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승원 수필에 대한 평】
원로 역사학자의 과분한 ‘수필 평’에 조심스럽게 답하다
― ‘부처님이 주신 떡’은 결국 ‘인생 숙제 풀이’에 대한 ‘선행상’이 아닐는지요?
윤승원 수필문학인, 전 대전수필문학회장
■ 필자의 말
『한국문학시대』 2023년 여름호에 실린 「윤승원 수필 - <부처님이 주신 떡>」을 읽고 원로 역사학자인 정구복 교수(문학박사,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가 과분한 ‘수필 평’을 주셨다. 『올바른 역사를 사랑하는 모임[올사모]』 카페 「창작 글 마당」에 올려주신 소감 형식의 댓글 평이다.
문단 활동 어언 33년. 글을 쓰는 일은 여전히 어렵다. 어렵지만 보람을 느낀다. 공감해 주시는 독자를 만났을 때 기쁨과 즐거움을 느끼기도 한다. 수필을 공부하는 일은 인생을 공부하는 일이라고 생각해 왔다. 목표 달성이나 성취 없이 과정만 이어지는 끝없는 자기 성찰이다.
이번 졸고 수필 「부처님이 주신 떡」도 결국은 ‘인생 숙제 풀이’에서 정답에 근접하려고 노력한 데 대한 ‘선행상’이 아닌가 감히 생각해 본다. 또 공부하는 자세로 더 많은 독자와 함께 존경하는 원로 학자님이 주신 귀한 소감을 나누고자 한다. 2023.7.1. 필자 윤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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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사모’ <창작 글 마당>에 올린 정구복 교수의 ‘수필 독후 소감’
♧‘올바른 역사를 사랑하는 모임’[올사모] 카페에서
◆ 낙암 정구복(문학박사, 역사가,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인연은 모든 존재와 현상을 설명해 주는 연결고리입니다. 이런 인연의 고리는 쉽게 알 수 있는 것과 알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태어남은 부모님과의 인연이고, 매사가 알고 보면 인연이 아닌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보이는 인연만이 보이지 않는 인연이 있음을 유교의 기초교재인 천자문에서 ‘화인악적, 복연선경’이라 한 것이지요.
윤승원 선생은 글로, 행동으로, 형제자매와 많은 사람에게 선근(善根)을 많이 심어 놓았다고 생각합니다. 부처님 떡값의 보상이 앞으로 길이길이 받으실 것을 기원하며 다 못 받은 공덕은 자손에게도 전해질 것으로 믿습니다.
부처님에게 바친 떡값은 보시입니다. 보시 중 최상의 보시는 조건 없는 보시입니다. 할머니가 웃음을 주신 뜻은 ‘염화미소’라고 생각합니다.
불교의 가르침은 원인과 결과가 있다는 ‘인연법’입니다. 효와 우애를 강조하고 실천하는 윤승원 선생의 좋은 글, 아들과 손자들의 효성이 자랑스러운 가풍을 키우고, 자기의 직업에 대한 자부심으로 경우회, 경찰 임무에 대한 선행, ‘한국문학시대’에 기울이는 노력, 자기 고장 대전을 발전시키려는 노력 등등 값진 사회봉사를 보았습니다.
심은 씨앗은 반드시 열매를 맺는다는 것이 ‘인연 법’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2023.7.1. 정구복)
▲ 답글 / 윤승원
그저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갑니다. 오늘 제가 누리는 모든 행복이 저의 능력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늘 소심한 마음으로 고민하고, 자신을 점검하고, 백팔 참회의 뜻이 무엇인지 공부하고, 세상이 불만족스럽고, 거슬리고, 화가 날 때는 ‘화인악적 복연선경(禍因惡積 福緣善慶)’을 주문 체험 외우며 스스로 다독입니다.
백발의 신도 할머니가 제게 보여주신 말 없는 ‘염화미소’가 그날의 큰 화두였습니다. 화두는 지식백과사전에 나와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온전히 제가 풀어야 할 숙제였습니다.
‘숙제’ 하나 풀기 위해 온종일 만 가지 상념에 잠겼습니다. 결국, 얻은 답은 ‘복연선경(福緣善慶)’이었습니다.
칠십 넘은 나이에 천자문을 다시 넘겨보는 한 가정의 고전적인 할아버지입니다. 평생 공부하라는 부처님 뜻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낙암 교수님께서 제게 과분한 칭찬을 주시는 뜻도, 부끄럽지만 공부하는 학동의 심정으로 기뻐합니다. 살아가는 보람을 느낍니다.
부처님이 주신 귀한 떡을 기쁘고 즐겁게 먹은 것이 잘 소화된 덕분이 아닌가 생각되어 조심스럽게 웃어 봅니다. 고맙습니다. (2023.7.1. 윤승원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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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종합문예지 《한국문학시대》 2023년 여름호
【윤승원 수필】
수필
부처님이 주신 떡
윤승원 수필가(1990 · 『한국문학』), 전) 대전수필문학회장, 전) 금강일보 논설위원, 수필집 『문학관에서 만난 나의 수필』 외
법당 점안식(點眼式)이 있는 날이었다. 많은 신도가 참석한 가운데 법회도 열렸다. 바로 내가 사는 건물이다. 사찰은 산중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도시 변두리 주택가에도 절이 있다.
뜻하지 않게 한 건물에서 부처님을 모시고 살게 됐다. 이런 복이 어디 있는가. 부처님은 2층에 모셔졌다. 나는 꼭대기 층에 산다. 한 지붕 아래 살면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부처님께 인사 올리고 싶었다.
법당 안에 들어서니 주지 스님이 반갑게 맞아 주었다. “한 건물에서 가족처럼 살게 되었으니 큰 영광”이라고 인사드렸다. 주지 스님은 오히려 내게 “많이 도와달라”고 했다.
“제가 뭐, 도와드릴 게 있나요. 살아가면서 제가 도움을 받아야지요. 가피(加被)도 받고요.”
그러자 옆에 계신 백발의 신도 할머니가 말씀하셨다.
“처음 뵙는 분인데 인상이 참 좋으시네요. 선생님은 평소 좋은 일을 많이 하셨나 봐요. 부처님을 이렇게 가까이 모시고 살게 됐으니 보통 인연이 아닙니다.”
인정 넘치는 백발 할머니의 덕담에 주지 스님도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을 표했다. 안내를 도와주는 또 다른 신도가 내게 다가와 방석을 권하면서 “편안히 앉아 말씀 나누시라”고 했다.
낯선 방문객인데도 신도 모두가 가족처럼 따뜻하게 대해 주어 깊은 인상을 받았다. 백발의 신도 할머니가 말씀을 이어갔다.
“크나큰 인연이고 말고요. 인연이란 우연히 이루어지는 것 같아도 그렇지 않아요. 전생의 연이라고 봐야지요. 사람에 따라서 전생에 공덕을 많이 쌓은 사람은 주변에 좋은 사람도 많은 법이지요. 인연에는 선연(善緣)과 악연(惡緣)이 있다고 해요.
선연 중에 으뜸은 ‘좋은 배우자’를 만나는 것이고, ‘좋은 스승’이나 ‘좋은 친구’를 만나는 것도 큰 복이고 선연이지요. 불가에서는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했는데, 선생님과 이렇게 한 도량(道場)에서 뵙게 된 것은 그야말로 부처님이 맺어주신 귀한 인연입니다.”
이때 주지 스님이 내게 차를 권했다.
“아닙니다. 차를 마시기 전에 부처님께 먼저 예를 올려야지요.”
나는 신도는 아니지만, 평소 등산하면서 산사에 들를 때는 꼭 부처님께 절하고 불전함에 예를 표해 왔다. 지갑에서 지폐 몇 장 꺼내어 불전함에 넣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특별한 날이다. 법당 점안식에 간다니까 아내가 ‘봉투’를 챙겨주었다. 그런데 봉투가 왠지 불전함에 잘 들어가지 않았다. 밀어 넣어야 할 만큼 입구가 빠듯하게 느껴졌다. 옆에 계신 신도 할머니에게 여쭸다.
“불전함이 새로 제작된 것이라 그런지 봉투가 쏙 들어가지 않네요.”
그러자 신도 할머니가 웃으셨다. 할머니는 왜 까닭을 말씀하시지 않고 웃기만 하실까? 뜻하지 않게 ‘화두’ 하나를 숙제처럼 가슴에 안고 집에 돌아왔다.
절에 가서 부처님께 인사드리는 방법이 합장(合掌)과 삼배다. 백팔 배, 삼천 배도 있다. 그렇다면 불전함에 넣는 시줏돈은 어떤 의미인가. 교회 헌금과 같은 개념일까? 아니면 부처님 제단에 올려지는 ‘떡값’ 의미일까.
옷깃 여미고 예를 올리는 경건한 자리에서 굳이 시줏돈의 용처를 헤아리는 것 자체가 불경(不敬)이다.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맑은 마음으로 미의(微意)를 표하면 족하다. 하지만 어떤 의미이든 간에 분명한 사실은 ‘신성한 돈’이라는 점이다.
갑자기 잠재된 과거 직업의식이 발동했다. 한평생 도둑 잡는 것을 업으로 했던 사람으로서 ‘사찰 절도 사건’이 떠올랐다. 전국 사찰을 돌며 불전함에서 현금을 훔친 일당이 경찰에 붙잡힌 사건이다.
절도범은 30여 회에 걸쳐 충남·경기·강원·충북·전북·전남 등 인적이 드문 사찰에 침입해 불전함을 파손하고 현금 수천만 원을 훔쳤다.
이들은 차량을 바꿔 타고 다니며 심야 시간대 사람의 통행이 없는 사찰에 몰래 들어간 뒤, 준비한 망치와 펜치로 불전함을 열어 현금을 훔쳤다. 열리지 않는 불전함은 통째로 들고 가기도 했다. 친구 사이로 알려진 이들 2인의 절도범은 훔친 현금을 생활비와 유흥비로 사용했다.
아, 그게 어떤 돈인데 훔쳐 가는가. 부처님이 다 보고 계신 데 불전함에 손을 대다니, 두렵지 아니한가.
견물생심(見物生心). 그렇다. 절도범의 눈에는 불전함이 단순히 ‘돈 통’으로 보일 뿐이다. 만약 지금도 내가 관내 방범 순찰하는 현직 경찰관이라면 어떤 대책을 강구할 것인가.
지금도 내가 치안정책을 수립하는 현직 경찰정보관이라면 ‘법당 절도 사건’을 어떤 원천적인 방법으로 막을 것인가. 급기야 나의 엉뚱한 상상의 나래는 현직 ‘치안정책 정보관’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어느 사찰이든 부처님 앞에는 불전함이 덩그러니 노출되어 있다. 절도범의 표적이 되는 것을 근원적으로 막기 위해서는 ‘벽장 수납형(?)’이 어떨까? 아니, 가당찮은 발상일까?
베풂의 공덕과 자비를 최고의 가치로 삼는 법당이다. 자애로운 미소의 부처님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느냐?”면서 만류하실지도 모른다.
불전함(佛錢函)을 다른 말로는 ‘공덕상(功德箱)’이라고 한다.
‘복 밭’ 의미의 ‘복전함(福田函)’이라고도 한다. 부처님을 향하여 선근(善根, 좋은 과보를 낳게 하는 착한 일)을 심으면 무량한 복을 얻는다는 뜻이다. 하지만 사람 사는 세상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도 벌어진다.
청와대가 시민들에게 개방된 지 하루 만에 경내에 있는 불전함이 파손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한 중년 여성이 청와대 관저 뒤편 ‘미남 불’ 앞에 놓인 불전함을 파손하며 난동을 부렸다. 종교가 다른 사람의 소행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당시 주위에는 관람객들도 많았다고 한다.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 부처님 앞이다. 그 앞에 놓인 것이 불전함이거늘, 조금도 불안해하거나 걱정스럽게 바라보아선 안 된다. 신도 할머니가 ‘염화시중(拈花示衆)의 미소’처럼 말없이 던져주신 ‘숙제’의 답이 비로소 풀리는 순간이었다.
나의 유년시절, 시골 서당에서 기초 학문으로 가르쳤던 천자문(千字文)에 ‘화인악적 복연선경(禍因惡積 福緣善慶)’이란 문구가 나온다. ‘악을 쌓으면 재앙이 오고, 복은 착한 일에서 오는 것이니 착한 일을 하면 경사가 온다’라는 뜻이다.
이날 저녁, 내 집에 초인종이 울렸다. 점안식을 치른 절에서 왔다고 했다.
“부처님이 주시는 떡을 가져왔어요. 주지 스님이 맛있게 드시라고 하네요.”
▲ 주지스님이 보내주신 떡 - 부처님이 주신 떡이다. 평소 좋아하는 맛있는 떡이 골고루 들어 있었다.
부처님 앞에 예를 표하다가 뜻하지 않게 ‘불전함 절도 예방 대책’까지 골몰했던 나의 하루. 부질없는 걱정을 훤히 꿰뚫어 보기라도 한 듯 주지 스님이 떡을 보냈다.
예사 떡이 아니었다. 부처님이 복연선경(福緣善慶)을 일깨워주는 떡이었다. 곱게 포장된 떡 상자에 ‘선근(善根)’의 뜻이 담겨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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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 ‘청촌수필’ 카페에서
◆ 원경애(수필문학 독자) 23.07.01.16:17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 부처님 앞’이라는 데 공감합니다.
부처님 미소를 가까이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대자대비’라는 말이 그래서 나온 것일까요.
부처님이 주시는 떡을 생각만 해도 침이 고입니다.
▲ 답글 / 윤승원
부처님 공양 떡을 나눠주시는 넉넉한 주지 스님의 베풂의 공덕을 생각합니다.
대자대비 큰 사랑이 담긴 절 떡을 먹는 것도 큰 복이라고 생각합니다.
떡 종류도 다양합니다.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