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프 타임
- 지금은 당신이 선택할 순간이다 -
오마에 겐이치 지음 / 김하경 옮김
네모북스 / 2005년 9월 / 215쪽 / 11,000원
50대는 인생의 2막을 여는 시작점이다. 50대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과거 지향적인 습성은 모두 던져 버리고 나만의 주체적인 인생을 설계해 나가야 한다. 샐러리맨 염색체에 물든 한국의 비즈니스맨이여, 과감하게 초기화 단추를 눌러라.
▣ 저자 오마에 겐이치
1943년 후쿠오카 현에서 태어나 와세다 대학 이공학부를 졸업한 후, 도쿄 공업대학 대학원과 미국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을 거쳐, 1970년에 히타치 제작소에 입사했다. 1972년 맥킨지 앤드 컴퍼니 잉크에 입사한 후 일본 지사장, 본사 이사 등을 역임하고, 1994년에 퇴사했다. 현재 캘리포니아 대학 로스앤젤레스 캠퍼스(UCLA) 정책학부 교수와 (주)오마에 앤드 어소시에이트 대표이사로 있다. 저서로는 『기업참모』, 『헤이세 유신』, 『신국부론』, 『샐러리맨 서바이벌』, 『닷컴 쇼크』, 『차이나 임팩트』, 『질문하는 힘』, 『닷컴 업무술』, 『일본의 진실』등이 있다.
▣ Short Summary
이 책에서 저자는 금빛으로 빛나는 50대를 설계하기 위해서는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을 한 단계 진화시키는 것이라고 충고하고 있다. 또 제2의 인생을 준비하는 적기는 바로 50대라고 강조하며, 그 방안들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별로 하고 싶은 일을 10가지 이상 나열하라’, ‘인생의 대차대조표를 작성하라’, ‘다양한 사람과 친분을 쌓아라’, ‘삶을 행복하게 마감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의 기준으로 삼아라’, ‘자격증 습득보다는 자산 운용에 대한 공부를 하라’- 을 현실적이고도 구체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참고로 이 책 Part 1에서는 소니와 마쓰시타, 혼다, 샤프 등 일본 유수의 기업들을 일으킨 경영자들이 그들의 20대와 30대를 어떻게 보냈는지 소개하고 있고, Part 2에서는 하루가 다르게 급격하게 변화하는 현대 사회와 IT물결 속에서 50대가 취해야 할 태도, 삶에 대한 판단 기준 등을 기술하고 있으며, Part 3에서는 제2의 인생을 준비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면서 현재 62세인 오마에 겐이치 자신의 의욕적이고 적극적인 삶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보여 줌으로써, 독자들에게 인생의 목표를 세워 새로운 것에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불어넣어 주고 있다.
▣ 차례
Part 1 벌어지는 세대간 격차
Part 2 일본의 평균연령 50세인 시대
Part 3 제2의 인생에 대비한다
하프 타임
- 지금은 당신이 선택할 순간이다 -
오마에 겐이치 지음 / 김 하경 옮김
네모북스 / 2005년 9월 / 215쪽 / 11,000원
Part 1 벌어지는 세대간 격차
시대를 만든 대경영자는 모두 20대에 창업했다
현재 재팬타임즈 회장이자 니프코(NIFCO)라는 회사의 창업주인 오가사하라 도시아키가 경영자로서 출발한 시점은 20대이다. 그는 학창시절, 미국 잡지인 <Leader's Digest>를 즐겨 읽었는데, 이 잡지에서 ‘벨크로(Velcro)’라는 매직테이프로 대성공을 거둔 사람의 기사를 보고 흥미를 느끼고, 곧바로 당사자에게 편지를 보내 일본에서의 ‘벨크로’ 판매대리권을 취득했다.
그 후 그는 프린스턴(Princeton)대학으로 유학을 떠나게 되었는데, 그 전에 이 ‘벨크로’의 판매권을 다른 곳에 팔려고 하던 중, 국철 그린차(1등석)의 좌석 머리받침대 커버와 침대차 시트 -당시에는 좌석 커버와 시트 등을 안전핀으로 고정해, 갈아 끼우기가 여간 번거롭지 않았는데, 이것을 ‘벨크로’로 바꾸면 한 번에 쉽게 끝남- 에 힌트를 얻어, 결국 어느 화학회사에 수억 엔을 받고 판매권을 파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미국 유학 중, 우연히 세계에서 상위 몇 위에 들어가는 화학회사의 사장과 만나게 되고, 기회가 오기를 기다리다 마침내 이 회사와 합병하여 니프코를 설립하고, 점차 영향력을 키워 상대 회사의 주식을 매입하여 니프코를 다국적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오가사하라의 굉장한 행동력은 마쓰시타(松下) 전기산업, 혼다(本田) 기연공업, 소니 등 세계 초일류기업을 만들어 낸 대경영자들 -마쓰시타 고노스케(마쓰시타 전기), 하야가와 도쿠지(샤프), 혼다 슈이치로(혼다), 모리타 아키오(소니), 후지타 덴(일본 맥도날드), 이나모리 가즈오(교세라) 등- 에게서도 공통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데, 그들은 모두 앞을 내다보고, 미래에 어떤 사회가 도래할지를 판단하여 그것을 하나하나 행동으로 옮기면서 그들의 20대를 보냈다.
결론적으로 그들은 샐러리맨이 될 생각이 애초부터 없었거나, 혹은 샐러리맨이 되었다고 해도 얼마 지나지 않아 상사와 충돌하여 결국 독립을 선택하는 성향의 소유자였다. 그래서 다행스럽게도 조직에 길들여지지 않았고, 자신의 자질을 더욱 발전시켜 나갈 수 있었다. 이처럼 20대를 어떻게 보내는지에 따라, 그 후 다시 좁히기 힘든 인생의 격차가 벌어진다고 할 수 있겠다.
30대는 성공을 향해 전력으로 매진하는 시기다
앞에서 이름을 든 대부분의 경영자는 대개 35세를 전후하여 가장 과감한 개혁을 실시했고, 그 후에는 이때 완성된 흐름에 한층 속도를 붙여 확대해 가는 형태를 보이고 있다. 왜 그들은 30대에 집중적으로 회사의 체계를 완성한 것일까? 먼저 IT사회에서는 20대가 최고경영자의 위치에서 얼마든지 회사를 만들어 이끌어 나갈 수 있지만, 그 외의 회사를 경영하려면 어느 정도의 경험은 필수이며, 업계나 회사, 비즈니스에 관한 지식도 갖추어야 하는데, 이런 요소들을 익히는 시기는 20대가 아닌 35세 전후이기 때문이다. 또한 35세 정도까지는 비록 실패하더라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용기나 여유 같은 것이 아직 남아 있지만, 40대가 되면 또 한 번의 기회를 기약할 수도, ‘다시 시작하면 돼’라며 툭툭 털어 버리고 일어설 수도 없기 때문에 위험이 따르는 개혁을 단행하는 데 주저하게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30대라면 성공을 위해 24시간을 꼬박 일하고, 매일같이 야근을 해도 육체적으로 크게 무리가 따르지 않는다. 이처럼 30대, 특히 35세 전후는 육체적, 정신적, 생리적, 능력적인 면 등, 모든 면에서 봤을 때 최고경영자의 자리에 오를 만한 적령기, 즉 경영에 물이 오르는 시기인 것이다.
사회에 나와 10년이면 배워야 할 내용은 다 익힌다
경영자로서 꽃을 피우는 시기가 35세 전후라면 샐러리맨 인생의 절정기는 언제일까? 원래 입사 후 10년, 35세 정도에 어떤 종류의 회사든 업무에 필요한 내용은 대부분 습득한다. 즉 앞에 기술한 경영자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35세 전후가 샐러리맨으로서 최고의 절정기라는 뜻이다. 직업이 엔지니어라면 이 시기가 더욱 앞당겨진다. 즉 실무에서 절정기는 일반적으로 35세, 엔지니어라면 30세 정도이다.
한 때 나는 맥킨지의 일본 지사장이 되어, 540명 정도의 직원을 채용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우수한 컨설턴트로서 활동할 수 있도록 철저한 사내 교육체계를 만들었다. 이런 내 경험을 통해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채용 후 맥킨지화하여 전 세계 어디에서든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경영 컨설턴트로 키우려면 -다른 말로 경력자를 채용하려면- 채용하는 시점을 기준으로 30세에서 플러스, 마이너스 2세, 즉 28세에서 32세까지여야 한다는 사실이다. 즉 샐러리맨이 방향 전환을 할 수 있는 적령기는 28세에서 32세까지라는 뜻이기도 하다.
사내 영업을 하는 ‘마의 시기’가 35세부터 시작된다
그렇다면 전직도 하지 않고, 새로운 공부를 시작하지도 않은 채, 20대 후반에서 30대 전반을 보내면서 회사 안에서 배워야 할 내용을 모두 익혀 샐러리맨으로서의 능력을 완성해 버린 35세는 그 이후의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연공서열 형태의 조직에서는 샐러리맨으로서 절정에 도달한 35세부터 50세까지는 오로지 출세할 순서만 기다리는 인내의 시절이 이어진다. 나는 이 시간을 ‘마(魔)의 15년’이라 부르며, 50세를 지나 권력이 있는 자리에 오른 후에야 ‘마의 15년’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 ‘마의 15년’동안 회사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회사 내에서 자신의 이름을 알리는 사내 영업뿐이다. 이는 실점만 계산되는 이른바 벌점게임 같은 것이므로 어쨌든 점수를 잃지 않는 데 모든 신경을 곤두세우게 된다. 그런데 요즘 들어 이 ‘마의 시간’이 더욱 늘어나 ‘마의 25년’, ‘마의 30년’이 되어가고 있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회사에서 이래도 그만, 저래도 그만 이라는 식의 무사안일주의로 생활해 온 사람은, 이제부터라도 정신을 바짝 차리고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그렇다면 ‘위로 올라갈 인물’에서 제외된 50대 전후반의 사원은 정년까지 10~15년 동안 회사에서 어떤 임무를 맡게 될까? 대단히 유감스럽지만 이런 사람이 회사 안에서 해야 할 일은 이제 없다. 따라서 정말 능력 있는 사람이라면 50대 전후의 나이에는 이미 사장 자리에 올라 있어야 한다.
과거의 경험만으로는 일을 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전임자가 하던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여 큰 과오 없이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은 이제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없다. 반면 앞으로 비즈니스 사회로 새롭게 진입할 10대, 20대 젊은층에게는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기회가 넘치는 시대이기도 하다. 내가 이렇게 말하는 근거는 우리 생활 구석구석까지 디지털화, 사이버화가 진행되는 가운데, 낡은 질서와 체계가 붕괴하여 사회 전체가 새로운 사회로 크게 바뀌려하기 때문이다. 현대와 같은 변혁기에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 할 때 가장 큰 힘을 발휘하는 것은 낡은 지식이나 경험에 얽매이지 않고, 종전에 습관적으로 해오던 방식에 의문을 던지며 과감하게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행동력이다. 이런 시대적 흐름 속에서는 역시 젊은층이 승리할 수밖에 없다.
훌륭한 창업자라도 나이가 많아지면 대변혁은 힘들다
후지타 덴은 1971년에 맥도널드 1호점을 도쿄의 긴자에 낸 후 무서운 기세로 전국으로 확대해 나갔다. 그 당시의 후지타는 분명 모든 면에서 뛰어난 경영자였다. 하지만 후지타가 70대에 접어들었을 즈음에는 ‘시대’도 ‘연대’도 ‘세대’도 바뀌고 말았다. 패스트푸드가 다양화되는 가운데 후지타의 경영전략이 더는 통하지 않는 장면 -일본 경제의 디플레이션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평일 반액세일로 일시적인 성공은 거두었으나, 무리한 가격 인하로 경영 압박을 받게 되었고, 여기에 광우병의 역풍까지 몰아치는 등- 도 늘어나 그는 경영자의 자리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나는 경영자에게 ‘수명’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 수명은 ‘시대’, ‘연대’, ‘세대’에 따라 형성된 세상의 가치관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후지타의 예를 들 것까지도 없이, 개성이 강한 창업자가 깨끗하게 자리에서 물러나는 장면은 찾아보기 힘들다. 신뢰할 수 있는 후계자를 육성하지 못하면 60대, 70대가 되어도 경영권 이양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는 사이 개혁에 실패하거나, 독재형 사장에 대한 불만이 내부에서 분출하여 사임에 내몰리는 상황에 직면하고 만다.
선거 투표율은 항상 연령대와 연계된다
현재 일본에서는 세대간의 경제적 격차가 급속하게 확대되고 있다. 부유한 고령자가 수급하는 연금의 재원을 떠받치고 있는 세대는 아이러니하게도 가난한 젊은층이다. 이번에 실시한 연금제도 개혁으로 고령자가 받을 혜택은 조금 제한되기는 했지만, 젊은층은 보험료율 인상에다 노후에 받게 될 금액은 오히려 줄어드는 등 불리한 조항들로 가득했다. 이런 상태로는 세대간 격차가 더욱 벌어질 뿐이다. 이렇게 불공평한 사회를 만든 책임은 정치에 있다. 정치가가 젊은층이 좋아할 만한 정책을 만들어 열심히 수행해도 선거에는 전혀 반영되지 않기 때문 -65세의 인구 가운데 65퍼센트가 투표에 참여하지만, 25세로 내려오면 25퍼센트밖에 되지 않음- 이다. 영리한 정치가라면 당연히 65세의 인구에 중점을 두고 이 연령층이 반길 만한 정책을 내놓을 것이다. 따라서 젊은이들이 가난하고, 또 그들의 미래가 어두운 것은 본인들의 책임이기도 하다.
수혜를 입는 50대와 손해를 보는 40대 사이에는 깊은 골이 존재한다
젊은 세대가 자신들의 불이익을 순순히 받아들인 덕분에 고령자들의 미래는 편안하고 평화롭다. 세대별로 분류하면 현재 50대 전후로 2020년경까지 정년퇴직을 하는 사람들은 안전지대에 포함된다. 문제는 40대다. 이 세대는 일본이 거품경제로 한창 들끓고 있을 때 35세에 접어들었던 세대인데, 이들 대부분은 6,000만 엔짜리 집을 사서, 현재 35년 장기주택담보대출을 받아 꼬박꼬박 그 원금과 이자를 갚고 있다. 이렇게 되면 70세까지 대출을 계속 상환해야 한다. 그런데 1980년대에 끝을 모르고 치솟던 부동산 가격이,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조금 떨어지기 시작하여 마침내 거품경제가 붕괴하고, 그 후 부동산 가격이 계속 떨어졌다. 또 승진은 앞이 막혔고, 월급 인상은 동결되었다. 당연한 결과지만 무리해서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사람 가운데 적지 않은 숫자가 신용불량자로 전락했다.
이런 지옥과 같은 현실에 처한 40대에게 이번에는 연금제도 개혁 -보험료 부담은 늘어나는 반면, 퇴직 후에 받을 수 있는 연금은 줄어듬- 이라는 청천벽력이 떨어졌다. 사실 이외에도 불안요소는 여전히 많다. 국가의 채무는 아마 세금인상이라는 형태로 국민들에게 되돌아갈 것이고, 이렇게 해서 소비세나 소득세가 인상되었을 때 가장 큰 타격을 입을 세대 역시 40대다. 계속 이대로 진행된다면, 이 세대에 속한 사람들은 윗세대와는 전혀 다른 인생설계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이제 30대 차례다. 이 사람들은 손해를 보는 제2세대로 수학적인 손실액은 엄청나다. 급료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이고, 연금을 비롯한 건강보험, 생명보험 등의 지출 금액은 앞 다투어 올라가 부담은 점점 늘어난다. 소비세, 소득세도 인상된다. 연금을 수급할 수 있는 연령은 자꾸 올라가는 반면, 받을 수 있는 금액은 대폭 낮아졌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30대는 거품경제시기에 집을 살 수 없었다. 즉 아직 집을 사지 못한 상태이거나, 거품경제 붕괴 이후에 싼 가격에 저금리로 집을 구입했을 것이다. 즉 30대는 천만다행으로 조금 늦게 태어난 덕분에 엄청난 금액의 부채에 말려들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부동산을 사지 않은 30대라면 더욱 운이 좋다.
‘헤이세 유신(平成維新)’은 40대를 위한 개혁을 지향했다
나는 연호가 쇼와(昭和)에서 헤이세(平成)로 바뀔 때부터 오로지 ‘헤이세 유신’을 끊임없이 주장해 왔고, 1995년에는 ‘헤이세 유신’을 내 힘으로 단행하고자 도지사 선거에 입후보했지만 참패했다. ‘헤이세 유신’은 현재 가장 많은 손해를 보고 있는 세대인 40대를 구제하기 위한 개혁이었는데, 그들이 30대였을 때, 나는 그들의 장래를 걱정하여 끊임없이 직접적인 메시지를 보냈지만, 그들은 투표장에조차 나타나지 않았다.
현재 50대 이상인 세대는 전후의 폐허 속에서 자라왔기 때문에, 잃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뭐든 할 수 있다는 의욕이 있다. 그렇다면 30대, 40대는 어떨까? 나는 이 세대를 ‘소년점프 세대’라 부른다. <소년점프>에서 그려지는 세계는 노력, 우정, 승리가 중심축을 이루고 있는데, 이 만화잡지를 읽고 자란 그들은 노력, 우정, 승리에 가치를 두는 감성을 지니고 있고, 분노를 터뜨릴 줄 모른다. 도로가 막히면 잘못된 교통행정에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얼른 샛길까지 그려진 지도를 사들고 온다.
내가 ‘소년점프 세대’를 붙잡고 느닷없이 ‘혁명을 일으키자’고 했다니, ‘이 얼마나 무모한 짓이었는가?’라는 반성은 하지만, 일본을 좋은 나라로 만들고 싶다는 바람까지 잃지는 않았다. 여러 세대를 대상으로 책을 써서 내 생각을 전달해 가는 활동도 이런 일 가운데 하나며, 이전부터 지속해 온 인재육성을 위한 학교도 마찬가지인데, 이것은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한 내 나름의 노력이라 할 수 있다.
일본은 10년 전에 과감하게 초기상태로 되돌려야 했다
일본 -국가, 기업, 개인 모두- 에 있어, 지금 이 순간보다 초기화가 절실한 때는 없다고 생각한다. 초기상태로 되돌릴 때는 잃은 것에 대한 가치를 따지며 아까워하지 말고, 두 눈을 질끈 감고 모든 것을 ‘0’에 맞추어야 한다. 원래 일본은 이 초기화를 잘 활용하며 발전해 온 나라다. 도쿠가와(德川)막부가 270년 이어진 후, 이를 다시 초기화하여 ‘메이지(明治)유신’이 일어났는데, 이때 일본은 문명개화니, 부국강병이니 하며 성큼성큼 전진했다. 어제까지 맹목적으로 믿던 모든 것들이 하루아침에 180도로 바뀌는 대전환임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현실에 재빨리 순응해 갔다.
2차대전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한때 일본인들은 ‘귀축미영(鬼畜米英)’을 울부짖었지만, 서구세력은 원자폭탄을 떨어뜨리며 ‘무조건 항복’이라는 완벽한 초기화를 강요했다. 그러자 일본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이번에는 눈 깜짝할 사이에 산업 입국하여 가공무역국으로 변신했다. 그런데 이제까지 훌륭히 초기화를 거듭해 온 일본이 요즘에 와서 한계에 부딪힌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내 방식대로 말하면 초기화 단추를 눌러야 할 때에 누르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사태가 벌어지고 만 것이다. 현재의 교착상태로 봤을 때, 적어도 10년 전에는 모든 것을 초기상태로 되돌려야 했다.
초기화 한다는 말은 이제까지 해온 일들에 대해 패배를 인정하는 것이다. “졌습니다. 이제 그만 하겠습니다”며 지금까지 저장해 온 모든 내용을 하나도 남김없이 지워 백지상태로 만드는 이런 행위를 영어로는 ‘Unlearn’이라고 하는데, 이런 식으로 머릿속을 깨끗이 비워야 한다. 이렇게 하면 다음에 들어오는 새로운 것들을 스펀지처럼 잘 흡수할 수 있는 상태가 된다.
상기 내용 외에 이 파트에는 ‘기존 거대기업이 안고 있는 딜레마’, ‘국가의 채무가 모두 젊은이들의 몫으로 되돌아온다’ 등의 내용이 서술되어 있다.
Part 2 일본의 평균연령 50세인 시대
스타플레이어가 아닌 들에 핀 야생화로 살아간다
이제부터는 현재 50대 전후인 세대, 40대 후반에서 50대 전반의 사람들에 초점을 맞추어 그 실상을 명확히 밝혀 그들이 남은 인생을 충실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보기로 하자. 가장 먼저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은 회사에 대한 무한한 감사다. 회사는 뛰어난 재능도 없는 여러분에게 매달 꼬박꼬박 월급을 지불해 주었고, 그 덕분에 여러분은 오늘날까지 살아올 수 있었다. 그리고 여러분은 앞으로 남은 10년에서 15년을 회사에서 보내게 된다. 감사하는 마음을 어떤 형태로든 남기고 싶지만, 이미 출세의 가능성이 없다면 숨은 실력자가 되는 데 전력을 다해야 한다.
먼저 약 25년 동안 자신이 해온 일들을 되짚어 보며 자신이 오랫동안 지속한 영역이 무엇인지 찾아보고, 그것이 무엇인지 찾았다면 이번에는 가장 자신 있는 분야로 영역을 압축하여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발견하여 실행해야 한다. 뭐든 급하게 정비하여 숨 가쁘게 성장해 온 일본의 기업 내부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특히 인사, 경리, 재무, 구매 등의 분야에 부족한 부분이 많은데, 자신의 25년의 경험을 잘 활용하여 남은 5년, 10년을 투자하여 이 일에 매달린다면, 회사의 자산으로 남길 수 있는 성과를 낼 가능성이 높다. 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자신의 제2의 인생을 충실하게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회사에 대한 기대치는 최소한으로 억제해야 한다는 말이다.
회사에서는 스타플레이어가 되지 못한 사원에게도 매년 600만 엔에서 1,000만 엔 정도의 급료를 지불하지만, 이 액수만큼 제 가치를 하지 못하고 고목이 되고만 50대가 아주 많다. 이런 고목이 쓰러지지 않는 것은 다른 사람의 양분을 빼앗아 빨아먹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직장 생활을 연명하는 태도는 이제 버려라. 즉 말라비틀어진 고목이 아닌 들에 핀 야생화가 되라는 뜻이다.
다른 회사에서는 여러분의 역할을 꿰뚫어 보고 있다 / 자신의 스타일은 필요 없다
회사가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위험요소가 항상 존재한다고 느끼면, 현재 다니는 회사를 그만두고 오래 지속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하는데, 이 때의 핵심은 두 가지 -전직할 생각이 있다면 되도록 빨리 행동으로 옮길 것과 절대로 퇴직금을 쏟아 붓는 등의 어리석은 행동은 하지 말라는 것- 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새로운 것을 만들어 키워가는 묘미를 맛보고 싶다면, 젊은 사람이 사업을 시작할 때 고문 등의 보조적인 역할로 들어가는 형태가 가장 좋다.
사실 고문으로서 회사에 들어가는 적령기는 바로 50대 전후인데, 고문으로 들어간 회사에서 취해야 할 태도는 두 가지다. 첫째, 옛 것에 집착하여 벗어나지 못하는 회사라면 철저하게 개혁파를 연기해야 한다. 이것을 역할 A라고 하자. 둘째, 지배와 규제, 체계 모두 제대로 갖추지 못한 회사, 요컨대 미숙한 회사에 갔을 때는 기초를 단단하게 다지기 위한 수구파적인 입장을 취해야 한다. 이것을 역할 B라고 하자.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역할에 대한 정확한 파악과 자신이 맡은 역할을 100퍼센트 완벽하게 수행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두 가지 역할을 함께 해서는 안 된다. 어떤 때는 역할 A를 하다가, 또 어떤 때는 역할 B를 하면 회사가 혼란해질 뿐 아니라, “저 사람 어디 이상한 거 아니야?”라는 평가를 받게 될 수도 있다. 어디까지나 역할 A라면 A라는 역할을, 역할 B라면 B라는 역할을 완벽하게 해 낸다는 각오로 자신을 다잡아라. 그것이 ‘사외인사’로서 여러분이 회사에 공헌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전직으로 자신의 격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여러분이 ‘난 아직 쓸 만하다’고 생각한다면, 전직을 고려해 볼 수 있는데, 50세의 시점에서 전직을 한다면 두 단계 아래의 회사로 가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한 단계 아래 정도라면 회사 안에서 크게 두각을 나타내기 힘들기 때문이다. 도시에 있는 기업에서 지방기업으로 하는 전직도 회사의 단계를 낮추는 방법과 같은 효과가 있다.
참고로 지방으로 옮긴다면 아주 평범한 기업경영술만으로 충분하지만, 그 지역에 동화되어 원만하게 일을 해나가려면 도시와는 조금 다른 자질이 요구된다. 그것은 바로 그 지역집단 속에 포함되어 함께 행동할 수 있는 능력 -끈기와 인간성- 이다. 끈기란 요컨대 상대방과 접촉하는 시간으로 그 사람과 결론에 도달할 때까지 이야기를 나누고, 상대방이 완전히 이해할 때까지 설명하고, 자신도 그들과 함께 움직이며 그 곳의 공기를 공유하고, 몇 번이고 찾아가서 상황을 지켜보는 등의 행동 표현을 말한다. 그리고 인간성은 권력이 없는 사람에게는 유일한 무기다. 왜냐하면 도시 대기업 출신인 50대의 여러분이 그 지역 사람들의 경계심을 풀고 지방회사에 채용되는 것도, 지역집단을 움직이는 것도 여러분의 인간성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나이가 50세를 훌쩍 넘어선 현재, 회사에서 직책이 더 올라갈 희망도 없고, 다른 회사에서 “사장으로 오십시오”라고 요청하거나, 거래처에서 “부디 정년 후에는 우리 회사로 와주세요”라는 권유도 받지 않았다면, 여러분은 ‘회사인간’으로서의 인생을 헛살았음을 먼저 자각해야 한다. 그렇다고 이런 일로 너무 허무해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이제부터의 인생에 대해서만은 잠시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생각해 보기 바란다. 여기에서 한 가지 내가 제안하고 싶은 방법은, 마음가짐을 180도로 바꾸어 ‘회사인간’으로서의 자신에게 작별을 고하고, 처음부터 다시 초기화하는 것이다. 초기화 단추를 눌러야 한다고 내가 여러 번 주장했지만 쉽게 실천에 옮기지 못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이런 사람에게는 같은 회사의 10년 선배, 20년 선배의 모습을 관찰하라고 충고하고 싶다. 회사의 선배는 여러분과 똑같은 배양액 안에서 똑같은 양분을 빨아들이고 있는 존재이므로, 실험실적인 측면에서 보면 가장 신뢰할 수 있는 관찰대상이다.
내 경험을 말하자면 나는 다른 사람들이 ‘미스터 리셋’이라고 불러 주었으면 할 정도로 초기화를 거듭해 왔다. 예를 들면 나는 일본의 에너지 문제를 어떻게든 해결하기 위해 9년 동안 원자력에 관련된 일을 했다. 하지만 어느 때부터인가, ‘이 상태에서는 엔지니어로서 아무리 좋은 의견을 말해 봐야 제대로 들어주지 않을 게 뻔해, 이건 아니야’라는 생각이 들자 처음으로 초기화해 버렸다. 원자로의 엔지니어로 일하던 히타치를 그만둘 때 “힘들게 MIT에서 박사학위까지 따왔는데 너무 아깝다”거나 “회사에 남으면 29세의 나이에 과장 자리를 주겠다”며 만류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원자로 따위는 이제 하지 않겠다’고 결심한 나에게는 박사학위도 과장 자리도 전혀 ‘아깝지’ 않았다. 이제까지 쌓아온 것들을 ‘아깝다’고 생각하면 초기화 단추를 누르지 못한다. ‘회사인간’인 자신을 초기화하는 일에는 용기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신이 스스로 초기화하지 않아도 정년퇴직할 연령이 되면 강제적으로 초기화를 당하게 된다. 그렇다면 10년 앞당겨 자신의 의지로 초기화하여, 퇴직 후의 20년을 준비하는 편이 앞으로 훨씬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인생을 행복하게 마감할 수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가 내 판단의 기준이다
50세 전후의 사람이 총정리해야 할 대상은 하나 더 있다. 그것은 바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앞으로 30년을 충실하게 살기 위해 자신의 인생 전체를 총정리하는 일이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이 마지막 순간에 “아아, 내 인생은 정말 멋졌어”라고 말하기 위해 과연 꼭 해야 하는 것인지를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
나는 마지막 순간을 위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미리 해두지 않으면 노후에 후회할 듯한 일은 ‘능동적 행동’이라는 긍정적 범주에 넣어 실천하려고 열심히 노력한다.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일이나, 다른 사람이 부탁하면 하거나,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은 ‘수동적 행동’이라는 부정적 범주에 포함시킨다. 내게 있어 ‘능동적’ 범주의 대표적인 예가 산악오토바이다. 나는 이 일을 도저히 할 수 없어질 때까지 계속하려고 한다. 그때가 65세가 될지, 70세가 될지는 모르지만 아직은 좀 더 할 수 있다는 확신은 있다. 물론 이렇게 되기 위해 평소에 부지런히 운동을 하고 있고, 영양도 충분히 보급하고 있다. 이외에 다른 스포츠로는 다이빙과 스키가 ‘능동적’인 항목에 속한다.
내 생각을 책으로 엮거나, 강연하는 일은 앞으로도 지속할 계획이다. 따라서 ‘능동적’ 범주 안에 들어가기는 하지만 산악오토바이처럼 내 모든 열정을 쏟아붓지는 않으므로 약한 능동이라 할 수 있다. ‘수동적’ 범주의 대표적인 예가 관혼상제다. 나는 결혼식에는 참석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내가 참석한 결혼식은 손에 꼽을 수 있는 정도지만 갈 때마다 후회했다. 다음 달부터 당장 생활비를 걱정해야 할 것 같은 젊은이들이 그렇게 많은 돈을 들여 와인이니, 샴페인이니 늘어놓고,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오토바이에 스키에 집필에다 강연까지 어떻게 그 많은 일을 하십니까?”라는 질문을 자주 받지만, 특별한 비결은 없다. 나는 절대로 하지 않는 일이 많을 뿐이다. 먼저 프로야구를 보지 않는다. 그리고 골프도 보지 않는다. 드라마도 보지 않는다.
한편 요즘 들어 자꾸 눈에 거슬리는 장면이 하나 있다. 술자리에 가서 “일단 맥주부터”라고 주문하는 사람을 자주 보게 되는데, ‘일단’이 도대체 뭐란 말인가? ‘일단 맥주부터’라고 말하는 사람은 집에 돌아가면 일단 텔레비전 전원부터 켜고, 텔레비전에서 야구중계를 하고 있으면 일단 마지막까지 지켜본다. 이 ‘일단’을 없애라. 이것이 여러분의 인생을 망치고 있다. 마지막 순간을 “아아, 내 인생은 정말 행복했어”라는 말로 마감하고 싶은 50대라면, ‘일단’의 시간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또 나는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울고 싶지 않다. 그래서 나는 부모님에 관한 한 시간과 돈, 모두를 아낌없이 사용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한 방울의 눈물도 흘리지 않았으며, ‘이것을 해드렸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후회도 전혀 없었다. 나도 옛날에는 부모님의 말은 안중에도 없는 못난 아들이었지만, 어느 순간 부모님과 내 위치가 역전되어 이제까지와는 반대로 부모님이 내 의견을 묻게 되었다. 그때부터 나는 부모님께 책임을 느끼고 나보다 먼저 부모님을 우선하게 되었다. 내가 말하는 인생의 총정리란 이런 식으로 자신뿐 아니라 자녀, 부모, 형제에게도 적용된다. ‘내가 이렇게 죽으면 아내와 아들은 어떻게 살아가지?’를 생각하기 위한 인생의 총정리를 나는 10년에 한 번씩 한다. 50세 전후의 시점에서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을 정리한다면 반드시 가족까지 염두에 두어야 한다.
50대에 겪은 도지사 선거 참패라는 좌절 체험
1995년, 52세 때 나는 동경도지사에 입후보하여 패배했다. 상대후보였던 아오시마 유키오 170만 표, 오마에 겐이치 42만 표, 내가 자신 있게 내놓은 정책은 유권자의 지지를 얻지 못했다. 반면, 단지 ‘투명한 정치로 우리 지역을 이끌어가겠다’는 표어 하나뿐이었고, 구체적인 정책이라고는 아무 것도 제시하지 않았던 아오시마가 압승을 했다.
나는 그 때까지 세계경제와 일본이 처한 위치 그리고 도쿄 전체의 문제에 관해서는 진지하게 고민해왔다. 하지만 벚꽃 아래에서 술잔을 기울이는 중년의 남성이나 도케누키지조 앞에서 절하는 할머니의 삶에 대해 한 번이라도 생각해본 적이 있었던가! 내가 거리의 사람들 속으로 들어갔을 때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대화를 할 수 없었던 까닭은 무엇일까? 어쩌면 지금까지의 나는 거만하고 이기적인 사람이 아니었을까? 선거운동을 하면서 이렇게 나는 내 내부에 존재하는 문제를 처음으로 깨닫게 되었다.
도지사 선거에서 패배한 그 다음 주, 나는 호주로 가서 사막을 4륜구동 자동차로 달리면서도 ‘왜 내가 아오시마에게 졌을까?’하는 의문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고, 마침내 다음과 같이 깨달았다. 아오시마 유키오는 ‘투명한 정치로 우리 지역을 이끌어가겠다’라며 대중적인 언어로 말했는데, 이 말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깊이 파고 들어갔다. 하지만 ‘정치는 경영이다. 경영의 전문가에게 맡겨라’라는 나의 말은 대중적인 언어가 아니었기 때문에 사람들의 마음까지 닿지 못했던 것이다.
패배 후 나는 확실히 달라졌다. 다른 사람과 언쟁하는 일도 없어졌고, 같은 말을 해도 단어를 신중하게 선택하게 되었다. 참고로 선거 전의 나는 다른 사람이 나를 위해 참고 희생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하는 말과 행동이 모두 옳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누가 옳고, 무엇이 맞는지 이것만이 내 판단기준의 전부였다. 하지만 세상 모든 장면에서 이 기준이 통용되지는 않는다. 아무리 옳아도 말해서는 안 되는 것도 있다는 사실을 난 50이 넘어서야 겨우 깨달았다. 50대에 겪은 나의 좌절 체험은 나를 크게 바꾸었다. 내 행동과 주위를 대하는 태도가 변했고, 공기도 달라졌다. 부드럽고, 온화하게 대화하는 방법도 꽤 괜찮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내 나이에 어울리는 중후함이 우러나오기 시작했다는 느낌이 든다.
상기 내용 외에 이 파트에는 ‘인생을 새롭게 바꾸겠다는 강한 의지가 있는가?’, ‘중고령자들은 왜 고민해도 소용없는 일에 애를 태우는가?’ 등의 내용이 서술되어 있다.
Part 3 제2의 인생에 대비한다
자기 인생의 대차대조표를 작성한다
정년 후를 대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인생의 대차대조표를 작성하는 일이다. 먼저 50대라는 현재 시점에서 예금과 적립형 보험, 주식과 투자신탁 같은 자산이 어느 정도인지, 현재 사는 집의 시가평가액은 얼마인지를 확인하여, 대략적인 액수라도 좋으므로 종이 왼쪽에 적어 본다. 주택담보대출금을 완전히 상환하는 시기가 10년 정도 남은 사람이 대부분이라 생각하는데, 이 남은 대출금과 그 외의 부채를 종이 오른쪽에 기입한다. 이 표가 현재 시점에서 살펴본 여러분의 대차대조표다.
통계적으로 보면 일본인은 65세에 정년퇴직을 할 때 2,500만 엔 정도의 금융자산을 보유한다. 그리고 연금생활이 시작되면 매달 연금의 30퍼센트나 되는 돈을 꼬박꼬박 저축하기 시작한다. 이런 기세로 나가면 80세 때는 3,500만 엔 정도까지 돈이 불어나지만, 그렇게 꾸역꾸역 돈을 모아 도대체 뭘 하려는 걸까? 인생을 즐기려면 시간과 돈을 모두 자신을 위해 투자해야 한다. 그러므로 은퇴하면 이제 노후 준비는 그만 하고 자신의 힘으로 번 돈은 자신을 위해 죽기 전까지 의미 있게 사용하라고 제안하고 싶다. 물론 큰 병에 걸리거나, 갑자기 사고를 당할 위험은 항상 있다. 가족이 장기입원이라도 하면 목돈도 필요할 것이다. 그런 사태에 대비한 금융상품이 보험인데, 보험료 부담이 조금 커지더라도 만약의 사태에 확실하게 대처할 수 있을 정도의 보험에 가입해 둘 필요가 있다. 아울러 보험은 나이가 많을수록 가입하기 힘들어지므로 보험을 염두에 둔 사람이라면 50대가 마지막 기회다.
하고 싶은 일을 나중으로 미루지 마라. 지금 바로 시작해야 한다
몇 년 전에 출판한 『하고 싶은 일은 전부 하라!』에서도 말했듯이, 나는 지금까지 수많은 경영자를 만나 같이 일해 왔는데, 그들은 각자 노후에 대한 꿈 -은퇴하면 매일 골프라도 치며 편안하게 살고 싶다, 집사람과 둘이서 카메라를 들고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싶다, 등등- 이 있었다. 하지만 이들 가운데 꿈을 실현시킨 사람은 드물다. 요즘 같은 시대에 정년까지 무사히 일한 후 명예롭게 퇴사하는 아름다운 결말을 기대하기 힘들게 된 때문이다. 다행히 무사히 은퇴를 할 경우에도 곧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다.
내 지인 중 한 사람은 맑은 날은 논밭을 갈고, 비 오는 날에는 책을 읽는 청경우독을 꿈꾸며 퇴직 후에 시골로 이사를 갔는데, 은퇴 후에 만나 보니, 그는 꿈을 실현했음에도 조금도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청경우독에 이제 질렸어”라고까지 말했다. 도시에 있으면 여러 가지 자극이 많아서 싫증이 나면 또 다른 흥밋거리를 찾을 수 있지만, 시골로 이사 간 그와 그의 아내는 시골생활에 완전히 넌더리가 난 것 같았다. 낚시나 골프, 여행도 마찬가지다.
내가 굳이 최고경영인들의 행복하지 않은 정년 후의 모습을 소개한 까닭은 이들은 모두 공통적인 잘못을 했기 때문이다. 즉 ‘지금 하고 싶다’는 희망을 ‘정년 후’로 미룬 결과, 그들의 노후는 무미건조해지고 만 것이다. 만약 여러분이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하고 싶다고 생각한 지금이 바로 적기다. 나중으로 미뤄야 할 이유가 없다. 정년 후에 그 일을 해서 즐거울지 어떨지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시작해야 한다. “그렇기는 하지만 일이 바빠서 시간이 나지 않아요”라는 말은 변명에 불과하다. 텔레비전으로 야구, 씨름, 골프를 관전하는 시간부터 먼저 없애야 한다. 이런 프로그램은 은퇴한 후에 느긋하게 보면 된다. 시간은 만들기 나름이다.
좋아하는 일만 하는 인생이면 충분하지 않은가?
내가 인생을 초기화하라느니, 득도를 하라느니 하며 여러 번 강조하는 것은 이렇게 하는 편이 인생을 사는 데 훨씬 수월하기 때문이다. 나 자신도 아오시마 유키오의 4분의 1 정도의 표도 얻지 못하고 도지사 선거에서 패한 일을 계기로, 인생에 완전히 득도해 버렸다. 인생에 관한 한 뭔가를 이루고 싶다거나, 일을 더 하고 싶다거나, 좋은 평판을 얻고 싶다와 같은 욕망은 티끌만큼도 없어졌다. 득도하기 전의 나는, 보통 사람이라면 일정표를 보기만 해도 숨이 막힐 정도로 빡빡한 일과를 보냈다. 인생에 득도한 지금은 정반대다. 건강을 가장 우선하기 때문에 피로를 절대 쌓아 두지 않는다. 예전에는 밥 먹듯이 밤을 샜지만 지금은 기본적으로 밤샘을 하지 않는다. 피치 못해 꼭 밤을 새야 할 때는 그렇게 하지만 그 후에 반드시 충분한 휴식을 취한다. 한편 오토바이나 스노보드 등의 여가활동 계획은 가장 먼저 일정을 잡아 둔다. 강연 여행은 즐기면서 하려고 한다. 해외에서 강연 제의가 들어와도, 그곳이 내가 가고 싶은 곳과 일치하면 가지만, 그렇지 않으면 ‘바쁘다’며 거절한다.
50세가 되기 얼마 전부터 나는 무엇을 하든 ‘남은 인생 동안 몇 번 더 할 수 있는가’를 계산하게 되었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 한 번 한 번이 귀중하게 느껴져, 지금 이 순간을 마음껏 그리고 감사한 마음으로 즐겨야겠다고 결심하게 된다. 이렇게 하면 앞으로 남은 25년, 30년은 아주 충실하고 의미 있는 삶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고 싶은 일을 10가지 이상 나열할 수 있는가?
60세, 65세가 되었을 때는 ‘하고 싶은 일이 10가지 이상’이 있어야 한다. 이는 그 후의 인생을 충실하게 살기 위한 최소조건이다. 마찬가지로 춘하추동, 아침, 점심, 저녁, 비 오는 날, 맑은 날 등에 각각 즐길 수 있는 뭔가를 생각한다면 최소한 10가지 정도는 되어야 한다. 10가지 가운데 절반은 문화의 향기가 풀풀나는 인도어(Indoor) 계열로 채워야 한다. 왜냐하면 실내에서 하는 활동은 기후에 영향을 받지 않고, 체력이 떨어진 후에도 지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맥킨지 시절부터 아무리 일이 바빠도, 내 취미생활을 거르지 않았다. 인생에 대해 득도한 지금은 이 취미생활의 비중이 더 높아졌다. 계획을 세울 때는 취미활동을 하는 시간부터 먼저 집어넣은 다음 나머지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한다. 나는 50대 중반부터 이런 식으로 각 시간대와 계절에 따라 규칙적인 취미활동을 꾸준히 계속하고 있다. 아마 이런 생활방식은 내가 죽을 때까지 지속될 것이다.
다양한 사람과 친분을 쌓아라
매번 회사 동료들과 술자리를 하고, 같이 골프를 치는 등 샐러리맨끼리 몰려다니는 사람의 노후는 틀림없이 무척 무료할 것이다. 그러므로 50세가 되면 의식적으로 자주 어울리는 사람들을 바꿔야 한다. 내 경우에는 함께 오토바이, 스노모빌, 음악 등을 즐기는 사람들의 활동분야가 모두 다르다.
50세인 여러분은 샐러리맨 사회라는 균질집단에서 이미 25년 이상 몸을 담았다. 이제는 의식적으로 회사 밖으로 나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사교범위를 다양화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반드시 취미 동호회에 가입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예를 들면 여러분이 사는 지역의 주민자치단체 등도 샐러리맨 사회와는 전혀 다른 이질적인 세계다. 이런 활동을 통해 지역 상점가의 사람들이나 마을 자치회 사람들과의 교류가 깊어지면, 퇴직한 후에도 이 지역에서 즐겁게 생활할 수 있지 않을까?
퇴직 후의 일은 어디까지나 취미생활의 하나로 생각하라
정년 후에 창업은 되도록 하지 않는 편이 좋다. 즉 65세가 된 이 후에는 위험요소를 내재하고 있는 일은 절대 해서는 안 된다. 사회에 뭔가 도움이 되고 싶다, 사회와 지속적인 관계를 맺고 싶다고 희망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활동을 통해 돈을 벌려고 해서는 안 된다. 어디까지나 취미생활의 범위 안으로 제한해야 한다. 혹시 기회나 인맥이 닿는다면 대학교 시간강사 일을 해 보라고 적극 추천하고 싶다. 대학교의 시간강사로 한 강좌 정도 맡는 수준이라면, 자신의 시간을 많이 빼앗기지 않으면서도, 일을 하며 느끼는 보람은 무척 크기 때문이다. 젊은 학생들과의 만남도 신선하고, 일단 강의를 맡으면 ‘o o 대학’이라는 명함도 받는다. 이 또한 이 일의 큰 장점이다. 어쨌든 퇴직 후에는 ‘위험요소는 끌어안지 않는다, 새로 대출을 받지 않는다, 일은 취미로 생각한다, 욕심을 부려 돈을 많이 벌려고 하지 마라’, 이것이 대원칙이다.
여기에서 눈을 감고 싶다고 생각하는 장소가 있는가?
나는 감동할 정도로 아름다운 장소에서 죽고 싶다. 그래서 일을 구실로 여기저기 다니며 죽을 장소를 물색해 왔다. 이렇게 해서 찾은 곳이 일본에만 해도 네 군데다. 외국에도 이런 장소가 몇 군데 있는데 죽고 싶은 장소만 자꾸 늘어나서 고민이다. 내 인생관은 “아아, 행복한 인생이었어”라며 한 점의 후회도 없이 눈을 감을 수 있도록 사는 것이다. 감동적일 만큼 아름다운 장소에서 “정말 행복했어”라며 죽고 싶을 뿐이다.
클링턴 전 대통령처럼 ‘마이 라이프’를 써본다
클링턴 전 미국 대통령의 자서전 『마이 라이프』를 읽고 나서, 그처럼 대단한 사람도 ‘이런 일을 했으면 좋았을 텐데’, ‘그 때 저런 일을 했어야 했다’며 자신의 인생에서 후회하는 일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아마 그는 『마이 라이프』를 집필하면서 이제까지 마음에 꾹꾹 눌러 담았던 여러 가지 것들을 정리하는 동시에, 이런 과정을 통해 앞으로의 인생에서 새로운 삶의 방향을 찾으려 했던 게 아닐까 한다.
나는 50대들에게 꼭 한번 『마이 라이프』를 읽어 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그런 다음 자신 나름의 ‘마이 라이프’를 써보면 어떨까? 이렇게 해서 자신만의 ‘마이 라이프’가 완성되었다면, 이제 앞으로 30년 동안의 ‘마이 라이프 인 더 퓨처(My Life IN The Future)’에 대해 생각해 보자. 이때 자신이 앞으로 어떤 모습이 되고 싶은지를 구체적으로 그려 보아야 한다. 50대인 여러분만의 ‘마이 라이프’를 적어 보고 ‘마이 라이프 인 더 퓨처’에 대한 강한 희망과 의지를 가져 보면, 여러분도 이 세상을 떠날 때 “아아, 내 인생은 멋졌어. 모든 사람에게 감사하고 싶다”는 말을 남길 수 있을 것이다.
상기 내용 외에 이 파트에는 ‘억만장자라고 반드시 행복한 것은 아니다’, ‘놀이 계획부터 일정표에 적어 넣는다’, ‘자격증 취득보다 자산 운용 공부에 시간을 투자한다’, ‘현재 사는 집 이외의 장소에 사는 방법을 고려한다’, ‘은퇴 후 해외 이주는 세계적인 추세’ 등의 내용이 서술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