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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도요타를 다시 서게 했나… 수뇌부 현지 연쇄 인터뷰" 최악의 3년이 최고의 3년으로… 세계 1위 오를 욕심에 과잉 생산, 1000만대 리콜 사태후 나락으로… 자만은 자멸 부른다는 교훈 얻어… 주가, 반년 사이 80% 이상 올라… 3년 만에 돌아온 원점은 예전보다 훨씬 높은 곳에 있었다
일본 도요타시에 위치한 도요타자동차 창업자 고(故) 도요다 기이치로의 옛 자택. 지금은 기념관으로 쓰이는 집 앞 정원에 작은 벚나무 한 그루가 눈에 들어왔다. 높이 3m가량의 이 나무 앞에는 나무막대가 세워져 있는데 그 위에 '2011년 2월 24일, 도요타 재출발의 날'이라는 엽서 크기의 금속 푯말이 붙어 있었다.
이 나무는 도요다 기이치로의 손자인 도요다 아키오(57) 사장이 미국 의회 청문회에 나가 리콜사태에 대해 증언하며 눈물을 흘린 뒤 정확히 1년이 지난, 겨울비가 내리던 날에 아키오 사장이 직접 심었다. 고객에게 피해를 입혔던 일을 절대 잊지 않겠다는 마음을 담아 식수(植樹)한 것"이라며 "그런 맹세를 창업자인 조부(祖父)가 살던 집 앞에서 했다는 것은 아키오 사장이 그만큼 맹세의 무게를 중요시했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2년 전 '재출발의 날' 이후 도요타에서 2월 24일은 모든 부서가 고객 제일주의를 제대로 실행하고 있는지 되돌아보는 날이 됐다. 도요타의 재탄생을 상징하는 신차 '크라운'의 핑크색 모델이 함께 전시된 자리였다. 가혹한 겨울을 이겨내고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벚나무의 저력에 도요타의 재탄생을 비유한 것입니다." 창업자 할아버지 앞에서 벚나무를 심어 '도요타 재탄생'을 맹세한 이후 2년이 지났다. 아키오의 맹세는 이미 지켜진 것처럼 보인다. 작년에 글로벌 판매 1위 자리를 탈환했기 때문이다. 리먼 쇼크, 1000만대 리콜, 엔고, 일본 대지진 등 초대형 위기를 딛고 2년 만에 다시 쓴 왕관이다. 올들어 엔저 훈풍까지 불면서 주가는 6개월 전보다 80% 이상 올랐다.
"어제보다는 오늘, 오늘보다는 내일이 더 좋아질 수 있도록 노력합시다. '베스트(best)보다는 베터(better)'를 목표로 삼아 도전합시다." 자신들의 미래 전략을 알리기 위해 준비한 '더 좋은 차 만들기 설명회'에 참가했다. 이틀간 도요타의 핵심 공장, 새 연구시설을 둘러보고, 실무진부터 최고경영진까지 다양하게 만날 수 있었다. '1등'이나 '자신감' '부활' 등의 단어를 입에 올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난 3년간 도요타가 어떻게 위기 극복을 했고, 어떻게 1등 복귀가 가능했는지에 대한 홍보는 한마디도 없었다. 대신 위기를 통해 도요타가 무엇을 배웠고, 또 배운 것을 어떻게 적용하고 발전시킬지에 초점이 맞춰졌다. 이틀간 가까이서 지켜본 도요타의 모습은 챔피언이 아니라 철저한 도전자였다.
도요타시의 중심인 도요타 거리 1번지에 위치한 사무 본관 건물. 건물 앞 벚꽃의 옅은 분홍빛과 검은 건물이 대조를 이루며 지극히 일본적인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지상 15층에 검은색 유리로 싸인 이 건물은 아키오 사장 등 도요타 최고경영진의 전용차가 1층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지하 통로로 들어간 뒤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무실로 올라가기 때문에 외부인과는 완벽히 차단돼 있다. 도요타가 이 건물에서 느끼는 것과 같은 위압적인 이미지를 벗기 위해 노력한다고 말했다. '권력보다 사랑이죠'입니다. 도요타는 이제 권력이나 권위를 버렸습니다.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요. 고객에 대한 사랑, 도요타차를 애용해 주는 고객의 사랑이야말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지난 위기를 통해 배운 겁니다." 반대로 실패에는 다음의 성공으로 이어지는 싹이 내포돼 있다. 도요타의 3년은 이 교훈을 체득하는 시간이었다. 2008년 리먼쇼크 이후 300만대분의 생산 과잉을 견디지 못하고 표류했다. 짐 프레스 전 북미 도요타 사장은 "일부 도요타 전문 경영인들의 탐욕이 낳은 결과"라고 말했다. 취임 4년째를 맞는 아키오 사장은 지난달 6일 도요타 신(新)체제 출범 기자회견에서 "내가 지난 3년간 한 일은 도요타를 원점으로 되돌리는 작업이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도요타가 돌아온 원점은 이전보다 훨씬 더 높은 곳에 있었다. 도요타의 지난 3년은 도요타 75년 역사상 최악의 3년이었지만, 동시에 최고의 3년이었던 것이다. 또 도요타 리콜 사태가 벌어진 뒤부터 현대자동차 내부에서는 도요타 비교보고서가 싹 사라졌다. 한 고위 임원이 "도요타에서는 우리가 더 배울 게 없으니 앞으로는 벤츠·BMW와 비교하는 보고서만 가져오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반면 도요타 연구소 관계자는 "현대차가 새로 나오면 전부 뜯어보고 현대차에서 배울 점이 뭐가 있는지 면밀히 연구한다"고 전했다. 2000명의 최정예 인력이 도요타 제품 중 가장 첨단이라는 하이브리드카 프리우스의 핵심 부품을 만들고 있다. 30년 전 아키오 사장이 입사 직후 처음 배속된 곳(생산조사부)이기도 하다. 안내받은 곳은 도요타 생산방식(TPS·Toyota Production System) 기본 라인이었다. 도요타가 실패를 모르고 성장 가도를 달리던 정점에 도요타 본사를 찾았을 때 봤던 것과 전혀 달랐다. 6년 전 도요타 홍보 담당자가 보여준 것은 양적 성장의 상징이었던 쓰쓰미 공장이었다. 본사 공장 인근에 있는 이 공장의 위용은 대단했다. 프리우스부터 캠리까지 7개 차종의 수백여 가지 변종 모델을 월 4만대씩 한치의 빈틈 없이 만들어 내는 눈부신 광경은 마치 '우리가 최고'라고 외치는 듯했다. 2~3년 만에 1000만대까지 늘리면서 GM을 누르고 세계 1위가 되겠다는 야심을 드러낸다. 단기간에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거액을 들여 자동화 기기를 투입하고, 충분히 숙련되지 않은 인력까지 현장에 투입했었다.
◇물량주의에 대한 반성 수작업 기반의 작고 아기자기한 공작기계들을 사용해 일일이 손으로 만지고 확인하며 작업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자동화 기술이 모자라서는 물론 아니다. 도요타의 자동화 기술은 업계 최고 수준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더 효율적인 자동화가 가능한지 알기 위해서는 우선 작업의 기본원리를 익히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걸 안 지키면 언젠가 문제가 터질 수 있으니까요."
기본 원칙을 지키지 않고 자동화·물량 경쟁에 나섰다가 참사를 겪었던 뼈아픈 교훈이 담겨 있는 말이었다. 도요타 생산방식의 기본 원칙은 현장의 작업자가 원리 원칙을 확실히 익혀 작업을 개선하고 품질을 높인다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미래의 인재들이 직접 손끝으로 모노즈쿠리(물건 만들기)의 기본을 익혀야 한다. 가와이 미쓰루(65) 기술 총책임자는 "작업자가 생산 과정을 장악하지 못하면 아무리 뛰어난 엔지니어가 생산라인을 설계한다고 해도 결국 낭비와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프리우스 같은 첨단 차량도 결국 처음에는 모터에 구리코일 한 개까지 손으로 감아보며 고민하지 않으면 절대 좋은 자동화 라인이 나올 수 없다는 것이다. 자리를 같이했던 기리모토 글로벌 홍보실장은 "중학교 졸업 후 도요타에 입사해 50년간 현장을 지켜온 '도요타 생산방식의 영혼'과도 같은 분"이라고 말했다. 도요타에는 중·고졸 생산직 가운데 능력을 인정받아 중역까지 오른 인물이 꽤 있다. 고졸 생산·기술직은 제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차장 이상 승진이 거의 불가능한 현대차와 대조적이다. 열심히 해서 목표를 달성하면 상사는 항상 "수고했다. 이게 100이라면 남은 것이 또 100이다"라고 얘기했다는 것. "정말 열심히 했으니까 이제부터는 좀 여유를 갖고 하자"는 얘기는 지금까지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고도 했다.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인재 양성까지 저절로 됐으니 그만큼 현장에 더 많은 실력이 붙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현대차는 생산 라인을 설계하는 엔지니어들과 노조원인 생산직 사이에 업무 개선을 위한 협업이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 대화가 사실상 단절된 게 10년이 넘었다. 이런 기업문화는 단순히 생산성을 떨어뜨리는 데 그치지 않고, 현장에서 개선하고 현장에서 배우는 과정 자체를 무너뜨린다. 따라서 제조기업이 현장에서 얻을 수 있는 무한한 기회를 잃게 만든다. 자칫 도요타가 겪었던 실수를 반복할 우려마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대차 생산라인 개선에 참여 중인 한 외부 컨설턴트는 "현대차의 생산기술 엔지니어들의 능력이 도요타에 비해 점점 떨어지고 있다"면서 "개인 능력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오랫동안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개선할 기회를 잃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본사 연구소 내에 위치한 '엔진 공동개발동'에서 진행됐다. 지난 2월 완공됐는데, 연면적 10만㎡(약 3만평) 12층 건물에 상주 엔지니어 숫자가 2800명이다. 1시간 일정의 절반가량을 신차 설계 전략을 소개하는 데 할애했다. 전략의 키워드는 '단순화'였다. 게다가 차량 기능이 복잡해지고 각종 전자장비가 덧붙여지면서 개발·생산 프로세스가 기하급수적으로 복잡해지는 사태가 발생한다. 전문가들은 도요타 리콜 사태가 이런 복잡성을 해결하지 못해 '폭발'한 것이라 진단하기도 한다. 해결책은 4~5년 전부터 폴크스바겐이 추진해 온 '레고블록형 설계 전략' 즉 자동차의 공통 부품을 레고블록처럼 만들어 끼워 맞추는 방식이었다. '복잡성의 폭발' 문제를 해결하면서 더 다양하고 성능·품질이 좋은 차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최초의 설계 단계부터 어떻게 하면 가장 단순하게 만들어낼 수 있을지 '마스터 플랜'을 제대로 짜는 것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적(敵)의 전략을 통해 절실히 깨닫게 된 것이다.
지금이라도 폴크스바겐 식의 레고블록형 설계를 준비한다. 그러나 폴크스바겐과 같은 큰 덩어리 개념이 아니라, 더 작고 세분화된 블록을 조합하는 방식으로 승리하겠다'는 것이었다. 도요타 분석의 권위자인 도쿄대 후지모토 교수는 '폴크스바겐이 30개의 레고블록을 끼워 맞춰 모든 차를 만든다면, 도요타는 '지금까지는 1000개의 블록을 갖고 차를 만들었지만 이것을 300개로 줄이겠다는 식'이라고 표현했다. 이는 폴크스바겐 만큼 기술이 안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지만, 한편으로 자신만의 방식으로도 충분히 경쟁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이기도 하다.
국내 한 자동차 설계 전문가는 "지금 폴크스바겐이 업계를 선도하는 것 같지만, 승부는 더 지켜봐야 한다"며 "도요타가 폴크스바겐보다 비용을 더 아끼면서 효율을 개선하는 데 능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설명회가 끝난 다음 안내된 곳은 신설된 신(新)엔진 개발센터의 개발 현장이었다. 지난달 전사 조직 개편 때 신설된 조직이다. 도요타가 이 조직을 신설한 이유는 폴크스바겐을 잡기 위해서다.
도요타는 지난 15년간 하이브리드카로 세상을 지배하려는 야망을 키워왔다. 그 결과 작년 연간 판매 100만대를 넘겼다. 하지만 100만대라 해봐야 전 세계 자동차 판매 대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대에 불과하다. 엔진 개발에 소홀했던 게 대표적이다. 비싼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탑재하면서도 가격을 크게 높이지 않기 위해서는 엔진을 최대한 싸게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최근 폴크스바겐이 더 성능 좋고 연비 좋은 엔진을 속속 내놓으면서 도요타의 비교 우위가 떨어지는 문제가 발생했다. 게다가 혼다·닛산·마쓰다 등이 하이브리드가 아니라 기존 동력전달 장치를 개선해 연비를 대폭 높인 신차를 내놓으면서 한순간에 도요타 '비(非)하이브리드 차량'들의 연비 경쟁력이 떨어지게 됐다. 도요타는 신엔진 개발센터라는 신설 조직을 통해 폴크스바겐과 맞설 성능과 연비가 더 좋은 엔진을 개발하겠다는 전략을 세운 것이다. 3층의 1000평 이상 되는 공간에 500명에 달하는 엔지니어가 한자리에 모여 있는 풍경이었다. 별다른 장비도 없이 사람과 PC, 그리고 사람들이 모이는 미팅 공간들만 있었다. 좋은 엔진을 빨리 만들기 위해 도요타가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이 커뮤니케이션이었기 때문이다. 도요타 내부에 이미 더 좋은 엔진을 개발할 설비나 인력 자원은 충분하기 때문에 이미 존재하는 자원을 모아 어떻게 좋은 아이디어와 계획을 빨리 만들어 내느냐가 성공의 관건이라는 것이다. 각 부서 엔지니어들의 지혜를 집결하기 위한 공간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고 설명했다. 첫 번째는 업무에 필요한 모든 조직을 한 건물에 모아 아이디어 수립부터 최종 결정까지 '원스톱'으로 가능하게 만든다는 것이었다. 두 번째는 필요 안건이 있을 때 수시로 모였다 흩어지는 '태스크포스'를 도요타 방식으로 더 강화한다는 것이었다. 그 노력은 그들이 보여주는 전략, 신제품, 공장, 연구소 그리고 말단 직원부터 최고 임원의 언동에 그대로 배어나왔다. 세계시장을 장악하겠다는 혼네(속마음)를 숨긴 일본 특유의 겸손일까? 아니면 끊임없이 배우고 노력하는 마음가짐을 알리고 싶어서였을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위기를 통해 배우는 도요타 특유의 진화 능력이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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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법이다(That’s the law)"
#1. 보스턴 마라톤 테러범 조하르 차르나예프가 붙잡힌 지난달 19일 밤,
일주일을 분노와 불안에 떨던 보스턴 시민들이 성조기를 들고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곳곳에서 'USA, USA'라는 연호가 들려왔다.
월드컵 4강 진출 당시의 서울 같았다.
심야까지 현장을 지키다가 이러한 분위기도 느껴보고 목도 축일 겸 해서 시내 술집 거리로 향했다.
이때가 오전 1시 30분.
그러나 어떤 술집도 들어갈 수 없었다.
새벽 2시 이후 술을 팔지 못한다는 매사추세츠주 법규 때문이었다.
여러 장소를 옮겨 다니며 "오늘처럼 좋은 날, 딱 한 잔만"이라며 읍소해봤다.
2시까지는 수십여분이 남았거니와, 어차피 2시라고 술 마시던 손님을
칼같이 내쫓는 건 아니기에 웬만하면 슬쩍 넣어줄 줄 알았다.
그러나 한결같이 돌아온 대답은 9개월 미국 생활에 너무나 익숙해진 한마디,
"미안하다. 그게 법이다(That's the law)"였다.
#2. 하루 뒤, 조하르를 검거한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에 '어이없는' 논란이 이어졌다.
체포하는 순간에 '불리한 진술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 등을 규정한
'미란다 원칙'을 알려주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실소가 나왔다.
아빠를 기다리던 8세 꼬마, 꽃다운 20대 여성 등 4명을 살해하고 14명의 팔·다리를 앗아가는 등
264명을 다치게 해 국민적 분노를 산 흉악범에게 미란다 원칙 논란이라니. 게다가 물어볼 게 태산 아닌가.
그러나 이들은 진지했다.
조하르가 눈을 뜬 바로 다음 날, 한 연방 판사가 "수사 효율성"을 내세운 연방수사국(FBI)의 만류를 뿌리치고
그의 병실을 방문, 기어이 미란다 원칙을 알려줬다.
이때까지 "뉴욕에서 추가 테러를 하려 했다"며 순순히 조사에 응하던 조하르는 그 직후 말문을 닫았다.
그 판사에게 이유를 물어보진 않았지만 대답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그게 법이다."
#3. 테러 사건 취재를 마무리하고 뉴욕으로 돌아왔다.
역사(驛舍)를 나서는 순간, 주차된 경찰차 뒤 범퍼에 인쇄된
'캅샷(Cop Shot·경찰관 저격), 현상금 1만달러'라는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뉴욕에서는 경찰관을 향한 총격 사건이 발생하는 그 순간,
별도 절차 없이 자동으로 총격범에게 현상금이 걸린다.
총탄 적중 여부는 문제가 아니다.
사건 발생 수분 만에 '$10,000'라는 거대한 현수막을 내건 트럭이 현장에 도착,
주변을 돌며 범인을 압박하고 시민들의 제보를 독려한다. 이른바 '캅샷 프로그램'이다.
제보자에게는 사건 관련 정보 외에 개인 정보를 일절 묻지 않는다.
제보를 바탕으로 범인이 잡히면 즉시 현금으로 1만달러를 건넨다.
1984년 이후 이 프로그램에 따라 상금을 받아간 사람은 20명이 넘는다.
이 프로그램의 운영위원인 존 프로베토는 "공권력에 대한 도전은 곧 시민에 대한 도전이다.
1만달러는 아무것도 아니다"고 했다.
법에 대한 시민의 존중,
그러한 인식의 밑거름이 되는 공정한 법 집행과
법 집행자에 대한 확고한 권위 부여.
이것이 기자가 '자유의 나라' 미국에서 목격한 법치주의의 선순환 구조다.
"인구절벽 앞둔 한국… 수출 중심 성장 유지해야"
내수 키워야 한다지만_한국가계 이미 부채 많아
내수 뒷받침 여력 없어 인구 증가도 기대 어려워
그렇다면 대안은 뭔가_서비스 수출 비중 키워서
대외순자산 늘려나가면 원貨의 준비통화化에 도움
수출이 감소하자 내수를 키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도 한국을 포함한 신흥국들이 수출중심의 성장에서 벗어나
내수를 확대해야 글로벌 불균형을 해소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1998년 총고정투자를, 2011년 민간소비를 각각 추월하였다.
하지만 한국의 인구, 발전단계, 환율 제도를 보면 내수 중심 성장은 현실적으로 어려워 보인다.
첫째, 5000만인 남한인구는 2030년 5200만명을 정점으로 감소할 전망이다.
전 세계 인구 상위 24개국을 보면 인구가 1억명은 넘어야
내수 시장에서 규모의 경제가 가능해져 수출 의존도를 50% 이하로 낮출 수 있다.
아시아에서 중국 (수출비중 27%), 인도 (22%), 인도네시아(25%),일본(15%)이 여기에 해당한다.
물론 1억명 미만의 인구로도 내수 비중이 큰 나라가 있는데 자국 화폐가 준비통화(reserve currency)이거나,
수출산업이 미미한 저소득국가다. 지금의 한국은 어디에도 포함되지 않는다.
둘째, 2011~16년 한국의 인구구조는 생산가능인구(15~64세)의 비중이 64%로 가장 높아지고
어린이와 노인 비중은 36%로 낮은 '다이아몬드형"이다.
반면 인도, 인도네시아는 청소년층 인구가 많은 '피라미드형'으로
이들을 교육시키고 노동시장으로 흡수하면서 내수가 꾸준히 성장할 수 있다.
한국에는 이미 지나간 과거다.
또한 도시화율이 45%에 불과한 중국은 사회간접투자의 여지가 많지만 80%에 육박하는 한국은 그렇지 않다.
아울러 한국의 가계부문은 부채를 늘려 내수를 뒷받침할 여력이 더는 없어 보인다.
셋째, 원화는 준비통화가 아니다.
내수 중심 성장은 경상수지 적자를 동반한다.
그런데 원화가 준비통화가 아니기 때문에 적자를 메우기 위해 준비통화(외채)를 빌려야 한다.
원화가치가 고평가되고 내수경기가 과열되면 1997년처럼 외환위기도 발생할 수 있다.
반면 현재 국제통화제도하에서는 미국, 호주의 경상적자가 커져도 미국채 등(준비통화)을 신흥국이 살 수밖에 없다.
준비통화를 보유한 나라는 내수 중심으로 성장해도 경상적자를 쉽게 보전하지만 한국은 아니다.
국제적으로 보면 내수 중심 성장의 선결조건은 인구 증가와 준비통화(원화국제화)다.
남북한 인구를 합하면 7300만명이다.
하지만 통일은 예측 가능성이 낮고 성사되더라도 통일 비용 조달을 위해
통독(1990년) 직후 독일처럼 수출 중심 성장이 불가피할 것이다.
출산율을 높이거나 이민 유입 정책은 오랜 시일이 걸리고 싱가포르의 예처럼 정책 효과도 장담하기 어렵다.
원화 국제화는 더욱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외국인의 원화 자금 조달시장을 창출하고 한국 기업과 금융기관의 글로벌화를 촉진한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100% 자본자유화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투기적 공격에 취약할 수 있고 당장에 수출 경쟁력에 어려움이 발생할 수 있다.
이미 준비통화인 엔화, 그리고 국제화 속도를 높이는 위안화 사이에서 원화가치가 종속될 수 있다.
북한이라는 지정학적 위험도 원화 국제화의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이러한 제약조건하에서 지속 가능한 내수 확대 정책은 '새로운 수출산업'을 발굴, 육성하는 것이다.
수출산업이 커지면 거기에 파생되어 내수 시장도 성장한다.
특히 서비스 수출은 고용 창출력이 크다.
외국인 관광객 증가, K팝 해외 열풍, 국제기구의 국내유치도 이런 맥락에서 환영할 만하다.
작년 재화 수출은 1%(전년동기비) 줄었지만 서비스 수출은 21%나 늘었다.
재화 수출의 규모가 압도적으로 크기 때문에 총수출은 부진하지만
앞으로 서비스 수출 비중을 키운다면 내수 경제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한국은 2018년부터 생산가능인구가 감소하고 인구고령화가 급진전되는 '인구절벽(demographic cliff)'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비하려면 대외자산에서 대외부채를 뺀 순대외자산이 충분해야 하는데 한국은 소폭 마이너스(-0.1조달러, 2011년)다.
일본 (3.2조달러)과 대만(0.7조달러)이 막대한 순대외자산을 보유하고 있어
해외로부터 벌어들이는 이자,배당수입으로 노령화의 충격을 상당히 흡수하는 것과 대비된다.
신정부가 출범하는 2013년부터 2017년까지는 한국의 인구구조가
최적의 상태(demographic sweet spot)에 머물러 순대외자산을 늘릴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 기회가 주어진다.
실패하면 2018년 이후 인구절벽 때문에 큰 어려움이 닥칠 수 있다.
충분한 순대외자산을 갖추어야 원화를 준비통화로 키울 수 있다.
그러기 위해 수출을 중심으로 성장하고 그에 상응하게 내수를 키워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를 만들었으면 한다.
글로벌 경기가 어려울 때 '내수불황형 경상수지 흑자'가 호황형 적자보다 반드시 나쁘지 않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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