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목이 잡히다
몇 개월간 텔레비전 예능 프로그램에 폭 빠졌다. 경연자 개개인의 독특한 음색으로 애간장을 녹이듯 구성지게 불러대는 트로트가 심금을 울렸다.
그중 모든 음역대를 오르내리며 내 감성을 사로잡는 유력한 우승후보가 이웃마을 청년이라니 더욱 반가웠다. 그를 응원하느라 텔레비전 앞에서 자정을 넘겼고, 지인들까지 독려하면서 모바일 투표에 적극 참여했다. 드디어 1차 결승전에서 1위의 성적을 얻은 그가 자랑스러웠고 내 일인 양 기뻤다.
그가 막상 1차 결승전에서 1위를 움켜쥐자 지난날 학교폭력과 사회생활의 문제점들이 불거져 나와 전국을 훨훨 날았다. 결승전 1위의 영광이 불쏘시개가 되어 그를 향한 비난과 지탄이 걷잡을 수 없는 불꽃으로 타오르며 번져갔다. 결승에서 우승하면 거액의 상금을 불우이웃에 기부하겠다는 발언조차 오히려 돌아오는 화살이 되어 안타까웠다. 그는 결국 과거 폭력 전과에 발목이 잡혀 2차 결승전에서는 자진 하차했다.
허탈했다. 삶이 교과서와 같지는 않더라도 객관적인 규범에는 근접해야 하는데, 그 청년의 과거 폭력전과는 충격적이었다. 마침 학교폭력을 주제로 한 드라마가 나라 안팎에서 고공시청률 보였고, 폭력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이 확산되고 있었다. 그의 노래를 좋아하던 이들도 매몰스럽게 돌아섰다. 과거의 잘못이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최종 결승 우승후보자의 하차를 두고 의견이 분분했다. 나이 많은 세대는 교육을 빙자한 회초리에 익숙했던 탓인지 폭력을 당하는 것도 자라는 과정의 한 단면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분노의 정도도 젊은 세대들 보다 약했다. 반면 감수성이 예민한 젊은 세대는 학교 폭력에 민감했다. 그들 부모 세대들은 훈육 차원에서도 자녀들에게 폭력을 사용하는 경우가 없거나 드물었다. 하여 폭력에 대해 극도로 민감했고 공인이 될 사람이 과거에 학교폭력 가담자라는 사실에 분기탱천했다. 그 모습을 보며 연예인의 최우선 덕목이‘재주보다는 좋은 인성’임을 다시금 절감했다.
오랜 직장 생활을 하면서 크고 작은 학교폭력을 접했다. 감수성이 예민할 때 당한 학교폭력 피해자들의 정신적 피해는 오랜 세월이 지나도 완치되지 않았다. 그들은 불안과 우울증에 시달리기도 했었고, 스트레스와 낮은 자존감으로 사람들과 어울리려고 하지 않았다. 다행히 잘 극복하여 사회생활을 잘하고 있는가 싶다가도 불쑥불쑥 드미는 폭력 피해로 괴로워하기 일쑤였다.
요만큼 살고 보니 아이들에겐 무엇보다 부모의 가정교육이 최우선임을 깨닫는다. 인격이 형성되는 유아기부터 부모는 자녀에게 남에게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아야하고, 자녀들은 귀가 닳도록 들으며 자라야 타인을 존중하는 태도가 형성된다. 또한 평소에 부모들이 바른생활 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자녀들에게 고스란히 스며들어 아이들이 바람직한 인격체로 성장할 수 있다.
작금의 학교교육은 지나친 학부모의 간섭으로 생활지도를 제대로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작은 나무람에도 아이의 자존감을 다치게 했다며 교사를 고소고발 하는 경우가 많다. 더러는 학부모가 직접 교사에게 생채기를 내기도 한다. 교사들이 적극적인 생활지도에 임할 수 없는 현실이어서 올바른 가정교육이 더욱 필요한 시점이다.
주위에는 생각지도 않은 과거사로 발목이 잡혀, 우두망찰 서있거나 뒤로 물러서야 하는 경우가 많다. 때로는 인생이 아작 나서 재기의 기회를 잃기도 한다. 교육기관에서는 이런 실제사례들을 모아 자료집으로 제작하여 교육과정에 활용하였으면 한다. 용천에 피가 끓는 시절, 앞뒤를 재지 못하고 행동하는 이가 오죽 많은가! 이때 이 자료집이 내일을 준비하는 세대들에게 시금석이 되리라 본다.
인생의 황금기회에 불쑥 튀어나온 과거 폭력 전과는 치명적이다. 거액의 상금은 두고라도 심금을 울리는 목소리와 그의 표정 하나하나까지 아끼고 사랑했던 많은 펜심이 돌아선다. 무명에서 빛나는 무대로 도약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였는데 그 발판을 잃고 만 셈이다.
우뚝 선 그의 기량을 보면 그간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지 짐작되기에 마음이 짠하다. 아직 젊으니 거듭 태어 날 기회는 많다. 차후로 스스로 내면을 갈고 닦고, 피해자들에게 진심을 다해 사과하고 봉사활동으로 반성해야 한다. 재능도 키워 더 큰 사람이 된 그가, 큰 무대에서 감미로운 노래를 부르는 날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