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이불을 걷어낸 백두대간은 봄을 준비하는데'.
지난해 이맘때 봄 산행이라는 들뜬 마음에 올랐던 덕유산에서 한겨울을 연상시키는 강한 눈보라와 무릎까지 빠지는 눈으로 조난의 위기에 봉착했던 기억이 새로운 달, 만물이 생동하는 3월이다.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상황 속에서 불어닥친 탄핵 정국에 무거워진 마음으로 종줏길을 떠난 '허영만과 함께 떠나는 백두대간 종주대'는 우리네 인간사가 봄을 준비하는 백두대간의 마음을 닮아가기를 기원하며 두타, 청옥산을 넘었다.
눈녹아 질퍽한 진흙길 '겨울의 추억' 어렴풋 암릉 힘겨운 행군 …고적대 정상 선경 펼쳐져
시멘트 채취로 상처입은 자병산에 마음 아파 |
◆첫째날(3월 13일: 댓재~원방재)
올 여름 이 종줏길이 마무리된다고 생각하니 낭만과 고난을 안겨준 지난 겨울도, 상큼한 봄 내음도 모든 것이 아쉽고 소중하다. 지난달 만만치 않게 쌓인 눈으로 앞길을 가로막았던 명산 두타, 청옥산은 성큼 다가온 따사로움에 스르르 길을 내줬다.
잔설만 듬성듬성 남아 있는 산길에선 오랜만에 새 소리도 들린다. 쭉쭉 뻗은 적송은 때때로 그늘도 되고 운치도 준다. 바람 하나 구름 한점 없는 전형적인 봄 날씨에 대원들의 옷차림도 한결 가벼워졌다. 지난달부터 보이기 시작한 동해바다가 저 멀리서 동행을 해주고 무릉계곡이 발밑으로 보이는 가운데 1243봉을 내려서서 두타산으로 오른다.
눈이 녹아 질퍽해진 진흙길로 뒤덮인 오르막길은 눈길보다 더 어려운 코스. 하지만 부풀어올라 한층 헐거워진 느낌의 흙길 산행은 폭신함마저 준다. 넓은 광장과 같은 두타산 정상에 올라 30여분동안 쉬면서 주변 쓰레기 청소를 했다. 의식이 많이 개선된 때문인지 예전보다는 확실히 쓰레기 양이 적다.
한달음에 달려갈 듯 가깝게 보였던 청옥산을 지나 고적대로 향하자 곳곳에 너덜지대가 나타났다. 고적대 정상으로 가는 길은 오랜만에 나타나는 암릉 지대. 오르는 것은 힘겨웠지만 정상에 서자 기가막힌 선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 눈과 얼음, 낙엽이 뒤섞인 내리막길은 엉덩이와 다리를 심하게 괴롭혔다. 이기령으로 이르자 벌써 오후 6시가 훌쩍 넘긴 시간. 달빛이 없어 더욱 밟게 빛나는 별빛을 벗삼아 원방재에서 일정을 마쳤다.
◆둘째날(3월 14일: 원방재~생계령)
이틀 연속 해맑은 날. 전날 머문 가목리 마을에서 임도를 따라 원방재로 오르는 길, 물 소리가 시원하다. 봄이 가장 먼저 왔음을 알리는 것이 얼음 속 계곡수라 했던가.
길을 잘못 잡아 배낭을 잡아끄는 잡목을 뚫고 산죽이 스치우는 가운데 1022봉에 올랐다. 여기서 조금 더 내려가자 전날 지나왔던 두타, 청옥산이 한 눈에 보이는 바위 전망대가 나타났다. 사과 한 입 베어물고 바람을 맞으니 무릉이 따로 없다.
백복령에 내려서서 점심을 해결하고 백두대간상에서 가장 훼손이 심하다는 자병산 자락으로 접어들었다. 전형적인 카르스트 지형이라 시멘트 원료를 채취하려는 트럭이 온 산을 점령한 가운데 자병산은 이미 흔적이 없어진 상태. '보존과 개발'이라는 양단에서 다시한번 쓰라린 질문을 던져보게 한 순간이었다. 산행 중 대원들 사이에 이에 대한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이제까지의 산행과 비교하면 삼림욕에 나선 듯 평탄한 산행길이다. 도중도중 나타나는 함몰지를 보며, 마지막 봉우리에서 남은 힘을 소진하기 위해 뛰어올라가는 '객기'도 부려보며 생계령으로 내려섰다. 가는 겨울이 아쉬운 듯 살며시 내리던 싸락눈을 맞으며 34㎞의 산행을 마친 종주대는 야생화와 산나물이 반기는 4월, 대관령으로 향하게 된다. < 백두대간(생계령)=남정석 기자 bluesky@>
된장마을 '봄이 익어가는 내음' 17차 종주 이모저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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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즈 대신 된장~' 백봉령으로 떠나기 앞서 정선 된장마을을 방문한 종주대. |
○…이번 구간은 2월부터 5월15일까지 계속되는 산불방지기간으로 현재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따라서 삼척 국유림관리사무소에 사전 취재 협조를 구하고 안내를 받아 산행을 진행했다.
구 간 명 |
코 스 |
제 1 구간 |
중산리~천왕봉~성삼재 |
제 2 구간 |
성삼재~만복대~사치재 |
제 3 구간 |
사치재~백운산~영취산 |
제 4 구간 |
영취산~남덕유산~백암봉 |
제 5 구간 |
백암봉~귀봉, 빼재~덕산재 |
제 6 구간 |
귀봉~빼재, 덕산재~삼도봉~우두령 |
제 7 구간 |
우두령~추풍령~큰재 |
제 8 구간 |
큰재~백학산~화령재 |
제 9 구간 |
화령재~봉황산~피앗재 |
제10구간 |
피앗재~속리산~버리미기재 |
제11구간 |
버리미기재~이화령~조령 |
제12구간 |
조령~대미산~벌재 |
제13구간 |
벌재~저수재~죽령 |
제14구간 |
죽령∼비로봉~고치령~도래기재 |
제15구간 |
도래기재~태백산~함백산~건의령 |
제16구간 |
건의령~덕항산~댓재 |
제17구간 |
댓재~두타, 청옥산~백복령~생계령 |
제18구간 |
생계령~석병산~삽당령~대관령 |
제19구간 |
대관령~진고개~구룡령 |
제20구간 |
구룡령~조침령~한계령 |
제21구간 |
한계령~설악산~미시령 |
제22구간 |
미시령~신선봉~진부령 |
끝없는 하산길 기진맥진
기암괴석 절경 '동양화 속을 걷는듯' 낙엽덮힌 얼음길서 대원들 엉덩방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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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암과 주목, 소나무가 조화를 이루고 있는 백두대간의 절경. |
○…'대야산에 대한 안좋은 추억이 여기서도….' 종주 첫째날, 오후 7시쯤 이기령에서 하산해 원방재를 지난 후 임도를 따라 숙박지인 부수베리로 내려가는데 끝이 보이지 않는 지루한 길에 대원들은 마지막 남은 힘까지 소진한 채 기진맥진. 특히 일부 대원들은 지난해 경북 문경 대야산에서 용추계곡으로 하산하던 중 넘어도 넘어도 계속 나오는 봉우리에 '학을 뗐던' 당시를 떠올리기도.
그러나 컴컴한 산길과는 달리 하늘엔 별이 총총히 떠 종주대의 마음을 달래주었는데, 정택주 이진원 대원 등은 계곡가에 앉아 별을 헤는 여유를 보이기도.
○…두타산(1353m)과 청옥산(1404m)은 병풍처럼 펼쳐진 암벽과 기암괴석, 소나무 등이 조화를 이룬 한국의 대표적 명산이다. 그러나 무릉계곡 등 산아래에서 오르면 이같은 절경을 만날 수 있으나 백두대간 능선길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상태. 그러나 청옥산를 지나 고적대를 전후한 구간은 기암괴석과 주목, 소나무가 어우러져 마치 동양화 화폭속을 거니는 듯한 절경의 연속이었다. 크고 작은 바위들이 층층이 쌓여 기묘한 형상을 이룬 모습에 종주대는 자주 발길을 멈출 수 밖에.
또 두 산은 능선으로 이어져 있어 산악인들 사이에 하나의 산을 의미하는 '두타-청옥산'으로 불린다. 높이도 비슷한데다 보는 방향에 따라 서로 높고 낮음이 달라져 높이를 두고 산행객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하기도. 고적대에 올라 지나온 두타-청옥산을 번갈아본 유병현 대원은 '아무리 봐도 두타산이 높은 것 같다'고 갸우뚱.
○…지난달 눈이 무릎 높이까지 쌓여 종주대의 산행을 막았던 두타, 청옥산은 잔설만 간간히 눈에 띌 정도로 봄기운이 완연. 깊은 산중에도 봄이 어김없이 찾아들자 허 화백은 '우리나라에서 제대로 된 것은 계절 밖에 없는 것 같다'며 최근 탄핵정국으로 어수선한 분위기에 일침.
○…'봄철 산행의 복병은 진흙길과 낙엽 덮힌 얼음길'. 꽁꽁 언 땅이 봄 날씨에 녹아 등산로 곳곳에 질펀한 진흙길이 조성돼 평지에서도 미끄러지는 대원이 속출했다. 특히 음지의 내리막길에는 낙엽 밑에 얼음이 얼어있는 경우가 많아 낙엽더미를 방심하고 밟았다간 엉덩방아를 찧기 십상이었다.
○…종주 둘째날 아침 백복령으로 향하기 앞서 짬을 내 정선의 명물인 된장마을(임계면 가목리)을 방문. 여주인인 첼리스트 도완녀씨는 송광사 학승출신과 결혼, 화제를 모은 인물. 너무 이른 시간이라 도씨를 만날 수 없었던 종주대는 된장과 장아찌 등을 시음해 본 뒤 열을 지어 놓여져 있는 장독대 사이에서 기념촬영
○…종주대는 '1m에 1원의 성금'을 조성해 백두대간 주변 산간학교를 찾아 어린이들과 정을 나누는 행사를 펼치고 있다. 지난해 6월 전북 장수군 번암초교 동화분교, 지난해 11월 충북 보은군 수정초교 삼가분교를 찾은 종주대는 다음달 문경시 가은초교 희양분교를 방문, 21명 어린이들과의 세번째 만남을 가질 예정이다. 행사에 뜻을 같이하는 일반 독자나 산행참가자는 자발적으로 매 구간 종주가 끝난 뒤 원하는 액수를 기금으로 낼 수 있다. 계좌번호 조흥은행 304-03-002260, 예금주 (주)스포츠조선.
'어디 쓰는 구멍인고?' 곳곳에 '돌리네 현상' |
○…정선은 카르스트 지형에서 나타나는 웅덩이 모양의 땅인 '돌리네'로 유명한 곳. 특히 백봉령 구간에서 이같은 지형이 곳곳에서 목격됐다. 종주대는 돌리네 현상으로 보이는 분화구 모양의 작은 웅덩이 앞에 모여 학창시절 지리 교과서에서나 봤던 '돌리네 현상'의 현장을 체험 학습.
백두대간을 종주하며 산행길에 버려진 쓰레기를 줍는 '클린 마운틴' 행사를 벌이고 있는 종주대는 노스페이스 협찬으로 쓰레기 주머니(사진 원 안)를 제작, 배낭에 붙여 이번 구간부터 사용하기 시작했다.
스포츠조선 백두대간 홈페이지(san.sportschosun.com)를 방문, 간단한 인적사항 등을 기입하면 쓰레기 주머니를 증정한다. 개인은 1인당 3매 이내, 산악회는 10매 이내로 신청할 수 있다. 4월10일 1차 마감을 하며 4월19일쯤 일괄 배송할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