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장에서는 앞 장의 결론을 이어받아 역사에 있어서 주관성이 라는 계기를 어떻게 극복 할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해 볼 것입니다. 요컨대 역사는 본래 주관적인 물음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며, 따라서 그 결과로 얻어지는 인식 역시 아무래도 주관적인 성질을 따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역사도 학문인 이상 이러한 주관성을 가능한 한 객관적인 것으로 바꿔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하는 점을 이제부터 이야기하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앞서도 인용한 바 있는 영국의 역사가 에드워드 H. 카아의 역사란 무엇인가를 보면, 영국의 대표적 중세사 연구가인 옥스퍼드 대학의 퍼워크 교수가 한 말을 인용하고 있는 부분이 나옵니다. 이 역사를 해석하려는 욕구가 너무나 강하기 때문에 어지간히 건설적인 사고방식을 갖지 않으면 우리는 자칫 신비주의나 냉소주의에 빠질 우려가 있다라는 대목입니다. 카아는 이 말 속에 있는 건설적인 사고방식 이라는 이색적인 말이 도대체 무슨 뜻인가에 대해 여러 가지 해설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 입장에서 이상하게 여겨지는 것은 바로 그 역사를 해석하려는 욕구가 너무나 강하기 때문에 라는 구절입니다. 왜 역사를 해석하려는 욕구가 그다지도 강한 것일까요?
제가 이제까지 언급해온 내용과 관련지어 말씀드리면, 결국 우리의 역사에 대한 물음은 좀 더 깊이 캐 들어가다 보면 우리의 역사관 내지 역사적 세계관과 맞닿게 되기 때문에 역사에 대한 해석의 욕구가 그렇게도 강해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 카아는 따로 설명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저 나름대로의 설명을 덧붙여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문제를 설명함에 있어 또 한 가지 예를 들고자 합니다. 마르크스주의의 역사관 혹은 마르크스의 유물사관이라고 불리는 것인데. 이 문제를 설명하는 데 아주 적절한 예이리라 생각합니다. 그것은 마르크스주의가 반드시 이 문제에 대한 최종적인 해답을 제공해주기 때문은 아닙니다. 나중에 다시 언급하겠지만, 마르크스주의는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한 하나의 실마리를 제공해주고 있기는 하나 마르크스주의 그 자체가 이 문제에 대한 최종적인 해답을 제공해주진 않습니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는 역사에 있어서의 주관성과 객관성이라는 문제 내지는 역사에 대한 우리의 견해가 우리의 역사적 세계관과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다는 점을 매우 심각한 형태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이 문제를 설명하기 위한 예로서 마르크스주의를 선정하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됩니다.
방금 저는 매우 심각한 형태로 라는 말을 썼는데, 그것은 다름 아니라 마르크스가 학문이나 문화의 계급성을 지적한 점을 염두에 두고 한 말입니다. 그러면 마르크스가 설파한 역사관이란 도대체 어떤 것이었을까요? 마르크스의 역사관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는 그의 저술로는 여러분들도 잘 아시는 경제학 비판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경제학 비판이라는 책에는 서문이 붙어 있습니다.
오해가 없도록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이 책에는 서론과 서문 두 가지가 딸려 있습니다. 그 중에서 서론이 아니라 보통 서문이라고 불리는 것이 있는데, 그 서문 속에 일반적으로 유물사관의 공식으로 일컬어지는 내용이 기술되어 있습니다. 그 내용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핵심으로 요약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첫째로 이 서문에서 마르크스는 사회의 전개 내지는 사회의 발전을 전면적으로 혹은 근본적으로 규정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먼저 묻고, 이러한 물음에 대한 답변으로 사회의 물질적인 생산력의 일정한 발전단계에 대항하여 생산관계가 만들어집니다. 이 생산관계의 총체가 곧 사회의 경제적인 구조이기도 하다고 마르크스는 규정합니다, 이것이 바로 일반적으로 하부구조라고 불리는 것인데, 이 하부구조를 토대로 한 그 위에 법률, 정치 및 기타 다양한 사회적 의식형태를 포함하는 상부구조가 만들어집니다. 이러한 의식형태로는 종교, 예술, 학문 따위의 문화가 포함됩니다.
그런데 이 점을 마르크스는 매우 특징적인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즉 '사람들의 의식이 그들의 존재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그들의 사회적 존재가 그들의 의식을 규정한다'라고 말입니다. 바로 이 말에 이 첫째 부분의 핵심이 담겨 있는데, 이것은 동시에 앞서 언급한 학문 내지 문화의 계급성이라는 사고방식과 연결되는 관점이기도 합니다.
둘째는 이와 같은 사회의 발전이 어떤 과정을 거쳐 전개되느냐하는 점과 관련된 것입니다. 그것을 마르크스는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즉 '사회의 물질적인 생산력은 그 발전의 일정한 단계에 이르면 그 생산력이 종래 그 안에서 작용해온 현재의 생산관계 혹은 그 생산관계의 법률적 표현에 지나지 않는 소유관계와 모순을 일으키게 된다. 이들 재 관계는 생산력의 발전 형태로부터 전화하여 그 질곡이 되고, 그렇게 되면 사회혁명의시대가 시작된다. 경제적 기초의 변화와 더불어 거대한 상부구조 전체가 서서히 또는 급격히 변혁된다'라고 언급합니다. 이것은 간단히 말해 생산력과 생산관계가 형성된다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는데, 이때 이러한 과정은 계급투쟁이라는 형태를 띠고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이와 같은 전개를 보여주는 사회를 발전단계적으로 파악하고 있는 점입니다. 즉, 마르크스는 역사상 사회의 발전단계를 아시아적 사회, 고대적 사회, 봉건적 사회 및 근대시민적 사회 내지 생산약식이라는 계기적인 발전단계로 상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근대시민적 사회의 모습이 더욱 심화되어 그것이 극복되게 되면 사회주의 사회가 나타나고, 이 사회주의 사화가 더욱 발전하여 공산주의 사회에 도달하게 되며, 이로써 인류의 전사가 끝난다고 마르크스는 주장합니다. 이것이 마르크스가 설파한 사회의 발전에 관한 여러 단계입니다.
대체로 이상과 같은 골격을 가지고 있는 것이 마르크스의 역사 이론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마르크스의 역사이론은 역사이론사상 가장 포괄적이고 가장 체계적인 이론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물론 마르크스의 이러한 역사이론은 그에 앞서는 헤겔이라는 사상가에게서 힘입은 바 큰 것입니다. 그러나 마르크스의 역사이론은 역사에 좀 더 밀착해 있다는 점에서 헤겔의 그것보다 더 한층 역사적인 이론의 자격을 갖추고 있다고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