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 아메리카노와 파운드 케이크 / 그래도 우리의 나날 / 시바타 쇼
세상은 넓고 맛있는건 정말 많다. 이는 디저트 세계에 가장 통용되는 말이 아닐까 싶다. 생각만해도 꾸덕하고 달달한 쇼콜라 케이크, 부드럽고 상큼한 맛이 나는 딸기 생크림 케이크, 톡톡 깨먹는 재미가 있는 크림브륄레 등등 어찌나 다양하고 종류가 많은지 아마 죽기전에 다 못먹고 죽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든다. 이런 수많은 디저트들은 각자 자기만의 뚜렷한 색깔을 가지고 있다. 소위 말해 자기 주장이 매우 강하다. 반면에 파운드 케이크를 처음 먹었을때 든 생각은 ‘아 이거너무 퍽퍽하다.’ 였다. 치킨도 퍽퍽살을 더 좋아하는 나였지만 파운드 케이크를 처음 접했을때의 느낌은 그랬다. 하지만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파운드 케이크를 곁들이면 퍽퍽함 대신에 파운드 케이크 특유의 부드러움과 포슬포슬함이느껴진다. 먹으면 먹을수록 더 좋아져서 지금은 파운드 케이크가 내 최애 디저트가 되었다.
1935년생의 일본인 작가인 시바타 쇼의 소설인 ‘그래도 우리의 나날’ 이라는 소설이 나에게는 파운드 케이크같은 책이다. 거의 100년전에 나온 이 책을 처음에 읽었을때 든 생각은 ‘음료없이 파운드 케이크를 꾸역꾸역 먹은것 같이 답답하다.’ 였다.
그래도 우리의 나날은 1960년대 전후 일본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 당시 일본은 학생운동이 한창이었다. 많은 학생들의 꿈이 피고 지는 와중에 주인공인 후미오는 이러한 학생운동과는 약간 동떨어진 느낌의 삶을 살고 있다. 곧 취업을 앞두고 있고 어릴때 부터 알고지내던 약혼녀 세쓰코와의 결혼을 앞둔 평탄하고 안정적이지만 단조로운 일상을 보내고 있다. 아주 성공하고는 행복하다고는 볼 수 없지만 그렇다고 실패했다고는 보기도 어려운 평탄 그자체인 인생.. 지방의 학교에 강사로 살다가 전공생이 아니라면 아무도 읽지않을 번역서를 한권정도는 낼것만 같은 그럭저럭 평범하고 권태로운삶을 살고 있다.
생각해보면 내 경우도 후미오와 비슷한 것 같다. 가난하지도 그렇다고 특출나게 부유하지도 않은 집에서 태어나 부모님의 적절한 보호속에 그럭저럭 학교를 다니고 졸업한 후에는 적성에 꼭 맞는다고 보기는 어려운 그럭저럭 안정적인 회사에 다니며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는 내 모습에서 후미오를 발견했다. 그래서인지 더 후미오에게 더 빠져들어서 이 소설을 읽었다.
책속에서 후미오가 세쓰코에게 한말 중에 ‘사람들은 다들 자기 몸에 꼭 맞는 익숙한 불행을 선택하여 살아가고 있고 이러한 불행에 익숙해지게 된다면 결국에는 행복과 분간하지 못하게 된다.’는 말이 있다. 나 역시그 말에 은연중에 공감했다. 내게 꼭 맞는 불행을 입고 거기에 익숙해 지면 이 역시도 어떤의미에선 행복이지 않을까? 익숙한 불행이 평화롭게 지속되던 나날에 후미오가 헌책방에서 산 장서의 주인인 세쓰코의 선배 사노에게 책을 돌려주기 위해 주변을 수소문하며 이 소설은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다.
이 소설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권태로운 삶을 그럭저럭 살아가는 후미오, 어린시절부터 그를 알았고 사랑을 꿈꾸는 약혼녀 세쓰코, 세쓰코와 대학시절을 함께 보낸 노부, 학창시절 열혈 활동가였으나 결국 사회에 순응한 사노. 여러등장인물들의 이야기속에 빠져들다 보면 200페이지의 짧지 않은 분량이 순식간에 읽히게 된다. 처음에는 커피없이 먹는퍽퍽한 파운드 케이크 같은 이 소설은 읽어갈수록 포슬포슬하고 부드러운 파운드 케이크같이 술술 읽히게 되는 신기한책이었다. 이 책에서는 한가지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죽음이 눈앞에 다가왔을 때 무엇을 떠올릴까?’ 이 질문에 대해 소설속 여러 인물들이 각자만의 답을 내고 삶의 방향을 선택한다. 여러분들 역시도 이 소설속 인물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이 질문에 대한 각자만의 방향성을 생각해봤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