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딱지------아이들의 천국을 소망한다.
시간은 흐르고 세월은 흘러 새해가 밝았는데 사회적으로 아이들의 처우 소식은 나아진 것은 없고 들리는 소식은 날마다 비통하다.
아이가 오줌을 쌌다고 화장실에 옷을 벗기고 밤새 방치하여 죽었고, 아이를 남에게 맡겼는데 아이를 봐주는 보육사가 말을 안 듣는다고 때려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는데 그 죽은 시체를 호수에다 유기하였다. 부모의 신고로 구속이 되기는 하였지만 부모의 심정으로 가슴이 아프다.
아이는 어리고 여리다. 어른에 비하며 본인의 의지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아이는 아이대로 어른에게는 이길 힘이 없다는 것을 알기에 싫다는 표시를 울어서 표시하는데 그것이 힘이 든다고 어른의 힘으로 제압을 하고 힘으로 억눌러 죽음에 이르게 한다.
부모가 일을 저지른 것에 대하여는 부모라는 이유가 그래도 약간의 이해를 얻을 수 있지만 돈을 받고 아이를 보는 사람들은 부모에게 데려다주면 될 것을 돈 은 받고 아이는 제거되어 어려운 문제를 만들게 된다.
슬프다. 이 나라의 복지는 언제나 어린이를 우선할까? 어른과 아이는 같이 가야 할 텐데. 아이를 위한 처우가 더 발전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다음세대를 위하여는 어린이에게 투자해야 한다. 어린이 교육은 짧게는 10년을, 길게는 100년을 보아야 한다. 그런데 이것은 이론과 공염불에 지난 때가 많아서 아이가 남의 손에서 해를 받았다는 소식은 어두운 소식일 뿐이다.
지인의 아들이 셋째를 낳았다. 그것도 딸이다. 출산을 축하하면서
“하나 더 낳아라” 했더니 펄쩍 뛰면서
“애한테 돈이 너무 많이 들어가요. 싫어요. 그만 낳을래요.”
출산의 소식은 기쁨이고 희망이다. 그런데 이 기쁨이 자주 들렸으면 좋겠는데 아이에게 들어가는 비용이 많이 드니 꺼리는 사람이 많다.
아이를 마음 놓고 낳으면 나라에서 혜택을 주어 걱정 없이 기를 수 있는 프랑스를 비교해보면 남의 나라 사정이 부럽기만 하다.
남의손주가 내 손주 같아서 축하해주러 갔다. 산후 조리원으로 축하 방문을 갔더니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우렁우렁하다. 할머니가 둘이라 반기는 인사인가 애가 운다. 하나가 우니 덩달아 옆의 애도 따라 운다. 애는 좋은데 우는 소리는 부담된다. 간호사들이 애를 진정시키느라고 애를 쓴다.
아이울음 소리에 부담되는 것을 보니 내가 나이 드는가 보다. 젊어서는 아이의 울음소리가 정겹고 좋았는데...
우는 소리 진정 시키고 그것을 흡수 할 사람은 부모 외에 또 누가 있을까?
산후조리원에 들어 왔더니 10년 전에 일이 떠올랐다. 나의 기억은 타임머신을 타고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며느리가 둘째를 낳았다고 하여 집으로 찾아갔다. 집이 얼마나 먼지 집에서 3시간 가야 하는 노원구 상계동 이었다. 집으로 가보니 큰아이 때문에 집에서 조리를 하고 일해 주는 사람을 불렀다고 했다.
며느리와 아이를 만나고 축하 금을 건네고 나니 내자리가 머쓱해졌다. 가만히 있기도 어렵고 일을 해 주자니 그것도 사람이 있어서 아들과 슈퍼에 갔다. 산모에게 먹일 사골과 반찬거리를 잔뜩 사주고 나니 집에 계시는 노인네들이 걱정이 되었다.
생각 같아서는 하루 밤 자고 미역국이라도 내 손으로 끓여주고 싶었으나 집이 좁아서 내가 하룻밤 자기에는 불편했다. 그래서 그날로 집으로 오긴 했는데 살면서 마음 한켠으로는 미안함으로 남아 있었다. 내 마음이 그렇다고 에미에게 말해 본적은 없지만 남의 출산소식을 들을 때마다 그 때의 일이 내 마음의 딱지로 남아있다.
“며느리에게 아무리 잘해주어도 한 번 잘 못해주면 결국은 남이 된다.” 이런 말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내 집 식구가 된 이상은 잘해 주고 싶었는데 그날의 일을 며느리가 제 마음의 딱지로 가지고 있지나 않는지 그것이 궁금하다. 만약에 제 마음의 딱지로 가지고 있다 한들 그때의 나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으니 오늘, 나는 내 이유를 “자신의 합리화”를 시켜 마음을 가볍게 해야겠다.
그렇지만 한마디 하자면
“에미야 그 때 더 잘해주지 못해 미안했단다.”
첫댓글 며느리를 생각해 주는 시어머님의 정성이 지극스럽고 따스하다
아이를 출산하고 아이보랴 몸조리하랴 정신 차릴 여유가 없었 던 것 같다
시어머님의 약해진 마음을 며느님이 조금이라도 알고 계셨다면
어머님 너무 신경쓰지 마세요>라고 시어머님의 애듯한 뜻을 위로 했을 것이다
장산 선생님의 지극스런 행복을 꿈꾸는 가족의 울타리가 될려는 깊은 속 마음이 보여지고 있다
감사합니다
님의 댓글이 힘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