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 정태성 목사
<마태복음 6장 11절>: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오늘 본문 말씀은 우리가 기도하는 본질적인 이유를 가장 잘 설명해 주는 말씀입니다. 즉, 인간들이 신에게 하는 가장 본질적 요소라는 것입니다. 이 본문의 말씀을 좀 더 정확하게 해석하면 이렇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우리의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
우리의 일용할 양식을 달라는 것! 이것을 “주옵소서!”하는 기도를 하라는 것입니다. 이 양식이 오늘의 양식이든지, 내일의 양식이든지, 혹은 미래의 양식이든지 간에 중요한 포인트는 “우리의 양식”, “나의 양식”을 달라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는 우리는 예수님께서 하라고 하신대로 우리의 양식을 구하면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구하지 않았다면 지금부터라도 구하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막상 구하려고 하면 왠지 허전합니다. 왜냐하면, 사실 우리의 일용할 양식은 우리가 별로 구하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다.
솔직히 우리 중에 우리의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자들이 몇이나 있겠습니까? 이것은 우리에게 별로 중요한 기도의 내용이 되지 못하는 것이고, 그래서 그다지 구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라고 하는 이 기도를 하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은 그냥 흘려보내는 말씀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기도하라고 하신 그 일용할 양식을 더 이상 구할 이유가 없는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즉, 자기의 일용할 양식에 대해 완전히 무감각한 상태의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너희는 너희의 일용할 양식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너희의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기도하라고 했을 때 그것이 너희가 살 수 있는 생명 수단이기 때문에, 그것이 우리에게 영생이 되기 때문에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비록 우리의 일용할 양식을 위하여 기도할 필요가 없을지라도 주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에 당연히 그 일용할 양식에 대하여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일용할 양식이 영생이 되기 때문에 기도하라!
그렇다면 먼저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우리의 일용할 양식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그 양식을 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구할 필요가 없었던 것은 우리의 일용할 양식은 우리의 배를 채워 줄 떡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떡으로 이미 배부른 우리가 구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우리에게 너희의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고 했을 때 그 양식이 우리의 배를 채워 줄 양식이 아니라 영원한 양식으로 말씀하셨기에 그 양식을 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구해야 할 우리의 일용할 양식을 성경에서는 무엇이라고 합니까? 잘 알고 있듯이 그것은 “예수님의 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 “살”을 “생명의 떡”으로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우리의 일용할 양식 => 영원한 양식 => 예수님의 살 => 생명의 떡
<요 6: 51>
“나는 하늘에서 내려 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
그리고 이 떡은 하나님께서 하늘로부터 참 떡으로 주시는데 이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 생명을 주는 떡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 6: 33>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예수님의 살은 하늘로부터 생명을 주는 떡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우리가 우리의 일용할 양식이 바로 하늘로부터 내려 온 떡인 줄 알았다고 해서 그 떡을 달라고 기도하면 과연 그 떡을 주시겠느냐? 하는 이것입니다. 즉, 성도가 그 떡을 말씀, 혹은 진리라고 알았다고 해서 그것을 주세요 한다고 그것을 주겠느냐는 것입니다. “그 말씀을 주세요~ 주세요~” 하면 그 때마다 우리 속에 쑥쑥 넣어 주는 것입니까?
예수님께서 너희의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고 기도하라는 것은 그 일용할 양식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이 되기 때문에 구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주옵소서!” 한다고 해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너희의 일용할 양식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까? 그 이유는 우리의 일용할 양식은 주님의 양식을 결과물로 나타내어야 할 것임을 알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너희의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라고 기도하라고 하신 이유는 “너희의 양식은 너희의 양식이 아니라 나의 양식이니 나의 양식을 결과물로 내어 놓으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하라”는 그 말은 "너희의 일용할 양식은 너희가 먹을 일용할 양식이 아니라 너희 안에 있는 나의 양식이니 그것을 진리로 꺼내어 놓으라"는 말입니다.
너희의 일용할 양식은 너희가 먹을 일용할 양식이 아니라
너희 안에 있는 나의 양식이니 이것을 진리로 꺼내어 놓으라!
<요 4: 31~ 34>
“그 사이에 제자들이 청하여 이르되 랍비여 잡수소서 이르시되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 제자들이 서로 말하되 누가 잡수실 것을 갖다 드렸는가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우리의 일용할 양식은 바로 “주님의 양식”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주님의 양식이 무엇이냐면,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것”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주님의 양식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으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양식을 주님으로부터 받았는데 이 주님의 양식을 나의 양식으로 먹고, 그리고 그것을 예수께서 온전히 이룬 것으로 내어 놓는 것이 우리에게 우리의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라고 기도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우리의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라고 기도하라는 말은 나의 영적 양식을 충만히 채우라는 것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율법의 완성을 이루신 그 하나님의 뜻을 온전한 진리로 말하고 증거하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우리의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
=>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율법의 완성을 이루신 그 하나님의 뜻을 온전한 진리로 말하고 증거하라!
그렇게 하려면 우리는 주님의 양식으로 이미 채워져 있어야 하는 것인데 성도는 그것이 이미 주님의 은혜로 되어져 있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항상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기도하라”는 그 의미는 우리 입으로 “주옵소서”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행하신 그 일을 말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