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제주 『현대사의 비극-제주 4·3현장을 찾아』
작성자 고영건
오늘은 ‘현대사의 비극-제주 4.3현장을 찾아’란 주제로 진행되는 문화탐방을 위하여 201번 간선버스를 탔다. 화북, 삼양을 지나 외곽으로 갈수록 보이는 옛 마을모습이 반가웠다. 마치 과거 속으로 들어 가는듯한 기분이 들었다. 관광객이 많이 찾는 해안가 관광지와는 달리 읍·면 중심거리는 예전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어린 시절 장날 할머니께서 장을 보러 오시면 집에서 하룻밤 묵고 가시곤 하셨다. 반가운 마음과 할머니의 옛날이야기로 밤늦게까지 잠을 자지 않고 있으면 할머니께서는 폭도가 잡으러 온다고 빨리 자라고 하셨다. 궁금한 마음에 할머니께 여쭤본 상상 속 폭도는 귀신이나 도깨비보다 무섭고 수염, 머리는 길며 밤늦은 시간이 되면 산에서 마을로 내려와 아이들을 잡아간다고 한다.
나중에 크면서 알게 된 사실은 할머니께서 말씀하셨던 폭도는 4·3 당시 무장대를 일컫는 말이었다. 밤에 무장대들이 먹을 것을 구하러 마을로 내려오면 다들 숨기 바빴다. 젊은 남자가 있으면 강제로 끌고 가고, 죽창으로 죽이기도 하니 숨거나 도망갈 방법밖에 없었을 것이다. 어린 아기는 울다가도 ‘폭도 왐쩌’ 하면 울음을 그쳤다고 하니 얼마나 무서운 존재였을까? 노인이나 여자, 아이들은 큰 화를 당하지 않았겠지만, 얼굴이 마주칠 경우 운이 없으면 죽임을 당할 수도 있고, 다음날 해안가 마을에서 올라온 경찰의 취조에 잘못 대응 했다가는 무장대로 몰려 집안이 풍비박산 날 수도 있었으니, 차라리 도망가서 현장에 없었다고 하는 것이 목숨을 부지하는데 더 유리했을 것이다.
교수님께서 말씀해주신 4·3둥이 누님 이야기는 당시 상황을 잘 말해주는 것 같다. 당시 제사가 있는 집에는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하여 폭도들이 침입했다고 한다. 교수님 댁도 제삿날 어김없이 침입한 폭도들을 피해 어머님께서 갓난아기인 누님을 안고 마당 구석에 짚을 쌓아놓은 눌에 숨어 계셨는데, 평소 잘 울던 아기가 전혀 울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이듬해에는 폭도들을 피해 바닷가 물속에 숨어 목만 내놓고 있어도 아기가 울지 않았다고 해서 4.3둥이로 불렸다는 이야기였다.
실상은 당시 제주도민이 가장 무서워하던 대상은 토벌대(경찰, 군인, 서북청년단 등 우익단체)였다. 민간인 사망자의 가해자 분류를 보더라도 토벌대에 의한 사망이 78.7%, 무장대에 의한 사망이 15.7% 이다.
(‘제주4·3사건 추가진상보고서’ 2020년, 제주4·3평화재단)
자칫 토벌대의 만행 이야기를 떠들다가 정보당국에게 흘러들어 갔을 때 겪을 고초, 혹은 자신의 부모, 형제가 토벌대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는 이야기가 가져올 부정적인 면을 생각하면, 어린 시절 듣던 4·3 이야기 대부분이 무장대 이야기라는 것이 이해가 간다. 정부의 입장에서도 무장대의 만행에 대한 이야기는 토벌의 당위성을 증명해주는 것이라 크게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다.
북촌은 함덕과 김녕 사이에 있는 어촌마을이다. 유명 관광지나 해수욕장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관광객들도 과거에는 지나치는 마을이었다. 1978년 현기영 작가의 ‘순이삼촌’이 발표되면서 4·3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일어나고 1987년 민주화항쟁 이후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4·3 당시 가장 큰 피해지역인 북촌마을이 관심을 끌었다. 이후 4.3특별법까지 제정되고 정부의 지원으로 위령비, 기념관, 관람로 시설이 마련되었다. 올레 19코스 중간에 위치하고 있고, 요새 주목받는 다크 투어리즘으로 인하여 많은 여행객이 찾는 장소가 되었다.
너븐숭이 4·3 기념관은 당시 토벌대에 의한 북촌리 주민 집단학살의 진상을 전시물과 영상을 통하여 잘 보여준다. 내용을 요약하자면 아래와 같다.
1949년 1월 17일 북촌마을 너븐숭이에서 무장대 습격으로 군인 2명이 사망하자, 군인들이 마을주민들을 북촌초등학교에 몰아넣었다. 그리고 학교인근 ‘당팟’ 과 ‘너븐숭이’, ‘탯질’ 밭으로 수십 명씩 끌고 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주민 300여명을 사살한다. 다음날 남은 주민들을 강제소개 명령으로 함덕에 모이게 한 후, 100여명을 ‘빨갱이 가족 색출작전’으로 희생 시킨다. 전시도 아닌 상황에서 불가항력의 주민을 무참하게 학살한 사건이었다. 이런 비극을 안고도 마을주민 누구도 억울함을 호소 할 수 없었고, 오히려 감시의 대상, 연좌제의 대상으로 숨죽이며 긴 세월을 보내야만 했다.
4·3 당시 제주도 전역에서 이와 비슷한 이유로 50명 이상 사망한 집단학살이 21건이나 토벌대에 의하여 자행 되었다고 한다. 북촌국민학교(299명), 함덕백사장 및 서우봉(281명), 정방폭포(235명), 표선백사장(234명), · · · · · ·.
(‘제주4·3사건 추가진상보고서’ 2020년, 제주4·3평화재단)
제주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얼핏얼핏 들었던 여러 4·3 이야기, 어린 마음에도 도저히 이해가 안됐던.
또 하나의 4·3 이야기 속 학살 현장에 있다는 생각에 탐방수업의 반가움보다 왠지 모를 슬픔이 몰려온다. 개인적으로 역사를 볼 때 원인을 생각해보고 그 시대를 이해하려는 성향이 있는데 4·3 이야기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사건이다. 단지 인간의 권력에 대한 탐욕과 동조하는 외부세력, 강제된 무관심만 있을 뿐이다.
현기영의 소설 ‘순이삼촌’은 강요된 침묵 속에 그동안 아무도 말하지 못했던 4·3을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한 작품이다. 북촌 주민대학살을 배경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그날의 참상을 알리게 된 계기가 되었다. 소설 ‘순이삼촌’은 좌·우 대립의 이야기가 아닌 인간의 삶, 공동체의 삶에 대한 이야기이다. 4·3을 겪지 않은 사람들도 공감과 고민하게 되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오페라로 제작되어 많은 이들에게 그 날의 기억을 전하고 있다.
제주에 태어나서 주변 분들에게 4·3 이야기를 듣고 자라 어느 정도는 4.3에 대하여 알고 있다는 자만과 슬픈 역사의 현장을 방문하는 것이 마음 내키지 않아 그동안 4.3 유적지를 방문해본 적이 없었다. 이번에 탐방후기 작성자라 부담이 많았다. 잘 쓰고 싶다는 욕심이 아니라 4·3에 대하여 써야 하는 부담이었다 . 4·3은 대한민국 현대사의 가장 아픈 지점이며, 우리의 하르방, 할망 그리고 동네 삼춘네, 괸당이 직접 겪은 비극이었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탐방후기 작성을 해야 했기에 사전에 인터넷이나 도서관에서 자료를 찾아보고, 또한 이번 현장 답사를 하면서 당시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분들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슬픈 제주역사도 알아야 할, 기억해야 할 우리의 역사임을 마음속에 새기게 되었다.
탐방후기를 쓰고 있는 순간 갑자기 모기가 나타나 윙윙 거린다. 어제 잠을 설치게 하여, 밤중에 일어나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던 모기가 2마리나 눈앞에 왔다 갔다 하는 것이다. 전기모기채를 휘둘러대니 지~직 소리와 함께 타는 냄새가 코끝을 간지럽힌다. 동시에 야릇한 쾌감이 느껴진다. 순간 ‘한 날 한 시에 300여 명을 죽인 토벌대들도 이와 비슷한 기분이었을까?’ 라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니 내가 괴물이 된 듯하다.
어떤 이에게는 4.3이 지겨운 얘기, 남의 얘기, 미래로 나아가는데 방해가 되는, 그래서 화해와 상생을 주장하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픔을 같이 느끼고 공유하고 기억하는 과정에서의 화해와 상생이 의미가 있고 미래로 나아가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끝으로 4.3에 대하여 고민하고 연구하신 선생님들의 책을 통하여 개인의 생각을 전하고자 합니다.
‘오히려 상당수 대중투쟁의 근본적 에너지가 된 것은 지역에 대한 사회적·정치적 차별이었으며, 그것 때문에 지역 엘리트들이 집단적인 투쟁에 참여하게 되었고, 다양한 신분의 인물들을 단일한 구호 아래 불러 모을 이념적 정당성이 되었다. 경제계급이나 사회신분보다 지역공동체 의식이야말로 지도부와 일반 참여자를 가릴 것 없이 집단적 정체성을 이루는 요소라고 할 수 있다. 4.3 등 항쟁사적 모습을 보아도 이념 분쟁을 뛰어넘어 저변에 흐르는 의식이 작용한다는 해석이 가능하며, 심연에 존재하는 자치적 의식, 외부세력에 대한 저항의식이 때로는 화산과 같이 표출될 수 있기 때문에 결코 무시할 수 없다. 박찬식 「4·3과 제주역사」
슬픈 제주
도올 김용옥
나는 슬픕니다. 내가 지금 여기에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슬픕니다. 여러분도 슬픕니다. 무언가 속 시원히 다 말할 수 없는 사연들이 우리의 머리를 헝클어트리고 가슴을 짓누릅니다.
제주는 슬픕니다. 제주는 슬픕니다. 지금 여기 누군가 일어나서 제주는 슬프지 않다고 말한다면 나는 외칩니다. 그대는 위선자! 그대는 진실을 외면하는 거짓말쟁이, 연기(緣起)의 굴레를 망각한 허구!
제주는 슬픕니다. 진실도 화해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다 둘러대는 말일 뿐. 존재하는 것은 오직 슬픔뿐입니다.
슬픔에는 이념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어떠한 이념적 상찬이나 폄하나 언어의 꾸밈이나 위로도 모두 제주를 자기 구미대로 말아먹고 싶어 하는 인간들의 장난에 지나지 않습니다. 슬픔은 그냥 슬픕니다. 영원히 슬픕니다. 그 기억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기억은 절대 자살하지 않습니다. 아라야식의 굴레 속에서라도 끝없이 자기생명을 유지합니다. 우리가 제주를 구원하는 유일한 길은, 슬픈 제주를 슬프지 않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그 슬픔에 동참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슬픔을 슬프게 느낄 때만이 그 슬픔은 정의로운 에너지를 분출합니다.
슬픈 제주는 알고 보면 우리 민족 전체의 모습입니다. 슬픈 제주는 외딴 섬의 이야기가 아니라 조선대륙 전체의 이야기입니다. 조선민족의 외세에 대한 항거, 관념적 폭력에 대한 저항, 분열획책에 대한 주체적 항변, 정치적·사회적 압제에 분연히 일어서는 민중의 항쟁, 이 모든 것이 제주라는 고립된 무대 위에서 극적으로 구현되어 왔습니다.
~후략~
제주 4·3 70주년 제주KBS에서 진행된 도올 김용옥 선생님의 강연 일부 내용입니다.
참고자료:
- 제주4·3평화재단 『제주4·3사건추가진상보고서Ⅰ』
- 현기영 『순이삼촌』 창비
- 박찬식 『4·3과 제주역사』 도서출판 각 Ltd.
- 김용옥 『우린 너무 몰랐다』 통나무
첫댓글 후기 잘 읽었읍니다
4.3이야기는 우리내 주변 삼춘들 이야기을 적절히 사용 공감가는 내용이라 어릴때부터 4. 3사건(항쟁)이라는 단어을 내용도모르면서 쉬쉬하며 솔작솔작하게 어른들의 하는말을 얼핏얼핏 들었던 생각을 교수님의 강의와 후기내용과 접목시켜 다시 꺼내어 느껴봅니다
고선생님, 후기 쓰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덕분에 복습과 역사에 대해 고찰하는 시간도 됩니다.
무거운 이야기를 잘 풀어내며 어릴 적 할머니의 이야기로 전개하는 글솜씨도 좋습니다.
4,3은 평화공원의 백비에 진정한 이름이 새길 수 있는 그날까지 우리들의 마음 속에 이름 하나씩 새기며 살아가야지 않을까요!
문화탐방에서 공부하는 맛이 진미예요~~
마치 이야기하듯 자연스럽게 후기를 쓰셨네요
지금은 4.3에 대해 지난아픔을 맘껏 이야기할수 있는 세상이 왔고, 정부에서도 적극적으로 역사를 규명하고 유족들에게 치유의 결과물을 드리려하는걸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우리의 끊임없는 관심과 행동이 함께되어야야 남은 부분도 잘 마무리 되리라 생각합니다
수고하셨어요 ~~
그날 교수님께서 들려주신 이야기와 고영건선생님의 개인적 경험과 감상이 곁들여지니 4.3 이야기가 더 깊이 와닿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아픈기억들을
어린시절추억과함께 잘써주셨네요
하루빨리 명확하게 진실이규명되어
상처입은분들의 한이풀렸으면
하는바램입니다 ~~~^.^
할머니와의 이야기가 참 재밋게 다가오네요
드라마 시나리오 짜듯 멋지게 후기를 구성하셨어요
여러 자료들은 그 깊이를 더해 줍니다.
수고하셨어요~^^
4.3사건을 단백하게 잘 읽었습니다.
제주와서 4,3사건을 처음 접했을 때의 내 심정을 도올 김용옥 선생님이 정확하게 표현해 주었네요.
"제주는 슬픕니다. 진실도 화해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다 둘러대는 말일 뿐. 존재하는 것은 오직 슬픔뿐입니다."
가슴이 찢어지는 듯이 먹먹하고 여길 가도 슬프고 저길 가도 슬프고...
그동안 절경이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으며 다녔던 곳이 4.3의 처참한 참변이 일어났던 곳이라니. 인정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아름다움과 처참함이 오버랩되면서 거의 1년동안 나는 괴로왔습니다.
캄보디아 킬링필드에 갔을 때 남의나라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그렇게도 애석해 하고 안타까와 했으면서 정작 우리나라에서 그런 처참한 참변이 있었다는 것을 몰랐다는 것이 너무 미안하고 후회스러웠습니다.
남의 나라에 가서 괜시리 감정낭비한 같아 자책하면서 결심했습니다.
슬프게 마음만 아파할 것이 아니라 그 모든 것을 이겨내고 살아온 제주인을 사랑하고 제주를 아끼고 잘 보존하자고.
아직도 다른 사람들에게 4.3사건 이야기는 꺼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치는 옳고 그름도 없고 오로지 니편 내편만 있기 때문에 괜히 분란을 일으킬까 염려 때문이겠죠.
가슴이 먹먹함을 느낍니다. 교수님 강의때도 그랬는데~~
제주인이면 결코 가벼운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일겁니다.
주위에 4.3이란 걸 잊고 싶어도 잊을수 없는 분들.
가슴속 한을 하소연 하고 싶어도 입다물고 살았던 우리 들이 부모님.할머니~~
슬픔에는 이념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과거에서 배우지 못한 사람은 과거를 되풀이 한다'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 추모현장에 새겨진 말이다.)
4.3 백비에 어떤이름을 새겨야 할지~ 수년 수십년이 지날지 모르지만 마음속에 자꾸 되새겨 봅니다..
수고 하셨습니다~~^^
후기에서 제대로 된 문제를 던지니 댓글도 활기를 띠네요. 엄청난 고민의 흔적이 줄줄이 나타나 있고, 그 고민을 잘 공유해 주셨습니다. 현기영 작가의 '순이삼촌'은 남이 하지 못한 비극의 역사를 백일천하에 드러내기도 했지만, 제주인이면서도 반은 타지 사람으로서 고향의 문제에 대면대면했던 작품 서술자처럼 4.3이 이렇게 저렇게 부담스러워지다가 결국에는 잊혀지는 것을 경계한 작품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고 선생님도 그런 고민을 하고 계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생각 깊은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