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메이드 철학’ 지키는 배짱 CEO
“언제나 그러했듯 기회는 열려 있습니다. 특히 럭셔리 마켓은 지속적인 리듬을 갖고 성장 중이죠. 더욱 크리에이티브하게, 더 세밀하고 정교한 하이퀄리티의 패션을 지속적으로 반영하느냐가 중요한 키워드입니다. 곧 패션을 바라보는 진정성이 기업의 지속성장을 뒷받침할 것입니다.”
저가지향적인 패션마켓, 럭셔리 마켓을 불투명하게 바라보는 시선에 대한 질문에 마리오 필리피 코체타(Mario Filippi Coccetta 이하 마리오) 대표가 던진 말이다. 최근 급성장하고 있는 이탈리아 패션기업 파비아나필리피 s.p.a(Fabiana Filippi s.p.a)를 이끄는 마리오 대표가 내한했다.
국내 유통 관계자들, VIP 고객들을 대상으로 「파비아나필리피」의 2015년 S/S 컬렉션을 선보이기 위해서다. 깊이감이 느껴지는 눈매와 미소를 가진 그는 런웨이를 지켜보는 내내 사뭇 진지한 표정이다. 캐시미어 니트에서 출발해 성장한 「파비아나필리피」는 최근 새로운 소재 개발에 한창으로, 2015년 S/S 컬렉션은 특히 정교한 소재의 사용이 눈에 띈다.
장인정신 강조, 흔들림 없는 미래 경쟁력을
시어(Sheer)* 소재에 얹어진 플로럴 자수, 메시와 저지의 결합, 드레이프 실크 등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컬렉션이기에 그는 더욱 세심하게 패션쇼를 살피는 모습이다. 기계처럼 찍어 낸 듯한 옷이 패션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이 시대에 「파비아나필리피」의 고집스러운 소재 욕심은 눈에 띄지 않을 수 없다.
이 브랜드의 성장 행보는 더욱 눈길을 사로잡는다. 작년 이 브랜드는 전년대비 신장률 15%를 기록하며 812억원(6000만유로)의 매출을 올렸다. 국내외로 볼륨화를 시도한 2011년에는 무려 전년대비 35% 신장을 이끌어 냈다. 저가 볼륨 브랜드 대비 큰 폭은 아니지만 최근 럭셔리 마켓에서 보기 드문 수치다.
특히 한국을 포함해 중국과 일본에서 반응이 좋다. 국내에서는 지난 2010년부터 바바패션(회장 문인식)이 전개 중으로 총 10개점에서 20%의 신장폭을 유지하고 있다. 한동안 ‘잘 만든 옷’이 도외시된 트렌드 속에서도 「파비아나필리피」는 예사롭지 않은 성장곡선을 그려 왔다. 일본에는 2017년 안으로 플래그십 스토어를 오픈할 계획이다.
마리오 대표는 “디자인과 패턴, 소재의 차별화 고급화 정책으로 「파비아나필리피」만의 확고한 아이덴티티를 구축했습니다. 진정한 ‘메이드 인 이탈리아(made in Italy)’를 추구하는 것이 우리의 방향성이며 성장의 핵심요소”라며 단호하게 설명한다.
‘장인정신’이라는 단어에 시선을 고정, 단 한 번의 흔들림 없이 ‘메이드 인 이탈리아’를 고집해 온 것이 소비자들에게 통한 것이다. 마리오 대표는 중국 베트남 몽골 등 수많은 소싱처를 통해 원가를 절감하고 더 많은 이익을 추구할 수 있었지만 ‘소비자를 만족시키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말하는 배짱 있는 CEO다.
OEM에서 명품 브랜드 탄생, 소싱 강점으로
니트 생산업체(OEM)로 출발해 탄탄하게 다져진 생산과 소싱의 노하우가 이 회사를 뒷받침한다. 지난 1985년 마리오 대표가 친형인 자코모 필리피(현재 생산 · 물류 담당 디렉터)와 함께 설립한 생산회사가 이들의 출발이다. 두 형제는 당시 명품 패션 브랜드 「엠포리오아르마니」 「라스콰드라」와 협업하며 기업을 일으켰다. 당대 최고 명품 브랜드와의 협업은 퀄리티와 디자인의 중요성을 깨닫는 중요한 발판이 됐다.
마리오 대표는 “우리의 미션은 이탈리아의 DNA 가치를 이뤄 내는 것이다. 「파비아나필리피」 상품의 모든 디자인은 자체적으로 개발한다. 30년간 쌓아 온 R&D 및 생산 기술을 녹여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와 상품 책임자가 소재 봉제의 기술자, 즉 장인들과 소통하며 만들어 내는 결과물”이라고 말했다.
「파비아나필리피」는 상품기획부터 샘플, 생산까지 자체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이를 통해 상품이 출고되기까지 꼼꼼하고 철저한 공정과정을 거친다. 일부 신소재 개발에는 이탈리아 움브리아 주에 위치한 공장들 가운데 검증된 곳으로 생산만 아웃소싱하기도 한다.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경우에는 숙련된 장인들이 있는 곳에 정교한 작업을 맡기는 것이다.
30년 R&D 노하우 축적, 매 시즌 기술 향상
컬렉션에서는 더욱 크리에이티브함을 강조한다. 기존에 해 오던 틀에서 벗어나 아방가르드함을 추구한다. 이를 위해 매 시즌 소재부터 봉제까지 기술적인 진화가 이뤄진다. R&D에 대한 차별점이 소비자들에게 노인의 니트 브랜드가 아닌 젊고 세련된 브랜드로 인식되게 했다. 「파비아나필리피」가 「브루넬로쿠치넬리」 「로로피아나」 「말로」 등의 선발 브랜드를 바짝 추격할 수 있었던 요인이다.
빠르고 탄탄하게 회사를 운영해 온 배경에는 마리오 대표 자신에 대한 철저한 관리가 있다. 마리오 대표는 지난 30년간 잘 만든 옷을 위해 아주 작은 디테일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이를테면 친환경적인 생산과정, 직원들의 근로환경까지 옷을 둘러싼 모든 것이 ‘웰메이드 철학’에 해당한다. 이러한 습관은 회사의 전 직원과 장인들에게까지 전달됐다.
더불어 이탈리아 기업 문화인 ‘패밀리 경영’은 마리오 대표에게 자신감과 흔들리지 않는 근간을 전달한다. ‘패밀리 경영’으로 인해 기업이 무너지는 경우도 있지만 마리오와 그의 가족은 완벽한 시너지를 내고 있다.
형제와 조카 가족경영, DNA 지키는 힘 된다
형인 자코모 필리피는 「파비아나필리피」의 강점인 생산과 물류를 핸들링하며 브랜드를 견고하게 다지는 역할을 한다. 또 자코모 필리피의 딸이자 마리오의 조카인 파비아나 필리피는 상품에 영한 감성을 불어넣는다. 「파비아나필리피」 자체가 조카의 풀네임을 따 온 것이고, 그녀가 태어난 해에 론칭했기에 의미가 깊다. 마리오 대표는 전체적인 경영과 커뮤니케이션 마케팅으로 추진력 있게 회사를 이끌어 간다.
마리오 대표는 “가족 경영에 대해 굉장한 프라이드가 있습니다. 처음부터 전 과정을 함께 발전시켰기 때문에 기업, 브랜드의 아이덴티티와 DNA에 대해 진실하게 이야기할 수 있죠. 「파비아나필리피」는 현재 30개국에 브랜드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이 시점에서는 인수 · 합병을 통해 더 빨리 성장하는 방법도 있겠죠.
하지만 빠르게 성장한 만큼 진정한 DNA를 잃어버릴 가능성이 큽니다. 「파비아나필리피」는 우리만의 가치를 부여하며 탄탄하게 성장할 것입니다. 초두에 이야기했듯 ‘진정성’이라는 핵심 가치는 기회를 열 수 있는 키가 됩니다”라고 설명했다.
**패션비즈 1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