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09월호 (통권 028호) - 북한 민주화를 위한 전국 청년학생 실천단 그 현장을 가다.
취재기
《북한 민주화를 위한 전국 청년학생 실천단》그 현장을 가다.
북한의 인권문제에 대해 대학생, 청년들이 본격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구체적인 실천에 들어갔다. 북한민주화네트워크, 북한정치범수용소해체운동본부, 탈북자동지회, 피랍탈북인권연대, 북한민주화학생연대 등 국내 북한인권 단체들은 2003년 8월12일∼14일을 <북한의 민주화를 위한 전국 청년학생 실천 주간>으로 설정하고 다양한 행사를 개최했다. 북한인권, 더 이상 미룰 수 없습니다.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진행된 이 행사는 북한 인권탄압 실상 홍보, 퍼주기식 대북정책 보완, 탈북인의 한국생활 위로, 북한인권 NGO의 단합 등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특히 대학생 단체인 북한민주화학생연대에는 군산대, 전북대, 원대, 우석대, 원광보건대학 등 전북지역 대학과 서울대, 충북대, 대구대, 진주교대, 고대 등에서 약 160여 명의 학생들이 참가했다. 남한의 민주화 과정에서 청년학생들의 선도적인 활동이 큰 역할을 했듯이 북한 민주화를 위해서도 큰 힘을 발휘할 것이다.
서울 시내 주요 지역에서 펼쳐진 《북한 민주화를 위한 전국 청년학생 실천단(이하 실천단)》의 활동을 여러분들께 소개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1. 출발
S대로 가는 교통이 좋지 않아 택시를 탔다. 푹푹 찌는 더위에 기사아저씨가 첫 손님이네요하며 반겨준다. 반가운 인사와는 달리 택시 안은 찜통이다. 막 시원해질 만 했는데 목적지에 도착했다. 방학기간이라 학생들은 많지 않았다. 일정대로라면 한참 점심을 먹고 있을 시간인데 실천단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질 않는다. 다른 장소로 이동했을까 생각하며 실천단 책임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 차례만에 겨우 통화가 돼 물어보니 S대 총학생회의 반대로 숙소가 변경돼 우선 성균관대에서 밥을 먹고 마로니에공원에서 2시에 집결하기로 했다고 한다. 늦을까봐 부랴부랴 서둘러 왔는데, 나도 모르게 한숨이 푹 나왔다.
2. 첫 만남
1시 20분, 마로니에공원에 2시까지 도착하려면 빠듯할 것 같았다. 서둘러 출발을 했다. 도착해보니 실천단은 보이지 않았고 유인물과 소품들을 지키는 사람들 몇 몇이 보였다. 갑작스런 변경으로 늦어지는 것 같았다.
이내 학생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대학별로 편하게 걸어오다가 줄을 맞춰 집결을 시작한다. 들어오는 학생들 옷이 다 똑같았다. 검은색 바탕에 앞에는 북한 인권 더 이상 미룰 수 없습니다는 말이 회색 글씨로 쓰여져 있고 뒤에는 구호 세 개가 쓰여져 있다. 집결을 마친 실천단의 등에 쓰인 반대 김정일, 반대 핵개발, 반대 인권유린이라는 구호가 선명하다.
3. 지하철 선전활동
실천단의 첫 번째 활동은 지하철 선전활동이었다. 정해진 노선별로 약 5명 씩 조를 지어 학생 1명이 연설을 하는 동안 다른 한 명은 피켓을 들고 서있고 나머지 사람들은 유인물 배포와 모금 운동을 진행하는 식이었다. 선전활동을 제대로 보기 위해 한 팀을 따라다니기로 했다. 대학 1,2학년이 주축이었고 3학년 한 명이 팀을 이끈다고 했다. 그런데 사람들이 많은 곳에 서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 별로 없다고 했다.
지하철이 도착했다. 전철에는 사람들이 빽빽이 차 있었다. 사람들이 너무 많다며 서로 망설이다가 어렵게 전철에 올라탔다. 사람들속에서 머뭇거리다 연설자가 앞으로 나섰다.
안녕하십니까. 시민여러분! 소란스럽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저희는 북한민주화학생연대 소속 대학생들입니다.로 시작된 연설은 덜컹거리는 전철 소리, 사람들의 말소리에 눌려 묻혀 버린다.
유인물을 나눠주는 손길도 어색하기만하다. 피켓을 들고 있는 학생은 쑥스러운지 얼굴을 가리고 있다. 모금함도 별 성과가 없었다. 이번 전철역은..... 방송이 나오자 연설을 정리하고 모두들 순식간에 내렸다. 창피했던지 얼굴이 달아올라 있었다. 연설했던 사람은 틀린 게 없는지 연설문을 다시 보고, 나머지 학생들도 시민들의 반응과 자신들의 모습을 이야기하는데 여념이 없다. 전철이 들어온다는 방송이 들려왔다. 돌아가면서 연설을 준비했던지 다른 학생이 연설문을 보고 있다. 두 번째 도전이다.
이번에는 한결 나았다. 모금함에도 성금이 좀 들어왔다. 다음 역에서 내려 들어보니 초등학생 한 명이 모금함에 있는 북한 어린이 사진을 보고 또 설명해주는 이야기를 듣고 성큼 지갑을 꺼냈다고 했다. 조금씩 자신감이 생기는 것 같았다.
몇 번 내리고 타고를 반복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듬거리던 연설도 다듬어져 갔고 학생들의 얼굴에도 쑥스러움이 사라져가고 있었다. 유인물을 유심히 보는 사람들도 있었고 연설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의 모습도 보였다. 아이를 데리고 탄 아저씨 한 분은 아이의 손에 천 원을 쥐어주고 손을 잡고 모금함에 돈을 넣게 했다.
생각처럼 시민들의 반응은 그리 좋지는 않았다. 워낙 전철내에서 말하는 사람이 많다보니 또 뭔가를 하는 구나라는 표정이었고 유인물도 받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다. 학생들도 그런 반응들 때문인지 매우 힘들어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끝나는 시간까지 환하게 웃으면서 시민들을 만나나갔다.
북한의 인권문제는 남한의 많은 인권단체들조차 침묵하고 있고 정부 또한 외면하고 있다. 진보를 표방하는 일부 학생운동 단체와 시민단체들은 우리민족끼리를 주장하며 북한 인민을 탄압하는 김정일 정권과의 공조를 이야기하고 있고 극단적인 반미투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이런 현실속에서 시민들의 무관심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 모른다.
남한 사회에서 주목(?)받지 못하는 북한의 인권문제는 그래서 청년학생들의 몫인지도 모른다. 청년은 시대의 진실을 발견하는 순수한 눈과 그 진실을 덮고 있는 벽을 향해 온몸으로 부딪칠 수 있는 패기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청년들이 북한 인민들의 고통과 민주화를 위해 나선 것은 앞으로 북한 인민들에게 큰 희망이 될 것이다. 시대의 진실은 언제나 주목받기 때문이고 항상 청년학생의 선도적인 투쟁이 앞서기 때문이다. 북한의 인권문제는 곧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흐름으로 자리잡을 것이다.
4. 북한인권 개선과 김정일 정권 타도를 위한 거리문화집회
북한인권 개선과 김정일 정권 타도를 위한 거리문화집회라는 플랭카드를 배경으로 학생들이 모여들었다. 풍물패가 길놀이를 뛰면서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모으기 시작했고 행사장 주변에는 북한 실상에 대한 선전과 스티커 여론조사가 이루어졌다.
노래를 시작으로 행사가 시작됐다. 흥겨운 사물놀이 한판이 끝나고 북한 현실을 담은 상황극이 공연되었다. 배급을 제대로 받지 못해 주민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인민군의 실태와 정치범 수용소 상황, 공개처형 등을 담은 내용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집회장 주변에 몰려 있던 사람들 속에서 동요가 일어났다. 가만히 보니 무대 뒤에 기타를 치는 사람이 있었다. TV에서도 나온적이 있는 마로니에 공원의 유명한 명물이라고 했다. 순식간에 집회장 주변에 몰려 있던 관객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집회장 주변이 순식간에 텅 비어버렸다. 내 마음까지 썰렁해졌지만 학생들의 모습은 진지했다.
상황극이 끝나고 연설이 시작됐다. 연설자의 말이 참 마음에 들었다. 행복과 평화와 통일, 세 가지를 주제로 북한의 현실에 대해 성토를 했다.
행복, 하루에도 수십 명이 죽어가는 북한인민들을 모른 체 하면서 행복이라는 말을 쓸 수 있을까요?
평화, 생존 그리고 세계의 무관심과 북한 인민들은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북한 인민들의 기아, 질병, 정권에 의한 학살을 외면한 채 지키는 평화가 무슨 평화입니까. 자신이 통치하고 있는 인민들을 고통속에 방치하고 있는 김정일 정권을 전 세계가 하나가 되어 포위 압박해야 합니다. 김정일을 독재의 권좌에서 끌어내려야 합니다.
통일, 평화통일에는 관심이 없고 북한 인민들을 굶겨 죽이고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김정일입니다. 김정일이 독재의 권좌에 있는 한 평화통일은 요원한 일입니다. 통일을 앞당기기 위해서는 통일에 걸림돌이 되는 김정일 독재정권을 제거해야 합니다.
저 북녘 땅에 민주화의 깃발을 꽃을 날이 멀지 않았다는 것을 김정일은 똑똑히 알아야 합니다.
핵개발로 한반도의 평화를 위협하고 있는 북한 정권이 민족공조를 주장하며 교활한 웃음을 흘리고 있는 지금 연사의 날카로운 말은 통쾌하기 그지없었다. 조금은 과격하다 싶겠지만 김정일이 북한 인민들에게 행한 죄과에 비하면 결코 과격한 것도 아니다.
북한의 민주화와 평화통일이라는 역사적 과제가 실현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어둠이 깔리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연사의 마지막 구호가 귓가에 맴돈다.
살인정권 폭력정권 김정일정권 타도하자!
5. 하루를 정리하며
밤 10시가 되어서야 북한민주화실천단은 숙소인 한양대에 도착했다. 피곤했을텐데 여전히 생기가 있다. 그들을 보고 있자니 절로 웃음이 나온다. 시원한 바람이 더위에 시달린 학생들에게 작은 힘이 될 것 같다.
6. 북한의 인권개선을 염원하는 콘서트
마로니에 공원에 도착해보니 백두산 천지와 굶주린 북녘 아이의 앙상한 얼굴이 북한민주화 운동은 인간의 권리라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실현하는 운동이며 한반도의 통일과 평화를 위한 운동입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무대 배경으로 펼쳐져 있었다. 7시에 시작할 <북한의 인권개선을 염원하는 콘서트> 준비가 한창이었다. 무대가 잘 꾸며져 있어서인지 몇 몇의 사람들은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다. 오늘 콘서트는 북한인권 실상을 알리고 국민들의 관심을 촉구하기 위해 기획한 콘서트인데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 줄지 주최측도 걱정을 하고 있었다.
콘서트가 시작됐다. 어스름해지자 언제 더웠냐는 듯이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한 사람이 기타를 메고 무대위로 올라왔다. 어제 거리집회 때 주변에 있던 사람들을 몰아갔던 마로니에 공원의 그 연주자였다. 거리문화집회 때 사람들을 빠져나가게 만들었던 솜씨대로 금세 관객들을 휘어잡았고 주변에 있던 사람들도 몰려들기 시작했다. 어제는 그렇게 마음속으로 원망했는데 오늘은 열렬하게 박수를 치고 있는 내 모습이 생각나 속으로 한참을 웃었다. 여세를 몰아 사람들의 기대와 환호성 속에 개회를 선언했다.
도희윤 총장(피납탈북인권연대 사무총장)의 사회로 식전행사가 시작됐다. 황장엽(탈북자동지회 명예회장)선생의 축사(탈북자동지회 회장 홍순경 대독)를 시작으로 한기홍 대표(북한민주화네트워크 대표)와 강철환 대표(북한정치범수용소해체운동본부 대표)의 인사말이 이어졌다. 이 자리에는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와 의원들이 참석하였는데 최 대표는 인권문제는 체제보장, 불가침 약속 등 정치적인 문제보다 우선하는 것이라며 탈북 난민 강제송환 중지를 촉구하는 국회 결의안을 제출하여 이번 정기 국회에서 반드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최 대표는 우리당은 앞으로도 국내외 NGO, 국제기구 등과 연대하여 북한 인권개선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
콘서트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 김성민 국장(탈북자동지회 사무국장)의 시 낭송이 있었다. 2001년 7월 한국으로 오기 위해 몽골 사막을 건너다 숨진 12살 철민이에 대한 시였다. 장문의 시를 읽는 동안 철없는 아이들은 무대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방울들을 잡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엄마처럼 굶어 죽기 싫어서, 한 많은 세상 떠나면서도 거적에 말린 채, 산기슭에 그냥 버려지기가 싫어서라는 말이 흘러나올 때도 마르고 터진 입술사이로 또 다시 소원처럼 속상이는 말, 나 배고프지 않고 살 수 있는 그런 나라에 살고 싶어요라는 말이 나올 때도 아이들은 물방울을 잡기 위해 사방으로 뛰어다녔다.
저런 게 아이들인데..... 12살 철민이는 북한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천진 난만한 아이의 삶을 살지 못했는지, 그 여린 다리로 황량한 사막을 헤쳐야 했는지, 아무런 연고도 없는 몽골국경에 외롭게 묻혔어야 했는지......
사진을 찍고 밖으로 나오는데 한 여자분이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데리고 온 4살 난 딸아이가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 게 민망하다는 말을 하면서.
가수들의 공연과 화려한 춤들이 이어졌고 사람들도 즐겁게 환호하며 콘서트를 즐겼다. 2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마지막으로 사람들은 촛불을 켜기 시작했다. 어둠속에서 소리없이 빛나는 촛불을 앞에 두고 북한에 있는 부모님께 보내는 탁은혁 씨(백두한라회 부회장)의 편지가 낭송됐다. 흐느끼며 끝낸 편지는 조용히 접혔고 사람들도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오늘 하루만이라도 사람들의 가슴속에 북한 인민들의 고통이 단 1분이라도 기억됐으면 좋겠다.
7. 민주당, 한나라당, 국가인권위원회, 청와대 항의 방문
8시에 한양대를 출발해 여의도에 9시에 도착했다. 서울에서의 마지막 날인 오늘은 한나라당, 민주당, 국가인권위원회, 청와대까지 <북한인권실현을 위한 자전거 선전단> 활동이 펼쳐진다. 여의도에서 북한민주화실현이라고 쓰인 깃발을 날리며 한나라당을 방문하여 북한인권 실현과 올바른 대북정책을 위한 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치라는 촉구서한을 전달하고 면담을 진행하였다. 집권 여당인 민주당에서는 항의서한을 가지고 당 대표와의 면담을 요구하였다. 북한 인권문제를 회피하고 있고 퍼주기식 대북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집권당의 정책에 대해 항의하기 위해서다. 선전단의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이에 자전거를 놓고 강력하게 항의하였다. 이 과정에서 몸싸움이 벌어져 민주당사 주차장까지 밀고 들어가 시위를 벌였다. 대표와의 면담을 성사되지 않아 선전단은 당 4역 중 한 사람과의 면담을 요구하였다. 이마저 거부당했고 다시 몸싸움이 시작됐다. 결국 인권위원장을 만나기로 합의하고 북한 인권문제 해결과 퍼주기식 대북정책 중단을 촉구하며 항의서한을 전달하고 면담을 통해 선전단의 입장을 밝혔다.
점심을 먹고 잠깐 쉬고 있는데 급한 연락이 왔다. 연세대에서 밥을 먹고 국가인권위원회로 이동하려는 선전단의 행렬이 경찰에 의해 봉쇄됐다는 연락이었다. 급히 택시를 타고 연세대로 이동을 했다. 선전단은 자전거를 타고 길게 줄을 서서 노래를 부르고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정문에서 경찰들이 방패로 길을 막고 있었다. 선전단 지도부는 평화적인 행진을 가로막는데 어이가 없어 강력하게 항의했지만 경찰 병력은 오히려 더 늘어났다.
선전단은 합법적으로 행사를 치르기 위해 시경에 신고를 하려고 했지만 신고대상이 아니라고 해서 암묵적 동의하에 자전거 행진을 하기로 했다고 한다. 그래서 오전에 두 당사를 방문할 때도 막지 않았던 것인데 민주당에서의 일 때문에 자전거 행렬을 막은 것이다. 결국 선천단은 자전거를 한쪽에 놓아두고 몸을 던져야 했다. 1시간 동안의 몸싸움 끝에 자전거를 놓고 움직이기로 하고 지하철을 타고 국가인권위원회로 이동했다.
국가인권위원회 출입구도 이미 경찰병력으로 막혀있었다. 한 나라의 인권을 수호하는 국가인권위원회는 최근까지 북한인권에 대해 거론한 적이 없었다. 최근 북한인권 문제를 언급하기 시작하는데 그 계기도 올 4월 국회법사위에서 김창국 위원장(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의 북한인권 실체에 대해 제대로 된 정보를 모르고 있다는 발언에 대한 북한인권 단체들의 항의에서 시작되었고 그나마 형식적인 모습만을 보이고 있다. 그런 이유여선지 선전단들은 어느 기관보다도 격렬하게 항의를 하였다. 밀고 밀리는 몸싸움이 몇 차례 이루어졌고 넘어지거나 깔리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선전단은 그 와중에도 인권위는 북한 인권 개선에 앞장서라는 구호를 외치며 경찰과 맞서 나갔다. 선전단 대표단은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 위원 중 한 사람을 만나 북한 인권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기를 촉구했다.
이제 마지막 장소만을 남겨뒀다. 청와대 또한 이미 경찰들이 길목을 차단하고 있었다. 버스를 타고 선전단이 도착했고 십여 분 정도 경찰과 대치했다. 국민의 정부가 있는 청와대에 선전단 모두가 들어갈 수 없지만 국민이 없고 오직 김정일의 독재만 있는 북한의 현실이 청와대에 전달되기를 바랬다. 청와대 민원담당관과의 면담이 성사돼 대표단이 안으로 들어갔다. 선전단은 안내를 받으며 청와대로 들어가는 대표단을 향해 큰 목소리로 외쳤다.
- 북한인권문제 해결을 위한 대책을 제시하라!
- 김정일 정권을 살찌우는 대북현금지원을 즉시 중단하라!
- 김정일이 아닌 북한인민을 위한 대북정책을 수립하라!
8. 취재를 마치며
<우리는 숫자가 많지 않았다. 그럼에도 우리는 우리를 막아나서는 전경들을 향해 오로지 맨 몸을 던졌다. 온 힘을 다해 밀었다. 그리고 외쳤다.
북한 민주화 실현! 북한 인권 개선!
고작 160여 명의 친구들... 나는 가슴속에서 눈물이 솟구쳤다. 두려움, 무서움이란 아랑곳 않고 진실로 온 힘을 다해 온 몸을 내던지는 그들의 진심과 그들의 열정에... 팔뚝이 엉기고, 신발이 벗겨지고, 머리가 전경의 방패 사이를 뚫고 들어가도. 그들 속에 묻혀 나는 눈물이 사무친다. 그들이 가엾어서. 그런 그들이 너무 소중해서...
그리고 나의 양심과 나의 도덕과 나의 절망을 움켜잡고 있는 2천3백만 북녁 인민의 눈물은 반드시 승리하리라는 신념으로... 그들의 까만 얼굴 그들의 지칠 줄 모르는 외침, 그들의 땀방울에 나는 진실이 있음을 확신한다.
북한의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우리는 처음으로 이렇게 모였다. 그래서 오늘은 더없이 중요한 날이다. 오늘에야 우리는 북녁 인민의 고통과 조금이나마 함께 하게 되었다. 300만 인민의 죽음 그리고 죽음 같은 독재의 사슬 속에서 신음하고 있는 인민들에게 너무나 뒤늦은 무관심의 죄책감을 오늘에야 우리는 투쟁으로 용서받고자 한다.
하나는 열이 될 것이다. 민중은 반드시 독재를 심판할 것이다. 북한 인민의 삶에 민주주의의 샘물이 분수처럼 쏟아질 그 날을 나는 다시 한번 그려본다.>
- 대회 참가자의 감상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