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평양과 관련한 역사적 사실 답③
훈요 10조는 태조(왕건)가 후대의 왕들이 지켜야 할 정책의 기본 방향을 남긴 것으로, 그 중 문제에 제시한 조항은 서경(평양)을 중시할 것을 강조한 것입니다.
태조는 건국 초부터 평양을 서경이라 하여 중시하였으며, 남쪽에 인구를 이주시키고 이곳에 관부와 관리를 두었어요. 그리고 북진 정책의 전진 기지로 삼았습니다.
평양은 대동강이라는 천혜의 방어 시설을 끼고 있어 고구려 장수왕은 국내성에서 이곳으로 천도하였으며(427), 멸망할 때까지 고구려의 수도였던 곳입니다. 고구려가 멸망하자 당은 이곳에 안동 도호부를 설치하여 한반도 전체를 지배하려 하자 신라는 고구려 부흥 운동군을 지원하고 나·당 전쟁을 벌여 이곳에 있던 안동 도호부를 요동 지방으로 몰아냈습니다.
고려 때에는 북진 정책의 일환으로 서경으로 중시하여 개경과 유사한 중앙 부서의 분소를 설치하는 분사 제도를 실시하였어요. 고려 중기에는 묘청이 이곳에서 서경 천도 운동을 전개하였으며, 무신 집권기에는 최광수가 고구려 부흥을 내세우며 봉기하였습니다.
조선 시대 들어 임진왜란 당시 조선군과 명군이 연합해 평양성을 탈환하여 전세를 역전시키기도 하였으며, 조선 후기의 사상인 유상이 활동 근거지였습니다. 19세기 후반에는 미국 상선 제너럴 셔먼호가 대동강을 거슬러 평양까지 와서 통상을 요구하며 난동을 부리다가 평양 관민들에게 불태워지기도 했습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신미양요(1871)가 일어나기도 했죠. 20세기 초에는 신민회 회원 안창호가 대성학교를 세워 인재를 양성하였어요.
일제 강점기에는 조만식 등의 주도로 물산 장려 운동이 시작된 곳입니다. 광복 후 북한의 수도가 되었습니다.
① 장수왕은 국내성을 기반으로 한 귀족 세력을 약화시키고 남하 정책을 추진하고자 평양으로 수도를 옮겼습니다.
② 임진왜란 당시 명의 원군이 전쟁에 참여하면서 조·명 연합군은 평양을 탈환하며 왜군에 반격을 하였습니다.
③ 만상의 근거지는 의주였습니다.
당시 평양을 중심으로 활동한 사상은 유상입니다.
④ 병인양요가 일어나기 직전 미국 상선 제너럴 셔먼호는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오면서 통상을 요구하여 난동을 부리다
평안도 관찰사 박규수가 이끄는 관군과 평양 군민들이 합세하여 제너럴 셔먼호를 불태워 침몰시켰습니다.
⑤ 1920년대 일제는 일본과 한국 사이의 관세를 철폐하여 한반도에 상품 수출과 자본 투자를 확대하려 하자, 조만식을
중심으로 평안도의 경제·교육계 인사들이 조선 물산 장려회를 조직하고 민족 기업의 육성을 위해 토산품 애용 운동을
전개하였습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③번입니다.
유사 기출문제
평양과 관련한 문제
24회 고급 44번 문제
44. 각 지역의 역사적 사실 답⑤
각 지역에서 있었던 역사적 사실이나 유물, 유적을 파악하는 유형의 문제는 꼭 나옵니다.
이런 문제를 어려워하는 분들도 많은데, 카페에 올려진 유사 기출문제를 풀어보면 대부분 커버됩니다.
① 원산 노동자 총파업은 일제 강점기에 일어난 최대 규모의 노동 쟁의였습니다.
원산 노동자 총파업은 영국인이 운영하던 원산의 한 석유 회사에서 일본인 감독이 한국인 노동자를 구타한 사건이 계
기가 되어 1929년에 일어나 약 4개월 동안이나 지속되었답니다. 파업 소식이 전해지자, 전국 곳곳의 사회 단체, 청년
과 노동 단체 등에서 성금을 보내 지지하였으며, 일본 노동자들도 동조 파업을 벌였고, 중국, 프랑스, 소련의 노동자
들까지 격려 전문을 보내 왔을 정도로 세계의 주목을 받으며 전개되었답니다. 그러나 일제 경찰의 가혹한 탄압으로
결국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② 1920년대 초 평양에서 조만식 등이 주도하여 조선 물산 장려회가 발족되면서 물산 장려 운동이 시작되었어요.
이후 서울을 비롯한 다른 지역에서도 자작회(청년 학생), 금주·단연회 등의 이름으로 많은 단체들이 만들어져 물산
장려 운동을 전국으로 확산시켜 나갔습니다.
③ 조선 노동 공제회는 1920년 4월에 창립된 우리나라 최초의 전국적인 노동 운동 단체였어요.
이 단체는 조선 노동 사회의 지식 계발, 저축의 장려, 품성의 향상, 위생 사상의 향상, 환난(患難)의 구제 및 직업
의 소개, 일반 노동 상황의 조사 등 6개항을 강령으로 채택하고 활동하였어요.
④ 일제 강점기인 1923년에는 백정들이 사회적 차별을 스스로 철폐하기 위하여 진주에서 조선 형평사를 결성하고 여러
사회 단체와 협력하며 형평 운동을 전개하였습니다.
⑤ 보안회는 1904년 서울에서 결성되었어요.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⑤번입니다.
18회 고급 8번 문제
8. 평양의 역사 답⑤
대동강변에 위치한 고구려 때 축조된 성으로, '모란봉'과 '을밀대'가 있는 곳은 평양입니다.
그럼 평양과 관련한 역사적 사실을 찾으면 되겠네요.
평양성은 대동강이라는 천혜의 방어 시설을 끼고 고구려 때 축조된 성입니다.
평양성을 끼고 있는 평양은 모란봉, 을밀대, 만수대 등의 경관이 유명합니다.
이곳은 고조선, 그리고 장수왕 때 국내성에서 평양으로 천도한 후 멸망할 때까지 고구려의 수도였던 곳입니다.
고구려가 멸망하자 당은 이곳에 안동 도호부를 설치하여 한반도 전체를 지배하려 하자 신라는 고구려 부흥 운동군을 지원하고 나·당 전쟁을 벌여 이곳에 있던 안동 도호부를 요동 지방으로 몰아냈습니다.
고려 때에는 북진 정책의 일환으로 서경으로 중시되어 개경과 유사한 중앙 부서의 분소를 설치하는 제도인 분사 제도를 실시하였던 곳입니다.
고려 중기에는 묘청이 이곳에서 서경 천도 운동을 전개하였으며, 무신 집권기에는 최광수가 이곳에서 고구려 부흥을 내세우며 봉기하기도 하였습니다.
조선 시대 들어 임진왜란 당시 조선군과 명군이 연합해 평양성을 탈환하여 전세를 역전시키기도 하였으며, 19세기 후반에는 미국 상선 제너럴 셔먼호가 대동강을 거슬러 평양까지 와서 통상을 요구하며 난동을 부리다가 불태워지기도 했습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신미양요(1871)가 일어나기도 했죠.
조선 시대 이곳을 기반으로 사상인 유상이 활동하였으며, 일제 강점기에는 물산 장려 운동이 시작된 곳이기도 합니다.
① 당은 고구려가 멸망한 직후 평양에 안동도호부를 두었으나 고구려 유민들의 저항으로 바로 요동으로 옮겼습니다.
② 고려 때 정종은 왕식렴 등 서경 세력의 도움 속에서 즉위한 후 서경 천도를 추진하여, 개경 세력과 노역에 동원된
백성들의 반발을 샀습니다.
③ 임진왜란 때 조·명 연합군은 왜군이 차지하고 있던 평양성을 공격하여 크게 승리하였습니다.
④ 병인양요가 일어나기 직전 미국 상선 제너럴 셔먼호는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오면서 통상을 요구하여 평안도 관찰사
박규수가 이를 거절하였으나, 이들이 난동을 부리자 관군과 평양 군민들이 합세하여 제너럴 셔먼호를 불태워 침몰시
켰습니다.
⑤ 최초의 근대적 사립 학교는 1883년에 덕원(원산)에 세워진 원산학사입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⑤번입니다.
9회 고급 34번 문제
34. 서경(평양) 지역의 역사 답②
문제에 주어진 자료는 시기가 다른 두 개의 사료입니다.
두 사료에서 공통으로 의미하는 밑줄 친 '이곳'을 파악하는 것이 문제를 푸는 순서겠죠?
두 개의 사료 모두 생소한 것은 아니라서 사료를 많이 접한 분들은 '이곳'이 어디인지 어렵지 않게 파악할 겁니다.
첫번째 사료를 보면, '수덕이 순조로워 지맥의 근본이며 대업을 만대에 전할 땅, 왕이 춘하추동에 걸쳐 100일 이상 머물러라'라고 나와 있네요.
이 사료는 태조 왕건이 남긴 훈요 10조 중의 일부입니다.
태조는 서경(평양)을 북진 정책의 전진 기지로 중시하였습니다.
두번째 사료에는 '이곳은 대화세의 명당 지역으로 이곳에 궁궐을 세워 천도하면 천하를 병합할 수 있고 금이 재물을 가지고 와 항복할 것이다'라고 나와 있네요.
이는 고려 중기에 일어난 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 당시 묘청이 왕에게 건의한 내용입니다.
따라서 두 자료에 공통적으로 나타난 '이곳'은 서경(평양) 지역이니 평양과 관련된 역사적 사실을 찾으면 되겠네요.
① 진흥왕 순수비는 전국 네 곳에 세워졌습니다.
창녕비(경남 창녕), 북한산비(서울), 황초령비와 마운령비(함경도)로, 평양 지역에 세워진 것은 없습니다.
진흥왕 때 신라가 평양을 차지한 적이 없었으니 당연한 것이겠죠? ㅋ
② 평양은 옛 고조선과 고구려의 수도였던 역사가 깊은 도시입니다.
고려 때는 건국 초부터 북진 정책의 전진 기지로 중시되어 개경과 유사한 중앙 부서의 분소를 설치하는 제도인
분사 제도를 실시하였습니다.
③ 조선 후기의 사상인 만상은 의주로 기반으로 활동하였습니다.
당시 평양을 근거지로 활동하였던 사상은 유상입니다.
④ 세도 정치기에 홍경래의 난이 일어난 지역은 청천강 이북의 평안북도 지역입니다.
⑤ 국채 보상 운동이 시작된 곳은 경북 대구입니다.
일제 강점기에 일어난 물산 장려 운동이 시작된 곳이 평양입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②번입니다.
특정 지역과 관련한 역사 파악 유형
10회 고급 8번 문제
8. 충주와 관련된 역사적 사실 답④
문제에 제시된 (가) 지역을 지도와 연혁을 통해 유추해 보면 됩니다.
(가) 지역의 연혁을 소개한 내용 중에서 12목, 그리고 뒤에 정비된 8목 중 하나, 다인철소 등을 통해 (가) 지역이 충주임을 알 수 있습니다.
문제를 풀 때 (가)의 연혁 내용으로 이 지역이 충주임을 파악할 수 없다면, 문제에 표시된 지도 (가)가 남한강 유역임을 볼 때 (가)는 충주와 단양 중 한 곳으로 보면 될 것입니다.
충주는 통일 신라의 5소경 중의 하나인 중원경이 었던 곳입니다.
충주는 남한강 유역에 위치하여 조선 시대에 가흥창이라는 조창이 설치되었던 지역입니다.
① 진흥왕 순수비는 창녕비(경남 창녕), 북한산비(서울), 마운령, 황초령비가 있죠?
충주 지역에 세워진 순수비는 없네요.
그리고 가까이에 단양 적성비가 있지만 그건 순수비가 아니니 조금 헛갈릴 수도 있는 답지네요.
② 신라 민정문서는 5소경 중 하나였던 서원경 지역의 4개 촌락에 대한 토지의 종류와 면적, 인구, 가구 , 가호, 노비의
수와 3년 동안의 사망, 이동 등을 기록한 문서로, 서원경은 오늘날의 청주입니다.
③ 주진군은 양계에 주둔하는 지방군입니다.
충주는 고려 시대에 5도 중 하나였던 곳으로, 5도에는 주현군이 주둔하였어요.
⑤ 조선 형평사는 백정들이 차별 철폐를 위해 1923년 진주에서 설립한 조직입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④번입니다.
10회 고급 18번 문제
18. 고려 시대 강화도와 벽란도에서 있었던 사실 답④
이 문제는 1점짜리로 조금은 쉬운 문제네요...^^
문제에 주어진 지도에 표시된 지역은 강화도와 벽란도, 그리고 시기는 고려 시대이니, 고려 시대에 이 지역에서 볼 수 있었던 모습을 생각하며 풀면 되겠네요.
답지별로 바로 설명합니다.
① 삼별초는 정부가 개경 환도를 결정하자, 환도에 반대하여 강화도에 남아 항전하다가 진도, 제주도로 옮겨다니면서
끝까지 항전하였으나 제주도에서 여, 몽 연합군에게 토벌되고 말았지요...ㅜ.ㅜ
② 지도에 표시된 벽란도 보이시죠? 예성강 어귀에 있던 벽란도는 대외 무역의 발전과 함께 국제 무역항으로 번성하여
송, 요나라 상인들은 물론, 대식국이라 불리던 아라비아 상인들까지 왕래하였어요.
③ 고려 말 공민왕 때에는 왜구에게 강화도까지 약탈당하고 개경이 위협을 받을 정도였어요.
④ 직지는 청주 흥덕사에거 <직지심체요절>을 인쇄하기 위해 만든 금속활자입니다.
<직지심체요절>은 1377년에 인쇄된,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입니다.
<직지심체요절>보다 앞선 1234년에 <상정고금예문>을 인쇄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나
이는 현재 전하지 않고 있답니다.
⑤ 강화도 피난 시기 이후에는 강화도 지방을 중심으로 한 간척 사업이 활발히 추진되었습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④번입니다.
11회 고급 40번 문제
40. 원산 지역의 역사 답③
(가)에 들어갈 내용을 살펴보려면 ㅇㅇ에 들어갈 지역을 먼저 알아야 겠죠?
첫번째 힌트로 주어진 '강화도 조약 이후의 개항장' 하면 강화도 조약에 따라 개항된 항구는 인천, 원산, 부산이네요.
두번째 힌트는 결정적이네요.
'최초의 근대식 사립 학교가 세워진 곳'.......최초의 근대식 학교는 원산학사라는 것은 잘 알 것입니다.
따라서 두 가지 자료에서 나타나는 공통된 지역은 원산이네요.
그럼 원산의 역사와 관련된 답지를 살펴 보면 되겠네요.
① 서울과 연결된 최초의 철도는 경인선으로, 이는 1899년에 완공되었지요.
따라서 이 지역은 인천을 뜻하겠지요?
② 6·25 전쟁 중에 임시 수도는 부산이었습니다.
③ 원산 노동자 총파업은 일제 강점기에 일어난 최대 규모의 노동 쟁의였습니다.
원산 노동자 총파업은 영국인이 운영하던 원산의 한 석유 회사에서 일본인 감독이 한국인 노동자를 구타한 사건이 계
기가 되어 1929년에 일어나 약 4개월 동안이나 지속되었답니다. 파업 소식이 전해지자, 전국 곳곳의 사회 단체, 청년
과 노동 단체 등에서 성금을 보내 지지하였으며, 일본 노동자들도 동조 파업을 벌였고, 중국, 프랑스, 소련의 노동자
들까지 격려 전문을 보내 왔을 정도로 세계의 주목을 받으며 전개되었답니다. 그러나 일제 경찰의 가혹한 탄압으로
결국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원산 노동자 총파업은 노동자들이 민족 운동에서 중요한 세력으로 등장하였음을 보여 준 대표적 투쟁이었습니다.
④ 일제 강점기 호남 지방에서 일본으로의 쌀 수출 중심 항구는 목포나 군산을 들 수 있겠네요.
⑤ 3·15 부정 선거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가 시작된 곳은 마산입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③번입니다.
12회 고급 45번 문제
45. 원산 지역의 역사 답④
이 문제도 특정 지역의 역사를 나열해놓고 그 지역에 있었던 또다른 역사적 사실을 파악하는 문제입니다.
고대~근대까지의 그 지역 역사적 사실들이 제시되어 있으니, 그 중에서 하나라도 알 수 있으면 어느 지역인지 파악할 수 있겠지요?
고대의 사실을 통해서는 사실 어디인지 잘 모르겠죠?
고려 시대의 사실로 살짝 어디인지 감이 옵니다.
쌍성총관부 관할 지역...쌍성총관부는 서북쪽으로 철령 이북 지역이었다는 거 기억하시죠?
여기서 의주로 개칭되었다....라는 것에 속아 의주를 생각하시면 오답의 세계로 가니 조심!!!
조선 시대에 덕원부....드디어 덕원부라는 명칭이 등장했네요.
근대의 사실에서도 크게 힌트를 잡기 힘드네요.
따라서 이 문제는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의 이 지역 역사에서 힌트를 잡아 풀어야겠네요.
이 지역은 원산입니다.
④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사립 학교는 1883년 덕원부(원산)에 세워진 원산학사입니다.
정부도 같은 해에 통역관 양성을 위한 동문학을 설립하였으며, 1886년에는 육영 공원을 세워 상류층 자제에게
근대 학문을 교육하였습니다.
원산 학사에서는 산수, 과학, 기계, 농업, 양잠, 채광, 일어, 법률, 세계 역사, 지리를 필수 과목으로 교육하였다. 또, 문예반은 한문, 무예반은 병서와 무예를 전공 과목으로 채택하여 가르쳤다. 이는 원산 학사가 전통 학문을 바탕으로 신식 학문을 접목하여 교육을 실시하였음을 보여 준다. 원산 학사는 갑오개혁 때 원산 소학교가 되어 공립 학교로 전환하였다. |
원산은 강화도 조약(1876)에 의해 개항되었던 세 개 항구(인천, 부산, 원산) 중 하나였다는 것도 알아두세요.
① 고려의 대표적인 무역항은 예성강 입구에 있던 벽란도입니다.
② 임진왜란 때 왜군이 파죽지세로 침입해오자 선조는 한양을 버리고 평양을 거쳐 의주까지 피난을 가야 했지요.
③ 조선 후기에 개시 무역(공무역)과 함께 후시 무역(사무역)이 함께 이루어진 곳은 의주와 동래입니다.
⑤ 3·15 부정선거(1960)에 대한 규탄 시위가 선거 당일에 일어났던 곳은 경남 마산입니다.
이후 전국적으로 시위가 확산되어 4·19 혁명으로 발전하고, 결국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를 하게 되지요.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④번입니다.
12회 고급 47번 문제
47. 의주, 단동 지역의 역사 답②
특정 지역을 표시하고 그 지역에 있었던 역사적 사실을 통시대적으로 묻거나, 그 지역에서 볼 수 있는 유물들을 묻는 문제들이 자주 출제됩니다.
이러한 문제들은 교재에서 다뤄주기 힘든 부분입니다.
그 지역과 관련된 여러 사실들, 여러 시대의 관련 사실들을 스스로 조직해 풀어낼 수 있어야 합니다.
평양 지역, 강화도 지역, 원산 지역, 서울이나 한강 유역, 충주 지역, 공주나 부여, 경주 지역, 고령이나 김해 지역 등을 표시하고 관련 사실들을 묻거나 유물을 묻는 문제들이 출제될 수 있으니 공부할 때 스스로 이러한 부분들을 정리, 조합해 보는 연습을 해놓을 필요가 있습니다.
자 그럼 이 문제를 풀어볼까요?
지도에 표시된 지역은 한반도의 신의주 지역, 그리고 중국의 단둥 지역입니다.
이 지역과 관련한 탐구 활동을 하려면 이 지역과 연관이 있는 내용이어야 하니 살펴봅시다.
① 이륭양행...어디서 많이 들어봤죠?
이륭 양행은 아일랜드 사람인 쇼가 중국 단둥에 설립(1919. 5)한 무역회사 대리점이었습니다.
여기 사무실 2층에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교통국 산하 단둥 교통국을 두어 비밀리에 군자금을 운반, 전달하는 역할을
하였어요. 부산에 있던 백산 상회가 같은 역할을 했답니다.
쇼는 1920년에 의열단의 무기 수송을 돕다가 발각되어 일제에 체포되었답니다.
② 서전서숙은 이상설 등이 중국 길림성 연길현 용정에 설립(1906)한 민족 교육 기관이었어요.
아래 지도를 보면 도움이 되겠네요.
③ 용암포는 압록강 하구의 항구로, 러시아는 이를 강제 점령하고 조차해줄 것을 요구하였던 사건(1903)입니다.
④ 거란의 1차 침입(993) 당시 서희는 거란 장수 소손녕과의 외교적 담판을 통해 강동 6주를 획득하였어요.
강동 6주는 아래 지도를 참고하세요.
⑤ 후금의 1차 침입인 정묘호란(1627) 때 정봉수와 이립 등은 의병을 일으켜 관군과 연합해 후금과 싸웠어요.
정봉수는 용골산성에서 큰 전과를 올렸어요.
따라서 지도에 표시된 지역과 관계없는 내용은 ②번, 정답은 ②번입니다.
14회 고급 38번 문제
38. 황해도 지역의 역사 답⑤
이러한 유형의 문제도 한국사능력검정시험에서는 자주 출제됩니다.
두 가지 유형이 자주 출제됩니다.
먼저, 특정 지역을 지도에 표시하고 그 지역과 관련된 문화재(유물, 유적)를 찾거나 역사적 사실을 묻는 문제,
다음으로 이 문제처럼 특정 지역을 설명하는 사료를 제시하고 그 지역에서 있었던 역사적 사실을 통시대적으로 묻는 문제입니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먼저 사료에서 설명하는 지역이 어디인지를 찾고,
그 지역에서 있었던 역사적 사실을 <보기>에서 고르면 됩니다.
사료를 요약해 보면, '마한의 옛땅으로 후에 고구려의 소유가 되었다. 고구려 멸망 후 신라의 영토가 되었고 신라 말에는 궁예가 차지하였다가 태조 왕건이 모두 차지하였다.'
여기까지 보고 어느 지역인지 아는 분이 있겠지만, 한강 유역의 이남인지 이북인지 조금 헛갈리는 분이 많을 겁니다.
그런데 결정적인 힌트가 바로 그 아래 있어요.
'성종 때 국내를 10도(道)로 나눌 때 황주와 해주 등의 관할이 관내도로에 속하였다'라고 나와 있죠?
이것을 보고 사료에서 설명하는 지역이 황주+해주=황해도임을 쉽게 파악할 수 있어요.
그 뒤의 사료는 '서해도로 고쳤다가 조선 태조 때 풍해도로 했다가 지근의 이름(황해도)로 했다'는 것이네요.
우리가 알고 있는 8도의 이름(도명)은 그런 조합으로 지어졌다는 거 상식으로 알고 계세요.
(함경도는 함흥+경성, 평안도는 평양+안주, 강원도는 강릉+원주, 충청도는 충주+청주, 경상도는 경주+상주, 전라도는 전주+나주의 조합입니다)
그럼 이 지역이 황해도 지역임을 알았으니 황해도 지역에서 있었던 역사적 사실을 찾으면 <보기>에서 찾으면 되겠네요.
ㄱ - 통일 신라 때 5소경 중의 하나인 북원경이 설치되었던 지역은 오늘날 강원도 원주입니다.
ㄴ - 원 간섭기에 쌍성총관부가 설치된 지역은 철령 이북이었습니다.
이 지역은 함경 남도 지역에 해당합니다.
ㄷ - 의적으로까지 불린 임꺽정은 황해도를 중심으로 경기·평안·강원도에 걸쳐 광범위하게 활동하였습니다
임꺽정이 도적으로 이름 떨친 시기는 수취제의 문란으로 농민들의 유망이 증가하던 때입니다.
16세기 들어 수취제의 문란으로 농민 생활이 악화되자 농촌에서 유망하는 유민이 증가하고, 유민 중 일부는 도적이
되어 양반과 중앙 정부로 바치는 물품을 빼앗기도 하였습니다.
그 중에서 16세기 중엽(1559~1562년)인 명종 때 황해도와 경기도 일대에서 활동한 임꺽정은 대표적 인물입니다.
ㄹ - 대동법은 광해군 때인 1608년에 경기도에 처음 실시된 이후 마지막으로 황해도까지 실시(1708)되기까지 약 100년
이라는 시간이 소요되었습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ㄷ, ㄹ로 묶인 ⑤번입니다.
15회 고급 6번 문제
6. 청주 지방의 역사적 사실 답③
민정문서는 중, 고등학교 때부터 워낙 중요하게 공부하였기 때문에 문제에 제시된 사진만 보고도 딱 통일 신라의 민정문서라는 것을 파악할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자료에 대해 설명한 글의 '도다이 사 쇼소인(동대사 정창원)에 보관', ''사해점촌, 살하지촌 등의 인구와 논, 밭의 규모 등 경제적 상황이 기록'이라는 중요 포인트를 통해 민정문서임을 알 수 있어요.
통일 신라의 민정 문서는 서원경(청주) 지방의 4개 촌락에 대한 경제적 상황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는 문서입니다.
그러므로 밑줄친 '이 지역'은 청주 지방입니다.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은 고려 말 우왕 때 청주 흥덕사에서 백운 화상이 역대 스님들의 법어·어록 등을 모아 간행(1377)한 것으로,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 활자본(금속 활자로 인쇄된 책)이며,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어 있습니다.
<직지심체요절>은 조선 고종 때 주한 프랑스 공사로 서울에서 근무하였던 콜랭 드플랑시(Collin de plancy)가 프랑스로 가지고 갔다가 프랑스 골동품 수집가인 앙리 베베르(Henri Vever)에게 넘어갔으며, 그가 1950년 사망한 후 유언에 따라 프랑스 국립 도서관으로 이관되어 현재까지 그곳에 있습니다.
① 금관가야는 경남 김해에 세워져 발전하였던 나라입니다.
② 양길은 북원경(원주)을 근거지로 세력을 형성하였습니다.
궁예는 처음에 양길의 휘하에 있으면서 세력을 키워 이후 양길을 몰아내고 후고구려를 세웠지요.
③ 직지심체요절은 청주 흥덕사에서 간행하였습니다.
④ 가흥창은 남한강이 흐르는 충북 충주에 설치된 중요 조창(세곡 보관 창고)입니다.
⑤ 춘향전의 무대는 전남 남원입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③번입니다.
15회 고급 20번 문제
20. 제주도에 대한 탐구 답④
제주도에 대한 설명입니다.
제주도는 일찍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한 곳으로 신석기 유적으로 고산리 유적 등이 있습니다.
제주도는 고려 시대 대몽 항쟁기에 삼별초가 마지막까지 항거한 곳입니다. 몽골은 삼별초의 항쟁을 진압한 후 이곳에 탐라총관부를 설치하여 일본 원정을 준비하고 목마장을 설치하였습니다.
조선 시대에는 유배지로도 활용되었어요.
① 네덜란드 상인인 벨테브레이와 하멜은 조선 후기 효종 시기에 일본으로 가다가 난파 당해 제주도에 표착하였습니다.
이들은 한양으로 이송되어 훈련도간에 소속되어 신식 무기 등을 만드는 일에 동원되었습니다.
② 삼별초는 강화도, 진도, 제주도로 옮겨 다니면 대몽 항쟁을 하였습니다.
이들은 제주도에 항파두리성을 쌓고 최후까지 항전하였으나 끝내 진압되었습니다.
③ 조선 후기 제주도에서 활동한 김만덕은 상업 활동으로 부를 쌓아 제주도의 빈민 구제 활동에 앞장 섰습니다.
④ 조선 후기에 정제두는 강화도에서 양명학을 연구하며 강화학파를 형성하였습니다.
⑤ 광복 후 남한만의 단독 선거인 5·10 총선거 실시에 반대해 제주도에서는 4·3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④번입니다.
16회 고급 45번 문제
45. 인천 지역의 역사 답⑤
한국사능력검정시험에서 출제되는 중요 유형 중의 하나가 특정 지역을 주고 그 지역에 있었던 역사 사실을 통시대적으로 파악, 또는 문화 유산을 파악하는 문제로 출제된다는 것입니다.
주로 각 시대의 도읍지, 또는 역사 사실이 있는 지역을 주고 파악하는 문제입니다.
지금까지 출제된 예를 들면 국내성, 평양, 공주(웅진), 부여(사비), 경주, 개성, 한양 등 역대 도읍지의 지역,
그리고 강화도, 황해도, 충주, 원산, 압록강 유역, 오대산, 충청도(서산, 당진, 예산, 태안) 등 특정 지역의 고대~근대까지의 역사 사실, 문화 유산을 파악하는 문제가 출제되었습니다.
그러니 중요 지역과 관련한 역사 사실이나 문화유산을 정리해 두세요.
문제에 제시된 지도를 보면 어느 지역인 지 파악하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자유 공원(맥아더 동상)', '차이나타운', 그리고 '황해'라는 바다와 닿아 있는 지역.....은 인천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인천은 과거 백제 건국 관련하여 비류가 나라를 건국하려다 실패한 곳이죠.
인천과 관련하여 중요한 역사적 사실들이 많이 일어난 것은 근현대에 이르러서입니다.
강화도 조약으로 문호가 개방되면서 일본이 요구한 3개 항구(인천, 부산, 원산) 중에 하나였죠.
개항 이후에는 1888년까지 각국의 거류지가 마련되었는데 이는 우리나라 최초의 외국인 거류지였답니다.
그리고 1882년에는 인천에 일본 영사관 가청사가 설치되어 최초의 영사가 임명되기도 하였죠.
이 외에도 많은 역사적 사실이 있었던 곳이죠.
① 남연군 묘는 흥선 대원군의 아버지 묘로 충남 예산군에 있습니다.
독일인 오페르트는 흥선 대원군 집권 시기 통상을 요구하다가 거절당하자 남연군의 묘를 도굴하여 이를 볼모로 흥정
하려고 계획하고 묘를 도굴하려 했으나 발각되어 달아났습니다(1868).
이 사건을 계기로 조선에서는 통상 수교 거부 정책이 더욱 강화됩니다.
② 조선 시대에 일본과의 개시(공무역)와 후시(사무역)이 열렸던 곳은 왜관(부산)입니다.
③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사립 학교는 원산학사이며, 이것이 세워진 곳은 원산입니다.
강화도 조약에 따라 원산은 1879년에 개항되었으며, 1883년에는 근대적 사립 학교인 원산 학사가 설립되었습니다.
④ 국채 보상 운동이 전국에서 처음 일어난(1907) 곳은 대구입니다.
⑤ 인천은 개항 이후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외국인의 거류지가 마련되었습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⑤번입니다.
17회 고급 12번 문제
12. 각 항구와 관련된 역사적 사실 답①
한국사능력시험에서는 주요 도시나 항구 등과 관련 있는 역사적 사건이나 사실을 묻는 문제들이 종종 출제됩니다.
이번 문제는 우리나라의 주요 항구와 관련된 사실을 묻는 유형이네요.
여기에 나오는 항구는 주요 도시 등과도 연계 또는 특정 사실을 주고 항구를 찾는 문제로 출제되는 곳이니, 이 기회에 각 항구와 관계된 중요 사실은 꼭 알아두세요.
우선 (가)~(마)의 항구가 어디인지 지리적 정보와 함께 파악하셔야 합니다.
(가)는 원산입니다.
원산은 강화도 조약으로 개항하게 된 3개 항구(인천, 부산, 원산) 중에 하나죠.
개항 이후 이곳 주민들이 합심하여 우리나라 최초로 근대식 사립 학교를 세웠습니다(1883).
1905~1914년에는 일제에 의해 경원선이 설치되었으며, 일제 강점기 가장 대표적인 노동 쟁의인 원산 노동자 총파업(1929)이 있었습니다.
(나)는 인천입니다.
인천도 강화도 조약에 의해서 1883년 개항하였습니다.
인천은 서울과 가장 가까운 개항장이었기 때문에 1888년까지 각국의 거류지가 마련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근대적 시설들이 일찍부터 마련되었으며,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인 경인선이 개통되었습니다.
(다)는 금강 입구의 군산입니다.
군산은 우리나라의 최대 곡창인 호남평야와 근접해 있어 목포와 함께 일제의 쌀 수탈 전초 기지로 이용되었습니다.
(라)는 포항과 부산 사이에 있는 울산입니다.
울산은 신라의 수도인 금성(경주)에서 가장 가까운 항구였습니다.
이 때문에 통일 신라 때에는 국제 무역이 발달하면서 이슬람 상인까지 와서 무역하였답니다.
(마)는 부산입니다.
부산은 일본과 가장 가까운 항구였기 때문에 일찍부터 일본과의 창구가 되었던 항구입니다.
조선 시대 세종 때 일본에게 개항한 3포(부산포, 염포(울산), 제포(창원)) 중의 하나였습니다(1426).
이후 왜변, 왜란 등으로 개항과 폐쇄가 반복되었으며, 임진왜란 당시에는 왜군이 가장 먼저 상륙한 곳이기도 하죠.
임진왜란 이후 일본과의 관계가 점차 정상화되면서 왜관(동래) 개시를 통해 대일 무역이 활발하게 이루어졌습니다.
강화도 조약으로 일본에게 개항된 곳이며, 경부선의 종착지이기도 하죠.
① 여진과의 무역소가 설치된 곳은 두만강을 경계로 하는 국경 지대인 경성과 경흥입니다.
조선은 건국 초부터 이곳에 무역소를 두어 여진이 교역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①번입니다.
19회 고급 5번 문제
5. 고려의 국제 무역항 벽란도 답②
벽란도에 대한 내용은 주로 답지로 제시되는데, 이번에는 단독 문제로 출제되었네요.
고려 시대에 저술된 "동국이상국집", 고려의 역사에 대한 기록인 "고려사"에 기록되어 있으니, 밑줄친 이 항구는 일단 고려의 항구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자료에 나타난 '벽란정'을 통해 고려 시대의 무역항인 '벽란도'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
국신사(國信使)란 고려와 송 사이의 오가던 사신으로, 국가 간의 신뢰를 표하기 위해 신물(信物) 등을 가지고 왕래하였기에 부르던 명칭입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국신사로는 고려 청자를 비색이라며 극찬하였던 송나라 서긍을 들 수 있습니다.
고려 시대에는 송, 요 등 외국과도 무역을 하였습니다.
고려의 대외 무역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은 역시 송과의 무역이었습니다.
그러나 고려 시대에는 북방에 거란, 여진 등이 북방 유목 민족들이 세운 국가들이 육로를 가로막고 있어 송과의 교류는 바다를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이에 따라 개성과 가까운 항구인 예성강 어귀의 벽란도는 대외 무역의 발전과 함께 국제 무역항으로 번성하였습니다.
벽란도에는 송, 일본은 물론 멀리 아라비아 상인들까지 왕래하던 국제적인 무역항이었어요.
당시에 대식국인이라 불리던 아라비아 상인들도 고려에 들어와서 수은, 향료, 산호 등을 팔았는데, 이들을 통하여 고려의 이름이 서방 세계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① 계해약조(1443)에 따라 개방해 준 항구는 부산포, 제포(진해), 염포(울산) 등 3포입니다.
조선은 세종 때 왜구의 침입을 근절하기 위해 왜구의 소굴인 쓰시마섬을 토벌하는 한편, 왜구의 요구를 수용해 3포를
개방하여 무역을 허용하고(1426), 계해약조(1443)를 맺어 제한된 범위 내에서 교역을 허락하였습니다.
② 벽란도는 국제 무역항이었지만, 송과의 무역이 가장 활발히 이루어진 곳이었습니다.
③ 삼별초가 대몽 항쟁을 전개한 거점은 강화도, 진도, 제주도입니다.
④ 통일 신라 당시 장보고가 해상 활동의 중심지로 건설한 것은 청해진(완도)입니다.
⑤ 고려 말 최무선이 화포를 이용하여 왜구를 크게 무찔렀던 곳은 진포(금강 하구)입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②번입니다.
21회 고급 20번 문제
20. 의주(義州)의 역사 답③
회차마다 해설을 하면서 계속 강조하지만, 특정 지역의 역사, 유물을 파악하는 문제는 꼭 1문 이상씩 출제되는 중요한 유형이니, 유사문제까지 집중에 풀어보세요.
역사를 공부할 때, 역사의 무대에 해당하는 지역을 알아두는 것이 필요하죠. 지리부도나 역사부도 등을 통해 우리 역사의 무대가 되었던 지역, 주요 도시 등의 위치를 파악해두는 것이 좋아요. 부도를 보고 숨은그림 찾기를 하듯 서로 찾아보기를 하면 재미있게 지역을 익힐 수 있습니다. 이런 방법을 통해 여기가 평양, 의주, 한양, 공주, 부여, 대구, 경주 등을 정확히 알 수 있어야 해요. 그 다음에 그 지역에 있었던 주요 역사적 사실이나 유물 등을 공부하면 됩니다.
이런 방법으로 공부한 분은 지도에 제시된 (가)가 설명을 읽지 않고도 의주임을 알 수 있어요(제시된 설명은 의주를 차악하는 데 그다지 도움을 주지 못하네요.). 만약 헛갈리면 답지 중에 다른 지역을 가르키는 것을 찾아내면 되겠죠?
지도에서 알 수 있듯 압록강 하류에 위치한 의주는 중국으로 가는 국경 관문이었어요.
의주와 관련하여 시대별로 살펴보죠.
삼국 시대에는 의주 맞은편인 압록강 너머에 있는 서안평을 점령하였다는 역사적 사실을 배웠죠?
고려 전기에는 거란의 지배하에 있었으나, 거란의 1차 침입(993) 당시 서희의 외교적 노력으로 강동 6주를 획득하면서 고려의 영토가 되었어요. 고려는 이때 획득한 압록강~청천강 하류 지역에 강동 6주를 설치하였는데, 흥화(의주)·용주(용천)·통주(선천)·철주(철산)·귀주(구성)·곽주(곽산)가 그것이었어요.
고려 말 우왕 때에 명이 철령 이북의 땅을 차지하려 하자, 최영은 이성계를 시켜 요동 정벌을 단행하였는데, 이성계는 위화도(의주 소속)에서 회군하여(1388) 최영을 제거한 뒤, 군사적 실권을 장악하고 이후 조선을 건국하였습니다.
조선 시대에는 임진왜란 당시(1592) 선조가 한양을 버리고 평양을 거쳐 의주까지 피난을 가기도 했습니다(의주 파천).
조선 후기에는 사상이었던 만상이 의주를 중심으로 대청 무역을 주도하면서 재화를 많이 축적하였습니다.
① 거란의 1차 침입 당시 서희는 거란 장수 소손녕과의 외교적 담판을 통해 이 지역을 포함한 강동 6주를 획득하였어요.
② 이성계는 명을 공격하러 가기 위해 의주에 속한 위화도에 군대를 주둔하였다가 회군하여 실권을 장악하였습니다.
③ 김종서가 여진족을 몰아내고 개척한 6진은 두만강 하류 일대인 종성, 온성, 경원, 경흥, 회령, 부령이었어요.
④ 선조는 임진왜란 때 왜군을 피해 평양, 의주까지 피난하여야 했습니다.
⑤ 만상은 의주를 중심으로 활동하며 대청 무역을 주도하였습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③번입니다.
23회 고급 37번 문제
20. 진주에서의 역사적 사실 답⑤
특징 지역을 주고 그 지역에서 일어난 역사적 사실, 관련 문화재 등을 파악하는 문제 유형도 자주 출제됩니다.
이러한 유형은 교재로 따로 공부하기는 쉽지 않고, 공부한 내용을 스스로 정리해 보는 방법이 중요해요.
특정 지역, 예를 들어 서울, 경주, 공주, 평양, 강화도 등에서 있었던 선사 시대~현대까지의 역사적 사실, 또는 문화 유물들을 파악해 보는 것이죠.
막막하다구요? 그럼 이 유형에서 제시하는 유사기출로 접근해 보세요.
진주 지역에는 선사 시대 유적들이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일찍부터 사람들이 살기 시작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고대에는 가야의 한 지역으로 고령가야가 있었으며, 가야가 멸망하면서 신라에 병합되었죠.
고려 시대에는 983년(성종 2) 전국에 12목을 설치하면서 진주목이 설치되었습니다. 최씨 무신 정권을 연 최충헌은 진강후에 봉해져 진주 일대를 식읍으로 받기도 하였습니다. 무신 정권기 이 지역에서도 천민들의 봉기가 일어났죠.
조선 시대 들어 임진왜란 당시 3대 대첩 중의 하나인 진주 대첩(1592. 10.)이 펼쳐졌어요. 이는 진주성에서 진주 목사 김시민 이하 3,800여 장졸들이 2만의 왜군을 맞아 물리친 전투였으나, 전투에서 김시민 이하 거의 모두 장렬히 전사하였어요. 이후 1593년 6월 왜군은 대군을 동원해 진주성을 공격해 결국 이를 함락하였죠. 이 전투 후 벌어진 축하연에서 논개는 왜장을 끌어안고 남강에 몸을 던져 의로운 죽음을 선택하였답니다.
세도 정치기에는 경상 우병사 백낙신의 수탈에 견디다 못한 농민들이 몰락 양반 출신인 유계춘 등을 중심으로 농민 봉기를 일으켰는데, 이것이 계기가 되어 농민 봉기가 전국으로 확산되었습니다(임술 농민 봉, 1862).
일제 강점기인 1923년에는 백정들이 사회적 차별을 스스로 철폐하기 위하여 진주에서 조선 형평사를 결성하고 여러 사회 운동 단체와 협력하며 형평 운동을 전개하기도 하였습니다.
① 오산 학교는 평안북도 정주에 세워졌어요.
신민회는 실력 양성 운동을 목표로 교육과 산업의 진흥에 힘썼어요.
이에 이승훈은 평북 정주에서 오산학교(1907), 안창호는 평양에 대성학교(1908)를 설립하여 인재를 양성하였어요.
② 기호 흥학회는 1908년 경기, 충청도 출신의 인사들이 서울에서 조직한 교육 단체입니다.
학회는 학교를 설립하고, 민족 의식을 고취하는 교과서를 보급하는 등의 활동을 폈던 단체였어요.
기호 흥학회는 기호 학보를 발행하고 기호 학교를 설립하였어요.
③ 독립 협회가 개최한 관민 공동회는 서울 종로에서 열렸습니다.
④ 대한 광복회(1915~1918)는 대구에서 조직되었어요.
이 단체는 채기중이 조직한 광복단(1913, 풍기)과 박상진이 이끄는 조선국권회복단(1915, 대구)이 통합하여 결성되
었죠. 공화 정체의 근대 국민 국가 수립, 독립군을 길러 일제를 몰아내는 것을 목표로 삼았어요. 이에 필요한 군자금
마련을 위해 일제의 재산을 빼앗고 부호들에게 의연금을 걷었으며, 협조하지 않는 친일 부호를 처단하기도 하였죠.
⑤ 백정들이 자신들에 대한 사회적 차별 철폐 운동을 펴기 위해 진주에 조선 형평사를 설립하였습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⑤번입니다.
24회 고급 30번 문제
30. 강화도의 역사적 사실 답④
강화도, 독도와 울릉도, 제주도, 거문도, 완도 등 섬과 관련한 역사적 사실을 파악하는 문제는 자주 출제되니 한 번씩 꼭 공부해 두세요.
강화도에는 부근리 고인돌을 비롯해 고인돌이 많이 남아 있어요.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고인돌 유적지를 가지고 있는데, 이를 인정 받아 강화도를 비롯한 고창, 화순 고인돌 유적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어요.
마니산 참성단은 마니산 정상에 있는 유적지로, 이곳에서 단군이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고 합니다.
몽골 침입 당시 고려 정부는 강화도로 피난, 이곳에서 끝까지 항전하였는데 이곳에 고려 행궁터가 남아 있죠.
조선 시대에는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던 사고 중의 하나인 정족산사고가 있었어요.
18세기 초 정제두가 강화도로 옮겨 살면서 양명학 연구와 제자 양성에 힘써 강화 학파라 불리는 하나의 학파를 이루었던 곳이기도 합니다.
조선 시대에 국난시 강화도를 피난지로 정하여 1631년(인조 9년) 고려 옛 궁터에 행궁을 건립하였는데, 호란 당시에는 왕족들이 이곳으로 피난하기도 했죠.
정조 때인 1782년에는 왕실 관련 서적을 보관할 목적으로 이곳에 외규장각을 설치하고 왕실이나 국가 주요 행사의 내용을 정리한 의궤(儀軌)를 비롯해 총 1000여 권의 서적을 보관해왔어요.
흥선 대원군 시기에 일어난 병인양요(갑곶진, 문수산성, 정족산성)와 신미양요의 격전지(초지진, 덕진진, 광성보)였어요. 특히 병인양요(1866) 때 프랑스군이 강화도에 침입하면서 일부 서적을 약탈해가면서 건물에 불을 질러 나머지 서적들도 불에 타버렸습니다.
1875년에는 운요호가 이곳에 접근해 서로간에 발포가 일어나기도 하였으며, 강화도 조약이 체결된 곳이기도 합니다.
① 신미양요 당시 어재연이 이끄는 부대는 강화도 광성진에서 끝까지 항전하다가 모두 전사하였습니다.
이때 미군이 가져간 장군기(수자기)를 얼마전 우리나라에 영구임대 형식으로 반환했죠.
②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조약인 강화도 조약(조일 수호 조규)이 체결되었어요.
③ 마니산 참성단은 마니산 정상에 있는 유적지로, 이곳에서 단군이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고 합니다.
④ 거문도에 대한 설명입니다.
갑신정변 직후 조선은 청의 지나친 내정 간섭에서 벗어나려고 러시아와 외교 관계를 강화하고자 하였습니다.
이에 조선에서의 러시아의 세력 확장을 우려한 영국이 거문도를 불법 점령(거문도 사건, 1885~1887)하였어요.
⑤ 강화도에는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던 사고 중의 하나인 마니산 정족산사고가 있었어요.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④번입니다.
25회 고급 31번 문제
31. 각 지역에서 일어난 역사적 사실 답⑤
특정 지역의 역사, 유물을 파악하는 문제는 꼭 1문제 이상씩 출제되는 중요한 유형이니, 유사문제까지 집중에 풀어보세요.
역사를 공부할 때, 역사의 무대에 해당하는 지역을 알아두는 것이 필요하죠. 지리부도나 역사부도 등을 통해 우리 역사의 무대가 되었던 지역, 주요 도시 등의 위치를 파악해두는 것이 좋아요. 부도를 보고 숨은그림 찾기를 하듯 서로 찾아보기를 하면 재미있게 지역을 익힐 수 있습니다. 이런 방법을 통해 여기가 평양, 의주, 한양, 공주, 부여, 대구, 경주 등을 정확히 알 수 있어야 해요. 그 다음에 그 지역에 있었던 주요 역사적 사실이나 유물 등을 공부하면 됩니다.
또한 강화도, 독도와 울릉도, 제주도, 거문도, 완도 등 섬과 관련한 역사적 사실을 파악하는 문제는 자주 출제되니 한번씩 꼭 공부해 두세요.
① 영국군이 불법으로 점령하였던 역사가 있는 섬은 거문도입니다.
갑신정변 직후 조선은 청의 지나친 내정 간섭에서 벗어나려는 목적으로 러시아와 연결하려는 움직임을 보입니다.
이에 러시아의 남하를 막기 위해 세계 각 지역에서 대립하던 영국은 조선에서의 러시아의 세력 확장을 견제하기 위해
거문도를 불법으로 점령(1885~1887)하였습니다.
② 독립협회는 러시아의 절영도 조차 요구를 저지시켰어요.
1897년 러시아는 저탄소(선박 연료인 석탄을 보관하는 장소)를 설치를 위해 절영도(오늘날 부산 영도)를 조차하려고
시도합니다. 그러나 이 시도는 독립 협회가 주도한 반대 운동으로 좌절되었어요.
③ 삼별초가 최후의 대몽 항쟁을 전개한 곳은 제주도입니다.
삼별초는 개경 환도에 반대하며 강화도, 진도, 제주도로 옮겨 가며 4년간(1270~73) 항쟁하였습니다.
④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한 사고가 있었던 곳은 조선 전기에는 한성(춘추관)과 충주, 전주, 성주, 그리고 조선 후기에는
춘추관·묘향산(후에 전라도 적상산)·태백산·오대산·마니산(강화도, 후에 정족산)이었어요.
실록은 전쟁이나 각종 재난으로부터 안전한 곳을 선택해 사고(史庫)를 설치하여 보관하였어요. 조선 전기에는 4개의
사고(춘추관·충주·전주·성주)를 두었어요. 임진왜란 때 전주 사고본을 제외한 사고의 실록이 소실되자 전주 사고본을
가지고 다시 4부의 실록을 추가로 제작한 후 사고의 위치도 더 안전한 곳으로 변경하여 총 5개의 사고(춘추관·묘향산
·태백산·오대산·마니산(강화도))에 각각 1부씩 보관합니다. 마니산 사고의 실록은 병자호란 당시 입은 피해를 복구한
후 숙종 때 가까운 정족산 사고로 옮겼고(1678), 묘향산 사고본은 1633년에 전라도 적상산 사고로 옮겼어요.
⑤ 독도에 대한 설명입니다.
대한제국은 울릉도·독도에 대한 행정 관리를 강화하기 위한 방안 수립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이 지역에 대한 관제의
개정 및 격상을 단행하였어요. 이에 대한제국 칙령 제41호(1900. 10. 25.)를 통해 울릉도를 울도군으로 승격시키고
울릉도 도감을 울도군 군수로 격상하는 관제 개혁을 단행하면서 독도도 관할하게 함으로써 독도가 우리의 영토임을
분명히 밝혔습니다(이를 기념하여 2000년에 10월 25일, 이 날을 독도의 날로 지정하였습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⑤번입니다.
특정 지역과 관련된 문화유산(유물, 유적) 파악 유형
2회 2급 32번 문제
32. 개성의 문화유산 답⑤
이 문제는 개성(개풍군)에 있는 문화재를 고르면 되는 간단한 문제네요.
㉠ - 보통문은 개성이 아니라 평양에 있습니다.
개성에 남아 있는 건축물은 남대문, 만월대 터 등이 있습니다.
조선 초기에는 사원 위주의 고려 건축과는 달리, 궁궐, 관아, 성문, 학교 등이 건축의 중심이 되었어요.
건국 초기에 도성을 건설하고, 경복궁을 지었으며, 곧이어 창덕궁과 창경궁을 세웠습니다.
도성의 정문인 숭례문은 고려의 건축 기법과는 다른 방식을 채택하여 발전된 조선 전기의 건축을 대표합니다.
개성의 남대문과 평양의 보통문은 고려 시대 건축의 단정하고 우아한 모습을 지니면서 조선 시대 건축으로 발전해
나가는 형태를 보입니다.
㉡ - 평안도 강서군에 있는 강서대묘의 사신도 중 북쪽의 방위신인 현무도입니다.
㉢ - 영통사 대각국사비는 개성에 있는 유물로, 대각국사 의천의 업적을 새긴 비입니다.
이 비의 비문은 김부식이 지었답니다.
㉣ - 고려 전기에 제작된(1020) 현화사 7층 석탑은 개성에 남아 있습니다.
㉤ - 고려 왕조를 유지하고자 했던 온건파 사대부 정몽주가 이방원 수하에게 죽음을 당한 선죽교는 개성에 있어요.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 ㉣, ㉤으로 묶인 ⑤번입니다.
3회 2급 16번 문제
16. 오대산에 있는 문화유산 답①
조금은 생소하게 강원도 오대산에 있는 유적, 유물들을 물어보는 문제입니다.
오대산은 얼마전 동계 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된 강원도 평창군에 있는 산으로, 여기에는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상원사(상원사 동종이 유명)와 월정사(월정사 팔각 9층 석탑이 유명)가 있습니다.
① 상원사 동종은 우리나라의 현존하는 동종 가운데 가장 오래된(725) 범종입니다.
그러나 삼국 시대가 아니라, 통일 신라 때 만들어졌어요.
② 정변을 통해 왕위에 오른 세조는 불교와 관계 깊은 인물입니다.
지금의 탑골 공원 자리에 원각사를 세우기도 했지요.
세조는 왕위에 오른 직후, 몸에 난 종기를 불력(佛力)을 빌려 고치고자 상원사로 요양을 가 이곳에서 문수동자를 만나
질병을 치료했다는 전설이 남아 있습니다. 최근에 이 동자상 안에서 발견된 유물에 ‘조선 세조의 둘째 딸 의숙공주 부
부가 세조 12년(1466)에 이 문수동자상을 만들어 모셨다’는 내용이 적혀 있어 이 이야기를 뒷받침해주고 있습니다.
이 상원사의 문수동자상은 예배의 대상으로서 만들어진 국내 유일의 동자상이랍니다.
③ 고려 시대 석탑은 다각 다층탑이 많았는데, 송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오대산 월정사 팔각 9층 석탑과 고려 후
기의 석탑으로 원의 석탑을 본뜬 경천사 10층 석탑이 대표적입니다.
④ 상원사를 중수할 때 세조가 왕비와 함께 보낸 선을 행하는 취지를 담은 발원문(發願文)이랍니다.
⑤ 월인석보는 보물 제745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소장처에 따라 일련번호를 정하였습니다.
월정사에 소장된 월인석보는 보물 제745-5호입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①번입니다.
5회 고급 6번 문제
6. 백제 유적지와 관련된 사실 답④
갑 - 공주 무령왕릉에 대한 설명입니다.
벽돌무덤은 중국 남조의 영향을 받은 무덤 양식으로, 공주 송산리 고분군에 남아 있습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무령왕릉입니다.
을 - 낙화암은 백제의 마지막 수도였던 부여의 부소산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백제 멸망시 수많은 궁녀들이 신라와 당군을 피해 이곳에서 백마강으로 투신하였다고 합니다. 삼국유사에는 이곳을 타사암이라 하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요.
병 - 서울에는 백제 초기의 도성 유적인 풍납동 토성과 몽촌 토성, 그리고 석촌동 돌무지무덤 등 대형 돌무지무덤이 남아 있습니다.
정 - 나주를 중심으로 한 영산강 유역에 대한 설명입니다.
마한(목지국이 주도)은 삼한 전체를 이끄는 주도 세력이었으나, 점차 백제에게 밀려 나주를 중심으로 하는 영산강 유역으로 그 영역이 축소되었다가 백제 근초고왕 때 완전히 정복되었습니다. 영산강 유역에서는 대형 옹관으로 만든 독무덤이 많이 발굴되는데, 대표적인 것이 나주 신촌리 고분군입니다. 여기에서는 대형 옹관(항아리) 내부에서 금동관이나 금동 신발 등이 발굴되어 이 지역의 지배자의 무덤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마한이 백제에게 정복된 이후에도 마한의 토착 집단이 독자적인 세력과 문화를 유지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어요.
무 - 익산 미륵사지에 대한 설명입니다.
미륵 신앙을 바탕으로 무왕 때 창건된 미륵사는 3탑 3금당의 3원식(하나의 금당에 하나의 불탑이 세 개로 구성) 가람 배치를 특징으로 합니다. 오늘날 사원은 모두 소실되고 3개의 석탑 중 서탑(미륵사지 석탑)과 당간 지주만 남아 있습니다. 이 탑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고 규모가 큰 석탑입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④번입니다.
6회 고급 4번 문제
4. 부여 지역의 백제 문화유산 답④
백제의 세 번째이자 마지막 수도였던 부여에는 백제와 관련한 많은 문화유산이 남아 있습니다.
① 왕흥사지는 왕흥(王興)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기와 조각이 발견되어 그 위치를 알게 되었습니다.
삼국유사에는 백제 법왕이 왕흥사를 세우려 터를 닦았으나 세우지 못하고 죽자 아들 무왕이 완성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2007년에는 왕흥사지 목탑터를 발굴하는 과정에서 백제 시대의 사리 장엄구가 발견되었습니다.
② 규암면 외리 절터 유적에서는 산수무늬·산수봉황문무늬·산수귀신무늬·봉황무늬·연화무늬 등 불교와 도교적 요소를
띠는 다양한 무늬의 벽돌이 발굴되었습니다.
특히, 산수무늬 벽돌은 산과 구름, 신선이 사는 집 등이 조작되어 있어 도교적 영향을 알 수 있습니다.
③ 부여 정림사지 5층 석탑은 익산 미륵사지 석탑과 함께 목탑 양식을 하고 있는 백제를 대표하는 석탑입니다.
1층 탑신에 당의 장수 소정방이 백제 정벌을 기념하여 새긴 ‘대당평백제국비명’이라는 글 때문에 ‘평제탑’이라고
불리기도 하였으나, 절터 발굴 과정에서 ‘정림사’라고 새겨진 기와가 발견되어 정림사지 5층 석탑으로 불립니다.
④ 궁남지는 백제 무왕이 만든 별궁 연못으로, 백제의 조경 기술을 엿 볼 수 있습니다.
백제 금동 대향로는 궁남지가 아니라, 부여 능산리 고분군 사이 절터의 한 구덩이에서 우연히 발굴되었어요.
⑤ 부여 능산리 고분군은 왕실의 무덤군으로, 규모는 작지만 세련된 굴식 돌방무덤으로 조성되어 있습니다.
1호분에서는 사신도 등이 그려진 벽화가 발견되었습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④번입니다.
6회 고급 10번 문제
10. 영주와 안동 지역의 문화 유산 답④
답사할 지역이 영주와 안동 지역이니, 답사 보고서에 첨부될 수 있는 사진은 이 지역에 남아 있는 문화유산이어야 합니다.
영주와 안동에는 고려~조선 시대와 관련한 불교, 유교와 관련 문화유산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영주에는 부석사(무량수전, 소조 여래 좌상), 소수 서원(풍기), 안동에는 하회 마을을 포함한 다양한 고택, 도산 서원, 병산 서원, 봉정사(극락전), 안동 이천동 마애 여래 입상 등이 있습니다.
①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입니다.
고려 시대의 목조 건축물로, 소조 여래 좌상이 모셔져 있으며, 주심포 양식과 배흘림 기둥이 특징입니다.
② 안동 봉정사 극락전입니다.
고려 시대인 1363년에 중수되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이며, 주심포 양식과
배흘림 기둥이 특징입니다.
③ 안동 신세동 7층 전탑입니다.
통일 신라 때인 8세기에 건축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전탑입니다. 기단에는 8부 중상과 사천왕상을 새겨
놓았고, 계단을 설치하여 1층 몸돌에 만들어진 감실을 향하도록 하였습니다.
④ 하남에 있는 하남 하사창동 철조 석가 여래 좌상(광주 춘궁리 철불)입니다.
고려 초기에는 이 불상처럼 대형 철불이 많이 만들어졌다는 특징이 있어요.
⑤ 안향 영정으로, 영주 소수 서원(박물관)에 있습니다.
안향은 고려 후기 충렬왕 때 고려에 성리학을 처음으로 소개한 유학자입니다. 조선 중종 때 풍기 군수 주세붕은
안향을 추모하면서 후진을 교육하기 위해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인 백운동 서원을 세웠습니다.(1543). 이후 풍기
군수로 부임한 이황의 건의로 국가로부터 소수 서원이라는 현판을 하사 받아 최초의 사액 서원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④번입니다.
6회 고급 29번 문제
29. 남한강 유역의 문화유산 답④
이 문제도 유사 기출문제로 분류해보고 올립니다.
남한강 유역에 있는 유적지와 관련 역사를 알아보는 문제네요.
우리가 흔히 한강이라 불리는 강은 북쪽에서 흘러내려오는 북한강, 그리고 남쪽에서 흘러내려오는 남한강이 양평 양수리에서 하나의 강으로 합쳐져 흘러 강화도 앞에서 바다와 만난답니다.
여기에 나와 있는 남한강은 충북 동북부(충주, 단양)~강원 남서부(원주)~경기 남동부(여주)를 지나 양평까지 흐르죠.
(가) 남한강 상류 지역은 충북 충주, 단양 지역으로 이 지역은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석회암 지대라 시멘트 공업이 발달한
곳입니다. 석회암 지대는 동굴이 많이 형성돼 단양 수양개 유적, 단양 금굴, 단양 상시 바위그늘 유적 등의 구석기 유적이 많이 남아 있어요.
(나) 중원 고구려비는 충주에, 단양 적성비는 단양에 남아 있죠.
한강 유역을 둘러싸고 삼국이 치열하게 경쟁하였음을 알려주는 유물들입니다.
(다) 남한강 유역에는 많은 사원들이 남아있는데, 그 중에서 흥법사지(원주), 거돈사(원주), 신륵사(여주) 등이 유명하죠.
(마) 탄금대는 충주에 있는 유적으로, 임진왜란 때 신립 장군이 배수진 전략을 구사하다 패한 곳입니다.
법천사 지광국사 현묘탑은 고려 시대 국사였던 지광국사의 승탑(부도)입니다. 강원도 원주에 있는 법천사지에 세워져 있었으나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들에 의하여 일본 오사카(大阪)까지 불법 반출되었다가 다시 반환되어 현재 용산에 있는 국립 중앙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라) 남한강 유역에도 충주 가흥창, 원주 흥원창 등 조창들이 많이 설치되었습니다.
그러나 공세창(충남 아산), 영산창(전남 나주)은 모두 남한강과 무관한 바닷가에 위치한 조창입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④번입니다.
9회 고급 38번 문제
38. 강화도의 문화유산 답⑤
강화도의 문화 유산이나 역사적 사실을 묻는 문제는 자주 출제되니 꼭 꼼꼼하게 알아두세요.
이 문제는 얼핏 어려워 보일 수도 있으나 답은 의외로 너무 쉽게 찾아집니다.
① 18세기 초 정제두는 강화도로 옮겨살면서 양명학 연구와 제자 양성에 힘써 강화학파라는 하나의 학파를 이루었어요.
그러나 제자들 대부분이 정권에서 소외된 소론이었기 때문에 그의 학문은 집안의 후손들과 인척을 중심으로 가학(家
學)의 형태를 띠며 계승되었어요. 강화 학파는 양명학을 바탕으로 역사학, 국어학, 서화, 문학 등에서 새로운 경지를
개척해 갔으며 실학자들과도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았습니다.
② 강화도에는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 무덤 형태인 고인돌 유적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고인돌 유적지로, 이를 인정 받아 고인돌 유적(강화도 고인돌, 고창 고인돌, 화순 고인돌 유적)
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었답니다.
③ 마니산 참성단은 마니산 정상에 있는 유적지로, 이곳에서 단군이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고 합니다.
④ 광성보는 중요한 요새로, 신미양요 당시 어재연 장군이 이곳에서 분투하였습니다.
⑤ 병자호란 당시 인조가 피난했던 남한산성은 경기도 광주시의 남한산에 있죠?
왕을 제외한 세자들이 강화도로 피난하다가 청에게 잡히는 바람에 인조는 남한산성에서 삼전도에 나와 항복을 했죠.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⑤번입니다.
9회 고급 50번 문제
50. 안동 하회 마을과 경주 양동 마을 답④
2010년 브라질 브라질리아에서 열린 제34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문화재청이 신청한 '한국의 역사마을 : 하회와 양동'이 받아들여져 유네스코 세계유산(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총 10건의 세계문화유산을 보유하게 되었습니다.
유네스코는 등재 결의안에서 '한국의 역사마을 : 하회와 양동'은 주거 건축물과, 정자, 정사, 서원 등의 전통 건축물들의 조화와 그 배치 방법 및 전통적 주거 문화가 조선 시대의 사회 구조와 독특한 유교적 양반 문화를 잘 보여주고 있으며, 이러한 전통이 오랜 세월 동안 온전하게 지속되고 있는 점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되기에 손색이 없다고 평가했습니다.
안동 하회 마을은 풍산 유씨의 씨족마을입니다.
그리고 경주 양동 마을은 월성 손씨와 여강 이씨 두 가문이 500년 넘게 대대로 살아온 마을입니다. 현재의 양동마을이 이뤄진 것은 양민공 손소(1433~84)가 양동으로 장가와서 처가 마을에서 살면서부터입니다. 손소에 이어 그의 사위가 된 찬성공 이번(1463~1500)도 양동의 처가로 옮겨와 그의 후손들이 처가 마을에 살면서 손씨와 이씨의 집성촌이 된 곳입니다.
① 수원 화성에 대한 설명입니다.
수원 화성은 1997년 12월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② 경주 석굴암에 대한 설명입니다.
불국사와 함께 1995년 12월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③ 합천 해인사 장경판전에 대한 설명입니다.
이 건물은 1995년 12월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⑤ 서울 종로에 있는 종묘에 대한 설명입니다.
종묘는 1995년 12월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10회 고급 9번 문제
9. 평양, 강서 지역의 문화유산 답②
이 문제는 3점 문제치고는 조금 쉬운 문제입니다.
아래에 제시해드렸지만 12회 고급 3번 문제도 동일한 유형으로 출제되었죠?
그 문제는 2점 배점입니다...^^
답지로 제시된 유적에 유적명을 제시해주지 않았지만, 교과서에 실려 있는 일반적인 유적이 답지로 제시되었으니 아주 어렵게 느껴지지는 않았을 겁니다.
문제의 지도에 동그라미 친 부분은 평양 부근입니다.
따라서 이 지역에서 발견된 고구려 유물을 찾으면 되겠네요.
① 중국 길림성 집안에 있는 장군총입니다.
② 평남 강서에 있는 강서 대묘에 남아 있는 사신도 중 북쪽 방위를 나타내는 현무도입니다.
③ 중국 요령성 환인에 있는 고구려 첫 도읍지인 오녀 산성입니다.
④ 중국 길림성 집안에 남아 있는 무용총 수렵도입니다.
⑤ 중국 길림성 집안에 있는 광개토 대왕릉비입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②번입니다.
12회 고급 3번 문제
3. 평양 강서 지역의 문화유산 답⑤
이 문제도 어려웠죠?
사실 이런 문제들이 다른 어떤 문제보다도 어렵게 느껴졌을 겁니다.
비슷한 문제가 10회 고급 9번 문제에 출제되었고, 답도 사신도로 동일합니다.
다음은 국내성(중국 길림성 집안)에 있는 유물이 아닌 것을 찾는 문제가 나올 수도 있겠네요.
자 그럼 문제해설을 해볼까요?
우선 지도에 빗금친 지역이 평안도와 황해도 일부 지역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지역에 있는 문화유산, 또는 지역과 관련있는 역사적 사실을 묻는 문제는 단골이니 중요 지역은 꼭 알아두세요.
아랫부분에 중요 지역은 다시 정리해드릴게요.)
자, 그럼 평양, 황해도 지역과 관련있는 문화 유산, 그중에서도 문제 답지에는 모두 벽화가 제시되어 있으니
평양, 황해도 지역의 무덤에 그려졌을 벽화를 찾으면 되겠지요?
사실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이러한 문제는 틈틈이 벽화들을 눈여겨 봐둬야함을 느끼게 해줍니다.
이 문제를 기술적으로 푸는 법을 알려드릴게요.
고구려 무덤 중에 벽화가 그려진 무덤양식은 굴식 돌방무덤입니다.
굴식 돌방무덤에 그려져 있는 벽화는 시기에 따라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초기에는 주로 무덤 주인의 생활을 표현한 그림이 많았으나, 후기로 갈수록 점차 추상화되어 사신도 같은 상징적 벽화가 많이 그려지게 됩니다.
평양은 고구려의 마지막 수도(도읍)였으니 당연히 후기의 특징인 사신도 같은 벽화들이 많이 그려졌겠지요?
그러므로 제시된 벽화가 어느 지역, 어느 무덤에 그려지 벽화인지 모르더라도 고구려 벽화의 특징을 알고, 평양이 고구려 마지막 수도였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확률적으로 ⑤번을 답으로 골라 맞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여지겠죠?
그럼 답지에 제시된 벽화들을 하나씩 살펴볼까요.
① 국내성이 있던 중국 길림성 집안(지린성 지안) 각저총에서 발견된 것으로 고구려 귀족의 생활 모습을 알려주는 벽화
입니다.
② 중국 길림성 집안 각저총에서 발견된 씨름도로 고구려 때부터 씨름을 했음을 알려주는 벽화입니다.
③ 중국 길림성 집안 오회분에서 발견된 달의 신을 그린 벽화입니다.
④ 중국 길림성 집안 무용총에서 발견된 수렵도로, 고구려인들의 씩씩한 기상을 잘 나타내주는 벽화입니다.
⑤ 평남 강서대묘에 그려진 사신도 중 남쪽의 방위신인 주작을 그린 벽화입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⑤번입니다.
※☆★☆중요하게 알아두자. ------------------------------------------
이렇게 지역을 표시해놓고 관련 유물, 유적을 찾는 문제가 출제될 수 있는 곳은
고구려의 수도인 국내성(중국기림성 집안), 평양,
백제의 수도였던 한강 유역, 공주(웅진), 부여(사비)와 수도는 아니었지만 익산 지역,
신라의 수도였던 경주를 들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지역과 관련 있는 유물들을 한번쯤은 파악해 두기 바랍니다.
----------------------------------------------------------------------
이 문제와 관련하여 <시험전 꼭보기>나 삼국시대 자료실에 올려져 있는 고구려 벽화 내용을 한번씩 읽어보신 분이면
이 문제를 쉽개 맞출 수 있었을 겁니다.
고구려 벽화의 특징은 언제든지 시험에 출제될 수 있으니 꼭 알아두세요.
※고구려 벽화 --------------
고구려는 초기에 주로 돌무지무덤을 만들었으나, 점차 굴식 돌방무덤으로 바꾸어 갔습니다.
굴식 돌방무덤은 돌로 널방을 짜고 그 위에 흙으로 덮어 봉분을 만든 것으로, 널방의 벽과 천장에는 벽화를 그리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무덤은 만주 집안, 평안도 용강, 황해도 안악 등지에 널려 있답니다.
고구려 고분의 특징 중 하나가 천장의 모줄임 구조로, 이는 발해 고분(대표적으로 정혜공주 묘)으로도 이어졌어요.
고분 벽화는 당시 고구려 사람의 생활, 문화, 종교 등을 파악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입니다.
초기에는 주로 무덤 주인의 생활을 표현한 그림이 많이 있고, 후기로 갈수록 점차 추상화되어 사신도 같은 상징적 그림으로 변하였다는 것 꼭 알아두세요.
13회 고급 5번 문제
5. 경주 지역에 남아 있는 문화유산 답⑤
이 문제 유형도 자주 출제된다고 말씀드렸죠?
12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3번 문제 해설에서 이전에도 동일하게 출제되었던 문제유형이라고 해설하면서 경주를 포함해 중요하게 알아두어야 할 지역들을 선정해 알려드렸어요.
아래 링크를 클릭하고 참고하세요.
http://cafe.daum.net/hankuksalove/mXDt/49
특정 지역을 표시하고 그 지역에서 발굴된 문화유산이나 그 지역에서 있었던 역사적 사실을 묻는 문제들은 앞으로도 한국사능력검정시험에서 자주 나오는 유형으로 자리잡을 것이니 꼭 공부해두세요,
문제의 지도에 표시된 지역이 경주임을 파악하는 것은 식은죽 먹기죠?
모르겠다면 교과서에 제시된 지도에서 고대~근세까지의 중요지역을 꼭 파악해두세요.
삼국의 도읍, 중요 유적지, 가야의 금관가야와 대가야 위치, 신라의 5소경, 청해진, 고려의 3경과 12목, 조선의 4군 6진, 팔도 등등 중요 지역은 꼭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 문제에 표시된 지역은 앞서말했듯 경주 지역이니,
문두에서 이 지역에서 볼 수 있는 문화 유산이 아닌 것을 고르라고 했으니 그것을 찾으면 됩니다.
이 말은 경주에서 출토되었어도 다른 곳, 예를 들어 타 지역 박물관 등에 있으면 볼 수 없는 것이고, 다른 곳에서 발굴된 문화유산이어도 경주에서 볼 수 있으면 되는 거네요.
① 경주 남산 근처에 있는 포석정이네요.
포석정은 전복 모양으로 생긴 유상곡수(流觴曲水)에 술잔을 띄워 놓고 시를 읊으며 연회를 하던 장소입니다.
② 경주 남산 아래에 있는 경주 배동 석조 여래 삼존 입상입니다.
포석정 근처에 위치하고 있어요.
이 불상은 중앙의 본존불과 좌우 협시불로 구성된 삼존 입상으로, 푸근한 자태한 부드러운 미소가 그 특징입니다.
③ 경주에 있는 분황사탑입니다.
특이하게 석재를 벽돌 모양으로 다듬어 쌓은 신라의 탑으로, 지금은 3층까지만 남아 있습니다.
④ 국보 제275호 기마 인물형 토기(騎馬人物形土器)입니다.
이 토기는 김해에서 출토된 가야 토기로 추정되지만 현재 국립 경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http://cafe.daum.net/hankuksalove/bRb3/43
기마 인물형 토기와 유사한 형태로 신라에서 만들어진 국보 제91호 도제 기마인물상(陶製騎馬人物像)은 현재 국립 중
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답니다.
http://cafe.daum.net/hankuksalove/bRb3/226
⑤ 전남 구례 화엄사에 있는 화엄사 4사자 3층 석탑입니다.
이 석탑은 통일 신라의 석탑으로 2층 기단 위에 3층 탑신을 얹은 후 꼭대기에 상륜부를 얹어놓은 전형적인 신라 석탑
의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특히 위층 기단의 사자 조각은 탑 구성의 한 역할을 하고 있어 불국사 다보탑과 더불어 우리나라 이형(異形) 석탑을 대
표하는 석탑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어요.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⑤번입니다.
13회 고급 29번 문제
29. 각 지역의 문화유산 답⑤
이 문제 형식도 자주 사용되네요.
지난 12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30번 문제에서는 <역사속의 경쟁자>를 이 형식으로 해서 출제했었죠?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문화 유산을 찾는 문제네요.
이런 문제를 풀 때는 두 가지를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첫째, 제시된 지역에 있는 문화 유산이 아닌 것(지역과 문화유산을 잘못 연결한 것)을 찾는 문제인가?
또는, 지역과 문화 유산이 옳게 연결되었으나 최고가 아닌 문화 유산을 제시해 놓은 문제인가를 구별해야 합니다.
이 문제는 모두 최고의 문화유산을 제시해 놓았네요.
그러니 제시된 대상 지역에 있는 문화 유산이 아닌 것을 찾으면 됩니다.
(가) 약현 성당은 서울 중림동에 있는 성당입니다.
약현 성당은 한국 최초의 서양식(고딕식) 벽돌 건물로, 1892년에 완공되었습니다.
정동 교회나 명동 성당도 오래된 건물들이나 1898년에 완공되었답니다.
(나) 미륵사지 석탑은 전북 익산에 있는 현존하는 석탑 중 가장 오랜 된 석탑입니다.
이 탑은 목탑의 형태를 많이 지니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현재 서탑만 일부 남아 있었는데, 해체, 복원 과정이 한참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동탑은 서탑을 참고하여 새로 복원하여 놓았습니다.
(다) 소수 서원은 경북 영주에 있는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 서원입니다.
이 서원은 풍기 군수 주세붕이 세운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인 백운동 서원인데(1543), 후일 풍기 군수 이황의 건의로
최초의 사액 서원이 되면서 소수 서원으로 개칭되었습니다.
(라) 봉정사 극락전은 경북 안동에 있으며,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목조 건축물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봅니다.
이 시기 건축물들인 부석사 무량수전(영주), 수덕사 대웅전(예산)과 같이 주심포 양식, 배흘림 기둥이 특징입니다.
(마) 상원사 동종은 오대산이 있는 강원도 평창에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현존하는 동종 가운데 가장 오래되고(725) 아름다운 범종입니다.
우리가 잘알고 있는 성덕대왕 신종(에밀레종)은 771년에 완성되었답니다.
⑤ 청주와 관련 있는 최고의 문화유산은 직지심체요절을 들을 수 있겠네요.
청주 흥덕사에서 제작된 <직지심체요절>은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으로, 현재 이 문화유산은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소장하고 있어요..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⑤번입니다.
17회 고급 9번 문제
9. 공주와 부여의 백제 문화유산 답①
백제의 수도였던 공주와 부여에 남아 있는 유적과 유물을 파악하는 문제입니다.
(가)~(마) 유적, 유물 이름이 제시되어 있으니 각각의 특징을 파악하면 되겠네요.
하나씩 살펴보자구요.
(가) 송산리 고분군은 공주에 있는 무덤입니다.
웅진(공주) 시기(475~538) 대표적 무덤은 바로 무령왕릉입니다.
무령왕릉은 중국 남조의 영향을 받은 벽돌무덤인 것 아시죠?
송산리 고분군에는 무령왕릉을 포함해 총 7기의 무덤이 있는데, 그중 6호분은 무령왕릉과 같은 벽돌무덤이면서 벽 네 면의 일부에 사신도를 그려넣은 벽화가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나) 공산성은 백제가 웅진(공주)에 도읍한 시기 궁궐이 있던 도성을 방어하기 위해 축성된 산성(山城)입니다.
(다) 정림사지는 절터와 백제의 정림사지 5층 석탑, 그리고 고려시대 때 만들어진 석불 좌상이 남아 있습니다.
(라) 궁남지는 백제의 별궁 연못입니다.
궁남지의 조경 기술이 일본에 건너가 일본 조경의 원류가 되었다고 합니다.
(마) 능산리 고분군, 능사터에서는 최근에 도교 사상이 반영된 백제 금동 대향로가 발견되었습니다.
능산리 고분군 중 1호분에서는 사신도 벽화가 발견되었습니다.
그리고 능산리 사지에서는 ‘백제 창왕명 석조사리감’이 발견되기도 하였습니다.
① 돌무지덧널무덤은 신라만의 독특한 무덤 양식입니다.
돌무지덧널무덤은 다른 무덤에 비해 도굴이 어려워 금관을 비롯한 껴묻거리(부장품)가 발굴되었습니다.
백제의 벽돌무덤인 무령왕릉에서도 금관을 비롯한 다양한 유물이 대량 발굴되었다는 것도 알아두세요.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①번입니다.
20회 고급 25번 문제
25. 안동 지역의 문화유산 답③
특정 지역, 특정 도시를 제시하고 그 지역에서 일어난 역사적 사실, 또는 문화유산에 대한 문제를 파악하는 문제는 한국사능력시험에서 빠지지 않고 출제되는 유형입니다.
이 문제는 3점 배점이지만 문제가 쉽습니다.
한국사 공부를 한 분이라면 '봉정사 극락전'만 보고도 안동에 있는 고려 시대의 목조 건축물을 생각할 수 있을거예요.
또한 조선 시대의 병산 서원, 고려 시대에 만들어진 이천동 마애 여래 입상도 유명하니 안동은 금방 파악할 수 있습니다
제시된 자료를 하나씩 간단하게 살펴 보죠.
봉정사 극락전(1363년 중수, 13세기 초로 추정)은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목조 건축물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봅니다.
이천동 마애 여래 입상은 지역적 특색이 잘 나타나 있는 11세시경인 고려 시대의 불상입니다.
거대한 자연 암석을 이용하여 몸체를 만들고 머리는 별개의 돌로 조각해 올려 놓은 특이한 형식의 불상입니다.
법흥사지 7층 전탑은 통일 신라 시대에 만들어진 전탑입니다.
병산 서원은 서애 유성룡을 배향한 서원입니다.
만휴정은 자연과 조화를 잘 이룬 조선 시대의 정자입니다.
ㄱ - 석촌동 고분은 서울 송파구에 있는 계단식 돌무지무덤입니다.
이는 장군총 등 고구려 돌무지무덤과 형태가 매우 유사해 백제 건국의 주도 세력이 고구려와 같은 계통이라는 건국
이야기의 내용을 뒷받침해 줍니다.
ㄴ - 이황은 벼슬길에 나서기도 했지만, 안동에서 주로 후진 양성과 학문 연구에 힘썼습니다.
그는 1560년에 도산서당을 짓고 유생을 가르치며 학덕을 쌓았는데, 이황이 죽자 제자들이 그 자리에 서원을 건립,
1575년(선조 8) 낙성과 함께 한호의 글씨로 도산이라는 사액을 받았습니다.
ㄷ - 안동 하회 마을은 풍산 유씨의 씨족마을입니다.
주거 건축물과 정자, 서원 등 전통 건축물들의 조화와 그 배치 방법 및 주거 문화가 조선 시대의 사회구조와 독특한
유교적 양반 문화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전통이 오랜 세월 동안 온전하게 지속되고 있어 2010년에 경주 양동 마을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어요.
ㄹ - 정약용이 유배 시절 머물렀던 다산 초당은 전남 강진에 있습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ㄴ, ㄷ으로 묶인 ③번입니다.
효율적인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공부법
27회한국사능력검정시험/한국사사랑방/한국사능력검정시험합격률/한국사능력검정시험기출문제/한국사기출문제해설/
한국사능력검정시험난이도/한국사능력검정시험합격률/한권으로끝내는한국사능력검정시험
첫댓글 이번 시험을 보고온 분들을 포함해
이 문제에 대한 각자의 생각이나 느낌 등을 적어주세요.
역사는 흐름과 맥인것 같아요..내가 아는 지식도 중요한데 이번에 준비하면서 기출을 통해서 문제푸는 방법과 포인트 잡기가 도움이 된것 같아요..이 문제도 기출을 통한 유사문제등을 접하면서 주요도시들이 있는데 그것이 출제가 되었지 않나 싶어요..대구, 평양, 진주....이런 도시들은 조선 또는 근현대사에 등장하는 도시잖아요
'100일 이상 머물러 안녕' 이것이 기출에 아주 많이 나오는 키워드에요.
평양은 정말 중요한 역사적 장소이죠..
평양에서 참 많이 일어났죠~
만상은 의주, 송상은 개성,경강상인은 한강을 근거지로 했음..
주요 도시에 대한 역사적 사건과 흐름을 이해해야 하고 알고 있어야 겠네요!!
정리가 잘 되어 있어서 이해가 쉽네요!
공부가 절로 되네요 싄난다
문화쪽에 자신이 없었는데 도움 많이 받았습니다!
단순한 시험 합격을 위한 접근 방법 외에도 전반적인 흐름에 대해서 상세하게 설명해주셔서 자격 취득 이후에도 계속 보며 지속적으로 공부하기 굉장히 좋은 접근 방법을 가지고 계시네요!
혼자서 공부한다면 불가능한 자세한 해석이라 감사합니다. 개인적으로 한국사를 공부하는데 어떻게 접근해야할지 몰라 답답했는데 아주 도움이 되네요.
자세한 설명 감사합니다.
댓글은
감사합니다....라는 글은 달지 말아주세요.
그리고
문제에 대한 난이도, 자료 등에 대한 느낌이나
개인적인 문제풀이 접근법 등을 달아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와..내용이 좋네요.
워낙 그림에 약한편이라 걱정이었는데, 문제에 대한 해설이 정말 자세해서 해설을 읽으면서 한번 더 공부를 하는 느낌입니다.
그림에 쥐약이었는데 많은 참고가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사료의 하나 힌트만 보고 제 멋대로 상상해서 푸는점을 좀 보완해야겠네요.
감사합니다
지역 관련된 문제는 언제나 어려운거 같아요 한 지역이 여러 시대의 역사를 가져서 그런지...
와 이런해설이라면ㅠ고품질이네요
문제를 찾고 있었는데 감사합니다.
최고.. 라는 말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