須菩提야 若善男子善女人이 於後末世에 有受持讀誦此經하는 所得功德를 我若具說者면 或有人이 聞하고 心則狂亂하야 狐疑不信하리라
수보리야, 선남자 선여인이 앞으로 오는 말세에 이 경을 받아지니며 읽고 외워서 얻는 공덕을 내가 가 갖추어 말한다면, 혹 어떤 사람은 듣고 마음이 몹시 산란하여 의심하고 믿지 않으리라.
六祖 佛言하사대 末法衆生이 德薄垢重하고 嫉妬彌深하야 衆聖이 潛隱하고 邪見이 熾盛하리니 於此時中에 如有善男子善女人이 受持讀誦此經하면 圓離諸相하고 了無所得하야 念念常行慈悲喜捨와 謙下柔和하야 究竟成就無上菩提어니와 或有聲聞小見은 不知如來正法이 常在不滅일새 聞說如來滅後後五百歲에 有人이 能成就無相心하며 行無相行하야 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라하면 則心生驚怖하야 狐疑不信하리라
육조 부처님이 말씀하시되 말법중생은 德이 엷고 번뇌는 무거우며 질투는 더욱 깊어져서 많은 성인들이 숨어버리고 삿된 견해는 치성하리니,
이러한 때에 만약 선남자 선여인이 이 경을 수지 독송하면 모든 相을 원만히 떠나게 되어 본래의 얻을 바 없음을 깨달아서 생각 생각에 항상 慈悲喜捨와 謙下와 유화를 행하여 끝내는 위없는 깨달음을 성취하거니와 혹 어떤 聲聞의 소견은 如來의 正法이 멸하지 않고
항상 있음을 알지 못하므로 여래가 멸한 뒤 후 오백세에 어떤 사람이 능히 無相心을 성취하고 無相行을 행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 함을 들으면 곧 마음이 두려움을 내어 의심하고 믿지 않으리라.
傅大士 了妄에 心明遣이요 無爲에 業漸離라 狂迷心境滅하니 凡愚盡總袪로다 經中에 稱末世여 狐疑且自迷라 性慧修眞實이여 只此是菩提로다
부대사 망념을 요달하면 마음을 밝게 보냄이요. 함이 없으면 業은 점점 떠나리라. 매우 미혹한 마음의 경계가 멸하니 범부의 우치함이 없어지도다. 經 가운데서 末世라 일컬음이여! 의심하여 또한 스스로 迷하도다. 性慧로써 진실을 닦음이여. 다만 이것이 菩提로다.
圭峰 十은 總結幽邃라 규봉 ㉸十. (이 經이 이치가) 아주 깊음을 총결함이라.
須菩提야 當知是經은 義도 不可思議며 果報도 亦不可思議니라
수보리야, 마땅히 알아라. 이 經은 뜻도 가히 생각할 수 없으며 과보도 또한 생각할 수 없느니라
說誼 廣讚持經說經之功德을 不可得而思議라하시고 乃云所得功德을 我若具說者면 或有人이 聞하고 心卽狂亂하야 狐疑不信이라하시며 乃至云果報도 亦不可思議라하시니 聞經不信受하면 良藥이 現前不知服이요 果報不思議여 服來平地에 便升仙이로다
설의 "經을 가지고 경을 설하는 공덕은 가히 생각할 수없다"고 널리 찬탄하시고, 이에 이르되 "얻을 바 공덕을 내가 다 갖추어 말한다면 혹 어떤 사람은 듣고 마음이 몹시 산란하여 의심하고 믿지 않으리라"하시며
"내지 그 과보도 또한 생각할 수 없느니라" 하시니, 경을 듣고도 믿어 지니지 않으면 좋은 약이 앞에 있어도 먹을 줄 모름이요, 과보도 생각할 수 없다 함이여! (좋은 약을) 먹으면 평지에서 곧 신선에 오름이로다.
圭峰 無著이 云此는 顯示彼福體及果가 不可測量故라하다 규봉 무착이 이르되 이것은 복의 體와 과보를 가히 측량할 수 없음을 드러낸 연고라 하다.
六祖 是經義者는 卽是無着無相行이요 云不可思議者는 讚歎無着無相行이 能成就阿耨多羅三藐三菩提也니라
육조 이 경의 뜻이란 곧 無着, 無相의 行이요 가히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은 무착 무상의 행이 능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함을 찬탄한 것이니라.
傅大士 부대사 果報分明在여 善惡이 分兩枝라 末法難調製여 謗經失路迷로다 狐疑에 生斷見이요 修卽是便宜니 覺悟無前後하면 成佛不爲遲니라
부대사 과보가 분명히 있음이여, 선과 악 두 가지로 나눔이라. 말법에 조복받기 어려움이여, 경을 비방하여 길을 잃고 迷하도다. 의심하면 斷見을 내고 닦으면 편리함이니, 前後가 없음을 깨달으면 성불이 더디지 않으리라.
冶父 各各眉毛眼上橫이로다
說誼 佛所說法은 只說得眼上眉毛시니 若是眼上眉毛인댄 生而固有라 誰獨且無리오
야부 각각의 눈썹은 눈 위에 가로놓여 있도다.
설의 부처님이 설하신 법은 다만 눈 위의 눈썹을 말한 것이니, 만약 이 눈 위의 눈썹이라면 나면서부터 본래로 있음이라. 누군들 홀로 없으리오.
冶父 良藥은 苦口요 忠言은 逆耳라 冷暖自知가 如魚飮水로다 何須他日에 待龍華리오 今朝에 先授菩提記로다
說誼 旣皆同有인댄 聞不信受는 怎麽요 只爲太近難曉니라 雖然如是나 飮𠸌隨時에 飢飽自知라 伊麽則人人이 位同毘盧요 一一同居寂光이니 何待龍華記莂이리오 擧足卽是寂場이로다 以本分으로 論之則理合如斯어니와 若據今時하야 論之則此經이 如良藥하야 服來에 萬病消라 超然作金仙이언마는 只是不肯下口요 亦如忠言하야 信受에 自知非라 能爲衆中尊이언마는 只是不肯信受니라 唯有利根人은 言下에 自知非하야 一聞에 能總持하리니 鯤鯨이 飮海水라 位同大覺已이니 極果를 更何疑리오 果報不思議라하시니 誠哉라 佛所說이여
야부 좋은 약은 입에 쓰고 충성스런 말은 귀에 거슬림이라. 차고 더움을 스스로 아는 것은 고기가 물마심과 같으니 어찌 모름지기 다른 날에 용화세계를 기다리리오. 오늘 아침에 벌써 菩提의 수기를 받음이로다.
설의 이미 다 같이 갖고 있지만 듣고도 信受하지 않음은 무슨 까닭인가. 다만 너무 가까워서 알기 어려움이라.
비록 이같으나 마시고 먹는 것은 때를 따르는 것이며 주리고 배부름은 스스로 아는 것이로다. 이러한즉 사람 사람의 지위는 비로자나불과 같고 낱낱이 寂光土에 함께 있으니 어찌 용화의 기별(수기)을 기다리리오.
발을 들면 곧 이곳이 적광의 도량이로다. 本分으로써 논한즉 이치가 합당히 이와 같거니와 만약 今時(新熏:현재의 입장)를 들어 논한다면 이 경은 마치 좋은 약과 같아서 먹으면 만병이 없어짐이라.
초연히 金仙(佛)을 짓건만 다만 기꺼이 입에 넣지 않음이요, 또한 충언과 같아서 信受하면 스스로 그릇됨을 알도다. 능히 대중의 존중함이 되건만 다만 기꺼이 信受하지 않느니라.
오직 영리한 사람은 언하에 스스로 그른 줄 알아서 한 번 들으면 능히 다 가지리니 고래(鯤鯨)가 바닷물을 마심과 같도다.
그 지위가 大覺과 같거니와 지극한 과보를 다시 어찌 의심하리오, "과보가 불가사의하다" 하시니 진실하도다! 부처님의 설하심이여!
宗鏡 宿業緣墮惡報어늘 今人賤而罪卽消하고 供諸佛誦此經하면 功德勝而喩莫及이로다 只如無着無相底는 還有果報也無아 妄心滅盡業還空하니 直證菩提超等級이로다 惡因誰作罪誰招오 眞性이 如空不動搖라 曠劫無明이 俱蕩盡하니 先天後地寂寥寥로다
종경 宿業의 인연으로 악의 과보에 떨어질 것이거늘 지금 사람들이 천하게 여기므로 죄가 곧 소멸되고, 諸佛께 공양하는 것보다 이 경을 외우면 그 공덕이 수승하여 어떤 비유로도 미칠 수 없음이로다.
저 無着, 無相한 것은 또한 과보가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 망심이 멸하여 다하면 업도 또한 空하리니, 菩提를 증득하여 등급을 초월하도다.
악의 인연은 누가 짓고 그 죄는 누가 부르는가. 참된 성품은 허공과 같아서 동요하지 않도다. 오랫 동안의 무명을 모두 다 없애니 하늘보다 먼저 하고 땅보다 뒤에 하여 고요하고 고요하도다.
무비 금강경은 참으로 위대한 經이다. 아무리 큰 죄를 지어서 지옥에 갈 이이 있다해도 이 금강경만 수지 독송하면 그 죄업은 다 소멸하고 지옥은 즉시 사라진다.
佛前에서 천배 만배 절하고 피를 토하도록 염불을 해서가 아니고 이 금강경을 수지해서이다.
금강경은 최상의 경이다. 세존은 연등불 시절부터 팔만사천억 부처님을 친견하고 그 앞에서 갖가지 공덕을 쌓았다. 그리하여 오늘날 위대한 성자가 되었다. 그러나 꼭 그러했기 때문이었을까. 금강경을 수지하면 세존이 갖춘 모든 공덕과 지혜와 위덕을 갖출 수 있다.
불교적 삶[修行]의 내용을 간단히 두 가지로 표현하면 업장을 소멸하는 일과 복덕과 지혜를 이루어 가는 일이다. 그것들을 다 충족시켜 주고 다 해결해 주는 경이 곧 이 금강경이다.
혹자는 이런 말을 듣고 믿지 않고 비방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경의 의미는 참으로 불가사의하며 과보 또한 불가사의하다. 어리석은 사람들이 쉽게 믿는다면 족히 금강경이 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
圭峰 第十一은 斷住修降伏我疑라 佛이 敎我住修降伏하며 兼不住前十重疑執過患케하시니 若無我者인댄 誰人이 受敎며 誰人이 住修며 誰人이 如此離過云云이리오 亦云除微細執故니 偈에 云於內心修行에 存我爲菩薩하면 此卽障於心이라 違於不住道라하다 斷之文이 二니 初는 問이라.
규봉 ㉴十一. 住하고 닦으며 항복하는 것도 이 我라는 의심을 끊음이라. 부처님이 나로 하여금 住 修 降伏케 하시며 겸하여 앞의 열 가지 무거운 의심과 집착한 허물에 머물지 않게 하시니, 만약 我가 없으면 어떤 사람이 가르침을 받으며 어떤 사람이 머물고 닦으며 어떤 사람이 이와 같은 허물을 버린다고 운운하리오.
또한 미세한 집착을 없앤 연고이니 偈에 이르되 "內心으로 수행함에 내가 보살이 되었다는 생각을 두면 이는 곧 마음을 장애하는 것이라. 머물지 않는 道에 위배된다"고 하다. 그것을 끊는 데 두 가지니 ㉵一. 물음이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