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 하나님 앞에 스스로 겸비케 하기로 (단 10:12) >>>
단 10:12 그가 내게 이르되 다니엘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깨달으려 하여 네 하나님 앞에 스스로 겸비케 하기로 결심하던 첫날부터 네 말이 들으신 바 되었으므로 내가 네 말로 인하여 왔느니라
한 식당 앞에서 어린 꼬마가 귀엽게 쪼그려 앉아 ‘나 쳐다보지 마’라고 떼를 쓰며 울고 있다. 아이의 엄마가 달래보려고 애를 쓰나 아이는 ‘나 쳐다보지 말란 말이야’를 반복하여 소리 높여 운다. 아이의 말과 행동이 귀엽기에 다가가니 나에게도 ‘쳐다보지 마’라고 앙탈 부린다. 계속해서 쩔쩔매는 엄마에게 아이가 안 보이게 가게 안으로 잠시 숨어보라 하였다. 나의 말에 조금 망설이던 엄마가 결심한 듯 아이 앞에서 사라지자 아이가 당황하며 울음을 멈추었다. 그러나 엄마는 잠시의 순간을 못 참고 뛰어나와 아이의 앙탈은 계속되었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이러한 듯 하다.
사람은 누군가 자신을 지켜주고 있을 때 큰 힘을 얻는다. 반면에 자신을 지켜주는 사람이 없으면 두려움만 가득하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 자녀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구원하였고, 성령으로 함께하시어 우리의 보호자가 되신다.
두려워하지 말라
자신의 편리와 뜻대로 살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사람과의 관계, 건강 상태, 일의 업무를 통해 찾아드는 스트레스로 정신적 염려와 두려움을 갖는 것이 일반적 모습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두려움은 자기의 일로 끝나지 않고 하나님과 연결이 된다. 그래서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고 늘 말씀하신다.
단 10:12 그가 내게 이르되 다니엘아 두려워하지 말라...
‘두려워’ arey: (3372 야레 VQIMYS ar:yTi) 무서워하다. 걱정하다. 경외하다.
‘두려워하지 말라’는 단순하게 걱정하지 않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두려움이 심할수록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다. 사도바울은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군사라고 말한다. 군사의 목적은 싸움에서 승리하는 것이다. 싸움에서 패하기 위해 군사가 되지 않는다. 승리를 위해 힘들고 고된 훈련을 한다.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훈련으로 승리자가 되게 한다. 두려움에 빠진 군사는 능력이 뛰어나도 올바른 전술을 발휘하지 못해 패배하게 된다. 하나님은 무서워하지도 걱정하지도 말라고 하신다. 우리가 어떤 싸움을 하며 어떻게 해야 이길 수 있는지를 잘 알고 계신다. 이에 필요한 능력과 지혜로 함께하여 승리하게 하신다.
사 41:13 이는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 네 오른손을 붙들고 네게 이르기를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할 것임이니라
하나님은 우리가 두려움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되기를 원하신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심은 우리가 염려 가득한 모습으로 무서움에 빠질 때 십자가를 바라봄으로,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의지하라는 것이다. 십자가를 바라봄으로 성령으로 함께하시는 하나님이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셔서 두려움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이 되게 하신다.
스스로 겸비케 하기로 결심하던
아브라함은 헤브론에서 장막으로 옮겨 그랄로 이사한다. 그랄은 애굽과 가나안 중간의 지역으로 아브라함은 이곳에서 생명의 보존을 위해 세상과 하나님 사이에서 갈등한다. 그러나 자신의 생존을 위해 자기의 아내 사라를 그 지역의 왕 아비멜렉의 아내가 되게 한다. 낯선 지역에서의 두려움에 믿음의 정체성을 잃고 하나님의 뜻보다 세상 방식의 타협과 합리화된 생활을 선택한다. 지금까지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왔음에도 그 은혜를 끝까지 겸비하지 못하는 아브라함이다.
단 10:12 ..네가 깨달으려 하여 네 하나님 앞에 스스로 겸비케 하기로 결심하던 첫날부터..
‘겸비케’ hn:[; (6031 아나 C.P.VTNG t/N['t]hil]W) 복종하다. 고통을 당하다.
믿음 생활은 하나님께 복종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탄은 우리 눈이 세상 안락(근심과 걱정 없이 몸과 마음이 평안하고 즐거움)에 관심을 두게 하여 우리 생각을 압박하고 괴롭힌다. 다니엘은 세상과 타협 대신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복종하기로 결심한다. 육체의 고통을 당하나 강한 하나님의 능력과 보호하심을 믿고 기도에 집중한다. 하나님께 기도함은 마트에서 좋은 물건을 골라 손쉽게 구매하는 것이 아니다. 영적 싸움으로 자신을 낮추어 하나님께 복종하는 것이다. 사탄의 방해 전략으로 고통을 당하나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의 응답을 바라는 것이다. 다니엘은 모든 일에 하나님을 최우선 순위에 두고 하나님께 복종하기 위해 스스로가 겸비하기로 결심한다.
대하 33:12 저가 환난을 당하여 그 하나님 여호와께 간구하고 그 열조의 하나님 앞에 크게 겸비하여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을 보호와 책임으로 함께하신다. 그래서 환난을 당하면 세상 힘을 빌리거나 도움을 받으라 말씀하지 않는다. 성령의 충만으로 더 강하게 하나님께 간구하고 크게 복종하라 하신다. 세상의 힘을 의지하는 마음이 강하게 앞설지라도 이를 극복하고 하나님 앞으로 나오라 하신다. 십자가는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고난과 고통을 당하신 상징이며 우리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께 복종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받은 우리는 다니엘처럼 믿음을 새롭게 겸비하여 하나님의 복을 누려야 하겠다.
네 말이 들으신 바
하나님은 보혜사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하신다. 우리가 이 땅에 존재하는 동안 영적 싸움은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지 않으면 믿음 생활은 기쁨이 없는 의무적 순종과 복종이요, 자신의 편리와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수고에 불과하게 된다. 믿음은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는 기쁨이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하나님을 의지하는 기도는 선택이 아닌 필수이다.
단 10:12 ...첫날부터 네 말이 들으신 바 되었으므로 내가 네 말로 인하여 왔느니라
‘들으신’ [m'v; (8085 샤마 VNAZCS W[m]v]nI) 들리다. 듣고 응답하다.
우리는 세상 풍파의 고비로 ‘어떠한 방법으로 어떻게 살까’를 고민한다. 그러나 지금의 장소가 하나님이 함께하므로 보호하는 곳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을 의지하여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다니엘의 기도를 듣고 다니엘이 있는 장소로 찾아오셔서 응답하신다. 다니엘의 기도가 하나님에게 완전하게 들렸기 때문이다. 우리는 미래를 예측할 수 없기에 무서움과 염려로 걱정이 가득하다. 이때 핑계를 대지 않고 기도해야 한다. 기도는 영적 싸움의 시작이며 승리이다. 영적 싸움은 고통이 따른다. 그러함에도 기도해야 함은 하나님의 응답을 거두기 위한 씨앗을 뿌림과 같기 때문이다.
사 65:24 그들이 부르기 전에 내가 응답하겠고 그들이 말을 마치기 전에 내가 들을 것이며
우리는 생활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기도한다. 물질과 건강, 좋은 직장과 사업, 가족과 자녀들의 안정과 성공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생존 문제이기에 기도한다. 이러한 문제로 어쩔 수 없이 기도할 때가 많다. ‘내 문제도 급급한데….’라고 말하며 하나님의 뜻과 계획은 전혀 고려치 않을 때가 많다. 우리는 다니엘처럼 하나님의 뜻을 깨닫기 위해 성령의 충만으로 기도하여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귀를 기울여 집중하여 들으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하기 전에 먼저 우리의 필요가 무엇인지를 알고 계신다. 그러하기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기도와 복종은 하나님의 기적의 은혜와 복을 누리게 한다. 우리의 기도로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믿음이기를 축원한다. AMEN.