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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E GWANG 14th ALUMNI ASSO. in L.A.
(213)550-8707. 2930 Montrose Ave. #110 La Crescenta, CA 91214
만남 - “우리들의 이야기”
- 재상봉 행사에 다녀와서 -
11월입니다.
“만남”은 우리들의 마음을 설레이게 한다. 좋아하는 사람과 약속이 있을때, 그 시간이 얼마나 기다려지는가, 친구란 우리에게 소중한 존재다.
“대광고 14회 고교졸업50주년기념재상봉행사”
세계 각지에서 흩어져 살던 동기동창들이 50년 만에 7순을 바라보는 초로의 신사가 되어 만나게 된다. 모두들 설레이는 마음이 흥분된 상태다. 식은 가슴에 불꽃을 점화하는 힘, 지친 가슴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기다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10월 8일(월) 오전 9시. 신설동 대광 고 정이든 교문을 들어서니 입구 왼쪽에 수위실이 그대로 서 있었고 넓은 운동장에 부부동반으로 모여든 친구들은 해외동문들을 포함하여 90여명이 되었다.
이수길 화백의 성화 기증식에 이어 간단한 예배를 드린 후 학교교정을 둘러보니 강당과 고등학교 시절 공부하던 3층 건물은 그대로 있었으나 옛날 중학교 건물, 큰 굴뚝, 예배실 부근에는 새 건물들이 서 있었고, 운동장은 왠지 좀 작아진 것 같았다.
졸업 후 50년 만에 만나는 친구들도 있어 목걸이 형식으로 된 이름표를 확인하고는 멋쩍은 미소로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놀란 감탄사와 “건강하신가?” 혹은 “어디에 사는가?” 정도의 간단한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그러면서 가능한 한 여러 명의 친구들을 만나기 위하여 이리저리 헤집고 다니기도 했다.
50년이 우리들을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 놓았다. 교정을 한 바퀴 둘러보자 세월이 저 만치로 달아나고 있었고, 그 시절 까까머리 학창시절이 그리워 눈시울이 붉어졌다.
10시! 3대의 강원도행 관광버스에 나누어 타고 2박 3일의 여행은 시작되었다. 대관령고개인가? 미시령고개인가? 옛날 같으면 높은 고개를 굽이굽이 돌아서 올라가 새색시처럼 조심스럽게 내려갔는데 이제는 높은 산을 뚫어 만든 터미널로 계속 편하게 달렸다.
버스 안에서 혹은 관광을 하면서 삼삼오오 짝을 지어 다니면서 서서히 얼굴을 익히고 벌어졌던 틈새를 메우는 노력을 했다. 강치원, 키 큰 김기태, 김덕현, 김정문, 백광일, 박충건, 장중영, 김창원, 이창언…….
함께 길을 걸으면서 짝을 바꾸어 가면서 옛 친구들의 추억을 떠 올리며 우리들의 간격은 점점 가까워졌다. 친구들의 추억담은 창밖의 안개처럼 자욱이 피어올랐다.
내가 턴 1호차 안내원 유종만, 이봉서의 열정에 넘치는 동기들에 대한 배려에 감사드린다. 어디서 그렇게 힘이 솟는지…….
신경정신과 Dr. 박태수 동문의 노년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건강에 대한 강의, 노창화 부인의 남편에 대한 지극한 보살핌…….
친구에게 막걸리를 따라주는 최종현 목사. 마치 제자들에게 포도주를 따라주는 예수님을 연상케 했다.
최종현 목사는 차 안에서 우리들에게 합창을 인도해 주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 계절에 맞게 “고요한밤, 거룩한밤”을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곡조에 맞추어.
“고요한 밤 거룩한밤, 어둠에 묻힌 밤
주의 부모 앉아서 감사기도 드릴때
얼씨구 절씨구, 차차차, 차차차
지화자 좋구나, 차차차, 차차차
예수님도, 예수님도, 아니노지는 못하리라
차차차, 차차차, 차차차, 차차차, 쿵쿵쿵(발로)
마지막날 저녁 한강 유람선 무대에서 1호차 친구들의 합창으로 많은 박수를 받았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최종현 목사!”라고 느꼈다. 존경한다.
평창 동계 올림픽 현장을 둘러보고 강릉 선교장을 방문, 300년 역사와 전통문화를 체험하고 관동팔경 양양 하조대를 지나 2박 3일간 머물게 될 솔 비치 호텔로 이동했다.
첫날 저녁, “대광동문의 밤”이 개최. 큰 식당에서 함께 모여 만찬과 레크리에이션이 있었다.
모교의 아카시아 동산에 올라 푸른 수목사이에서 책을 읽던 소년들이 어느새 잿빛이 되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세월의 위력에 겸손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도 50년이란 세월에 나는 언제나 나만 늙어가는 기분이 들었는데 친구들을 보면서 세월은 참으로 공평하게 누구에게나 스쳐가고 있음을 느꼈다.
식사시간 나는 한 친구라도 더 만나 이야기하고파 테이블을 돌며 명찰과 이름을 대조해보며 인사를 나누면서 서로 포도주 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다 보니 20~30잔은 마신것 같다. “포도주 충만”이 되었다. 그래서인지 이튿날 아침 고성 통일전망대에 가서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고향땅 원산 명사십리 아래부근을 보면서, 그리고 설악산 국립공원에서는 등산을 포기하고 wife와 함께 케이블카로 산위에 올라갔다가 내려와 계속 약국을 찾았다. 약국이 보이지 않아 어느 편의점에서 “겔포스”란 약을 사서 먹고 오느라고 버스를 놓칠 뻔 했다. 계속 버스 뒤 칸에 누워 이동을 했다.
첫날 저녁식사 후 무대에서 노래자랑이 있었는데 역시 LA의 이근우 부인의 “내사랑 근우야”가 최고 인기를 누리면서 부부동반 춤 솜씨 또한 볼만했다.
2차로 아래층 카페에서 10여 명의 친구들이 둘러 앉아 옛이야기의 꽃을 피울때 이근일 변호사와 LA의 Dr. 조상우의 입심 대결은 새벽 1시가 넘어서까지 계속되어 아직 승자가 결정되지 않았는데 느닷없이 정장을 한 박신보가 나타나는 바람에 휴전, 화요일 식사 후 다시 이근일, 김정남, 강치원, LA의 조상우, 최승남의 2차전은 가히 점입가경이었다.
“그 친구 나에게 떡 됐다” “박살을 냈다” “물 건너갔다” “나보고 형님이라고 했다”……
누가 승자인지, 결론은 무승부였다.
유머야말로 “이 삭막한 세상을 환하게 바꾸는 빛”이라는 말이 있다.
마음을 여는데 유머만큼 좋은 것은 없다. 잘 웃는 사람 얼굴 전체에 활력이 생기고 잘 웃지 않는 사람보다 젊게 보이는 경우가 많다. 아기나 어린아이들은 잘 웃는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웃음이 줄어든다. 노년에 만난 우리 친구들을 즐겁게, 많이 웃을 수 있게 해 준 친구들이 있어 우리들은 행복했다.
첫날저녁 2차, 3차를 마신 LA 정세훈 회장은 새로 산 흰 운동화를 바꾸어 신고 다니다 이튿날 멍구(한인호)에게 혼났다고. 다음날은 보신탕집에서 최승남이 멍구(한인호)와 또 신발을 바꾸어 신고… 3명이 “신발동서”가 되었다고.
첫날저녁 2차, 3차를 마신 LA 소명증은 풀밭에서 자면서 속 옷에 실례까지… 그리고 그것을 누군가 촬영했다고…….
친구들과 함께 이야기를 하던 중 “이제 우리 몸은 중고차다. 그런데 이 중고차를 운전하시는 우리 주님께서는 여기 저기 고쳐주시고 매일 충분한 연료를 채워주시고, 오늘도 안전하게 운전하면서 인도해 주신다”라고 했더니 한 친구가 “내 몸은 이제 중고차가 아니라 고물차야” 그러자 정세훈이 “바라기는 하나님께서 이 고물차를 완전 분해해서 새 차로 리모델링 해 주셨으면” 한다고. 옆에 있던 친구가 “그건 안돼! 또 네 마음데로 운전하려고…….”
셋째날 10월 10일(수) 한계령 고개를 지나 돌아오는 길에 보니 추워질수록 더 뜨거운 가을 단풍이 산 위로부터 아래로 익어가고 있었다. 춘천을 지나 남이섬으로 해서 오후 4시경 서울에 도착했다.
10월 11일(목) 남대문 시장 “통일옥 식사”와 강남의 춘천옥 찜질방, 10월 13(토) 남산 관광, 평양면옥 식사에는 참가하지 못해 아쉬웠다. wife와 함께 친지방문, 신일학교 퇴직교사들과의 만남 때문에…….
다섯째날, 10월 12일(금) 오전 10시, 해외에서 온 친구들을 위한 동기 동역자회 초청으로 잠실 부근에 있는 옥토교회(김신성 목사 시무)에서 50~60여 명의 친구들이 만나 예배를 드렸다. 사회를 보는 조성원 목사의 근엄한 자세와 목소리, “전통한국 목사스타일”이었다. 한참 후에야 옛날 함께 놀던 그 친구의 얼굴이 떠올랐다. 최병남 목사의 설교, 김영기가 준비한 합창하는 친구들의 모습, 키가 훌쩍 큰 윤영백, 잔잔한 미소의 이원길 선교사… 예배를 드리면서 대광교육의 위대함을 다시 한 번 느꼈다. “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살아온 친구들의 멋진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식사대접과 동기교역자회 이름으로 된 성경, 찬송 합본을 선물로 받았다. 이영욱 목사, 박창빈 목사, 김봉태 목사, 유의신 목사, 최경모 목사…… 동기생 중 목사가 되신 분들이 38명, 9명이 소천하시고, 29명이 오늘도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 하신 말씀을 받들어 열심히 사역하고 있다.
“나 맡은 본분은 구주를 높이고
뭇 영혼 구원 얻도록 잘 인도함이라……”
캄보디아, 중미, 남미에서 그리고 우리의 조국 북녘땅에서 빈민촌을 행복촌으로 바꾸는 친구 선교사들의 이야기가 가슴을 울렸다. 전쟁과 질병, 공포와 기근으로 신음하며 쓰디쓴 생을 살아가는 난민들을 위하여 버려진 땅에 고아원과 유치원, 어린이 집을 짓고, 병든자를 치료하면서 어린아이의 떡 다섯 덩어리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명을 먹이시던 예수님을 향한 믿음으로 땀을 흘리고 있는 “친구 선교사들”……
“흙먼지 날리며 교회로 달려오는 아이들을 보는 것이 오늘도 내가 살아가는 이유입니다.” “아늑한 놀이터에서 즐거워하며 실의에 빠진 난민, 천민들이 선교를 위한 일꾼으로 양성되어가는 모습 또한 나의 기쁨입니다.”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장하다. 빛의 아들들이여! 머리 숙여진다.
마지막 날, 10월 12일(금) 저녁. 한강변에서 유람선을 타고 120여 명의 동기들이 모인 송별연에서는 다시금 50년의 관계가 복원된 듯 했다. 가장 감수성이 강한 시절에 함께 모였던 벗들과의 만남이었기에 오랜 세월의 장벽은 금방 사라졌다.
불편한 몸으로 참석해 준 노영남, 이창언, 노원복, 이일성……. 브라질에서 28시간 날아온, 그러면서도 건강한 모습의 최영식, 흰콧수염의 김만천, 옛날 우거지 클럽의 김창원, 제주도 피난 초등학교 동창인 계광열, 뚱뚱해진 장중영, 그리고 박충건, 조남재, 이경수, 임부웅 목사, 김정문, 백광일, 서굉일, 감상현, 양성일… 후암동 시절의 옛 이야기를 들려주던 김덕현, 코믹한 모습의 키다리 김성락, 특별히 이번 행사를 기획하고 준비하고 이끌어 준 허정남회장, 김성홍, 이정인, 김정남, 이봉서, 원윤성, 이춘동, 이명홍, 유종만 제위께 감사를 드립니다.
파티가 끝날 무렵 모든 친구들이 손을 잡고 원을 그리면서 교가를 부를 때는 다시 옛 학창시절로 돌아온 것 같았다. 처음에 서먹했던 관계가 허물어지면서 이별의 순간에는 너무나 섭섭한 마음에 지난 4일은 너무나 짧게 느껴졌다.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아쉬움과 미련이 남았던 모양이다. 한 줄로 서서 악수하면서 “잘가라” “잘 있어라” “또 보자”라는 말을 주고 받았다.
아! 이제 이 친구들을 땅에서는 다시 못 볼수도 있겠구나하는 생각에 눈물이 왈칵 솟았다.
우리 나이가 젊지 않기에 언제 또 이런 좋은 만남의 기회가 있을지 알 수 없지만 이번 여행(만남)은 나이가 들면서 친구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더 느끼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다.
“친구와 포도주는 오래될수록 더 좋다”는 말을 실감하고 “친구는 나의 기쁨을 두배로 하고, 슬픔은 반으로 한다”는 말이 진실임을 알게 하는 시간이었다. 반세기만에 옛 친구들을 만나 따뜻한 정을 나누고 새로운 인생후반기에도 계속해서 정을 이어갈 수 있으리라 생각하니 우리 노년의 삶은 그리 쓸쓸하지만 않은 것 같다.
먼데서 손짓하는 별빛이 더욱 반짝이듯 추억은 멀리 있기에, 또한 지나간 순간들이었기에 더욱 아름답다. 우리 모두는 수많은 세월이 흘러도 누군가에게 잊혀지지 않고 기억되어지는 꽃같은 존재들이다. 친구들은 우리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줄 것이다.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그것은 우리의 바램 이었어……”
“이 땅위에 험한 길 가는 동안 참된 평화가 어디 있나
우리 모두다 예수를 친구삼아 참된 평화를 누리겠네……”
많은 선물을 받았다. 압력 밥솥, 영기가 준 수면용 베게 두루마리, 누군가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일일이 인화해서 봉투에 넣어주었다. 감사합니다.
“55주년재상봉행사” 이야기가 있었다. LA에서, 혹은 하와이 5개 섬을 도는 크루즈여행, LA에서 만나 멕시코 연안 2박 3일 크루즈여행, 천천히 의논해 보기로 했다.
“100주년재상봉행사”는 결정했다. “하늘나라에서 먼저 간 친구들과 함께” 스폰서가 확실하다. 모두 낙오 없이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돌아오는 길, 지하철의 빈 노약자 자리 앞에서 공연히 머뭇거렸던 나는 이제 마음을 고쳐먹고 자리에 앉았다. “아! 나도 마침내 노인이 되었구나!” 하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그러나 황혼이 그렇듯이 저무는 것은 슬프다.
- L. A 소식 -
* 10월 4일(목) 오후 4시 30분. 서울에 살고 있는 김동일 부부가 LA 얼바인에 살고 있는 여동생과 딸, 사위를 방문하러 LA 공항에 도착한 것을 Pick up하여 소명증 사랑방에서 사전에 연락된 친구들과 자리를 함께 했다. 고교졸업 50년 만에 초로의 신사가 되어 찾아온 동일이와 “오장동 냉면”에서 함께 식사를 하며 옛 이야기를 나누었다. 옛 모습이 아직도 그대로 있어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그토록 만나고 싶었던 학창시절 “짝꿍”을 유종만의 아이디어로 연락되어 이렇게 만날 수 있다니, 먼저 종만이에게 감사한다. 식사 후 valley에 있는 김치명 집에서 자고 이튿날 사위가 모시고 Las Vegas로 떠났다.
서울 방문 중 다시 서울에 온 동일이 부부, 치명이 부부와 함께 10월 16일(화) 의정부시내 큰 식당에서 다시 만나 오랜시간 식사를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건강하게 살면서 자주 연락하자. 연락전화(010-2459-5953)
* 10월25일(목) 서울 방문을 하지 못한 친구들을 위로하는 저녁식사가 LA "나고야스시“에서 있었다. 서울 친구들의 소식이 궁금하여 찾아온 친구들에게 정세훈 회장의 보고가 시간가는 줄 몰랐다.(참석자: 이윤수. 정승철. 조상우. 정의정. 정세훈. 소명증. 김길동)
* 10월 27일(토) 오후 5시.
LA Wilshire가에 있는 Dream Wedding에서 소명증의 네 아들 중 장남 석현군의 결혼식이 많은 하객과 동기 친구들의 축하 속에 성대하게 거행되었다. 이어서 거행된 피로연에서 신랑, 신부의 노래 솜씨에 모두 놀랬다. 온 가족이 모여 합창을 하면 멋진 “합창단”이 될 것 같다.
“서울 대광고 14기 동문일동”으로 보내 온 축하화환이 입구에 자리를 차지했다. 감사합니다. “축복 받은 가정”으로 하나님께서 항상 함께 하시기를 기도드렸다.
(참석자: 정세훈부부. 이근우부부. 김태환부부. 정의정부부. 정승철부부. 임명우부부. 김종훈. 이웅부. 김영하. 윤기일. 최승남. 김길동 19명)
* 재상봉행사에 미주서부지역에서 약속한 $5,000을 전했습니다.
후원해 주신 동문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이번 11월 모임은 아들을 장가보낸 소명증이 모십니다.
많이 참석하셔서 즐거운 만남이 이루어지시기를.
일시: 11월 17일(토) 오후 6시
장소: 신북경 (213)381-3003
3101 W. Olympic Bl. L. A., CA 90006(Olympic / Kingsley)
11월 2일 12년 길동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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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50년만에 만남 보고심은 친구들 만나니 너무나 좋왔는데..... 우리들에 짧은 만남에 아쉬움은 있어서도 얼굴과 얼굴을 대할수 있는것만도 하나님께 감사한 일 아닌가 싶다 항상 건강하시기를 기도드려요~~~.샬롬
실로 50년만의 만남에 누구나 붙잡고 오랜시간 옛이야기를 나눌것 같았지만
막상 만나니 50년의 세월이 그리 만만치 않아 대화가 트이기에는 하룻밤으로는
부족함을 느낄 수 밖에 없어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래서 술이 매체인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들의 만남을 후배들에게 알렷더니 모두가 양손을 높이들고 박수를 받앗씁니다 ~ 또한 앞으로 55주년을 생각하면 가슴 설레옴이 ! ! ! 우리모두 다시 만남을 기약하며 건강 ~ 건강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이젠 공식적으루 "50주년"이 다 끝낫구나.
Super Bowl이 축구씨즌을 끝내듯, 대통령취임식이 선거를 끝내듯, 우린 正史인 LA Newsletter가 이번 행사의 끝이다.
훗떡 지나고나니 못나눈 얘기며 잡아보지못한 손이며 다 아쉽기만 하지만 끝은 길똥이형이 끝내주고 지나갔다.
야담, 외담, 히미한 옛기억들, 잡소리로 낄낄거리던 한주, 불편한친구들도 성한친구들처럼, 목사도 죄인(?)들 처럼, 부인들도 마치 여동생들처럼, 이런 모임이 5년후에 분명이 또 돌아온다고 큰소리치며 헤어져 우린 다 즤 살든데로 돌아왔다.
역사는 준엄, 냉철하다는데 LA newsman이 아무래야 우리편이니 점수를 쬐끔 더 실어준게 아닐까? 쫄앗던 맘이 이제야 안도
50 주년 행사를 한달 정도 했으면 아쉬움이 없었을까? 손에 잡았던 물고기 놓친거 같고, 날아간 화살 꽁무니
쳐다 보는 허전한 마음이었는데 길동이 글에서 고맙게도 위로를 받습니다.
헤어지기 섭섭해서 5년 후에 또 다시 만나기로 약속을 했는데, 5년 후에 만날 때는 더이상 늙지 않고 건강한
모습으로 만날수 있도록 우리 모두 몸관리를 잘 해야겠습니다.
특별히 정신적 기능 향상을 위해 긍정적 사고와 남을 배려할줄 아는 겸손한 마음으로 이웃과 후손에 베풀고
농담으로라도 아랫 것들, 아랫 것들 하지 말고 술취해 쌍말하는 실수도 하지 않는게 건강에 좋으리라 봄니다.
담배도,,,,,,,
길동이가 50주년행사를 너무 극찬한게 아닌가 싶다. 잘 봐주어 고맙다.
사학과에 가지 않고 국문과를 나왔더라면 정말로 유명하고 멋진 수필가가 되었지 않았겠나하는 생각을 해봤다.
사학과를 나와서 인지 역사적인 사건을 날짜별로 조목조목 잘도 묘사한거 같다.
길동이가 없었더라면 한국에서 미국에서 일어나는 소식을 누가 어떻게 쓸수가 있었을까?
인호 형 말대로 이글을 보면서 50주년 행사를 마무리한거 같은 생각이 든다.
이젠 일상으로 돌아가 들떠있던 마음을 접고 우리 본연의 삶을 살아야지?
영기야~ 윗사람 화내시겟다 ,말 조심하고 쥐죽은듯이 건강하게 잇다가 우리 다시 만나자,
그래, 잘알았다, 하지만 윗사람은 화가 나도 참을줄 알고 남을 섬길줄도 알아야지....
참조 말씀은 ( 마 23 : 12. 잠 16 : 32.)
길동아 수고 많았고, 고맙다.밤새 비행기 타고 새벽에 도착 피곤한 몸 마다하고 학교까지 단숨에 달려온 성의,버스 속에서 간간히 피곤 풀면서 행사 끝까지 함께 하여준 정성에 감사함 전한다.
더하여 50주녕 행사의 마무리까지 "뉴스 레터로"잘 정리하여 주니 더욱 고맙다.
앞으로도 계속 그 정열 변치말고 친구를 위해 관심과,애정과,큰 포용력 갖고 봉사하여 주길 바란다.
다음 만날때까지 건강하길 기원한다.
나는 글재주가 없어 무어라 표현해야할지 모르겠다.
다만 길동이의 뉴스레터를 보며 벌써 한달이 지났구나~~ 하며 아쉬운 마음 잊을수가~
좀 더 잘할수도 있지 않았나? 좀더 감동의 시간을 하며~ 하지만 50년만의 만남에 의미를 부여하며 기념행사에
참여하여준 동창들 그리고 함께 한 마나님들께 고맙고 감사하단 말로 대신하며
앞으로도 건강하여 하고져 하는일이 만사형통하기 바란다. 길동이 세훈이 명증이 종훈이 .....와 함께한 모든
친구들에게 감사한다. 그리고 동부지역에서 참가한 한인호 내외분을 비롯하여 많은 친구들..,,
그리고 병마와 싸워 이기고 참여한 이일성 부부, 김영수 부부에게 감사하며 더욱 건강하도록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