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일
의지가 있다면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막 8:34)
미국 아칸소주 북쪽 외곽 지역의 어느 교회 간판은 복음의 핵심을 다음과 같이 잘 요약해 놓았다. “하나님께서는 그대의 뜻을 거스르면서까지 그대의 뜻을 바꾸지는 않으신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의 죄 때문에 생명을 내주셨고 뜻하는 사람 누구에게나 구원의 선물을 주신다. 더 뛰어난 사람이라서 구원받고 수준 미달이라 구원받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두 회개하게 되기를 바라”신다(벧후 3:9, 현대인). 예수께서는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고 말씀하셨다(막 8:34). 요한복음 3장 16절에서도 “그를 믿는 자”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구원을 바란다고 모두 구원에 이르지는 않는다. 구원은 하나님과 연결되어야 얻는 것이며 하나님과 각별한 관계를 맺는 사람만이 구원을 바라고 원할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예수님이 열어 주신 흥미로운 가능성을 발견한다. 우리는 인간이기에 이기적인 마음을 지녔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의지를 그분의 의지와 섞어 주실 수 있다. 그 과정이 바로 회심이다. 엘렌 화잇이 말한 대로 “모든 것은 의지에 따라 올바르게 행동하는 데 달려 있다”(정로, 47). 성령의 뜻에 따르지 않고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는 사람은 거듭날 수 없다.
야고보는 “하나님께 복종”하라고 말했다(약 4:7). 이것이 바로 복음을 체험할 수 있는 열쇠이며 아칸소의 어느 교회 표지판에서 이야기하는 내용이다. 내 안에서 하나님이 그분의 일을 하시도록 우리가 허락한다면 그분은 우리 스스로는 절대 해낼 수 없는 일을 해내신다. 하나님께 동의하고 협조하면서 의지를 보인다면 그분께서는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을 이루어 주실 것이다. 영적으로 미숙하다고 해서 절망하지 말라. 뜻이 있으면 승리의 길을 시작한 것이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한국연합회 세계선교본부 10/40 선교 프로젝트를 위해
2월 2일
아내를 존중하라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골 3:19)
부부는 서로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다. 결혼이란 두 사람이 평생을 기약하는 것이다. 그러나 결혼 생활이 행복하지 않다면 그 시간은 종신형처럼 느껴질 수 있다.
삶이 그리스도인 경험에 걸림돌이 될 때가 있다. 인생은 바쁘게 흘러가고 분주함은 스트레스를 야기한다. 그리고 그 스트레스는 타인과의 상호 작용, 심지어 사랑하는 이들과 소통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친다. 가장 큰 애정으로 대해야 할 상대에게 감정을 터뜨리는 사람이 많다. 하나님께서 복된 선물로 주신 결혼이 전혀 그렇지 못할 때가 허다하다.
오늘의 성경절은 남자들에게 직접적으로 적용되지만 바울의 조언은 분명 배우자 모두에게 적용된다. 그럼에도 바울은 특히 남성들에게 조언할 필요를 느꼈다. “아내를 사랑으로 대하십시오. 아내에게 그대의 감정을 쏟아 내지 말고 아내를 비롯한 다른 이들의 행동에 화내거나 짜증 내지 마십시오.”
이 구절에서는 빠져나갈 여지가 없다. 바울은 ‘물론 여러분의 아내가 대하기 힘든 사람이라면 어쩔 수 없죠.’라든가 ‘까다로운 아내를 만난 분도 있을 겁니다. 그럴 경우 아내한테 짜증 좀 낸다고 뭐라 할 수는 없겠죠.’라는 식으로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바울의 의도, 즉 바울을 통해 전하신 하나님의 의도는 어떠한 상황에서든 친절과 사랑으로 아내를 대하라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그럴 수 있을까?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써만 가능하다. 서로를 경멸하던 부부는 하나님께 믿음으로 나아간 후에야 깊은 사랑을 나눌 수 있다. 하나님께 은혜를 받으면 너그럽고 친절하게 대할 수 있다. 하나님은 가장 비판적인 남편도 진심으로 아내를 응원하는 사람이 되게 하실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결혼과 가정에 복을 내리고자 하시며 남편과 아내가 성령을 힘입어 서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내도록 초청하신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신영천, 김혜림 선교사(캄보디아)
캄보디아 재림교회의 영적 부흥을 위해
2월 3일
선발
“내가 땅끝에서부터 너를 붙들며 땅 모퉁이에서부터 너를 부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택하고 싫어하여 버리지 아니하였다 하였노라”(사 41:9)
코리 한은 팀에 없어서는 안 될 정도로 뛰어난 야구 유망주였다. 그러나 대학 경기 도중 2루 베이스에 머리를 세게 부딪쳐 목이 부러졌고 가슴 아래가 완전히 마비됐다. 그의 선수 생활은 끝났다. 하지만 코리는 이례적으로 메이저 리그 34라운드 선발에서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의 선수로 지명됐다.
경기를 할 수 없는데도 프로 팀에 섭외된 것이다. 코리 한의 이야기에는 동정과 선의가 넘쳐 난다. 그런데 여기 아주 유사한 이야기가 또 하나 있다.
놀라운 사랑과 은혜로 하나님께서는 망가진 인류를 자신의 팀으로 선발하셨다. 이사야를 통해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택하고 싫어하여 버리지 아니하였다”(사 41:9). 에덴에서 범죄 한 이후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 무슨 쓸모가 있었겠는가? 죄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과 끊어졌고 다시 하나님의 편에 서기 위해서는 회복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회복은 하나님 아들의 목숨을 대가로 한 매우 고된 과정이었다.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구속하신 이유는 단순히 아량을 베풀거나 제스처만 취하거나 인류의 시조에게 선심을 쓰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분께서는 사랑으로 아담과 하와를 구원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했기에 아담과 하와를 구속하실 수밖에 없었다. 이를 위해서는 독생자의 생명을 내주어야 했다. 그 때문에 천사들은 전무후무한 쟁론에 휩싸였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음에도 온 우주에서 가장 값비싼 구원 작전이 세상에서 가장 무기력한 존재를 위해 이루어졌다. 하나님께서 그대를 사랑하기에 하신 일이다.
하나님은 그대를 영원한 한 팀으로 발탁하셨다. 그대의 능력과 무관하게 선발된 것이며 개인의 성공이나 실패는 그 과정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오직 사랑과 놀라운 은혜 덕분에 그대는 하나님의 대표가 된 것이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에스라 선교사(기타 지역)
지하 성도들의 안전을 위해
2월 4일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요 11:35)
예수님을 따른다고 매일 기쁜 소식과 웃음과 감격이 가득한 것은 아니다. 예외도 있었다. 고통, 비애, 상실감은 가장 헌신적인 그리스도인에게도 흔한 일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기대해야 할 것은 순탄한 앞날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점이었다.
성경에서 가장 짧은 구절인 요한복음 11장 35절은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셨다.”라고 간단히 말한다. 예수께서는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그 친구들의 슬픔에 영향을 받으셨다. 슬픔은 그때도, 지금도 예수님께 영향을 준다. 인정 많은 우리 구주께서는 여전히 무거운 짐 진 자들을 가여워하신다. 어떤 상황에 처해도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인간은 두려움과 죽음, 상실을 겪도록 창조되지 않았다. 이들은 침입자인 셈이다. 하나님은 에덴동산을 만족, 기쁨, 안정감으로 두르셨다. 그러나 6,000년 동안 사람들은 삶의 참담한 현실과 씨름했고 그 모든 시간을 겪고도 고난과 상실의 삭막한 현실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자살 폭탄 테러로 아들을 잃고 비탄에 빠진 중동의 한 어머니, 집을 파괴하고 살림을 휩쓸어 간 대홍수를 애써 받아들이는 여자 소작농, 65년간 함께한 아내의 장례를 치르고 망연자실해 차로 걸어가는 노인을 떠올려 보라. 일평생 죽음과 슬픔, 상실을 겪으면서도 그러한 난관에 대처하기란 결코 수월하지가 않다.
억장이 무너지고 힘든 일이 계속될 때 어디서 희망을 찾을 수 있을까? 그대를 불쌍히 여기는 구주가 계시다. 상실과 상처가 무엇인지 그분은 아신다. 또 가장 어두운 순간에도 그분은 그대를 떠받치신다. 하늘의 하나님께서는 가장 소중한 것을 잃으셨고 그 느낌이 무엇인지도 아신다. 상실의 고통이 무엇인지 하나님은 경험을 통해 알고 계신다. 하늘은 인생의 역경과 씨름하는 이들에게 위로가 있음을 보여 준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양의식, 배지현 선교사(몽골)
한석희 몽골대회장과 전은경 사모를 위해
2월 5일
걱정에서 벗어나려면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벧전 5:7)
사람들을 불안에 떨게 하는 요인 중 절대다수는 사실이 아니거나 일어나지 않거나 자기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것들이다. 따라서 어쩔 수 없는 것에 대해 걱정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받는 스트레스도 훨씬 줄어들 것이라는 합리적인 추론이 가능하다.
스트레스는 피할 수 없는 삶의 현실이다. 그러나 너무 많은 스트레스는 고통을 유발한다. 스트레스는 흔히 두통, 고혈압, 수면 장애의 원인이 된다. 또 다른 질병이나 증상을 악화시키기도 한다.
삶에서 모든 스트레스를 지워 버릴 수 없고 필요한 스트레스도 있다. 그럼에도 무거운 짐에 억눌렸을 때 할 수 있는 것이 있다. 베드로전서 5장 7절에서는 스트레스 가득한 순간마다 하나님께로 돌이켜 하늘의 도움을 받으라고 권한다.
하나님이 정말 우리를 돌보신다면 우리는 짐 덩어리를 혼자 다 떠맡게 버려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상기하며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 하나님이 온 우주를 통치하신다면 인생에서 가장 어두운 터널을 지날 때도 하나님께는 우리를 위해 완벽한 계획이 있으니 결국 일은 잘될 거라는 믿음을 지닐 수 있다. 성경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복된 희망”(딛 2:13, 현대인)이며 언젠가 예수님이 오셔서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실 것이라고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하나님은 우리를 돌보실 뿐 아니라 우리의 근심을 잠재우고 마음에 평화를 가져다주고자 하신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며 환난 때에 언제나 돕는 분”이시기 때문이다(시 46:1, 현대인). “언제나” 돕는 분이라는 시편의 표현을 눈여겨보라. 하나님 앞에 염려를 내려놓고 맡긴다면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평화를 누릴 것이다. 그분은 오늘도 우리와 함께하신다. 그 사실을 안다고 모든 어려움과 스트레스가 사라지지는 않지만 영생을 준비하는 우리에게 그 사실은 희망과 도움이 된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박교린, 이미화 선교사(아랍 에미리트)
걸프 필드(아랍 에미리트,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카타르, 바레인, 오만, 예멘)의 선교 사업과 현지인 선교를 위해
2월 6일
매 순간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9:8)
영적 실패를 겪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도 같은 지점에서 실패를 거듭하며 좌절하는 사람은 많다. 인내심이 바닥나고 나쁜 생각이 머리에 스치고 금지된 것들에 손을 대는 일이 반복된다. 수많은 그리스도인에게 믿음이란 성공과 실패의 끝없는 순환처럼 보이며, 오르내리기를 반복하다가 어김없이 영적 패배로 이끄는 롤러코스터와 같다.
그러나 탈출구가 마련되어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신다고 바울은 보증한다(고전 10:13). 모든 시험에는 피난처가 있다. 아무리 어려워 보이는 시험도 그대는 승리할 수 있다. 그러나 더 노력하고 기도를 더 한다고 반드시 승리하는 것은 아니다.
예수님이 성령의 인격을 통해 임하셔서 우리의 삶을 장악하실 때 승리할 수 있다. 예수님은 자신의 삶에서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하셨다. 우리도 그런 기도를 배운다면 놀라운 승리의 능력이 우리 삶에 실현될 것이다. 예수님에게는 패배란 없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영원한 왕국으로 다가가면서 교만, 시기, 부정직함이 자신의 품성에 계속 남아 있을 거라고 체념할 필요가 없다. 요한계시록 22장 4절에서는 하나님의 성품이 그분의 자녀들의 마음에 새겨질 것이라고 보증한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이다. 시험이 닥쳐올 때 하나님은 피할 길을 주신다. 시험의 순간마다 습관적으로 하나님께 의지한다면 승리가 일상이 될 것이며 하나님께 순종하는 일이 자연스러워질 것이다. 하나님의 위대한 약속을 되새기라. ‘주여, 주님께서 피할 길을 마련해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언제나 그렇게 해 주실 것이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권순범, 강지희 선교사(대만)
대만 대학생선교센터의 운영
2월 7일
보존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
미국인들은 매일 평균 수천 개의 미디어에 노출된다. 광고판, TV, 라디오, 잡지, 홍보물, 우편물 등 수많은 매체가 존재한다. 미디어는 사회 구석구석에 스며들었다. 스마트폰과 와이파이로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미디어를 접할 수 있다. 오늘날에는 주유기에도 스크린이 달려 있고 슈퍼마켓에서도 영상물이 재생되며 식당 화장실에 TV가 놓인 곳도 있다. 미디어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는 듯하다.
미디어가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지만 미국인 대부분은 하루에 5시간 넘게 TV를 시청하고 7시간 정도를 온라인상에서 보낸다. 쉴 새 없이 미디어에 빠져들면 우리의 감각은 과부하에 걸린다. 좋은 내용도 있지만 대부분은 해로운 것이다.
세속적인 것들과 영적 위험 요소들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미디어는 우리에게 지속적으로 폭격을 가하고 있지만 성령께서는 끊임없는 적들의 유혹과 사회의 소란으로부터 방패가 되어 주신다. 로마서 8장 5절에서 바울은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한다고 진술했다. 말씀, 예수님의 임재, 천사들의 도움으로 지탱받는 사람은 세상 유혹에 휘둘리지 않을 것이다. 하늘의 것을 감상하는 법을 배운다면 이 땅의 싸구려 오락이나 부끄러운 술수에 전혀 관심이 가지 않을 것이다. 미디어의 영향을 줄일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은 미디어를 적게 접하는 것이다. 아예 접하지 않는다면 훨씬 좋을 것이다.
현재 우주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거대한 영적 대쟁투는 마음을 쟁취하기 위한 싸움이다. 사탄은 무엇보다도 그대의 사고방식에 손을 대고 조종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오늘 예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신다면 그분께서는 우리 마음을 올바른 곳에 온전히 보존하실 것이다. 무자비한 세상이 그대를 점령할 필요는 없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지성배, 김영란 선교사(파키스탄)
파키스탄 천명선교사 훈련원 건축과 선교사 훈련을 위해
2월 8일
어느 날 갑자기?
“내가 본즉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 하여 자기를 위하여 송아지를 부어 만들어서 급속히 여호와의 명하신 도를 떠났기로”(신 9:16, 개역)
‘별안간 땅이 흔들렸다.’, ‘난데없이 토네이도가 생겼다.’, ‘갑자기 한파가 들이닥쳤다.’ 우리는 이런 식으로 상황을 파악할 때가 많다. 그러나 기후 재난은 수많은 요소가 오랜 기간 쌓여 발생하는 것이다. 막대한 피해를 일으키는 허리케인도 며칠에 걸쳐 복잡한 기상 조건이 결합해 생긴다.
말년에 모세는 이스라엘의 크나큰 영적 실패를 일깨우며 “너희가…급속히 여호와의 명하신 도를 떠났”다고 말한다(신 9:16, 개역). ‘급속히’라는 표현이 눈길을 끈다. 이스라엘은 광야 떠돌기를 잠시 멈추고 모세가 하나님과 시간을 보내는 동안 산 아래에서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범죄와 반역의 길로 접어들었다. 어떤 관점에서 보면 ‘급속히’ 등을 돌렸다. 몇 주 지나지 않아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향한 충성의 맹세를 깨고 황금 송아지에게 예배를 드린 것이다.
그러나 다른 관점에서 보면 배반은 오랜 시간에 걸쳐 이루어졌다. 이스라엘은 오랜 기간 우상을 숭배하는 이방인 가운데서 살았고 악한 영향을 받아 왔다. 바닷가에 누우면서 모래가 들러붙지 않게 하기는 쉽지 않다. 그들은 반역의 씨앗을 품었다. 얼마 전까지도 하나님을 섬겼던 그들은 급속히 배반한 듯 보이지만 그들의 죄는 오래전 뿌리내린 씨앗이 서서히 자라나 거두어진 것이다.
그대의 그리스도인 경험의 중심이 오랜 시간에 걸쳐 조금씩 갉아먹힌다면 어느 날 갑자기 무너져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서서히 형성되는 갑작스런 실패를 피하는 방법은 그리스도께 굴복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중심에 계시면 그분이 그대의 길을 이끄실 것이다. 매일 하나님께 자신을 맡겨서 갑작스러운 실패를 피하라.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박정훈, 정슬기 선교사(러시아)
대안 학교의 성장과 정식 학교 인가를 위해
2월 9일
작은 불씨, 큰 재난
“미련한 자의 입술은 다툼을 일으키고 그의 입은 매를 자청하느니라”(잠 18:6)
말 때문에 문제가 생긴 적이 얼마나 많은가? 입으로 들어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입에서 나오는 것 때문에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우리는 생각 없이 말을 꺼내고, 불만을 터뜨리고, 특정 순간의 느낌을 여과 없이 말한 뒤에 후회할 때가 많다. 몇 마디 말이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성경에서 혀는 갈등의 근원이 될 수 있다고 거듭 이야기한다. 혀를 다스리지 못하면 여러 문제에 휘말릴 수 있다고 야고보서는 말한다.
“우리가 말들의 입에 재갈 물리는 것은 우리에게 순종하게 하려고 그 온몸을 제어하는 것이라 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써 사공의 뜻대로 운행하나니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얼마나 작은 불이 얼마나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약 3:3~6).
치명적인 말, 상처를 주는 말, 분노에 휩싸인 말, 비난하는 말을 내뱉는 것은 순간이지만 한 번 내뱉은 말은 결코 주워 담을 수 없다.
자비로운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기억하는 능력을 부여하셨다. 우리는 후회되는 말을 지껄이고 나면 상대방이 나의 못된 말들을 잊어 주기를 바랄 것이다. 수많은 사람이 수년 전 심지어는 수십 년 전에 들었던 잔인하고 상처 주는 말들을 기억한다.
거칠고 불쾌한 말을 내뱉고 싶을 때는 오히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낫다. 물론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그대의 마음을 장악하시면 그대의 혀까지도 다스리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언어를 지도하시고 마음을 감동시키시도록 그래서 자신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예수님을 드러낼 수 있도록 기도하는 습관을 기르라.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면 입술에서 하나님의 언어가 나올 것이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김병섭, 이세주 선교사(대만)
타이동 교회의 청년 선교와 청년들의 영적 성장을 위해
2월 10일
기쁜 날
“안식일을 더럽히지 않고 지키는 모든 자들과 나의 언약을 지키는 모든 자들을 내가 나의 거룩한 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나의 집에서 그들을 즐겁게 해 줄 것이며”(사 56:6~7, 한글킹제임스)
세상이 우리에 대해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생각이 쉽게 들곤 한다. 부모 세대와 그 위 세대들은 전동화와 자동화가 삶을 더 편하게 해 줄 것이라는 말을 들으며 자랐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우리는 잡일 할 시간이 줄어든 만큼 그 시간에 더 많은 업무를 처리해야 했다. 세탁기의 발명으로 가정에서 빨래하는데 더 이상 반나절씩 걸리지 않았지만 그렇게 절약된 시간은 하루에 더 많은 일을 하는 데 사용됐다. 어떻게 보면 이점이지만 다른 면에서 보면 단점이기도 한 것이다.
전임 미 상원의원 조 리버먼의 책 『휴식의 선물』 뒤표지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은 휴식, 특히 주기적인 휴식을 취하도록 창조됐다. 휴식을 통해 우리의 생산성과 건강이 증진되고 우리는 더 나은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 2011년 인터뷰에서 그는 “하루 쉬면서 전자 기기를 전부 끄고 그날을 오로지 자기 자신 그리고 가족과 하나님과의 관계에 집중한다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입니까?”라고 말했다. 유대인인 리버먼 의원이 안식일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모든 종교인에게 안식일을 권한 것이다. 종교계는 매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사람들이 점차 바쁜 삶에서 한 발짝 물러나 하나님과 소통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58장 13~14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하지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네가 여호와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지난 50년 동안 세상은 급변했다. 우리는 더 바빠졌고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더 많은 것을 가졌고 하나님의 이상에서 멀어졌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변함없으시다. 그분께서는 아담과 하와를 위해 마련하신 안식일을 우리에게도 똑같이 제공하신다. 시간을 내어 하나님과 쉬라. 안식일을 ‘기쁜 날’이라 부르라.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김종철, 윤미경 선교사(몽골)
지역 사회 선교를 위한 문화센터 건립
2월 11일
무엇을 해야 하나?
“또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사 58:7)
파괴적인 토네이도가 오클라호마시티를 휩쓸었고 곤경에 처한 이들을 돕기 위해 갑작스럽게 사람이 몰려들었다. 다른 사람들과 합류해 잔해를 해치며 수많은 인명을 구한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도움을 주면 기분이 좋잖아요.”
남을 위해 수고하는 길에는 복이 따른다. 하나님께서는 굶주린 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가난하여 오갈 데 없는 이들을 보살피고 헐벗은 이들을 입히라고 요구하신다. 심리학자들은 다른 이들을 돕는 행위가 정신 건강에 이롭다고 말한다. 남에게 복을 베푸는 사람에게는 복된 일이 생긴다.
이런 삶이야말로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기는 쉽지만 동료 인간을 향한 이타적인 보살핌이야말로 신앙이 이론이 아니라 실제적이라는 증거가 된다. 야고보서 2장 15~17절에서 야고보는 강조했다.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믿음을 행동으로 옮길 기회를 주셔서 우리의 믿음이 이기적인 것이 아니라 이타적인 것임을 드러내게 하신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타인의 행복에 관심을 기울이며 세상을 복되게 하려는 강한 열망이 생긴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25장 40절에서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면서 이 점을 선명하게 부각시키셨다. 그리스도를 사랑하면 타인을 사랑한다. 타인을 사랑하면 하나님의 사랑이 드러난다.
타인을 축복하면 우리도 축복받는다. 다른 이들의 삶에 변화를 줄 기회를 찾으라.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은 예수님의 일을 하는 것이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배진성, 정해옥 선교사(인도)
인도 1000명 선교사 훈련원 부지 해결을 위해서
2월 12일
섭리
“바람의 길이 어떠함과 아이 밴 자의 태에서 뼈가 어떻게 자라는지를 네가 알지 못함 같이 만사를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네가 알지 못하느니라”(전 11:5)
뉴저지주 저지시티의 어느 역 플랫폼에서 열차가 움직이고 있는데 에이브러햄 링컨의 아들 로버트가 열차와 플랫폼 사이로 떨어졌다. 그 순간 누군가 로버트의 코트 깃을 잡아채어 큰 부상을 당하거나 죽을 수도 있는 위험으로부터 안전하게 구해 냈다. 로버트 링컨을 구한 남자는 에드윈 부스라는 사내로 훗날 에이브러햄 링컨을 암살한 존 윌크스 부스의 친형이었다. 링컨을 암살한 범인의 친형이 링컨의 아들을 구했다. 누군가는 이것을 우연의 일치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 삶에 역사하시면 우연이란 없다. 그것은 우연이 아니라 섭리이다. “바람의 길이 어떠함과 아이 밴 자의 태에서 뼈가 어떻게 자라는지를 알지 못함” 같이 우리는 삶에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시는지 알지 못한다.
우연한 만남은 종종 단순한 우연 이상일 때가 많다. 한 남자가 가족들과 예배에 참석했다. 점심 식사 줄의 맨 뒤에 서 있던 그들은 앉을 자리가 없었기에 서서 식사하기로 했다. 교인들은 자신들과 함께 식사하자고 권했지만 빈자리가 없었다. 상황을 알아챈 몇몇 교인이 자리를 내주었다. 그 남자와 가족들은 자리에 앉았고 그 남자는 맞은편에 앉은 사람과 이야기를 나눴다. 맞은편 사람은 의사였고 그 남자 방문객의 건강에 이상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점심시간이 끝날 무렵 그 남자는 그 의사에게 진료를 받기로 예약했고 일주일 뒤에 바로 수술을 받았다. 교회에 방문하기 전까지 그는 자신에게 심각한 병이 있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점심 식사 자리와 식사 시간을 조율하신 덕분에 그는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우리가 알지 못할 때도 하나님께서는 일하고 계신다. 그분께는 우연이란 없으며 지금도 우리를 위해 우리 힘으로 할 수 없는 일들을 하고 계신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김광성, 이은정 선교사(대만)
재림을 늘 준비하는 선교사의 삶을 살 수 있도록
2월 13일
올바른 반응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시 116:12)
성경에는 탐색하는 질문들이 나오는데 그중 하나를 시편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우리는 모든 것을 베풀어 주신 하나님께 어떻게 해야 할까? 감사 헌금을 드릴 수도 있고, 간증으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할 수도 있다. 또 선교 봉사를 하거나 하나님을 위해 자신의 재능을 사용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다윗이 던진 질문의 요지는 그게 아니다.
하나님께서 무엇보다 바라시는 것은 우리의 마음이다. 말하자면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원하신다. 그러면 하나님은 모든 것을 얻으신 것이다. 미가 6장 8절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무엇이 가장 중요한 것인지 깨달은 다윗은 시편 51편 16절에 이렇게 기록했다. “주께서는 제사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드렸을 것이라 주는 번제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정결한 마음과 올바른 정신이 수반되지 않으면 종교 활동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다윗은 17절에서 이렇게 덧붙인다.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남편이 아내에게 사랑을 표현하고자 저택을 지어 주고 선물을 잔뜩 준다 해도 아내에게 존중과 사랑을 보이지 못하면 선물은 무의미다.
십자가를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끊임없는 보살핌과 도움을 생각하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오늘 그분께 마음을 내어 드리라. 어떻게 마음을 드리는지 잘 모르겠다면 ‘나의 마음을 취하셔서 하나님의 것으로 삼아 주세요.’라고 간단하게 기도하라. 그분께서는 그렇게 해 주실 것이다. 그러면 삶은 더 확실히 예수님에게 지배받을 것이며 그분은 여러분의 삶을 더욱더 그분이 바라시는 길로 이끄실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분의 은혜 안에서 자라 가는 것이다. 하나님께 다스림 받지 않는 마음에는 결코 즐거움이 없다. 하나님이 마음을 다스리시면 나머지 모든 일은 자연스레 뒤따를 것이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정지훈, 신은주 선교사(미얀마)
MPM 훈련센터가 미얀마의 첫 정부 허가를 받는 약학과가 되도록
2월 14일
재판정 앞에서 얻는 확신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후 5:10)
유명한 재판들은 헤드라인을 장식하곤 한다. 원숭이 재판이라고도 불리는 1925년의 테네시주 스콥스 재판, 그로부터 70년 뒤인 OJ 심슨 재판, 그 밖에도 수많은 법정 공방이 대중과 언론의 눈길을 끌었다.
그리고 우리도 언젠가 법정에 설 것이다. 성경은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고 말한다. 이 심판은 세상의 어떤 판결보다도 더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 판결은 돌이킬 수 없으며 영원히 유효할 것이다.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은 하늘의 재판장에 대해 이야기한다. 심판 장면을 극적으로 묘사한 다니엘은 “심판을 베푸는데 책들이 펴놓였더라”라고 알려 준다(단 7:10). 요한계시록에서는 온 세상이 들어야 할 메시지를 들고 공중에 날아다니는 천사들이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때가 이르렀다.”고 선포하는 장면을 묘사했다(계 14:7, 새번역). 마지막 때를 위한 하나님의 기별에서는 심판이라는 엄숙한 현실을 경고하는 것이 핵심을 이룬다.
생각만 해도 정신이 번쩍 든다. 영원한 영향을 끼칠 심판에서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조사하신다니! 그러나 그 장면은 잘못한 죄인을 추궁할 이유만 찾는 두려운 하나님과는 전혀 거리가 멀다. 그 심판은 회계 장부를 확인하는 것과 같다. 심판 때 하나님은 각 사람의 인생 기록을 살피시고, 우리가 그분에게 호응하면서 혹은 그분을 거스르면서 내린 결정들에 따라 판결을 내리신다. 하나님은 단순히 우리의 결정을 인식하고 존중하실 뿐이다.
따라서 우리는 두려움 없이 하늘의 심판을 맞이할 수 있다. 죄를 뉘우치고 예수님을 개인의 구주로 영접한 이들은 하나님께 인정받을 것이다. 예수님을 신뢰한다는 것은 회개한 죄인들이 확신을 지니고 재판에 임하는 것이다. 우리 죄를 위해 목숨을 바치신 그분께서 자신의 의를 입혀 주시고 심판 때 하늘의 대제사장으로 나타나실 것이다. 우리의 짐을 대신 져 주신 그분께서는 회개한 죄인들에게 용서와 구원을 선언하실 것이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김정태, 김성진 선교사(베트남)
베트남대회의 재정적 안정을 위해
2월 15일
무일푼에서 벼락부자로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롬 10:9)
1945년, 2차 세계 대전이 끝나 갈 무렵이었다. 독일군은 그 당시 체코슬로바키아 영토였던 도시 샤슈틴을 점령하고 러시아 군대가 다가오자 철수하기 시작했다. 한 독일 사령관은 체크슬로바키아의 수도인 브라티슬라바의 국영 은행에서 약탈한 돈을 낡은 여행 가방에 가득 채웠다. 그러나 그의 관용 차량은 그 가방을 넣기에 너무 좁았다. 사령관은 슬로바키아 소작농 몇 사람에게 가방을 맡기며 나중에 이 가방을 되찾으러 오겠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 가방을 다시 돌려주면 후한 보상이 뒤따를 걸세.”
머지않아 러시아 군이 마을에 이르렀고 나치 본부를 조사한 그들은 지폐로 가득 찬 가방을 발견했다. 나치를 추격하던 러시아 중위는 러시아군에게 그 돈이 아무런 쓸모가 없을 것이라 판단해 샤슈틴 주민들에게 그 돈을 나누어 주라고 명령했고 샤슈틴 주민들 나이에 따라 1년에 1,000코루나씩 계산해 돈을 받았다. 돈은 빠르게 처리됐다.
총 3억 코루나가 분배됐는데 현 시가로 치면 수백억 원 상당이다. 가족이 많은 집은 15~20만 코루나씩 받았는데 그 당시로는 엄청난 금액이었다. 힘겹게 살던 그들이 하루아침에 무일푼에서 거부가 된 것이다. 날이 밝아 올 때만 해도 그들은 그런 횡재를 하리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훨씬 더 좋은 것을 마련하신다. 우리도 간단한 결정만 내린다면 보잘것없는 사람에서 의인으로 거듭날 수 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롬 10:9). 예수님은 돈보다 훨씬 위대한 것을 주신다. 우리가 세상에서 무엇을 얼마나 가졌든 예수님만 따른다면 영생은 우리 것이다. 오늘 예수님을 따르기로 결심하라. 그러면 분명 그분은 우리에게 자신의 의를 입혀 주실 것이며 하늘이 우리의 것이 될 것이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박노영, 이미진 선교사(대만)
구도자들의 지속적인 신앙
2월 16일
장력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눅 13:24)
훌륭한 피아노 연주의 아름다운 선율은 사실 피아니스트가 직접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다. 피아니스트가 연주하면 장력에 의해 아름다운 음악이 생성된다. 보통 피아노의 현 230개는 각각 73kg 정도의 장력을 받고 있다. 만약 필요한 만큼 장력이 유지되지 않는다면 라흐마니노프나 모차르트도 아름다운 연주를 할 수 없을 것이다.
복음에도 같은 원리가 적용된다. 성경에 담긴 팽팽한 균형감을 제대로 유지하지 못하면 그 여파는 복음을 깨닫는 데도 영향을 준다. 바울은 우리가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다고 했지만(엡 2:8) 야고보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고 진술했다(약 2:17). 예수님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고 역설하셨는데(눅 13:24) 로마서 5장 1절에서는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라고 분명히 밝힌다. 이 말씀들은 서로 대립하는 게 아니라 보완적인 관계이다.
우리는 믿음으로 예수님과 하나가 되어 구원에 돌입한다. 십자가의 강도, 간음하던 여인, 회당에서 기도하던 세리는 모두 예수님께 내세울 게 전혀 없는 이들이었다. 그들은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왔고 그 결과 의롭다 칭함을 받았다. 그들은 용서받고 사함 받았으며 그리스도의 은혜로 거듭났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서 바울은 믿음의 경험을 한 단계 더 끌어 올린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또 빌립보서 2장 13절에서 바울은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라고 말했다.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선물로 받는다. 그래서 예수님이 신자들의 삶에 활약하면서 그리스도인 경험을 북돋으시면 그들은 더욱 예수님을 닮아 간다. 이전 것은 지나가고 옛날의 삶은 새로운 삶으로 바뀐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끌어들이시고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 있게 하신다. 우리가 자신을 내맡기면 그분께서는 우리 안에서 자기 뜻을 이루실 것이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조장원, 이성혜 선교사(인도네시아)
자야푸라 분원의 부지 구입과 신속한 건축
2월 17일
첨단 기술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고전 15:51~52)
살을 파고드는 질병으로 손, 다리, 발을 잃은 조지아주의 어느 여성이 인공 팔을 받았다. 이 놀라운 의수 덕에 그는 요리, 청소, 회식 등 일상생활이 가능해졌다. 그의 이야기는 1970년대 TV 프로그램 <육백만 불의 사나이>를 연상시킨다. 이 프로그램에서 남자 주인공은 심하게 부상을 당해 신체를 로봇으로 대체했다. 그런데 뛰어난 기술의 발전으로 공상 과학 이야기가 조지아 여성에게는 현실이 된 것이다.
질병과 부상으로 고통받는 이들의 삶을 변화시켜 줄 만큼 기술이 발달한 것은 감사한 일이다. 하지만 여전히 과학이 할 수 있는 최선은 개조나 교체에 불과하다. 수술로 생명을 구한다 해도 언젠가는 죽는다. 이식 수술을 받아도 수명을 몇 십 년 연장할 뿐이다. 기술의 발전은 놀랍지만 그 효력은 한시적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무엇을 하실 수 있는가? 무엇을 하시는가?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고전 15:51~52).
이 변화는 세월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현대 과학은 놀라운 일들을 해내지만 하나님의 과학은 훨씬 많은 것을 할 수 있다. 그날이 오면 하나님께서는 죽은 자들을 살리시고 의인 모두에게 새 육체를 주실 것이다. 우리의 기술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우리를 “심히 기묘”(시 139:14)하게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언젠가 죽은 자들을 깨우고 믿음 안에서 잠든 자들을 마지막 안식처에서 불러내실 것이다. 인공 관절, 안경, 목발, 휠체어 따위는 볼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경이로운 기술에 감탄하는 만큼 그 과학자, 발명가, 엔지니어, 의사들에게 지혜를 주신 하나님은 더 놀라운 일들을 행하실 것이다. 예수께서 다시 오실 그날을 상상해 보라!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김원상, 김수경 선교사(방글라데시)
방글라데시 모슬렘 선교의 역사가 풍성하게 일어나도록
2월 18일
승자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고전 9:24)
운동 경기에서 남는 최후의 승자가 단 한 명이라는 점에 우리는 안타까움을 느낄 때가 많다. 미국의 테니스 선수 존 이스너는 프랑스 선수 니콜라 마위와 5세트까지 경기를 펼친 뒤 5세트에서 70대 68로 마침내 승리를 거뒀다. 테니스 역사상 가장 긴 경기로 꼽히는 이 경기를 마친 뒤 이스너는 “누군가는 이겨야 한다는 것은 역겨운 일이다.”라고 말했다. 42.195km 마라톤을 완주해 본 사람이라면 모두 완주가 쉽지 않은 일이라고 입을 모을 것이다. 그러나 그 어떤 노력을 기울인다 해도 결승선에 가장 먼저 통과하는 선수는 한 명뿐이다. 나머지 선수들은 그간의 훈련, 계획, 경쟁, 어쩌면 부상의 투혼을 겪고도 기껏해야 2등에 불과하다. 누군가는 패배해야 한다는 게 정말 유감스럽다.
고린도 시민들도 운동 경기에 익숙했다. 그들은 정기적으로 올림픽과 비슷한 대회를 열었고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이에 대해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모두 승리를 위해 달린다. 한 종목을 위해 인생을 바쳐 노력한 사람에게 가장 큰 스포츠 무대에 설 기회가 주어지면 전력을 다할 것이다. 승자는 한 명뿐이기에 그들은 최선을 다해 싸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경기에서 승자는 한 명 이상이며 그리스도인들은 이 사실에 기뻐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바울이 언급한 운동 경기와 그리스도인 믿음의 차이다. 우리는 동네에서 가장 탄탄한 그리스도인, 가장 빠른 그리스도인, 가장 힘센 그리스도인이 될 필요가 없다. 다른 신자들의 타고난 능력이나 재능을 욕심내며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볼 필요도 없다. 그리스도인의 ‘경주’에서는 예수님 안에 있는 모든 신자가 승리를 거둔다. 운동 경기와 달리 믿음은 첫 번째로 결승선에 통과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예수님을 믿기만 한다면 우리는 영원한 승자가 될 수 있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김세담, 박유진 선교사(대만)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는 선교 복음의 역사가 일어나도록
2월 19일
신뢰
“그가 나를 죽이시리니 내가 희망이 없노라 그러나 그의 앞에서 내 행위를 아뢰리라”(욥 13:15)
포근한 날씨에 모든 일이 순조롭고 주차 공간도 완벽하고 어디서든 사람들이 미소를 지을 때는 하나님을 신뢰하기가 어렵지 않다. 그러나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릴 때는 하나님을 믿기가 정말 어렵다. 자연재해로 마을과 집이 파괴된다면? 남들에게 흔히 일어나던 비극이 이번에 나에게 닥친다면? 가장 신실한 교인의 자녀도 암에 걸린다. 평생 예수를 믿던 이들도 알츠하이머병에 걸린다. 헌신적인 그리스도인이 끔찍한 사고의 희생자가 되기도 한다.
신자라고 해서 가혹하고 쓰라린 상황을 항상 모면할 수 없다는 현실 때문에 신앙생활에 큰 의문을 품는 이들이 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이 질병이나 어려움을 피하게 하는 보증 수표는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사도 바울은 “내 육체에 가시”를 제거해 달라고 하나님께 세 번이나 기도했다(고후 12:7~8). 그러나 그 기도는 응답되지 않았다. 신실한 성인 도르가는 “병이 들어 죽었다”(행 9:37, 공동). 야고보는 참수당했고(행 12:2) 욥은 가족 대부분을 잃었을 뿐 아니라 재산도 모조리 잃었다.
우리는 살면서 당하는 문제로 하나님의 신실함을 측정하려 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어디까지인지는 수천 년 전부터 정해져 있다. 하나님은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여 자신의 사랑을 표현하셨다. 수천 년이 흐른 뒤 예수께서는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롬 5:8)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에 성령과 영생의 약속을 선물로 주셨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살면서 겪는 시련은 자신의 신실함을 확인하는 기회이다. 욥은 “그분이 나를 죽이신다 해도 나는 그분을 신뢰할 것”이라고 말했다(욥 13:15, 우리말). 하나님이 특정 상황을 허락하신 이유를 항상 깨달을 수는 없다 해도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할 수는 있다. 욥과 같은 증언은 그를 바라보는 이들에게도 시사하는 점이 많을 뿐 아니라 하나님께도 우리가 그저 편한 것만 찾는 그리스도인이 아님을 입증하는 것이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최봉길, 최경미 선교사(필리핀)
파키스탄 1000명 선교사 분원 설립과 성령 충만한 선교사 파송
2월 20일
어이없는 판정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마 6:12)
메이저 리그 야구 투수였던 그는 타자 하나만 더 잡으면 퍼펙트게임을 따낼 수 있었다. 퍼펙트게임이란 투수가 상대편 타자 단 한 명도 1루로 내보내지 않는 것으로, 해내기가 매우 힘든 일이다. 야구 역사상 퍼펙트게임은 20여 회 정도였고 그만큼 야구에서는 중요한 업적이다.
아르만도 갈라라가는 21번째 퍼펙트게임 투수가 되기까지 타자 하나만 남겨두고 있었다. 공을 던졌고 타자는 공을 쳐 냈다. 외야수가 공을 잡아 1루수에게 공을 던졌고 퍼펙트게임이 확실했다. 그런데 1루 심판은 세이프 판정을 내렸고 그의 명백한 오심 때문에 투수는 역사에 남을 퍼펙트게임을 놓치고 말았다. 그럼에도 갈라라가는 옅은 미소를 짓고는 마운드로 되돌아가 다음 타자에게서 아웃을 따냈다. 사실상 타자 28명을 잡아낸 퍼펙트게임이었다.
역사의 한 장면을 빼앗겼다면 어떻게 대처하겠는가? 갈라라가는 1루심에게 “누구도 완벽하지 않습니다. 그게 우리 인간입니다. 나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을 뿐이다. 1루심은 그를 만나 눈물을 흘리며 사과했다. 갈라라가는 그를 안아 주었고 그를 용서했다. 감정이 고조되는 프로 스포츠 세계에서는 특히 놀라운 일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용서를 실천하라고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심지어 상대가 틀렸고 우리에게 소중한 것을 부정하더라도 그를 용서하라고 하신다. 예수님은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라고 기도하라고 가르치셨다. 사실상 우리가 남을 용서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예전에 성경 교사였던 75세 할머니가 어느 여성에게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손자는 범인을 용서하기로 했지만 이를 두고 가족들이 팽팽하게 맞섰다. 그럼에도 그는 범인을 용서하고 스스로의 마음에 큰 위로를 받기로 선택했다.
누구에게나 아직 용서하지 못한 일이 있다. 그러나 용서는 언제나 최선의 선택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방법이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최운성, 조선희 선교사(대만)
전도하는 교회와 성도로 체질 개선
2월 21일
이 세상의 신
“그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고후 4:4)
세상 사람들은 자신들의 지도자를 선택하지만 그 지도자가 하늘의 하나님은 아니다. 세상의 도덕 기류는 성경의 원칙과 정반대이다. 흔히 세상은 하나님을 겉으로는 인정하면서도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대부분 저버렸다.
지나간 시대보다 오늘날 세상의 죄악이 더 심각하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 생각이 맞는지를 떠나서 더 중요한 것은 지금 세상에 죄가 널리 퍼져 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의 세상과는 다르게 대부분 죄를 수용하는 분위기다. 세상은 전반적으로 편안해 보이지만 죄악과 범죄로 깊게 가라앉고 있다.
사탄은 “이 세상의 신”(고후 4:4)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특히 조심해야 한다. 주변 사람들이 영혼의 원수를 섬기고 있는데 자신의 삶도 그들과 별반 다르지 않게 느껴진다면 나의 하나님은 누구인지 성찰해 보아야 한다. 교회도 조심해야 한다. 오래전 엘렌 화잇은 “교회는 매일 세상에 동화되고 있다.”(실물, 316)라고 진술했다. 교회도 세상 가는 대로 따라가는 경우가 잦다는 것을 역사가 입증한다.
부도덕한 세상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이 사회의 세속적인 풍습과 사고방식에 물들지 않도록 특히 주의해야 한다. 잡초는 정원에 직접 심어야 뿌리내리는 것이 아니다. 이웃집 정원의 씨앗도 쉽게 날아든다. 세심하게 경계하고 끊임없이 주의하지 않는다면 최고의 정원이라도 해충과 잡초가 들끓을 수 있다.
사탄이 세상의 신일지라도 여러분의 신이 될 필요는 없다. 오늘 예수님을 가까이하라. 그분의 영향력이 삶에 강하게 작용한다면 세상의 영향력은 미약해질 것이다. 그리스도께 마음을 내어 드린다면 그분께서 요새처럼 마음을 지켜 주실 것이다. 세상이 죄에 깊게 빠져들수록 하나님의 사람들은 더더욱 예수를 닮아 가야 한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김태영, 전주은 선교사(인도네시아)
서인도네시아 1000명 선교사 훈련원의 지역 복음 전도
2월 22일
제복 입은 남자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 119:105)
뉴욕 지하철에서 방향을 잃고 헤맨 적이 있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알았고 지도까지 가지고 있었지만 다음 열차를 타야 할 플랫폼이 어디인지 찾을 수가 없었다.
다행히도 교통당국에서 일하는 제복 입은 남자를 발견했다. 간단한 설명과 두어 가지 질문 끝에 그는 내가 어디로 가야 할지 알려 줬고 문제는 잘 해결됐다.
길 잃은 사람은 안내가 필요하다. 영적인 여정에서도 선하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안내를 제공하신다. 그분의 말씀은 우리의 발걸음을 밝혀 주는 등불이며 앞길을 비춰 주는 빛과 같다. 성경은 믿을 만한 길잡이로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다.
오늘날 세상이 직면한 문제는 모두 성경에 언급되어 있다. 수백만 명이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지만 성경은 재정 문제에 확실한 조언을 제공한다. 결혼이 파경으로 치닫고 아이들은 방황하지만 성경은 대인 관계, 결혼, 양육에 대해 조언하고 있다. 성경의 조언은 오랜 시간에 걸쳐 검증된 것들이다. 하나님은 얄팍하고 그럴듯한 조언은 하지 않으신다. 오히려 현명한 아버지들이 자녀들에게 할 만한 믿음직한 조언을 주신다. 정부는 계속해서 건강 보험 문제와 그 막대한 재정적 영향을 놓고 씨름하지만 성경은 건강 증진과 수명 연장에 관한 과학적인 조언을 제공한다.
그대의 결정에 누가 영향을 미치는가? 그대의 선택은 누구의 지혜를 따른 것인가?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을 때 누구에게 길을 묻는가? 성경의 안내를 따른다면 결코 실망할 일이 없다.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에게 최상의 것만을 주고자 하신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손해 본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그대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기로 했다면 하나님의 복과 삶의 번성을 기대해도 좋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남경원, 조효정 선교사(파키스탄)
파키스탄 1000명 선교사 1기 훈련
2월 23일
“드디어 자유를 얻었어요!”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롬 6:22)
전 국민의 관심을 끈 끔찍한 이야기가 있다. 젊은 여성 셋이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의 어느 지하 건물에서 죄수만도 못한 취급을 받으며 10년간 갇혀 지냈다. 마침내 그중 한 명이 911에 전화를 걸 수 있었다. 그 여자는 말했다. “납치되어 10년간 실종자로 지냈지만 드디어 자유를 얻었어요.” 그가 전화하며 느꼈을 감정은 상상조차 어렵다. 10년의 고통 끝에 젊은 여성들은 자유를 찾았다.
1980년대 후반, 레바논에서 외국인 104명을 대상으로 대규모 인질극이 벌어졌을 당시에 뉴스 미디어가 꾸준히 최신 상황을 보도했고 각국 정부에서도 인질들이 풀려날 수 있도록 계속 압박을 가했다. 그와 달리 위의 세 여성은 모두 사망 처리된 상태에서 십 년 동안 처참한 일을 겪었다. 그러나 자유의 몸이 되었다.
자유라는 선물을 주기 위해 예수님은 세상에 직접 내려오셨다. 구원의 선물은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라고 바울은 진술했다(롬 6:22). 요한복음 8장 36절에서는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라고 말한다. 또 바울은 갈라디아인들에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라고 권했다(갈 5:1). 예수님을 통해 우리는 자유를 얻었고 더 이상 죄의 포로가 아니며 더 이상 폭군과 자아에 갇힌 사람이 아니다. 더 이상 우리는 하나님을 떠난 자들에게 주어지는 사형 선고 아래 있지 않다.
세 여성이 끔찍한 상황에서 벗어난 것은 정말 감사한 일이다. 그들이 느꼈을 기쁨을 우리는 그저 짐작만 할 따름이지만 언젠가 우리도 그러한 기쁨을 누릴 것이다. 그대는 예수님을 통해 얻은 자유로 인해 기뻐하는가? 아니면 그 자유의 짜릿함이 이미 퇴색되었는가? 우리는 영원한 자유를 유린당하는 옥에 갇혀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진정 우리를 최악의 감옥에서 구원하셨다. 예수님을 통해 자유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라.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정효수, 김윤주 선교사(서아시아필드)
성경을 배우고 있는 터키인, 이란인 형제자매의 결심을 위하여
2월 24일
무엇에 가치를 두고 있나?
“네 보물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 6:21)
흔히 수집가들은 스포츠 기념품에 거액을 지불한다. 잘나가던 야구 선수가 결승전에서 신었던 피 묻은 양말을 9만 3,000달러에 구입한 사람도 있고, 또 다른 수집가는 1980년에 미국이 극적으로 소련 하키 팀에게 승리한 ‘빙판 위의 기적’ 현장에서 선수들이 입었던 하키복을 65만 달러에 사기도 했다. 간절히 바라는 것이 아니라면 그렇게 많은 돈을 쓰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가 어디에 돈을 쓰느냐에 따라 우리가 어디에 가치를 두느냐가 드러난다.
여러분의 소비 생활은 여러분의 우선순위에 대해 무엇을 말해 주고 있는가? 흥미로운 신앙 훈련법 가운데 하나는 신용 카드 명세서를 찬찬히 살피는 것이다. 구매 내역을 보면 자신이 진정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다. 신용 카드 명세서와 복음 사역을 위한 헌금 내역을 비교해 보라. 비교 결과가 여러분의 우선순위를 분명하게 가려낼 것이다. 영원한 복음을 전하는 데 투자하면 금, 부동산, 주식 따위에 투자하는 것보다 더 뛰어난 수익을 거둘 것이다.
예수님은 산상 보훈에서 사람들이 언젠가 스러져 버릴 것들에 돈을 쓰는 현상에 대해 언급하셨다. 그분께서는 “네 보물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고 말씀하셨다(마 6:21). 타지마할은 세상을 떠난 아내를 지극히 사랑한 남성이 지은 것이다. 비싼 자동차를 사는 사람은 자동차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지 자동차를 혐오하는 사람이 아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가고 싶은 곳으로 휴가를 떠난다. 하키복이나 야구 카드 등에 돈을 쏟아붓는 이들은 광신도라고 볼 수 있다. ‘팬’이라는 말도 광신도를 뜻하는 영단어 ‘퍼내틱(fanatic)’에서 유래한 것이다.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에 열광한다면 여러분의 지출 명세서가 그것을 증명해 줄 것이다. 여러분의 헌금이 이를 반영할 것이다. 여러분의 자유로운 소비에도 반영될 것이다. 여러분의 영수증까지도 여러분의 마음이 예수님과 함께한다는 것을 확신시켜 주어야 한다. 돈은 개인이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을 따라 흘러간다. 여러분의 소비 습관에서는 예수님을 소중히 여긴다는 점이 증언되고 있는가?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김민섭, 김순임 선교사(대만)
신띠엔 교회의 장년 제자 훈련 사역을 위해
2월 25일
요나의 태도
“요나가 매우 싫어하고 성내며”(욘 4:1)
요나의 이야기는 성경에서 가장 위대한 이야기 중 하나로 꼽힌다.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등지고 도망쳤는데 해양 생물이 그를 삼켰고 이틀 뒤 바닷가에 뱉어 버렸다. 니느웨 백성에게 요나는 임박한 심판에 대해 경고했고 놀랍게도 유례없이 사악했던 니느웨인들은 회개했다.
그러나 요나는 그들의 회개가 달갑지 않았다. 그들이 하나님을 믿고 하늘의 심판을 피한 것이 못마땅했다. 그 정도로 마음이 비뚤어진 사람이 다 있을까 싶을 정도다. 요나는 니느웨 백성이 멸망받기를 고대하면서도 박 넝쿨의 죽음에 불만을 터뜨렸다.
자신이 거짓 선지자로 비춰질까 봐 두려워서 요나가 그렇게 반응했다는 의견도 있다. 아니면 그냥 악의를 품었을지도 모른다. 아시리아 민족은 남달리 잔악했다. 그들의 잔혹함과 우상 숭배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다. 게다가 그들은 이스라엘에게 적대적이었다. 그 때문에 요나는 그들이 구원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하나님께서 니느웨 거주민들을 살려 주기로 하자 요나는 “기분이 언짢”았고 “분개”했다(욘 4:1, 현대인). 사람이 가득한 도시를 하나님이 멸하지 않기로 하자 그는 매우 화가 났다. 니느웨인들은 회개했고 하나님은 그들을 살려 주셨지만 요나는 “분개했다.” 요나의 마음이 하나님의 편에 바로 섰다면 그는 그 결정에 기뻐 춤췄을 것이다.
인간적으로는 요나의 행동을 두둔할 수 있다. 그러나 요나의 태도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 하나님의 백성조차도 냉정해질 수 있다는 점을 보여 준다. 하나님이 자신에게 베푸신 은혜를 요나는 잊지 말아야 했다.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도망쳤는데도 하나님께서는 자비와 은혜를 베풀어 요나를 살려 주셨다.
나 자신이 어떠한 사람인지 기억할 필요가 있다. 자신의 죄를 솔직하게 인식하는 사람은 자비와 관용을 베풀 것이다. 아무개는 너무 악해서 구원받을 수 없다고 우리는 쉽게 단정 짓는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셨고, 우리의 죄가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았음을 떠올린다면 하나님께서 누구든지 구원하실 수 있음을 우리는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분의 구원을 진정으로 기뻐할 것이다. 결코 요나 같은 태도를 지니면 안 된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이효신, 이은화 선교사(캄보디아)
캄보디아 영혼 구원 사업
2월 26일
최선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딤후 3:15)
큰 서점에 가면 자녀 교육에 관한 책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그중 일부는 유용한 조언을 담고 있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해 줄 수 있는 최선은 바울이 교회의 젊은 리더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에서 찾을 수 있다.
어린이들은 가장 좋은 영향을 받아야 하며 그들에게 불어넣을 수 있는 최고의 사상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아이들은 마음에 깊이 새기고 스펀지처럼 흡수한다. 외국어를 배울 때 성인들은 애를 써야 하지만 아이들은 새로운 언어를 쉽게 습득한다. 그들의 마음은 활짝 열려 있다.
어릴 때 마음에 새긴 것은 평생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솔로몬은 잠언 22장 6절에서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라고 말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바나 그룹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미국의 그리스도인 절반 가까이가 13세 이전에 신앙을 받아들였고 3분의 2는 18세 생일 이전에 예수님을 믿기로 결심했다.
아이들이 하늘의 것을 배우지 못한다면 사탄은 분명 복음과 정반대인 것에 가치를 두도록 아이들을 이끌 것이다. 아이들을 영적으로 교육하지 않고 허송할 시간이 없다. 어린아이까지도 하나님에게서 떨어뜨리려고 거대한 우주적 음모가 진행되고 있다. 디모데는 교회의 지도자로 자라났다. 만일 그가 어린 시절 하나님의 말씀에 가치를 두도록 교육받지 못했다면 바울이 디모데에게 두 통의 편지를 쓸 일도 없었을 것이다.
아이들에게 최선은 하나님과 교감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습득하는 것이다. 자녀나 손주가 있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도록 격려하여 최고의 유익을 안겨 주라.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손만식, 어은숙 선교사(필리핀)
모슬렘, 공산 반군, 원주민들을 위한 선교의 확장
2월 27일
모본을 보고 배운다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딤후 1:5)
나는 부모로서 나 자신이 아이들의 삶에 끼치는 영향이 막대하다는 사실을 항상 유념한다. 대부분 부모는 자녀를 천국으로 이끌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한다.
디모데는 초기 교회의 핵심 인물이었다. 그리고 어머니와 할머니에게 신앙을 물려받았다. 성경에서는 그 이름이 로이스와 유니게라고 밝혔다. 그들의 믿음이 한 청년을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이끌었다.
신실한 부모와 조부모의 영향으로 믿음을 갖게 되었다고 털어놓은 그리스도인을 나는 많이 만났다. 교회 학교를 위해 헌신한 장본인, 신앙의 삶과 신앙 없는 삶의 차이를 보여 준 이들은 다름 아닌 기도하는 부모, 조부모, 친척들이었다고 확신 있게 말하는 목회자가 많다. 아이들의 영적 성장에서 부모와 조부모의 영향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부모는 자녀에게 성경을 가르칠 뿐 아니라 모본이 되어 아이들에게 교회가 매력적으로 다가오도록 해야 한다. 그리스도인 가정에서 자랐지만 부모의 삶에서 그리스도인의 모본을 보지 못하고 하나님을 떠나가는 자녀가 너무나도 많다. 아이들은 부모의 삶을 변화시킬 수 없는 교회에는 관심을 주지 않는다. 밖에서는 그리스도인이라 자처하면서 집에서 폭군으로 군림한다면 수많은 아이가 교회를 위선과 실패의 온상으로 여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부모가 완벽해야 한다고 요구하시지 않는다. 부모 노릇은 매우 어려운 일이기에 그 누구도 완벽하고 일관성 있게 이행할 수 없다. 그럼에도 겸손하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다정하게 예수님을 전하고 로이스와 유니게처럼 말씀의 아름다움과 하나님의 성품을 아이들에게 보여 준다면 그 부모는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사역을 행하는 것이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최중식, 이주현 선교사(대만)
청년들의 안식일 성수와 안정적인 직업을 위해
2월 28일
힘겨운 상대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마 5:13)
아침 쇼를 함께 진행하는 동료와 나는 가장 맛없는 채소가 무엇인지 토의를 벌였다. 그리고 짐작대로 우리는 방울양배추를 싫어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 역시 방울양배추를 매우 싫어하는 사람 중 하나였다. 어린 시절 우리 가족은 입맛이 까다롭지 않았지만 그때도 방울양배추만큼은 예외였다. 워싱턴주 시애틀에 있는 파이크플레이스 시장에서는 방울양배추 앞에 ‘죽음의 녹색 공’이라고 적어 놓은 팻말을 본 적도 있다. 그날 아침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도 대부분이 동의했다.
그러나 우리가 다소 비과학적인 설문을 마칠 때쯤 방울양배추 옹호자들의 전화가 쏟아졌다. “아니에요. 당신들은 완전히 틀렸어요.” 꼬리에 꼬리를 물고 걸려 온 전화에서 그들은 방울양배추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물론 있겠지만 어떻게 요리하느냐에 따라 맛은 완전히 달라진다고 설명했다. “죽어라 삶기만 한다면 당연히 끔찍한 맛이 나겠죠. 하지만 제대로 요리하면 환상적인 맛을 볼 수 있어요.” 뒤이어 그들은 ‘제대로 요리하는 법’을 수없이 많이 알려 주었다.
시간이 흐르며 결국 나도 방울양배추를 좋아하게 되었다. 적절한 기회만 주어진다면 생각보다 괜찮은 것이 분명 있을 것이다. 교회가 매력적으로 다가오면 더 많은 사람이 긍정적인 인식을 갖지 않을까? 엘렌 화잇은 “복음을 위한 최고의 논증은 사랑스럽고 사랑을 나누는 그리스도인”(치료, 470)이라고 말했다.
교회를 ‘죽어라 삶기만 한다면’ 그다지 구미가 당기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을 올바르게 제시한다면 감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고 말씀하셨다. 소금이 너무 많다면 짜기만 하겠지만 적절한 양이 첨가된다면 더 좋은 맛을 낸다. 우리가 제대로 요리한다면 사람들은 복음을 거부할 수 없을 것이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양의식, 배지현 선교사(몽골)
새로 시작하는 몽골 1000명 선교사 분원을 통해 청년들이 몽골 선교에 헌신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