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행수기
뚜벅뚜벅 걸어가노라면
명여성 이경숙
보현행원으로 보리 이루리
2월을 닫고 3월을 열었다. 층층이 땅 밑에서 물관을 끌어올리는 나무가 보인다. 땅이 얼어붙은 긴 겨울 동안 추위를 견뎌내고 생장을 멈추지 않았다. 머지않아 나무는 새잎을 틔우고 가지를 뻗을 거란 희망을 주는 그림이다. 봄비가 내리고 꽃샘바람이 불어오고 다시 또 비가 내리는 날씨가 이어진다. 계절은 앞당겨 봄을 선물한다. 산수유, 개나리는 봄, 하고 입술을 내밀고 목련이 활짝 웃음꽃을 피웠다. 거대한 몸집을 자랑하는 왕벚나무는 꽃망울을 튀겨낸 듯 가지마다 팝콘을 달고 있는 풍경이다.
창가의 햇살이 블라인드를 열고 얼굴을 들이민다.
내가 사는/ 골방에 / 햇살 한 줌 / 찾아와 / 발을 / 담그면 // 모서리에 웅크린 / 검은 고양이 방을 빠져나가네 // 나는 빈 그릇 가져와 / 햇살 한 줌 주워 담는다
(졸시 ‘햇살 한 줌’ 전문)
한 알의 씨앗이 토양, 공기, 햇빛, 빗물을 만나 성장해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우리의 마음에 있는 씨앗이 누군가의 도움으로 성장하고 인연을 맺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는 우리들의 몫이고 숙제이기도 하다.
“불교에 있어 기도란 부처님의 크신 위신력이 나와 함께 있어서 나를 통해 크신 위신력이 넘쳐나도록 하는 것입니다”( ‘불기 2567년 3월 달력’에서 )
광자 덕자 큰스님의 어록을 읊조린다.
1990년대 초 용인에 있는 관음사 점안식에 큰스님이 오셨다. 법좌에 오르신 큰스님께서는 우렁찬 목소리로 ‘놓아라’라는 말씀을 세 번 하셨다. 그 목소리엔 힘이 있었고 울림이 있었다. 나는 온몸에 전율을 느꼈다. 그때의 감동은 오랫동안 기억의 창고에 저장되었다. 가끔 돌아보며 큰스님의 모습을 회상하였다. 그때의 인연이 나를 바꿔놓는 계기가 될 줄은 그때는 전혀 예상되지 못했다,
물어물어 처음 불광사에 온 날이 3월 호법 날이었다. 법회 말미에 보살님들이 서로 마주 보며 ‘마하반야바라밀 보현행원으로 보리 이루리’라고 인사를 했다. 이 인사는 생소했고 왜? 라는 물음표를 던지고 화두가 되었다.
호법 발원을 하고 며칠 뒤, 5층 대웅전에서 사자가 튀어나왔다. 나는 사자에게 잡히지 않으려고 막 뛰었다. 돌아보면 사자는 머리털을 휘날리며 필사적으로 쫓아오고 있었다. 대웅전 주위를 몇 바퀴를 돌았는지 모른다. 헐레벌떡거리다 깨어보니 꿈이었다. 휴, 꿈이었구나 다행이다. 숨을 몰아쉬었다. 꿈이 얼마나 생소한지 지금도 선명하다. 기이한 일이라 누구에게 말하지 않았다. 코끼리는 보현보살님이 타고 문수보살님은 사자를 타고 앉아 있는 석상을 보고 나서야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보현보살님은 행원을 상징하고 문수보살님은 지혜를 상징한다고 들었다. 아이들이 학생이라 공부를 잘했으면 하는 마음에 지혜를 발원하며 기도하였던 때문이 아닐까, 그런 내 기도가 전달 된 것일까 그렇다면 좋은 일이라고 미루어 짐작했다.
입문 교육을 받을 때이다. 지환 스님은 보현행자의 서원을 매일 독송하고 금강경 사구게를 일곱 번씩 쓰라고 숙제를 내주셨다. 나와 같은 초심자들은 눈을 반짝거리고 숨소리도 죽여가며 수업하였다. 불교의 궁극적인 목표는 이고득락離苦得樂이다. 거기까지 가려면 사성제, 즉 고성제, 집성제, 멸성제, 도성제의 진리를 깨달아야 한다. 깨달음을 이루기 위해서는 팔정도의 수행을 해야 한다.
팔정도는 정견, 정사유, 정어, 정업, 정명, 정정진, 정념, 정정을 말한다. 이는 불자로서 지켜야 할 생활 규범이고 일반인도 지켜 나아가야 할 지침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만 한다면 세상이 덜 시끄럽고 평화로운 세상이 될 것이다. 선인선과, 악인악과, 인연과 과보에 대해서도 일깨워주는 대목이다. 깨달음은 어디 먼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활 속에 스며있는 것이다. 사물을 바라볼 때 어디 한 쪽에 치우치지 않고 바르게 보고 바른 견해를 갖는 것이 중도이고 지혜이다. 그렇다면 바르게 생활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불자가 지향해 가야할 목표라고 생각했다.
당시에는 지장재일 전날과 관음재일 전날 철야기도를 했다. 지장재일 철야기도 때에는 츰부다라니를 독송하고 관음재일 철야기도 때에는 신묘장구대다라니 주력을 했다. 츰부다라니는 발음이 어려워 입에 잘 붙지 않았다. 밤새 염불하고 나서 새벽 예불까지 하고나면 날은 훤히 밝아오고 있었다. 기도 공덕으로 우리 식구가 무탈하기를 기원했다.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는 순간이 좋았다. 내 마음이 밝아지는 것을 느꼈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봄부터 소쩍새가 우는가보다는 서정주 시인의 시가 가슴에 와 닿는다. 절묘하다.
그해 초겨울 수계법회에서 오계를 받고 명여성明如惺이라는 법명을 받았다. 불가의 호적에 출생 신고한 날이다. 보살님들이 안겨주는 꽃다발, 덕담이 큰 힘이 되었다.
몽중가피夢中加被를 입다
“…… 불법은 한 번 마음에 씨를 내리면 결코 썩지 않고 있다가 반드시 싹을 틔웁니다. 들을 때는 별다른 감동이 없다가도 언젠가 그 연이 숙熟하면 다시 고개를 들고 일어나서 허망한 온갖 것을 불태우고 한 물건도 없는 청정계로 자기를 이끄는 구실을 하는 때도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앞의 사례처럼 몽중에 문제를 풀기도 하고, 옛 스님 중에는 오래전에 들었던 법문이 별안간 떠올라 꿈에서도 깨어나 계속 의심을 해서 마침내 도를 깨치셨다는 분도 계십니다” ( 광덕 스님 전집 제2권 법어편 1980년 법어 중에서)
봉은사 법왕루에서 무비스님의 번역본 화엄경 입법계품을 공부하는 첫날이다. 앞에는 스님들이 계셨고 스님 뒤로 재가자들이 앉아 있었다. 스님들과 한 공간에서 같은 교재로 공부하는 일은 처음 겪는 일이라 마음이 설레었다. 그런데 이 장면은 몇 달 전에 어디서 본 보습이 아니었던가, 화엄경을 공부하며 리포트를 쓰다 잠든 때가 많았다. 그때 꿈속에서 보았던 광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 흰옷 입은 비구들이 금빛 의자를 밀고 있어요. 뒷모습만 보여요. 오색구름이 뭉게뭉게 피어나는 구름 속으로 수레가 미끄러지듯 가고 있어요. 따라 가보니 안개꽃이 피었어요.
풀밭에서는 사슴과 캥거루가 뛰어놀고 이어달리기를 하는 듯, 한 줄로 달려가는 풍경이 동화의 나라로 들어간 것 같아요.
“어머니 여기가 어디에요?”
여기는 우주의 한 가운데이고 낙원이라고 말했어요. 그동안 어머니가 보고 싶다고 얘기했어요. 보고 싶으면 언제든지 볼 수 있고 생각하는 대로 이루어진다고 말했어요.
……
“얘야 모든 것은 꿈幻.이며 물거품이며 그림자와 같느니라”
홀연히 사라지는 어머니, 빛의 세상에서 어머니의 하얀 치마폭이 빨려들어갔어요.
( 졸시 ‘양자물리학’ 일부분)
월·화·수·목요일 나흘을 공부하여 일주일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게 달려갔다. 법사스님은 해인사 강주를 하셨던 각성스님이었다. 모든 경전에 통달하시고 해박하셨다. 누구나 이해하기 쉽게 말씀하셔서 몰입하면서 들었다. 유익하고 뜻 깊은 강의를 들을 수 있는 기회였다.
입법계품은 선재동자가 53명의 선지식을 찾아다니고 마지막으로 보현보살을 만나 보현보살의 십대원을 듣는다. 우리도 선재동자가 되어 선지식을 만나 법을 구하고 보현보살의 행원을 실천하는 보현행자의 모습으로 살아가야 함을 일깨워주는 대목이다.
옛 어른 스님들의 일화나 원효 스님과 의상 스님의 수행은 감동으로 다가왔다. 원효스님과 요석공주의 일화, 중국에서 공부하신 의상 스님의 법성게가 탄생하게 된 유래를 전해 들었다. 영주 부석사에 얽혀있는 이야기는 전설처럼 흥미 있는 이야기이다.
큰스님 입적하신 날 새벽 일찍 잠이 깨었다. 전날 이모님 집에서 자고 난 다음 날이다. 그날이 50일 기도 회향하는 날이라 절에 가야 한다고 집을 나섰다. 우리 구가 영단에 제물을 올리는 날이다. 큰스님 돌아가셨다는 딸의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믿어지지 않았다.
절에 와서 국화에 둘러쌓인 영정을 보고 눈물이 났다. 밤을 지새운 보살님들은 눈이 퉁퉁 부어있었다. 불광사의 분위기는 매우 침통했다. 편찮으시더라도 오래 오래 불광을 지켜주실 줄 알았던 신도들에게는 청천벽력과 같은 일이다.
입적하신 날 새벽 꿈속도 매우 이례적이다.
본가에 갔었네 / 들에도 장독 위에도 / 눈이 하얗게 쌓였네 // 눈에 덮인 평상 위에 / 어머님 이 앉아있네 / 소복을 입고 // 눈길도 주지 않고 / 아무 말이 없었네 //
(졸시 ‘소복’ 전문 )
…… / 무명에서 헤메는 중생을 / 일으켜 부축하고 / 앞서가는 큰스님 / 그 뒤를 따라가리다 / 빛으로 돌아오소서! //
(졸시 ‘뒷모습’ 일부분 )
배움의 길
불광법회에서는 주마다 다른 스님과 법사님이 오셨다. 무진장 스님께서는 부처님의 팔만사천법문이 방편으로 이루어졌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 유마경을 법문해주신 스님, 정병조 교수가 주기적으로 법문을 했다. 호법 법회에 혜담 스님께서는 마하반야바라밀 법문을 하셨고 한탑 스님께서는 마하반야바라밀 염송을 강조하였다. 법문을 듣기 위해서 법회에 빠지지 않았고 교육을 받기 위해 동산불교대학과 불광대학에 병행해서 동참했다. 저마다 경전이 최고라는 말씀에 의문이 들고 공부에 몰두하고 싶었다. 자꾸 잡념이 들고 정신이 도망가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서였고 허술한 틈을 내주기가 싫었다. 같이 공부하는 거사님이 헷갈리지 않느냐고 물었다. 어느 부분을 들어도 부처님의 말씀이라 중복되는 부분은 복습이 된다고 말했다. 이때 공부를 가장 열심히 했었다. 책을 읽거나 리포트를 쓸 때 꿈속에서 옆에 스님이 앉아계셨다. 부처님께서 나를 지켜주신다는 믿음이 들었다.
어떤 도반은 바쁜 중에도 겨우 짬을 내어 공부하러 오는 분이 있었다. 그 열의가 대단해서 경의를 표하고 싶었다. 현직에서 물러나면 포교당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새싹이 가랑비를 맞으며 자라는 모습을 보듯이 조금씩 성장해가는 감이 왔다. 사물을 바라보는 눈높이가 깊어지고 넓어진다는 생각이다. 성지 순례를 하면서 가람의 배치를 눈여겨보았다. 고찰을 가보면 절 앞에 개울이 있었다. 대부분 다리를 건너가게 되어 있다. 이는 몸과 마음을 씻으라는 의미라고 생각했다. 불광사는 도심에 있지만 옆에 석촌호수가 있어 가람 배치에 걸맞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세심정을 지나 일주문, 문지기 사천왕이 있는 계단을 올라가면 탑이 있고 문수전 관음전 지장전 그리고 끝에는 대웅전이나 대적광전 대웅보전 등이 있다. 화엄 세계를 보는 것 같았다.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는 것이 개달음을 향해가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가람을 한 바퀴 도는 것만으로도 공부요, 수행이라는 생각에 성지 순례를 자주 가게 되었고 사찰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를 듣고 찾아보는 재미도 좋았다.
최근에 불거진 사찰 통행료의 시비는 안타까운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방문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전법이고 포교의 길이라 생각한다. 비록 법당에는 안 들어가고 지나가기만 해도 부처님의 성지를 방문하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기억은 한번 뇌리에 스쳐가지만 해도 입력이 되어 훗날 사찰을 다시 찾기도 하면서 인연을 맺을 수도 있다.
불광사 유치원 교실에는 화락천, 도솔천, 타화자재천 등으로 명패를 달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큰스님께서는 불광사 불광법회의 가람을 화엄세계로 생각하셨던 것 같았다.
20여년 전 불광사에서 열 가지 수행에 관해서 수업을 진행한 적이 있었다. 주력, 절, 기도, 참선, 사경 등 그 방면에서 정진한 스님들을 모시고 공부했다. 그중 이백 분 부처님의 명호를부르면서 쓰고 절을 하는 과정을 수업 시간에 진행했다. 그때 지도한 분이 직지사 스님이었다. 나는 절을 두 번 하였다. 왠지 그러고 싶었다. 그렇게 하고 나니 온몸이 땀으로 젖어 있었다. 버스를 타고 집에 가는데 창밖에 보이는 사람들이 다 부처님으로 보였다. 내가 공경해야 할 대상으로 보였고 섬겨야 할 분으로 보였다. 마음이 너무 기쁘고 행복했다. 그런 기분은 처음 느껴보는 기분이고 일주일간 지속되었다. 스님들께서 행복하다고 하신 말이 공감이 된 때였다.
악몽에 시달릴 때도 있었다. 그때마다 마하반야바라밀을 불렀다. 잠이 깨고 나서도 ’마하반야바라밀‘을 크게 염송하고 있었다.
딸의 혼사를 앞두고 한동안 놓아버린 금강경 사경을 시작했다. 경에서는 무아를 강조한다. 어떤 사람이 사람들에게 업신여김을 당하게 되더라도 선세죄업으로 악도에 떨어질 것이나 사람들에게 업신여김으로 마땅히 아뇩다라삼보리를 깨닫게 된다는 구절이 좋았다. 용기를 북돋아 주는 구절이다. 딸의 혼사가 무탈하게 이루어지고 순탄하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이를 계기로 내 마음에서 물질에 대한 집착이 없어졌음을 느꼈다. 딸이 시댁에 인사를 하고 다녀온 후 두툼한 봉투를 받아 왔다. 패물이나 명품 가방과 구두, 옷과 화장품 등 새것을 장만하라는 말을 전했다. 안사돈께서는 엄마와 같이 편하게 다니라고 배려해준 마음이었다. 딸이 받아온 돈을 돌려드리자고 제안했다. 딸과 사위는 아쉬워했다. 지금까지 키워주고 공부시켜준 은혜만으로 충분하다. 부모님의 노후 자금으로 드리고, 생일이나 결혼기념일에 선물을 주고받는 것이 더 의미가 있다고 설득했다. 반은 수용하고 반은 자기들 의사대로 한 것으로 기억한다. 아마 지금 그 상황이라도 그때와 똑같은 마음이다.
무소유란 소유를 안 하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물건을 소유하지 않는 일이다.
딸은 불광사 어린이법회 연꽃교사로서 봉사하였다. 착하고 성실한 청년을 만나서 결혼하고 첫아이 낳기 전까지 팔년 동안 봉사했다.
수행과 봉사
불광법회의 신도들은 여러 곳에서 봉사한다. 소방서나 병원 요양원, 궂은일도 솔선수범으로 했다. 책을 좋아하는 나는 도서실을 택했다. 도서실엔 큰스님의 손때가 묻은 경전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 앞에 서면 마음이 숙연해졌다. 법문 테이프도 있고 법정스님, 성철스님의 책, 여러 교수들의 경전 해설서와 수필 등이 있다. 많은 책을 접할 수 있었고 책을 좋아하는 불자들과 법담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좋은 시설, 많은 책들이 있었지만 이용하는 분들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생각보다 불자들이 책을 별로 안 읽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교대학원 졸업 즈음 원장 스님은 졸업 후에 어떻게 대중에게 회향할 것인지에 대해 과제를 내주었다.
우리 팀은 안내 봉사를 기획하고 주지스님께 기안서를 올렸다. 면담을 하고 현관 앞에 마련된 부스에서 봉사를 시작하였다. 대개 절에 처음 오시는 분들은 무언가 절실함이 있어서 찾아오는 분이 많았다. 집안에 어려운 일을 겪거나 해결하기 힘든 부분을 안고 오시는 분이 있었다. 때로는 무속인에게 물어보듯 스님들께 물으러 오는 분도 있었다. 안내팀 보살님들은 불교대학원 과정을 마치고 오랫동안 수행하신 분들이라 웬만한 질문은 답을 해드릴 수 있었다. 불교를 공부하고 싶은 분들은 교육원으로, 사십구재나 천도재, 기제사를 지내려는 분들은 종무소로 안내하였다. 무엇보다 친절하게 대하는 걸 잊지 않았다. 이 인연 공덕으로 부처님을 올바르게 믿게 되기를 발원했다. 그분들이 행복해지기를 기원했다.
강원도 바다에서 사고로 외아들을 잃어버린 거사님과 보살님의 사연은 지금도 가슴이 아프다. 청년은 부모님에게는 하나밖에 없는 자식이었고 착하고 성실한 직장인이었다. 여름 휴가철에 여행 갔다가 변을 당하였다. 거사님의 고향이 북한이라 친척이 없어 두 분만 재를 지냈다. 우리 봉사자들은 돌아가면서 재에 참석하였다. 보살님의 애끓는 울음은 애간장을 녹였다.
이런저런 계기로 만나본 초심자들이 부처님의 가피를 입고 행복해지기를 기원했다. 부처님과의 인연 공덕을 쌓아가는 일이기에 성심껏 임했다. 초심자들을 안내해주는 동안 봉사자들의 수행은 깊어지고 나 또한 성숙 되어가고 있음을 알았다. 봉사가 곧 수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느 날 지인이 동영상을 보내왔다. 재미있는 영상이다.
검은 고양이가 새를 만지고 핥아주는데, 새는
싫은 내색 없이 고양이의 애무를 받아준다
강아지와 오리, 닭이 술래잡기를 하고
고양이가 노란 병아리를 품에 안는다
제 몸의 온기로 채워주자 병아리는 어미의 품속인양,
개에게도 불성이 있는지, 조주스님께 물었다
……
붓다는 일체중생이 실유불성이라 했거늘,
인드라망 그물코에 걸린 구슬이 빛을 쏘아 보내고
그 빛이 다시 다른 그물코 구슬에 비추어 빛을 되쏘아
중중무진 법계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시시각각으로 비춰주는
손바닥 경전
또 묻는다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졸시 ‘손바닥 경전’ 일부분)
불광연구원에서 큰스님 법문 녹취록을 문집으로 편찬한다는 내용과 봉사자를 모집한다는 공지가 주보에 올라왔다. 큰스님의 육성을 생생하게 들을 수 있는 기회인데 어찌 마다하겠는가, 녹취록을 들으면서 글로 옮기는 워드 작업을 했다. 큰스님께서는 호법 법문과 행사 때 하시는 법문이 달랐다. 그때마다 시의적절하고 대상과 환경에 맞게 말씀하셨다. 대기설법이었다.
“…… 금생에서 부부가 된다는 사실이 지금 이제 새로이 시작된 것이 아니라 과거에 이뤄진 인연이 오늘에 드러났다는 사실을 꼭 가슴속에 새겨주십시오. 그런 까닭에 금생이나 지금부터 생기는 어떠한 사유로도 두 분이 헤어질 수 없는 이유가 될 수 없습니다. 과거 묵은 숙연이 익어서 이제 새로이 출발하는 것입니다.
……
가정이야말로 가장 행복하고 가장 덕스럽고 가장 큰 힘이 나오는 근원이라는 말입니다. 두 분이 이제는 한 몸입니다. 부모님의 말씀을 들을 때도 한 몸으로 듣고 마음에 두고 행하기를 바랍니다. 그런 까닭에 설사 약간의 불안이 있거나 고통스러움이 있거나 어려움이 있어도 앞에 닥쳐올 괴로움이나 어려움이라는 것을 극복할 수 있는 벽이 결코 아닙니다.”
(광덕스님 전집 2권 법어편 ‘1971년 결혼식 주례사’ 중에서)
큰스님의 말씀은 힘이 넘쳐나고 확신에 차 있는 법문이다. 이런 주례사를 들은 부부는 평생을 잘 살아오셨을 거라 믿는다. 간곡하게 부탁하시는 말씀을 되새기면서 어려움을 극복하고 행복한 삶을 살았을 거라고 믿고 싶다.
불교는 중생을 이롭게 하는 데에 방점을 둔다. 요익중생饒益衆生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요즘 종단에서는 성불보다 전법이라고 강조한다. 1970년대부터 전법을 강조하셨던 큰스님께서는 시대를 앞서가는 탁월한 선지식이다.
내 생애에서 큰스님을 뵙게 된 것은 행운이다.
우리나라의 문화유적은 칠,팔할이 불교문화 유산이다.
프랑스 국립도서관이 전시하는 ‘직지심체요절’은 구텐베르크가 펴낸 인쇄물보다 팔십년이나 앞섰다. 불교계에서도 아주 중요한 보물인데 프랑스에서 보관하고 있어 매우 안타깝다. 사찰에 있는 불상, 탱화 탑, 범종, 법고 어느 것 하나 보물이 아닌 것이 없다. 훼손되는 것을 볼 때 자괴감을 느낀다.
용산 국립박물관에 미륵보살님 두 분이 나투셨다 / 반쯤 감은 두 눈 / 손가락으로 뺨을 괴고 /
반가부좌로 지내 온 시간이 무량하다 // 새벽을 깨우는 범종 소리 / 서서히 일어나 / 상의 옷자 락 이슬 적시며 잠행에 나선다 / 키보다 높이 쌓은 빈 상자 더미를 끌고 가는 / 노인의 굽은 등 너머 / 입마개로 입을 가리어도, 눈도 막고 귀를 막아도 / 저잣거리는 여전히 떠들썩하다 //
몸부림치는 청춘이 거리를 뛰어다닌다 / 무겁게 가라앉은 먼지가 어깨 위에 쌓인다 / 스치는 /
인연들은 시공을 벗어나고 / 속세에 물든 목소리는 자신의 흔적을 세운다 // 안에 있으나 밖에 있으나 / 어깨에 걸친 옷 주름 사이로 / 세상의 소란이 스며든다 // 구름 낀 저녁 / 근심 가득 찬 두 얼굴이 / 사유의 방으로 들어선다 // 반가부좌의 자세로 숨을 고른다 / 삼라만상 모든 것 은 어디로 흘러가는가 // 한 줄기 빛이 새어나온다
( 졸시 ‘사유의 방’ 전문 )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은 알려졌어도 미륵보살 반가사유상‘ 78호와 83호 두 분의 조각상을 알고 또 보신 분들은 얼마나 될까, 전시회에 가보니 젊은이들은 있는데 나이 든 분들은 보이지 않았다. 미륵보살님 두 분의 모습은 신비하고 오묘하다. 대중을 위해 고뇌하는 부처님을 보았다. 용산에서 전시하는 예술품은 거의 불교문화이다. 관심을 갖고 찾아가서 감상하는 시간을 갖는 것도 뜻 깊은 일이다. 널리 알리고 보존하여 후손에게 물려주어야할 보물이다.
부처님은 늘 우리와 함께 하신다. 우리가 아프면 어루만져주고 우리가 기뻐하면 같이 기뻐하신다. 그 명호가 아미타부처님, 석가모니부처님, 미륵부처님 역할이 다르게 표현되어도 부처님은 한 분이시다. 어떤 명호를 부르던지 내가 얼마만큼 절실하게 간절하게 소원을 빌고 구하는 데에 있다고 본다, 말과 행동이 올바른가 뒤돌아보아야 하겠다. 가끔 잊어버릴 때가 있다. 후회하고 반성한다. 참회하고 또 참회한다. 그래서 불교는 참회의 종교라고도 한다. 또한 봉사와 수행이 둘이 아니고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니다.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나는 여법하게 불자의 길을 한 걸음 한 걸음 뚜벅뚜벅 걸어가련다.
앞서 간 스승님들의 발자취를 따라서.
나무마하반야바라밀
보현행원으로 보리이루리.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