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 호두
호두와 추자는 다르다. 흔히 호두, 추자, 당추자(唐楸子)가 같은 과실인 줄 알지만 호두와 당추자는 같고, 추자는 추목(楸木) 즉 가래나무의 열매다. 가래나무는 호두나무와는 잎과 열매가 비슷하나 서로 다른 나무다. 가래나무는 한 잎자루에 7∼17장의 잎이 붙었고 긴 타원형의 잎에는 톱니가 확실하다. 열매는 호두와 비슷하나 갸름하고 끝이 뾰쪽하며 훨씬 작다. 같은 가래나무과인 호두나무는 한 잎자루에 7∼9장의 잎이 붙어 있고 잎가에 톱니가 없다. 열매가 달걀모양이며 추자 보다 훨씬 크고 둥글며 한쪽 끝은 밋밋하고 반대쪽도 추자에 비해 덜 뾰족하다. 호두나무는 원나라에서 들어왔고, 가래나무는 우리나라 토종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호두는 딱딱한 껍질에 싸여 있어 생명과 불멸의 상징으로 여긴다. 결혼식 때 풍요와 자손번영을 기원하며 듬뿍듬뿍 집어 주기도 하고, 아예 호두나무를 헌정(獻呈)하기도 한다. 우리의 선인들도 영특한 자손 탄생을 기원하며 제사상에도 호두를 올리고 고루 나누어 먹었다.
호두는 불포화지방이 많은 알칼리성 식품으로 하루에 세 알만 먹으면 그날 필요한 지방을 모두 섭취할 수 있고 양이 좀 지나쳐도 부작용이 없다. 오히려 풍부한 비타민-E의 항산화작용으로 몸에 쌓인 노폐물을 씻어내 중장년층에게 최고의 스태미나식이 된다. 호두를 하루에 한 개씩 먹으면 40대는 10년, 50대는 5년을 더 산다는 속담도 있다. 호두는 뇌를 닮아 뇌세포 발달에 좋은 리놀레산과 리놀렌산이 풍부하다. 나이 들어 나타나는 건망증 예방에나 어린이들의 건뇌식품(健腦食品)으로도 추천할만하다.
건뇌식품 호두 재배
이른 봄 종묘상이나 시군 산림조합에서 뿌리가 많고 눈이 확실한 호두나무 2∼3그루를 골라 전원에 3∼4m 간격으로 심으면 한 가족의 소비량으로는 충분하다. 만춘, 신성1호, 테이크 등 품종이 다양하나 취향에 따라 알이 굵거나 많이 열리는 것 중에서 한두 품종을 고른다.
묘목심기는 이른 봄이 안전하지만 남부지방이라면 낙엽이 진 후부터 봄에 물오르기 전이면 언제든지 가능하다. 이 나무는 밤낮의 기온차가 크고, 일조량이 많으며, 좀 건조한 기후에 알맞다. 재배 상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늦서리의 피해다. 호두나무의 눈트는 온도는 10℃ 정도이나 새 가지 끝 부분에 암꽃이 맺히므로 늦서리에 아주 약하다. 산골짜기에 국지적으로 찬바람이 불어 늦서리가 5월 중순까지 내리는 곳은 피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재배 가능지역은 대체로 평택, 원주, 강릉을 연결하는 선이 생육북한계이다.
심을 곳은 2주 전쯤 너비 80㎝ 깊이 70㎝정도의 구덩이를 파 퇴비 5㎏과 복합비료 0.2㎏을 흙과 혼합하여 20㎝쯤 채워두었다 뿌리가 비료에 닿지 않게 흙을 한 겹 더 넣고 뿌리를 곧게 세워 겉흙부터 채워간다. 구덩이에 흙이 70∼80% 정도 채워지면 묘목을 살짝 위로 잡아 당겨 뿌리가 펴지고 사이사이에 흙이 고루 들어가게 한 후 나머지 흙을 넣고 가볍게 밟아준다.
호두 꽃은 보통 5월 하순에 피며, 한 나무에 암꽃과 수꽃이 따로 핀다. 대부분의 암꽃과 수꽃이 며칠간의 시차를 두고 한쪽이 먼저 핀다. 수정이 잘 안 되는 이유도 꽃이 2∼3일 간의 시차를 두고 따로 따로 피기 때문이다. 꽃필 무렵이면 나무를 흔들어 수정율을 높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호두는 밤 감과 같이 그해 자란 1년생 열매가지에서 꽃이 핀다. 지난해 자란 가지의 끝 눈 또는 바로 아래 쪽 2∼3개의 눈에서 암꽃이 피고, 그 아래로 2∼3마디 떨어진 밑쪽에서 수꽃이 핀다. 접붙인 묘목을 심으면 5∼6년경부터 열리기 시작하여 13∼15년 무렵에 가장 많이 열린다. 호두나무는 200∼300년까지 자라는 장수목이지만 경제수령은 50∼60년 정도이다.
호두나무는 커가는 대로 가꾸기 일쑤지만 개심형자연형으로 만들어주면 너무 높이 자라지 않아 관리가 쉽다. 묘목을 심고 5∼6년까지 매년 3∼4개의 주지와 후보지를 30cm 간격으로 4∼5단을 만들고, 이후부터는 빽빽한 가지를 솎아내 나뭇가지 속까지 햇볕이 들어가도록 공간을 확보해준다.
호두나무는 어릴 때는 급속히 자라고 차차 서서히 자라며 심고 2∼3년간의 비료관리가 중요하다. 가을에는 퇴비를 넣고, 새 뿌리가 완전히 뻗은 5월 이전에 복합비료를 나무 밑에 고루 뿌려준다. 2년생의 경우 가을에 퇴비 6㎏과 봄에 복합비료 0.4㎏을 넣고, 4년생이라면 퇴비 10㎏과 복합비료 1㎏을 기준으로 준다. 이후부터는 나무의 상태를 보아가며 성목이 될 때까지 매년 퇴비와 비료를 10∼15%씩 늘인다. 호두나무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과수는 8∼9월 이후에 화학비료를 주면 헛가지 발생이 많고 추위에 약해져 삼가 한다.
귀족호두
호두나무는 다른 과수에 비해 병해의 피해가 적어 별도로 농약을 뿌려줄 필요는 없지만 여름에 잎을 갉아 먹는 벌레의 피해가 심해 살충제는 몇 번 뿌려 주어야 한다. 호두는 겉껍질이 벌어지는 9월 중순∼10월 상순경이 수확적기이다. 이때가 되면 겉껍질이 벌어지고 30% 정도가 저절로 떨어질 때 장대로 두들겨 딴다. 익은 것만 고르고 덜 익은 것은 한 곳에 모아 젖은 거적을 덮고 1주일쯤 지나면 겉껍데기가 물러진다. 이때 껍데기를 벋기고 깨끗이 씻어 함께 저장한다.
호도 시식지
호두나무에서 악마 쫓는 놀이도 재미있는 교육방법이다. 호두나무 밑에는 이 나무에서 발산하는 특수물질 때문에 잡초들이 잘 자라지 않거나 죽는다. 현대과학으로 풀어보면 힘센 나무나 풀이 특수물질을 분비하여 약한 풀을 말려 죽이는 현상이다. 알레로퍼시(allelopahy)라고 하는데 소나무나 호두나무가 심하다. 이 나무들의 알레로퍼시 현상은 이들 나무에서 발산하는 타닌 때문이다. 이를 두고 악마의 짓이라며, 봄이면 호두나무를 빙빙 돌면서 막대기로 나무를 두들겨 악마 쫓는 놀이가 있다. 어떤 집에서는 그네나 마소를 매어 나무를 흔들어 수정율을 높이기도 한다.
호두의 암 수꽃은 시차를 두고 피어 수정이 잘 안 된다. 이때 나무를 흔들어 주면 꽃가루가 날려 수정이 잘되고 호두가 많이 열린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지식한 사람들은 과학을 선뜻 받아들이지 않아 이러한 놀이를 통하여 주입시킨 것이다. 러시아에도 개와 호두나무와 마누라는 두들길수록 좋다는 속담이 있다. 러시아에서도 봄철에 호두나무 흔드는 풍속은 우리와 같은 모양이다.
호두에 얽힌 우리조상님들의 또 다른 예지도 놀랍다. 정월 대보름 호두, 잣, 밤, 땅콩 같은 견과류 깨무는 소리로 부럼을 쫓았다. 겨울에 푸석푸석해진 피부가 따가운 봄볕에 노출되기 전에 미리 피부를 건강하게 가꿨던 것이다. 이 풍습을 식품영양학으로 분석 해보자. 호두에는 양질의 단백질과 소화 흡수가 잘 되는 불포화지방산이 많아 피부에는 더할 수 없이 좋은 과실이다. 특히 비타민-E는 세포막의 산화를 막아 피부를 튼튼하게 해준다.
천안의 명물은 호두과자다. 약 700여 년 전 고려의 실세 역관 유청신이 원나라에 충열왕을 모시고 오면서 호두묘목 3그루와 종자 5알을 가지고 와 천안 광덕사 경내에 심었다. 높으신 분이 외국에서 가져온 것이라 스님들이 온갖 정성을 들여 가꾼 덕에 큰 호두나무 숲을 이루었다. 호두 숲이 조성되고 짭짤한 수입이 뒤따르자 몇 년 안에 천안 일대가 호두나무로 뒤덮였다.
광덕사 경내의 많은 나무 중 보화루 앞의 우람한 호두나무 한 그루가 돋보인다. 그 나무 옆에는‘유청신 선생 호도시식지(胡桃始植地)’라는 팻말이 서 있다. 이 나무의 외형적 특징은 높이 18m, 수령 400여년, 외과수술 흔적이 있으나 생육상태 양호, 수관 폭 동서 16m, 남북 14m이다. 당초 천안시 보호수였으나 근래에 천연기념물 398호로 지정되었다. 그러나 이 호두나무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유청신이 심었다는 그 호두나무는 아닌성싶다. 나무의 수령 400여년과 도입연도를 비교해보면 아니라는 것이 확실해진다. 광덕사는 신라 진덕여왕 때 창건된 고찰이지만 임진왜란과 조선 경종 때 큰 화재가 있었다는 기록으로 보아도 부정적이다.
아마도 지금의 호두나무는 유청신이 심은 것이 불타 죽자 그 후 다시 심은 아들이나 손자뻘 나무인지도 모른다. 천안에서 호두가 많이 나는 것은 이러한 역사적 배경도 있고, 선생의 후손과 주민들의 노력으로 광덕면 일대에 약 26만 그루나 되는 넓은 호두단지를 조성한 결과이다. 그러나 수입개방은 여기에도 미쳐 1970년대까지만 해도 한 해 3000가마의 수확을 올렸으나 농촌의 고령화와 중국, 북한 등지에서 들어온 값싼 수입 호두에 밀려 차츰 사양길로 접어들고 있다.
천안역이나 휴게소에 가면 항시 맛있는 호두과자 냄새가 길손의 미각을 끈다. 1934년 이 지역에서 제과점을 경영하던 조귀금씨는 헐값으로 팔려나간 호두를 이용하여 호두과자를 만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홍보도 안 되고 먹고살기도 힘들어 어려움이 많았으나, 오직 한길 호두과자 만드는 일에 평생을 매달린 끝에 지금처럼 맛있는 호두과자를 탄생시켰다. 이제 호두과자는 국내뿐 아니라 외국에서까지 맛있는 과자로 자리를 잡았다.
전남 장흥의 귀족호두는 크고 기묘한 골 무늬로 유명하다. 귀족호두는 보통호두 보다 5∼6배나 크며 골이 깊고 윤곽이 뚜렷한 것이 특징이다. 이 호두는 장흥에서 자라는 호두나무에서만 열리는데 일반 호두와 달리 모양은 신기하지만 단단한 껍데기 안이 텅 비어 있다. 이러한 특종 호두는 장흥의 특수한 자연환경에서 우연히 교잡된 변종으로 알려졌다.
지금은 먹고살만하여 귀족 대접을 받지만 과거에는 식량이 귀해 곡식을 심을 만한 곳에 서 있는 것은 보이는 족족 뽑아버렸다. 조석거리가 걱정이었던 시절 속이 빈 호두를 달고 있는 호두나무는 애물단지였다. 이러한 연유로 지금 장흥에는 100년 이상 된 귀족호두나무가 아홉 그루밖에 없다. 경제가 발달하고 취미가 다양해지면서 애물단지는 귀물단지로 바뀌었다. 귀족호두 한 쌍의 가격이 백화점에서 30∼120 만원을 호가한다니 금값이다. 희귀한 데다 조각칼로도 흠을 낼 수 없을 만큼 단단하고 주름이 깊어 지압용 노리개로 불티나듯 팔린다. 씨껍질의 봉합선 수에 따라 양각, 삼각, 사각호두로 나뉘는데 각이 많을수록 희귀하고 부딪히는 소리가 명쾌하여 고급으로 친다.
큰 호두나무 한 그루에는 약 150∼200개의 호두가 열리고, 이 가운데 귀족호두로 분류된 것은 50∼60개에 불과하다. 그 중 명품 중의 명품으로 치는 3각이나 4각 호두는 1∼2개가 고작이고, 색, 크기, 모양을 맞춰 한 쌍을 고르는 데 2∼3년이 걸리기도 한다니 비쌀 수밖에 없다. 이러한 희소성과 기기묘묘한 무늬가 아름다워 너나할 것 없이 한 벌씩 갖고자 안달이다. 언제부터인가 이 고장의 부와 권세의 상징이 된 귀족호두는 선물과 뇌물로도 많이 나간다. 장흥 귀족호두 박물관에 가면 여러 모양의 호두가 100여점이나 전시되어 있고, 특허청에‘장식용 노리개 호두’로 상표등록도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