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동아시아인들은 ‘바람’을 어떻게 이해하며 인식하고 있었을까?
바람의 성격을 대변하는 글이 『장자(莊子)』에 있어 소개해 본다.
南郭子綦(남곽자기)隱机而坐(은궤이좌),
仰天而噓(앙천이허),荅焉似喪其耦(답언사상기우)。
顏成子游(안성자유)立侍乎前(입시호전),曰(왈):
「何居乎(하기호)? 形固可使如槁木(형고가사여고목),
而心固可使如死灰乎(이심고가사여사회호)?
今之隱机者(금지은궤자),非昔之隱机者也(비석지은궤자야)?」
남곽자기가 안석에 기대어 앉아서 하늘을 우러러 긴 숨을 내뿜고 있는데,
멍한 것이 그 자신조차도 잃고 있는 듯하였다.
안성자유가 그 앞에서 시중들고 있다가 말하였다.
“어째서 그러고 계십니까? 몸은 본시부터 마른 나무처럼 만들 수가 있는 것입니까?
마음은 본시부터 불 꺼진 재처럼 만들 수가 있는 것입니까?
오늘 안석에 기대고 계신 모습은 전날 안석에 기대고 계셨던 모습과 다릅니다.”
子綦曰(자기왈)
「偃(언),不亦善乎(불역선호),而問之也(이문지야)!
今者吾喪我(금자오상아),汝知之乎(여지지호)?
女聞人籟(여문인뢰)而未聞地籟(이미문지뢰),
女聞地籟(여문지뢰)而未聞天籟夫(이미문천뢰부)!」
자기가 말하였다.
“언(偃)아, 질문 참 잘하였다.
지금 내가 나 자신을 읽고 있는 것을 너는 알았느냐?
너는 사람들의 피리소리는 들었겠지만 땅의 피리 소리는 듣지 못했을 것이다.
네가 땅의 피리 소리를 들었다 하더라도 하늘의 피리 소리는 듣지 못했을 것이다.”
子游曰(자유왈)
「敢問其方(감문기방)」
자유가 말하였다.
“감히 그 도리를 여쭙고자 합니다.”
子綦曰(자기왈)
「夫大塊噫氣(부대괴애기),其名為風(기명위풍)。
是唯無作(시유무작),作則萬竅怒呺(작즉만규노효)
而獨不聞之翏翏乎(이독불문지료료호)?
山林之畏佳(산림지외가),大木百圍之竅穴(대목백위지규혈),
似鼻(사비),似口(사구),似耳(사이),似枅(사계),似圈(사권),似臼(사구),
似洼者(사와자),似污者(사오자);
激者(격자)、謞者(학자)、叱者(질자)、吸者(흡자)、叫者(규자)、
譹者(효자)、宎者(요자)、咬者(교자),前者唱于(전자창우)而隨者唱喁(이수자창우)。
泠風則小和(영풍즉소화),飄風則大和(표풍즉대화),
厲風濟(여풍제)則衆竅為虛(즉중규위허)。
而獨不見之調調(이독불견지조조),之刁刁乎(지조조호)?」
자기(子綦)가 대답했다.
“대지가 숨을 내쉬면 그것을 일러 ‘바람’이라고 한다.
이것은 일어나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일단 일어나면 온갖 구멍이 소리를 낸다.
너만 유독 ‘윙윙’ 울리는 바람 소리를 듣지 못했는가?
험하고 높은 산림 속에서 둘레가 백 아름이 넘는 큰 나무의 구멍은,
어떤 것은 콧구멍 같고, 입 같고, 귀 같고, 기둥 받치는 가로지른 나무 같고,
나무 그릇 같고, 절구통 같고, 깊은 웅덩이 같은 것, 얕은 웅덩이 같은 것이 있는데,
거기서 나는 바람 소리는 물 부딪치는 듯한 급격한 소리,
‘씽씽’거리며 화살 날으는 것처럼 높은 소리, 꾸짖는 듯 질타하는 소리,
‘헉헉’ 들이마시는 것 같은 소리, 외치는 소리, 볼멘 듯한 소리, 웃는 듯한 소리, 귀여운 소리이다.
그런데 앞의 바람이 웅웅 불어대면 뒤의 바람이 따라서 윙윙 소리를 낸다.
산들바람이 불면 가볍게 화답하고, 거센 회오리바람이 불면 크게 화답을 하는데,
만일 크고 매운 바람이 그치면 곧 모든 구멍들이 텅 비어서 고요해진다.
너만 유독 〈바람이 지나간 뒤에 나뭇가지들이〉 흔들흔들 거리고 살랑살랑 거리는 모습을 보지 못했는가.”
子游曰(자유왈)
「地籟則衆竅是已(지뢰즉중규시이),
人籟則比竹是已(인뢰즉비죽시이),敢問天籟(감문천뢰)。」
자유가 이렇게 말했다.
“지뢰(地籟)는 곧 여러 구멍에서 나온 소리가 바로 이에 해당하고,
인뢰(人籟)는 비죽(比竹) 같은 악기에서 나온 소리가 바로 이에 해당하는 줄 알겠습니다만
감히 천뢰(天籟)란 무엇인지 묻겠습니다.”
子綦曰(자기왈)
「夫吹萬不同(부취만부동),而使其自已也(이사기자기야),
咸其自取(함기자취),怒者其誰邪(노자기수야)!」
자기가 이렇게 대답했다.
“무릇 불어대는 소리가 일만 가지로 같지 않지만 그 소리는 그 자신의 구멍으로부터 말미암는 것인데
모두가 다 그 스스로 취하는 것이니, 그렇다면 〈그 구멍으로 하여금〉 힘찬 소리를 내게 하는 것은 그 누구인가.”
이에 대해 김지법은 아래와 같이 설명하고 있다.
「제물론(齊物論)」의 첫 이야기는 ‘하늘의 피리 소리(天籟)’이다.
남곽자기(南郭子綦)가 마치 짝을 잃은 듯 넋이 나가 하늘을 우러러보며 숨을 내쉬고 있었다.
안성자유(顔成子游)가 이를 보고 형체가 말라비틀어진 나무 같고,
마음이 불 꺼진 재와 같다며, 어제 알던 그 사람이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자 남곽자기는 ‘지금 나는 나의 자아를 잃었다(吾喪我)’라고 하면서,
사람의 피리 소리는 들어봤는지, 대지의 피리 소리는 들어봤는지, 하늘의 피리 소리는 들어봤는지 물었다.
인간은 말을 하지 않고 살 수 없으므로, 사람의 피리 소리는 너무나 당연하게 이해된다.
대지의 피리 소리는 무엇일까.
남곽자기는 거대한 흙덩이가 숨을 쉬는 것, 이를 ‘바람’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 바람이 일어나면 대지의 움푹 파인 곳에서 소리가 난다고 말했다.
크고 빠른 바람이 불 때 나는 소리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장자는 인간이 부는 피리 소리와 목구멍에서 나는 목소리가
서로 다르지 않은 이치에서 난다는 것을 간파했다.
더욱이 자연에서 바람이 불 때 나는 소리를 관찰하면서,
역시 바람이 구멍을 통과해갈 때 나는 소리임을 이해했다.
그런데 대지의 피리 소리는 들어봤는지 물어본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듣고 있지만 들리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노자가 말하듯,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는’ 바로 그 이유이다.
인간은 보통 의식하지 않으면 당연히 들을 수 있는 소리도 듣지 못한다.
평소에 아무렇지도 않던 시계 소리가 잠을 청할 땐 유난히 크게 들린다.
만약 한적한 숲길을 걷는다면, 잎 사이를 지나는 바람 소리,
저 멀리 지저귀는 새 소리, 걸어가는 나의 발소리가 들릴 것이다.
하지만 이 글을 읽으면서 주변에 무슨 소리가 났는지 기억나는가?
지금도 끊임없이 소리는 온 세상을 가득 채우고 있다.
다만 그 뜻을 모르기에 ‘들리지만 듣고 있지 않은’ 것이다.
남곽자기가 말한 ‘대지의 피리 소리’가 이제 들리는가.
여기서 더 나아가 ‘하늘의 피리 소리’는 들리는가.
앞의 바람과 구멍이라는 조건을 생각해보면,
하늘의 피리는 곧 구멍일 수밖에 없고, 그 구멍을 들락날락하는 것은 바람일 수밖에 없다.
구멍의 본질은 무엇인가.
본래 없는 자리이다.
하늘은 우리가 숨을 쉬는 공기로 가득 찬 텅 빈 곳이다.
본래부터 텅 비어 모든 것이 들락날락할 수 있는 텅 빈 자리이다.
이미 바람으로 가득 차 있고, 텅 빈 구멍이라면,
이 역시 피리 아닌가. 만약 온 우주가 하나의 피리라면, 어찌 그 소리가 없겠는가.
인간의 감각적 경험은 한계가 있다.
그렇기에 경험 없음이 존재의 부정을 뜻하지는 않는다.
경험 너머에 있을 수 있으니까.
한계를 넘어선 인식, 장자가 하늘의 피리 소리를 통해 말하고 싶은 이야기가 아닐까.
이상은 『장자』 「제물론」에 나오는 바람에 관한 이야기다.
참고로 『장자』 「제물론」은
풍수 고전인 『장서』가 쓰여진 시기보다 훨씬 앞선 시기에 쓰여진 글이다.
위 『장자』에서 설파하는 바람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 바람이 풍수의 '풍'과 어떤 관계가 있으며
'장풍'의 해석과 이해에 어떤 의미를 제공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