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 부캐넌.. Roy Buchanan 'My sonata'
'기타의 메시아' 로이 부캐넌. 확실한 핑거링과 프레이징, 기타의 톤 바이에이션을 최대한으로 활용한 다양한 음색등으로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기타리스트였다. 슈퍼그룹 '레드 제플린'의 지미페이지가 로이 부케넌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고 한다. The Messiah Will Come Again 같은 기타가 절절 끓는 블루스는 아니지만 듣다 보면 어딘지 뽕짝 같은 익숙한 선율과
(펌글 : http://cafe.daum.net/ibumin/CZR3/2275)
로이 부캐넌 (Roy Buchanan) : 1939년 9월 23일 미국 아칸소주, 오자크(Ozark) 출생, 1988년 8월 14일 사망
텔레캐스터사운드의 선구자로 불리며 수많은 팬을 거느린 연주자였다. '오순절(Pentecostal)' 교회의 목사 이자 농부의 아들로오자크에서 태어난 로이 부캐넌은 캘리포니아주의 '픽슬리(Pixley)'에서 성장하였다. 어린 시절 어머니와 함께 참가한다인종 부흥회에서 생애 처음으로 접한 흑인 음악인 '가스펠(Gospel)'에 많은 감명을 받게 된다.
방송에서 흘러나오는 블루스 음악을 듣고 블루스의 매력에 빠져들면서 기타를 배우게 된다. 스틸 기타(Steel Guitar)를 시작으로하여 열세살때에는 자신을 상징하는 전기 기타인 팬더 텔레캐스트로 바꾸어 연주를 하기 시작하였다. 텔레캐스트와함께 시작된 그의 기타 여정은 열다섯살에 이르면서는 블루스 피아니스트인 '조니 오티스(Johnny Otis)'과 함께 무대에 서면서 본격적인 프로 연주인으로써 기타 연주자의 길을 걷게 된다.
1957년에 발표한 'Susie Q'를 불러서 히트시킨 '데일 호킨스(Dale Hawkins)'를 만난 로이 부캐넌은 그의 음반 녹음에합류하여 생애 처음으로 음반 녹음 작업을 하게 되었다. 이때가 1958년이었는데 당시 로이 부캐넌은 'My Babe'라는솔로 연주 곡을 음반으로 남겼다. 데일 호킨스와 순회 공연을 하며 2년 정도의 시간을 보낸 로이 부캐넌은 데일 호킨스와 헤어진 후 그의 사촌인 '로니 호킨스(Ronnie Hawkins)'와 함께 활동하게 된다.
연주자들과 록밴드의 공연에서 보조 연주자로 활동하면서 1960년대를 시작하였다. 1960년대 중반에는 '워싱턴(Washington D.C.)'으로 가서 세션 활동을 펼치다가 자신의 그룹인 '스네이크스트레쳐스 (Snakestretchers)'를 결성하였다.
가 로이부캐넌에게 롤링 스톤즈에 가입해 달라고 요청하였으나 로이 부캐넌이 거절하였다."는 기사였다. 이 기사의 사실 여부를 떠나 당시 로이 부캐넌의 기타 연주는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정평이 나있었고, 텔레비전에서는 그의 연주가 등장하는 다큐멘터리 영상을 'The Best Unknown Guitarist in the World'라는 제목으로 방송하였다. 'RoyBuchanan'을 발표하였다. 데뷔 음반에는 로이 부캐넌의 명곡이자 대표 곡인 'The Messiah Will Come Again' 이수록되어 오랜 세월 사랑받고 있다. 로이 부캐넌은 1988년 공공장소에서 음주 소란 행위로 체포되어 버니지아주페어팩스(Fairfax County)의 경찰서 유치장에 수감되어 있던 중 자신의 셔츠를 이용하여 목매달아 자살하면서 생을마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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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사울의칼`이 출판하는 인터넷 잡지 원문보기 글쓴이: 사울의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