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은 곤란합니다 <13>

청소년은 곤란합니다 글쓴이 : 우주가람 <13> 문을 닫고 나온 수빈은 한동안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어째서 그런 말을 한 거지. 어째서 저 아이에게 같잖은 희망을 주고 나왔냔 말이야. 사람은 간사하다했던가. 언제나 되뇌이는 말이었지만 오늘 은 더욱 그 말이 확실히 머리를 뒤흔든다. 저 아이. 검은 눈동자와 검은 머리의 아이를 보게 되면 그 바보 같은 웃음에, 그 당당하고 달달한 순수함에 저도 모르게 의도하고 있지 않던 말을 내뱉고 만다. 그 앞에서 한 말, 자신이 한 말, 그 아이가 한 말, 그 모두를 기억하게 된다. 별말도 아니었는데 하 나하나 맘속에 담게 된다. 그 아이 앞에 서면 자신이되 자신이 아니게 되어버린다. “...미쳤지. 뭐하는 거야 나. 진심으로 키스를 받아들여버리다니.” 얼굴이 불타는 듯 달아올랐다. 젠장, 왜 자꾸 말리는 거냐고. 이번엔 키스까지 그렇게 받아들여?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핸드폰을 끼적거리고 있는 요한이 보였다. 지하로 내려가는 난간에 살짝 기대고 있는 요한의 모습은 꽤나 쓸쓸해보였다. 그러고 보니 저 녀석도 그런 상대가 있다고 했었지. 자신이 내리자 천천히 눈을 돌린 요한이 특유의 날 선 웃음을 흘렸다. “일찍 내려왔네.” “그럼 내가 언제까지 거기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수빈이 또 틱틱대자 요한은 핸드폰 플립을 닫으며 다가왔다. 수빈은 그를 피하지 않았다. 이 남자의 눈 엔 한점의 검은 구름이 없다. 너무나도 솔직히 자신을 내까발리고 있어서 때론 모든 것이 거짓인가 싶기 도 하다. 수빈에게로 다가온 요한이 팔 한쪽을 들어 자신보다 조금, 아주 조금 더 작은 수빈의 어깨를 둘러 감쌌다. “아~ 춥다.” 하긴 밤이 되니 조금 춥긴 하다. 수빈이 별 말 않고 걷자 요한도 별 말 않고 여전히 팔을 두른 채로 걸어갔다. 그렇게 찬은의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왔다. 찬은의 향기에서는 아직 빠져나오지 못한 것 같지만 말이다. 경사 길을 내려오며 요한이 말없이 수빈의 앞으로 자신의 폴더를 연 핸드폰을 들이댔다. 이게 뭐냐는 듯 수빈이 고개를 돌려 쳐다보자 요한이 피식 웃으며 번호, 라고 말했다. 그러자 수빈은 저도 힘없이 웃으 며 대답했다. “내 번호 비싸.” “내 번호는 다이아몬드야. 빨리 받기나 해. 손 시리다.” 손이 시리면 어깨동무하고 있는 팔도 그냥 내려서 주머니에 찔러 넣으면 되는거잖냐. 수빈이 날카롭게 손 톱을 세우고 박박 긁어대도 요한은 자신이 금강석이라도 되는 마냥 꿈쩍 않고 계속해서 핸드폰이나 받으 라 말해댔다. 결국 후드 앞주머니에 손을 집어넣고 걷고 있던 수빈이 손을 꺼내 요한의 핸드폰을 가져갔 다. 키판의 느낌이 낯설다. 자신의 것보다 훨씬 납작하고 누르는 느낌도 제대로 나지 않는 요한의 키판에 수 빈의 입술이 못마땅하게 튀어나왔다. 그걸 본 요한이 킥킥대며 다시 손을 수빈 앞에 뻗었다. “뭐.” 수빈이 또 뭘 바래, 라는 투로 묻자 요한도 지지않고 당연하다는 듯이 요구했다. “너꺼.” “내껀 또 왜.” “내가 언젠 별 이유 있이 행동하나.” “하긴. 너꺼 키판 맘에 안 들어.” 수빈은 그세 또 요한에게 말린 듯 자신의 번호를 저장한 요한의 핸드폰과 자신의 핸드폰을 요한의 손에 쥐어주었다. 핸드폰을 받은 요한은 오른손으로 재빨리 자신의 폴더를 열어 수빈이 저장한 것을 찾기 시작 했다. 이내 찾은 요한의 얼굴이 맘에 안 든다는 듯 확 일그러졌다. “윤수빈이 뭐냐, 윤수빈이.” “왜. 다른 사람들도 다 이름으로 되어있드만.” “그건 그거고, 넌 너고.” “뭐. 어쩌라고 그래서.” 수빈이 작은 입술을 빼죽이며 짜증과 함께 요한의 팔에서 빠져나갔다. 요한의 왼팔이 걸쳐져있던 오른쪽 어깨가 시원해진다. 수빈은 갑자기 추워진 것 같아 몸을 부르르 떨며 요한 앞에서 자신의 폰이나 내놓으 라 협박해댔다. 하지만 요한은 그런 수빈이 그저 귀엽다는 표정을 하며 다시 수빈의 머리를 끌어안고 사 정없이 머리를 헝클어댔다. “죽여 버린다. 안 떨어져?” 자존심 때문인지 온몸으로 반항하는 것이 아닌 소리만 높이는 수빈이 더 수빈다웠다. 누구에게든지 맘을 열고 꼬리치며 달려가는 축 늘어진 귀의 강아지가 아닌 이 녀석은 10년이 가도 도도함을 잃지 않을 짧 은 털의 검은 길고양이. 절대로 사육되어지지 않을 검은 길 고양이. 그것은 굶어죽을지언정 양식을 위해 눈을 노랗게 물들이진 않을 것이다. 러시안 블루의 도도함을 담은 길고양이라. 그래, 매력 있지. 확실 히 사육사들을 유혹하는 무엇인가가 있다. 요한은 수빈을 놓아주며 수빈이 결코 침 뱉지 못할 웃음을 띄우며 말했다. “개인적으로 짝사랑은 한번이면 족해. 게다가 어린 연적은 더더욱 싫고. 그러니까 난 그냥 시작도 안하련다.” “무슨 소리야. 추워죽겠고만. 핸드폰이나 내놔.” 여전히 틱틱대는 수빈의 태도 중에도 요한은 수빈의 폰에 자신의 번호를 저장시키고 있었다. 저장 완료된 핸드폰을 수빈의 후드 앞주머니에 쓱 밀어 넣어 준 요한에게 수빈은 도끼눈을 뜨며 말했다. “하여간에 재수 없어.” “재수 없는데 싫진 않지?” 대체 저놈의 자신감은. 킥킥거리며 요한이 말하자 수빈은 대답이 막혀와 저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하긴. 맞는 말이긴 해. 재수 없고 능글맞고 어이없는데 싫진 않다. 두 번 본 사람 같지 않게 묘한 경계감 또 한 없다. 어디선가 이 남자에겐 동질감이 느껴진다. 같은 향이 피어 나와서 무시할 수가 없다. 수빈이 웃자 요한은 다시 수빈에게로 다가와 어깨를 둘렀다. 수빈이 다시 얼굴을 찡그렸지만 역시 요한은 신경 쓰지 않았다. “너 어깨동무 무지 좋아하네.” 어깨를 으쓱거리며 요한이 동문서답했다. “버스정류장까지 데려다줄게.” “버스타고 가는 건 어떻게 알았어.” “응? 그냥 찍었어.” ...물어본 내가 등신이지. 수빈은 그냥 이 녀석은 머리 쓰지 않고 대하기로 결정했다. 아니 사실 머리 굴리며 대해봤자 까낼것도 얻어질 것도 없는 녀석이니까. 하지만 그렇게 결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억 한 심정을 다 삭이지 못한 수빈이 요한을 뚫어져라 쳐다보자 요한이 낄낄대며 말했다. “그렇게 계속 쳐다보면 확 뽀뽀해버릴거다.” “미친놈.” “이도 닦고 나왔거든. 난 얼마든지 준비 돼 있으니 뽀뽀하고 싶으면 언제든지 그렇게 뜨겁게 쳐다봐달라고.” “...그냥 맞아라. 맞아죽어.” 결국 수빈은 주먹을 들 수밖에 없었다. 버스에 타 기분 좋게 뒷자리에 앉자 후드 안에서 진동이 울려왔다. 습관적으로 입술을 매만지던 검지를 멈추고 주머니에 손을 넣어 핸드폰을 꺼냈다. 슬라이드를 올리자 문자 한통이 와 있었다. 보나마나 고요 한 자식일거다. 이상하게 흘러나오는 웃음에 수빈은 홀린 듯 확인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집에 빨리 들어가서 자. 꿈에서 보자, 이쁜이 고객]                     -119상담원- 그리고 수빈은 웃음을 멈추지 않으며 빠르게 답장했다. 동시에 요한의 핸드폰엔 한 문자가 도착했다. [보는 즉시 사살]     -이쁜이 고객- 그 문자 하나가 뭐가 그렇게 귀여웠던지 요한은 아무도 없는 빈 버스정류장에서 미친 듯이 웃어버리고 말 았다. 역시 어린 연적이 조금 신경 쓰이더라도 한번 제대로 대쉬해볼 걸 그랬나. 아쉽네. 하지만 만족 한다. 이정도의 거리도 꽤나 성공한 거니까. 요한은 누군가에게 습관적으로 전화를 걸었다. “수민형! 나 추워죽겠어요!” [...그냥 얼어 죽어.] “아 아저씨는 왜 수민형 사생활을 침해하고 그래요!” 마음은 그리 쉽게 변하지 않나보다. 여전히 그 사람이 좋다. 여전히 사랑을 하고 있는, 여전히 웃으며 자신에게서 등 돌리고 있는 그 사람이 좋다. 마음이 변하지 않는다. 요한은 몇 마디 더 하다가 장난스 럽게 전화를 끊고 씁쓸한 웃음을 흘렸다. 다시 사랑을 할 수나 있을까. 아아, 아무리 생각해봐도 모르겠다. 공항에서 채 나오기도 전 서우는 이곳에서 절대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여자를 만났다. 정말 이 지독한 연은 끊이지도 않는다. 누구하나가 먼저 죽어버리기 전까지는. 자신의 어머니만 아이었더라면 이미 예전에 난자해버렸을 여자. 그 오만한 여자를 바라보며 자신은 자리 에 멈춰있었다. 그 여자를 본 순간부터 다시 악몽을 시작된다. 절대로 자신이 떨쳐낼 수 없는 그 지독 하고도 아린 악몽이 되풀이 된다. 서우가 눈앞에 그녀를 보고 아예 눈을 감아버리자 되려 민망해진 것은 그의 옆에 서 있던 여자였다. 모델같이 늘씬한 몸매에 가슴을 드러낸 검은 정장이 잘 어울리는 그 여자는 그의 어머니를 익히 알고 있 는 듯 어쩔 줄 몰라하며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그리고 어머니에게로 다가가려는 그녀를 서우가 저지했다. 그녀의 가느다란 손목을 잡고 서우가 영어로 속삭였다. “3번 게이트 바로 앞에 기사 있을 거야. 먼저 가 있어. 오늘 안엔 갈게.” “...어쩌려고.” 그녀는 의외로 유창한 한국어로 그에게 되묻는다. 그는 그녀의 한국말은 생각지도 못했는지 눈을 살짝 치 켜떴다. 그러자 그녀는 한숨을 푹 쉬며 속삭였다. “I'm also half Korean. Well, even though I was an orphan. If you wanna picky about that right now, I'll kick your ass.” (나도 반은 한국인이야. 뭐, 고아였긴 하지만. 근데 지금 여기서 그걸 물고 늘어지겠다면 죽일 거야.) 서우는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흘리며 그녀의 어깨를 톡톡 건드렸다. 이제 그는 맘 편히 한국말로 그녀에 게 속삭인다. “발음 나쁘지 않았어. 그러니까 어서 가. 난 저쪽하고 할 말이 길어질 것 같으니까. 가서 집 청소 좀 하고 있어.” “짐정리는 네가 와서 해. 난 나가 있을 거야.” 그녀는 장난스럽게 말한 뒤 서우의 어머니 앞에서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인 뒤 3번 게이트로 빠져나갔다 . 그제야 서우는 천천히 그의 어머니 앞으로 걸어갔다. 짐은 이미 기사가 가지고 갔기에 손에 들린 것 은 작은 수트케이스뿐이었다. 서우는 수트케이스를 성의없이 끌며 그의 어머니 앞에 가 섰다. 고개를 한번 까딱인다. 인사치고는 상당 히 건방진 모습이었지만 그런 사소한 것엔 신경쓰지 않는 다는 듯 그녀는 여전히 무감동한 표정을 풀지 않으며 그에게 물었다. “아직도 저런 잡종과 같이 다니나.” “능력 있는 여잡니다.” “더러운 잡종이기도 하지.” 오만한 그녀의 말에 서우는 피식 웃으며 수트케이스의 손잡이에서 손을 놓았다. 손이 자유로워진 그는 살 짝 손가락을 풀며 그녀에게 대답했다. “그리고 저도 잡종이지요.” 그 말 한마디에 그녀의 가느다란 눈썹이 치켜 올라간다. 아무리 봐도 50대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할 여 인의 모습이었다. 참 곱게 늙었다. 얼굴 하나 빼면 남는 게 없는 여자란 말이 딱 맞아떨어지는 여자였 다. 젊을때고 늙어서 죽을 때까지 이 여자는 아마 자신의 얼굴을 감사하며 살아야할 것이다. 그 얼굴 덕분에 남자 하나 잘 물어 이렇듯 고귀하다는 듯 생활 할 수 있게 된것이니. “이곳엔 왜 왔지.” “어머니께선 모르셔도 되는 일입니다.” “이곳에서부터 네 일거수일투족을 내게 알리고 싶다면 구지 말하지 않아도 좋아.” 그녀는 내뱉은 말은 진실이고 진심이다. 그건 서우가 누구보다도 더 잘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짧고 간결 하게 이 곳에 온 이유를 밝혔다. “아버지께서 제가 사업에 관심있어 하시는 것을 보시고 이쪽 시장도 한번 검토해볼겸, 자리도 알아볼겸 직접 가보라며 보내주셨습니다.” “그이가 그랬단 말이지?” 독사같은 여자. 아무리 생각해봐도 저 여자의 뱃속에서 자신이 태어났다는 것은 평생이 가도 인정하고 싶 지 않았다. 더 이상 말을 섞기조차 싫었기에 서우는 몸을 틀어 그녀에게 짧은 목례를 하곤 걸어가려했다 . 하지만 그녀가 서우를 그냥 보낼 리가 없었다. 그녀는 손보다도 목소리 하나로 서우의 걸음을 멈췄다. “이제 그곳에 가도 그 아이는 없단걸 알잖니.” 그 말 하나로 서우의 모든 움직임이 멎었다. 왼쪽 네 번째 손가락에 언제나 흉터같이 걸려있는 검은 반 지를 본 것임이라. 서우는 오만상을 찌푸리며 주먹을 쥐었다. 여전히 새끼손가락에는 힘이 들어가지지 않 는다. 알고 있다.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확실히 알고있었다.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악몽, 아니 꿈 이었더라면 더 좋았을 그 진실에 서우는 또 눈을 감고 말았다. 토할것만 같다. 저 여자의 역겨운 목소 리에. 자꾸만 상처를 인두로 지져대는 저 여자의 잔인함에. 그날도 여느때와 다름없이 자신은 헬멧을 쓰고 오토바이를 몰고 있었고 그 아이는 헬멧을 쓰지 않고 웃으며 뒷 좌석에 걸터앉아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고2, 2학기 중간고사가 끝난 굉장히 기분좋은 초가을 하늘이었다. 그래서 내친김에 바다나 보러 가자고 달린 것이 화근이었다. 끼이익- 카강- 그 두 개의 소리만이 귓가에 들리고 세상의 모든 것은 변했다. 갑자기 역주행해오는 차와 받으며 공중으로 날아갈 때 자신은 무 의식중에 그 아이의 머리를 끌어안았다. 헬멧을 쓰지 않던 아이. 여기서 이 녀석이 머리를 부딪히면 모든게 다 끝이다. 그래서 안간힘을 쓰며 그 작은 머리를 끌어안았다. 그리고 그 다음순간 자신의 눈이 닫히기 전 본 것은 널부러진 자신의 몸 앞에서 머리에 피를 잔뜩 피칠갑을 하고 있는 녀석의 모습이었다. 소리쳤다. 안된다고, 절대 안된다고. 그 녀석은 이렇게 죽을 녀석이 아니라고. 깨진 헬멧사이로 스며드는 녀석의 핏물에 눈을 뽑아낼 듯 울었다. 입은 계속해서 중얼거렸다. 내가 죽어도 저 녀석은 안된다고. 절대로 저 녀석은 살아야한다고. 끝없이 울었다. 끝없이 중얼거렸다. 사람들이 다가오는 소리도 들렸지만 자신은 끝없이 외치고 있었다. 저 아이를 살려. 저 녀 석을 살리라고. 내가 아닌 저 자식을 살려달라고! 하지만 사람들은 정신을 차리고 붉은 눈을 핏발세우며 나오지 않는 목소리로 입을 뻥긋거리고 있는 자신을 먼저 들것에 태웠다. 악몽은 시간을 건넜다. 병실에서 눈을 뜬 자신의 앞엔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3시간 뒤 들어온 어머니의 손에는 그 아이의 뼛 가루가 들어있는 단지가 들려있었다. 그 아이가 죽었다. 그 아이가 죽었단다. 더 이상 볼 수 없다고 한다. 그 순간 이성을 잃었다. 2층인 병실 창문을 깨부수고 뛰어내렸다. 살 가치가 없었으니까. 더 이상 살 이유가 없었다. 지루하고 지루해서 아무 색도 보이지 않던 자신의 세상에 모든 것을 다시 되찾아 준 것이 그 아이였다. 그 아이가 존재하지 않 으면 자신도 존재할 가치도 없었다. 하지만 빌어먹게도 발전한 과학은 자신을 다시 한번 살려놓았다. 그 이후에 자신은 한국에서 24시간도 있지 못했다. 계속해서 치밀어오르는 구토와 깨져버릴 듯 한 두통에 제 발로 이 나라에서 떠났었다. 도망쳤다. 그 아이가 없는 이 하늘 아래에서 숨쉴 수 없어서.   “압니다.” 머리가 깨져버릴 것 같다. 그렇게 가녀리던 아이는 부숴져버렸다. 산산조각 나 내 품에 안겼었다. 웃음이 하얗던 아이는 하얀가 루가 되어 품에 안겼었다. 그 하얀 가루는 심장을 먹통으로 만들어버렸다. 안다. 그 아이는 죽었다. 그렇게 외치고 외쳐봐도 대답않던 그 아이는 자신이 채 깨어나기도 전에, 그 일주일이라는 짧은 시간 속에 아스라져버렸다. 왜 왔냐고 묻는다면 대답하 겠다. 비열하지만 당당하게 대답하겠다. “하지만 여전히, 미칠 듯이 그 아이가 보고 싶습니다. 먼저 가겠습니다.” 보고 싶다. 보고 싶다. 보고 싶다. 그 아이가 너무 보고 싶다. 살아있지 않아도 좋으니 그 얼굴을 한번만이라도 더 보고싶다. 차가운 몸이라도 좋으니 한번만 더 안아보고 싶다. 더 꽉 껴안을걸. 그 머리대신 내 머리를 바닥에 가져다댈걸. 정신이 없 었다는 것은 비겁한 핑계일 뿐이다. 내가 죽었어야 했다. 그 아이가 아닌 내가 죽었어야 했다. 밖으로 나오자 그녀가 차 문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왜냐고 눈으로 묻자 그녀는 입술을 삐죽이며 대답했다. “차문을 열어줄 신사가 없어서.” 변명이란걸 안다. 그래서 고마웠다. 차에 타자 눈동자는 차갑게 식어갔다. 하지만 그런 눈동자에서 자의가 아닌 눈물이 미친 듯 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역겹지 않았다. 더 이상 역겹지 않았다. 하지만 그 대신 눈이 찢겨지는 듯 슬펐다. 입 밖으로 그 한 마디를 뱉고나자 걷잡을 수 없이 마음이 폭발했다. 보고싶다. 미칠 듯이 보고싶다. 그 듣기좋던 중저음의 목소리도, 자신의 앞에서만큼은 커다랗고 하얗게 웃던 그 웃음소리도. 그 립다. 보고싶다. 아직도 사랑한다. 갈구한다. 미친사람처럼 우는 그를 그녀는 아무말 않고 힘껏 끌어안아주었다. 물론 자신으론 위로조차 되지 못한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끌 어안았다. 그 상처에서 나오는 진물을 다 받아주었다. 고름은 터트려야 낫는다. 이 남자가 인정하고 슬퍼해야 다음 사랑을 할 수 있는 것처럼. 아니, 어쩌면 이 남자가 끌어안은 상처는 평생가도 아물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실낱같은 희망 하나로 그 녀는 그의 상처를 끌어안았다. “...윤수빈.” 그의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이름까지도 끌어안는다. 그가 사랑했던 존재의 이름이 자신의 가슴속을 후벼파고 들어오지만 끌어안았다. 내뱉는 그의 가슴은 이미 산산조각 났을테니까. 보고싶어, 보고싶어, 보고싶어. 하지만 볼 수 없다. 그 사실에 그의 세상은 죽었다. ‘역시 아직은 오지 말걸 그랬나.’ 후회해봤자 소용없었다. 이곳에 왔으니 부딪히는 수밖에 없었다. 하나의 고름조각도 남지 않도록 짜내는 수밖에. 바들거리는 그 의 머리에 입을 맞췄다. 미안해, 서우야. 아무런 도움이 되어주지 못해서. 네게 필요한건 그 아이 하나일 뿐인데. 한숨이 새 어나간다. 널 두고 감히 숨을 멈춘 그 아이가 원망스러워지기 시작한다. 괴로워, 서우가 중얼거린다. 괴롭겠지. 괴로울 거야. 이정도도 괴롭지 않을 거라면 내가 진작 네 손목잡고 이곳에 왔겠지. 남서우가 무너진다. 그리고 자신은 그 것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 다. “집에 가자.” 서우는 대답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녀는 다시 한 번 말했다. “집에 가자, 서우야.” * 오늘도 여전히 정렬은 깨집니다. 껄껄껄............ㅠ_ㅠ정렬하는게 제일 싫어요. 코멘트 감사히 받았습니다. 또 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