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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의 삶과 그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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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ood 연주/모음곡 스크랩 Roy Buchanan `My sonata`
Dr.love 추천 0 조회 102 11.06.24 18:09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로이 부캐넌..

Roy Buchanan 'My sonata'
 

 

 

 

 

 

 

'기타의 메시아' 로이 부캐넌.
아칸사스주에서 태어난 천부적인 블루스 기타리스트인 그는 내성적인 성격으로 활발한 활동은 없었지만
그의 연주는 이미 당시 유명 기타리스트들 사이에까지 널리 알려져 있었다.

확실한 핑거링과 프레이징, 기타의 톤 바이에이션을 최대한으로 활용한 다양한 음색등으로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기타리스트였다.
 
하지만 지미 헨드릭스도 그러했듯 천재들의 삶의 끝은 다 같은 것인지..
안타깝게도 47세때 음주벽으로 갇혀있던 경찰서 유치장에서 스스로 목을 매 생을 마감했다.

슈퍼그룹 '레드 제플린'의 지미페이지가 로이 부케넌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고 한다.
 
에릭 클랩튼과 함께 펜더 스트라토캐스터가 얼마나 블루스에 잘 어울렸는지를 증명한,
아니 빼어난 연주 실력과 달리 오랫동안 가져야만 했던 무명 시절부터 온갖 설이 난무하는
비운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삶 자체를 블루스로 연주한 로이 부캐넌.

The Messiah Will Come Again 같은 기타가 절절 끓는 블루스는 아니지만

듣다 보면 어딘지 뽕짝 같은 익숙한 선율과
이따금 들리는 야한 느낌의 낯설은 여성 스캣은 블루스가 지닌 애절함의 정서를 가감없이 들려준다.

 

(펌글 : http://cafe.daum.net/ibumin/CZR3/2275)

 

 

 

 

 

 

 

로이 부캐넌 (Roy Buchanan) : 1939년 9월 23일 미국 아칸소주, 오자크(Ozark) 출생, 1988년 8월 14일 사망

 


미국의 블루스 기타리스트 '로이 부캐넌'은 완벽한 '텔레캐스트(Fender Telecaster)' 기타 연주로 인해

텔레캐스터사운드의 선구자로 불리며 수많은 팬을 거느린 연주자였다. '오순절(Pentecostal)' 교회의 목사

이자 농부의 아들로오자크에서 태어난 로이 부캐넌은 캘리포니아주의 '픽슬리(Pixley)'에서 성장하였다.

어린 시절 어머니와 함께 참가한다인종 부흥회에서 생애 처음으로 접한 흑인 음악인 '가스펠(Gospel)'에

많은 감명을 받게 된다.


이때 부터 로이 부캐넌은 음악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일곱살때에는 심야에 방송하는 R&B 라디오

방송에서 흘러나오는 블루스 음악을 듣고 블루스의 매력에 빠져들면서 기타를 배우게 된다.

스틸 기타(Steel Guitar)를 시작으로하여 열세살때에는 자신을 상징하는 전기 기타인 팬더 텔레캐스트로

바꾸어 연주를 하기 시작하였다. 텔레캐스트와함께 시작된 그의 기타 여정은 열다섯살에 이르면서는 블루스

피아니스트인 '조니 오티스(Johnny Otis)'과 함께 무대에 서면서 본격적인 프로 연주인으로써 기타 연주자의

길을 걷게 된다.

 

1957년에 발표한 'Susie Q'를 불러서 히트시킨 '데일 호킨스(Dale Hawkins)'를 만난 로이 부캐넌은 그의

음반 녹음에합류하여 생애 처음으로 음반 녹음 작업을 하게 되었다. 이때가 1958년이었는데

당시 로이 부캐넌은 'My Babe'라는솔로 연주 곡을 음반으로 남겼다. 데일 호킨스와 순회 공연을 하며 2년

정도의 시간을 보낸 로이 부캐넌은 데일 호킨스와 헤어진 후 그의 사촌인 '로니 호킨스(Ronnie Hawkins)'와

함께 활동하게 된다.


로니 호킨스의 싱글 음반 'Who Do You Love?'에서 베이스 기타를 담당했던 로이 부캐넌은 이후 많은

연주자들과 록밴드의 공연에서 보조 연주자로 활동하면서 1960년대를 시작하였다. 1960년대 중반에는

'워싱턴(Washington D.C.)'으로 가서 세션 활동을 펼치다가 자신의 그룹인 '스네이크스트레쳐스

(Snakestretchers)'를 결성하였다.


1971년, 사람들은 한가지 기사로 로이 부캐넌을 주목하게 되는데, 그것은 "그룹 롤링 스톤즈(Rolling Stones)

가 로이부캐넌에게 롤링 스톤즈에 가입해 달라고 요청하였으나 로이 부캐넌이 거절하였다."는 기사였다.

이 기사의 사실 여부를 떠나 당시 로이 부캐넌의 기타 연주는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정평이 나있었고,

텔레비전에서는 그의 연주가 등장하는 다큐멘터리 영상을 'The Best Unknown Guitarist in the World'라는

제목으로 방송하였다.
이 방송을 통해 '폴리돌 레코드(Polydor Records)'와 음반 계약에 성공한 로이 부캐넌은 1972년에 데뷔 음반

'RoyBuchanan'을 발표하였다.

데뷔 음반에는 로이 부캐넌의 명곡이자 대표 곡인 'The Messiah Will Come Again' 이수록되어 오랜 세월

사랑받고 있다.

로이 부캐넌은 1988년 공공장소에서 음주 소란 행위로 체포되어 버니지아주페어팩스(Fairfax County)의

경찰서 유치장에 수감되어 있던 중 자신의 셔츠를 이용하여 목매달아 자살하면서 생을마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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