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칠리아 팔레르모 경찰서 벽에 그려진 마피아 희생자들.신부·경찰·검사·기자를 포함해 30여명에 이른다.
불과 한 달 사이 인생에 남을 살벌한 경험을 두 번이나 했다. ‘살기로 채워진 눈’과 마주친 것이다. 보다 직설적으로 표현하자면 ‘당장 누군가를 살해할 듯한 표정’을 최근 두 번 접했다. 첫 번째는 연초 로마에서 만난 30대 초반의 우크라이나 망명객이다. 거리의 악사로 일하면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망명객으로, 대화 도중 살기를 느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전쟁이 원인으로 보였다.
그의 휴대폰은 꿈과 현실이 뒤섞이는 부조리의 산실이다.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망명한 이 거리의 악사는 자신의 소셜미디어(SNS)를 여는 순간, 죽음과 직면한다. 우크라이나 현지에서 죽어가는 친구와 가족에 관한 얘기가 넘쳐난다. 눈앞에 펼쳐진 로마의 평화와 소셜미디어에서의 죽음이 공존하는 것이다. 말도 안 통하는 남의 나라에서 생존해야만 하는 생활고도 24시간 따라다닌다. 결론은 야수의 눈이다. 어둠 속에서 본다면 불꽃이 튈 것 같은 살기가 몸 전체에 넘실댄다. 냉철한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지만, 내일 당장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다.
살기 느껴진 10대들의 증오범죄
두 번째 살기는 지난 2월 초 시칠리아 팔레르모 거리에서 접했다. 밤 8시쯤 팔레르모 중심지 골목을 걷던 중 발생한 황당한 사건이다. 바다로 펼쳐진 둥근 달을 보러 식사 후 산책을 나갔다가 5분 만에 15살 전후의 10대 10명으로부터 폭행을 당했다. 다짜고짜 스쿠터로 필자를 공격한 뒤 곧바로 “치나(Cina)”라 외치면서 몽둥이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한마디 말이나 언쟁도 없었고, 눈도 마주친 적이 없는 10대들이다. 소문으로만 듣던 인종차별성 ‘증오범죄(Hate Crime)’를 당한 것이다. 필자를 중국인으로 알고 떼로 몰려와 공격한 것으로 보인다.
시칠리아인들은 몸집도 키도 작다. 180㎝ 신장의 필자가 10대들의 몽둥이 정도는 막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 대들었지만 몽둥이를 휘두르던 10대의 표정을 대하는 순간 ‘엄청난 공포’가 밀려왔다. 살기가 얼굴 전체에 표류한다. 죽이겠다는 주문(呪文) 같은 것이 눈동자 속에 가득 차 있다. 한 세대에 걸친 이탈리아 여행을 통해 수많은 현지인들을 만났지만, 난생처음 접한 표정이다. 집단 최면에 걸린 것인지, 한 명이 아니라 10명 전원이 살의를 갖고 덤벼들었다. 때마침 문을 열어준 근처 레스토랑으로 도망갈 수밖에 없었다. 허리가 아픈 건지, 얼굴에 피가 흐르는 건지 따질 겨를도 없었다. 무조건 죽이려고 달려드는 팔레르모 10대로부터 벗어나는 것만이 최선의 방책이었다. 곧바로 순찰 중이던 경찰이 오면서 상황은 끝났다. 5분 정도 벌어진 폭력이지만, 살기와 죽음이 교차한 공포의 시간이었다.
연거푸 두 번이나 경험한 살기라지만 사실 우크라이나 망명객과 팔레르모 10대의 모습은 전혀 다른 사안이다. 우크라이나 망명객의 경우, 비슷한 일을 당한다면 그 누구도 똑같은 처지가 될 수밖에 없는 ‘동병상련’으로서의 살기다. 평화의 땅을 공격한 푸틴과 러시아에 대한 분노가 살기의 배경에 있다. 팔레르모 10대는 다르다. 자의적으로, 무작정 선택한 증오로 인한 살기이자 살의다. 마음에 안 드는 누군가를 해치고 싶다는 자발적 파괴본능이 팔레르모 10대의 머리와 마음속에 들어가 있다. 중국발 팬데믹과 최근의 중국 도발에 대해 반감을 가질 수는 있다. 그러나 폭력적인 행동으로 직접 반감을 표현하는 것은 반사회적 범죄다. 막연한 분노와 증오가 명분이 될 수는 없다.
경찰서를 오가며 조서를 꾸미던 중, 팔레르모 10대가 왜 집단폭력에 빠졌는지 담당 경찰에게 물어봤다. 배경이나 근본적 원인에 관한 의문이다. 1930년 프랑스 작가 장 콕토(Jean Cocteau)가 펴낸 소설 ‘앙팡 테리블(Enfants terribles·무서운 아이)‘이 생각났다. 그러나 경찰은 “그런 게 아니다”라고 답했다. 팔레르모 10대의 비행은 사회적 가치관과 담을 쌓으면서 벌어지는, 프랑스 앙팡 테리블 스타일의 일탈과 다르다는 것이다. 도덕적·윤리적 차원의 병리가 아닌, 철저히 팔레르모 전통과 분위기에 순응한 결과가 필자와 같은 동양인을 향해 나타났을 뿐이라고 말한다. 바로 마피아 문화다. 세계적 범죄조직인 마피아를 둘러싼 분위기와 전통이 10대들이 보여준 살기의 가장 큰 배경이자 이유라는 것이 밀라노 출신 경찰의 분석이다.
마피아의 위협에 시달리는 시칠리아인들이 내건 마피아 반대 캠페인 깃발.
데나로, 소년 유괴해 황산으로 녹여
25년 전 루마니아에서의 기억이지만, 본의 아니게 편견으로 가득 찬 글을 쓴 적이 있다. 드라큘라 얘기다. 루마니아 트란실바니아의 전설로 남은 드라큘라 백작의 잔인함에 관한 글을 쓴 적이 있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나중에 루마니아인과의 대화를 통해 얼마나 무식하고 바보스러운 글이었는지 자책하고 반성했다. 의도가 무엇인지 관계없이, ‘루마니아=드라큘라’라는 이미지의 글이 나갔기 때문이다. 당시 공산주의가 무너지면서 루마니아에 대한 이미지가 땅에 떨어져 있었던 시대다. 드라큘라는 영국인의 편견에 의해 탄생된 허구다. 덕분에 영어권을 통해 ‘루마니아=드라큘라’라는 이미지가 전 세계로 퍼져 나간다. 충혈된 눈의 드라큘라 영화를 본 루마니아인은 어떤 느낌이 들까? 무식하고 편견에 찰수록 실체가 아닌 눈앞의 이미지만으로 대하기 십상이다.
루마니아 교훈도 있지만, 시칠리아에 들어서면서 마피아에 관한 얘기는 멀리하고 싶었다. 그러나 팔레르모에 도착한 순간, 마피아에 관한 얘기가 현지인 입을 통해 하루 종일 거론된다는 것을 알았다. 외부의 편견이나 이미지에서 생산된 가십거리가 아닌, 현실로서의 마피아가 현지인의 주된 관심사다. 바로 지난 1월 16일 팔레르모에서 체포된 마피아 황제, ‘마테오 메시나 데나로’가 화제의 주인공이다.
그는 무려 30년 이상 도주하다 체포된, 이탈리아 아니 전 세계 조직범죄사를 통틀어 최악의 지명도를 가진 인물이다. 지난 1월부터 지금까지 팔레르모발 뉴스로 유럽 전체가 떠들썩한 상황이다. 필자가 ‘몸으로’ 체험한 시칠리아 스타일 ‘앙팡 테리블’은, 마피아 황제 체포에 즈음한 10대들의 모방범죄라는 것이 필자 담당 경찰의 설명이다. 마피아 얘기를 뺀 시칠리아 스토리에 주목했지만, 결국 사방팔방 돌아다니다가 마피아로 귀결된 느낌이다.
팔레르모에서 마피아 황제 데나로는 우리에 비유하자면 일제강점기 ‘순사’와도 같은 말이다. ‘자꾸 울면 순사가 온다’는 말은 필자의 유년 시절 부모들의 상투적인 협박문구였다. 팔레르모에서는 아예 ‘마테오 메시나 데나로’란 이름을 언급해서는 안 된다. 공포는 물론 이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끼치는 잔인한 죽음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데나로는 수많은 사람을 살해한 인물이다. 라이벌 마피아를 암살한 것뿐만 아니라 경찰, 시민, 신부도 그의 암살 리스트에 들어가 있다. 최악의 사건은 1993년 발생한 12살 소년 유괴사건이다. 법원 증인으로 채택된 소년의 아버지 입을 다물게 하려는 의도에서 자행된 유괴다. 당시 이탈리아 전역은 어린이의 유괴사건으로 들끓었다. 당일 발간된 신문을 들고 있던 소년의 겁먹은 모습이 유럽 전역에 퍼져나갔다. 그러나 소년의 행적은 곧바로 사라진다. 소년의 운명은 2년 뒤 체포된 다른 마피아 조직원을 통해서 드러났다. 살해 후 고농도 황산에 뼈까지 녹여 하수구에 버렸다는 소름이 끼치는 사건이다. 데나로의 명령으로 살해했다는데, 엽기 그 자체다.
지난 1월 16일 코로나 검사를 받으러 병원에 들렀다가 체포된 마피아 황제 마테오 메시나 데나로. 오른쪽은 이탈리아 경찰이 공개한 그의 얼굴 사진. photo 뉴시스
검사, 신부, 장관… 무차별적인 암살 리스트
데나로는 자신을 쫓던 검사와 수사요원을 초강력 폭탄을 이용해 암살한, 범죄 영화의 하이라이트 장면을 연출해낸 악당이기도 하다. 1992년 팔레르모 공항 근처에서 발생한 ‘조반니 팔코네’ 자동차 폭파 암살 사건이 대표적이다. 사건 조사차 팔레르모에 들른 검사 팔코네가 도로에 설치된 폭약에 의해 공중분해됐다. 두 달 뒤 조반니 팔코네 사건을 수사하던 다른 검사도 팔레르모에 거주하던 어머니를 만나러 갔다가 폭파 암살된다. 전부 데나로의 범행이다. 데나로는 자신을 비난하던 로마의 TV토크쇼 진행자도 자동차 폭파를 통해 암살하려 시도했다. 사법부 장관도 암살 리스트에 들어가 있었다는 것이 드러나면서 당시 이탈리아와 유럽 전체가 전율했다.
1990년대 초 데나로는 시칠리아 전체에 1000명에 육박하는 조직원을 가진 마피아 황제로 부상한다. 악명을 더할수록 시칠리아에서의 파워도 올라갔다. 1990년 중반부터 이탈리아 전체가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데나로 체포에 집중하지만, 아무런 효과도 없었다. 마피아를 음성적으로 지지하는 사람들이 정부와 경찰 곳곳에 침투해 있었기 때문이다. 왜 마피아를 도와주느냐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2023년 한국에서 벌어진 대장동 사건을 떠올려 보자. 돈은 직업윤리나 도덕도 마비시킨다. 범죄조직만이 아니라 정치, 문화, 언론의 세계까지 넘나든다.
데나로가 마피아 일선에서 사라진 것은 21세기 들어서기 직전이다. 이탈리아 중앙경찰이 포위망을 좁혀오자 깊숙이 ‘잠수’한다. 마피아 부하들이 하나둘 잡히면서 행적에 관한 갖가지 소문만이 전해진다. 외국을 오가며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고 있고, 마피아 세계에서의 파워도 여전하다는 기사가 주기적으로 등장한다. 누군가의 도움이 계속되고 있다는 의미다.
코로나 검사 받으러 갔다가 덜미
그러나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이다. 공교롭게도 코로나19 팬데믹이 계기가 됐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했던가? 데나로의 아지트는 팔레르모에서 서쪽으로 100㎞ 정도 떨어진 작은 마을이었다. 팬데믹이 맹위를 떨치던 2년 전부터 혈청 주사를 맞으러 동네 병원에 들렀다고 한다. 이미 간암에 걸려 있었지만, 전염병 예방이라는 목적도 있었다고 한다. 경찰은 데나로가 병원에 들를 때 사용한 이름이 이미 사망한 인물이란 것을 알게 된다. 1년에 걸친 잠복수사를 통해 마피아 황제 데나로라는 사실을 파악한다. 지난 1월 16일은 코로나19 검사를 위해 그가 병원에 들른 날이다. 이날 데나로는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 판정을 받자마자 경찰에 체포돼 현재 독방에서 치료 중이다. 어쩌면 코로나가 마피아 황제를 잡은 일등공신일지 모른다.
가까운 시일 내 경찰 심문과 함께 데나로에 대한 재판과정이 전 세계에 중계될 것이다. 데나로를 도와준 배후 인물에 대한 조사도 들어간 상태다. 수배 중인 마피아에 협력할 경우 형벌이 가중된다. 팔레르모에 거주하는 마피아뿐만 아니라 로마나 밀라노에 거주하는 정치가와 기업가들의 이름도 이미 오르내리고 있다. 현재 영화 속 극적인 장면 같은 얘기가 팔레르모 신문에 거의 매일 거론되고 있다. 필자에 대한 10대들의 공격과 살기는 그 같은 보도 홍수 속에서 자행된, ‘어두운 시칠리아 공기의 부활’로 느껴진다. 한국 중·고생은 물론 초등학생까지 번졌다는 학교폭력이 그러하듯, 10대 폭력은 쿨한 첨단 유행으로 느껴진다.
데나로의 아지트에는 최고급 샴페인과 함께 거대한 초상화 하나가 걸려 있다고 한다. 영화 ‘대부’에서 마피아 두목 돈 콜레오네 역할을 한 말론 브란도 초상화다. 턱시도 차림의 초상화에는 뭔가 중후한 이미지가 흐른다. 그러나 돈 콜레오네는 어린이를 황산으로 녹여 죽이지는 않았다.
데나로 체포 이후 그에 의해 처참하게 살해된 소년에 관한 기사가 현지 매체에 실렸다.
‘마피아는 사라지지 않는다’
이탈리아에서는 데나로 체포와 함께 마피아도 역사 속 한 장면으로 사라질 듯하다는 전망이 나돈다. 그러나 필자가 만난 경찰은 마피아는 반드시 부활한다고 단언한다. 팬데믹 종결과 함께 경제가 엉망이 되면서 어제의 버릇이 다시 나타날 것이라고 전망한다.
이탈리아 피자는 와인이 아니라 맥주가 어울린다. 일본 아사히맥주가 소유한 ‘페로니’는 가장 저렴하고 인기 높은 이탈리아 맥주다. 그러나 팔레르모에는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무명의 맥주가 최고 인기다. 팔레르모 상품인가 물어봤지만, 밀라노 제품이라고 한다. “다른 지역에서 오지만 주인이 팔레르모 출신”이라는 이유에서 팔레르모 사람들이 좋아한다는 것이다.
시칠리아는 지역 사람들끼리만 믿고 통하는 문화로 유명하다. ‘우리끼리’ 정서가 수배 중인 마피아 황제를 보호해온 가장 큰 이유라 볼 수 있다. 필자 같은 동양인은 물론, 같은 이탈리아인이라도 시칠리아 출신이 아닐 경우 ‘결코’ 친구가 될 수 없다. 팔레르모에 머물수록 실감하지만, ‘시칠리아 우리끼리’ 의식이 존재하는 한 마피아도 사라지지 않을 듯하다. 멀고 먼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니라 한국인들에게도 발등의 불 같은 스토리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