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만추'의 이름으로
내게 잘 맞는 것을 찾기 위해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요즘엔 홈쇼핑이나 인터넷을 통해서 물건을 자주 구매한다. 직접 보고 고르면 실패 확률이 적은데, 주문한 물건이 원하던 것과 다를 때가 많다. 반품하는 과정이 번거롭지만, 맞지 않는 것을 사용하진 않는다. 원하는 물건을 만났을 때는 찰떡의 느낌으로 기분이 좋아진다.
물건 뿐 아니라 나와 잘 맞는 이를 찾게 된다. 수많은 사람 중에 성향이 잘 맞는 이와 만났을 때는 시간의 흐름조차 잊는다. 서로 맞지 않은 사람과의 만남은 물건과 달라서 바꾸기 어렵다. 상대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절차를 거쳐야 해서다. 자신과 맞는 사람을 찾는 것이 '연애의 본질'이라 한다.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 ‘자만추’란 용어가 성행한다. 연애로 자연스러운 만남을 추구한다는 뜻이다. 집안이나 재력, 학벌, 직업 외모 등을 따져서 소개한 만남이 아닌, 자신의 의지와 본능에 따른 만남이다. 최근에 ‘암흑 소개팅 카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암흑 소개팅은 시대를 거스르는 만남을 통해 서로를 알아가는 방식이다.
카페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과일, 나무 등 여러 컨셉의 향수 중 하나를 골라 바른다. 빛이 한 점도 없는 칠흑 같은 장소에서 안내자의 지시에 따라 좌석에 앉는다. 맞은편 상대를 인기척으로 느끼며 인사말을 건넨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목소리가 좋으시네요.” 목소리만으로 상대를 느끼며 탐색전이 시작된다.
소개팅 앱에서 자신의 연애 성향, 기호식품, 취미 등 관심 분야를 입력한다. ‘셀카 사진’은 올리지 않으니 오로지 본능에만 충실한 만남이다. 대신 자신이 입력한 내용과 맞는 상대를 찾으려면 며칠 또는 몇 달이 걸릴 수 있다. ‘암흑 소개팅’의 특징은 시각 대신 후각을 자극한다는 점이다. 후각은 시각보다 원시적이고 본능적이다. 중간 무렵에 손목의 향을 맡고 어떤 향수인지 알아맞히는 ‘미니 게임’으로 본능을 자극한다. 이 과정에서 상대의 손을 잡기도 한다. 목소리와 향으로 상대의 실루엣을 그리면서.
주말에는 하루 최대 15쌍이 이곳을 찾는다니 요즘의 세태를 짐작한다. 보통의 소개팅에선 상대의 스펙과 외모만 보고 선입관을 갖게 된다. 그 순서를 뒤집어서 내면을 먼저 맞춰보고 외적인 조건을 마주하는 만남이다. 외모부터 보고 판단하면 상대의 내면과 부딪쳤을 때 더 큰 파장을 겪을 수 있다. 시행착오를 겪은 세대의 사고를 뛰어넘는 역발상이다.
퇴실 전에 세 가지의 옵션을 준다. “지금 바로 만나고 싶어요.” “내일 연락처를 받고 싶어요.” “오늘의 추억으로 남길게요.” 놀라운 건 10명 중 9명이 지금 바로 만나고 싶어한다. 암흑 소개팅은 외모를 지나치게 따지는 세상에서 대안적 만남의 장이라니 반갑다. 살면서 외모와 내면이 일치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될 테니까. 젊은 세대의 ‘자만추’를 이해하지만, 자신의 선택에 책임이 따른다.
평소에 취향이 다른 남편에 대해서 불만이 많았다. 어느 날, 우리 부부에 대해 알고 싶어서 ‘띠’와 ‘혈액형’으로 궁합을 맞춰봤다. 남편과의 띠 궁합 점수는 100점인데, 혈액형 점수는 30점으로 나왔다. 서로 안 맞는데 헤어지지 않고 오래 산 건, 띠 궁합 때문이었나 보다. 어림짐작이지만 마음이 편해지며 기대감도 줄었다. 요즘 MZ 세대는 ‘MBTI’로 성향을 따지며 상대를 살핀다니 세대 차이를 느낀다.
전 세대는 부모님들이 짝을 정해서 얼굴도 모른 채 혼인하기도 했다. 첫날밤에 처음 얼굴을 마주했지만, 대부분이 몇십 년을 해로했다. 각자의 취향과 내면을 주장하기보다 상대에게 맞추려는 인내심의 미덕으로. 자만추를 원하는 세대가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찰떡궁합’이란 말은 그때 더 많았다. 처음부터 잘 맞는 이는 많지 않은데 상대를 배려하며 맞추고 살았나 보다.
어떤 만남의 방식이라도 사람은 물건처럼 쉽게 물리기 어렵다. 오랫동안 부딪치며 고운 정, 미운 정이 들었을까. 지난날을 돌아보니 상대의 마음을 읽기 위한 숙성의 시간이었다. 불만에 앞서 ‘측은지심’으로 바라보며 슬그머니 물러선다. 어느덧 상대의 취향을 존중하며 싸움이 줄었다. 둘 사이를 끈끈하게 연결한 건, 시간의 흐름이었다. '찰떡궁합’'이란 오랫동안 깊어진 ‘정’을 뜻하는 것이 아닐까.
첫댓글 김영신 선생님, 자만추 관련 정보와 암흑 소개팅 카페 정보의 글 재밌게 읽었어요. ㅎㅎㅎ
지송님은 아직 청춘의 기분을 간직하고 사시는 거 같아 부럽습니다.ㅋㅋㅋ
MBTI 로 요즘 젊은이들 보는 거 대세인 듯해요. 저도 들었어요. 찰떡궁합론의 다양성 이론, 인간미 넘치는 글--매우 흥미있게 잘 읽었답니다.
지송 선생님의 글, 신선하네요. 요즘 사람들의 사랑법을 배웠어요.
세월과 함께 변하는 사랑법이 재밌습니다. 만남의 본질은 결국 자신과 맞는 사람을 찾는 것이라는 그 말, 맞아요..
어떤 만남이든 부딪힘이 있고 숙성의 시간이 흘러야 미운정, 고운정으로 승화한다는 내용에 공감합니다.
부부 궁합검사와 혈액형 검사가 재미있네요. 측은지심이야말로 찰떡 궁합의 요인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