 뛰어가는 젊은 아가씨들의 뒷모습에선 우리네 어머니들의 어제를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베트남은 전통과 현대의 공존 국가다. 낡고 지저분한 재래시장이 있다면 대로변엔 이탈리안 노천카페까지 갖춘 현대식 쇼핑타운도 있다. 다운타운에 위치한 ‘장띠엔플라자’가 그렇다. 커피 값만 3달러인데도 노천카페에는 젊은 남녀로 발 디딜 틈이 없다. 한눈에 봐도 부티가 흐른다. 현지가이드 도홍광씨는 “젊은이들 사이에선 최고급 오토바이(150만~200만원)와 휴대전화(약 40만원)를 갖는 게 꿈”이라며 “이 정도면 최고의 신랑감”이라고 전했다. 젊은이들의 ‘코리안드림’도 대단하다. 800만~1,000만원의 뒷돈을 줘야 겨우 한국행 티켓(산업연수생)을 확보하지만, 그나마 최근에는 어려워졌다. 관광비자로 들어가는 데도 300만~400만원의 브로커 비용이 필요하다고.
일정을 마친 후 공항으로 향하는 취재팀을 환송한 건 한국기업의 광고판. LG전자의 광고문구가 가로등을 대신해 빛을 밝힌다. 3.7㎞의 탕롱대교 양옆에 180개가 설치돼 있다. 그동안에는 수도의 관문이자 북부지역 젖줄인 홍강도 저녁이면 어김없이 어둠 속에 묻혀야 했다. 안병기 LG메카(LG전자 베트남법인) 부장은 “탕롱대교의 광고판은 한국에 대한 자부심을 높여주고 있다”며 “글로벌 기업으로서 이미지 강화에 큰 도움이 됐다”고 전했다. 출국장에선 한류도 현재진행형이다. 한국 TV드라마를 보려는 면세점 직원들이 대형 스크린 앞에서 ‘동작 그만’이다. 베트남은 지금 한국과 열애 중이다.
INTERVIEW 김정인 VIDAMCO(GM대우 베트남법인) 대표
‘5억 아세안의 교두보로 삼길…’
“10년 이상은 호황이 확실해요. 개방정책도 계속될 거고요. 중국에서 베트남으로 빠져나오려는 반사이익까지 예상되죠.” 베트남 거리는 ‘대우차’ 천지다. 택시는 거의가 ‘마티즈’다. 시장점유율(승용차) 38%의 수치가 이를 증명한다. 도요타와 함께 치열한 1위 경쟁 중이다. 김정인 VIDAMCO 대표는 대우차의 베트남 안착을 주도한 일등공신. 김우중 전 대우 회장이 열어젖힌 베트남시장을 김대표가 착실히 장악했다.
대우차의 성공스토리는 ‘고품질ㆍ중저가’로 요약된다. 철저한 현지화도 한몫 했다. 김대표는 “우리의 판매 슬로건은 ‘내 인생의 첫 차는 GM대우’”라며 “2010년까지 1가구에 1대씩 팔 계획”이라고 전했다. 활발한 사회공헌활동 덕에 시장만족도도 높다. 물론 처음부터 화려했던 건 아니다. 93년 설립 후 99년까지 6년간 내리 적자를 냈다. 하지만 김대표를 중심으로 한 주재원들은 각고의 노력 끝에 2000년부터 흑자로 돌리는 데 성공했다. 지금은 10여개 해외현장 중 단연 ‘으뜸’으로 꼽힌다. 임직원 280명(주재원 6명)이 연간 승용차 1만대ㆍ버스 500대를 생산한다.
기회는 무궁무진하다. 아직 130명당 1대밖에 보급되지 않은 상태다. 100% 관세가 붙지만 수요도 꾸준하다. 말 그대로 ‘장밋빛’이다. 베트남 정부의 자동차산업에 대한 관심도 대단하다. 김대표는 “베트남에서 통하는 차종만 선택ㆍ집중해 마케팅 효과를 극대화할 것”이라며 “선점기업으로서 양질ㆍ저가의 노동력을 활용한 가격경쟁력을 활용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다만 치열한 경쟁은 불가피하다. WTO 가입이 이뤄지면 거센 가격인하와 시장개방이 예상돼서다. 김대표는 “앞으로는 베트남 국내뿐만 아니라 인구 5억명의 아세안 역내진출을 위한 교두보로서 베트남을 바라봐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성낙길 LG메카(LG전자 베트남법인) 대표
‘철저한 사전준비 후 노크하세요’
LG메카는 베트남 ‘No.1’ 가전업체다. 어지간한 곳의 에어컨ㆍTV는 십중팔구 ‘LG’ 마크가 찍혀 있다. 99년 본격 시장공략에 나선지 만 5년째(2003년) 거둔 금자탑이다. 베트남 진출역사가 30여년이 넘은 쟁쟁한 일본 메이커도 저만치 따돌렸다. 성낙길 LG메카 대표는 “베트남시장의 성장세는 놀라울 따름”이라며 “요즘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고 전했다. 더 고무적인 건 미래 전망. 여전히 가전제품 보급률이 저조해서다. 에어컨만 해도 10%가 안된다. 무궁무진한 시장개척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본사의 관심도 대단하다. 시장점유율 1위 수성을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LG메카의 신화는 임직원들이 흘린 피와 땀의 결과물이다. 파트너사 부사장을 만나기 위해 3개월간 쓰디쓴 베트남 커피를 기꺼이 마신 성대표의 일화는 이곳에서 유명하다. 현지직원과의 골치 아픈 갈등도 뚝심 같은 신뢰로 극복해냈다. 무엇보다 시장ㆍ고객을 감동시켰다. 가령 몇 년 전 최악의 홍수가 닥쳤을 때 LG메카는 현지 가전업체로는 최초로 무상서비스를 실시했다. 제조업체가 달라도 고쳐줬다. 사회공헌도 남달랐다. 시각장애환자들이 수술을 받도록 지원했고 각종 장학사업도 활발히 전개했다. 베트남 정부는 LG메카에 노동훈장까지 수여했다. 이는 외국기업으로는 최초의 수훈이었다.
전망도 밝다. 성대표는 “베트남은 어쨌든 장사 밑천은 벌어줄 것”이라며 “사람만 빼면 베트남의 오늘은 과거 한국 모습과 흡사하다”고 전했다. 가령 “정답을 알고 문제를 푸는데 누가 틀리겠냐”고까지 덧붙인다. 그럼에도 불구, 다 본 것 같아도 아무것도 못 보는 곳이 또 베트남이라고 설명한다. 그만큼 성공공략을 위한 사전준비가 필수라는 메시지다. 무조건 들이대는 게 능사는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은 닮고 싶은 모델 1순위입니다’
손님이 참 많아요. 직전 부임지(루마니아)에선 별로였는데, 여긴 한국에 대한 관심이 아주 높은 것 같습니다. 정부ㆍ민간 모두 많은 분야에서 협력하길 원하죠. 또 배울 자세도 돼 있고요. 한류도 참 대단합니다.” 김의기 주베트남 한국대사에 따르면 한국은 베트남의 벤치마킹 대상이다. 중국ㆍ일본과 달리 한국을 편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ODA(공적개발원조) 등 원조액이 적지만 일본보다 한국을 훨씬 반기는 분위기다. “스스럼없이 당신들에게 배우겠다”는 베트남 관료도 적잖다고 귀띔한다. 김대사는 “60~70년대만 해도 한국과 비슷하다고 봤는데 최근 격차가 크게 벌어졌다”며 “노력하면 얼마든 한국처럼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확인한 것 같다”고 밝혔다.
양국교류도 크게 늘어났다. 양국을 오가는 항공기만 매주 40여편에 이른다. 올 들어 10월까지 한국을 찾은 베트남인은 2만7,000여명, 베트남을 방문한 한국인은 26만여명에 달한다. 이대로라면 베트남인의 한국방문은 올해 3만명을 웃돌 전망. 김대사는 “특히 한국인의 베트남 방문이 눈에 띄게 늘었다”며 “요즘 하노이에선 호텔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고 전했다. 덩달아 한국 위상도 업그레이드됐다. 92년 공식수교 이래 지금은 ‘포괄적 동반자’로 입지가 강화됐다. 김대사는 “수교 초기 베트남은 한국을 단기간에 부를 축적한 졸부 정도로 인식했다”며 “하지만 지금은 벤치마킹해야 할 최적의 국가로 바라보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한국 정부의 대표(특명전권대사)로서 갖는 안타까움도 적잖다. 능력에 비해 요구수준ㆍ기대치가 높을 때가 대표적이다. 그는 “해달라는 건 많은데 해줄 수 있는 게 별로 없을 때 참 난감하다”며 “실제로 한국의 ODA나 EDCF(대외경제협력기금) 규모가 크지 않다”고 설명했다. 5만~6만달러 정도는 대사의 전결사항으로 사용할 수 있는 일본만 해도 사정이 낫다. 한국은 조그만 것까지 본부허가가 필수다. 그나마 점차 나아지고 있어 고무적이다. 김대사는 “일본처럼 도로나 다리 등 큼직한 걸 만들어주고 싶지만 지금은 쓰레기하치장처럼 작은 것만 가능하다”며 안타까워했다.
베트남 진출을 원하는 기업에 조언을 부탁했다. 김대사는 무엇보다 현지사정을 확실히 알고 접근하길 권했다. 가령 노무관계는 사회주의국가지만 한국보다 낫다. “여기선 노조가 있는 게 더 낫다고 할 만큼 노사관계가 협조적”이라고 말했다. 결국 노사분쟁 우려는 접어둬도 괜찮다. 문제는 투명성이다. 기간이 오래 걸리고 절차가 까다로워서다. 부동산 개발업체의 건설 프로젝트가 그렇다. 가령 민원이 늘면 추가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게 보통이다. 관련부서에 타협을 요청해도 주민과의 문제인 까닭에 좀체 나서지 않는다. 김대사는 “최근 베트남에 건설 붐이 일면서 한국 건설업체가 많이 들어와 있는데 여러 이유로 공기가 늦어지는 경우가 많다”며 “이런 점을 충분히 숙지한 다음 조심스러운 접근자세를 보이는 게 좋다”고 말했다.
베트남이 사회주의적 시장경제를 지향하는 체제전환국인 점도 염두에 둘 것을 조언했다. 김대사는 “대외개방이 가속화되다 보니 많은 기업인들이 베트남을 자본주의국가로 보는데 이건 오해”라며 “정치ㆍ사회적으로는 엄연히 사회주의국가란 점을 깨달아야 한다”고 말했다. 즉 임금ㆍ사회보장비ㆍ노조ㆍ정부영향력ㆍ조세제도 등이 한국과는 다르다는 얘기다. 문화ㆍ정서적 차이도 존재한다. 때문에 법적 미비점에 대해선 모든 계약서를 아주 자세히 작성하는 게 좋다.
김대사는 베트남의 자존심을 자주 소개했다. “국가나 개인 모두 자존심이 대단하기 때문에 이걸 지켜줘야 한다”며 “지금 못산다고 무시하거나 홀대해선 안될 것”이라고 말했다. 더구나 한국은 베트남에 ‘마음의 빚’까지 있다. 베트남전쟁 파병이 그렇다. 김대사는 “베트남 사람들은 옛날 일을 들춰 공론화시키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며 “한국에서 들춰내서 그렇지 정작 이쪽에선 조용하다”고 전했다. 다분히 실용적으로 갈등보다 희망을 논하겠다는 게 이쪽 정서라는 설명이다. 한국관광객들도 마찬가지다. “이 사람들의 아픈 데를 안 건드려야 한다”며 “관광을 하더라도 자존심을 상하게 해선 곤란하다”고 덧붙였다.
약력: 1947년 출생. 74년 서울대 독문학과 졸업. 76년 외무고시 합격. 80년 주캐나다 3등서기관. 86년 주브라질 참사관. 90년 중근동 과장. 94년 주독일 참사관. 99년 아중동국 참사관. 2001년 주루마니아 대사. 2005년 주베트남 대사(현)
‘따뜻한 자본주의’ 심을 겁니다
“베트남에 가봤나요. 정말 역동적이죠. 개인적으로 자주 가는데 정말 엄청납니다. 갈 때마다 팔뚝의 혈관이 꿈틀대는 걸 느껴요. 기회의 땅인 게 분명하죠. 앞으로 20년은 발전할 겁니다.” 이상준 브릿지증권 사장은 남다른 핏줄의 소유자다. 베트남 최초ㆍ최후의 독립왕조였던 리(Lyㆍ李)왕조 후예다. 리왕조는 12세기 중반 중국계(진씨 왕족)에 의해 멸망된 후 베트남에선 멸족된 걸로 알려졌다. 하지만 800여년 후 3,600여㎞나 떨어진 한국에 후손이 살고 있음이 확인됐다. ‘화산 이씨’다. 1226년 왕족 몰락 직후 베트남을 탈출한 왕자(이용상)가 ‘보트피플’ 신세 끝에 황해도 화산(옹진지역)에 ‘불시착’한 게 인연이 됐다. 현재 36대까지 내려왔으며 모두 1,400여명에 불과한 미니 가문이다.
이사장은 2003년 처음으로 베트남을 방문했다. 첫인상은 강렬했다. 왕조 창건자인 ‘리공운’에 대한 베트남 사람들의 존경ㆍ애정이 대단했기 때문. 이사장은 “만나자마자 베트남 사람들은 내가 정말 리왕조의 후예인지 몇 번이나 물었다”며 “화산 이씨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다”고 기억했다. 그도 그럴게 리왕조는 중국으로부터 자주성을 유지하며 무려 250년간 독립왕조를 꾸려나갔다. 베트남의 자존심을 지켜준 유일무이한 왕조였다. 2002년에는 ‘화산 이씨’ 시조인 이용상 왕자에 대한 일대기가 엄청난 반향 속에 하노이오페라극장에서 공연됐다. 95년 종친회 간부들이 베트남을 찾았을 때는 당시 도 무오이 당서기장을 비롯한 3부 요인이 모두 나와 환대했다. 베트남 정부조차 ‘우리야말로 리왕조의 정통성을 이어받은 정권’임을 강조한다. 지금도 화산 이씨는 주베트남 교민 모임이 있을 때 교민자격으로 초대받는다.
이사장은 구조조정ㆍ인수합병 자문ㆍ투자 특화회사인 골든브릿지 금융그룹의 설립자다. 그를 설명하는 데는 몇가지 키워드가 있다. 하나는 ‘ESOP’(차입형 우리사주제)다. 노조에 지분을 줘 경영에 참가토록 하는 노사상생의 뉴패러다임 개막을 의미한다. 정년이 없는 대신 철저한 공개 연봉제로 노사갈등비용을 줄인다. ‘대체투자’와 ‘사회책임투자’는 그가 추구하는 ‘한국형 투자은행’의 양 날개다. 새로운 영역에서 돈을 벌되 좋은 일에 기여하자는 개념이다. 이른바 ‘인간의 얼굴을 가진 자본의 창출’을 최대 원칙으로 삼는다. 그러자면 이론ㆍ경험을 겸비한 ‘금융게릴라’가 필수다. ‘잃어버린 왕족의 후예’답게 그에게는 베트남이 ‘따뜻한 자본주의’를 실험할 무대다. 베트남과의 각별한 인연을 계기로 ‘내일의 금맥’을 캐기 위해 열심이다.
발걸음도 가볍다. 최근에는 작지만 의미 있는 성과가 나왔다. 지난 11월24일 베트남 자산관리공사(DATC)와 부실채권 처리 및 기업 구조조정ㆍ전문가 교육 등에서 협력하기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이로써 블루오션 진출을 위한 교두보 안착에 성공한 셈이다. 이에 앞서 베트남 탕롱증권과는 업무협조 양해각서도 체결했다. 이사장은 “향후 베트남의 기업 구조조정 및 M&A시장을 집중 공략할 수 있게 됐다”고 평가했다. 사실 이사장은 창업 때부터 해외공략이 핵심전략이었다. 관련사업 프로젝트도 차근차근 준비했다. 투자기간만 5년이다. 이를 위해 하노이대 출신 4명을 한국으로 불러 MBA과정까지 지원해줬다. 나중에 금융전사로 쓰기 위함이다. 그는 “이제는 금융게릴라로 활용할 수 있을 만큼 준비가 끝났다”며 “베트남 금융선진화를 지원하는 동시에 한국기업의 통로 역할도 맡고 싶다”고 전했다.
이사장은 ‘칠전팔기’의 주인공이다. 7번의 사업실패 후 8번째 보기 좋게 재기했다. 불과 5년 만에 업계가 주목하는 다크호스로 ‘우뚝’ 섰다. 10억원의 쌈짓돈을 1,500여억원으로 키워냈다. 신용불량자에서 ‘브릿지’라는 금융그룹 총수로 변신했다. 또 수배를 피해 쫓겨 다녔던 노동판 용접공이 이제는 나라 밖 골드러시를 진두지휘한다. 업계가 긴장하는 건 이뿐만이 아니다. 포인트는 향후의 행보. 그의 출사표에는 전대미문의 첨단 금융기법과 경영전략이 가득하다. 몇몇 케이스는 굵직굵직한 금융회사마저 벤치마킹에 목을 맨다. 그는 “금융게릴라에게 국경은 없다”며 “베트남 등에서 다함께 잘사는 새로운 사업모델을 제시할 것”이라고 밝힌다.
약력: 1958년 서울 출생. 서울대 공대 자원공학과 졸업. 87년 전태일 노동자료연구소 정보화팀장. 89년 전국보험노련 홍보부장. 92년 다처산업 대표. 98년 국회의원(김영선) 보좌관. 2000년 골든브릿지 설립ㆍ대표. 쌍용캐피탈ㆍ골드브릿지기술투자 대표. 2005년 브릿지증권 대표(현)
‘최적의 기업환경 만들어 드립니다’
<한경비즈니스>가 창간 10주년을 맞아 베트남 국무총리와 단독인터뷰를 가졌다. 베트남 외교가에 따르면 판 반 카이(Phan Van Khai) 총리와 인터뷰를 가진 내ㆍ외신언론은 <한경비즈니스>가 거의 최초로 알려졌다. 굵직굵직한 외신들마저 총리 인터뷰는 사실상 ‘불가능한 과제’였다. 베트남 정부 역시 사회주의국가답게 언론 노출에 미온적인 입장을 견지했다. 더욱이 취재팀이 방문한 때(11월 말)는 11대 국회 제8차 정기국회 회기 중으로 시간을 내기가 더 빡빡한 실정이었다. 취재팀이 성사 직전까지 마음을 놓지 못한 이유다. 하지만 오랜 접촉과 장기간의 기다림 끝에 마침내 ‘취재허가’가 떨어졌다.
카이 총리는 베트남 권력실세 1인자다. 권력서열로는 당서기장(농득만)ㆍ국가주석(천득렁)에 이어 3위지만, 실제 영향력은 ‘거꾸로’다. 총리는 국회지명을 받아 내각ㆍ경제를 총괄하는 실질적인 권력을 갖는다. 행년 71세로 1997년 총리직에 처음 올랐다. 2002년 국가주석과 함께 각각 재선돼 올해로 9년째 국가를 이끌고 있다. 2007년 임기가 끝나지만 그의 정치 파워를 의심하는 이는 없다. 그만큼 확고한 입지를 장악했다. 지지율도 높다. 개혁성향의 지도자로 알려졌으며 대외교섭력이 뛰어난 협상가로도 유명하다. 1933년 남부 호치민시에서 태어나 47년부터는 프랑스에 항거하는 혁명전사로 활약했다. 60년에는 모스크바경제대학에서 유학했다.
2005년 한 해를 점검해주시죠.
2005년도 경제사회 발전성과는 긍정적인 것으로 평가됩니다. 처음 목표로 했던 경제사회 발전목표 중 상당수가 달성될 것 같아요. 주요 경제지표를 보면 단적으로 알 수 있는데요. 특히 GDP 성장률은 목표치인 8.5%에 근접할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소비자물가는 목표치인 6.5% 이하로 묶는 게 다소 어려울 전망이에요. 2005년을 포함해 최근 몇 년간 베트남의 경제사회 발전상황은 대체적인 긍정평가가 가능할 겁니다만, 아직 부족한 점도 많아 향후 이에 대한 대비책을 강구해야 할 겁니다.
현재 베트남 정부가 집중하고 있는 프로젝트에 대해 설명해주시죠.
현재 베트남은 저개발국을 벗어나 저소득 개발도상국의 문턱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2001~2010년의 10주년 사회경제발전전략을 실시하고 있죠. 오는 2020년에는 현대적 산업국의 기반을 갖추는 게 목표예요.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베트남 정부는 전면적인 대규모 사업들에 모든 역량을 집중ㆍ실시하고 있습니다. 국내외 기업의 투자환경 및 경영환경을 개선시키는 게 대표적이죠. 국영기업 개혁도 급한 과제예요. 사기업이 경제력을 갖추는 것도 격려할 계획이고요. 외국(투자)자본을 강력히 유치할 뿐만 아니라 경제구성원을 비롯한 모든 동력을 동원해 공공개발에 참여시킬 겁니다.
시장경제체제는 어느 정도까지 받아들일 건가요.
현대화에 발맞춰 경제체제를 전환할 겁니다. 전면적인 시장경제체제의 형성ㆍ발전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 여기엔 건설ㆍ노동력ㆍ부동산ㆍITㆍ서비스ㆍ자금ㆍ재정정책 등 거의 모든 부문의 개선이 포함됩니다. 세계경제 및 지역경제의 체제전환도 빠르게 추진할 거예요. 특히 아시다시피 베트남 정부는 이른 시간 내에 WTO(세계무역기구)에 가입할 계획이에요. 더불어 베트남의 경제개발은 빈곤퇴치와 사회적 문제해결을 동시에 염두에 두고 실행될 겁니다.
장기간 8% 가량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는데요. 원동력은 뭡니까.
베트남이 그간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하고 유지할 수 있었던 건 건전한 개혁노선과 올바르게 부합한 정책이 모든 국민의 협력을 유도했기 때문입니다. 국민의 감춰진 창조적인 잠재력을 계발시킨 셈이죠. 거시경제 환경을 건실하게 유지하고 법률문서를 제정하는 등 경영ㆍ생산 활동을 위해 좋은 여건을 최대한 제공해줬어요. 사회ㆍ문화발전과 치안유지, 행정력 강화 등 경제개발과 맞물린 여러 요구를 결합함으로써 국가도 중대한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무엇보다 개개인의 노력을 뺄 수 없어요. 모든 경제구성원의 노력과 능동적인 창조정신, 시장체제에 조속히 순응하려는 의지 등이죠. 특히 개인경제 부문의 발전이 남다릅니다. 이들이 베트남 경제의 아주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어요.
외국자본의 역할은 어떤가요.
베트남 경제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또 하나의 원동력이 외국투자자금이에요. 국제 재정기관 및 NGO의 재정 원조 등도 큰 힘이 됐습니다. 현재 외국기업들은 베트남의 정책과 발전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갖고 베트남에서의 경영 및 경제발전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죠. 현재 경제부문만 놓고 봤을 때 외국투자는 베트남 GDP의 14%, 사회투자자금의 20%, 수출액(원유 수출액 미포함)의 3분의 1 정도를 기여하고 있습니다. 이는 베트남 국가예산과 함께 일자리 창출에 큰 도움을 주면서 노동력 문제를 해결해주고 있죠.
인도네시아를 빼면 베트남은 남아시아 최대 산유국입니다. 원유 관련 정부정책이 궁금합니다.
석유ㆍ가스는 베트남 경제에 아주 중요한 부문입니다. 베트남의 잠재력이죠. 이를 개발해 에너지 안정을 보장하고 건전한 경제발전에 기여하도록 할 겁니다. 해외 각국과의 협력도 보다 확대할 방침이에요. 이런 다각도의 노력을 기반으로 석유ㆍ가스산업을 발전시킬 겁니다. 베트남의 원유 관련 전략은 일단 오는 2010년까지 원유 산출량을 매년 3,000만~3,200만t까지 증가시키는 거예요. 이밖에도 석유화학ㆍ정유산업을 개발해 2010년까지 국내시장의 가스 관련 수요의 60%에서 70%까지 충족시킬 계획입니다. 광나이성 중꾸엇 정유공장은 2008년 말부터 생산에 들어갈 예정입니다.
경제개발과 공평분배는 어떻게 조화시킬 건가요.
경제개발과 사회적 균등ㆍ진보실현은 베트남 정부의 경제ㆍ사회정책의 기본전략입니다. 사실 베트남은 여러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데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어요. 각 지방, 특히 농촌ㆍ산악지대ㆍ소수민족지역을 집중으로 빈곤퇴치ㆍ교육실시ㆍ일자리 창출ㆍ의료봉사 등의 사업에 투자하는 예산이 국가 전체 투자예산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죠. 이런 올바른 정책과 경제발전 성과를 바탕으로 사회균등 발전을 위한 지출액은 이미 정했진 목표를 달성했습니다. 심지어 목표를 초과한 적도 있어요. 우리는 매년 150만~160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습니다. 최근 10년 동안 빈곤인구의 50%를 감소시켜 세계가 높이 평가하고 있죠.
향후 빈곤퇴치 프로그램을 소개해주시죠.
빈곤퇴치 관련 국가중점사업은 산간ㆍ고산지대에서의 기반 인프라사업, 특히 빈곤층을 대상으로 특별 신용융자 프로그램과 교육ㆍ의료지원 사업에 집중될 겁니다. 또 정부는 지속적으로 빈곤층을 대상으로 지원금을 늘리고, 지원이 필요한 곳이 빠른 속도로 발전할 수 있도록 우대정책을 실시할 겁니다. 농촌지역은 외국인투자를 유치할 수 있도록 특별 재정지원을 받게 될 거예요. 이런 정책은 농촌지역의 생산 및 수입을 증대시켜 빈곤퇴치사업에 기여하고, 수입의 균형분배를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도록 할 겁니다.
2006년은 다음 차수의 5개년 개발계획이 시작되는 해입니다. 계획방향을 제시해주시죠.
내년은 2006~2010년간의 경제사회발전 5개년 계획이 시작되는 매우 중요한 시기에요. 그만큼 앞서 설명한 개선사항들이 좋아지고 있는지 중점적으로 점검할 겁니다. 또 인력개발 등을 통해 국민소득을 향상시키고 발전 잠재력이 큰 분야를 지속적으로 개발해 고도성장을 계속 유지시켜 나갈 예정입니다. 아울러 환경보존과 사회ㆍ문화부문도 함께 발전을 도모해 나갈 계획입니다. 내년 성장률 목표는 8%로 잡았습니다.
한국기업에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베트남은 뛰어난 솜씨를 가진 풍부한 노동력을 보유하고 있어요. 정치적 환경도 안정된데다 지속적인 고도성장을 실현하고 있는 큰 시장입니다. 베트남 정부는 베트남에 진출한 기업에 좋은 여건을 갖춰주기 위해 경영환경을 적극적으로 개선시키고 있어요. 지난 9월까지 한국의 대베트남 총투자규모는 약 51억달러에 971건의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대베트남 투자국 중 4위 정도죠. 한국투자자들의 베트남시장에 대한 믿음과 관심이 아주 높습니다. 또 베트남에 대한 많은 투자가 안정적이고 경영성과가 높기도 하고요. 앞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베트남시장의 잠재력 및 장점을 효율성 있게 개척하고 베트남기업과의 협력을 촉진시켜야 한다고 생각해요. 한국기업들이 아무쪼록 많은 장점을 개발해 베트남에서 큰 성공을 거둘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약력: 1933년 호치민 출생. 47년 혁명전사 활동(안티프랑스). 60년 모스크바경제대학 유학. 65년 국가계획위원회 근무. 76년 호치민시 부위원장. 81년 호치민시 부당서기ㆍ중앙위원 선출(5대 국회). 89년 국가계획위원회 위원장. 97년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 국무총리 당선. 2002년 국무총리 재선(현)
취재 = 양승득 편집장ㆍ전영수 기자
전문가 기고 = 김영웅ㆍKOTRA 하노이무역관장 / 사진 = 김기남 기자
첫댓글 모두 옳으신말씀입니다. 그러나 조금더 알고 투자를하셔야합니다.인권비가 싸다라는 장점이있지만 여러가지 악조건들이있다는갓을 깊이있게 알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태이님이 격으신 소중한 경험들을 여러회원님들을 위해 공개 좀 해주세요,즐거운 휴일 오후 되시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