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금옥 동시집 <아기 공룡 길들이기> 발간***
--소금북 아이들 014--
❙변금옥
춘천에서 태어나 강원도 5개 시 ․ 군에서 초등교원으로 40년간 근무했습니다.
2022년 《시와소금》 신인문학상을 받고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지은 책으로 『또박또박 1막 11장』과 공저인 동시집 『동동동 동시 안녕』이 있습니다.
❙차례
제1부 하얀 새알이 동동
하얀 새알이 동동 ‥‥ 015/ 할머니와 우체통 ‥‥ 016/ 뻐꾸기 시계 ‥‥ 018/ 손빗 ‥‥ 020/ 중심 이동 ‥‥ 022/ 마음밭 ‥‥ 024/ 도전장 ‥‥ 026/ 봄날 풍경 ‥‥ 028/ 씨감자가 내 배 속에 ‥‥ 029/ 고라니 ‥‥ 030/ 할머니의 봄 단장 ‥‥ 033/ 홍시가 천천히 익는 건 ‥‥ 034/ 시가 뭐길래 ‥‥ 036/
제2부 지구를 굴리는 엄마
지구를 굴리는 엄마 ‥‥ 041/ 아~ 하세요 ‥‥ 042/ 집으로 가는 길 ‥‥ 044/ 예쁜 거짓말 ‥‥ 047/ 그 집 ‥‥ 048/ 속셈이 궁금해 ‥‥ 050/ 아기의 잠귀 ‥‥ 053/ 엄마의 충전기는 ‥‥ 054/ 닮았다 ‥‥ 056/ 거짓말은 매워 ‥‥ 059/ 지켜 본다는 것 ‥‥ 060/ 말 너머 마음이 ‥‥ 062/ 잠이 무서워 ‥‥ 063/
제3부 황새 한 마리가 훅
황새 한 마리가 훅 ‥‥ 067/ 백군과 천군 ‥‥ 068/ 아기 공룡 길들이기 ‥‥ 070/ 글쎄 난 모르지 ‥‥ 073/ 민들레의 사춘기 ‥‥ 074/ 그 애라는 묘약 ‥‥ 076/ 왜 그럴까 ‥‥ 077/ 합동작전 ‥‥ 079/ 나는 공이야 ‥‥ 080/ 내 말 좀 들어줘 ‥‥ 082/ 모르겠어 ‥‥ 083/ 새가슴 ‥‥ 085/ 달팽이가 되고 싶어 ‥‥ 086/
제4부 준비 운동은 마쳤는데
준비운동 마쳤는데 ‥‥ 091/ 처음은 어려워 ‥‥ 092/ 놀란 감자 ‥‥ 094/ 봄이 되니 ‥‥ 097/ 은행잎의 꿈 ‥‥ 098/ 꽃밥 ‥‥ 100/ 충전 중인 별 ‥‥ 103/ 외딴집 ‥‥ 104/ 구피의 오해 ‥‥ 106/ 어울림 ‥‥ 107/ 훈련은 나도 힘들어 ‥‥ 108/ 덤 ‥‥ 110/ 달이 되고 싶어요 ‥‥ 111/
작품해설 | 이화주
아기 공룡과 ‘동시라는 시소’ 함께 타기 ‥115/
❙ 작품해설
아기 공룡과 ‘동시라는 시소’ 함께 타기
이화주
(시인)
변금옥 시인은 춘천 호숫가에 사는 할머니 시인이다. 손주가 둘이다.
시인은 몇 년 전 계간 시 전문지 ‘시와소금’으로 등단했다. 『아기 공룡 길들이기』 동시집은 변금옥 시인의 첫 동시집이다.
시인의 가슴 속에는 아이가 산다. 나이를 먹지 않는 아이가 아니라 새로 태어난 손주 또래 아이다. 그래서 그 아이는 손주들과 동시라는 ‘시소 타기’ 놀이도 한다. ‘할머니 오늘도 동시랑 잘 놀았어?’ 유치원 다녀온 손주가 물으면 할머니 시인은 ‘옳다구나’ 하며 아기 공룡 같은 손주들과 ‘동시 시소’를 탄다. 오르락내리락 깔깔대며 동시 시소를 탄다. 동시집의 52편의 동시는 손주들과 ‘동시 시소 타기’ 놀이를 한 결과물이다.
시인의 유전자를 가진 두 손주처럼 동시집에서는 시인의 모습이 보인다. 나직나직 따뜻한 음성도 들린다. 시인의 가슴 속 철학도 보인다. 시인의 시를 이해하는데 특별한 독법이 필요치 않다. 쉽고 단순하고 간결하다. 할머니 무릎에서 듣는 이야기처럼. 시인의 시 소재도 특별한 것이 아니다. 할머니 텃밭의 채소들이 음식의 재료가 되듯, 손주와의 일상이, 가족의 매 순간이 시인의 시가 되었다. 변금옥 시인의 마음속에서 볶고 끓이고 조물조물 무쳐 태어난 시들이다.
시집 1부에서 3부까지의 동시가 모두 가족에 대한 동시다. 동시 편 편의 이미지가 모이는 핵심에는 집이 있다. 가족 사랑이 있다. 편 편마다 ‘삶으로서의 은유’가 있다.
―우주가 시작되는 곳 할머니의 무릎학교
할머니 무릎학교는 사라진 것인가. 아니다. 하나뿐이었던 내 편 엄마가 나를 서운하게 할 때, 쉴 수 있는 또 하나의 공간이다. 푸른 별 지구 같은 또 다른 나의 행성이 있음을 처음 알게 해주는 곳 할머니 무릎. 나와 엄마뿐이었던 나의 세상이 확장되는 순간이다. 그렇다. 할머니 무릎은 아이의 우주가 시작되는 첫 창이다. 첫 학교이다. 그 귀한 할머니 무릎학교는 폐교된 것일까? 아니다. 변금옥 시인의 시에는 할머니의 무릎학교가 살아 있다. ‘손빗’ 동시를 보자.
엄마한테 야단맞던 날
할머니는 낮은 목소리로
나를 부르셨다
무릎베개 만드시고
아무런 말씀 없이
손가락으로 내 머리카락을 쓸어내리셨다
한 번, 두 번……
쓸어내리시는 동안
헝클어진 머리카락이 다듬어지고
소올 솔 잠이 찾아왔다
무릎잠 푸욱 자고 나니
어느결에 슬펐던 내 마음마저
곱게 빗겨 놓으셨다.
-「손빗」 전문
할머니의 무릎학교에는 칠판도 책상도 책도 없다. 할머니의 무릎과 손가락빗이 전부다. 아무런 말 없이 그냥 손가락빗으로 헝클어진 머리칼을 빗겨주기만 한다. 그런데 엄마한테 야단맞은 설움도 눈 녹듯 사라지고 고요함이 찾아온다. 솔 솔솔 잠이 온다. 그렇다. 할머니의 무릎은 엄마의 무릎과는 또 다른 마음의 방이고 학교다. 나직나직 들려주는 이야기가 헝클어진 마음을 빗질해주고 살랑살랑 손부채가 먼먼 숲속나라에서 초록 바람을 데려오는 곳이다.
시 편 편에 흐르는 이미지와 메시지를 되짚어 올라가면 거기 할머니의 사랑이 있다. 시인은 ‘나’라는 존재의 방에서 처음으로 빼꼼 문을 열고 ‘너’라는 존재를 내다본다. ‘우리’라는 말의 따듯함을 알게 된다.
「봄날 풍경」을 보자. 봄볕 따스한 창가에서 화자는 할머니와 마주 앉아 손톱을 깎는다. ‘또깍 또깍’ 손톱 깎는 소리는 시계 초침 소리처럼 화자의 기억 속의 시간을 불러낸다. 화자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이제는’ 이란 말을 데려온다. 이 말이 품고 있는 의미를 스스로 깨친다. 나의 물리적인 성장과 내적인 성장의 시간을 함께 읽는다. 할머니의 무릎학교의 가치와 함께 시인이 말하고 싶은 것이 또 있다. 의도적인 교육을 하지 않더라도 문학은, 동시는 ‘창의’와 ‘인성’이란 교육의 기능을 내재하고 있다고.
내가 아기였을 때
할머니가 내 손톱 발톱
또깍 또깍
봄볕 따스한 창가에 마주 앉아
이제는 내가 할머니 손톱 발톱
또깍 또깍
-「봄날 풍경」 전문
엄마가 아프면
아빠도 나도
엄마가 된다
엄마는 혼자서도
엄마였는데
아빠와 나는 둘인데도
엄마가 못 된다
엄마가 아프면
갑자기 지구가 멈춘 것 같다.
-「지구를 굴리는 엄마」 전문
집은 하나의 작은 행성이다. 우주다. 집에서도 초록별 지구처럼 생명이 태어나고 자란다. 집을 굴리는 이는 엄마다. 그 엄마가 아플 때 집안의 기능이 멈춘다.
시인은 이 동시를 독자에게 어떻게 입체적으로 건네주고 있는가. 시 속으로 들어가 보자. 「지구를 굴리는 엄마」 이 짧은 동시에는 건너뛰기, 대조, 모순어법적 은유, 메시지 숨겨놓기 등 많은 기법이 숨어있다. 수사적 은유뿐이 아니라 ‘삶으로서의 은유’도 보여준다.
2연과 3연이 대구를 이루는 형태다. ‘엄마는 혼자서도/ 엄마였는데’, ‘아빠와 나는 둘인데도/ 엄마가 못 된다.’ 두 연은 대조를 이루며 엄마의 존재를 강화한다. 1연은 모순어법적인 은유다. 아빠와 나는 엄마가 될 수 없다. 그러나 누군가는 대체 엄마가 되어야 하는 상황이다. 1연에서 ‘아빠와 나는 엄마가 된다’고 했다. 그리고는 건너뛰어 3연에서 ‘아빠와 나는 둘인데도 엄마가 못 된다’고 했다. 시인은 왜 갑자기 건너뛰기를 했을까?. 아마 보편적인 상황이라 상상 속에서 어린 독자들은 채워 넣기를 할 것이다. 1연과 4연도 대구를 이룬다. 엄마가 아프면 아빠와 나는 엄마가 된다. 그러나 엄마가 아프면 지구가 멈춘 것 같다. 맥락적으로 재구성해볼 때 지구를 굴리는 사람은 엄마다. 어린 독자는 맥락과 제목과의 관계에서 이차적인 의미를 재구성해 낼 것이다. 집은 작은 지구이며 엄마는 지구를 굴리는 거인 같은 경이로운 존재라는 것을.
새로운 관계 맺기와 다르게 생각하기를 통해 사고의 폭을 넓혀주는 입체적인 시다.
시인은 「그 집」이란 동시에서 집을 짓는다. 꿈에서 집을 짓는다. 시인은 그 시를 쓸 무렵 정말 밤마다 집을 짓는 꿈을 꾸었다고 했다. 완성된 집은 언제나 그 집, 시인이 나고 자란 집이었다. 시인은 가족 간 심리적 거리감이 없던 그때 그 집을 복원하고 싶은 것이다. 시인은 손주들에게, 그 또래 독자들에게 그런 집을 복원해 주고 싶은 것이다. 그 집에는 「지구를 굴리는 엄마」가 있고 「엄마의 충전기」 아이들이 있다. 몸보다 먼저 마음이 도착해 있는 「집으로 가는 길」이 있다. 그 집에는 풀 뽑기에 지쳐 잠꼬대까지 하는 할아버지 대신 풀에게 도전장을 내는 손주가 있다. “얏! 덤벼라, 으라차차차!” 큰소리 지르며 밭으로 달려가는 손주가 있다.
어젯밤엔
“내가 졌다, 풀한테 졌어.”
잠꼬대까지 하셨다
고깟 풀이 어떻게
우리 할아버지를 이겼을까?
내가 도전해볼까?
“얏! 덤벼라, 으라차차차!”
큰소리 지르며 밭으로 달려간다.
-「도전장」 부분
―시를 살다
시인은 시인이 되기 전 이미 시인의 삶을 살고 있었다. 퇴임 후 한 학교 전교생보다도 많은 식물학교 교장 선생님이 되었다. 시인은 식물의 언어를 알아듣고 사랑을 나눠준다. 시인의 눈에는 집 앞 우체통이 우두커니 서 있는 노인처럼 보이고, 햇빛에 파랗게 된 감자가 장난꾸러기처럼 보인다. 예민한 감성은 스마트폰 카메라가 「덤」으로 데려온 아름다움도 놓치지 않는다. 봄이 가까워 쩡쩡 갈라지는 얼음 녹는 소리와 엄마가 보이면 더 소리 내어 우는 동생의 닮음에도 유추의 다리를 놓는다.
시인의 모든 시간과 모든 공간에서 시가 태어난다. 온 가족은 시인의 시적 대상이다.
‘시가 뭐길래’ 동시는 시인의 시 쓰기 태도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독자에게 웃음을 선물한다. 시인이 된 할머니는 시만 쓰신다. “놀자. 나랑 놀자” 놀아달라 조르는 손자에게 시인은 시 하나만 달라고 부탁한다. “준영아, 시 하나 다오./ 그럼, 내가 놀아줄게.// 시가 뭐길래/ 나와 놀아주지도 않고/ 시만 찾으실까?” 시인의 말에 반응하는 손자의 말이 바로 시다. ‘어린이의 모든 언어가 시이고, 어린이가 시인이다’라는 은유인 것이다.
우리 할머니
시인이 되더니 시만 쓰신다.
“할머니!
놀자.
나랑 놀자.”
“준영아, 시 하나 다오.
그럼, 내가 놀아줄게.”
시가 뭐길래
나와 놀아주지도 않고
시만 찾으실까?
시는
나를 참 심심하게 한다.
-「시가 뭐길래」 전문
동짓날 아침 할머니는 손주들을 깨운다. 대추나무 아래 참새가 낳은 새알을 주워 오라고 한다. 잠 덜 깬 아이들은 눈 비비며 새 알을 찾는다. 춥다. 손이 시리다. 시인 할머니는 왜 추운 아침 새알을 주워 오라 어린 손자들을 밖으로 내보냈을까? 대추나무 아래 새알을 찾으러 가는 대문 밖 여행은 손주들에게는 첫 탐험 여행이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 있는 보물을 찾아 떠나는 긴 항해의 시작, 인생의 첫 탐사 여행. 새알을 찾지 못하고 돌아오니 식탁 위 팥죽 두 그릇 그 속에 하얀 새알이 동동. 그렇다. 찾던 보물 하얀 새알은 이미 팥죽 속에 있었다. 시인의 손주들은 미래 어느 날 인생의 보물찾기에서 지쳐있을 때 뜨거운 팥죽 후후 불며 건져 먹던 동동 새하얀 새알심을 기억할 것이다. 따뜻한 가족을 생각하며 인생의 첫 탐사였던 시 같은 아침을 떠올리며 다시 항해할 준비를 할 것이다. 어린 시절의 정서적인 경험은 미래에 겪을 힘든 상황을 바꿀 수는 없어도 견딜 수 있게 해준다. 문학의 힘이다.
동짓날 아침
할머니가 나와 동생에게
새알을 주워오라고 깨운다
참새가 대추나무 밑에
알을 낳았다고?
졸린 눈 비비며 찾다가
손 호호 불며 그냥 왔더니
식탁 위에 팥죽 두 그릇
그 속에 하얀 새알이 동동
뜨거운 팥죽 후후 불며
새알심 건져 먹었다.
-「하얀 새알이 동동」 전문
―아기 공룡 길들이기는 발바닥에 편지 쓰기
겨우 맘마, 맘마 소리만 하고
세 걸음도 못 가 풀썩 넘어지는
첫 돌 막 지난 내 동생 준서
내 장난감을 뺏고는
얼굴 빨개지도록 놓지 않는다
과자 한 개 집어 먹었다고
쏜살같이 기어와
“크르릉, 크르릉!”
공룡 소리를 낸다
참다, 참다 주먹이 올라가려는데
“아기 공룡이 참 귀엽지?”
형은 역시 형이라며 할머니가 웃으신다
“으으으윽......”
아기 공룡 길들이기 검색해봐야겠다.
-「아기 공룡 길들이기」 전문
동생하고 싸운 날
정말 한방에서 자기 싫다
양보했던 위층 침대가
동생의 몸무게만큼
가슴을 누른다
동생도 불편한지
들썩거리다 다리 하나를 쓱 내려보낸다
모르는 척 돌아누우려다
동생 발바닥에 간질간질 간지럼 태웠다
동생이 키득키득
내 입에서도 쿡쿡 소리가 새어 나왔다
가슴에서 황새 한 마리가 훅 날아간다.
-「황새 한 마리가 훅」 전문
「황새 한 마리가 훅」과 「아기 공룡 길들이기」는 동심을 잘 담고 있는 시다. 두 손주의 생활 속의 한 장면을 그대로 옮겨놓았다. 어떤 미사여구도 감정의 보탬도 없다. 한 발짝 뒤에 물러서서 살짝 엿본 장면이다.
시 속 화자의 동생은 겨우 맘마, 맘마 소리만 할 수 있다. 세 걸음도 못 가 풀썩 넘어진다. 고 동생이 내 장난감을 뺏고는 얼굴 빨개지도록 놓지 않는다. 과자 한 개 집어 먹었다고 쏜살같이 기어와 “크르릉, 크르릉!” 공룡 소리를 낸다. 동생은 아직 나만 아는 존재다. 본능이 작용하여 내 것만을 지키는 존재다. 화자는 나를 넘어 너를 인식하는 아이다. 참다 참다 손이 올라가려는데 할머니가 ‘잠깐 멈춤’ 신호등을 켰다. “아기 공룡 귀엽지?” 화자는 “으으으윽……” “아기 공룡 길들이기 검색해봐야겠다”라고 말한다. 공룡에 가까운 본능이 앞서는 동생, 그래도 내 동생이다. 할머니의 신호등 앞에서 새롭게 판단하며 공룡 동생을 품어준다. 화자는 그냥 무조건 동생을 포용하는 것이 아니다. ‘아기 공룡 길들이기’를 연구하는 것이다. 짧은 영상을 본 듯한 동시다.
변금옥 시인의 손자 준영이는 어떤 방법으로 아기 공룡을 길들이나?
동생하고 싸운 날 정말 한방에서 자기 싫다. 이층 침대 동생에게 양보한 것도 후회된다. 가슴이 답답하다. 동생의 몸무게만큼 가슴을 누른다. 동생도 불편한지 뒤척인다. 침대가 들썩거린다. 이층 침대에서 다리 하나가 쓱 내려온다. 아니 다리 하나를 쓱 내려보낸다. 다리는 내려온 것이 아니라 편지를 보내듯 내려보낸 것이다. 모르는 척 돌아누우려다 멈춘다.
생각을 바꿔 동생 발바닥에 간질 잔질 간지럼을 태운다. 동생이 보낸 발바닥 편지에 답장을 쓰는 것이다. 드디어 동생이 키득키득 내 입에서도 쿡쿡 소리가 새어 나왔다. ‘가슴에서 황새 한 마리가 훅 날아간다.’ 이 동시의 백미는 바로 결구다. 가슴의 답답함이 싹 가셨다. 동생에 대한 미움도 사라졌다. 바람과 함께. 황새 한 마리가 훅 날아갔다. 시인의 아기 공룡 길들이기 방법이다. 은유가 빛난다. ‘삶으로서의’ 은유다.
―아기공룡과 ‘동시 시소’ 함께 타기
핵가족에 형제자매도 없이 혼자인 아이들은 심심하다. 요즘 아이들 입술에선 ‘놀아 줘’라는 말이 노래처럼 흘러나온다. 아이들에게는 노는 것이 바로 그들의 일이기 때문이다. 놀면서 삶의 방법과 규칙과 기쁨과 인내를 배운다. 혼자서 하는 놀이는 진정한 놀이가 아니다. 너와 내가 함께 즐거울 때 놀이가 되고 기쁨이 된다.
시인은 변화된 아이들 정서를 따라가며 동심의 균형점을 찾는다. 동시란 시소를 오르락내리락 함께 탄다. 「백군 천군」, 「내 말 좀 들어 줘」, 「거짓말은 매워」, 「민들레의 사춘기」, 「왜 그럴까」, 「글쎄 난 모르지」 동시에서 엿볼 수 있다.
화분에 물 주는 아침
솔 솔
솔 솔 솔
물뿌리개에서 물이 나오면
꽃들은 간지러워
도리도리하고
물을 주던 동생은
다리를 비비 꼰다.
나도 갑자기
‘쉬’가 하고 싶어진다.
-「왜 그럴까」 전문
솔솔 솔솔솔 물뿌리개에서 물이 나오는 걸 보면 동생은 다리를 비비 꼰다. 다리를 비비 꼬는 오줌이 마려운 동생을 보니 나도 갑자기 ‘쉬’가 하고 싶어진다. 아이들 심리적 특성을 잘 포착한 동시다. 시인은 평범한 일상에서 특별한 상황을 잘도 포착한다. 세심하고 예민한 관찰의 힘이기도 하지만 ‘물뿌리개’와 ‘쉬’의 외적인 특성과 내적인 특성을 유추한다. 심리적인 감정의 전이까지 잡아내는 것은 따뜻한 할머니 시인의 시선이 아닐까. 동생, 화자로 이어지는 감정이입은 서로 간의 감정적 유대가 크기 때문이다. 어린 독자는 친구 따라 우르르 우르르 화장실에 몰려가는 걸 떠올리며 배시시 웃을 것이다. 하품과 웃음이 전염되듯 감정은 전염된다. 감정이입을 잘하는 감성이 풍부한 아이의 귀여운 모습이 환히 보인다. 재밌다.
밤나무에
매미처럼 붙어서
찾을까 봐
두근두근
못 찾고 그냥 갈까 봐
조마조마
난 그냥
술래만 할래.
-「새가슴」 전문
새 학년 되어 반장 뽑는 날
짝꿍이 나까지 추천해서
후보는 모두 다섯 명이나 되었어
개표 시작과 함께
준영이 이름에는 바를 정(正)자가
자꾸만 그려지는데
내 이름 옆에는 오직 ㅜ 뿐
짝이 귀엣말로 소곤댔어
“너를 찍은 또 한 명은 누구지?”
“그-을쎄? 그건 난 모르지.”
대답하는 내 목소리가 살짝 떨렸어.
-「글쎄 난 모르지」 전문
「새가슴」과 「글쎄 난 모르지」 동시는 인간의 본성을 들여다볼 수 있는 동시다. 어린이도 성인과 똑같이 인정받고 싶은 욕구, 선택할 상황에 대한 갈등 등 다양한 감정을 느낀다.
새 학년이 되어 반장 선거에 후보로 나온 화자는 딱 두 표를 얻었다. 한 표는 짝이 준 표, 또 한 표가 궁금하다. 귀엣말로 “너를 찍은 또 한 명은 누구지?” 소곤대는 짝도 귀엽다. 시치미 딱 떼고 “그-을쎄? 그건 난 모르지.” 화자의 대답에 미소가 지어진다. 이 동시의 백미는 독자에게 살짝 열어놓은 결구다. ‘대답하는 내 목소리가 살짝 떨렸어.’ 솔직히 말할 수는 없지만, 화자 본인임을 암시한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수많은 ‘선택되어 질 상황’과 ‘선택해야 할 상황’에 놓인다. 갈등한다. 「새가슴」의 화자는 두 상황 모두 두근두근, 조마조마한다. 화자는 그런 가슴 조이는 상황을 피하고 싶다. 술래만 하고 싶다. 귀여운 결정이다. 이것도 또 하나의 선택이다. 매 순간 판단하고 선택하며 삶을 살아 나간다. 미래의 아이들에게 필요하고 중요한 능력이다. 누구는 숨는 역할만 하고 누구는 술래 역할만 한다면 놀이의 기능인 재미를 상실한다. 시인은 어린 독자를 동시에 잠시 머물게 하며 ‘그래도 될까?’라고 묻고 싶었던 건 아닐까.
동심을 간직한 시기 ‘아이의 시간’이 점점 단축되고 있다. 어른들은 모모에게서 시간을 빼앗아 가려던 회색 인간들처럼 아이들에게서 동심이 머무는 시간을 단축시키고 있다. 봄인가 하면 여름이 와있듯 애어른이 되는 아이들.
변금옥 시인은 왜 인생 2막에서 할 일로 ‘동시 쓰기’를 선택했을까? 영향을 미친 것은 그의 가슴 속 호수에 동동 아기 오리처럼 나타난 두 손주인가? 평생을 교육 현장에서 만났던 아이들인가? 시인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진화하는 세상에서 살아갈 두 손주와 고 또래 아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고민했을 것이다.
시인들은 ‘동시의 품은 넓다’라고 하지만 변금옥 시인은 주 독자를 한정한다. 두 손자와 또래 아이들이라고. 세심하게 관찰하고 물리적, 심리적으로 가까이 다가간다.
동시라는 시소의 정서적인 균형점을 찾고 오르락내리락 ‘동시 시소’를 타며 손주들의 말을 냉큼냉큼 받아 적는다. 시인은 시들이 태어난 건 손주들 덕분이라 한다.
변금옥 시인의 시 속으로 걸어 들어가 거닐어 본 내 생각에는 그렇지만은 않다. 내 생각에는 눈과 귀가 맑고 밝은 시인의 가슴 속에 사는 아이와 손주들의 ‘동시 시소’ 타기의 결과물이라고 생각한다.
변금옥 시인의 동시 안에서 오래오래 머물렀다. 시인의 문학에 대한 열정과 가족의 소중함에 대한 믿음과 철학을 만났다. 스쳐 지나갔던 시인만의 고유한 시의 매력도 빼꼼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아기 공룡 길들이기』 동시집에는 할머니 시인의 감성과 지혜, 작은 학교 할머니의 무릎, 지구를 굴리는 엄마 같은 가족의 소중한 가치, 공룡 같은 동생을 길들이며 ‘너’와 ‘우리’를 알아가는 손주들의 일상 등 변금옥 시인만이 건네줄 수 있는 시들이 빼곡하다.
시인의 삶에서 가치 있는 두 번째 과업으로 문학을, 동시를 선택한 것에 박수를 보낸다. 시인의 손주와 또래 아이들에 대한 믿음과 사랑으로 태어난 『아기 공룡 길들이기』의 출간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