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6월 24일 2023 dsm여름 수련회를 참가하게 되었다. 저번 겨울 수련회는 참석하지 않아서 두 번째 수련회가 되었는데, 수련회를 가기 전 마음은 기대 반 걱정반이었다. 작년 여름 수련회를 참가하였을 때는 부분참이 어서 3일 차 때 나오게 되었는데 그때 당시를 회상해 보았을 떄 기도히가 꽤 힘들었던 기억이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전참을 하였기 때문에 마지막 기도회가 매우매우 걱정되었다. 너무 힘들지는 않을까 내 체력이 버틸 수 있을까 하는 걱정들이 있었다. 또 한편으로는 2학년이 되면서 달라진 마음가짐으로 참가하였기 때문에 얻어가는 것이 저번 수련회보다는 더욱더 풍성할 것이라는 생각 또한 들었다.
수련회 첫 번째 날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GBS 시간이었는데, 이번 GBS도 저번 여름 수련회와 같은 조장님을 만났었기 때문도 있지만, 그날은 하나님에 대한 내 오해가 어느 정도 풀렸던 시간이었다. 그날 GBS 주제가 하느님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는 내용에 관한 것이었는데 그것을 처음 들었을 때는 이렇게 무자비하신 분이 어째서 대체 사랑의 하나님이라 불릴 수 있는 것인가였다. 하나님이 아끼시는 독생자를 보내어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사랑이어도, 독생자를 보내 구원할 만큼 사랑하는 자신의 피조물들이 죄를 지었다고 멸망시키는 것이 과연 사랑인가 라는 의심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떻게 이런 분이 사랑의 하나님일까 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같은 조였던 전남대 류호성 지체장님께서 멸망시키기 전 이야기를 들려주셨는데 멸망 전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하나님이 얼마나 참으셨을까? 오죽했으면 멸망시켰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서 하나님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둘째 날에는 정말 많은 은혜를 받은 날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날 개인 일정 때문에 이종화 목사님 예배부터 듣게 되었는데, 기억에 남는 부분이 2개 정도 있었던 것 같다. 첫 번째는,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는 자 구원을 받으리라는 말씀에서 왜 자기 자신을 빼냐는 부분에서 정말 내 안의 무언가가 바뀌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하나님께 나아가고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나는 지금까지 죄를 많이 지어왔고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명의 길, 구원과는 어느 정도 멀리 떨어져 있다고 내 맘속 깊이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나늘 위하여 피를 흘리셔서 나를 구원하셨는데 구원을 이미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될 자격을 주셨는데 나가 내 스스로 나는 안될 거야라고 생각하는 것을 아시면 예수님께서 얼마나 슬퍼하고 계실까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고, 구원의 확신까진 아직 못 나아가더라도 확실히 전보다는 구원에 대한 소망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두 번째는, 최근 겪게 된 일로 인해 떠오르게 된 것인데 아동복지센터에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소위 선생님들에게 문제아라고 불리는 아이들을 집중적으로 감시(?)하는 업무를 맡게 되었는데, 산만하고 다른 친구들 괴롭히고, 수업하러 선생님들이 오시면 방해하는 아이들을 보며 사랑하고 보살펴야겠다는 마음이 생기기보다는 재는 왜 저럴까? 재가 어느 정도로 수업을 방해하거나 다른 친구들을 괴롭히면 내가 개입을 해야 할까? 어떻게 꾸짖어야 적당한 선을 지키면서 저 아이의 행동을 제지할 수 있을까만 생각을 하였다. 그런데 거의 끝 나갈 때쯤 센터에서 일하시는 분과 같이 밥을 가지러 가면서 그 친구가 학교에서 찍힌 낙인이라던가, 심리상담을 받는다던가 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이종화 목사님이 문제아였던 시절 자기를 계속 격려해 주면서 언젠가 하나님을 위해 큰일을 할 사람이다. 괜찮다. 라며 자신을 격려해 준 전도사님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 이야기를 듣고 저 아이게도 누군가가 전도사님과 같이 말해주고 용기를 준다면 어떗을까 라는 생각이 그 순간 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내일 볼 때는 그 아이게는 비난보다는 사랑을 줄 수 있도록 하나님께 그럴 수 있는 용기와 희망을 달라고 기도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수련회 둘째날 저녁 기도회 시간에는 저번 에켐에서 처럼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게 되었는데, 다슬 간사님의 조언도 있었지만 가장 중요했던 건 예수님이 나를 위해 죽으셨다는 것을 진정으로 믿음과 하나님은 항상 내 곁에 있으셨다는 것, 마지막으로 세상을 이겨내는 것에는 내 노력만으로는 온전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온전히 받아들이니 정말 엄청난 은혜를 부어주셨던 것 같다.
세 번쨰 날의 은혜는 산상수훈과 기도회 시간이었다. 산상수훈에서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하였는데, 성경을 보면 항상 힘들고 고난이 있는자, 혹은 가난한 자와 힘든자들만 복이 있다고 하는데 그러면 안 힘들고 평안을 얻는 사람은 대체 복이 없는 것일까라고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조장님께서 심령이 가난한 자는 심령이 가난하기 때문에 항상 하나님을 원하고 갈구하는 사람이라고 말씀을 해주셨는데 그렇게 말하니 그 전까지의 성경구절들이 이해가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단순히 가진자를 미워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더 원하고 찾고 갈구하는 자에게 복을 주시는 것이었는데 부자 보다는 주로 소외되고 가난한 사람들이 대부분 하나님을 의지하고 따랐기 때문이었다. 생각해보면 다윗 왕도 부유한 자였지만 하나님의 뜻을 항상 구하고 기도하는 자였기 때문에 복을 받았었던 것 같다. 그리고 세 번째 기도회떄 받은 은혜는 용서와 뜻 구하기 였다. 나에게는 정말 용서하지 못할 사람이 두명 있었는데, 돌이켜보면 그 사람들보다 내가 덜 죄인인 것도 아니고 똑같이 악한 죄인인데 그런 나를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아들을 보내 용서하시고 구원하려 하셨음을 알고 나니 내가 그들을 용서 못할 이유가 없었다. 평소에는 이름을 듣거나 생각만 해도 짜증나는 사람이었는데 하나님은 항상 나의 편에 서계시는 사람이고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나니 더 이상 화가 나거나 증오하지 않는 은혜를 얻게 되었다. 뜻 구하기에서는 다윗 왕이 전쟁에 나가기 전의 기도 내용에 관한 내용이었는데 보통의 사람들이 기도를 했다면 하나님 이기게 해주세요 적들이 무너지게 해 주세요 라고 기도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었는데, 다윗 왕의 기도는 하나님 맞서 싸워도 될까요 였다. 그 후 하나님의 싸우라고 명했고 다윗은 나가 승리를 거두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나는 하나님 무엇을 해주세요 라고 기도해 봤지 정작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는 하지 못하였다. 그리고 무언가 이루어주시지 않으시면 역시 하나님은 없어 혹은 날 싫어하신다고 생각을 했던 과거가 있었다. 하나님의 뜻이 먼저고 내가 원하는 것은 다음이 되었어야 했는데 그 순서가 반대로 되었었다. 하지만 이번 기도회를 통해 삶에서 하나님의 뜻을 먼저 구하는 삶의 중요성을 깨달았기에 더욱더 그 뜻을 구하는 삶을 살아가기글 소망한다.
네 번쨰 날에는 자리를 지키는 것도 기도임을 알았던 순간이었다. 네번쨰 날은 마지막 날이라는 생각과 수련회에서의 피로가 어느 정도 누적되어 상당히 피곤했고, 오늘 기도회가 새벽 2시 30까지 한다느 것을 보고 과연 잘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다. 그런 마음으로 기도를 해서인지 무언가 마음이 계속 뜨게 되고 기도를 하다가도 끊기고 셋째날만큼의 은혜는 못받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조장님께서 기도에 대한 생각에 관해 나누던 중에 자리를 지키는 것 또한 기도라고 생각한다라는 말씀이 기억나 자리를 지키려는 노력도 기도라 생각하여 수련회 자리를 지켰더니 다시 기도할 것들이 생각나고 또다시 생각나지 않는 상황에 빠지는 순간들이 반복되었다. 그렇게 나와의 싸움을 하는 중 어느새 기도회는 끝나있었고 그래도 못 버틸것 같은 시간을 도망가지 않고 지켜낸 것에 대한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이번 수련회는 하나님을 만난 후의 수련회이고 또 다시 한번 만난 수련회라는 점에서 정말 의미가 컸다.이번 수련회에서 예수님의 피 값으로 생명을 얻은 자로서 더 열심히 살고 일상 속에서 하나님을 찾으며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방학과 남은 학기를 보낼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