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시간의 여행을 마치고
10월 22일 오전 우리 동기회에서 준비한 기념품(금붙이)을 전달하려고 박종명 선생님(대구중리중학교교장 : 내년 8월 정년퇴직예정)께 전화를 하니 마침 학교 개교기념일이라서 안동댐에서 낚시를 하고 계시더군. 그래서 저녁에 만나려고 하니 다시 연락을 하겠다고 하시더군. 오후 경 연락이 왔는데 녹조현상으로 낚시가 잘 안 되어 임하댐으로 옮긴다고 하시더군. 하여튼 10월 22일 저녁 5시 경 안동호텔 커피샵에서 만났는데(권기원 회장, 권오성 위원장, 정연수 총무, 나 박창한) 살만 조금 더 붙었지 옛날 모습 거의 그대로(약간 껄렁껄렁한) 나타나셨더구나.
본인 별명이 뭔지 아냐고 묻길래 ‘마다리’라고 했더니, 대구로 전근가서 ‘사두(蛇頭:뱀대가리’)가 되었다고 하시면서 그 때부터 30년 전 옛날이야기를 시작했는데 몇 가지를 옮겨 볼게.
강당 안에서 문을 걸어 잠그고 우리 동기생 중 누군가와 ‘맞장’을 두었다는데 누군지 자수하게. 누가 이겼는지도 말해 주시지 않는 것을 보니 더 많이 맞은 것 같기도 하고…. 또 권위가 하늘을 찌를 듯 하던 ‘두꺼비 교장 선생님’께 불려가서 시말서를 쓴 이야기하며(둥그런 판 양쪽에 (인덕션)코일을 감아 세게 회전시키면 그 속에 자기장에 생기는데 그 판 속에 들어 있는 두꺼비는 어떻게 되는가? 우리들 왈 ‘벌벌 떨다가 감전 되어 죽어요’ - 이 내용이 두꺼비 교장 선생님 귀에 들어가서 시말서를 씀)…. 그 후 부터는 ‘비꺼두’라 불렀다고 함 . 또 30년 전 권용근 선생님과 버스를 타고 임동에 내려 20여리를 걸어서 못에 칠성장어를 잡으러 낚시를 갔는데, 권용근 선생님이 방울낚시(그 때는 릴이 없을 때임)를 잘못 던져 자기 머리에 맞아 기절 했는데 그 후 심심할 때 마다 술을 사 주지 않으면 발설하겠다고 하여 권선생님께 술을 얻어먹은 이야기 등 등 하여튼 시간 가는 줄 모르겠더라구.
그 이튿날인 10월 23일 오전 10시 권 위원장, 정총무, 나 셋(회장은 생질 결혼 관계로 불참)이서 류대영선생님과 김연호선생님을 만나 뵈려고 안동을 출발했는데, 교수인 권 위원장과 학교 교감인 나는 시간을 쉽게 낼 수가 있지만 학급 담임을 하기 때문에 오후에 출발하려고 하는 정총무(보수적이어서 아이들 자습을 시킬 수 없다고 함)를 꼬셔서 출발을 했네.
오후 1시 30분경 경주 서라벌여중교감인 김연호선생님을 만났는데 그 시간까지 식사도 하지 않고 게시더구먼. 4명서 식사를 하면서 역시 옛날이야기를 시작했는데 내용은 머리 깍고 군대 갔다가 4일 만에 쫓겨 온 이유는 논산을 갔더니 그 당시는 자원이 남아 김선생님이 중이염이 있어 쫓겨 왔다는 거야. 다시 1년 후 방위를 마치고 안고로 복직하여 다시 6년을 근무하여 10여년을 안고와 인연을 맺었으니 지금도 자기 모교 이상으로 관심을 가지고 계셨어. 그 무렵 안동서 결혼을 하여 참깨가 쏟아지는 신혼이었는데 박대용 선생님과 거의 매일 밤늦게 까지 바둑을 두었는데 단간 방에서 쪼그리고 계신 사모님 마음은 어땠을까? 그렇게 미운 정 고운 정이 들어 박대용 선생님이 전근가실 때 눈물을 많이 흘린 이야기도 하셨고. 또 박선생님이 딸이 3명인데 이름이 안고, 이고, 지고 간다고 ‘안나, 이나, 지나’라는 이야기 하며…. 대학 졸업 후 경력도 없이 인문고인 안고에 오셨으니 실력이 얼마나 딸리는지 학교 오기가 죽기보다 싫어서 농암 이현보선생의 종손인 성격이 대쪽같은 화성동 할아버지에게 저녁마다 글을 배우러 다녔는데 그 후로 실력 있는 선생으로 통한 다는 이야기하며. 마침 종손 할아버지의 아들이 안고 3학년에 다녔는데(전 길원여고 이성원선생님) 저녁마다 김선생님이 자기 아버지께 꾸중을 듣는 것을 보고 낮에는 김선생님께 배운 학생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그리고 동기이며 3학년 때 내 짝이며 현재 경주 황남빵 전무인 정홍구를 만나 살아온 이야기를 듣고 대구로 류대영 선생님을 만나러 갔다네.
대구에 도착하여 집을 못 찾아 주위를 한 시간 정도 배회하고서야 겨우 집을 찾아 가니 류선생님께서 집 앞에 마중을 나오셨는데 얼굴은 그대로인데 머리는 백발로 변했고 걸음이 아주 불편하더구먼. 지금 72세인데 65세 퇴직 1년 후 중풍이 와서 고생을 하셨는데 지금은 조금씩은 다니신다는 이야기셨는데, 집에 가니 사모님 역시 중풍이 왔는데 두 분 사시는 걸 보니 눈물이 나더구먼. 사모님이 류선생님 병간호를 하다가 본인도 중풍이 왔다네. 류선생님 이야기로 안동 계실 때 술을 얼마나 좋아 했는지 용상동 모든 술집을 거쳐 퇴근을 하셨다니 술 먹는 이야기 빼고는 별 기억이 없을 정도 라네. 그랬으니 아침에도 술이 취할 수 밖에…. 또 류선생님 말로는 학교에 학생을 가르치러 가는지 학생들께 배우러 가는지 구분이 안 되더라는 거야. 또 사모님 이야기는 97년 퇴직 몇 년전부터 해외에 몇 번 다니셨는데 지금 생각하니 그게 조금의 위안이 된다니 우리 동기들도 사모님께 잘 해 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더라. 그리고 박말수 선생님의 사모님이 류선생님의 안동 여고 제자여서 술을 얻어 먹은 이야기도 하시더구나. 지금은 두 분께서 천천히 걸어 성당에 나가셔서 하루를 소일하신다는 이야기를 뒤로 하고 우리 셋은 발걸음을 돌렸네. 방문해 주어 정말 고맙다는 이야기를 수도 없이 두 분께서 하시더구먼. 인생무상이 느껴지더구먼.
오다가 칠곡에서 늦은 저녁과 술을 한잔 씩 하고 돌아왔는데 기분이 묘- 하더구나.
우리가 경비가 조금 더 들더라도 담임 교사 18분을 모시기를 정말 잘 했다는 생각을 하면서 집에 오니 밤 10시 30분, 12시간의 여행을 마쳤다네.
이상 박종명, 김연호, 류대영 선생님을 만나 기념품을 전달한 내용과 혹 시간이 있으면 전화나 방문을 했으면 하는 마음을 전하면서 이야기를 마치네.
첫댓글 30년의 세월을 띄어 넘어 시간여행을 하였다. 이건 신문기사로 말하면 특종감이다.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 본듯하기도 하고, 세월이 지나면, 부끄러웠던 기억도 아름답게 보이는 모양이다. 박종명 선생님의 말쑥하던 얼굴이 아른거리네... 분필 뿔개는 소리도 들리고.
창한, 오성, 연수 세분 모두 고생이 많았으리 생각한다. 23회 동기 모두를 대신해서 수고한 보람도 만끽하시길........
안동 회장단들 고생 많았네. 대구 왔으면 전화라도 하지 그럼 저녁이라도 같이 먹지. 다음부턴 그러지 말길.....
박교감(권교수 회장 총무포함) 정말 수고 많이 했소..... 이제 거의 마무리 되가는구먼 고생 많이 했으니까니 너그 끼리 자축 한번 해야겟다.....
박교감님,회장님,총무님 수고 많이 많이 했습니다.우리는 작년에 서울에서 노래방에 가서 허리띠 풀고 넥타이 머리에 묶고 재미있게 모셨습니다.
수고 많이 했다 우리도 얼마 남지 않았지. 잘 살아보자
이번 행사의 마무리를 정말로 잘하고 있구나. 수고하고 애쓰는 모습 오래 오래 간직할께.
경찬아! 대구 가서 연락을 하고 싶었는데 일정이 너무 빡빡해서 연락을 못해 죽을 죄를 졌네. 너그럽게 이해 해 주게. 류선생님 집이 효목시장 입구 경부선 철로 가 주택인데 찾기가 정말 어렵더구나. 항상 대구 동기들 고마운 말 고맙게 생각하네
이번행사를 치룬 모두들 수고하셨네. 창한아 물심양면으로 고생이 많구나.
수고 많이 했네. 교감 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