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공의 중요성
예전에 제가 큰 절에 있을 때 이야기입니다. 교구 본사 같이 큰 절에는 절에 딸린 논밭이 많습니다. 그 논 밭을 소작인들에게 맡깁니다. 지금은 먹고 살기가 좋아졌으니까 어떤지 모르겠지만, 그 시절엔 소작인들이 가난해서 스님들에게 와서 송아지 한 마리 살 돈을 빌려가는 일이 많았습니다. 송아지를 먹여 키워서 새끼를 치면 그 송아지를 절 송아지라면서 빌린 돈 대신 갚아줍니다.
그런데 가끔 소가 죽은 송아지를 낳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산《死産》하는 경우이지요. 그러나 죽어서 나오는 송아지도 그 송아지는 스님네 송아지니까, 그 소작인들이 스님들께 와서 상의를 합니다.「스님, 그 죽은 송아지 우리들 주세요. 우리들이 잡아 먹을께요」그러면 스님네들이 그렇게 하라고 쉽게 승락을 하시면서 말씀하시기를「야! 그 송아지 녀석 전생에 복 많이 지었구먼」이러십니다. 다시 말하면 죽어서까지 자기 몸을 몸 보시하니 그만큼 빚을 갚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또 희한한 것은 사산이 돼서 나오는 송아지라도 동네 사람이 달라고 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면 큰 스님들이「저 송아지 녀석은 전생에 복도 못 지었구나!「 하시면서 행자 스님을 시켜서「저 송아지를 땅 파서 묻은 다음 그 위에다 과실수를 심도록 하여라」고 하십니다. 그렇게라도 해서 그 몸이 거름이 되어 과일 나무를 충실히 키움으로써 복을 짓게 하라는 것입니다. `송아지가 썩어서 과일을 열게 하고, 그 과일을 사람이 먹게 해서 송아지 복을 지어준다. ’
옛날엔 그런 말을 들을 때 그 논리가 쉽게 받아 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요즈음에는 부처님 말씀 공부하면서 많은 분들을 대하고 살다 보니 그게 다 일리 있는 말씀들로 느껴지는 바가 많습니다. 내가 누구에게 빚진 기분이 들 때 점심 한 끼 사주면 당당해지는 것과 마찬가지 도리입니다. 우리가 대중공양이니 무주상보시니 하는 것도 다 같은 이치로, 그 보시의 기분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허공에 뜨는 것입니다. 생일날 생일불공을 해서 떡 한 조각씩을 나눠주는 것도 마찬가지 이치고, 또 옛날부터 신랑이 먼 길을 떠나면 꼭 밥 한 그릇씩을 이불 속에 묻어두어 그 기운 때문에 집 떠난 사람이 굶주리지 않게 하려는 것도 같은 이치입니다. 돌아가신 분들 3년 동안 상식《上食》을 올리는 것도 일맥상통하는 얘기입니다. 아이들 돌이나 생일에 떡을 해서 한 조각씩 돌리는 것도 다 공덕의 씨를 뿌리는 것입니다. 이 우주에는 공짜가 없습니다. 내가 지금 받고 있는 건 과거에 어떤 형태로 건 남에게 베풀었던 것이 되돌아 온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가 나에게 긍정적으로 대하게 되는 것입니다. 씨를 뿌려둬야 공덕의 열매가 열리게 되는 법입니다. 떡 한 조각 밥 한 그릇을 공양하는 공덕도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우리의 전래 풍속 같은 것을 보면 무슨 때가 되면 떡 하고 음식 차리고 해서 밥 한끼라도 나눠 먹습니다. 요즈음 사람들은 그런 것을 우습게 생각하지만 음식을 주고 받는 가운데 은연중에 서로가 잘 해주고 싶은 마음 생기게 되고, 음으로 양으로 우호적인 연관 관계가 성립되는 것입니다.
거듭 말씀 드리지만 이 우주에는 공짜가 없습니다. 고사를 지내거나 생일 같은 날 떡 돌리고 밥 한 그릇 나눠 먹으면 그만큼 좋은 기운이 허공에 뜹니다. 그런 공덕을 짓는 어머니를 만난다는 것은 복업이 수승한 아들입니다. 고사 때나 개업식 날 떡을 만들어 돌리는 공덕이 다른 데 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결국 자신에게 되돌아 오게 되는 거지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가능한 한 상대방에게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자꾸만 주는 마음으로 살아가십시오. 부처님 경에 나옵니다. 천명의 도둑을 먹이는 것보다 한 사람의 착한 사람을 먹이는 공덕이 더 크고, 천명의 착한 사람보다 한 사람의 수행자를, 천명의 수행자 보다 한명의 아라한을, 천명의 아라한보다 한 분의 부처님을 공양하는 공덕이 더 크다고 하셨습니다. 그 말속엔 무서운 진리가 들어 있습니다. 우리는 세세생생 다시 만나게 되어 있는 존재들입니다. 도둑들 백명 천명 먹여봤자 그들은 또 다시 악도에 갈텐데, 내생 어느 세월에 그들에게 받아 들일 수 있겠습니까? 물론 언제인가는 돌아오겠지요. 그러나 착한 사람들이나 도인들에게 많은 빚을 지워주게 되면 그 빚을 받기도 쉽습니다. 그들은 영혼의 등급이 높아 내생에는 재상이나 왕후장상으로 태어나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화엄경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습니다. 공덕을 많이 쌓은 수행 도인이 아니고서는 재상이나 왕후로 나오기 어렵다는 얘기지요. 보살의 급수가 높아야 왕후로라도 나온다는 것입니다. 이 우주의 이치가 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총사령관과 인연을 짓는 것이 나을까요? 졸병과 인연을 짓는 것이 나을까요? 공덕론이란 철두철미하게 그 속에 계량을 깔고 있습니다. 이 우주에는 결코 공짜가 없다는 사실을, 그리고 지은 바에 따라 사람의 급수가 철저하게 나뉘어져 있다는 사실을 낱낱이 얘기해 주는 것입니다. 자손들을 위해서 생일날 꾸준히 생일불공을 해 보세요. 그리고 여러분들의 아들 딸 손자들이 어떻게 자라나는가 살펴보세요. 축원을 하며 마음을 발하는 순간 허공계 신장님들이 다 듣게 되는 것입니다. 바꾸어 생각하면 여러분들이 기도를 붙이는 순간, 여러분들의 정성이 공중에 퍼지는 것입니다. 그 마음의 강렬한 파장이 떠서 허공계에 공양이 되는 것입니다. 선조들이 만들어 놓은 여러 가지 미풍양속 안에도 그런 무서운 진리가 들어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아이들을 위해서 공덕을 지어주는 것도 다 그 의미가 수승한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허공으로 쏘아 올린 그 파장은 절대로 허망한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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